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
아영

다이어트 학교

by 가람 posted Nov 04, 2016
?

단축키

Prev

Next

+ - Up Down Comment Print
?

단축키

Prev

Next

+ - Up Down Comment Print

나는 16575킬로그램이다. 그래서 항상 학교에서 돼지라고 놀림을 받는다. 나는 그게 싫어서 이번 여름방학 때 다이어트 학교에 가고 싶다. 인터넷에서 찾아보니 그 학교에서 하라는 대로만 하면 다 원하는 몸무게에 달성할 수 있다는 글이 엄청 많았다. 원장님도 엄청 예쁘고 또 원장님이 원래는 우리처럼 뚱뚱했는데 살을 뺐다는 점이 좋았다. 가격은 거의 우리 아빠 한 달 월급인데 나는 그만큼 효과가 좋을 것이라고 믿고 있다. 엄마 아빠도 처음에는 반대를 하였지만 내가 이 학교에는 그냥 살만 빼는 곳이 아니라 건강을 위한 곳이어서 살을 찌러 오는 사람도 있고 또 영어회화 시간도 있어서 공부를 하는 사람도 있다고 하지 허락을 해주었다. 드디어 학교에 입학을 하는 날이다. 나는 긴장이 되었고 또 떨렸다. 옆에 앉아있는 아이는 나보다 더 뚱뚱해서 조금은 안심이 되었다. 그 아이한테 먼저 다가가서 말을 걸어보니 착해서 금세 친해졌다. 이름은 민지였다. 6주 동안의 스케줄을 보니 생각보다 할 만하다고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방이 2인실이여서 룸메이트를 만나보니 그 애는 너무 말라서 살을 찌러 왔다고 했다, 이름은 지유였고 그 애의 오빠도 지용이도 살을 찌러 왔다고 했다. 그 다음날부터 스케줄 시작인데 막상 해보니 원래 하지 않는 운동을 세네시간씩 하니 힘들었고 또 밥도 맛있는 것이 아니라 그냥 야채 밖에 없었다. 하지만 살을 빼고 싶다는 생각 때문에 다 참을 수 있었다. 민지라는 아이는 살을 빼고 싶다는 생각보다 힘들다는 생각이 더 많았던지 계속 짜증을 냈다. 1주일이 지나자 나는 3킬로가 빠졌다. 나는 그 주에서 먹은 양이나 운동 양을 생각하면 너무 안 빠졌다고 생각했지만 트레이너 선생님은 잘하고 있다고 했다. 금여일 날에는 몸무게를 재서 제일 빠지지 않은 아이에게는 일주일 동안의 저녁 금지령과 조회 시간에 나는 돼지다 나는 사람이 될 것 이 다를 3번을 외쳐야 했다. 또 만약에 벌점 20점을 받으면 독방행이라고 했다. 또 원래는 일요일에 수영장이나 놀이공원 같이 놀러가는 것이었는데 원장님은 우리가 살을 너무 안 뺀다며 일요일에도 운동을 시켰다. 나는 이 다음부터 원장님이 싫어졌다. 또 조금씩 이 학교가 안 좋아지기 시작했다. 일단 조회시간에 계속 우리보고 살을 못 뺀다고 욕을 하고 점심시간이나 복도에서 마주치면 욕을 하고 또 우리에게 짜증을 시도 때도 없이 한다. 그래서 나는 원래 원장님 같은 사람이 되고 싶었지만 이 학교를 3번째 다니고 있는 새미 언니를 닮기로 했다. 새미언니는 쉬는 시간에도 훌라후프를 돌리며 운동을 했다. 그런데 어느 날 새미언니가 나랑 민지가 초콜릿을 먹었는데 그 일을 원장님에게 일러서 둘 다 저녁 금지령을 받았다. 그 다음부터는 새미 언니도 싫어졌다. 그래서 결국 나는 이 학교를 나가고 싶었다. 민지랑 지유랑 지용이도 똑같은 생각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일요일 새벽에 창문에다가 밧줄을 달아서 학교를 나가기로 했다. 학교 밖까지는 안정하게 왔는데 그 다음에 학교가 산 넘어서 있어서 산을 넘는데 많이 힘들었다. 산을 넘으니 결찰서가 있어서 그곳에 가서 엄마에게 전화를 해서 데리러 오라고 했다. 엄마들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하니 엄마들은 우리를 혼내기는커녕 우너장을 욕했다. 그래서 우리는 짐을 찾아가는 겸 따지러 가기위해 학교를 다시 갔다. 지유엄마는 화가 많이 났는지 원장에게 막 큰소리를 쳤다. 결국 우리는 무사히 학교를 빠져 나왔다. 그 후로 우리는 자발적으로 운동을 하고 매주 주말마다 모여서 같이 운동을 했다.

 

느낀점: 재미있었다.

 


아영

[2016/6/26~10/29]

by 가람 posted Oct 29, 2016
?

단축키

Prev

Next

+ - Up Down Comment Print Files
?

단축키

Prev

Next

+ - Up Down Comment Print Files

용돈 기입장

Atachment
첨부파일 '1'

아영

국어시간에 소설읽기

by 가람 posted Oct 28, 2016
?

단축키

Prev

Next

+ - Up Down Comment Print
?

단축키

Prev

Next

+ - Up Down Comment Print

<육촌형> 나는 어릴 때부터 나의 육촌 형과 친하게 지냈다. 우리가 친하게 지낼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일단 집이 엄청 가까웠고 학교도 같기 때문이다. 그래서 정말 친하게 지냈었는데 어느 날 우리 반에 부잣집 여자아이와 그 애를 지키는 남자 아이가 전학을 왔다. 이 둘은 갑자기 전학을 와서는 우리 반을 다스리기 시작했다. 아이들은 그 두 아이의 말은 무조건 따랐다. 근데 다른 동네의 학교에도 부잣집 아이가 왔는데 그 아이도 똑같이 우리 반 아이처럼 똑같이 행동했다. 그런데 이 두 부자 집 애들은 서로 좋은 감정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래서 결국에는 우리 동네와 그 동네와 나누어졌다. 그런데 나의 육촌형이 이사를 가는 바람에 다른 동네로 가버려서 잘 만나지도 못하였다. 여기까지는 큰 문제는 없었는데 오늘 우리 쪽 대장이 나와 그 육촌형을 싸우라고 명령을 했고 그 동네의 대장도 육촌형에게 똑같이 연령을 했다. 그래서 우리는 절대로 싸우고 싶지 않았지만 싸웠다. 내가졌지만 그런 기분이 안 들었던 게 육촌형이 두 대장에게 가서 대장들끼리만 싸우라고 우리는 싸우지 않겠다고 하지 그곳에 있던 다른 아이들도 그 말에 동참을 하였고 나중에는 다 사이가 좋아졌다.

<이런 음악회> 오늘은 우리 반 아이들이 음악회에서 노래를 부른다. 그래서 응원단을 모아야 되는데 수가 부족 했는지 나를 부르러 왔다. 그래서 나는 해보고 싶어서 해본다고 했다. 연습을 가보니 그냥 우리 반의 노래가 끝나며 앙코르를 외치고 박수를 엄청 크게 치고 다른 반이 하면 박수도 치지 말라고 했다. 나는 이해가 좀 안 됐지만 일단 그렇게 한다고 했다. 그런데 음악회에서 우리 반 공연이 끝나고 나서 응원단과 나는 힘차게 박수를 치면 앙코르를 외쳤지만 주위가 너무 시끄러워서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응원단장이 말하는 대로 하지 않고 다른 사람의 공연이 끝나고 나서도 박수를 치고 앙코르를 외쳤다. 그 모습을 본 응원단장은 음악회 중간에 나를 불러서 내가 뭐 하러 온 것이냐며 따지자 나는 응원하러 왔다고 하니 제다로 좀 하라고 했다. 나는 어이가 없어서 그냥 그 자리를 박차고 나왔다.

<마지막 임금> 이 임금 때는 헌법이 거의 없고 딱 하나만 있었다. 바로 누구도 임금님보단 행복할 수 는 없다 이었다. 임금님은 이것에 대해 되게 민감했다. 그래서 임금은 적어도 일주일에 한 번씩은 백성들이 사는 마을에 들려서 둘러봐서 누구라도 자신보다 행복한 사람을 찾아내서 조사를 했다. 여태까지는 그런 일이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임금이 마을을 돌아다니고 있는데 어떤 사내가 자신 보다 행복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래서 그 사람이 행복한 이유를 조사를 해보니 계급이어서 그 사람을 낮은 계급으로 낮추었다. 하지만 그 사내는 아직도 행복해서 그 사내의 재산을 뺏어보았지만 끄떡없어서 그 사람의 가족을 빼앗아 보고 안 되서 사형에 처했지만 그것도 안 되어 그 삶의 자유를 뺏기 위해 감옥에 가두었지만 감옥에서도 행복해서 법을 어겨서 사형에 처하였다.

<까삐> 얼마 전에 우리 집에 어떤 강아지가 들어와서 우리 집 돼지의 젖을 빨고 있었다.그것을 우리 가족은 신기해서 그 강아지의 주인을 찾지 못하면 우리가 키우기로 했는데 찾지 못해서 키우기로 했다, 처음에는 그냥 똥개로 생각했는데 훈련을 시키니까 곧잘 했다. 한 반년 키우니까 이름도 까삐라고 지어주고 정이 많이 들었다. 그리고 이제는 까삐가 하교시간에 학교 앞에서 기다려서 나를 기다려 주었다. 그러데 어느 날, 까삐가 점심시간에 학교에 와서 내 반으로 들어오는 것이었다. 선생님은 강아지를 다시 집으로 돌려보내라고 해서 집으로 갔더니 엄마가 편찮으셔서 누워계셨다. 그래서 나는 구급차를 불러서 다행히 엄마는 무사했다. 까삐가 아니었으면 정말 큰 일 날 뻔 했다. 이렇게 정이 쌓여 가고 있는데 어느 날 개를 다 내쫓지 않으면 특별한 조치를 취하겠다면 개를 우리 마을에 두지 말라고 해서 우리는 멀리 있는 삼촌 집에 맡겨 놓기로 했다. 나는 까삐가 간 다음에 학교에서도 울었다. 좀 시간이 지나고 나서 삼촌이 까삐가 사라져서 어디 있는지 모른 다고 했다. 나는 계속 찾아봤지만 까삐는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까삐가 상처투성이로 우리 집에 왔다. 나는 먹이와 물과 칠를 해주었다. 알아보니 까삐는 자신은 사람들 사이에서 자랄 수 없다는 것을 알아서 숲에서 자신의 보금자리를 만들어서 살고 있었다.

<나의 아버지>오늘 성적표가 나왔다. 나는 다 점수가 좋았지만 체육만 50점이어서 3호 학생이 되지 못했다. 3호 학생은 전 과목에서 뛰어난 사람을 말한다. 이 사실을 엄마가 알면 난 엄청 혼날 것이다. 그래서 집에 가서 엄마에게 엄청 혼났다. 그 때 아버지가 고혈압이 걸렸다고 아침마다 운동을 해야 되는데 혼자 하면 안 하게 될 것 같으니 나와 함께 가자는 것이었다. 나는 공부 대신 하는 것이니 좋다고 했다. 그 날부터 나아 아버지는 달리기, 철봉 등을 꾸준히 했다. 나는 아무리 하기 싫어도 아버지의 고혈압 병을 고칠 수 있다는 생각으로 열심히 했다. 그 덕분에 나는 체육을 잘 하게 되었다. 그래서 그 다음 성적ㅍ 때는 3호 학생이 되었다. 이 사실을 엄마에게 말하니 엄마는 엄청 기뻐하셨고 아버지는 자신은 실제로 고혈압 병에 걸리지 않았고 나를 위해서 운동을 했다고 말하셨다.      

느낀 점: 재미었었다.


아영

내가 나인 것

by 가람 posted Oct 21, 2016
?

단축키

Prev

Next

+ - Up Down Comment Print
?

단축키

Prev

Next

+ - Up Down Comment Print

나는 집에 가기가 너무 싫다. 왜냐하면 집에 들어가면 하루에 1시간씩 넘게 엄마에게 잔소리, 꾸중 등을 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것의 내용은 오직 내가 왜 공부를 못 하냐이다. 그래서 나는 공부를 너무 못한다고 계속 들으니, 의욕이 없어져서 학교에서도 장난만 치고 혼나는 그런 학생이 돼 버렸다. 오늘 성적표가 나왔다. 평균 60점이었다. 나는 망했다라고 생각하면서 엄마에게 성적표를 내밀었다. 그 때부터 나는 몇 시간 동안 잔소리를 들었다. 그리고 잔소리가 끝이 아니라 여름방학이 내일인데 여름방학 동안 공부만 하고 놀 생각은 하지 말라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생각해도 너무 스트레스를 받아서 가출을 하였다 막상 집 밖에서 나오니 갈 곳이 없고 막막하였다. 그래서 근처에 있는 트럭이 출발해서 뒤에 몰래 탔다. 하지만 트럭은 생각보다 멀리 가서 당황하였다. 차가 계속달리다가 이 트럭이 급커브로 옆에서 달리고 있던 자전거를 치였다. 그래서 자전거 운전사는 쓰러져서 내 생각에는 죽은 것 같았다. 하지만 트럭 운전사는 그냥 트럭을 몰고 갔다. 뺑소니이다. 트럭은 또 달리다가 멈춰서 그 때 몰래 트럭에서 내렸다. 나는 내리다마자 숲이 있어서 그곳을 향해 전속력으로 달렸다. 그러다 보니 집이 있어서 들어가서 재워달라고 하자 집 주인인 할아버지는 퉁명스럽게 허락을 해주셨고 손녀딸처럼 보이는 여자애는 밥을 차려주었다. 그 다음날에는 할아버지가 밥벌이를 하라고 하셔서 나는 그 여자 애와 일을 하로 나갔는데 어제 그 뺑소니 범인이 있는 것이었다. 여자애 말로는 자기 사촌인데 싫어하는 눈치였다. 나는 한동안 그곳에서 일을 하면서 지냈다. 계속 이렇게만 지낼 수 있다면 행복하겠다고 생각을 했지만 그렇게 하지는 못했다. 그 여자애를 좋아하고 있다는 느낌도 들었다. 나는 그곳에서 떠나서 집으로 들어가니 집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방으로 들어가니 둘째 형이 내 방으로 와서 엄마가 나를 걱정해서 경찰에도 신고를 하려고 했고, 또 내가 하도 돌아오지 않자 엄마가 가출을 했다고 했다. 나는 가출을 한 이후부터 많이 바뀌었다. 먼저, 그 여자애가 혼자 공부를 하던 모습이 떠올라서 가끔 혼자 공부도 하기도 하고, 선생님에게 꾸중도 별로 안 듣고 선생님에게 책도 추천을 받아서 알고 있다. 또 달라진 점은 형과 누나들이 여태까지는 엄마에게 지배 당하는 느낌을 받았는데 내가 엄마의 뜻을 받아드리지 않으니까 가끔 형, 누나들도 엄마의 뜻을 거부 할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나는 뿌듯해진다. 또 다른 달라진 점은 바로 그 여자애와 편지를 주고, 받는다는 것이다. 편지의 내용은 그 여자애가 엄마와 아빠가 같이 계시지 않는데, 그 뺑소니 범인이 그 여자애에게 엄마를 봤다고 소개를 시켜주겠다고 했는데 못 미더워서 내가 찾아봐줬는데 엄마가 아니었다. 나는 그 여자애를 보고 싶은 마음에 여자애가 살고 있는 집으로 갔다. 여자애와 할아버지는 반갑게 반겨주었다. 하지만 여자애에게 그 가짜 엄마를 꾸미는 사건이 남아있어서 내가 나서서 해결해 주었고 다시 집으로 돌아가서 엄마와 화해도 했다.

느낀 점: 재미있었다. 


아영

옷장속의 세계사

by 가람 posted Aug 27, 2016
?

단축키

Prev

Next

+ - Up Down Comment Print
?

단축키

Prev

Next

+ - Up Down Comment Print

청바지

미국과 멕시코와 전쟁을 벌였는데 미국이 이겨서 멕시코는 여러 도시를 빼앗겼다. 그 도시들 중에는 금이 많이 있는 곳이 많았다 그래서 미국인들은 그곳에 금이 있는 것을 발견해서 이 사람들은 깃발, 텐트, 도구 등을 가지고 와서 깃발을 꼽아서 자신의 영역을 표시하고, 텐트에서 잤다. 사람들은 하루 종일 금만 팠다. 그래서 그곳에서 어마어마한 금이 나왔지만 워낙 사람의 수가 많아서 한 사람, 한 사람 이 가지는 금의 양은 적었다. 사람들이 하루 종일 쭈그리고 앉아서 일을 하니까 편하고, 튼튼한 옷이 필요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이 이 사실을 깨달아서 청바지를 만들었는데 너무 잘 되서 어떤 제봉사와 협동해서 더 잘되었고, 나중에는 공장까지 지을 수 있게 되었다.

실크

실크는 만들기가 엄청 어려워서 엄청 비쌌다. 이 시크를 만드는 법을 맨 처음이었던 나라는 중국이었다. 조금 지나고 나서 다른 나라들도 알게 되었다. 안 곳은 다 아시아여서 쪽은 하나도 알지 못했다. 어느 날 유럽에서 어떤 왕이 실크를 입고 나왔는데 그것이 너무 예쁘다고 생각했던 귀족들은 이 실크를 사려고 애를 썼다. 그래서 이 때문에 사람들은 실크를 얻으려고 돈을 많이 썼다. 이 나라 중 제일 돈을 많이 쓴 나라는 이탈리아다. 이탈리아는 거의 맨날 사갔다. 하지만 돈을 너무 많이 쓴다고 생각해서 몰래 어떤 신하가 어떻게 만드는지 몰래 다른 나라에 들어가 알아냈다.

비키니

2차 세계 대전 때 미국이 원자 폭탄을 두 번이나 일본에게 쐈다. 미국은 이것에 대해서 전쟁을 끝내기 위해서 한 일이라고 했지만 사실은 미국이 원자폭탄을 실험해 보려고 일본에게 쏜 것 이었다. 근거가 될 수 있는 것은 미국이 일본 중에서 전쟁 때 제일 공격을 안 받았던 곳, 제일 멀쩡한 곳에다가 쐈다는 것이다. 그래야 효과를 더 잘 볼 수 있게 때문이다. 미국은 아직도 이 일에 대해서 미안해하고 있다. 이 일이 있고 난 후, 다른 나라들도 원자 폭탄 실험을 했는데 이 중 어떤 섬에다가 실험을 했다. 실험하는 사람들은, 섬에 살고 있던 사람들은 내쫓고, 동물들을 실험대상으로 삼았다. 이 때 이 섬의 이름이 비키니였다. 그리고 이 때 비키니 섬이 주목을 받아서 수영복 비키니 디자이너가 관심을 받으려고 이름을 따 온 것이다.

양복

양복을 입으면 거의 모든 사람이 멋있어 보인다. 이것에 대한 대표적인 인물은 영국의 왕인 에드워드 8세와 조지 6세이다. 이들의 스토리를 알아보자면 에드워드 8세는 다른 나라 국ㅈㄱ인 여자와 사랑해 빠졌지만 영국에 있는 사람 모두다 두 사람들의 결혼을 반대하서 에드워드 8세는 그 여자를 위해 왕권을 포기했다. 그래서 에드워드 8세의 동생 주=h지 6세가 왕권을 잡게 되었는데 조지 6세는 아주 심하게 말을 더듬었다. 하지만 결국에는 조지 6세가 그 병을 치료해서 에드워드 8세와는 달리 위대한 왕으로 남았다.

느낀 점: 재미있었다.


아영

베니스의 상인(미완성)

by 가람 posted Aug 19, 2016
?

단축키

Prev

Next

+ - Up Down Comment Print
?

단축키

Prev

Next

+ - Up Down Comment Print

심벌린

심벌린이라는 왕은 아들 둘, 딸 하나가 있었다. 아들 둘은 누가 훔쳐갔고, 맡 딸 이모젠만 있었다. 심벌린은 아들이 납치 된 다음에 부인도 죽어서 새 부인과 결혼을 했다. 하지만 이 여자는 악의를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이모젠이 몰래 농부 포스트휴모스라는 남자와 사귀고 있다는 것을 심벌린에게 일렀다. 그리고 슬픔에 빠진 이모젠에게 자신의 아들과 결혼을 하라고 했다. 그래야만 이 여자가 왕권을 잡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심벌린은 화가 나서 포스트휴모스를 나라 밖으로 쫓아냈다. 그래서 포스트휴모스는 로마로 떠났다. 그는 로마에 가서 새로운 친구를 많이 사귀었는데 그 중에서 이아치모라는 사람과 친해졌다. 이들은 어쩌다가 아내 얘기가 나와서 포스트휴모스는 자신의 아내가 제일 훌륭하다고 했는데 이아치모가 믿지 않아서 이 둘은 내기를 하였다. 내용은 이아치모가 런던에 가서 이모젠을 홀리면 이아치몬은 푸스트휴모스의 반지를 갖고, 만약에 실패를 하면 포스트휴모스는 돈을 받는 것이었다. 이아치모는 곧장 런던으로 떠나서 이모젠을 찾아갔다. 그는 생각보다 이모젠이 반항을 하자 그는 내기에서 이기고 싶어서 이모젠의 신화들에게 돈을 주어서 이모젠의 방에 몰래 들어갔다. 그리고 그는 마치 그가 이모젠의 방에 들어갔다 온 것처럼 얘기 하려고 이모젠의 방에 대해서 모든 것을 받아 적었고 이모젠이 차고 있었던 팔찌도 훔쳤다. 그리고 로마로 돌아왔다. 그러고 나서 모든 얘기를 포스트휴모스에게 말하자 포스트휴모스는 반지를 주었고 이모젠에 대해서 사랑이 식었다. 이 때 이모젠은 포스트휴모스가 그리워서 로마로 떠났다. 하지만 이것을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그래서 그녀는 근처에 있는 숲에 들어갔는데 동굴이 있기에 들어가 보았더니 몇 십 년 전에 잃어버렸던 남동생들이 있었다. 그래서 이모젠은 한동안 남동생들과 살았다. 그런데 갑자기 전쟁이 일어났다. 그래서 남동생, 포스트휴모스 그리고 심벌린가지 한 자리에 모여 싸웠다. 결국에 이 사람들과 이모젠까지 전쟁터가 아닌 감옥에서 다시 보았는데 그 때 이아치모가 오해를 풀어서 두 부부는 행복했고, 심벌린은 잃어버린 자신의 딸, 이모젠과 자신의 아들들도 찾아서 좋았고 심벌린은 딸을 찾은 기쁨 덕분에 포스트휴모스와 이모젠의 결혼을 허락했다.


아영

내 청춘 시속 370km 정찬희

by 가람 posted Aug 06, 2016
?

단축키

Prev

Next

+ - Up Down Comment Print
?

단축키

Prev

Next

+ - Up Down Comment Print

청춘 시속 370km

2016/8/6 정찬희 지은이: 이송현

내 아버지는 매 사냥꾼이다. 하지만 매 때문에 집도 팔고 멀쩡한 직장도 때려쳤다. 나는 이런 아버지와 매가 원망스럽다. 결국 매 키우는 걸 반대하던 어머니는 집을 나가 용인 친구네 식당으로 가셨다. 나는 바이크 타기를 좋아한다. 하지만 무면허여서 아직 바이크를 사지 못해 매일 마다 중국집 배달알바를 하는 안중근형에게 빌려 타다가 흥분해서 온갖 묘기를 다 부리다가 그만 안장에서 미끄러져서 교통사고가 나 경찰에게 끌려간다. 다행히 다치진 않았지만 30만원의 벌금이 있었다. 아버지가 오셔서 너는 이제 내 아들이 아니다. 나갈려면 몸을 팔아라.” 하시고 나갔다. 결국 삼촌이 돈을 내시고 나갔다. 그래도 바이크를 포기할 수 없어 생각을 하다가 용돈벌이 용으로 매 키우기를 한다고 했다. 결국엔 아빠가 허락 해 주셨다.그 다음엔 아빠가 매 한 마리를 빌려 주셨다. 그리고 이름을 정하라 해서 뭐로 지을지 고민하다가 못 짓고 다음날 학교에 갔는데 친구가 담배를 피고있어서 그 담배 이름을 보니 말보로였다. 근데 말보로중 보로에 영감을 받아 매 이름을 보로로 하기로 했다. 근데 우연의 일치인지 뜻이 치맛자락 이였다. 그래서 보로가 치맛자락처럼 부드러워서 그런 것이라고 우겼다.

그리고 팔에 매 올리기 훈련을 했다. 근데 5시간을 가만히 있어도 올라오지 않았다. 아버지가 할 때는 쉬워 보였는데 아무나 하는 게 아닌가 보다. 결국 팔에 매를 올리지 못하고 학교에 갔다 학교에는 내가 좋아하는 나예리라는 얘가 있다. 성격은 털털하고 얼굴 예뻐서 안 반할 수가 없다. 근데 걔도 나에게 관심이 좀 있는 것 같다. 기분이 좋았다. 학교가 끝나고 예리와 내 절친 똠양꿍을 매를 키우는 응방으로 대려갔다. 그리고 내 팔에도 못 올리는 매를 멀리서 구경 시켜줬다. 근데 예리가 좋아하는 것 같아 기분이 뿌듯했다. 그리고 열흘이 지났다.

아직도 팔에 못 올리고 있는데 이번이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팔을 뻗고 눈을 감았다. 근데 손이 갑자기 묵직해 지는 것이다. 성공한 것 이였다. 따뜻하고 묵직한 느낌이 났다. 너무 감탄스러워 눈물이 찔끔 낫다. 다음날은 드라마 촬영장으로 갔다. 이유는 드라마 사극에서 매를 찍고 싶어 하는 이유였다. 원래는 우리 동네에서 친구들이랑 놀려고 했지만 촬영비를 전부다 준다해서 할수없이 갔다. 그리고 촬영이 시작됬다. 매가 나는 것이 정말 멋졌다. 매들도 컨디션이 좋아서 ng 없이 쭉쭉 나아갔다. 촬영이 성공적으로 끝나고 집에 갈려고 할 때 아버지에게 욕을 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래서 그사람들한테 울분을 토해냈다. 그리고 아버지에게 말씀을 들였는데 칭찬을 해주셨다. 기분이 좋았다. 오늘은 크리스마스다. 그래서 오늘은 예리와 만나기로 했다. 커피숍에서 만나자고했는데 편의점에 가자는 것이다. 나도 커피숍보다는 편의점이 좋았다. 역시 우리 둘은 잘 맞는다. 근데 갑자기 전학을 간다고 인연을 끊자는 것이였다.

그리고 휭하고 떠났다. 속으로 나예리 계집얘라고 속으로 말했다. 다음날 엄마가 이혼서류를 가져왔다. 하지만 아버지는 망설이더니 결국 서류에 도장을 찍진 않았다. 그리고 마지막이란 생각으로 오토바이를 탓다. 그러다가 또 사고가 나 몸 여기저기 뼈가 뿌러지고 많이 다쳤다. 그리고 예리가 병문안을 와서 내 첫 키스를 뺏고 가버렸다. 그 다음으론 아버지의 하이라이트 신년회를 했다. 신년회에서 아버지가 보로의 장기를 자랑하고 신년회가 성공적으로 끝나자 보로를 날려 보내줬다. 처음엔 미워하던 매였는데 정이 들더니 날려보낼 때 코끝이 찡했다.

느낀점: 재미있었다.


아영

내 청춘, 시속 370km

by 가람 posted Jul 30, 2016
?

단축키

Prev

Next

+ - Up Down Comment Print
?

단축키

Prev

Next

+ - Up Down Comment Print

나는 원래 이렇게 가난하지 않았다. 원래는 아버지가 안정한 직장에 다녀서 아파트에도 살았는데 아빠가 매를 사냥하기를 시작하고 훈련을 할 때부터 우리는 아파트에서도 살지 못 할 정도로 가난해 졌다. 우리 아바는 매를 얼마나 좋아하는지 집안이 이렇게 힘든데도 엄마가 번 돈도 생활비에다가 쓰라고 준 돈인데 매의 먹이에다가 다 써버렸다. 그리고 가족보다 매가 항상 먼저다. 엄마는 이런 아빠를 보고 화가 나서 며칠 전 집을 나가 버렸다. 오는 나는 학교가 끝나가 마음이 너무 답답해서 야자시간에 몰래 학교를 내가 아는 어떤 형의 알바 집의 오토바이를 빌려서 전속력으로 달렸다. 하지만 달리다가 내가 안장에서 미끄러져서 교통사고가 나고 말았다. 나는 크게 다친 곳이 없었지만 신호 위반, 헬멧 불착용과 무면허로 인해 벌금이 30만원 이었다. 나는 보호자가 와서 벌금을 내야지 경찰서를 나갈 수 있다고 했다. 그래서 나는 아빠를 불렀다. 아빠는 와서 벌금을 내주기는커녕 내가 아빠는 아이 아니라면서 경찰서를 나가버렸다. 결국에는 삼촌이 와서 벌금을 내주었다.

우리는 밥 지을 사람도 없지만 돈도 없어서 보통 라면을 끓여먹는다. 처음에는 좋았지만 이제는 밥을 너무나도 먹고 싶다. 오늘은 특히 더 먹기가 싫어서 아빠에게 고기 좀 사달라고 짜증을 냈다. 원래와 다르게 아빠는 흔쾌히 그러자고 했다. 식당에 삼촌도 같이 갔다. 나는 왜 삼촌이 왔는지는 몰랐는데 조금 있으니까 알게 되었다. 삼촌이 아빠의 후계자였는데 삼촌이 그만두겠다고 한 것이다. 그래서 아빠는 실망감이 들었는지 술을 드시고 금방 취하셔서 주무셨다. 아빠가 주무시자 삼촌은 내가 후계자가 되라는 것이다. 내가 그 매 때문에 얼마나 차별을 받았는데 나보고 매를 좋아하고 훈련을 시키라니…….나는 죽어도 하지 않겠다고 했다. 나는 말을 그렇게 했지만 만약 내가 한다면 아빠와 더 가까워지고 아빠가 날 더 좋아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집에 가서 계약서를 써서 아빠에게 보여드렸다. 나는 아빠와 조금 더 친해 질 수 있다면 시도는 괜찮을 거라는 생각을 했다. 아빠도 좋다고 하셨다.

나는 아빠와 훈련을 시작했다. 내가 나의 매 보로라는 매를 훈련하게 되었다. 나는 과제를 받았는데 그것은 내가 말을 하면 보로가 내 팔 위로 올라오게 하는 것이다. 나는 수십 번을 시도 했지만 한 번도 성공한 적이 없었다. 나는 협박까지 해보며 올리려고 했지만 보로는 잘대로 올라오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시도를 해보았는데 보로가 올라온 것이다. 나는 이 기분을 절대로 잊지 못 할 것 이다. 집을 나가셨던 엄마께서 돌아오셨다. 엄마는 지금 식당에서 일하고 있다고 했다. 엄마는 내 팔위에 있는 매를 보시더니 표정이 영 안 좋았다. 그리고 엄마는 아빠의 표정과 태조를 보시고 실망하셨는지 밥만 차려주시고 가셨다. 하지만 아바는 아무렇지도 않아보였다.

오늘은 아빠, 아빠의 매, 마루가 방송국에 가서 촬영을 하는 날이다. 아빠는 나랑 같이 가고 싶으셨는지 내가 안 간다고 하자 출연료를 나에게 다 준다고 하셨다. 나는 많이 친해진 보로도 같이 데렸다. 촬영은 마루와 아빠의 완벽한 호흡으로 NG 하나 없이 무사히 끝났다. 촬영이 끝나고 집에 돌아가는 길에 어떤 아저씨들이 매와 아바에 대해서 모욕을 했다. 그래서 나는 아저씨 중 한 명에게 다가가 멱살을 잡으면 눈물과 울분을 토했다. 아바는 집에 가면서 아무 말도 없으셨다. 그래서 나는 아빠가 화가 나신 줄 알았는데 아빠는 나에게 고맙고 장하다고 말하셨다. 내가 아빠에게 처음 들어보는 말이었다. 나는 그 말이 너무 좋았다.

오늘 엄마는 집에 오셨는데 이혼 동의서도 같이 들고 오셨다. 그러고는 아바 앞에다가 두고 사인하라고 하시고 나에게는 엄마를 띠라오라고 하시고 그냥 집을 나가였다. 나는 아바와 한 계약을 지켜야 돼서 엄마를 따라서 갈 수 없다고도 말을 하지 못했다. 아빠도 마찬가지로 멍하니 있었다. 나는 할 수 없이 면허도 없는데 오토바이를 타고 엄마를 쫓아갔다. 엄마는 생각보다 멀리 있었다. 나는 전속력으로 달렸다. 마치 보로처럼 나는 것 같았다. 하지만 나는 미끄러져서 교통사고가 나고 말았다. 나는 다리, 손목, 팔이 부려지고 마리도 꿰맸다. 나는 엄마를 잡지는 못 했지만 이혼 애기는 조금이나마 미룰 수 있었다. 엄마와 아빠는 교대로 나를 돌보기로 했다. 낮에는 엄마가, 밤에는 아빠가 두 분이 볼 수 있을 때에는 딱 교대 할 때인데 나는 만나면 서로를 원수처럼 대할 것 같았지만 생각보다 다정했다. 항상 말을 거는 것은 아빠였다. 아빠는 항상 엄마에게 저녁은 먹었는지 등 안부를 물었다. 나는 이런 엄마와 아바의 다정한 모습을 볼 때마다 안심이 되었다.

오늘은 시연회가 있는 날이다. 오늘은 내가 보로를 날리는 날이다. 나는 무대에 올라가 보로를 날리는 것이다. 보로는 멋지게 밖으로 날아서 밖에 있는 먹잇감, 꿩을 잡아왔다. 성공이다. 보로가 날아오는데 처음으로 보로가 멋지다고 생각하게 되었고 보로와 하나가 되었다고 생각하였다.

오늘은 보로와 마루를 자연으로 보내주는 날이다. 내가 엄청 기다리는 날이었지만 마냥 기쁘지는 않았다. 아빠가 먼저 마루의 끈을 풀고 마루를 날렸다. 나도 아빠를 다라서 보로의 끈을 풀어주고 보로를 날렸다.

 

느낀 점: 재미있었다.


아영

용선생 8

by 가람 posted Jul 22, 2016
?

단축키

Prev

Next

+ - Up Down Comment Print
?

단축키

Prev

Next

+ - Up Down Comment Print

조선 후기 때 순조왕, 헌조왕, 철종왕은 농민들에게 세금을 많이 걷어서 괴롭혔다. 세금을 많이 걷는 이유 세 가지를 삼정이라고 한다. 삼정에는 군정, 전정과 환정이 있다. 군정은 군대를 안 가는 대신에 내는 세금이었는데 관리들은 군대를 원래 안 가도 되는 사람한테 군대를 안 가니까 내야 된다고 우겨서 내게 하고 그리고 만약에 친척이나 자신의 가족이 도망갔으면 그 사람들 것도 내에 했다. 전정은 땅에서 거둔 곡식에 대해서 내는 세금이다. 원래는 당연히 땅 주인이 내야 되는데 땅 주인이 자기가 더 권력도 있고 돈도 많다고 농민들에게 내게 했다. 마지막으로 환정은 가난한 백성들에게 돈을 빌려주는 돈인데, 관리들은 거기에다가 이자도 붙이고 또 빌리지도 않은 사람들에게 빌렸다고 하면서 돈을 받아냈다. 이렇게 관리들이 농민들을 괴롭혔으니 농민들은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농민들은 다 같이 힘을 모아서 시위를 했다. 그래서 농민들이 몰려드니 관리들은 어쩔 수 없이 농민들의 화를 진정시키기 위해서 세금 문제를 해결하는 삼정이청정이란 것을 만들었다. 농민들은 그제야 진정해서 안심하며 돌아갔다. 하지만 농민들이 진정하자 삼정이 청정에 서는 아무 것도 하지 않았다.

세금으로 농민들을 괴롭히는 것은 끝나지 않았다. 순조, 헌조, 철종이 온갖 방법을 써가며 농민들은 돈을 가져갔다. 흥선 대원군은 이것을 계속 지켜보다가 나라를 제대로 다스리겠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흥선 대원군은 왕이 될 수 없어서 어린 고종을 대신 왕 자리에 앉혀서 고종을 조종했다. 그는 처음에는 나라를 잘 다시리다가 그가 왕권을 너무 중요시해서 문제가 발생했다. 일단 경복궁이 손상이 갔을 때 돈도 부족했는데 나라가 모아두었던 돈과 세금을 엄청 걷어서 고쳤는데 이의 대해서 농민들은 불만이 많아졌다. 그리고 사원을 거의 없앴고, 또 양반도 군포를 내게 한 것에 대해서도 불만이 많아졌다. 이렇게 흥선 대원군이 양반 농민 모두에게 불만을 주었으니 그가 무사할 리가 없었다.

이 다음에는 관리들과 양반들이 농민들을 하도 못살게 해서 참지 못한 농민들은 일어나서 마을 고을들은 모조리 다 쫓아냈다. 농민들은 아무리 관리들에게 당했어도 절대로 권력을 잡으려고 싸움을 일으킨 것이 아니라 자신들 말고 다른 농민들을 위해서 싸웠다. 농민들이 얼마나 한이 맺었는지 나쁜 관리들은 잡아서 벌을 주고 심한 경우에는 감옥에도 가두었다. 관리들은 갑자기 많은 농민들이 몰려오자 겁이 났던지 관리들은 물러났고 그 덕분에 농민들이 승리했다. 조정에서는 농민들이 이기자 불안했던지 군대를 보냈다. 하지만 군대는 농민들보다 훨씬 수가 적어서 지고 말았다. 하지만 나라에서는 청나라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그런데 어쩌다가 일본도 도움을 주려고 와서 청나라와 일본이 조선에게 몰려왔다. 조정에서는 이렇게 많은 사람이 몰려드니 당황을 했던지 농민들에게 급히 화해를 요구했다. 요구를 하면서 농민들이 원했던 요구 사항 몇 가지를 들어주었다. 이 덕분에 농민들은 평화롭게 살 수 있었다. 하지만 이 평화는 오래가지 못했다.

느낀 점: 재미있었다.


아영

좋았던 일(수정)& 나빳던 일(수정)

by 가람 posted Jul 16, 2016
?

단축키

Prev

Next

+ - Up Down Comment Print
?

단축키

Prev

Next

+ - Up Down Comment Print

좋았던 일

1. 독일에서 처음으로 한국에 와서 언니, 오빠들을 보았을 때- 계속해서 보고 싶었고, 그리워했는데 봐서 좋있고 언니 오빠들이 반가워서

2. 독일 친구들이 깜짝 작별 파티를 해주었을 때- 전혀 기대하지 않았는데 해주어서 좋았고 재미있어서

3. 처음으로 핸드폰을 가졌을 때- 예전에서 부터 가지고 싶었는데 가져서

4. 독일에 정인이 언니와 정민이가 왔을 때- 많이 보고 싶었고 기다렸는데 만나서

5. 독일에서 시험을 잘 봤을 때- 잘 볼 거라고 생각을 하지 않았는데 점수가 잘 나와서

6. 시험 끝나서 친구들이랑 놀러 갔을 때- 시험이 끝난 것이 좋았고 친구들이랑 재미있게 놀아서

7. 배낭여행을 갔을 때- 처음으로 대기명당 언니, 오빠들과 함께 여행을 가는 것이라서

8. 독일에 연우가 왔을 때- 연우를 많이 기다렸는데 연우가 와서

9. 처음으로 삼성 폰을 가졌을 때- 계속해서 가지고 싶었는데 가져서

10. 처음으로 설빙을 먹었을 때- 처음으로 먹었는데 맛있어서

11. 학생부 엠티로 오션월드 갔을 때-오랜만에 가서 좋았고 언니,오빠들이랑 재미있게 놀아서

12. 독일에서 한국으로 오는 비행기 탔을 때- 한국에 있는 사람들을 만날 것이라는 기대를 많이 해서

13. 미얀마에서 포커를 이겼을 때- 처음으로 쳐서 이길 줄 몰랐는데 이겨서

14. 처음으로 영어로 대화가 가능 했을 때- 되게 답답했고 속상했는데 그게 풀려서

15. 한강 가서 라면 먹었을 때- 처음으로 한강에서 라면을 먹었는데 맛있어서

16. 독일에 오빠가 왔을 때- 오빠를 많이 보고 싶었고 그리웠는데 봐서

17. 독일에서 와서 처음으로 노래방 갔을 때- 독일에서는 못 가서 노래방이 오랜만이었는데 재미있어서

18. 방콕 호텔에서 수영했을 때- 조금 밖에 못해서 아쉬움이 남아서 더 재미있어서

19. 여름 방학식 때- 독일에는 여름 방학이 2달인데 긴 시간 동안 놀 생각에

20. 처음으로 혼자서 말을 탈수 있었을 때- 항상 실패했는데 성공을 해서 뿌듯해서

나빳던 일

1. 한국에서 독일 가는 비행기 탔을 때- 한국에 있는 사람들이랑 헤어지기 싫어서

2. 독일 친구들이랑 헤어졌을 때- 친구들을 다시는 보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해서

3. 미얀마 여행에서 아팠을 때- 여행을 하고 있는데 아파서 기분이 안 좋아서

4. 미얀마에서 버스를 오래 탔을 때- 자리가 좁았고 배가 고팠고 자고 싶었는데 자리가 불편해서 못 자서 짜증나서

5. 연우가 한국으로 돌아갔을 때- 재미있었는데 연우가 가서 아쉬웠고 연우를 그리워 할 생각에 슬퍼서

6. 오빠가 한국에 온다고 했다가 안 왔을 때-기대를 많이 했는데 안 온다고 해서 실망이 커서

7. 기말고사를 잘 못 봤을 때- 기대를 많이 하진 않았지만 이렇게 못 봐서 실망이 커서

8. 2G폰을 쓸 때- 2G폰으로 할 것이 없었고 스마트 폰을 쓰고 싶은 생각에

9. 피렌체 공항에서 5시간 기다리고 비행기가 그때도 뜨지 않아서 호텔에서 자야 되었을 때- 다음날 학교에 가야되는데 학교에 늦을 것이라는 걱정 때문에

10. 내 생일파티에서 애들끼리 싸워서- 생일파티 때 재미있게 놀 것이라고 기대를 했는데 애들끼리 싸워서 모두다 기분이 나쁘고 재미있지 않아서


아영

중국 여행

by 가람 posted Jul 16, 2016
?

단축키

Prev

Next

+ - Up Down Comment Print
?

단축키

Prev

Next

+ - Up Down Comment Print

난징

볼거리:

짱수성: 각종 유적지가 많다

영곡사구중국에서 꼭 가봐야 되는 곳이다. 국민당정부의 국부이다.

난장부자묘: 전통적인 건물이 많다. 난징에서 가장 멋진 곳으로 알려진다.

 

마카오

볼거리:

삼거리 회관: 서양풍 건물 양식으로 지어진 사원이다.

성로렌스 성당: 마카오의많은 성당중에 가장 오래된 성당이다.

까모에스 정원: 쉴 수 는 공간과 숲도 같이 이는 정원이다.

 

홍콩

볼거리:

빅토리아 산정: 산에 위치한 항구 이다.

해양공원:  놀이시설, 돌고래쇼, 케이블카가 있고, 동남아시아 최대규모의 수족관이 있고 오션파크도 있다.

피크타워와 픽크 갤러리아: 놀이기구와 핔크 탐험등을 할 수 있다.

 

상해

볼거리:

디즈니랜드: 놀이공원 이다.

신천지: 거리구경을 하러 가는 곳이다.  야경이 예쁘다.

주가각: 동양스러운 건물들이 많고 배도 타면서 구경을 할 수 있다.

 

난닝

볼거리:

인민공원: 중국공원이다.

양미고진:베트남 영사관이다.

 


Board Pagination ‹ Prev 1 2 3 4 5 6 7 8 Next ›
/ 8

나눔글꼴 설치 안내


이 PC에는 나눔글꼴이 설치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 사이트를 나눔글꼴로 보기 위해서는
나눔글꼴을 설치해야 합니다.

설치

Designed by sketchbooks.co.kr / sketchbook5 board skin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