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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얀마 여행계획

by 아람 posted Nov 20,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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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브르는 프랑스의 박물관인가?

by 아람 posted Nov 07,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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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브르는 프랑스의 박물관인가?

이보아 저 2015.11.7.토 유재현

루브르는 프랑스 박물

전 세계에선 많은 문화재 약탈의 역사가 있다. 먼저 그리스의 파르테논 신전 안에는 많은 조각상들이 있다. 이를 엘긴 마블스라고 부른다. 영국의 대영 박물관은 그리스의 엘긴 마블스를 빼돌리고 헐값에 사가면서 약탈을 해갔다. 그리고 몇 년 뒤 그리스는 엘긴 마블스의 반환을 요구하였다. 하지만 대영 박물관은 거부하였다. 그리고 그리스는 계속 반환을 요구하였다. 하지만 영국의 대영 박물관은 첨단 과학 시설을 내 세우며 그리스보다 더욱 잘 보존 할 수 있다며 거부하였다. 하지만 당시 그리스는 많은 돈을 쓰면서 박물관을 세우고 있었다. 그리고 대영 박물관은 파르테논 신전의 철심의 부패를 지적하였다. 하지만 그리스는 당시 파르테논 신전의 철심을 티타늄으로 바꾸는 작업을 하였다. 그리고 그리스는 계속 엘긴 마블스의 반환을 요구하였고 대영 박물관은 거부하였다. 그래서 그리스에서는 문화재 반환 운동이 시작되었다. 이것이 문화재 반환운동의 시초이다. 그리스는 아테네 올림픽 이전까지만이라도 반환을 해달라고 했지만 일부만 반환되었다. 프랑스의 루브르 박물관에는 전 세계의 문화재들이 전시되어있다. 심지어 우리나라의 문화재도 있다. 프랑스의 문화재 약탈의 역사 중에서 유명한 사람은 나폴레옹이다. 나폴레옹은 문화 제국주의를 내 세우며 전 세계의 많은 문화재를 약탈하였다. 대표적인 예로는 스핑크스의 수염이다. 나폴레옹이 이집트에 갔을 때 스핑크스와 마주하였다. 그러자 나폴레옹은 스핑크스가 거만하다며 스핑크스의 수염을 대포로 쏘아서 떨어트렸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이집트는 스핑크스 수염의 반환을 요구하였지만 프랑스는 거부하였다. 이렇게 문화재를 많이 약탈한 사람은 또 있다. 바로 히틀러이다. 히틀러의 어릴 적 꿈은 화가였다. 그래서 화가가 되려고 시험을 보았는데 떨어졌다. 그래서 정치의 길로 들어간 것이다. 그래서 히틀러는 자신이 지나간 나라나 도시의 많은 명화나 조각품등 문화재들을 쓸어갔다. 히틀러가 지나간 곳은 문화재를 찾기 힘들 정도로 히틀러는 많은 문화재를 약탈하였다. 히틀러도 처음에는 문화재를 그리 많이 약탈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명화들을 가져오는 특수부대를 편성하여 문화재를 약탈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문화재들은 소금광산에 보관하였다. 소금광산은 소금이 습기를 흡수하여 그림들을 보관하기 적절하였다. 일제도 일제강점기에 우리나라의 많은 문화재를 약탈하였다. 일본이 우리나라에게 약탈한 문화재의 총 수는 36천점에 달한다. 일제의 문화재 약탈의 중심에는 이토 히로부미와 조선 총독부가 있다. 이토 히로부미는 일본인에게 고려청자와 같은 문화재를 5원에 팔았다. 그리고 이러한 활동을 조선 총독부가 발 벗고 도와주었다. 그래서 우리나라도 일본에게 문화재 반환을 요구하였지만 일본은 거부하였다.

느낀 점: 재미있었다

  • profile
    마리아 2015.11.10 18:53
    각나라의 역사나 문화재를 알고 있으면 여행할때 박물관에 가도 재미있겠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하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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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심득

by 아람 posted Oct 31,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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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심득

위단 저 2015.10.31.토 유재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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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장 천지인의 길

학교에 있는 선생님들 중에는 위엄 있게 이리해라 저리해라 하는 선생님이 있다. 하지만 이러한 행동은 공자의 가르침과 맞지 않다. 공자는 자신이 아무리 높아도 아랫사람의 입장이 되어서 아랫사람과 말하라 했다. 그리고 공자는 가난해도 즐겁게 살고 부유해도 예를 지키며 사는 것이 천지인의 길이라고 했다. 그리고 하루는 공자의 제자가 좋은 나라가 되려하면 무엇이 있어야 하는 지 물었다. 그러자 공자는 강성한 군대와 부유한 식량과 백성들의 신뢰가 있어야 한다고 하였다. 그러자 공자의 제자가 한 가지를 포기해야 한다면 무엇을 버려야 하냐고 묻자 공자는 강성한 군대를 포기해야 한다고 하였다. 그리고 공자의 제자가 또 한 가지를 포기해야 한다면 무엇을 포기해야 하는지 물었다. 그러자 공자는 부유한 식량을 포기하라고 했다. 이와 같이 나라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백성들의 신뢰이다. 그리고 진정한 성현은 거만을 떨거나 정색을 하고 말하지 않는다.

2장 마음의 길

사람이 살면서 마음은 큰 작용을 한다. 같은 일을 하여도 낙관적인 사람의 행동과 비관적인 사람의 행동은 확연하게 차이가 난다. 대표적인 예는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컵에 물이 반이 남았을 때 사람들의 생각이다. 낙관적인 사람은 물이 반이나 남았네. 라고 생각 할 것이고 비관적은 물이 반 밖에 남지 않았네. 라고 생각할 것이다. 세상을 살면서 불합리한 일들은 많이 일어난다. 이때 공자는 긍정적인 생각을 하면서 빨리 잊으라고 한다. 그러면 삶이 행복해 질 것이라고 하였다.

3장 처세의 길

우리는 친한 사람일수록 그 사람의 모든 것을 다 알려고 한다. 하지만 아무리 친한 사람이라고 해도 자신의 모든 것을 다 알려주고 싶지만은 않다. 그래서 아무리 친하다고 해도 약간의 거리를 두라고 공자는 말한다. 그리고 공자는 듣기 좋은 말만 하지 말라고. 한다. 왜냐하면 듣기 좋은 말만 하는 사람 중에서 어진 이가 드물다고 하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공자는 일상생활에서의 예절, 말할 때의 예절을 중시하였다. 한 사람만이 지키는 예절이 아니라 서로 서로 예를 갖추는 것 말이다.

4장 군자의 길

군자는 공자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인격의 기준이다. 공자는 군자가 되려면 자신을 돌이켜 보았을 때 부끄러운 것이 없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군자는 의리에 밝고 소인은 이익을 밝히고 군자는 덕을 생각하나 소인은 땅을 생각하고 군자는 형벌을 생각하나 소인은 혜택을 생각한다. 그리고 군자는 긍지를 갖되 다투지 않으며 사람과 어울리나 편을 갈라서 싸우지 않는다. 그리고 군자는 말보다 행동이 앞서야 한다. 우리의 마음속에는 누구나 군자가 있다. 그리고 군자가 되는 법은 누구나 할 수 있다. 그러므로 군자는 누구나 될 수 있다.

5장 교우의 길

공자는 정직한 친구, 성실한 친구, 견문이 넓은 친구를 사귀라고 한다. 그리고 아부를 잘 떠는 친구, 겉과 속이 다른 친구, 말만 번지르르한 친구를 사귀지 말라고. 한다. 하지만 다른 사람을 보면 저 사람이 좋은 사람인지 그른 사람인지 알 수 없을 때가 많다. 그래서 공자는 인의 마음으로 남을 사랑하고 배려하면서 변별능력을 키워 좋은 친구와 사귀라고 한다. 그리고 공자는 친구와 말할 때, 끼어드는 것과 내 차례가 되었을 때 말을 안하는 것과 상대방의 안색을 살피지도 않고 말을 내뱉는 것을 하지 말라고. 한다. 좋은 친구를 사귀는 것은 스스로 가장 의좋은 세계를 열어 놓고 자신의 삶에 광천을 비추는 것과 같다고 공자는 말한다.

6장 이상의 길

공자는 자기 행동의 부끄러움을 알고 사방에 사신으로 가서 임금의 명령을 욕되게 하지 않는 것이 진정한 사()라고 한다. 그리고 시비를 가리지 않고 자기 언행만 관철시키려하는 것을 소인의 태도라고 하였다. 하루는 공자가 동방의 외진 마을에 가서 살고 싶다고 하자 어느 이가 그런 누추한 곳에서 어떻게 사시려고요? 라고 물어보았다. 그러자 공자는 군자가 거처하는 데 무슨 누추함이 있겠느냐! 라고 말했다. 이는 두 가지로 해석 된다. 하나는 군자는 화려한 곳에 있든 누추한 곳에 있든 상관이 없다는 것과 군자는 누추한 곳을 환하게 비추어 변화 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느낀 점: 재미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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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윈 지능

by 아람 posted Oct 25,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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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윈 지능

최재천 저 2015.10.25.일 유재현

진화론 그 간결미

1800년대 가장 인류사의 영향을 미친 두 인물이 태어났다. 찰스 다윈과 아브라함 링컨이다. 다윈이 없었더라면 우리는 진화론을 알지 못했을 것이고 아브라함 링컨이 태어나지 않았다면 노예해방이 늦어지거나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미국에서 가장 위대한 인물 투표를 했다. 그 결과 다윈이 7위를 하였다. 우리나라에서 이 투표를 하면 다윈은 100위 안에도 못들 것이다. 그 정도로 우리나라 사람들은 다윈과 진화론에 대하여 관심이 없다.

자연 선택의 원리

20세기만 하여도 과학계에선 물리학이 최고였고, 생물학은 무시당했다. 하지만 지금은 거의 대등하게 인정받는다. 박테리아를 계속 배양 시킬 수 있으면 36시간만 지나면 지구 전체를 덮을 수 있다. 하지만 계속 배양 할 수 없는 이유는 에너지를 공급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모든 생물은 계속 유전자를 전달하면서 진화한다. 사람을 예로 들자면 계속 해서 아이를 낳으면서 유전자를 전달한다. 그 상황에서 점진적으로 진화가 일어난다.

돌연변이 맹신의 허점

모든 생물은 변이를 하여서 진화를 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돌연변이가 중요한 진화 조건이라고 맹신한다. 돌연변이가 진화 조건이 아닌 것은 아니다. 하지만 맹신하는 것에 문제가 있다. 진화는 대부분 점진적으로 느리게 일어난다. 하지만 동연변이에 의한 진화는 급진적으로 빠르게 일어나는 것이다. 그러므로 돌연변이를 맹신하는 것에는 문제가 있다.

변이 변화의 원동력

뉴스에서 흰 옷 입은 천사들이 새들을 생매장하는 것은 이제 우리에게 익숙해졌다. 매년 뉴스에서는 조류 인플레 인자에 대해서 보도한다. 그리고 조류 인플레인자의 대한 모든 혐의를 철새에게 돌린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철새가 조류 인플레 인자를 가져오는 것은 맞다. 하지만 철새들은 조류 인플레인자로 인해서 죽는 새가 고작 한 두 마리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닭장속의 닭들은 한 마리만 감염 되도 모두 감염되어 죽는다. 그 이유는 이러하다. 사람들은 닭들을 알 낳는 기계롤 만들었다. 모두 유전자를 개조해서 다 같은 유전자를 가진 닭들로 만든 것이다. 그래서 모두 다 죽은 것이다. 어떤 병원에서 잘생긴 얼굴의 유전자 개발을 했다고 발표하니 그날 병원의 홈페이지는 방문하는 사람이 많아서 마비되었다. 만약 모두가 잘생긴 유전자를 받으면 닭장 속의 닭처럼 되지 않겠는가?

진화의 도박 유전적 부동

남방 코끼리 바다표범은 전 세계에 24마리만 남아있었다. 하지만 환경보호단체의 노력으로 현재는 3만 마리로 수가 늘어났다. 하지만 이 바다표범들은 유전적인 위험에 처해있다. 3만 마리의 바다표범의 조상은 모두 24마리의 바다표범이다. 이때 24마리가 모두 특정 질병에 취약하다면 3만 마리는 모두 그 질병에 취약할 것이다. 그러므로 유전자의 다양성은 매우 중요하다. 이 바다표범의 문제를 해결할 방법은 돌연변이가 생기는 것이다. 이를 유전적 부동이라고 한다.

적응과 자연 선택

진화적 적응은 자연선택이 아니면 일어나지 않는다. 다윈은 파리지옥 군락을 발견하였다. 그리고 파리지옥을 연결하였다. 그 이유는 식충식물의 진화적 적응의 비밀을 알아내기 위해서이다. 하지만 다윈은 식충식물의 진화적 적응의 비밀을 다 밝혀내지 못했다.

완벽한 진화는 없다

자연 선택 생물체는 완벽 할 수 없다. 그 이유는 두 가지가 있는 데 첫 번째는 환경이 불안정해서이다. 대표적인 예로 지구온난화가 있다. 그리고 둘째는 여러 가지 제약을 받는다. 대표적인 제약은 유전적 제약이다. 인간이 완벽한 생물체가 되려면 최소한 날개는 있어야 한다. 하지만 예로부터 인간은 날개가 없었다. 그러므로 날개가 생길 수 없다. 이를 유전적 제약 혹은 역사적 제약이라고 부른다. 이러한 이유로 인해서 완벽한 자연선택 생물체는 없다.

눈먼 시계공

리처드 도킨스는 자연의 생물들을 성계한 사람이 있다면 그는 눈먼 시계공일 것이라고 했다. 왜냐하면 완벽한 설계를 해서 완벽한 생계와 완벽한 생물들을 만들어야 하지만 눈먼 시계 공처럼 불안정하고 완벽하지 못한 생태계와 생물을 만들었다. 하지만 그럴 수 밖에 없다. 왜냐하면 세포들은 한입으로 두말을 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칼슘은 뼈를 부쳐 주는 좋은 역할을 한다. 하지만 나이가 들면 심질환을 일으키는 세포로 바뀐다. 이러한 이유로 자연을 설계한 사람은 눈먼 시계공일 수 밖에 없다.

느낀점: 생물학에 대하여 깊게 알 수 있어서 좋았고 재미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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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선생의 시끌벅적 한국사 10

by 아람 posted Oct 17,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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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선생의 시끌벅적 한국사 10

글 금현진 그림 이우일 2015.10.17.토 유재현

대한민국 정부가 세워지기까지

일본이 세계대전에서 지고 조선은 해방을 맞이 하였다. 그리고 나라의 주권을 찾기 위하여 여운형 외 15명이 건국 준비 위원회라는 것을 세웠다. 이를 줄여서 건준이라고 한다. 건준은 인민공화국이라는 정부를 세웠지만 미국과 소련이 한반도에 들어와서 한반도를 38선을 기준으로 반으로 나누고 신탁통치를 하였다. 그리고 사회주의와 자본주의의 사상의 차이로 좌우익이라는 세력이 나뉘었다. 그리고 좌익과 우익은 계속 싸웠다. 좌익은 북으로 가서 김일성이 조선 인민 민주주의 공화국이라는 나라를 세우고 우익은 남으로 가서 이승만이 대한민국이라는 정부를 세웠다. 이렇게 통일 정부는 세워지지 않았다.

전쟁의 시련 속에서

남과 북에 정부가 세워지고 김일성은 전쟁을 준비하였고, 이승만은 북을 점령하겠다고 이야기만 하였다. 그리고 1950625일 새벽에 북한군이 쳐들어 왔고, 이승만은 바로 피난을 갔다. 그리고 이승만은 라디오로 시민들에게 자기의 자리를 잘 지키라고 하였다. 그래서 사람들은 피난을 가지 않았고 이승만 정부는 북한군이 내려오지 못하게 하려고 한강의 다리를 폭파시켰다. 이로 인해서 사람들은 피난을 가지 못하였고 북한군은 전쟁이 시작된 지 얼마되지 않아서 서울을 점령하였다. 그리고 북한군은 계속 내려왔다. 그래서 북한은 점점 전투력이 떨어지고 한국은 계속 유엔군이 들어오면서 전투력이 높아졌다. 그리고 인천상륙작전에 성공하면서 전세는 역전되었다. 그리고 계속 올라가다가 중국군의 개입으로 다시 내려왔다. 그리고 38선 근처에서 계속 싸우다가 1953년에 휴전을 하였다.

전쟁의 상처를 딛고, 가난과 독재를 넘어

6.25전쟁 이후 한국은 매우 가난해졌다. 그래서 미국은 구호물품을 보내주었다. 미국이 구호물품을 보내 준 이유는 그 떄가 냉전시대여서 한국은 자본주의 세력으로 만들기 위해서이다. 그리고 당시 보내 준 구호물품이 밀가루가 대부분이였는데 당시 밀가루는 미국에서 잘 안팔리는 물품이였다. 그래서 미국은 잘 팔리지 않는 물품을 처리하면서 동시에 구호물품까지 보내주는 상황이였다. 이로 인해서 한국을 미국을 닮고 싶은 대상, 즉 동경의 대상으로 바라보았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영어를 공부하기 시작하고 미국식 옷이 유행하기 시작하였다. 그 당시에는 민주주의가 뿌리내리지 않았다. 그 틈을 타 이승만은 온갖 부정부패를 저지르면서 독재를 하였다. 그 결과 이승만은 12년 동안 대통령을 하게 되었다. 이로 인해서 많은 사람들은 시위를 하게 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시위를 하게 되자 결국 이승만은 대통령직에서 물러났다. 이를 4.19혁명이라고 부른다.

민주주의의 새벽을 기다리며

4.19 혁명이후 장면이 총리로, 윤보선이 대통령을 하였다. 그 당시 법이 총리가 거의 모든 일을 다 하도록 되어 있었다. 그래서 장면이 거의 모든 일을 다 하였다. 그러던 중 박정희가 쿠데타를 일으켰다. 그리고 쿠데타는 성공하였고 박정희가 권력을 잡았다. 이를 5.16군사 정변이라고 한다. 박정희는 경제개발을 최우선으로 여겼다. 박정희는 경재개발을 위하여 먼저 일본과의 국교를 재개하였다. 왜냐하면 보상금을 받기 위해서이다. 하지만 일본은 발뺌을 하였다. 하지만 박정희는 일본과의 국교를 재개하였고, 보상금을 받았다. 하지만 그 보상금이 제값을 매긴 보상금이 아니었다. 그리고 위안부와 같은 경우는 일본에게 사과도 받지 못했다. 그리고 베트남에 군대를 보냈다. 그 이유는 두가지 이다. 하나는 외화를 벌기 위해서이고, 하나는 미국과의 관계발전이다. 그리고 박정희는 헌법을 바꾸고 부정선거를 하면서 계속 독재를 하였다. 그래서 사람들은 계속 시위를 하기 시작하였다. 시위는 계속되었고, 박정희가 피살되면서 독재는 끝났다.

경제 개발의 빛과 그림자

한국은 공장을 세우고 처음에는 경공업과 같은 산업으로 수출을 하면서 돈을 벌었다. 그리고 1980년대에는 중화학 공업으로 돈은 벌었다. 경공업이 중화학 공업으로 바뀌면서 돈을 버는 규모가 커졌다. 이는 한국의 교육수준이 높아졌다는 소리이다. 그러면서 경제성장을 이루었다. 벌어들인 외화로 고속도로와 철도를 세우고 고층빌딩을 세웠다. 그러면서 한국의 경제수준은 매우 높아졌다. 이를 한강의 기적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한강의 기적 뒤에 숨겨진 땀방울이 있었다. 대표적인 예로 전태일을 들 수 있다. 당시 1960년대에는 근로자들의 환경이 매우 열악하였다. 일년에 2번만 쉬고 매일 14~17시간씩 일하였다. 그러던 중 전태일은 근로기준법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근로기준법을 지키라고 요구했지만 전태일을 위험한 인물이라고 하며 내쫒았다. 그래서 전태일은 평화시장 한복판에서 분신자살하였다. 그리고 새마을 운동이 시작되면서 농촌의 삶의 질이 향상되었다. 하지만 많은 농촌의 사람들이 도시로 왔다. 그래서 농촌에는 늙은이와 아이밖에 남지 않았다. 그리고 청년들 사이에서 남자는 장발, 여자는 미니스커트가 유행했다. 그러나 경찰은 이를 단속하였다.

국민의 힘으로 민주화를 쟁취하다

박정희 이후 전두환이 다시 독재 정치를 하기 시작하였다. 당시 광주에선 대규모 시위가 일어났다. 전두환은 이를 무력으로 진압하기 시작하였고 급기야 총을 꺼내들어서 발포하였다. 이로인하여 수천명이 죽거나 다쳤다. 하지만 정부는 광주에서 빨갱이를 잡았다고만 하고 이를 감추려고 하였다. 하지만 점점 이 사실이 들어나기 시작하였다. 그래서 학생들이 시위를 하기 시작하였다. 그래서 정부는 학생들을 잡아서 고문하였다. 그리고 19876월부터 9월까지 대규모 시위와 파업이 일어났다. 이로 인해서 전두환은 물러났고 이를 6월 민주항쟁이라고 한다. 그리고 사람들의 소득이 늘어나면서 중산층이 늘어나게 되었다.

느낀 점: 재미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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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선생의 시끌벅적 한국사 9

by 아람 posted Oct 10,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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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선생의 시끌벅적 한국사 9

글 금현정 그림 이우일 2015.10.10.토 유재현

식민지 조선 하늘 아래서

조선은 일본의 식민지가 되었다. 일본은 조선에 조선 총독부를 세우고 조선 총독부가 조선을 통치하도록 하였다. 조선 총독부는 조선에 헌병을 풀어서 조선인들을 감시하였다. 헌병은 조선 사람들을 정식 재판 없이 마음대로 처분 할 수 있었다. 그래서 헌병은 별 잘못을 저지르지 않아도 그들의 비위에 거슬리면 벌을 줄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학교에선 일본어 수업과 일본의 지리 수업 일본의 역사 수업을 하였다. 조선의 학교에는 일본인이 대부분이었다. 그리고 조선 총독부는 토지를 조사하기 시작하였다. 그 이유는 세금을 물리기 위해서이다. 그리고 주인이 없는 땅은 헐값에 일본인에게 팔았다. 그리고 세금은 날이 갈수록 올라가고 일본인들은 조선이들에게 헐값에 쌀을 샀다.

온 땅에 울린 대한 독립 만세의 함성

조선 총독부는 조선 사람들이 모이는 것도 금지시켰다. 독립 투쟁을 막으려는 것이다. 하지만 조선 사람들은 헌병의 눈을 피해서 모이며 독립 투쟁의 의지를 키워 나갔다. 그 중심에는 한용운과 같은 33인의 민족 대표가 있었다. 그리고 고종이 죽었다. 33인의 민족 대표는 고종의 장례식으로 사람들이 모일 때 대한 독립 만세를 외치기로 하였다. 그리고 31일 사람들이 모여있을 때 대한 독립 만세를 외쳤다. 이 만세 운동은 6월 까지 이어졌다. 그리고 상하이의 대한민국 임시 정부를 세웠다.

문화 정치 조선인을 분열시키다

3.1 운동 이후 조선 총독부의 새로운 총독이 들어왔다. 총독은 3.1 운동을 보고 무력으로는 조선을 지배 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다른 방법을 하였다. 문화를 이용하는 것 이었다. 총독은 우두머리에 있는 조선인들을 친일파로 만들었다. 예로는 이광수가 있다. 이광수는 시인이면서 독립운동가이다. 이광수는 33인의 민족 대표에 속해있었지만 친일파가 되었다. 우두머리의 사람이 친일파가 되면 아래 사람들은 저절로 일본에 복종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여러 지식인들이 친일파가 되었다. 그리고 창씨 개명을 하였다. 창씨 개명이란 자신의 이름을 일본식으로 바꾸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창씨 개명을 하지 않으면 기차도 못타고 보험도 들 수 없고 취직도 못하게 하였다. 그래서 창씨개명은 100% 달성하였다.

저항의 목소리들이 터져 나오다

사회주의가 나타났다. 그러면서 사회주의를 주장하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하지만 사회주의자 나 자본주의자나 둘의 공통된 목적은 독립이었다. 많은 지식인들이 친일파가 되었지만 친일파가 되지 않은 지식인들도 많이 있었다. 이들은 독립운동을 계속 하고 있었다. 그리고 순종이 죽었다. 일본은 3.1 운동 때와 같이 되지 않게 하려고 경찰을 도로에 배치하였다. 그리고 순종의 장례식 많은 사람들이 거리에 나왔다. 그리고 만세 운동을 하였다. 이때는 사람들이 대한 독립 만세라고 외치지 않고 일본인 교사에게 배우지 말자 일본인을 위해 일하지 말자 일본인 공장에 다니지 말자 여자라고 차별하지 말자와 같은 말을 소리쳤다.

화려하고도 허망한 도깨비 경성에서

조선은 1920년 이후부터 사람들의 모습이 바뀌기 시작하였다. 양복을 입는 사람들이 늘어났고 한복도 점점 간소화 되었다. 그리고 여자들은 단발머리와 파마머리를 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서양의 옷차림을 따라 하는 것이 유행이 되었다. 그리고 백화점이 세워졌다. 백화점은 경성여행의 필수코스가 되었고 사람들은 카페에 앉아서 커피를 마시기 시작하였다. 하지만 이것은 일부만의 삶이다. 경성에 사는 많은 사람들은 돈이 없어서 노숙을 하거나 집 같지도 않은 집에서 살아갔다.

일본의 침략 전쟁에 모든 것을 빼앗기다

일본은 조선인들을 이제 일본 사람으로 만들려 했다. 조선말을 쓰는 것을 금지시키고 학교에서도 일본말만 쓰게 하였다. 조선말을 쓸 경우에는 혼나기도 하고 심지어 맞기 까지도 하였다. 그리고 매일 아침 조선인들은 천왕의 백성으로서 일본의 충성을 다한다는 맹세문을 외웠다. 그리고 일본은 2차 세계대전을 일으켰다. 그로 인해서 일본은 많은 연료와 식량이 필요했다. 그러므로 국가 총동원법 이라는 법을 실시하였다. 조선의 모든 국민들은 돈을 바치고 징병되거나 징용되었다. 징용은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다 되었다. 그리고 10~19세의 여성은 위안부로 끌려갔다.

힘을 모아 해방의 날을 준비하다

일본이 조선말을 금지시켰지만 조선의 지식인들은 굴하지 않았다. 그리고 임시 정부는 상황이 좋지 않았다. 우두머리 이었던 이승만이 미국에 가서 애국 후원금을 받았지만 그것을 임시정부로 보내지 않고 자신이 다 써버렸던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이봉창 의사와 윤봉길 의사는 독립의 대한 의지로 폭탄을 던졌다. 이봉창 의사는 실패하였지만 윤봉길 의사는 성공하였다. 그리고 조선 의용대라는 것을 만들어서 일본군과 싸우기도 하였다. 그리고 마침내 일본이 2차 세계대전에서 항복을 하면서 해방되었다.

느낀 점: 재미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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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리아 2015.10.13 16:11
    요약을 잘 했네ㅎㅎ 잘 읽었어

재현

용선생의 시끌벅적 한국사8

by 아람 posted Oct 10,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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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선생의 시끌벅적 한국사8

글 금현진 그림 이우일 2015.10.10.토 유재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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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성들의 분노가 터져 나오다

정조가 죽고 나이가 어린 순조가 즉위하면서 권력의 공백이 생겼다. 이때부터 철종까지 세도 정치가 시작되었다. 세도가들은 온갖 부정부패를 저질렀고 세도가들에게 돈만 주면 수령이 될 수 있었다. 세도 정치가 시작되면서 토지를 담당하는 전정 군역을 담당하는 군정 농민들의 구제기관인 환곡 이렇게 삼정이 문란하게 되었다. 전정은 온갖 잡새를 붙이고 군정은 갓난아이와 죽은 사람에게도 세금을 물리고 환곡은 이자를 올렸다. 이러한 상황에서 1962년 진주에서 일어난 봉기를 시작으로 전국적으로 봉기가 터지듯 일어났다.

나라를 개혁하고 외세를 거부한 흥선 대원군

고종이 즉위하면서 흥선 대원군이 통치를 하였다. 그리고 흥선 대원군은 여러 가지 개혁을 했다. 우선 삼정인 전정 군정 환곡을 정리하고 서원을 철폐하였다. 서원은 성현들에게 제사를 지내고 선비들이 모여서 공부를 하는 곳이지만 조선 후기가 되면서 많은 세금을 갉아 먹었다. 그리고 병인년 조선의 바다에 프랑스의 함대가 등장을 해 프랑스는 조선과 무역을 하기 위해서 왔지만 조선은 항구를 열어주지 않았다. 그래서 조선은 프랑스와 싸웠다. 그리고 신미년 미군과 싸우고 미군이 물러 간 후 흥선 대원군은 척화비를 세워서 외세를 거부하였다. 그리고 고종이 직접 통치하기 시작하였다.

나라의 문을 열고 개화 정책을 펴다

고종은 조선을 통치하면서 개화 정책을 추진하였다. 고종은 일본과 조약을 맺고 항구를 열어주었다. 그리고 조선은 곧 미국과 영국 독일 러시아 프랑스 등의 여러 나라에도 항구를 열고 교류를 시작하였다. 군대에서는 신식무기들이 들어오고 일본인 교관이 훈련을 하였다. 한편 구식 군대는 차별받았다. 13개월이나 돈을 받지 못하고 14개월째에 한 달 치 봉급을 받았는데 그마저도 쌀과 모래가 섞여 있는 것이었다. 그래서 구식군대는 반란을 일으켰다 .이를 임오군란이라고 한다. 군사들은 한양을 차지했지만 한 달 만에 끝났다.

조선 새로운 세상을 꿈꾸다

군수들이 부정부패를 저질러서 농민들은 힘든 삶을 살고 있었다. 그러던 중 농민들이 일어나서 군수를 쫒아내었다. 그리고 전봉준이 이끄는 동학농민운동이 일어났다. 동학 농민군은 보국안민을 내세우며 일어났다. 동학 농민군은 전라도 일대를 차례대로 점령해 갔다. 동학 농민군은 나쁜 관리를 붙잡아 벌주고, 억울하게 옥에 갇혀있는 백성들을 풀어주고, 무기창고에서 새 무기를 얻었다. 한양에서는 신식 군대를 보내었지만 동학 농민군이 이겼다. 그래서 조정에서는 청나라에게 군사를 보내 달라고 하였다. 청나라가 온다고 하자 일본도 온다고 하였다. 조선 땅을 노리고 있었던 일본과 청나라는 옳다구나 하고 온다고 하였다. 이 소식을 들은 동학 농민군은 그만 싸움을 멈추자고 하였다.

대한제국이 세워지다

청일 전쟁에서 일본이 승리하자 서양의 강대국들의 시선을 일본으로 쏠렸다. 일본은 조선을 독차지 하려고 하였으나 러시아의 간섭으로 인하여 독차지하지 못했다. 고종과 왕비 민 씨는 러시아랑 친하게 지내면서 일본을 내쫒으려고 하였다. 그러던 중 왕비 민 씨가 일본에게 살해당했다. 그리고 일본은 러시아와 친하게 지내려는 세력을 내쫒고 새 정부를 꾸렸다. 일본은 조선인들의 상투를 잘랐다. 고종은 러시아 공사관으로 패했다. 그리고 1년 후 고종은 다시 돌아와서 자주 국가인 대한제국을 선포하였다.

나라의 주권을 잃다

1904년 러일 전쟁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1905년 일본의 승리로 러일 전쟁이 끝났다. 러일 전쟁에서 러시아가 짐으로써 대한제국은 일본의 간섭을 받게 되었다. 그리고 1905년 이토 히로부미가 조선에 와서 조약문에 서명을 하라고 강요를 하였다. 여기서 8명 중에서 5명이 서명을 하였는데 이들은 을사오적이라고 부른다. 을사오적은 친일파로써 일본에게 귀족 호칭을 받았다. 이 조약을 을사조약이라고 한다. 이로 인해서 조선의 외교권은 사라졌다. 그리고 헤이그 특사가 만국 평화회의에 가서 이야기를 해 보려고 했지만 조선은 외교권이 없으므로 입장하지 못한다고 했다. 그래서 만국 평화회의장 앞에서 강자만의 평화를 회의 한다고 비판을 해서 외국 신문의 실리기도 하였지만 소용이 없었다. 그리고 백성들이 무기를 들고 반란을 일으키기도 하였지만 소용이 없었다. 결국 1910년 나라의 주권을 상실하였다. 일본은 이를 한일 병합이라고 하지만 조선의 사람들은 경술년에 국가가 치욕을 입는다는 뜻으로 경술국치라고 부른다.

느낀 점: 7권 까지는 다 학교에서 배우는 것 이여서 새로운 것을 얻는다는 느낌이 없었는데 이번 것은 학교에서 배우지 않은 것이 여서 새로운 것을 얻는


재현

팝콘을 먹는 동안 일어나는 일

by 아람 posted Sep 14,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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팝콘을 먹는 동안 일어나는 일

김선희 2015.9.12..유재현

꿈꾸는 자를 제거하라

지금 우리의 사회는 정보 사회이다. 정보화의 관한 시스템이 잘 되어 있으면 있을수록 감시는 더욱 심해진다. 우리의 주변에는 수많은 cctv들이 우리들을 감시하고 있다. 그리고 연애인의 경우에는 많은 기자들이 다른 사람들의 알권리를 내세우며 연애인들의 모든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고 사람들에게 알리고 있다. 하지만 알권리라 해도 사생활을 침해 할 수는 없다. 여기서 감시의 목적은 정치적 사찰과 통제가 아니라 상업적으로 추구되는 돈이다. 현대 대중문화 속에서 상업화된 관음이 우리 자신을 타인에 대한 감시자로 만든다. 트루먼 쇼를 보면 트루먼은 모두에게 속는다. 트루먼의 주의사람들은 모두 연기자이다. 트루먼의 삶은 조작된 것이고 다른 사람들은 트루먼의 삶을 보면서 즐긴다. 이 충격적인 사실을 트루먼이 알면 어떻게 될 것이가? 과연 이 피해에 대한 가해자는 누구인 것인가? 이 영화는 한 개인에 대한 감시가 상업적인 차원에서 어떻게 이루어지고 또 정당화되는가를 보여 준다. 도대체 무엇 때문에 누구를 위해서 어떤 감시가 이루어지는가? 트루먼 쇼는 이 문제의 대한 답을 대중문화의 상업적 관음 차원에서 발생한다고 내린다.

진화하는 욕망, 신화가 된 소비

여러 고급 자동차 광고를 보면 고급 자동차를 가지고 있으면 성공한 것으로 표현된다. 그리고 고급 아파트도 마찬가지이다. 이러한 것은 고급차를 타고 고급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을 특별한 존재로 묘사하기 위한 전략이다. 그리고 이런 경향은 우리 사회에서 유독 강하게 나타난다. 그러므로 우리 사회의 고급차 소비자들은 고급차 광고가 만들어둔 이미지를 돈을 주고 사는 것이다. 그러므로 고급차는 사회적 신분을 상승하고자 하는 우리 사회의 욕망이다. 우리는 다른 사람과 내가 다르게 보이고 싶어서 혹은 개성있게 보이고 싶어서 와 같이 차이에 대한 욕망때문에 명품을 소비하려 한다. 이렇게 차이에 대한 욕망을 위해서 명품과 같은 것을 소비하는 것을 과시적 소비라 부른다. 이러한 과시적 소비는 우리 사회에서 빈번히 일어나고 있다.

개인주의자 배트맨은 어떻게 공동체를 구원하는가?

배트맨은 사회 질서나 이념들을 위하여 악당을 물리치는 것이 아닌, 부모에 대한 어두운 기억들로 인하여 악당을 제거한다. 이러한 것으로 보았을 때 배트맨은 영웅이 아닌 고독한 복수자일 뿐이다. 그리고 여러 가지 각도에서 봤을 때 배트맨은 개인주의자의 가깝다. 배트맨의 행동이 사회에 참여한다는 점에선 개인주의자가 아니지만 배트맨은 사회 전체를 관통하는 법 밖에 서있다. 그리고 그의 행동은 사적인 복수에 의해서 실행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는 스스로의 법을 세워서 그 법을 따른다. 그러므로 스스로 악인을 심판하고 문제를 해결 한 뒤 살아가는 개인주의자이다. 그리고 개인주의와 반대되는 공동체 주의가 있다. 공동체 주의는 사회의 이득이 개인의 이득보다 앞선다고 본다. 배트맨의 마지막 부분에는 조커가 하나의 실험을 한다. 두 개의 배가 있고 그 배는 강을 지나고 있다. 이 배에는 폭탄이 설치되어있다. 그리고 하나의 배에는 범죄자들이 타고 있고 또 다른 배에는 시민들이 타고 있다. 그리고 각각의 배에는 다른 배를 폭파 시킬 수 있는 기폭 장치가 있고 그 기폭 장치를 누르면 자신의 배는 폭파하지 않는다. 그리고 12시까지 서로 기폭 장치를 누르지 않으면 두 개의 배 모두 폭파하지 않는다. 그리고 배에서 누군가가 강으로 뛰어 들어 탈출하려 한다면 그 배는 폭파한다. 여기서 두 개의 배는 모두 기폭장치를 누르지 않는다. 자신이 살 수 있었음에도 그렇게 하지 않은 것은 양심 때문이다. 이러한 양심으로 모두가 이득을 봤지만 만약 개인의 양심으로 인해서 자신의 배가 폭파한다면 어느 쪽이 선인 것일까?

느낀점: 합숙 때 목사님이 이 세상에는 선과 악이 분명하지 않고 모호해서 구별하기가 힘들다 라는 말을 하신 적이 있는데 이 말이 이 책에도 나와서 신기하였고 재미있었다.

  • profile
    성실 2015.09.16 10:59
    아람이 목사님 말씀을 잘 기억하고 있어 이 책이 더욱 재미있었구나~ 덕분에 나도 재미있었어^^

재현

과학의 천재들

by 아람 posted Sep 05,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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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의 천재들

앨런 라이트먼 저 2015.9.5..유재현

과학의 천재들

호르몬 윌리엄 베일리스와 어니스트 스탈링 (1902)

19세기 중반 독일의 생리학자 카를 루트비히는 키모그래프라는 장치를 발명하였다. 키모그래프는 기록장치로 심장이나 동맥 내장 등의 생체활동을 기록하고 종이에 기록한다. 19021월 런던대학에서 두 과학자는 키모그래프를 이용하여 실험을 하고 있었다. 이 두 과학자가 윌리엄 베일리스와 어니스트 스탈링이다. 베이리스와 스탈링은 둘 다 여성 과학자이다. 당시 시대에는 여성 과학자가 흔하지 않았다. 베일리스와 스탈링은 개의 소장에 식염수와 염산을 넣는 실험을 하고 있었다. 그러던 도중 개의 소장 벽에 어떤 화학물질이 분비되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그 화학물질에 대해 연구하기 시작하였다. 이 화학물질은 소장에 분비되어서 이자액의 분비를 촉진시킨다. 그리고 염산을 빼도 화학물질은 계속 분비되어 이자액의 분비를 촉진시킨다. 그리고 화학물질은 수분 동안 계속 분비된다. 베일리스와 스탈링은 이 화학물질을 자극하다’ ‘동작을 개시하다는 뜻의 그리스어 ‘hormon'에서 따 호로몬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호로몬은 신경과 비슷한 작용을 한다. 하지만 신경과 다른점은 신경은 백만분의 일 초만에 전달이 되지만 호로몬은 수분동안 계속된다. 비유를 하자면 신경은 100미터 달리기 선수이고 호로몬은 마라톤 선수이다. 그리고 베일리스와 스탈링은 호로몬에 관하여 논문을 발표했다. 호로몬의 대한 논문은 양자의 대한 논문과는 달리 난해하지도 않고, 개념적으로 읽기도 쉽다. 베일리스와 스탈링은 유명한 여성과학자의 대표적인 예이다.

특수상대성이론 알버트 아인슈타인 (1905)

아인슈타인은 평범한 특허청의 직원이다. 어느 연구소의 연구원도 아니고 평범한 직장인 이였다. 그러한 가난한 사무원은 스물여섯살 때 학계를 뒤집을만한 놀라운 논문을 한 편도 아닌 다섯 개를 발표하였다. 특수상대성이론은 시간의 대한 개념을 완전히 바꾸었다. 특수상대성이론을 정리하면 이렇다. 1초가 모두에게 같은 1초가 아니라는 것이다. 어느 한 시계로 측정한 1초는 빠르게 움직이는 1초보다 짧다는 것이고, 실험으로 증명이 되었다. 특수상대성이론은 이러한 것이다. 시간이 완전히 일치하는 A. B 두 개의 시계가 있다. A의 시계는 정지해 있고 B의 시계는 V의 속도로 움직이고 있다면 1초 뒤 엔 B의 시계는 (V/C)2 초만큼 느리게 흐른다. 여기서 C는 광속이다(초속 299,727km) 무명의 특허청 직원의 이러한 논문은 학계를 뒤집었다. 아인슈타인은 특수상대성이론의 방정식을 전기역학인 맥스웰-헤르츠 방정식에 대입을 하였다. 하지만 이 부분은 지렁이 같은 수식들 밖에 없어서 뭔 소리를 하는지 모르겠다.

항생제 알렉산더 플레밍 (1929)

플레밍이 한참 연구를 할 때에는 유럽에 페스트가 퍼져있었다. 페스트는 14세기에 흑사병이라고도 불렸다. 제일 중요한 것은 페스트는 약이 없다. 그래서 페스트로 인하여 가장 많이 죽은 사람들은 의사들이다. 페스트에 걸리면 혹과 같은 염증이 나고 고름이 생기고 7~8일이 죽으면 대개 죽는다. 14세기에는 페스트로 인하여 유럽 인구의 4분의 1 2500만 명이 죽었다. 당시 플레밍은 배터랑 생물학자였다. 플레밍의 성격은 다른 사람과 잘 어울리지 못하고 말을 잘 하지 못한다. 이러한 성격은 양자의 관한 논문을 쓴 플랑크와 대조된다. 그리고 플레밍은 연구실을 잘 치우지 않는다. 그로 인해서 위대한 발견을 할 수 있었다. 어느 날 플레밍은 흥미로운 것을 발견하였다. 포도상구균을 배양한 배양액에 곰팡이가 폈다. 그런데 그 곰팡이 근처에 있던 포도상구균은 모두 죽었다. 그리고 이 곰팡이는 시간이 지나자 색깔이 변하더니 액체가 된다. 플랑크는 이 사실을 흥미로워하며 연구를 시작하였다. 플랑크는 이 액체를 페니실린이라고 이름 지었다. 페니실린은 20도에 배양했을 때 가장 빨리 번식하고 37도에 배양했을 때 번식하는 속도가 가장 느리다. 페니실린은 물로 끓여도 죽지 않으며 150도의 열로 압열했을 때 파괴 된다. 페니실린은 많은 세균들을 죽인다. 그 중에서 화농성구균을 가장 잘 죽인다. 화농성구균은 고름이 생기고 염증이 나는 애들을 말한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페니실린은 부작용이 없다. 당시의 약들은 부작용이 매우 심했다. 그런데 페니실린은 부작용이 없는 것이다. 플레밍은 페니실린의 관한 논문을 발표했고 이로 인해서 페스트를 치료 할 수 있었다.

느낀 점: 생물학의 관한 것은 알아들을 수 있어서 재미있었고 물리학에 관한 것은 알아듣는 것도 있고 수식 때문에 뭔 소리를 하는지 모르겠는 것도 있었지만 재미있었다

  • profile
    성실 2015.09.10 00:25
    아람이 요약을 아주 잘 하네~ 흥미롭게 읽었어^^
    지렁이 같은 수식! 재미있는 표현이야 ㅋㅋ

재현

자연의 지배자들

by 아람 posted Aug 22,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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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의 지배자들

이재열 저 2015.8.22..유재현

흰개미와 석굴암

흰개미는 자연에서 나무 분해자이다. 지렁이가 땅을 뒤엎어 땅을 비옥하게 만드는 것처럼 흰개미도 나무를 갉아먹어 물질 순환에 큰 도움을 주고 있다. 흰개미는 우리나라 토착생물이 아닌 목재 속에 함께 섞여 들어온 도입 해충의 하나이다. 이처럼 한 생물이 다른 생물에 붙어서 같이 들어오는 것을 수반이동이라고 한다. 흰개미는 미생물과 공생 관계를 맺어 살아가는 독특한 생활양식을 보여준다. 흰개미의 뱃속에는 여러 가지 미생물이 살고 있다. 그리고 흰개미가 나무를 먹으면 미생물은 나무의 주성분인 섬유소를 분해하여 영앙분을 만든다. 그리고 흰개미는 그것을 에너지원으로 쓴다. 흰개미는 자신의 공생 미생물을 다음 세대에 주어서 나무에 구멍을 내고 살아 갈 수 있다. 흰개미가 알에서 나오면 그 개미는 공생 미생물이 없다. 그래서 다른 개미는 알에서 나온 개미에게 자신의 배설물을 먹인다. 그러면 알에서 나온 개미의 배에는 공생 미생물이 정착을 한다. 흰개미들의 집은 완벽한 온도조절 장치가 있다. 그것은 바로 40cm나 되는 벽과 흐르는 물줄기 굴뚝같은 구멍들로 인해서 바깥 날씨에 상관없이 쾌적한 생활을 할 수 있다. 그리고 석굴암도 이 흰개미의 집과 같은 구조로 만들어졌다

토끼는 왜 자기 똥을 먹을까?

사자와 호랑이 같은 육식동물들은 아무리 굶주려도 풀을 먹지 않는다. 하지만 초식동물들은 풀을 먹을 수 있다. 그 이유는 장의 구조와 미생물 덕분이다. 초식동물들은 위가 4개이다. 그리고 위와 장에는 풀을 분해 할 수 있는 미생물이 수십까지나 있다. 그리고 그 양도 매우 많다. 배양액과 거의 같은 정도로 1ML1010제곱의 양만큼 미생물이 들어있다. 그리고 되새김질을 하면서 풀을 소화시킨다. 이렇게 풀을 소화 시킬 수 있는 것이다. 되새김을 하는 동물은 새끼가 태어났을 때 많은 양의 침을 흘려줌으로써 미생물을 넘겨준다. 날다람쥐원숭이도 새끼가 태어나면 검은 콩 모양의 배설물을 새끼에게 준다. 그럼으로써 새끼에게 많은 미생물이 넘어간다. 토끼도 맹장에 섬유소를 분해 할 수 있는 미생물을 많이 가지고 있다. 그래서 가끔 자신의 배설물을 먹어서 빠져나간 미생물을 보충하기도 한다. 이렇듯이 우리에게 보이지 않는 곳에서 미생물 간의 공생관계는 매우 많이 일어나고 있다.

느낀 점: 재미있었다.


재현

여름 웍샵을 마치며_아람

by 유카이 posted Aug 09,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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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웍샵을 마치며

2015/08/08 아람 유재현

 

 

이번 여릅웍샵에선 핑계, 학교 공부 등을 배웠습니다. 이 둘다 기억에 남는데 핑계에 대해서 더 잘 기억에 남습니다. 우선 핑계가 자기정당화란 것을 알았고 핑계에 종류에 대해서 알았습니다. 그리고 제가 핑계를 많이 대는 사람이란 것을 알았습니다. 충격적이었습니다. 저는 핑계를 대지 않고 당당한 줄 알았는데 착각에 빠진 것이었습니다. 핑계에 대한 강의가 끝나고 핑계대지 말자고 다짐했습니다. 다짐하고 계속 다짐했습니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에도 다짐하고 다짐했습니다. 그리고 오전 1250분 쯤 4층 청소를 하는데 연속으로 두 번이나 핑계를 댔습니다. 그 순간 너무 창피하고 쥐구멍에 숨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계속 다짐하고 의식하면서 다녔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많이 나아졌습니다. 지금은 내가 잘못을 하면 우선 머리에선 핑계가 떠오르는데 그걸 억누르고 죄송합니다. 미안하다. 미안해 라고 말하는 정도입니다. 이젠 앞으로 더욱 당당한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그리고 학교공부에서 우선 수학은 실력이 매우 향상되었습니다. 지금 2학기 중간고사를 봐도 80점 이상 받을 수 있는 정도입니다. 그래서 기분이 좋습니다. 그리고 영어는 목사님이 알려주신 방으로 주어 동사 찾고, 전치사 동그라미 후 명사 나오면 괄호달기, 접속사 나오면 네모치고 대괄호 열기 등을 했는데 신세계를 보는 듯 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방법으로 문장을 읽었더니 정말 잘 읽혔습니다. 이제 영어를 잘할 수 있는 방법을 알았다 생각하니 기분이 좋았습니다. 그리고 역사, 과학은 교과서 요약, 암기를 했는데 우산 교과서 요약실력이 늘었습니다. 목사님이 알려주신 부호를 이용해서 요약을 하는 방법 덕분인 것 같습니다. 지금 역사는 2학기 중간고사 부분의 80~90%를 외웠고, 과학은 2학기 부분을 다 외웠습니다. 그래서 기분이 좋습이다. 이제는 학교공부를 무리해서 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그리고 동우형과 함께 아침식사 준비를 했습니다. 작년 여름까지만 해도 빵, 계란, , , 시리얼이 아침식사였는데 저번 겨울웍샵부터 밥을 먹었습니다. 저번 겨울에는 김치찌개만 매일매일 먹었습니다. 그리고 이번 여름웍샵에는 여러 가지 종류의 요리를 하였습니다. 소고기 무국, 김치찌개, 미역국, 오뎅탕, 파볶음밥, 계란밥 등등이 있습니다. 이로 인해 저의 요리 실력이 늘었습니다. 그래서 기분이 좋습니다. 그리고 다시한번 느꼈는데 요리는 정말 즐겁습니다. 이제 다음 겨울웍샵에는 다른 메뉴들을 알아와서 시도를 해야겠습니다. 이번 여름웍샵의 아침식사 준비를 하면서 반응이 좋아서 기분이 좋습니다. 그리고 운동을 갔다온 뒤 먹는 시원한 파워에이드의 맛이 아직도 기억납니다. 정말 기분좋은 맛이죠, 그리고 파워에이드를 마신 후, 이불 위에 누운 다음 선풍기를 틀고 잠을 자면 정말 기분이 좋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잠을 자다가 가끔씩 빨래를 늦게 한 적이 있는데 그걸 고쳐야겠습니다. 그리고 2주째 일요일 날 다같이 암살이라는 영화를 볼려고 했는데 수련회 주니로 못 봤습니다. 정말 아쉬웠고 퇴소를 하면 볼 예정입니다. 그리고 주일과 일과가 끝난 후에는 정니이 누나와 진아와 함꼐 오 나의 귀신님이라는 드라마를 보았습니다. 그리고 느낀 것은 박보영은 정말 예쁜 것 같습니다. 그리고 복싱장에서 처음으로 에어컨을 틀어주셨습니다. 풍산 봉식장은 여름에 가면 가만히만 있어도 땀이 납니다. 그런 곳에서 운동을 하면 땀으로 샤워를 합니다. 그런 상황에서 에어컨을 틀어주셨는데 정말 시원했습니다. 앞으로 이번 여름 합숙은 기억이 많이 날 것 같습니다.

  • profile
    맑은 2015.08.10 00:55
    아람아~!!!
    잼나게 읽었어.
    요리하는 것이 재미있다니~~~ 그리고 그렇게 다양한 요리를 해먹었다니 ~~~
    정말 멋이쓴걸.
    멋지게 성장하는 재현이 보는 재미가 쏠쏠한걸~^*^
  • profile
    빌립 2015.08.10 23:05
    아람이가 키만 큰 줄 알았는데, 모든 게 부쩍 자랐구나^^
  • profile
    사랑 2015.08.12 15:08
    열심히 산 아람이의 땀과 노력의 흔적이 보인다.
    엄마들도 아침 챙겨주는 일이 어려운데, 이것저것 메뉴를 고민하며 식단을 짜고
    일찍 일어나서 먹이는 수고를 해준 아람에게 참으로 고맙다.
    지금 느끼고 배우고 살아가는 일들, 특히 핑계를 대지 않고 살아가는 일을 계속하면
    아람이는 정말 멋진 청년으로 자랄거라 믿는다. 고맙다. 잘 지내줘서....
  • profile
    성실 2015.08.19 13:44

    멋진 아람아~ 고맙다^^

    핑계를 대고 있는 자신에게 충격이었고 다짐, 다짐, 또 다짐했다는 말이 인상적이다. 

    이모는 어른이 되어 예가교회에 와서 알게 되었거든;;ㅎㅎ 

    다양한 요리로 대기명당의 아침을 열어줘서 또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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