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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현

[정규현] 검은 감자- 아일랜드 대기근 이야기

by 유카이 posted Sep 23,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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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검은 감자-아일랜드 대기근 이야기   지은이: 수전 캠벨 바톨레티   2017. 9. 23. 금 정규현

<1. 검은 감자다, 검은 감자>- 아일랜드는 원래 변덕스러운 날씨를 가지고 있었지만 1845년 여름 찾아온 날씨는 큰 위기를 의미하는 듯 했다. 하지만 신문도 풍성한 감자 수확을 예상해서 아무도 감자에 대한 걱정을 크게 하지 않았다. 감자는 그들의 삼시세끼를 책임지는 주식이었다. 하지만 어느 날 아침, 악취가 진동했고 감자의 줄기와 잎은 검게 축 쳐져 있었다. 그렇게 늦감자 농사는 실패했지만 사람들은 일찍 수확한 햇감자로 버티려고 했다. 결국 그것 마저 저장 창고에서 썩어버렸을 때, 요정을 믿는 아일랜드인들은 요정 파르리어의 짓, 또는 천벌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이 상황에서 적대적인 영국인 지주들의 소작료 요구가 엎친 데 덮친 격이었다.

<2. 특별히 남겨둔 감자>- 많은 사람들, 여행자들이 보기에 아일랜드는 풍요의 땅이었다. 하지만 끔찍하게 가난한 이들의 생활을 보고 여행자들은 깜짝 놀라곤 했다. 부강한 나라 영국이 잘 보살피리라고 생각했지만 아일랜드는 영국에게 그저 원수일 뿐이었다. 돈이 없어 집세를 내지 못하는 이들은 토굴 집에서 살기도 했고 조혼과 대가족 풍속 때문에 가난은 더욱 더 심해졌다. 그렇다고 구빈원은 정말 끔찍했다. 대우가 모질었고 환경이 형편없었으며 규율 또한 엄격했다. 한 영국인 지주가 그 곳을 지옥에 비유한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3. 조금만 도와주시기를>- 가난해질수록 아일랜드 사람들은 대담해졌고 남의 소의 쇠꼬리를 잘라 구워 먹기도 했다. 살림이 어려워 사채업자에게 돈을 빌렸지만 이자율이 대단히 높았고 관리에게 하소연해도 아무 소용 없었다. 영국 총리인 로버트 필은 과학 위원회를 구성하여 감자 흉년의 원인을 알아본 결과 피토프토라 인페스탄스라는 감자 역병균이었다. 필 총리는 식량이 절실하다는 것을 알았지만 잘못된 옥수수의 딱딱한 알갱이 때문에 소화기관에 미치는 영향이 끔찍했다. 그런 그를 비판했지만 치달에 시달리는 아일랜드인들을 구해줬다고 평가하기도 한다.

<4. 허기진 까마귀 떼처럼>- 1845년이 저물고 감자 심을 때가 다가왔고, 사람들은 씨감자를 심어 풍성한 수확을 이루었다. 하지만 러셀 총리의 잘못된 판단으로 18468월 다시 한 번 2년 동안 감자 역병이 계속되었다. 하지만 그 백성들이 힘들 동안 지주와 농민들은 곡식을 누렸다. 그 광경을 보다 못해 5000여명 백성들이 폭동을 일으켰고 치안 판사 커민스는 이런 광경을 보고 영국 정부를 비판했다.

<5. 감자가 자랄 때까지만>- 대기근에는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에 대한 슬픈 비극이 넘쳐난다. 한 엄마가 영양실조에 걸린 아기를 안고 길에 쓰러져 죽었는데 아기는 살아 있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반면 자식이 고통스러워 하는 것을 보는 게 괴로워 스스로 살인하고 자살하는 경우도 많았다. 또 평화로운 아일랜드의 평화가 깨졌고 백성들은 배고픔에 남의 식량을 훔치곤 했다. 하지만 그들은 그건 죄가 아니라고 주장했다. 정부는 무료 급식을 배급하기도 했는데 배급소의 질서가 깨지기라도 하면 질서 유지 요원이 정신없이 팼다고 한다.

<6. 열병이라니요, 하느님, 가호를 베푸소서>- 사람은 못 먹어도 얼마는 버틸 수 있지만 그 기간이 고통을 견디기 어려워한다. 대기근 때 사람들은 영양실조에 시달렸었다. 하지만 더 심각했던 것은 전염병이었다. 발진티푸스, 재귀열, 콜레라, 이질 등이 대표적이었는데 그 중 검은 열병이라 불리는 발진티푸스는 혈관을 막아버리는 무서운 병이었다. 영국 정부는 사망자가 급증하자 의료비를 지원했지만 나중에 갚아야 하는 것이었다.

<7. 참혹하게 허물리는 집들>- 브리짓 오드넬은 넷째를 임신한 채 열병에 걸렸고 지주들은 매일 같이 찾아와 점유권 포기를 요구했다. 그리고는 기어이 오두막집을 부숴버렸다. 아일랜드인들에게 이런 일은 일상사였다. 영국인 지주들은 소작료를 내지 못하는 사람들을 사유지에서 내쫓는 데에 열을 올렸다.

<8. 머나먼 이주길>- 사람들은 견디다 못해 고국을 등지고 이주를 택했다. 배 안에서 송별회를 하며 종종 울음을 터뜨리곤 했다. 배 안 환경은 끔찍했다. 좁디 좁은 것은 물론 전염병이 나돌았으며 긴 여행에 지쳐 곤두선 승객들 사이에 싸움이 잦았다. 막상 이주지에 도착하면 아일랜드인이라며 인종차별을 받기 일쑤였다.

<9. 전쟁은 어디서 시작될까>- 아일랜드 백성들은 하나같이 들고 일어날 때가 됐다며 봉기를 일으켰다. 그리고 감자 역병이 끝났을 즈음에는 아일랜드 청년당에서 혁명을 계획했다. 그 중 지도자인 오브라이언의 연설에 감명 받은 백성들은 그를 믿고 따르며 봉기를 계속했다. 1848년 봉기가 끝나자 오브라이언은 유배지로 추방되었다. 그는 마지막까지 아일랜드인들은 겁쟁이가 아니라고 말한다.

<10. 여왕 페하 마이하러 코크에 가세나>

얼마 안 가 끔찍한 감자 역병이 다시 되살아났다. 그 와중에 영국은 자신들의 기부도 해주고, 일자리도 마련해주고, 위로 방문에다가 옷도 나누어 주었는데 봉기로 보답했다며 모든 지원을 중단해버렸다. 하지만 소년 범죄자가 늘고 부농들의 토지 약탈이 심해지자 대책을 세웠는데, 어이없게도 빅토리아 여왕의 방문이 대책이었다. 총독은 그것이 백성들의 사기를 높일 거라고 생각했다. 여왕 방문 준비에 막대한 낭비를 했다고 비판 받았다. 빅토리아 여왕은 그들의 환영식에 대단히 흐뭇해 했고 아일랜드인들을 좋아하게 되었지만 정작 그들을 구원할 대책을 하나도 마련하지 못했다.

느낀 점: 전에 책에서 아일랜드 감자 대기근에 대해 조금 읽은 적이 있었는데 그 때보다 영국이 아일랜드를 대한 생각과 태도가 어떠하고 어떤 조치를 취했는지 더 잘 나와있어서 새로웠다. 그리고 영국에 시달리는 아일랜드를 보고 옛 일본에게 시달리던 우리나라가 생각나기도 했다.

 


도원

동과 서의 차 이야기/이광주

by 줄기 posted Sep 17,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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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9.11.

제목: 동과 서의 차 이야기

지은이: 이광주

 

차의 원산지는 중국의 서남쪽 윈난과 쓰촨, 구이저우의 각 성이다. 고원지대에서 자라는데 지금까지 밝혀진 차나무는 800년이 지났지만 벼락을 맞아 시들었고, 한 노인 약초를 캐러 산에 올랐다가 2600년 된 차나무를 보았다고 한다. 차는 한자가 없기 때문에 도라고 불렸고 차가 알려진 뒤 다인이 생겨났다. 유명한 다인은 우육이 있다. 그는 최초의 다인이고 차의 가치와 차를 만들 때 쓰는 물의 가치를 만들었다. 맛만으로 어느 물인지 알아맞힐 수 있다고 했다. 차는 다른 약재와 같이 쓰여 상류층들이 마시는 열탕의 재료로 쓰이다가 우육이 차를 보급하자 널리 퍼져 평민도 먹을 수가 있었다. 술은 취하게 하지만 차는 마음을 온화하게 한다고 한다. 그리고 각성제 효과가 있다. 은나라는 과도한 음주로 망했다고 한다. 은나라를 무너뜨린 주나라는 음주를 하면 사형하고 백성들에게 술 대신 차를 주었다. 옛날 사람들은 시는 술에 비유되고 문장은 밥에 비유되어 왔다. 그런데 시 중 술이 아닌 차에 비유한 시가 많다. 그 중 유명한 사람은 소동파라는 시인이다. 중국의 문화 중 여자가 약혼할 때를 끽다라고 하며 시집갈 때 차종자를 가져가는 풍습이 있고 두 집의 차를 마시지 않는다. 라는 속담이 있는데 여자가 남편의 집에서 차를 한 번 마시면 다른 집에서 마시지 말라는 뜻으로 두 남편을 섬기지 말라는 것이다. 중국에서 소비가 가장 많은 차인 녹차는 종류가 아주 많다. 그 중 대홍포는 황제만 마실 수 있는 차인데 연간 70킬로그램만 생산하고 지금도 수백킬로그램밖에 생산하지 않는다고 한다. 홍차는 16세기경부터 생산되었다. 홍차가 스리랑카에서 많이 생산되자 영국의 홍차문화가 꽃을 피웠다. 홍차에는 우유, 레몬, 설탕 등을 넣지만 원산지인 중국은 그렇지 않다. 홍콩에서 애음되는 보헤이차라 불리는 흑차는 다른 차들과는 달리 포도주처럼 오래 된 것일수록 가치가 높다. 화차는 꽃으로 만든 차인데 우리에게 잘 알려진 것은 재스민차, 국화차, 목괴화차이다. 차는 등급이 매겨져서 가장 가치가 높은 차가 황제에게 갔다. 차를 재배할 때 민간인들은 오지 못하고 공차들과 차의 전문적인 감정가가 모여 차를 재배한다. 양선차를 재배할 때 우육도 공차로 그곳에 갔다. 조정에 차를 받치기 위해 모인 사람들은 3만명이나 되었다고 한다. 마오쩌둥은 대홍포차를 즐겨 마셨다고 한다. 대홍포는 매년 800g만 얻을 수 있어서 그 일대는 일반인들의 출입금지구역이고 황제에게만 보내졌다. 차는 중국이 원산지이지만 영국이 중국보다 차를 많이 마신다. 요즘 생산되는 차의 종류는 홍차가 80%이고 녹차를 포함한 다른 차들이 20%이다. 1년 차 소비량이 가장 많은 영국은 1인당 1500잔의 차를 마셨고 생산량이 가장 많은 인도는 300잔 밖에 안 된다. 영국도 17세기 초반에는 커피가 유행하여 모두 커피만 마셨다. 그러나 17세기 중엽이 되자 홍차가 갑자기 인기가 많아지고 모닝 차부터 시작하여 밤까지 매일 4~5잔씩 마시게 되었다. 그러나 진짜 좋은 차는 중산층 이상만 마실 수 있었고 서민들은 싸구려 차를 마셨다. 유럽에서 사교를 할 때는 커피하우스에서 모였다. 모이는 사람들은 모두 정치인이나 문인들이었다. 유럽의 처음 레스토랑은 수프같은 고체음식을 팔지 않는 건강식당이었다. 하지만 고기와 샐러드 등을 추가로 팔면서 지금의 레스토랑이 된 것이다. 옛날에 식사대접을 할 땐 무조건 집에서 하는 것이고 손님을 받을 때도 집에서 했다. 카페는 사교와 놀이의 공간이었다. 옛날에 미식가가 언제 나왔을지는 모르지만 미식가는 생긴 지 오래되었다고 한다. 기독교에서 미식은 금지된다. 하지만 유럽의 돈이 많은 사람들은 미식가가 되는 경우가 많았다. 차를 끓이고 대접하는 것은 여성의 일이라고 성역할이 구분되어 있었다. 여성들은 여성끼리 모여 카페에서 수다를 떨고 노는 문화가 있었다. 서양인의 상류층들은 1년에 300일 이상에 고기를 먹었다. 소가 가장 수요가 많았고 돼지가 가장 적었는데 더러운 돼지라며 불쾌감을 표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침과 점심으로 햄과 소시지를 먹는 경우는 있어도 정식으로 먹는 경우는 없었다. 그에 반해 서민의 삶은 매일 수프에 굳은 빵을 넣고 끓여 먹었고 매일매일 다음 날의 끼니를 걱정해야 했다. 유럽에선 정원을 가꾸는 것이 유행이 되었다. 그래서 밖에서 피크닉을 하듯이 티가든을 해서 밖에서 홍자를 먹는 문화가 있었다. 책을 좋아하고 수다 떨거나 모이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차가 따라다닌다. 홍차 마니아인 존슨 박사는 차는 사교를 위한 것이 아니라 놀이라고 말했다.

느낀 점: 다로 시작하는 단어가 많아서 신기했고 다방의 다도 차의 다라는 것이 놀라웠다.


정안

인간을 필요 없다

by 유카이 posted Sep 16,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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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필요없다.

지은이: 제리카플란 2017.09.16. 이정안

 

컴퓨터에서 낚시 가르치기

인공지능은 인간의 지능과 똑같지 않게 사람들이 할수 있는 것을 빨리, 정확하게, 적은 비용으로 한다. 1966IBM은 문제가 생겼다고 인식을 했다. 1956년 인간 지능의 모든 측면을 그대로 재현하는 기계를 만드려고 능력있는 과학자들이 모여서 여름 내 내 연구에 몰두 하였으나 해결 방안을 찾지 못했다. 그래도 인공지능이라는 용어는 만들었다.

로봇에게 뒤따라오는 법 가르키기

컴퓨터는 처음엔 2차 세계대전에서 군대 탄도학 계산에 쓰일 목적의 계산기로 처음 개발되었다. 1972년 보스턴 근처에 있는 시험실에서 로봇이 미친 듯 날뛴 사건이 기록되어 있다. 이것은 아마도 로봇중에서 최초을 것이다. 로봇 팔이 움직여 수술을 할 수 있으리라 믿고 로봇팔을 만들었다. 그러나 프로그램 오류로 팔이 심하게 움직였다.

소매치기 로봇

효율적으로 테이터 처리를 위해 초단타 매매 회사를 만들었다. 개발자들이 주식을 사고 파는 것을 성공적으로 만들어 내면서 컴퓨터가 인간보다 훨씬 빨리 거래할 수 있음을 분명히 드러냈다. 인공지능은 도덕적 행위자가 될수 있다. 그래서 인공지능 한테는 도덕원칙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대리 로봇이 문제를 일으키면 그 일을 시킨 사람과 대리인이 각각 죄를 물을 수 있다.

무료 배송천국

아마존은 비용을 판매가와 배송비로 나눈다. 1년간 택배비를 고정비로 부과하는 제도가 있다. 돈을 냈는데도 불구하고 배송비가 무료인 듯한 착각을 불러 일으킨다. 많은 종류의 인공지능들은 신중하게 우리와 흥정하고 평가하고 우리의 관심사를 기록한다. 우리는 사람보다 압도적으로 유리한 위치에 있는 시스템과 경쟁을 해야한다.

자동차의 그늘

인공지능이 급속히 발전하면서 더욱 가속화할 기술 변화는 두가지 근본적인 방식으로 노동시장을 교란시킬 것이다. 그러면서 자동화 기술이 노동자들을 대체하면서 사람들이 일할 자리가 점차 줄어드는 현상이 일어난다. 이런 변화가 점진적으로 진행된다면 생산성 향상과 비용 절감이 더 큰 부를 창출하고, 그에 따라 일자리가 늘어나면서 손실된 일자리가 자연스럽게 보전될 것이다. 지은이는 앞으로 수요가 증가할 직종으로 운송을 꼽았는데 그것은 실수이다. 2012년 기준으로 미국에서 근무 중 장거리 트럭 운송 기사들은 170만 명이 있다. 이 트럭 기사들은 고속도로에서 운전을 해서 장애물이 많이 없다. 그리고 장거리 운전이니깐 졸음 운전을 하는 기사 들이 많이 있다. 그래서 대형 트럭 관련 사고는 273천 권정도 있는데 여기서 사망자는3,800명이 있다. 그래서 장애물도 없는 고속도로를 인공지능을 써서 달리면 안전할 것이다.

 

 

 

느낌점: 재미 있었다.


규현

[정규현] 부활

by 유카이 posted Sep 16,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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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부활     지은이: 톨스토이   2017,9.15. 금 정규현

오늘도 사람들은 서로를 괴롭히는 일에 열중한다. 경찰청의 감옥 사무실에서도 봄의 소식이 아닌 마슬로바의 재판소 출두 소식 뿐 이었다. 마슬로바는 그의 어머니의 다섯 째 아이로 산모 소피아와 마리아에게 입양되었지만 16살 때 네흘루도프 공작에게 욕보임을 당하고 유곽에서 창녀로 일하다가 스멜리코프 씨의 금품을 훔치고 독살한 죄로 카르친킨, 보치코바와 함께 기소되었다. 우연히 그 재판소에 네흘루도프가 배심원으로 참여하게 되었고 카투샤를 만나 옛날 순결했던 시절을 떠올렸다. 사람들은 마슬로바가 유죄이다, 아니다를 가지고 열띤 논쟁을 벌였다. 결국 절되 죄는 없는 것으로 판결이 났지만 살해 의도는 없었다는 내용을 빠뜨려 시베리아 유형 4년을 선고받았다. 네흘루도프는 너무 억울하여 파나린 변호사에게 사건을 의뢰한 후 코르차긴 공작 댁으로 갔다. 갑자기 그는 자신의 삶이 부끄러워졌고 카투샤에게 참회하고 새 삶을 살기로 결심했다. 공작은 카투샤에게 면회를 신청했고 그는 용서를 구했지만 더 이상 순진하고 순결한 그녀가 아니었던 터라 쉽게 용서해주지 않았다. 두 번째로 카투샤를 만났을 때는 꽤 반갑게 맞아주었다. 그녀는 취하고 흥분한 듯 했고 계속해서 네흘루도프를 외면했다. 네흘루도프는 어느 날 옛날에 만난 적 있었던, 정치범이 된 여자 베라로부터 편지를 받고 그녀를 만나러 교도소에 갔다. 교도소에서 그는 억울한 죄수들을 만났고 아는 부지사인 마슬레니코프에게 그들의 석방을 부탁했다. 그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땅을 해결하려고 했는데 머리 수대로 나누어 주려니 다시 지주들 손에 넘어갈 것 같았고 공동으로 나누어 주려니 농민들은 절대 합심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카투샤는 네흘루도프가 준 자신의 사진을 보며 과거를 회상했다. 하지만 그럴수록 창녀였던 끔찍한 시절이 떠올라 더 괴로웠다. 네흘루도프는 대심원을 위해 페테르부르크로 심의원들을 설득하러 갔다. 하지만 막상 대심원 회의 때 네흘루도프의 친구인 셀라닌을 포함한 대부분이 카투샤의 원심 기각에 찬성했고 카투샤는 시베리아 유형이 확정되어 떠나게 되었다. 네흘루도프는 죄수들을 호송하는 열차에 함께 탔다. 열차에 있으면서 그는 카투샤가 다시 술과 담배를 가까이 하고 불결해 질 까봐 걱정하기도 했다. 그곳에 도착하여 여관방에서 지내면서 그는 카투샤는 나를 사랑하기 때문에 내 행복을 위해 나와 함께하는 것을 거부한다는 사실이 더 가깝게 다가왔고 <신약 성서>를 읽으며 자신이 해야할 임무는 자신이 한 짓을 참회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는 자신의 영혼을 부활시킬 방법을 찾았다.

느낀 점: 당시 너무나도 불안정하고 잔인했던 러시아의 사회가 한층 더 와 닿는 소설이었고 살짝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도 있었지만 카투샤의 기분을 왠지 알 것 같았다.

 


정민

66세의 영조 15세 신부를 맞이하다

by 나래 posted Sep 16,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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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9/11

제목: 66세의 영조 15세 신부를 맞이하다

지은이: 신병주

 

의궤는 조선시대 국가에서 중요한 행사가 있을 때 그 과정을 기록과 그림으로 남긴 보고서 형식의 책이다. 행사에 관련된 내용을 하나의 본보기나 전범으로 만들어 놓고 이를 따름으로써 예법에 맞게 의식을 행하고자 의궤를 만든 것이다. 의궤에는 행사의 구체적인 내용에 관한 기록뿐 아니라 행사에 참여한 관리와 장인들의 실명, 각각의 물품에 사용된 재료의 수량 및 비용, 그리고 실제 들어간 물품과 사용 후 남은 물품을 되돌려 준 사실 등 여러 가지가 기록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의궤는 임시기구인 도감에서 각기 행사가 진행되었으며 5부에서 9부를 만들어 1부는 왕의 어람용, 나머지는 의정부, 춘추관, 예조 등 관련 부서와 지방 각 사고에 나누어 보관하였다. 사고는 3년에 한 번씩 책들을 꺼내어 바람에 말리는 포쇄 작업을 정기적으로 하였고 습기 방지, 병충해 제거 등을 위한 작업을 중요시했다고 한다. 반차는 임무나 등급에 따라 나뉜 순서나 절차를 뜻하는 말로 반차도는 행사의 광경을 미리 그림으로 나타내어 각자의 역할을 익히고 실제 행사에서 착오가 없도록 기록한 것이다. 반차도는 당대의 유명 화원들의 손에 맡겨졌고 옛날에는 물감이 없었기에 진분, 삼록, 이청, 삼청, 당주홍, 동황, 청화 등의 식물의 주성분으로 물감을 만들어 사용했다. 이 천연물감은 변색되지 않아 특유의 단아한 색감을 오늘날까지도 유지한다고 한다. 영조는 1694년 아버지 숙종과 무수리 출신인 어머니 숙빈 최씨 사이에서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영조는 조선시대 역대 왕 중에서 가장 오래 산 왕으로 알려져 있으며 균역법, 탕평책 등을 실시하여 그의 치세 52년간은 조선후기 정치, 문화의 부흥기였다. 정순왕후 김씨는 경주 김씨 김한구의 딸로 15세에 영조에게 시집와서 청춘의 대부분을 노년의 국왕 뒷바라지에 보냈다. 영조의 사후 정조가 즉위하자 정순왕후는 비록 31세에 불과했지만 곧바로 왕실의 최고 어른이 되었다. 그녀는 여자 군주임을 자처하고 정치에 적극 나서면서 경색 정국을 이끌어갔다. 그러나 1894년 순조의 친정체제가 이루어지자 정순왕후는 권력을 잃고 1 12 60세를 넘기지 못하고 창덕궁 경복전에서 생을 마감했다. 영조와 정순왕후 결혼식의 전 과정을 기록과 그림으로 남긴 의궤는 영조정순후 가례도감의궤이다. 국왕의 혼인이라는 중대한 의식을 치르기 위해서는 그만큼 준비할 것이 많아 가례도감은 도청이라는 총 본부를 중심으로 하소 업무에 따라 일방, 이방, 삼방, 별공작, 수리소 등 크게 다섯 개의 기구로 나눈 것이 기록되어 있다. 책임자 또한 오늘날의 문화관광부 장관과 재정경제부 장관 급의 지급이 책임자로 임명되었다고 한다. 국왕의 혼례식에는 기러기가 사용되었는데 기러기는 믿음, 예의, 절개, 지혜를 상징하는 새라고 한다. 또한 왕과 왕비의 복식에 새겨진 문양과 음양오행사상이 반영된 화려한 색채는 최고 권력자의 절대적인 지위를 보여준다. 혼례식 반차도에서 인물과 함께 중심을 이루는 것은 가마인데 가마는 연과 여가 있다. 연은 밑에 수레를 달아 말이 끄는 것으로 주로 궁궐 밖의 행차에 사용되었으며 여는 사람이 어깨에 매고 다닌 것으로 궁궐 안의 왕래에 주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이처럼 의궤에 나타난 기록들은 우리에게 많은 지혜를 준다. 물품의 재료, 빛깔, 크기 등을 자세히 기록하여 물품 하나하나에 정성을 다한 것을 알 수 있고 또한 이러한 물품을 만든 사람들의 실명을 모두 기록하여 그들에게 책임감과 자부심을 부여해준다.

 

느낀 점:재미있었다.


진아

만약 고교 야구 매니저가 피터드러커를 읽는다면

by 늘픔 posted Sep 09,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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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고교 야구 매니저가 피터드러커를 읽는다면 이와사키 나쓰미 2017.09.09. 양진아

미나미가 다니는 학교는 도쿄 도립 호도쿠보 고등학교라는 평범한 공립학교이다. 호도쿠보 고등학교는 흔히 호도고라고 불린다. 미나미는 호도고 야구부의 매니저가 되었다. 그런데 미나미가 매니저가 되었을 때는 3학년 선술들이 은퇴한 직후였다. 그런 사정으로 대부분의 부원들이 연습에 참가하지 않고 있었다. 미나미의 목표는 야구부를 고시엔 대회에 진출시키는 것이다. 그래서 미나미는 몇 안되는 부원과 감독인 가치 마코토에게 목표를 말했지만 모두 부정적으로 생각했고 웃어 넘긴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미나미는 어려운 일을 당할수록 투지가 솟는 성격이었다. 미나미는 서점에 가서 피터 드러커의 매니지 먼트라는 책을 샀다. 그리고 야구부의 고객이 누구인지 고민하고 야구부가 무엇을 하는 조직인지에 대해 고민하였다. 그래서 야구부는 감동을 주는 조직이라고 정의를 내렸다. 그리고 부원들에 대해서 알아보기 위해 먼저 말을 걸었지만 주장인 호시데 준을 제외하고는 미나미하고 말을 잘 하려고 하지 않았다. 그래서 미나미는 친구인 유키를 찾아가 유키에게 고민을 털어놓았다. 유키는 몸이 아파서 입원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유키가 사람들의 마음을 잘 연다는 걸 깨닫게 되고 유키에게 부원들의 면담을 부탁한다. 유키는 받아들였고 미나미는 1시간 정도 대화를 나누며 부원들이 현실, 욕구, 가치를 캐내야 한다고 하였다. 유키와 부원들은 차례로 면담을 했고 숨어서 듣고 있던 미나미도 부원들에 대해 많이 알게 되었다. 특히 연습에는 한 번도 나오지 않고 다가가기 어려웠던 에이스인 아사노 게이치로에 대해서 많이 알게 되었다. 게이치로의 속마음은 매우 끌어내기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게이치로는 솔직하게 자기의 속마음을 털어놓았다. 그리고 게이치로와 감독인 마코토는 사이가 무척 안 좋았는데 그 이유는 여름 대회에서 마코토가 게이치로를 강판시킨 일 때문이었다. 그 시합에서 유노스케라는 부원이 실책을 범했고 게이치로는 그 실책 때문에 닥친 위기를 막아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어깨에 힘이 들어가 안타를 허용해 주었다. 그래서 게이치로는 분발해서 정신을 차리고 공을 던지려고 마음을 가다듬었을 때 감독이 게이치로를 교체시킨 것이었다. 미나미는 이 둘의 오해를 한시라고 빨리 풀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야구부는 가을 대회에 나가게 되었다. 연습에 나오지 않았던 부원들도 다 나왔고 게이치로도 나왔다. 그런데 유노스케가 다시 한 번 실책을 범했고 게이치로는 무너졌다. 게이치로는 타자들을 포볼로 내보냈고 결국 시합은 콜드게임 패로 끝나고 말았다. 야구부는 학교로 돌아와 회의를 했다. 그때 가시와기 지로가 게이치로에게 불만을 이야기 했고 화가 나도 일부러 포볼을 내주는 것은 절대로 용서하지 못한다고 말하였다. 그때 갑자기 감독 마코토가 포볼을 내주고 싶어하는 투수는 이 세상 어디에도 없다고 소리쳤고 시간이 좀 흐른 뒤 작지만 날카롭게 흐느끼는 소리가 들려왔다. 목소리의 주인은 게이치로였다. 이 사건을 계기로 게이치로는 날마다 연습을 나왔고 연습을 빠지는 부원들도 없어졌다. 그리고 미나미는 머리가 좋은 아야노에게 감독과 같이 야구부의 연습방법을 바꾸어 달라고 하였다. 그리고 부원들의 흥미를 끌 수 있는 연습방법을 연구해 달라고 부탁했고 아야노는 자기가 도울 수 있는 일이 생겨 기뻐했다. 그리고 감독과 아야노는 연습방법을 팀제로 바꾸었고 팀끼리 경쟁을 할 수 있도록 해 부원들의 흥미를 이끌었다. 부원들은 열심히 연습했고 대회 날이 다가왔다. 호도고는 두 번째, 세 번째 경기를 이기고 준준결승까지 올라갔다. 상대는 사립 야구 명문고였다.

준준결승 시합 중 유노스케는 실책을 범했지만 실책 두려워하지 않기 연습이 효과를 발했다. 부원들은 당황하지 않았고 유노스케도 얼굴이 창백해지지 않았다. 호도고는 콜드 승으로 이겼고 이제 결승만이 남았다. 결승을 준비하던 도중 미나미에게 전화가 걸려왔고 유키가 곧 죽을 것 같다는 내용이었다. 미나미와 야구부 부원들은 병원으로 갔고 유키는 죽고 말았다. 사실 유키는 작년부터 가망이 없었고 3개월 밖에 살지 못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미나미 덕분에 1년을 살았고 편안하게 눈을 감았다. 호도고는 결승에서 이겼고 고시엔 대회에 출전할 수 있게 되었다. 모두가 기뻐했지만 미나미는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몰랐다. 미나미는 웃으려 했지만 울음이 나왔고 앙앙 울었다.

느낀 점: 재미있었다.


도원

by 줄기 posted Sep 09,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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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9.8.이도원

제목:

사람들은 보통 잠이 든 뒤 90분이 지나면 첫 번째 꿈을 꾸고 평균 10분 동안 지속된다. 사람들은 매일 밤 잠을 자면서 5개 정도의 꿈을 꾸는데 최대 40분까지 이어지는 꿈을 꿀 수 있다. 우울증이나 정신분열증, 자폐증을 앎는 사람들은 40분 후에 첫 번째 꿈을 꾸고 20뷴 정도 지속된다. 이후에도 긴 꿈을 꾸는데 렘수면 동안 꾸는 꿈으로 깊은 잠을 자지 못한다. 새로운 경험을 한 당일 꿈에서 경험을 생생하게 볼 가능성이 높고 4~5일이 지나면 그 경험을 보는 경우가 거의 없어졌다가 7일 째부터 그 경험이 더 많이 보이게 된다. 꿈에는 긍정적인 것보다 부정적인 감정을 동반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꿈을 통해서 부정적인 사건을 반복적으로 접할수록 그 사건이 미치는 영향력이 점점 약해진다. 이를 이용해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을 때 꿈에서 스트레스의 원인이 되는 상황을 계속 마주할 수 있도록 증상을 완화시키는 꿈 치료법도 있다. 7살 이전에 시각을 잃은 사람은 꿈에서 시각적인 요소가 없고 태어날 때부터 시각을 잃어버린 사람은 꿈에서 소리나 촉감, 맛을 생생하게 느낀다고 한다. 꿈에 쉽게 영향을 미치는 요소는 냄새다. 반면 시각 자극은 사람에게 잘 전달되지 않는다.


아영

모든 관계는 말투에서 시작된다.

by 가람 posted Sep 09,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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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범준 모든 관계는 말투에서 시작된다 홍아영 2017.09.09

 

말보다 말투가 영향력이 크다. 우리는 말의 형식과 말의 내용을 많이 신경을 쓰지만 막상 중요한 것은 말투이다. 말투는 본성이 아니라 버릇이다. 그렇기 때문에 말투는 자기 자신의 힘으로 고칠 수 있다. 사람들은 가끔 말투와 입담을 헷갈릴 때가 있다. 입담은 말하는 솜씨이다. , 누군가에게 자신은 영향력이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을 때 말하는 것을 입담이라고 한다. 말투를 신경을 쓰려면 상대방을 이해하고 공감을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나와 상대방은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생각을 하면 내가 기분 나빴던 말투는 사용하지 않고 내가 기분 좋았던 말투를 상대방에게 사용한다. 자신이 듣고 싶은 것처럼 들으면 안 되고 상대방이 어떤 말투를 사용했는지 생각해서 상대방의 의도를 생각하면서 들어야 한다. 말투에는 노화현상이 있다. 나이가 들면서 귀가 잘 안 들려서 크게 말하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나이가 드신 분과 대화를 하고 있는 사람은 자신을 혼내는 것처럼 느낄 수 있어서 기분이 나쁠 수 있다. 그래서 나이가 드신 분과 대화를 할 때는 이 노화현상을 고려해서 대화를 해야 한다. 말투는 자신의 위치에 맞게 사용해야 한다. 예를 들어서 엄마가 딸의 말투를 사용하기 위해 청소년들이 쓰는 비속어를 쓰면 자신의 위치에 맞지 않는다. 하지만 그렇다고 자신의 위치에서만 생각하고 일방적으로 말하면 안 된다. 그러면 상대방이 자신의 의도를 듣지 않는다. 사람들과 대화를 할 때 솔직한 것은 중요하다. 하지만 지나치게 솔직하면 안 된다. 지나치게 솔직하면 상대방이 상처를 받아서 잘 대화가 이뤄지지 않고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없게 된다. 별로 친하지 않은 사람과 대화를 할 때 어색하지 않고 원활한 대화를 하지 위해서는 사전에 그 사람에 대해서 알아본다. 그런 다음에 그 사람에 가지고 있는 장점에 대해서 물어보면 좋은 대화를 가질 수 있다. 고민이 있는 사람을 상담을 해줄 때 항상 같은 편에서 그 고민을 들어주어야 한다. 고민이 있는 사람한테 너가 잘못했다고 말했다가는 친구에서 원수가 될 수 있다. 대화를 할 때 상대방의 기분을 좋게 하는 방법 중 하나는 상대방을 믿는다고 말하는 것이다. 이 믿는다는 이야기를 할 때는 소재가 꼭 대단할 필요 없다. 사소한 것에서 믿는다고 해도 그 말을 받은 사람은 기분이 좋아질 것이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 대화를 할 때 장소는 매우 중요하다. 예를 들어서 회사에서 회의를 11로 할 때, 사무실에서 하는 것 보다 가까운 카페에서 하면 조금 더 어색하지 않고 편한 분위기에서 회의를 마칠 수 있다. 회의를 할 때 윗사람이 항상 끼어들어서 잘 진행이 안 될 때가 많다. 이 문제는 주로 회사에서 많이 볼 수 있다. 항상 상사가 자신이 끼어들지 않겠다고 해서 직원들이 의견을 내면 갑자기 끼어들어서 10분정도 자신의 이야기를 하다가 다시 시작하라고 한다. 이렇게 상사가 말하면 아무도 의견을 다시 내지 않는다. 이 때 상사는 직원들의 이야기를 듣고 가만히 있는 것 혹은 그렇군요라고 말하는 것이 가장 좋다. 우리가 평소에 말하는 답정너의 말하기 방식은 좋지 않다. 이 방식은 회사에서 상사가 식사를 무얼 할지 물어볼 때 많이 발견된다. 이 방식으로 질문을 하면 정말 대답하기 싫어진다. 우리는 일상생활에서 거절을 할 때가 있다. 거절을 하면 대화를 하는 사람과 어색할 때가 많다. 거절을 할 때도 좋은 방법이 있다. 바로 거절 후 긍정적인 말을 붙이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거절을 받은 사람도 기분이 좋아진다.

 

느낀 점: 실제로 대가 봤던 대화가 책에서 설명이 되어서 신기했다. 그리고 말하는 방식에 대해서 알 수 있어서 좋았고 나도 써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규현

[정규현] 로알드 달의 백만장자의 눈

by 유카이 posted Sep 09,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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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로알드 달의 백만장자의 눈    지은이: 로알드 달   2017.9.8. 금 정규현

<동물들과 이야기하는 소년>

는 한 서인도제도에 있는 호텔에서 머물기로 했다. 경치는 아름다웠지만 기분 나쁜, 그런 호텔이었다. 어느 오후, 발코니에 앉아있는데 해변에 사람들이 몰려있길래 슬쩍 보니 거대한 바다거북이 거꾸로 뒤집혀 있었다. 너도나도 거북이 음식 얘기를 하느라 바쁜 도중, 8~9살 정도 돼 보이는, 데이비드라는 소년이 거북이를 살려달라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것이었다. 소년의 아버지인 에드워즈 씨는 데이비드가 동물을 사랑하고 실제로 의사소통을 할 수 있다며 거액에 거북을 사들였고 데이비드는 거북을 놓아주었다. 이튿날 아침, 소년이 사라지는 일이 일어났다. 그런데 어부 윌리와 톰이 데이비드가 거북의 등에 타고 나아가는 모습을 목격했다고 증언했고 1년 가까이 수색했지만 데이비드를 찾지 못했다. 하지만 그 소년은 아주 행복할 것만 같았다.

<히치하이커>

에게 BMW 새 차가 생겼다. 최고 207km까지 속도를 낼 수 있는 훌륭한 차였다. 하루는 그 차를 타고 산길을 가던 중이었다. ‘는 항상 히치하이커를 보면 태워주곤 했는데 오늘도 한 쥐를 닮은 남자를 태웠다. 질문을 몇 개 주고 받다가 남자는 이 차로 207km까지 밟아보라고 했다. ‘는 신이 나서 그 말을 따랐지만 결국 경찰에게 걸리고 말았다. 경찰은 그 쥐 같은 남자의 이야기를 수첩에 적었다. 그러고 나서 또 얼마를 가던 중, 그 남자는 자신의 직업이 무엇인지 맞혀보라고 하고 1000명 중 한 명 꼴로 할 수 있는 것이라고 힌트를 주었다. 그러더니 의 물건을 자신의 주머니에서 속속들이 꺼내는 것이었다. 그 남자는 소매치기였고 경찰의 경찰 수첩까지 가지고 있었다. ‘는 정말 감탄했고 홀가분해졌다.

<밀덴홀의 보물>

고든 부처씨는 38세의 농업 노동자였다. 그는 얼마 전 롤프 씨의 소유인 땅의 작업을 포드 씨로부터 의뢰 받았다. 한창 밀덴홀에서 일하던 중, 쟁기에 뭔가 딱딱한 것이 걸려 땅을 파보니 고대 청록색 테두리가 보였다. 그것은 거대한 접시로 8kg이나 나가는 로마 시대 보물이었다. 그것을 포함해 34개의 유물이 나왔다. 그는 이 사실을 포드 씨에게 알렸다. 포드는 그것을 집으로 가져가 2년간을 빛이 나도록 깨끗이 닦았다. 어느 날, 친하게 지내던 포셋 박사가 방문하여 접시를 보더니 흥분하여 순은이라고 소리쳤고 결국 부처와 공동 발견자가 되었다.

<백조>

어니는 생일 선물로 라이플을 받았다. 그는 열다섯 살 망나니 소년으로 아주 폭력적이었다. 그의 절친인 레이먼드도 그랬다. 둘은 라이플을 시험해보려고 밖에 나갔다. 그곳에서 그들은 그들과는 정반대의 우등생인 피터 왓슨을 보았고 그가 반항하자 그를 묶어 철도 위에 올려 놓았지만 기차는 아슬아슬하게 피해갔다. 그 뒤 어니와 레이먼드는 피터를 호수에 던지려다 백조를 발견하여 죽였다. 피터가 눈물을 흘리자 어니는 백조의 날개를 도살하여 피터에게 부착하고 15m 높이의 나무 위에서 뛰어내리라고 하였다. 피터는 뛰어내렸고 한 바퀴 난 뒤 자신의 집 마당에 떨어졌다.

<백만장자의 눈>

헨리 슈거, 40세는 부유했고 이기적이었다. 언제나 돈에 대한 욕망을 떨쳐 낼 수 없었고, 돈을 딸 수 있는 게임이라면 뭐든 했다. 터무니 없는 게임에서 친구들을 속이기도 했다. 어느 날, 친구들이 카나스타를 하는 동안, 헨리는 도서관에서 한 연습장을 찾아냈다. 그 연습장에는 존 카트라이트 박사가 쓴 눈 없이 볼 수 있는 남자 임랏 칸에 대한 면담 보고서가 적혀 있었다. 어느 날 카트라이트 씨를 포함한 의사 네 명이 있었다. 갑자기 인도인이 자신의 이름을 임랏 칸이라 하며 서커스 극단의 단원이라고 했다. 그리고 스카프 등으로 눈을 가리고 의사들이 들고 잇는 물건들을 속속들이 맞췄다. 의사들은 콜로디온으로 그의 눈을 감은 채로 고정시키고 밀가루 반죽을 붙인 뒤 붕대를 단단하게 감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정상적으로 걸었고 서커스에서는 실도 꿰고 단도도 던졌다. 그것을 본 의사들은 이건 기적이라며 임랏 칸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그는 13살 때 마술사 무어를 보고 감명을 받아 진짜 마술을 할 수 있는 자를 찾아 가출했다. 긴 여행 끝에 바네르지라는 요가 수행자를 만났지만 제자가 되는 것을 거절당했고 대신 다른 스승을 소개받았다. 칸은 그로부터 마음 한가지에 3 30초 동안 집중하는 법을 배웠고 그로 인해 눈 없이 볼 수 있는 법을 익혔다. 다음 날, 그는 외부인에게 이 이야기를 발설한 죄로 죽었다.

연습장을 다 읽은 헨리는 카지노에 써먹으려고 순수한 열정을 가지고 3 3개월 동안 눈을 뜨지 않고 볼 수 있기 위해 수련했다. 그는 놀라운 힘을 카지노에서 썼고 백만장자가 되었지만 웬일인지 울적했다. 문득 그는 좋은 생각이 났고 고아원 주식회사를 차려 관리를 존 윈스턴에게 맡겼다. 그는 여러 카지노를 다니며 수익금을 윈스턴에게 보냈다. 고아원은 순식간에 3개나 차려졌다. 가끔 헨리에 대해 소문이 떠돌 때는 그의 형제 같은 분장사 막스가 삼 사십 개 얼굴을 만들어냈다. 헨리가 죽은 뒤, 막스는 그가 정말 아름다운 사람이었다고 말했다.

느낀 점: <백조>가 생각보다 자극적이어서 신선하고 재미있었던 것 같고 로알드 달의 상상력을 잘 느낄 수 있는 책이었다. 책을 읽고 나서 역시 로알드 달이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정민

꿈을 디자인 하라

by 나래 posted Sep 09,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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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9/08

제목: 꿈을 디자인 하라

지은이: 임경묵

 

영국과 미국 학교들은 학생들에게 디자인 교육을 한다고 한다. 우리나라의 웬만한 대학교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규모의 미국, 영국 학교의 디자인 센터에는 각종 목재를 다룰 수 있는 원형 톱, 직소, 띠톱, 라우터와 같은 대형 기계는 물론이고 금속을 다룰 수 있는 선반과 밀링머신까지 비치되어 있고 한다. 디자인 교육과정 또한 훌륭해 조형, 구조, 기능, 시스템 등을 고려한 물건을 아이들이 직접 디자인하고 실험하며 만들 수 있고 다양한 원리와 아이디어가 적용된 디자인 제품을 실생활에서 사용하도록 유도하고 있었다. 이런 디자인 교육을 실시하는 나라는 영국, 미국 외에도 여러 나라가 있는데 이 나라들이 디자인 교육을 강화한 이유는 자기 나라의 청소년들이 더욱 깊이 생각하고 나아가 그 생각을 구체적으로 실현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기 원했기 때문이다.

 

진로란 어떤 직업을 선택할 것인가와 인생을 어떻게 살아갈지 설계하는 것이다.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진로에 대해서 물으면 아이들이 과학자, 대통령 등등 이라고 대답한 것과 같이 진로와 직업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우리들의 할아버지, 할머니 세대는 한 번 직업을 선택하면 평생 그 일을 하면서 살아가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어떤 직업을 선택하느냐가 인생을 어떻게 살아가느냐는 문제와 거의 같은 맥락으로 받아들여졌다. 하지만 우리 세대는 당장 우리 부모님 세대만 보아도 조부모님 세대와는 직업 환경이 많이 달라졌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우리 부모님 세대에 직업 환경이 달라진 데에는 크게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 번째는 우리 사회가 예전보다 복합적이고 다양성을 중시하는 방향으로 변해서이다. 여러 가지 기술이 발달하고 사회 인식이 변화하면서 전에는 없던 새로운 직업이 많이 생겨났고 자신의 장점과 특기를 살릴 수 있는 직업을 갖고자 하는 사람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두 번째는 불안정한 고용이다. 원래 정년 퇴직의 기준은 60세 이상이어서 1970~1980년대에는 직장에 취직해서 출퇴근 잘하고 큰 실수만 하지 않으면 60세까지 한 직장에서 일하다가 정년을 맞을 수 있었다. 그렇게 30년 이상을 근무하다가 퇴직하고 나면 퇴직연금을 받으면서 여생을 보냈다. 하지만 1997년에 외환 위기 이후 권고사직과 조기 퇴직이라는 칼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회사에서 크게 잘못한 일이 없어도 일정한 나이나 직급에 이르면 명예퇴직이라는 형태로 회사를 그만두어야 하는 경우가 크게 늘어난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 세대의 직업 환경은 어떨까? 불행하게도 우리 세대도 부모세대보다 나은 것은 없어 보인다고 한다. 또한 우리 세대 때는 100세 시대가 시작되어 정년 퇴직을 한 뒤의 남은 절반의 인생을 보내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신의 적성이나 재능을 고려하지 않은 채 성적에 맞추어서 대학과 전공을 결정하거나 당장 먹고 살기에 편안 직업을 선택한다면 만족스러운 삶을 누릴 수 없을지도 모른다. 고로 우리는 자신이 좋아하고 잘하는 일을 찾아야 된다. 또 한가지 우물만 파지 말고 여러 가지를 시도해 보며 여러 우물을 파야 된다.

 

느낀 점: 재미있었다.


 


정민

무섭지만 재밌어서 밤새 읽는 과학 이야기

by 나래 posted Sep 09,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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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8/31

제목: 무섭지만 재밌어서 밤새 읽는 과학 이야기

지은이: 다케우치 가오루

 

공포에 관한 여러가지 실험

존 왓슨이라는 심리학자는 생후 11개월 된 아기, 앨버트에게 공포 조건화 실험을 했다. 그는 앨버트에게 흰 쥐를 보여주었다. 그리고 앨버트가 쥐를 만지려는 순간 강철 막대를 망치로 두드려 앨버트를 깜짝 놀라게 했다. 실험 전만 해도 앨버트는 쥐를 무서워하지 않았지만 실험 후에는 쥐뿐만 아니라 토끼나 모피 코트, 털이 난 생물 등도 무서워하게 되었다. 왓슨은 이 실험을 통해 성인의 불안감이나 공포는 이런 유년기의 경험에서 유래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 실험의 가장 큰 문제점은 11개월밖에 안 된 어린 아이에게 공포를 심어주는 실험을 했다는 사실이다. 왓슨은 1878년에 태어나 1958년에 세상을 떠났는데 만약 오늘날 이런 실험을 했었다면 틀림없이 아동학대로 체포되었을 것이다.

 

뇌를 절제하는 로보토미 수술

안토니우 에가스 모니스는 포르투갈의 의사이자 신경학자이며 정치가로도 활발히 활동한 사람이다. 또한 그는 악명 높은 로보토미 수술을 고안한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로보토미는 통합실조증을 치료하기 위해 전두엽의 일부를 절제하는 치료법이었다. 현재는 인격을 완전히 파괴하는 수술로 판정받아 사용하지 않고 있지만 과거에는 매우 효과가 좋은 수술로 여겨졌기 때문에 노벨상까지 받았다. 미국에서는 월터J. 프리먼과 제임스 워츠라는 두 정신과 의사가 모니스의 방법을 개량해 누구나 간단히 로보토미 수슬을 할 수 있는 방법을 개발했다. 아이스픽처럼 생긴 기구를 사용해 코 윗부분에 뾰족한 기구의 끝에 꽃아 넣고 뇌를 힘껏 휘저어 치료하는 방법인데 이 수술을 받은 환자는 폭력적인 성향이 사라지고 온순해지지만 그 대신 인격이 상실되어 무기력해지고 감정의 기복도 사라져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된다.

 

우주복을 입지 않고 우주 공간을 헤엄치면 어떻게 될까

만약 우주 비행사가 우주복을 입지 않은 채로 우주 공간을 헤엄친다면 어떻게 될까? 여기에는 몇 가지 설이 있다. 첫 번째 설은 우주 공간은 진공이므로 몸이 파열되어 죽는다. 두 번째 설은 우주 공간은 섭씨 영하 270도의 추운 곳이므로 얼어 죽는다. 세 번째 설은 우주 공간은 공기가 없으므로 질식해서 죽는다. 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식으로 죽을까? 답은 3, 질식사이다. 우주 공간은 진공이므로 우주복을 입지 않고 나가면 폐 속의 공기가 팽창해 손상을 입는다. 그러나 그래도 바로 죽지 않는다. 또 인간의 피부는 꽤 질기기 때문에 진공 속에 들어가도 피부가 버텨줘서 파열하지 않는다. 그러면 왜 얼어 죽지는 않을까? 우주의 온도는 섭씨 영하 270도이지만 열을 전도 물질인 공기가 없기 때문에 쉽게 추워지지 않는다. 그러므로 우리는 결국 공기가 없어서 2분 정도 뒤에 질식해 죽는다.

 

느낀 점: 신기하고 재미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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