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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성문

by 줄기 posted Sep 03,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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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빅터 프랭클

by 줄기 posted Sep 02,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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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

지은이: 빅터 프랭클

 

나는 수용소에 갇혀 있었다. 그곳의 카포는 절대로 굶지 않았고 나치대원보다 수감자들에게 더 가혹하고 악질적이었다. 카포가 되면 나치대원이나 감시병들을 닮아갔다. 카포는 수감자들 중 가장 성질이 난폭한 사람이 되었다. 그곳에서 일정한 수의 수감자들을 이동시킨다고 하면 사람들은 최종목적지가 가스실이라고 생각한다. 병이 들거나 쇠약해진 수감자들을 가스실과 화장터가 있는 큰 수용소로 보내기 때문이다. 수감자들에게는 모두 번호가 있다. 그들은 번호 이상의 의미를 가지지 못했다. 감시병이 수감자를 부를 때는 이름을 부르는 법이 없었다. 이 수용소에서 몇 년 동안 살아남다보면 양심이라고는 없는 사람들만 살아남는다. 나는 그곳에 처음 갔을 때 아우슈비츠 안이어서 놀랐고 가자마자 모두 머리를 싹싹 밀었다. 나흘 동안 받은 식량은 5온스짜리 빵 한 개였다. 몸수색을 할 때 빵 봉지를 숨겼었는데 장교가 내 앞을 지나갈 때 걸렸으면 죽는 것이었다. 나는 손가락에 의해 오른쪽에 섰는데 왼쪽에 배정받은 사람들은 화장터에 가서 죽었다. 화장터의 간판은 목욕탕이었고 들어가기 전에 비누 한 조각씩 나누어주었다고 했다. 나치대원들은 친절하게 대해주었다. 그것은 우리들이 가진 값진 시계를 뺏기 위함이었다. 어차피 가진 물건은 다 뺏길 예정이어서 순순히 주었다. 수용소에서 신발을 뺏고 수용소의 신발을 배급했는데 다 헐고 발에 맞지 않았다. 우리는 매일 추운 밖에 나가서 일을 했다. 온몸이 추운 것은 당연했고 발에 동상이 걸리는 일도 자주 있었다. 동료가 죽으면 다른 사람들은 드 사람의 외투나 신발이 좋은지 보고 자기 것보다 좋으면 바꿔 입었다. 나도 친구가 신발이 찢어져 맨발로 밖에 일을 하러 가야해서 울고 있을 때 거추장스럽게 빵을 먹고 있었다. 수용소생활을 계속 하다 보니 인간다움이 사라져 가는 것이다. 그곳의 거의 모든 카포들은 성질이 괴팍했지만 착한 카포들도 아주 가끔 있었다. 내가 정신학과여서 어떤 카포가 고민을 말해 해결책을 내놓자 그는 음식을 배급할 때 수프를 아래까지 퍼주어서 콩을 더 먹을 수 있었고 집합했을 때 자리를 가운데로 넣어주어서 감시병들에게 맞지 않았다. 그리고 내가 성질 나쁜 카포와 싸운 다음날 몰래 다른 작업반으로 옮겨 주었다. 이 배려는 엄청난 것이었다. 그 당시 죽음을 3번 피한 것이다. 수용소의 사람들은 상상과 꿈으로 힘든 현실을 견뎠다. 사람들은 거의 다 먹을 것 생각을 했지만 나는 먹을 것을 생각하면 배가 더 고파진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먹을 것 생각을 하지 않았다. 수용소 생활동안 신기한 점은 수감자들이 성욕이 없다는 것이다. 초기의 충격 때문일 것이다. 다른 한 사람이 아내 얘기를 할 때면 모두 아내 생각에 빠져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의사를 지원하여 환자를 돌보았다. 의사가 되는 것은 빨리 죽을 위험이 있었지만 그 때 위생사관이 의사들이 죽는 것을 막기 위해 특별보호를 하여 살게 되었다. 그래서 무리로 수감자들을 다른 수용소의 가스실로 보낼 때 나는 가지 않았고 친구들도 숨겨줄 수 있었다. 나는 정신과 의사로써 사람들에게 자살방지로 희망을 심어주었다. 그 사람들은 해방될 때까지 모두 살 수 있었다. 해방된 날 사람들은 이것이 꿈이라며 현실은 그렇지 않다며 부정했다. 하지만 해방은 진실이었다. 모두 보호를 받았고 카포들과 친위병, 감시병들은 옷을 민간인복으로 갈아입고 우리들에게 담배를 권하고 있었다.

 

느낀 점: 수용소의 현실이 군대보다 훨씬 위험하고 성질이 괴팍한 사람들만 카포가 되는 것이 굉장히 부당한 것 같다. 그리고 해방된 후 태세 변환하는 카포와 친위병, 감시병들이 나뻐서 나는 그런 사람들을 만나기 싫다. 다른 책에서 아우슈비츠 수용소를 많이 들어보았었는데 이런 고된 곳에서 정신을 잃지 않는 사람들이 대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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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성문/이도원

by 줄기 posted Aug 27,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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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성문

이도원

저는 819일 당일에 60분을 하고 노싸인이 3개였습니다. 전체협의에서 엄청 많이 맞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노싸인만 맞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맞지 않아서 더 열심히 하고 정신 차려야 정상이지만 저는 안한 공부도 제대로 하지 않았고 7시까지 해야 하지만 4시까지 하고 잤습니다. 그리고 동우형이 졸거면 하지 말라고 했던 롤을 8시에 일어나 했습니다. 형들에게는 6시까지 공부를 했다고 거짓말을 했습니다. 그리고 피시방에 가려고 했습니다. 가던 중 재현이형에게 전화가 와서 정우형이 4시에 불을 껐는데 6시까지 한 것은 무엇이냐고 물었고 저는 말이 없다가 재현이형이 구라냐고 묻자 저는 그렇다고 했습니다. 정안이형은 다시 교회에 오라고 했지만 저는 집에서 구라안치고 다할 수 있다며 좋지 않은 모습을 보였습니다. 교회에는 330분까지 빨리 뛰어오라고 했으나 걸어와서 50분에 도착했습니다. 교회에 도착하여 공부를 할 때는 졸고 끝나기 30분전에 앞에 있던 책도 읽었습니다. 그리고 826일 정안이형이 이 일을 여행계획시간에 말해서 자기가 말하지 않게 하라고 했습니다. 저는 눈치를 보다가 분위기가 좋으니 괜찮겠다는 생각으로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수련회 때 충분히 놀았습니다. 하지만 수련회가 끝나고도 이렇게 스케줄을 망쳐버리고 놀아서 죄송합니다. 그리고 형들에게 거짓말하고 다 안 끝냈는데 게임하고 당당하지 못한 모습을 보이고 공부할 때도 딴 짓하고 집중하지 않아서 죄송합니다. 대기명당의 구호는 통 크게 당당하게 밝게입니다. 그런데 저는 들어올 때부터 그렇게 산 적이 별로 없는 것 같습니다. 내년이면 중학생 반장인데 아직도 통크게 당당하게 밝게살지 않는 것 같습니다. 지금부터라도 통크게 당당하게 밝게 살도록 하겠습니다. 6학년 동생들도 할 건 다 하는데 선배인 제가 이런 모습 보여서 죄송합니다. 그리고 대기명당에서 도와주시는 서포터즈분들의 크고 엄청난 지원을 받으면서 거짓말만 하고 한다해놓고 안 해서 죄송합니다. 이제부터는 공부를 하는 마음을 잡고 공부를 끝내기 전에는 절대 놀지 않겠습니다. 작년에 재현이형께 많은 피해를 끼치고 일요일에 저를 봐주느라 놀지도 못했는데 이제 제 사수인 정안이형께 피해를 드리지 않도록 정신 차리고 공부하겠습니다. 그리고 제가 거짓말을 너무 많이 해서 형, 누나들이 제 말을 신뢰하지 못합니다. 제가 이제 거짓말을 하지 않고 다른 사람들이 제 말을 믿을 수 있게 하겠습니다. 대기명당에 들어온 지 18개월이 지났지만 아직도 정신 못 차리는 저를 용서해주십시오 제가 지금까지 너무 잘못 살았습니다. 매일 거짓말만 해서 사람들이 제 말을 못 믿고 공부도 제대로 해온 적이 별로 없어 정안이형과 평일에 교회에서 같이 공부하고 제가 늦게 끝났을 때까지 기다려주었는데 이렇게 보답을 하지 않아서 죄송합니다. 앞으로 그런 일 없도록 열심히 공부하고 매번 분량 100%를 채워 와서 정안이형이 맞지 않도록 하고 말 잘 듣고 거짓말을 하지 않겠습니다. 제가 영어수업시간에는 숙제를 다 해오지 않고 수학시간에는 졸고 집중하지 않았습니다. 선생님들께서 시간을 내서 도와주시는데 이런 모습 보여드려서 죄송합니다. 저는 이번 일을 정말 반성합니다. 이제부터는 사수인 정안이형과 담당선생님인 씨앗이모께 정해진 시간이 문자를 보내고 매번 분량 100%가 보이고 거짓말 하나 없는 문자를 보내겠습니다. 그리고 조영희 목사님이 내주시는 숙제를 다 하고 영어선생님의 숙제도 토요일 수업시간에 하지 않고 평일에 다 끝내고 수학시간에도 졸지 않고 집중하겠습니다. 제가 이제부터는 잘 살도록 하겠습니다. 저는 정말 정안이형이 안 맞도록 분량을 채우고 문자도 착실히 보내겠습니다. 정말 잘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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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딴방/신경숙

by 줄기 posted Aug 27,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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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8.27.이도원

제목: 외딴방

지은이: 신경숙

 

열여섯의 나는 발에 쇠스랑이 찍혔다. 쇠스랑이 싫은 나는 쇠스랑을 우물에 던져버렸다. 나는 일을 하기 위해 외사촌과 함께 큰오빠가 있는 서울로 가서 전수학원에 갔다. 전수학원에서의 밥은 맛이 없어서 큰오빠가 빵을 많이 사주었다. 전수학원이 끝나고는 동남전기회사에 들어갔는데 외사촌과 같은 스테레오과였다. 휴가 때 집에 오자 틈만 나면 우물주변을 서성거렸다. 큰오빠는 나와 외사촌과 큰오빠가 지낼 수 있는 방을 마련했다. 나는 그 방을 외딴방이라고 불렀다. 어느 날 소꿉친구였던 창에게 편지가 왔다. 엄마는 창을 싫어했다. 창은 내게 중요한 편지를 맡겼지만 잃어버려서 사이가 어색해졌다. 그러다가 서울에 와서 편지가 온 것이다. 회사에서는 나이를 속여 들어갔기 때문에 가짜이름으로 이연미를 썼다. 회사에서 누가 가짜이름을 부르면 나는 나를 부르는지 모를 때가 많았다. 회사에서 미스최가 부당하게 해고를 당하려 하자 유채옥이 미스최의 편을 들고 미스리는 나와 외사촌에게 노조가입서류를 내밀었다. 나는 노조가 무엇인지도 몰랐고 회사에 들어올 때 나쁜 것이라고만 알고 있었다. 나와 외사촌은 노조에 가입했다. 집에서는 큰오빠가 이제 야간학교를 신청해 학교에 다니라고 했다. 학교에 가는 것은 회사의 책임이었지만 노조에게 맡겼다. 나는 노조지부장에게 불려가서 입사서류와 학교입학원서가 이름과 나이가 다르다고 했다. 나는 사실대로 말했다. 회사에서 노조에 가입한 사람들은 맡는다고 했다. 외사촌도 노조가 준 리본을 가슴에 달았다가 뺨을 맞았다. 회사는 방계회사를 설립한다는 이유로 우리들의 급료를 줄였다. 학교에 가는 첫날에는 매번 했던 잔업거부를 해야 해서 눈에 튈까봐 걱정되었다. 큰오빠는 이제 방위병이 되고 셋째오빠는 대락신입생이 되어 데모쟁이가 되어 버렸다. 외사촌은 화장을 다 알아버렸지만 학교에 가야 해서 화장을 지우고 교복을 입는다. 회사에서 생산계장이 말을 안 들었다고 미스최를 강간하는 일이 벌어졌다. 미스최는 다른 사람에게 다 알리고 일이 커졌다. 외사촌은 꼭 이곳을 떠날 것이라고 했다. 회사는 노조를 탈퇴해야만 월급을 준다고 했다. 나와 외사촌은 노조를 탈퇴했다. 어느 날 학교에서 만난 희재언니는 우리들의 외딴방이웃이었다. 나는 희재언니와 친해졌지만 큰오빠는 희재언니를 싫어했다. tv에서 대통령의 영부인이 총을 맞고 죽었다고 했다. 전에 학교에 대통령과 영부인이 왔을 땐 착했지만 죽은 것이 믿겨지지 않았다. 선생님은 독재정권이 무너져서 더 나은 세상이 올 것이라고 했다. 큰오빠의 여자는 우리집에 왔었다. 엄마는 여자를 싫어했다. 일을 잘 못할 것 같기 때문이다. 셋째오빠는 외박을 자주 한다. 어느 날 큰오빠가 셋째오빠에게 화를 내며 청년 때 우리들을 책임지고 있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호소했다. 싸운 다음날 희재언니가 약을 발라놓고 갔다. 외사촌은 큰오빠 몰래 전화교환원학원에 다닌다. 대통령이 바뀐 뒤로 세상이 무서워졌다. 외딴방 앞에 있는 연탄불 때주는 아저씨는 과거전과 때문에 삼청교육대에 갔다. 아저씨의 어머니인 가겟집 할머니는 울었다. 광주에서는 참혹한 죽음이 나온다고 했다. 외사촌의 전화교환원학원은 큰오빠에게 걸려서 혼났다. 고향에 가보니 내가 창에게 보냈던 편지들이 엄마에게 있었다. 나는 너무 화가 났다. 어느 날 윤순임언니의 작업복에서 10000원을 훔쳤다. 그것이 걸려서 윤순임언니에게 돈을 돌려주고 나는 희재언니에게 돈을 빌려 부산으로 갔다가 왔다. 외사촌은 이제 다른 동네로 가서 동생과 같이 산다고 했다. 희재언니와 나와 외사촌은 송별회를 했다. 희재언니는 일하는 곳의 남자를 사귄다, 돈을 모아 결혼할 것이라고 했다. 그 남자는 노래를 잘했다. 어느 날 희재언니가 그 남자와 해어졌다. 큰오빠는 발령이 멀리 나가서 집에서 혼자 지내게 됬다. 그리고 점점 창백해지던 희재언니는 시골집에 간다며 오래 있다 온다고 했다. 그런데 오지 않았다. 희재언니는 우리 방에서 자살을 한 것이다. 나는 충격에 빠져 외사촌의 집으로 달려갔다.

느낀 점: 읽을 때 죽은 사람이 누군지 몰랐는데 희재언니여서 충격이었다.


도원

연금술사/파울로 코엘료

by 줄기 posted Aug 10,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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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도원

제목: 연금술사

지은이: 파울로 코엘료

 

산티아고는 신부가 되려 했지만 모험을 하고 싶어서 양치기의 길을 택했다. 작년에 어느 마을에서 한 소녀에게 빠져 나흘 뒷면 다시 만날 수 있었다. 폐허인 낡은 교회에서 잤더니 어제 꾸었던 던 꿈을 또 꾸었다. 꿈은 이집트의 피라미드에 보물이 있는 것이었다. 마을의 점쟁이 노파를 찾아갔다. 그들은 집시여서 믿지 않았지만 보물을 찾으면 1/10을 주라고 하고 복채도 받지 않아 신기하였다. 마을에서 노인을 만났는데 노인은 살램의 왕이었다. 그는 자신의 자아의 신화를 찾아 이집트의 피라미드로 여행을 떠나라고 했다. 그리고 우림과 투밈이라는 보석을 주며 표지를 식별할 때 쓰라고 했다. 산티아고는 양을 모두 팔아 이집트로 갔다. 그곳의 카페에서 친구를 사귀었는데 친구가 카페주인과 말을 나누자 카페주인이 산티아고의 팔을 잡았다. 친구는 카페주인이 사티아고의 돈을 원했다며 도둑이 많다고 했다. 친구는 피라미드로 가는 것을 도와준다면서 돈을 받고 도망쳤다. 카페주인은 친구가 돈을 가지고 도망간다고 일러준 것이었다. 산티아고는 거지가 되어 에메랄드가게에서 일을 하고 밥을 얻어먹으려했다. 그곳의 주인은 아주 착했다. 산티아고가 돈을 모을 때까지 일을 하게 해 주었고 산티아고는 진열대와 에메랄드 찻잔을 만들며 주인을 도왔다. 주인은 충실한 이슬람신자였다. 주인은 메카에 가는 것이 소원이었지만 메카에 갈 돈을 모으고도 가지 않았다. 산티아고가 돈을 모아 스페인으로 돌아가기 마음을 바꿔 다시 피라미드로 가기로 했다. 갈 때 연금술을 배우는 영국인을 만나 같이 다녔다. 영국인은 오아시스에 있는 연금술사를 찾으러 간다고 했다. 갈 때 부족 간의 전쟁이 일어나서 위험하다고 했지만 도착했다. 오아시스는 중립지역이라 전쟁을 할 수 없다고 했다. 산티아고는 그곳에서 파티마라는 처녀를 만났는데 사랑에 빠져 바로 결혼을 신청했다. 처녀는 산티아고를 좋아하지만 산티아고의 꿈을 막기 싫어서 결혼을 할 수 없었다. 산티아고는 어느 날 모래에서 매를 보았는데 미래를 보듯이 전쟁이 일어나는 것이 보였다. 산티아고는 부족장들에게 이 사실을 말했고 부족장들은 군사를 대기하고 적이 오지 않으면 산티아고가 죽는다고 했다. 그날 밤 모래밭에서 한 사람을 만났는데 누가 매의 흐름을 읽었냐며 목에 칼을 댔다. 산티아고는 겁이 났지만 사실을 밝히고 그가 연금술사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다음날 적들은 왔고 적장을 제외하고 다 죽였다. 그들은 식량이 부족해 중립지역을 공격할 수밖에 없었다. 연급술사를 다시 만나고 산티아고는 그의 제자가 되었다. 연금술사는 만물의 정기를 느끼고 세상의 언어를 이해하도록 가르쳤다. 연금술사와 같이 피라미드를 향해 가면서 병사들을 만났는데 연금술사는 진실을 모두 말했다. 병사들은 믿지 못하며 그냥 보내주었다. 연금술사는 눈앞에 보물이 있어도 모르고 지나간다고 했다. 어느 날 어떤 군사 주둔지에서 목숨이 위험해지자 연금술사가 산티아고는 바람으로 변할 수 있다며 사흘을 주라고 하였다. 산티아고는 바람으로 변하는 방법을 몰랐다. 당일이 되자 산티아고는 바람의 언어를 들었고 질문을 주고받으며 사랑에 대해 이야기했다. 바람은 사람이 바람이 되는 법을 몰랐다. 그러나 바람이 쎄게 불게 해주었다. 그리고 사막과도 이야기를 나누고 해와도 이야기를 나누었지만 바람으로 변하는 법은 알 수 없었다. 해는 모든 것을 만든 손에게 물어보라고 했다. 산티아고는 그 손을 잡아 바람이 되었다. 바람이 쎄게 불어 주둔지가 날아갈 뻔 했지만 사령관과 연금술사는 웃고 있었다. 산티아고가 피라미드에 거의 다다르자 연금술사는 이제 알아서 해보라고 헤어졌다. 피라미드에 도착해서 땅을 파보자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다. 그 때 군사들이 지나갔는데 산티아고가 꿈에 나온 이야기를 다 설명하자 한 사령관이 자기도 스페인의 한 초원에 낡은 교회에 있는 무화과나무아래 보물이 있는 꿈을 2번 꾸었다며 다시는 그런 바보짓을 하지 말라고 하였다. 산티아고는 연금술사의 말이 떠올라 바로 스페인에 가서 보물을 발견했다. 그는 이제 파티마를 만나러 간다.

느낀 점: 보물 앞에서 잤으면서 몇 년 동안 고생을 하여 돌아오는 것이 신기하였다.


도원

그림 속의 음식, 음식 속의 역사

by 줄기 posted Aug 09,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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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도원

제목:그림 속의 음식, 음식 속의 역사

지은이: 주영하

조선시대 때는 생선이 귀한 음식이었다. 김득신의 감상회음에서는 생선 한 마리를 여러 명이 나누어 먹는다. 그리고 지금은 거의 보이지 않는 조선의 철새 왜가리도 보인다. 조선시대에 성리학이 등장하고 굿은 않좋은 것으로 취급 받았다. 하지만 민간인들 사이에서는 몰래 이루어졌다. 성리학은 미래의 불확실성을 해결해주지 못하고 개인적인 차원에서 민간신앙으로 해결했다. 김홍도는 인물의 면모를 날카로운 필선으로 그려 산수화법 행려풍속도를 새로운 경지에 올려놓았다가 40대가 되자 산수화법 기법을 많이 사용했다. 김홍도가 말년에 그린 수운엽출에서는 김매기를 하는 장면이다. 농사일 중에 으뜸은 벼농사인데 벼농사는 논갈이와 김매기가 힘이 많이 들었다. 우리 조상은 쌀의 매력에 흠뻑 빠져버렸다. 당분이 많고 아무리 먹어도 물리지 않기 때문이다. 벼는 한여름에 집중적으로 물을 먹어야 잘 자란다. 그래서 가뭄이 오거나 홍수가 나면 농사를 망칠 수밖에 없었다. 쌀은 떡에도 쓰이고 술과 과자에도 쓰였다. 게다가 조상에게 바칠 제사음식이니 아주 귀했다. 쌀은 김치와 어울리면 맛있어서 쌀을 주식으로 삼을 때부터 김치의 속이 더 들어갔다. 김홍도가 59세가 되었을 때 기로세련계도를 그렸다. 이 그림은 70세와 80세의 모임이다. 모두 옛 관리들인데 64인이나 모여서 규모가 크다. 고려시대 때만 해도 높은 사람들은 식탁에 음식을 차리고 의자에 앉아 음식을 먹었지만 조선시대에는 쪼그려 앉아 먹기가 유행이 되어 이 그림에도 다 쪼그려 앉아 있다. 이 그림에서 김치로 보이는 것이 있는데 이런 잔치에서 보이는 김치는 술안주용 김치인 보쌈김치일 가능성이 높다. 옛날에는 이 잔치도 큰 명절 중 하나였지만 지금은 설날과 추석밖에 챙기지 않는다. 김홍도가 그린 돌잔치는 돌잡이를 보여준다. 조선시대의 돌잡이 풍습은 남자와 여자가 집을 수 있는 물건이 달랐다. 일단 남자와 여자와 상관없이 책, , 벼루, , 흰 실타래, 대추, 백설기, 수수팥떡, 쌀 등은 오르지만 남자는 활과 장도가 더 오르고 여자는 바늘, 가위, 인두 등이 올랐다. 남자아이는 활이나 장도를 집으면 무관이 되리라고 예측하고 여자아이가 바늘이나 가위를 잡으면 바느질을 잘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그림에서 아이의 왼쪽에 활과 장도가 있고, 오른쪽에 책과 붓을 놓았는데 오른손을 사용하라고 가르치면서 오른쪽에 책과 붓을 놓은 것을 보면 부모의 마음이 아이가 문관이 되기를 바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이 그림은 홍이상의 돌잔치모습이다. 홍이상의 할아버지로 보이는 사람이 담배를 피고 있는데 이 때는 담배가 없었다. 20년 후 김홍도가 그린 것이기 때문이다. 홍이상은 실제로 돌잡이 때 책을 잡고 30살이 되어 장원급제하였다.

김준근의 신부연석에는 여자만 나온다. 모두 병풍에 둘러싸인 여인을 쳐다보는데 구경하듯이 본다. 신부가 신랑댁에 가서 인사를 드리는 것이다. 이 때는 남자가 낄 수 없다이 그림의 주빈은 여인인데 표정이 좋지가 않다. 신랑의 모든 친척들에게 모두 절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절이 끝나면 큰상을 받는데 큰상에는 고급진 음식과 떡들이 있다. 절을 하느라 고생하고 앞으로의 시집살이를 위로하기 위해 큰상을 차려준다.

느낀 점: 모르던 그림을 알게 되었고 사람들의 표정이 다 다르고 섬세하게 보여서 신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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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소녀/벤 마이켈슨

by 줄기 posted Jul 26,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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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7.23.이도원

나무소녀/벤 마이켈슨

나는 마을에서 나무를 잘 타서 나무소녀라고 불린다. 어느 날 군인들이 우리 마을에 찾아와서 배신자를 찾는다고 하였는데 호르헤오빠가 대들었다. 그러자 군인들이 호르헤오빠를 잡아가 버렸다. 다음 날 군인이 왔을 때 아빠가 호르헤오빠를 살려달라고 애원했지만 반군이 그런 것이라며 모른 척하였다. 학교에서 마누엘 선생님이 오빠를 찾는 것을 도와주었지만 찾지 못하였다. 다른 마을에는 군인들이 습격했다고 하였다. 학교에 아이들이 6명밖에 오지 않자 선생님은 강가로 소풍을 나섰다. 그런데 갑자기 군인들이 와서 에스파냐어를 아냐고 물었다. 다들 모른 척하였지만 걸리고 말았다. 군인들은 선생님을 죽을 때까지 때리고 아이들에게 도망치라고 하면서 총으로 쏴 죽였다. 나는 간신히 나무를 타서 살았다. 마을로 돌아와 보니불타고 있었다. 그리고 아빠와 동생들이 죽어있었다. 마을을 둘러보다가 덤불속에서 알라시아와 안토니오를 발견하였다. 안토니오는 총을 맞아 신음하고 있었다. 숲으로 가던 중 헬기를 만나서 달렸다. 안토니오는 그날 밤 죽었다. 알라시아는 말이 없어졌다. 장에 가던 중 만삭인 아줌마의 아기를 낳는 것을 도와드렸다. 아줌마는 죽었다. 장에 가서 알라시아와 아기를 덤불에 숨겨두고 음식을 찾으러 다녔다. 그런데 갑작기 군인이 와서 사람들을 학살하였다. 나는 또 나무에 올라가서 살았지만 2일 동안 아무것도 못하고 서서 학살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나는 혼자가 되어 멕시코의 피난민 수용소로 갔다. 그곳의 보급품경쟁은 엄청났다. 비를 막기 위해 방수지를 향해 돌진했는데 다른 사람들을 밀치고 밟았다. 가지고 나와보니 할머니가 다리를 절며 울고 다른 할머니가 부축하고 있었다. 나는 죄책감이 들어 할머니에게 방수지를 드렸다. 할머니들은 내가 가족에 없는 것을 알고 같이 지내자고 하였다. 로사할머니와 카르맨할머니였다. 나는 매일 음식을 구해 할머니들과 먹었다. 어는 날 로사할머니가 죽었다. 나와 카르멘할머니는 울었다. 어느 날 음식을 구하러 다니는데 낯익은 여자아이가 보였다. 알라시아였다. 나는 울며 알라시아를 안았다. 알라시아와 아기는 마리아아줌마가 구한 것이었다. 나는 3명을 우리 안식처에 데려 오고 방수지를 더 구하여 더 크게 만들었다. 우리가 지내는 곳에는 마리옷선생님도 있었다. 마리오선생님은 나와 피난민수용소에서 학교를 만들었다. 아이들은 알파벳을 쓰고 말할 줄 알게 되고 군인을 싫어하게 되었다. 그런데 어느 날 마리오선생님이 반군에 자원하고 싶다고 하고 가버렸다. 나도 가고 싶어서 알라시아를 데리고 나왔다. 밤에 자려고 숲에 기댔는데 알라시아가 눈빛으로 나무에 올라가자고 하였다. 그리고 침묵을 깨고 말을 했다. 나는 울며 피난민수용소로 돌아갔다. 알라시아는 이제 말을 할 수 있다. 나는 너무 기뻤다.

느낀 점: 전쟁이야기라 그런지 몽실언니가 생각났다. 이 책에 나오는 모든 인디오들이 너무 불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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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실 2017.07.30 01:09

    공감~ 어린 나이에 다른 사람을 돌보고 책임지는 나무소녀가 몽실언니 같네^^


도원

만약 고교야구 여자 매니저가 피터 드러커를 읽는다면/이와사키 나쓰미

by 줄기 posted Jul 26,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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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7.26.이도원

만약 고교야구 여자 매니저가 피터 드러커를 읽는다면/이와사키 나쓰미

 

고교야구매니저인 유키는 아파서 입원했다. 그녀의 친구 미나미는 야구를 싫어했지만 유키를 위해 고교야구매니저가 되었다. 미나미는 고시엔대회에 출전하는 것을 목표로 잡았다. 하지만 다른 부원들은 모두 할 수 없다고 했다.미나미의 학교 호도고는 지금까지 성적이 좋지 않았다. 미나미는 매니저가 무엇인지 알기 위해 매니지먼트라는 책을 샀다. 책에는 고객이 있어야 매니저를 할 수 있다고 되있었다. 고객이 누구인지 몰랐으나 마사요시를 통해 고객이 고교야구에 관련있는 모든 사람이란 것을 알았다. 게이치로라는 부원은 연습장에 별로 나오지 않는데 시합에는 왔다. 연습을 빠지는 이유는 작년 시합에서 감독이 게이치로를 강판시켰기 때문이다. 감독은 야구부에 관심이 없어 보였다. 미나미는 부원들이 유키의 병문안을 오는 겸 유키와 12로 상담을 했다. 상담으로 부원들의 모르는 면을 알 수 있었다. 여름시합에서는 게이치로가 계속 포볼을 주어서 졌다. 다음 시합에는 이기자고 했다. 미나미는 부원들이 연습에 나오기 위해 연습방법을 바꿔 부원들이 재미를 느끼게 했다. 실수하고 당황않하기 연습과 투수들은 따른 부원과 달리 더 빡쎄게 연습했다. 그리고 부원들의 장점을 살려 연습했다. 부원들이 열심히 하자 감독도 열렬히 참여하기 시작했다. 호도고에서 야구부는 유명해졌다. 그러자 다른 동아리에서도 야구부의 연습방법을 썼다. 감독은 고교야구에서 보내기번트와 스트라이크같은 볼이 야구를 재미없게 만든다고 했다. 그래서 노번트 노볼작전을 했다. 미나미가 3학년이 되고 호도고의 야구부에는 새로운 부원이 많이 들어왔는데 책에서 최대가 아닌 최적이 좋다고 하여 목표가 야구부의 이치에 맞는 학생들만 뽑았다. 여름시합이 다가왔는데 유키는 퇴원하지 못했다. 시합이 감독은 무조건 콜드게임으로 이겨야 한다고 했다. 호도고의 야구부 부원들은 실수를 하면 긴장하여 실수를 더 했기 때문이다. 시작되고 16강에 077회에 콜드 게임으로 이겼다. 호도고는 그때까지 이름이 퍼지지 않았다. 8강이 되자 상대편의 사립고등학교야구부를 보기 위한 관중들이 많이 왔다. 호도고가 이기자 갑자기 유명해졌다. 준결승에서는 처음으로 번트를 했다. 노볼작전을 위해 스트라이크만 날려서 상대의 안타가 많이 나왔지만 간신히 이겼다. 결승이 시작되기 몇 일전 유키가 위험하다고 했다. 미나미가 매니저가 되고 3개월 후면 죽는다고 했는데 1년이 지난 것이었다. 그리고 미나미를 제외한 모든 부원들은 병문안 상담 때 다 알게 되었다. 미나미는 자기만 모르는 사실이라는 것을 알아서 화가 나 도망쳤다. 아야노가 잡아서 결승으로 끌고 갔다. 미나미는 부끄러워서 마스크에 모자를 쓰고 갔다. 게이치로는 미나미를 위로해 주었다. 호도고는 54로 역전승했다. 고시엔대회참가권을 얻은 것이다. 미나미는 기뻤지만 울음이 나왔다.

 

느낀 점: 피터 드러커라는 이름을 어디선가 많이 들어본 것 같은데 조직과 관련된 책을 썼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서 신기했고 갑자기 유키가 죽어서 당황했다.


도원

보노보노처럼 살다니 다행이야/김신회

by 줄기 posted Jul 15,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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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7.6.이도원

보노보노처럼 살다니 다행이야/김신회

위로가 받고 싶을 때는 인생에서 많이 찾아온다. 그런데 힘내, 괜찮아질거야 같은 말들은 언제 괜찮아질지 모르는 이들에게 폭력이 된다. 그래서 위로는 그 사람이 받고 싶은 위로를 해야 한다. 별 것 아닌 일을 알고 싶어하는 것은 쓸쓸한 것이다. 그래서 재미없는 이야기라도 나누어야 한다. 보노보노에서 너부리는 성격이 포악하고 참견이 심하고 원하는 대답을 하지 않으면 때린다. 우리가 너부리를 싫어한다면 닮았다는 것이다. 자기가 싫어하는 것은 자기와 닮았다. 친한 사람과 이야기를 하는데 무언가 불편하면 그가 이야기를 하는데 쓸데없는 충고와 조언을 해서이다. 그리고 자기가 그러면 친구도 그럴 수밖에 없다. 이자라도 잔소리를 그만하고 친구의 이야기를 들어주기 시작해야한다. 엄마들은 신기하게도 엄마가 할 일들을 알고 있다. 그런 엄마들은 갑자기 엄마가 된 것이 아니다. 실수를 통해 보완해온 것이다. 다른 일들도 마찬가지이다. 처음 실수했다고 자책하면 안된다. 하지만 같은 실수를 여러번 반복하는 것은 고려해 봐야할 문제이다. 어릴 적에 꿈은 삶의 원동력이 된다. 하고 싶은 것이 많지만 할 수 없어 꿈꾼다. 하지만 어른이 되면 세상살이에 현실적인 눈을 떠서 꿈이 점점 사라진다. 꿈이 없이도 살 수 있는 것은 어른이 되었다는 것이다. 나는 부잣집 6학년 아이가 사립초등학교 전교회장이 되기 위해 현역 방송작가의 역할로 아이의 집에 갔다. 아이의 집은 엄청난 크기에 모델하우스 급이였다. 그 아이가 전교회장이 하고 싶은 이유는 명예 때문이라고 했다. 나도 발음하지 않는 명예를 아이가 말한다. 내가 이 일은 한 것이 명예롭지 않다고 느낀다.

보노보노는 동물들의 이야기이지만 사람도 하기 힘든 명언들이 많다, 졌을 때 부정하지 않고 진결과를 받아들이고 자존감이 무너지더라도 살아가는 것이 중요하다. 요즘은 뜨거운 열정이 금수저에 좌절된 사람들이 많다. 미리 걱정하는 습관은 좋지 않다. 기분 나쁜 이야기를 들어서 참는 사람들의 유형은 화내면 자기가 이상한 사람 취급당할까봐 참는다. 그러면서 삐친다. 요즘은 나 화났어라는 말보다 나 상처 받았어라는 말을 더 많이 쓴다. 이 말은 나 화났어라는 말을 부드럽게 돌려 말하여 예의바르거나 지혜롭게 보이려고 쓴다. 하지만 당당하고 솔직한 나 화났어라는 말이 횔씬 좋다. 오그라드는 것을 잘하는 사람이 연애를 잘한다고 한다. 사실 오그라드는 짓을 해도 사람들과 잘 어울려야 연애을 잘하는 것이다. 능력이 없으면 안하는 것이 좋다. 나도 해본 적이 있다. 한 남자와 술을 먹으며 애교를 부리며 매력을 발산했는데 남자가 많이 당황하여 말리게 되었다. 그 이후 통화를 하지 못했다. 3년 전에 이사를 했는데 집이 좁아져서 가구와 물건들을 버려야 했다. 그 중 책들은 모은 것들이 많아 아까웠다. 나는 인터넷 중고 서점에 팔았는데 한 권당 1000원 꼴이 나서 눈물났다. 그런데 보노보노를 보면서 괜찮아졌다. 어차피 이제 보지 않고 쓸모없어질 건데 원래 없던 것처럼 행동하다보면 적응이 되는 것이다. 부모님은 주말마다 등산을 가셨다. 그 때 등산가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았는데 30대가 되어 친구와 등산을 하니 목적지에 가는 것이 즐겁게 느껴졌다. 나도 어른이 된 것이다.

느낀 점: 보노보노는 원래 애니메이션으로 시작한줄 알았는데 만화가 원작이었다는 것과 보노보노에는 보노보노와 포로리, 너부리 정도만 있는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다른 동물이 많아서 신기했다. 전에 볼 땐 이런 명언 같은 말들은 들어보지도 못하고 그냥 유치한 애들 애니메이션이구나 생각했다.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면서 보노보노가 어른 책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나중에 보노보노 만화도 한 번 다 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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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 2017.07.19 12:42
    줄기가 자라서 이제 그런 명언들이 무엇인지 마음에 와 닿는 거야. 지금 여러가지고 많이 변화하고 정서적으로도 조울이 심해지고 하는 시기인데, 이런 책들을 보면 한결 가벼워질 것 같구나. 줄기가 정리한 명언들을 나도 읽어보면서 같이 느끼게 된 것 같다. 글쓰기가 점점 좋아지네

도원

유시민과 함께 읽는 유럽문화이야기2/유시민

by 줄기 posted Jun 24,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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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6.22.이도원

유시민과 함께 읽는 유럽문화이야기2/유시민

이탈리아

이탈리아사람들은 고향을 중요시해서 마치 자랑거리를 말하듯이 고향을 말한다. 그리고 성공하면 고향사람들에게 돈을 대주고 일자리를 마련해주어야 한다. 이탈리아가 뭉쳐지는 시기는 월드컵과 올림픽이다. 이탈리아의 모든 분쟁은 적당한 타협이나 뇌물로 해결한다. 그래서 정면충돌은 피한다. 이탈리아인들은 상황에 맞게 옷을 입고 옷에 따라 하는 행동이 바뀐다. 한번 유행이 지난 옷은 창고에 처박아 두고 더 이상 꺼내지 않는다. 이탈리아인은 패션감각이 뛰어나다. 그래서 2차 세계대전 당시 수용소를 탈출한 포로들이 독일은 쉽게 지나갔지만 이탈리아에서 다 걸렸다고 한다. 이탈리아 카페에서 큰소리를 치는 것은 무례하게 받아들이지 않지만 돈을 주고 서비스를 사는 사람이 너무 정중하게 처신하면 공손한 척하는 무례한 행동이 된다. 이탈리아인은 시간약속을 잘 지킨다. 그래서 15분까지만 봐준다. 이탈리아에는 줄서기를 절대 하지 않는다. 그래서 큰 사건이 많이 일어난다. 이탈리아의 남자는 집안에서 하는 것이 없다. 모든 결정은 여자가 한다. 그 이유는 여자가 어릴 때부터 불리한 조건으로 살아왔기 때문이다. 이탈리아인들은 남들보다 뛰어나려고 법에 거짓말을 한다. 그리고 들키는 것보다는 체면이 깎이는 것을 더 심각하게 생각해서 변명을 댄다.

스위스

스위스는 내륙국가이고 천연자원도 없고 농사하고 목축하는 국가인데 1인당 국민소득이 가장 높다. 그런데 즐거워하는 기색이 없다. 스위스국민의 근심걱정은 엄청나다, 그래서 길을 걷는 스위스사람들은 다 표정이 심각하다. 스위스에서는 직장에서 휴가를 오래준다. 그런데 외국으로 나가지 않고 국내여행을 하는 사람이 많다. 보통 스키와 등산을 즐긴다. 스위스의 치아치료는 굉장히 비싸기 때문에 주변나라에 가서 치료를 받는 사람이 많다. 그런데 자기 나라가 무조건 최고라는 인식이 많아서 일부로 국내에서 치료받는 사람도 있다. 스위스사람들은 치아가 어차피 썩기 때문에 썩기 전까지 관리를 하지 않고 심각해지면 치료를 받는다. 스위스의 맥주는 물보다 싸다. 스위스의 성탄절은 조용한 편이다. 그래서 집에서 가족과 함께 밥만 먹는 정도이고 다른 일은 하지 않는다. 스위스에서 자동차는 가진 사람의 재산을 나타내는 방법이다. 그래서 돈이 멸로 없는 사람들도 비싼 자동차를 사려 한다. 스위스의 실업률은 5%이고 스위스의 직업들은 단순노동이어도 임금이 높다.

오스트리아

오스트리아사람들은 굉장히 게으르고 굼뜨다. 그리고 전쟁에서 이긴 횟수가 적다. 그들은 헝가리사람과 굉장히 친하다. 그런데 헝가리사람이 독일어를 배우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지만 오스트리아 사람들이 헝가리말을 배우는 것은 어순이 하나도 맞지 않기 때문에 불가능하다. 오스트리아에서 가장 선호하는 직업이 가톨릭 교황이지만 오스트리아사람들은 교황을 가장 싫어한다. 이유는 가톨릭법에 이혼이 불가능하고 바람피우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오스트리아에서 식사를 시작하려면 식당주인이 멘트를 쳐야 시작된다. 오스트리아사람들은 술에 정말 취하지 않기 때문에 엄청 마신다.

느낀 점: 알프스쪽 유럽인들이 부유하게 살고 있어서 신기하고이 세 나라중에 이탈리아에 가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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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 2017.06.28 11:42
    가람이 정리한 내용하고는 아주 판이하게 다르네,,, 역시 같은 책을 보아도 읽는 사람에 따라 느낌이 완전 달라지나보다. 재미있고 인상적인 부분을 중심으로 요약정리를 잘했습니다. 직접 그 나라에 여행가기 전에 이렇게 책을 통해 미리 접해보고 알고 직접 가보면 또 다른 재미가 있을거야. 열심히 읽고 정리하느라 애썼어요.

도원

아프니깐 청춘이다/김난도

by 줄기 posted Jun 15,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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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6.14.이도원

아프니까 청춘이다/김난도

사계절의 특징이 있듯이 사람도 사계절처럼 자신만의 시기가 있다. 자기가 성공하지 못한다고 하는 것은 자신만의 계절이 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계절마다 피는 꽃도 저마다 아름다움이 있다. 무엇이 가장 아름다운지는 판다할 수 없다. 하지만 이것에 답한 사람들은 꽃은 그렇게 유연하게 사고할 수 있으면서 인생에 대해서는 그렇게 생각하지 못한다. 대부분 가장 먼저 꽃을 피우려고 한다. 나는 진로상담을 하는 학생들을 미래에 대해 생각이 확고한 화살파와 그렇지 않은 종이배파로 나눈다. 화살파는 목표가 분명하다. 그런데 인생을 최단경로로 설계하기 때문에 화살파로 부른다. 목표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의문을 내놓는다. 종이배파는 목표가 너무 불확실하기 때문에 부른다. 그들에겐 듣고 싶은 대답을 해야 한다. 개그맨이 적금을 하면 유명해지기 어렵다고 한다. 신인 개그맨시절에는 아이디어를 구상하거나 연습시간이 더 필요한데 알바를 하면 뜰 수 없다. 다른 사람들도 거의 마찬가지이다. 성공한 사람들을 질투하는 것은 나쁜 것이 아니다. 거기에서 존중할 만한 일을 찾고 부러워하는 것이다. 다른 사람의 성취를 부러워하지 않는다면 지는 것이다. 학생들은 슬럼프에 빠졌다고 찾아온다. 슬럼프는 게으름, 나태이다. 자기도 슬럼프에 빠졌으면서 은근히 즐기는 것이다. 그리곤 힘들다고 핑계를 댄다. 고시와 같이 자기가 안 된다고 생각하면 그만두어야 한다. 선배들 중에는 10년 동안 고시준비를 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 이유는 해왔던 시간이 아까워서이다. 그런데 자기가 안 된다고 생각하자 포기하고 성공하였다. 연인관계가 깨지면 같은 수강을 듣는다고 나오지 않는다. 그렇게 되면 학점은 재수강으로 고칠 수 있지만 학교생활이 힘들어 진다. 자기 인생의 오답노트를 만들어야 한다. 그런데 자기가 고치겠다고 생각하면서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 행복은 새로운 것을 얻었을 때 생기지만 또 다른 것을 요구하게 된다. 하지만 다른 곳에서는 남들이 누려보지 못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도전해보지도 않고 못할 것 같다며 포기한다. 하지만 도전해보는 것이 포기하는 것보다 훨씬 좋다. 세상엔 정말 많은 전공이 있다. 한 전공을 세부적으로 나누어서 전공의 개수가 배가 된다. 그런데 학생들은 전공에도 서열이 있다고 생각하고 차별한다. 회사에서 도움이 될 것 같은 전공만 선택하는 것은 선입견이고 아주 비효율적이다. 좀 더 높은 학과의 졸업장을 받고 싶다는 생각은 전형적인 고3마인드이다. 자신이 원하는 직업에 관련 있는 전공을 택하는 것이 좋다. 주위의 시선으로 정하는 것은 좋지 않다. 사람들은 시간이 부족하다고 한다. 그런데 화장실가거나 이동하는 짜투리시간은 생각하지 않는다. 박경철씨는 외과의사이면서 방송인이고 작가이고 유명한 경제평론가이다. 그가 많은 일을 할 수 있는 이유는 짜투리시간을 잘 이용하기 때문이다. 1주일에 책을 1권씩 읽고 규칙적으로 생활한다. 시간관리를 잘하려면 우선순위를 정해놓아야 한다. 그리고 나중으로 미루지 말아야한다. 요즘은 자식의 인생을 엄마가 결정한다. 대학만 가면 자유로워지는 것이 아니다. 자식들은 엄마가 만들어놓은 틀에서 기계처럼 산다. 이렇게 된 이유는 엄마세대가 빈곤해서 돈만을 목적으로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학을 졸업한 후와 결혼 후에도 참견한다.

느낀 점: 박경철씨가 1인다역을 맡는다는 것이 신기하였고 힘들 것 같다. 내가 봤던 시골의사의 아름다운 동행을 쓴 분이라는 것이 신기했다. 게다가 바쁘면서 1주일에 책 한권 읽는 다는 것이 존경스러웠다. 나는 전공이 얼마나 있는지도 모르지만 내가 생각한 것보다 휠씬 많다고 하여서 신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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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 2017.06.24 12:40
    서울대를 가고도 방황하는 청년들, 그리고 아직 정해지지 않은 자신의 진로에 고민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줄기는 느낌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나중에 하는 고민이 아니라, 지금도 스스로에게 이런 질문을 던지고 고민하고 이렇게 읽었던 책에서 좋은 글귀나 위로가 된 말들을 찾아서 마음에 기준을 잡고 살았으면 좋겠다. 열심히 정리하느라 애썼는데, 글쓰면서 잘 읽히나 다시 한번 확인해 보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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