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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호

제목-붕어빵에도 족보가 있다. 지은이-윤덕노 2013년 4월 5일 유지호

by 고백 posted Apr 05,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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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붕어빵에도 족보가 있다. 지은이-윤덕노 201345일 유지호

 

찐빵

일본사람들은 오랫동안 고기를 먹을 수 없었다. 7세기 덴무 일왕이 가축 도살을 금지했을 뿐만 아니라 고기도 먹지말라는 육식 금지령을 선포한 이후 1200년동안 일본인은 고기를 먹지 않았다. 일본 사람들이 다시 고리를 먹게 된 것은 1872년 무렵으로 메이지 유신을 단행한 메이지 일왕이 육식 금지 조치를 헤제하면서부터다. 찐빵은 일본에 육식 금지가 착실히 이루어질 무렵인 1341년에 중국인 임정인이 류잔산사를 딸라 일본에 온 때였다. 임정인은 고향에서 먹었던 것처럼 고기 만두를 팔수 없어서 일본사람이 좋아하는 단팥을 넣어 만두를 빚었는데 이것이 지금 일본 찐빵인 나라만주의 원조다.

붕어빵

모 라디오 방송국에서 우리나라 사람들이 겨울철에 자주 먹는 간식으로 어떤 것이 있는지를 조사한 적이 있다. 결과는 붕어빵을 가장 많이 먹는 것으로 조사 됐고 그 다음이 어묵, 호빵에 순서이다. 붕어빵은 과거 동양에도 없었고 서양에도 없었던 식품이니까 어느날 갑자기 누군가가 아이디어 상품으로 붕어빵을 개발해 팔아서 큰돈을 벌었을 것 같지만 진화론으로 풀어보면 붕어빵은 환경변화에 적응하며 진화한 식품이고 족보가 있다. 많은 논란이 있지만 붕어빵에 원조를 일본에 도미빵에서 찾는 사람들이 많다. 일본에서는 도미가 가장 좋은 생선으로 쳐주기 때문에 일본 서민들에게 인기가 좋았다. 붕어빵도 마찬가지다 예전 서울에서는 붕어를 많이 먹었기 때문에 이름도 붕어빵이라고 지은 것이다. 우리나라 붕어빵은 일본 도미빵을 모방해 만든 것으로 보이지만 사실 커다란 차이가 있다. 붕어빵은 기본적으로 풀빵이라 밀가루 반죽을 묽게 풀어서 빵을 굽는다. 그러나 일본 도미빵은 밀가루 반죽에 계란 설탕등 갖가지 재료가 들어간다. 그래서 가격도 비싸서 붕어빵 정도에 가격을 생각한 사람들에게는 상당히 비싸게 느껴진다. 붕어빵과 도미빵은 이렇게 비슷한 것 같으면서도 다른 측면이 있다.

쫄면

면발이 잘 끊기지 않을 정도로 질긴 국수를 매콤하고 새콤한 양념에 비벼 먹는 국수가 쫄면이다. 국수가 하도 쫄깃쫄깃해 이름까지 쫄면이라고 지었는데 은근히 중독성마저 있어 분식집이나 대형 식품매장 음식코너의 인기 메뉴 중 하나다. 국어사전에도 등재된 우리 국수지만 쫄면은 사실 잘못 만들어진 국수다. 쉽게 말해 공장에서 실수로 생긴 불량품이다. 쫄면의 고향은 인천인데 냉면을 만들다가 가느다란 사출기가 아닌 두꺼운 사출기를 끼워 냉면 국수 대신 굵은 국수가 나온 것이다. 이 국수들은 전량 폐기 처분해야 하는 상황이었는데 공장 옆에 있던 분식집이 불량 국수를 가져다가 채소와 새콤달콤한 고추장 양념으로 비벼서 쫄면이라고 내놓은 메뉴가 학생들 사이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끌며 입소문이 퍼진 것이다.

시험을 앞둔 수험생에게 가장 많이 주는 선물이 엿이다. 엿처럼 철썩 붙으라는 뜻에서 합격을 소원하며 엿을 선물한다. 지금도 수능 시험이 다가오면 엿이 불티나게 팔린다. 옛날 한양으로 과거 보러 떠나는 시골 유생의 괴나리 봇짐 속에는 엿이 필수품으로 들어 있었다. 길가다 요기를 하라는 뜻도 있지만 엿 먹고 과거에 급제하라는 소원도 담았다. 옛날 사람들은 엿에다 다양한 소망을 담았다. 조상들은 설날이나 정월 대보름 아침이면 엿을 먹는 풍속이 있는데 그냥 엿을 먹는 것이 아니라 소원을 빌면서 먹었다. 정월 초하루나 대보름에 먹는 엿을 복엿이라고 했는데 복 엿을 먹으면 살림이 엿가락처럼 늘어나 부자가 된다고 믿었다.

 

느낀점-그냥 어느날 갑자기 생긴 것 같은 음식들에 역사를 알수 있어서 좋았고 재미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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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맑은 2014.04.09 17:07
    난 찐빵과 붕어빵 좋아하는데~~~그런 역사가 있었구나~!!! 잼난데~~~

지호

제목-폰트의 비밀 지은이-고바야시 아카라 2014년 3월 29일 유지호

by 고백 posted Mar 29,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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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폰트의 비밀 지은이-고바야시 아카라 2014329일 유지호

 

유명 브랜드는 브랜드만에 고품격을 갗추고 있습니다. 과연 그것은 어디서 배어나오는 것일까요? 루이비통은 푸투라라는 폰트로 되어있습니다. 이 폰트의 특징은 o가 거의 동그랐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냥 푸투라 체로 루이비통을 쓰면 어딘가 이상합니다. 안정감도 없으며 고급스럽지도 않습니다. 자세히 보면 루이비통에 로고는 글자와 글자 사이에 간격이 넓어서 권위 스럽게 느껴집니다.

르코코 시대 이후의 활자 서체 중에도 동판 인쇄 계열의 스타일을 도입한 것이 있습니다. 지금의 패션 잡지를 장식하는 것이 대부분 이러한 폰트입니다. 패션 잡지들은 디도체나 보도니 체를 많이 씁니다. 이러한 폰트의 공통적인 특징은 글자 하나하나가 개성적이라기보다는 비교적 표준적인 형태를 지니고 있다는 것입니다. 가는 곳은 매우 가늘게 보이는데 이를 통해 글자의 섬세함이 표현되어 세련된 연출을 돋보이게 합니다.

컴퓨터를 사면 몇종류의 폰트가 운영체제에 들어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폰트는 무료일까요? 대체로 os나 소프트 웨어 제조사는 사용자가 자신들의 툴을 여러 가지 용도로 사용 할 수있도록 사전에 폰트를 준비하여 넣어줍니다. 여기서 폰트의 개발 비용은 라이선스 형테로 os제조사에서 폰트 개발자에게 지급합니다. 애플사는 스티브 잡스의 정책 답게 아름다운 폰트를 골라서 탑재하는 방침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예로 헤르만 차프씨가 제작한 라이노 타입사의 폰트이자 최근의 베스트셀러인 스크립트체 잡피노가 있습니다.

저는 왜 여러 종류의 폰트가 있는가, 그리고 그것을 어떻게 분류하는가에 대한 주제로 세미나를 개최한 적이 있습니다. 로마체를 처음보는 사람들과 저는 폰트를 보고 거의 똑같은 인상을 받았습니다. 컴퓨터를 사용할 정도로 어른이 되면, 아니 초등학교 고학년 정도만 되어도 그동안의 경험을 바탕으로 이런장면에서는 보통 이럴 것이다 라는 짐작이 가능합니다. 바꾸어 말하면 디자인 지식이나 경험이 풍부하지 않더라도 외형적인 판단만으로 폰트의 사용법을 알 수있다는 뜻입니다. 이점은 매우 중요합니다. 옷을 잘모르는 사람이라도 관공서에서 입는 옷과 등산 할 때 입는 옷이 다르다는 것은 알겠지요. 이러한 생각과 절차를 알고 있다면 비즈니스 프레젠테이션이나 보고서를 작성할 때 거기에 어울리는 차분한 분위기의 폰트를 고를 수있습니다. 반대로 초등학생의 소풍이나 운동회 안내문 같은 경우는 익살스러운 폰트로 해야겠지요. 친한 사람을 부르는 초대장같은 경우는 손글씨 풍인 폰트를 골라 친밀한 느낌을 주면 좋겠지요. 사람들은 폰트를 어떻게 고르냐고 물어보지만 폰트는 그냥 기능과 외형만 고르면 됩니다.

 

느낀점-폰트의 종류가 정말 많다는 것을 알았고 폰트의 이름도 멋있는 것이 많았다. 사람들이 글을 쓸 때 진지하니까 궁서체로 쓴다고 많이들 하는데 그 이유를 알게 되어서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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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맑은 2014.04.05 10:54
    나도 고백 덕분에 새로운 것을 알게되었네~^*^

지호

제목-난쟁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지은이-조세희 2013년 3월 22일 유지호

by 고백 posted Mar 22,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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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쏘공.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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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아버지를 난장이라고 불렀다. 사람들은 옳게 보았다. 아버지는 난장이였다. 불행하게도 사람들은 아버지를 보는 것 하나만 옳았다. 그 밖의 것들은 하나도 옳지 않았다.

통장이 이걸 가져 왔어요.” 내가 말했다. 그러자 어머니는 그게 뭐냐고 물었다. 그것은 철거 계고장이었다. 여동생 영희는 입주권을 팔꺼냐고 물어보았지만 영호가 안판다고 하였다. 그러나 우리는 아파트를 입주 할 돈도 없었다. 우리는 갈때가 없었다. 영희는 소리를 내며 울었다. 나는 명희에게 공장에 나가지 않기로 약속을 했다. 그러나 온 가족이 공장에 나가게 되었는데 그러자 명희가 나를 만나주지 않았다. 마음이 오히려 편했다. 아버지는 서커스 일을 하겠다고 하셨고 우리에게는 학교만 나가라고 하셨다. 입주권 가격이 점점 올랐다. 아침에 십칠만원 했던게 저녁에는 십팔만 오천원이 되었다. 그리고 어느날 영희는 없어졌다. 주정뱅이는 비행접시가 납치해 갔다고 하였지만 터무니 없는 소리였다. 그리고 입주권을 25만원에 팔았다. 우리는 고기를 구워서 마지막 식사를 했다. 그리고 쇠망치를 든 사람들에게 문을 열어주고 짐을싸서 집을 나왔다.

큰오빠는 우리 집을 짓는데 천년이 걸렸다고 했다. 어머니는 나에게 순결을 중요하게 생각하라고 했지만 나는 우리집을 산 사람에 차를 타고 가고 있다. 나는 그의 집에서 알몸으로 잠을 잤다. 매일 우리 가족의 꿈을 꾼다. 엄마는 빨리 집으로 돌아오라고 하지만 나는 그럴때마다 이 남자에 있는 금고에 있는 입주권을 가지고 돌아간다고 대답한다. 나는 그의 금고에서 우리의 것을 꺼냈다. 그의 금고 속에는 돈과 권총과 칼이 들어 있었다. 나느 돈과 칼을 꺼내서 택시를 탔다. 나는 집으로 돌아왔는데 우리 집은 없어졌다. 아버지가 일하는 공장 사람들이 어떤 아주머니를 찾아가라고 하셨다. 나는 훔친 입주권으로 임대아파트 입주 신청을 했다. 내가 살던 온 동네에 집이 살아졌다. 난장이와 난장이의 부인, 난장이의 두아들, 그리고 난장이의 딸이 살아간 흔적은 거기에 없었다. 넓은 공터만 있었다.

 

느낀점-책이 이해가 잘 안되었다. 갑자기 주인공이 바뀌는데 바뀌었다고 말도 안해주었다. 여러 가지에 이야기가 있지만 지금 기억나는 건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공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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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호

제목-세상을 보는 눈1 지은이-정호근 외 2013년 3월 8일 유지호

by 고백 posted Mar 08,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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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세상을 보는 눈1 지은이-정호근 외 201338일 유지호

 

나는 누구일까? 늘 우리가 스스로에게 던지는 질문이다. 그래, 도대체 내가 누구란 말인가 이질문에 누구라도 속시원하게 답할 수는 없겠지만 어쨌든 여기에 답을 하려고 곰곰이 생각하다 보면 결국 내가 어떻게 살아 오늘에 이르렀는가 하는 나의 기억의 문제로 귀결된다. 그렇다면 기억은 도대체 어떤 현상인가? 여기에 대해 심리학자나 의학자, 생물학자들이 많은 연구를 거듭하고 있지만 그 신비한 현상의 일부만 알아냈을 뿐 전모는 여전히 베일에 가려 있다. 사람의 기억은 그렇게 단순하고 기계적인 것이 아니다. 만일 인간이 살아오면서 겪은 모든 기억의 요소들을 하나도 잊지 않고 기계적으로 기억한다면 그것이야말로 불행의 원천이 된다. 이것이 왜 불행한가는 실제로 엄청난 기억력을 가진 사람들에 사례를 보면 알수 있다. 수학에 나오는 파이의 값을 기억할 것이다. 여러분 같으면 소숫점 이하 몇자리까지 기억할 수 있겠는가? 토모요리라는 일본 사람은 소숫점 이하 4만 자리를 외웠는데 그것을 읊어대는 데에만 17시간이 걸렸다고 한다. 그보다 더 유명한 사람은 러시아의 셰레셰프스키라는 사람이다. 그에게는 칠판 하나 가득히 의미 없는 숫자를 쓴후 그가 한번 휙 둘러보고 그대로 그것을 외워대는 정도는 기본이었다. 문제는 이런 실험을 하고 1년이 지난 뒤에도 여전히 그 칠판 위에 숫자를 외우고 있다는 점이다. 오늘날에 사람들은 정보를 문학 작품보다도 매스 미디어의 영향이 극대화 되어 가는 것으로 보인다. 사람들은 역사 드라마를 즐겨 본다. 이런 드라마들은 시대사를 전공하는 역사가의 해석을 곧이곧대로 따라 만드는 것도 아니다. 이 드라마 제작에 큰 영향력을 미치는 것은 시청률이다. 그래서 의미없는 사건과 인물을 부풀리기도 한다. 그렇지만 일반인들에게는 가장 중요한 역사 인식의 소재가 되기 때문에 역사를 잘못 인식하는 경우가 있다.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일반대중들의 역사 인식 형성에는 여러 다양한 매체들이 작용하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최종적으로는 역사인식을 담당하는 전문가 집단 내에서 가장 심층적인 논의가 이루어진 다음에 일반 영역으로 흘러나온다. 그러나 이 세계를 들여다 보면 이제 분위기가 확 달라진다는 점을 깨닫게 될 것이다. 역사가들마다 스타일이 다르겠지만 호방한 필치로 전세계의 역사를 재단하고 그로부터 우리 삶의 의미를 바로 이끌어내는 따위의 일을 하는 역사가들은 거의 없다. 역사가들의 일은 엄청나게 방대함으로 그 어떤 역사가도 모든 시대,모든지역, 모든 사건을 다 다룰수는 없다. 그래서 역사가들도 전문화 하게 되는 것은 당연한일이다. 그래서 역사가들은 시대를 중심으로 나누기도하고 연구하는 지역에 따라 나누기도 하고 주제를 중심으로 나누기도 한다. 그러나 이 전문 역사가들이야 말로 정말 객관적인 연구를 하는 것일까? 그렇지는 않다. 이들이 그좁은 세계 속에서 작업하는 것은 그 자체가 흥미로워서라기 보다는 자신이 주장하려는 큰 테제를 구체적인 영역에서 확인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자신이 쌓은 실증의 힘을 무기로 삼은 역사가들은 논쟁의 장이 마련되면 마치 검투사들처럼 맞대결한다. 그리고 많은 권력의 주체들이 자신이 원하는 바대로 역사를 꾸미려고 한다. 역사를 놓고 벌어지는 이러한 다툼은 역사학계 대중매체들 교과서 등에서 치열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그야말로 역사를 위한 투쟁, 즉 우리의 기억을 자기 방식으로 꾸미려는 투쟁이 벌어지는 것이다. 그 결과 우리에게는 여러 종류의 강제된 역사 기억들, 즉 신화화된 역사들, 거짓된 역사 인식이 강요되게 마련이다. 그런것들에 휘둘리게 되면 방향감각을 상실하고 만다. 우리는 그런것들을 예리하게 꿰뚫어보는 능력을 키워야 한다. 만일 역사학의 본질이 무엇인가를 묻는다면 그것은 곧 우리가 누구인가를 성실하게 묻는 일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의 삶이 어ᄄᅠᇂ게 해서 오늘에 이르렀는가를 묻고, 또 그 질문을 제대로 된 질문인가, 그 질문을 하는 이유가 무엇인가를 다시 묻는 것까지 역사학의 몫이다. 역사는 영원한 의심이며 인간에 대한 영원한 물음이다.

 

느낀점-한 챕터를 읽었는데 마치 한권에 책을 읽은 것 같은 느낌이다.


지호

올해 처음으로 보드를 탔습니다

by 고백 posted Mar 06,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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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바람을 느끼며 보드를 타는데 엄청~~추웠어요 ㅋㅋㅋ 그래도 완전 재미있었어요 히히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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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맑은 2014.03.06 21:05
    와우^*^ 멋지다. 지호의 용감성이 참으로 부럽소이다.
    난 가슴이 선들거려서 가까이 가지도 못하는데~~~
    경이롭소이다~^*^
  • profile
    큰열매 2014.03.07 01:56
    짱 멋지다. 지호야 반함 반함 반함 반함 반함 반함 반함 반함이야 ^^
    이 멋진 사진은 누가 찍은 거야? 궁금해 궁금해궁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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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백 2014.03.07 07:58
    거기 사람이 찍어줬어요 ㅎㅎ
  • profile
    드림 2014.03.07 14:46
    거기 사람에게 사진 찍어줘서 고맙다고 고백해야 겠다.ㅎㅎ
  • profile
    요셉 2014.03.07 16:36
    올ㅋ 멋잇네
  • profile
    성실 2014.03.07 22:17
    지호야~ 비상하는 멋진 새같아!
  • profile
    시공의쇄도우 2014.03.09 06:53
    여기 보드 진짜 싸서 한개 샀는데 소장용임ㅇㅅㅇ

지호

여행기행문 2/20~2/24

by 고백 posted Feb 24,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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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 
어제 규진이형과 놀다가 규진이 형이 가시고 잠이들었는데 같은 방을 쓰는 진표형이 안들어왔다. 우리방이 안좋아서 우리가 예약한 다른 딴방에서 자자는 건줄 알고 다른방에서 잤다고 했다. 덕분에 2인용 침대에서 편하게 자서 행복했다. 그리고 집합시간 3분전에 진표형이 돌아와 날 깨워서 허겁지겁 이빨만 닦고 어제 싼짐을 들고 규진이형 방으로 갔다 근데 유재현이 없었다. 얘가 어리버리 하기는 해도 이상한 사람을 따라갈 애는 아니라서 썬크림이나 치덕치덕 바르고 있었다. 어디가서 자고있겠구나라고 생각했는데 역시 여자애들이 1인용 방인데 침대가 3개 인곳으로 옮기면서 빈방이 된 8번방에서 자고 있었다. 짐을 챙겨서 벤을 타는 곳인 아야 서비스에 가서 짐을 맡기고 다은이 누나가 어제 봤다는 식당으로가 갔다. 돼지 볶음밥을 시키고 쉐이크를 고르는데 망고 쉐이크가 없고 망고 밀크쉐이크랑 망고 요거트 쉐이크 밖에 없어서 굉장히 많은 고민을 했다. 다른것을 먹을까 생각도 해봤지만 저번에 먹은 망고쥬스가 너무 맛있었기에 그냥 망고요거트 쉐이크를 시켰는데 저번에 먹었던 맛이 나서 안도했고 맛있었다. 그리고 피씨방에서 기행문을 쓰는데 타자를 외우니까 쓰기가 편해서 뭔가 뿌듯했다. 옆을 봤는데 독수리 타법이라서 타자를 치는 것보다 화면에 있는 한글 자판을 누르는게 더 빠른 선우가 너무 웃기고 안쓰러웠다. 먼저 마사지를 받는 사람들이 끝날때까지 기다리고 있었다. 피치쿨러라는 음료수를 시켰는데 복숭아 통조림하고 얼음하고 시럽을 같이 간건데 복숭아 통조림 맛이 그대로 났다. 난 좀만 먹고 파일을 날려서 힘들게 쓰는 것 같은 동우를 주었는데 맛있게 먹은것 같아서 좋았다. 마사지를 받았는데 어제 그 신에손 아저씨보다는 별로였지만 시원했다. 그리고 어느식당으로 들어갔다. 주문은 했는데 시간은 없고 음식은 나오지 않는다 벤은 6시에 출발인데 음식은 5시 50분이 넘어서야 나왔다. 허겁지겁 먹고 아야 서비스 앞으로 갔는데 다행이 벤이 떠나지는 않았다. 짐을 실고 들어가서 앉아야 되는데 또 아무도 먼저 들어가려 하지 않았다. 그래서 내가 또 맨뒤로 가서 앉았다. 그리고 지옥을 체험하고 싶은자 내 옆에 앉아라 하고 말했는데 진표형이 쪼르르 와서 앉았다. 나는 옆에 있는 짐에 기대서 좀 괜찮았는데 진표형이 고개를 가누지 못해서 나랑 자꾸 부딪혔다. 벤을 한 6~7시간 타고 숙소에 도착했다.
2/21 
일어나서 숙소에서 파는 아침을 먹었는데 토스트에 햄과 소세지를 같이
줘서 맛있었다. 밥을 먹고 강을 구경하다가 짐을 챙겨서 툭툭이를 타고 라오스 국경으로 갔다. 그리고 라오스로 넘어가서 루앙프라방으로 가는 벤을 탔다...... 내가 또 맨뒤에 탔다.....정인이가 이제 나를 그냥 이동할때 안좋은 자리에 앉는 힘든것 담당이라고 놀린다. 이번에는 자리가 다 좋았지만 길이 너무 험해서 잠을 못잤고 나는 지금까지 맨뒤에 앉은 경험으로 의자를 뒤로 하고 배낭을 이용해서 침대를 만들어서 엄청나게 많은 별들을 보면서 누워있었다. 그리고 정인이가 내 앞이였는데 안경을 벗고 뒤에서 노려보면 막 강도 같다면서 잘 놀라서 놀래키는게 너무 재미있었다. 정인이가 내얼굴을 쳐다보지 않고 뒤로 밀기 위해 내눈을 찔렀지만 그정도 희생을 해도 될만큼 재미있었다. 정인이가 제발 자자고 애원을 해서 그냥 나도 그만했다. 그리고 새벽 4시에 루앙프라방에 도착했다.
2/22
숙소 체크인은 11시에 할수있어서 숙소 앞에서 노숙을 했다. 너무 졸려서 숙소앞에 있는 나무책상에 엎드려서 30분 정도 잤는데 온몸이 쑤시고 너무 추웠다. 앞에 있는 게스트하우스에서 아침을 먹고 규진이형과 다은이 누나 없이 사원을 구경했다. 별로 멋있거나 웅장하거나 그냥 아무 느낌없이 걸어다녔다. 체크인 시간이 안되어서 강이 보이는 야외 카페에서 팀별로 앉아서 음료수를 먹으면서 게임을 했다. 동엽이 형이 알려준 빵게임이 특히 재미있었다. 그리고 체크인을 하고 모여서 잠을 포기하고 빵게임을 연구했다. 빵게임이 무슨게임이냐 하면 식탁이 총 3개 있고 식탁1에는 빵이 3개 식탁 2에는 빵이 6개 식탁3에는 빵이 9개가 있는데 두사람이 1대1로 번갈아가면서 자신이 원하는 1개의 식탁에서 원하는 만큼에 빵을 가져가서 마지막 남은 빵 1개를 가져가는 사람이 지는 게임인데 먼저하는 사람이 식탁3에서 빵4개를 가져가면 무조건 이기는 필승법을 발견해서 연구에 참여하지 않아 이 방법을 모르는 동엽이형을 연구를 같이했던 재현이랑 선우랑 같이 갔다. 나도 이기고 재현이도 이겼는데 선우는 방법을 알아도 동엽이형을 이기지 못했다. 말은 동엽이형에 마지막 자존심을 지켜준다고 하지만 내가 보기에 그냥 진거였다. 웃겼다. 그리고 결국에 모두가 이방법을 알아버리자 게임이 너무 재미없어져서 아쉬웠다. 집합시간이 되어 모여서 밥을 먹으러 갔는데 너무 졸리고 피곤해서 음식이 나올깨까지 엎드려서 잤다. 볶음밥을 먹고 툭툭이를 타고 가는데 너무 피곤했고 졸렸다. 게다가 엄청 멀어서 그냥 유턴해서 숙소로 돌아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근데 꽝시폭포를 가니 모든 피곤이 가시는 것 같았다. 물은 차거웠지만 같이 노니 재미있었다. 툭툭이를 타고 돌아와서 씻고 바로 밥을 먹으러갓는데 국수를 시켰는데 면보다 팍취가 많았다. 진짜 팍취맛 밖에 안났다. 다은이누나가 하나 더시키라고 했지만 그냥 먹었다. 그리고 같은 팀인 선우랑 지원이랑 야시장을 구경하는데 선우랑 닭꼬치를 하나씩 사먹었다. 지원이 팔찌를 사는 데 선우가 가격깍는 것을 엄청 잘해서 놀랐다. 그리고 숙소로 돌아왔다.
2/23
아침에 일어나서 짐을 싸서 모였다. 집합을 해서 어제 예약한 버스터미널로 갔다. 자리가 좋아서 편했다. 5시간정도 타고 방비엥에 도착해서 숙소로 돌아왔는데 숙소가 시내에서 좀 떨어져 있지만 내 마음에는 들었다. 규진이 형과 같은 방을 쓰게 되었다. 그리고 시내랑 너무 떨어져 있어서 자전거를 빌려서 탔는데 선우가 자전거를 못타서 규진이형 뒤에 타고 지원이가 자전거를 잘 못탄다고 해서 정우랑 같이 탔는데 정우랑 여자애들이랑 붙어있으면 항상 싸우는 것 같다. 지원이는 정우 머리채를 잡고 정우는 소리를 지르고 자전거를 타는데 너무 쪽팔렸다. 그래도 보드만 타다가 자전거를 타니까 보드로 못다니는 파인길이나 살짝 오르막길을 갈수있어서 신기했고 오랜만에 자전거를 타니 정말 재미있었다. 마사지를 받았는데 발마사지는 어딜가나 그냥 뭔가 바르고 비비기만 하는것 같아서 별로 시원하지는 않았다. 그리고 저녁은 질리도록 먹었던 볶음밥과 국수에서 벗어나서 피자랑 스타게티같은 음식을 먹었다. 우리는 다같이 나누어 먹었는데 오랜만에 먹어서 그런지 한국에서 먹었으면 맛없었을것 같은데 다같이 해외에서 나누어 먹으니까 정말 맛있었다. 그리고 숙소로 돌아와서 규진이 형과 캔디 크러쉬(?)라는 핸드폰 게임을 했는데 규진이형이 20번도 넘게 해서 깬것을 단 3번만에 깨서 좋았고 평소에 게임을 하지 않는 규진이형이 게임을 하셔서 너무 놀라웠다. 그리고 누워서 떠들다가 밤늦게 잠들었다.
2/24
어제 규진이형과 늦게까지 놀아서 딱 집합시간 5분전에 일어났다. 근데 몸만 나가면 되서 간단히 씻고 나갔다. 버스예약을 하고 툭툭이를 타고 블루 라군으로 갔다. 어제 기대를 많이했었는데 정말 재미있었다. 물에 물고기도 많았고 꽝시 폭포에서 물에 들어오지 않았던 다은이 누나도 같이 물에 들어오셔서 더 재미있었다. 시간 가는줄 모르고 놀아서 배가 고팠는데 바로 옆에서 파는 샌드위치가 너무 맛있어서 2개나 먹었다. 그리고 규진이형이 너무 오래 앉아있으셔서 정리를 하고 나왔는데 가는 길에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숙소에 돌아와서 샤워를 하고 누워서 1시간 정도 자고 일어났는데 정말정말 힘들었다. 아까 너무 열심히 놀았나 보다 식당을 찾아서 들어갔는데 볶음밥과 국수 종류를 시키는게 안전하지만 너무 많이먹었기에 돼지랑 밥을 같이 주는 것을 시켰는데 고기가 너무 차거웠다. 그리고 지금 피씨방에 와서 기행문 타이핑을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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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실 2014.02.25 16:36
    역시 지호 멋지다! 힘들고 어려운 자리에 도맡아 앉아 편하게 가는 방법을 터득하고^^ 지호가 빵게임의 필승법을 알려주었네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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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망 2014.02.26 18:03
    볶음밥과 국수를 너무 많이 먹었구나~한국에 돌아보면 한동안 볶음밥과 국수는 안먹고 싶겠다. 밥하고 김치가 마니 그리울것 같네~오면 맛있게 많이 먹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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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맑은 2014.02.27 17:29
    3번만에 깨는 게임 실력자 지호~^*^

지호

여행기행문 2/16~2/19

by 고백 posted Feb 20,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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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6 서울,상하이,방콕
잠을 3시간 정도 자고 일어났다. 목사님,현숙이이모,규동이 삼촌이 현관까지 배웅을 해주셨다. 모두 두꺼운 외투 없이 후드나 긴팔만 입고 갔는데 내 시리얼 후드가 두꺼워서 별로 춥지는 않았다. 경유비행기가 싸서 상하이에서 경유를 해야해서 상하이에 들렀다. 하지만 상하이에서 비행기를 기다리는 시간이 너무 심심했다. 공항안이라서 중국인것 같지도 않았다. 어쨋든 시간이 다되어서 비행기를 탔는데 선우가 내 옆자리였는데 책상을 내리고 엎드려서 자는 방법을 알려줘서 엄청 편하게 잤다. 중간에 기내식도 나왔는데 요플레랑 빵이 맛있었다. 방콕에 도착했다. 날씨가 따뜻했다. 공항에서 나와 호텔로 가기 위해 택시를 기다리는데 줄이 엄청 길고 사람들이 새치기도 해서 허리가 엄청 아팠다. 습도도 높아서 매우 힘들었다. 결국 택시를 타고 숙소에 들어오니까 엄청 행복했다. 규진이 형과 2인실을 쓰게 됬는데 2층 침대가 2개나 있어서 침대가 총 4개였다. 밥을 먹으러 갔는데 볶음밥이 맛있었다. 밥을 머꼬 세븐일레븐에서 과자를 엄청사서 정우 방에 모여서 파티를 했다. 태국 과자들이 좀 자극적이었지만 다같이 나누어 먹으니까 좋았다. 그리고 방에 들어와서 규진이형이랑 다은이 누나랑 수다를 떨었다.
2/17 방콕
아침에 식당을 찾아 헤멨다. 길거리에서 신기한것을 많이 팔았다. 초밥도 팔고 있었다. 식당을 2번정도 퇴짜를 맞고 허름한 식당으로 들어갔는데 별로 기대를 안하고 있었지만 맛있지도 않고 맛없지도 않았다. 그리고 버스 터미널에 가서 버스 예약을 해야 됬는데 처음으로 태국 지하철이랑 현지 버스를 타봤다. 버스가 보기와는 다르게 되게 편했다. 예약을 하고 큰 백화점에 가서 점심을 먹었는데 맵고 향이 엄청 강한 볶음밥을 먹었다. 엄청 맵기만 했다.  그리고 선우랑 지원이랑 백화점 구경을 했다. 백화점이 엄청 커서 미로 같았다. 그리고 스타벅스에서 모이기로 했는데 백화점에 스타 벅스가 3개나 있어서 만나기가 어려웠다. 지금 나는 슬리핑 버스에서 기행문을 쓰고 있다. 밀려 쓰니까 쓰기가 힘들다 내일은 바로 바로 써야겠다.
2/18 치앙마이
슬리핑 버스가 엄청 편했다. 한 세번 정도 깻지만 바로 잠이 들었다. 담요를 그냥 몸에 두르고 있었는데 아저씨가 뺏어 갔다. 아저씨가 담요를 더달라고 하고 규진이 형도 빨리 꺼내라고 말했는데 아무도 꺼내지 않아서 이상했다. 근데 규진이형이 진표야 빨리 꺼내라 라고 말하자 그제서야 진표형이 주섬주섬 꺼냈다. 황당하고 웃겼다. 그리고 숙소까지 걸어서 10분 거리라고 나와있어서 걸어 가는데 도대체 나오지가 않아서 길을 물어봤는데 걸어갈려면 두시간이 걸린다 해서 툭툭이를 타고 갔다. 근데 되게 멀었다. 그리고 체크인 시간이 안되서 맥도날드에서 맥모닝을 먹었다. 선우가 스프라이트가 맛있다 해서 스프라이트를 시켰는데  
너무 달았다. 그리고 수영장에서 엎드려서 자다가 물이 너무 튀겨서 일어 났는데 거의 수영을 하고 있길래 나도 같이 수영을 했다. 그런데 물이 너무 차거웠다. 그리고 3인실이 하나 나서 여자들은 먼저 들어가고 땡볕에 앉아있다가  방이나서 나랑 진표형이랑 선우가 방을 쓰게 됬다. 아직 방이 안난 동우랑 재현이가 들어와서 선우가 침대를 뺏겼다. 그래서 선우가 너무 불쌍해 보여서 내 침대에서 재웠다. 근데 그래서 내가 잠을 못잤다. 그리고 일어나서 점심을 먹으러 나갔는데 날씨가 너무 더워서 그냥 근처 현지 식당에서 먹었는데 진짜 현지 식당이여서 메뉴판따위는 없었다. 그래도 아줌마가 요리를 잘하는지 음식들은 맛있었다.
다시 숙소에 들어와서 침대에 누우니 침대가 정말 넓어서 행복했다. 낮잠을 자고 일어나서 마사지샵에 갔는데 전신마사지를 받았는데 시원하지도 안 시원하지도 않았다. 저녁은 포켓볼이 있는 식당에 갔는데 망고 쥬스가 진자 맛있었다. 그리고 포켓볼을 잘못쳐서 아쉬웠다. 그리고 세븐일레븐에서 간식을 사고 숙소로 돌아와서 쉬었다.
2/19 치앙마이 빠이
실컷 자고 일어났더니 진표형은 먼저 아침을 먹었고 선우가 아직도 자길래 깨워서 아침을 먹으러 갔다. 지원이랑 정인이가 있길래 반가웠다. 선우랑 나는 똑같이 팬케잌이랑  파파야 쥬스를 시켰다. 지원이랑 정인이는 계란이랑 소시지를 시켰는데 맛있어 보였다. 파파야 쥬스가 먼저 나왔는데 그냥 아무 맛이 없었다. 팬케잌도 나왔는데 두껍고 매우 맛있었다. 아침식사비가 남은 것으로 선우랑 지원이랑 동네 슈퍼에 가서 태국 젤리를 사먹었는데 우리나라 짱셔요 맛이었다. 그리고 숙소에 들어와서 쉬었다. 짐을 싸고 빨래 맞긴것을 찾아서 집합을 해있다가 벤이 와서 집을 실고 내가 제일 먼저 타서 맨뒤로 아무 생각 없이 들어갔는데 옆에는 선우가 타고 선우 옆에는 짐이 있었고 앞에 의자랑 간격이 진짜 허벅지 길이만해서 덥고 좁고 답답해서 엄청 힘들었다. 중간에 밥을 먹을때 다행이 멀미를 많이하는 동우가 조수석으로 가고 선우가 앞으로 가고 내가 혼자서 맨뒤에 앉게 되었다. 선우랑 나는 서로 축하해 주었고   매우 행복했다. 숙소에 도착하니 숙소가 약간 방갈로 같았다. 해먹 바이킹을 타다가 내가 탈때 갑자기 우드득 소리가 나더니 해먹이 터졌다. 어쨋든 엄청 재미있었다. 그리고 다른 해먹에 누워서 노래를 들으며 쉬다가 거리로 나왔다. 나랑 지원이만 마사지를 받고 싶다고 해서 마사지를 받았는데 어껀 아저씨가 엄청 시워하게 해주었다. 엄청난 초고수 같았다. 그리고 돼지고기랑 팽이버섯을 베이컨에 싼 간식도 먹었는데 둘다 맛있었다. 치킨을 저녁으로 먹으려 했는데 치킨이 아니라서 샤브샤브 집에 왔다. 양이 매우 조금씩 나왔지만 맜있었다. 그리고 숙소로 돌아와서 쉬었다.
  • profile
    찬미 2014.02.21 23:07
    글을 읽으면서 눈에 그림이 그려지는구나 .모두들정말 재밌는 시간을 보내고 있구나. 남은시간 건강하게 재밌게있다오렴.. 나~~누구게
  • profile
    사랑 2014.02.23 01:49
    터진 해먹에서 놀아보는 건 쉽지 않은 경험.... 해먹 바이킹 재미있었겠다. 지호가 생생한 느낌을 잘 써줘서 재미있다.
  • ?
    보라 2014.02.24 01:23
    재미있게 지내는 모습에 덩달아 나도 행복하군...잘 지내다 오길 바래.
  • ?
    고백 2014.02.24 22:46
    찬미이모가 현옥이모인건 전교인이 알지 않을까요?? ㅋㅋㅋ 남은시간 안다치고 재밌게 놀다 돌아갈게요~~~
  • profile
    아모 2014.02.28 00:08
    댓글에 댓글까지 달고.. 여유있어 좋네 고백~!^^

지호

제목-학교에서 배웠지만 잘몰랐던 미술 지은이-이명옥 2013년 2월 13일 유지호

by 고백 posted Feb 15,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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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학교에서 배웠지만 잘몰랐던 미술 지은이-이명옥 2013213일 유지호

 

화가들은 자신의 그림이 가짜 복제 품으로 만들어지자 자신만에 서명을 그림에 남기기 시작했습니다. 고야는 서명으로 고백을 하기도 했고 고흐는 반고흐라는 서명을 쓰기 싫어서 마음에 드는 그림에만 빈센트라고 서명을 남겼습니다. 화가들은 손을 이용해 다양하게 메시지를 남겼습니다. 특히 다빈치는 검지를 그림에서 많이 썻고 손으로 그림을 해석할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그리고 제1차 대전 미국에는 일명 샘 아저씨가 검지로 사람들을 가르키며 군사를 모으는 포스터가 있었는데 이 포스터를 보면 알수 있듯이 손은 강력한 메시지를 전달할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입을 말하거나 먹는데만 필요한 신체 기관으로 여기지만 입은 인간의 감정이 최초로 들어나는 공간이기도 합니다. 인간의 격력한 감정을 입을 벌려 표현한 에드바르 뭉크에 절규는 인간에 내면에 깃든 두려움과 공포를 너무나 생생하게 표현하며 많은 사람들에게 충격을 주었습니다. 17세기 네덜란드 화가 렘브란트는 미술의 한계를 뛰어넘어 그림에 움직임을 표현한 대표적인 예술가중 한사람입니다. 사람의 표정,방향,몸짓 들을 움직이는 듯한 착각을 받습니다. 거울은 예술가에게 많은 영향을 끼쳤습니다. 자신의 모습을 그리는 자화상을 발전시켰습니다. 하지만 유리거울이 평면 거울이 아닌 볼록 거울이었기 때문에 화가들에 자화상이 특이했지요. 그후 평면거울이 나오자 볼록 거울을 제치고 화가들에 애장품이 되었습니다. 21세기는 문화의 시대라는 말이 있습니다. 미술관을 찾는 사람이 많아졌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그림은 열심히 보지만 액자는 잘보려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액자는 예술작품만큼이나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많은 화가들이 작품을 구상할때부터 액자를 염두에 두고 그림을 그려요. 심지어 액자를 직접 디자인하거나 만들기도 합니다. 그림을 볼 때 액자에도 관심을 가지고 보세요 느낌이 새롭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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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호

제목-조선왕조 실록 14 2014 2/5 유지호

by 고백 posted Feb 15,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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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조선왕조 실록 14 2014 2/5 유지호

 

숙종은 현종에 뒤를 이어 14살의 나이로 임금의 자리에 올랐다. 임근은 남인들에 편을 들어 주었고 점점 남인들은 공세 수위를 높여갔다. 선인들은 빠르게 배제 되었다. 하지만 권력에 집중을 막기 위해 남인들이 배제 되어서 승지와 대간 마저 서인으로 교체되었다. 남인 정권때 결정된 정책들도 되돌려 졌고 조경이출향하고 남인들의 요청으로 지은 정개청의 사당도 허물어졌다. 서인에 가장 높은 권력자는 김석주라는 자였다. 이자는 남인의 복귀를 막기 위해 남인이 반란을 일으킨다고 보고했고 하지만 높은 사람이 걸려들지는 않았다. 그후 그는 임금도 두려워 할정도에 권력을 가지지만 숙종 10년에 죽고 만다. 인경왕후는 숙종 6년에 세상을 떠났고 새로운 후비를 들이니 이가 바로 인형왕후 이다. 인형왕후는 쫒았던 장희빈을 불러 들였고 장희빈은 아들을 낳았다. 그후 원자로 책봉했고 희빈은 국모가 되었다. 인형왕후는 쫒겼다. 그리고 마침내 서인의 대표인 송시열이 죽었다. 그후 숙종은 장씨와 싸우고 인형왕후가 그리워졌다. 그래서 인형을 궁으로 불러들여서 중궁전의 주인으로 삼고 장씨를 희빈으로 갈등 시켰다. 하지만 장씨는 복위하기 위해 자작극을 하기도 하고 신당을 설치해 저주를 퍼부었다. 그러나 이게 발각 되자 장희빈은 사약을 받는다. 그리고 숙정은 이제 소론을 몰아내고 노론들로 채우기 시작했다. 이에 반박하는 자들로 파직하고 새로운 노론으로 채웠다. 세자는 하루하루가 살얼음 위로 걷는 것 같은 나날이었다. 성격은 소심했고 말수가 적었다. 숙종은 눈이 안좋아 세자에게 대리청정을 맡겼다. 세자는 늘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고 하는 말이라고 는 아뢴대로 하라, 따르지 않겠다, 유의하겠다. 이세가지 말로만 답했고 대부분의 사안은 따랐지만 처벌 요구는 불만 세력을 낳을수 있기에 좀처럼은 하지 않았다. 큰 실수도 하진 않아서 세자의 입지는 탄탄해 졌다. 그리고 숙종은 마침내 숙종 46년에 눈을 감았다.

 

 


지호

제목-조선왕조실록13 지은이-박시백 2013년 2월 1일 유지호

by 고백 posted Feb 02,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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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조선왕조실록13 지은이-박시백 2013년 2월 1일 유지호

 

광해군을 설명하는 키워드가 중립 외교라면 효종은 북벌이라고 할 수 있다.그만큼 남자 다웠고 당당했다. 나중에 효중이 죽었을 때 난감한 일이 발생 하기도 했는데 바로 관이 작아 효종이 들어갈수 없었다. 효종이 가장 관심이 있었던 부분은 군사 문제였다. 관심을 가졌을뿐만 아니라 안목도 뛰어났다. 그래서 청에서 조선의 조총수를 계속 요구해 조선에 조청병들은 두루 활약을 보였다. 효종은 송시열이라는 자를 밑고 의지했다. 그래서 같이 북벌을 도모했지만 북벌을 하지는 못한다. 그리고 효종 2년에 충청지역에 대동법이 시행되어서 백성들이 좋아했고 확대를 실시하였으나 효종은 실해되는 것을 보지 못하고 죽는다. 그후 화폐법도 실시하였으나 상품경제의 미발달로 성공을 거두지는 못한다. 효종 10년에 한노인이 5월에 거사가 있을것이기 때문에 경복궁 초옥으로 옮기라고 하였지만 듣지 않았다. 그러나 정말로 얼굴의 종기가 나서 눈을 뜰수도 없어졌다. 그리고 침을 놓자 피가 멈추지 않아서 효종이 죽었다. 상복은 논란이 있었지만 결국 기년복으로 정해졌다. 현종은 강한 이미지인 아버지에 비해 색깔이 없는 이미지로 알려져있다. 아버지가 못다한 대동법 시행을 마침내 했냈고 세수 자원을 확보하고 곤장의 크기와 형태 재질을 바꿔서 형장의 가혹함을 완화시켰다. 그리고 병을 치료하러 온천을 가면 군사 훈련을 병행해서 진법을 훈련했다. 승승장구하던 왕에게 갑자기 헛배가 부르고 설사가 뒤따르며 숨을 거둔다. 서른다섯에 젊은 나이였다.

 

느낀점-특별한 사건이 없는 것 같아 좀 지루했다.


책정보,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13) 네이버 책.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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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맑은 2014.02.03 11:12
    고백 지호양~^*^ 마가퀴즈 꾸준히 올리는 모습이 참 좋아보인다. 너 덕분에 금주의 말씀을 자세히 읽어보게 되었고, 너로 인해 확실히 마가퀴즈는 이번에 묻어갔네. 고맙다~^*^ 2일에 독후감까지 올리다니~~~뜨끈뜨끈한 최신 글을 읽어서 좋네~!!!

지호

조선왕조실록12 지은이-박시백 2013년 1월 23일 유지호

by 고백 posted Jan 24,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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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실록12 지은이-박시백 2013123일 유지호

 

반정의 주역들은 공신에 책봉되었다. 하지만 이괄이라는자가 또 반란을 일으켜 왕은 호남으로 몸을 피했다. 하지만 이괄은 부하들에 의해 목이잘리고 말았다. 후금은 조선을 치려고 제대로 마음을 먹어서 중간에 있는 성들은 거들떠 보지도 않은채 어느새 황주까지 내려왔다. 그래서 조정은 강화도로 몸을 피했다. 후금은 그후에는 천천히 내려오면서 협상을 하려했다. 그래서 화친이 이루어졌으나 후금군사들은 철수를 하지 않고 백성을 죽이며 악탈했다. 후금은 조선과 형제관계를 맺어서 일정량의 예물을 상납받고 교역도 이루어지지만 조선은 명과의 관계를 우선시 해서 후금을 잘대하지 않았다. 그래서 후금은 다시 쳐들어왔고 인조는 남한 산성으로 몸을 피했다. 결국 포위를 당해서 왕은 삼배구고두(세번 절하고 아호번 조아리는)를 하고 세자를 비롯한인질들도 끌려갔다. 세자에게 청나라 사람들은 툭하면 외교적 현안에 대해 따졌지만 세자는 그럴때마다 외교 훈련이라도 받은 듯 능숙하게 답변했다. 하지만 왕은 자기보다 잘난 세자를 싫어하였고 좋아하는 후궁인 조씨도 세자를 헐뜯자 세자에 대한 경계심까지 품었다. 세자는 결국 인조 232월에 돌아왔는데 왕이 위로를 한다거나 연회를 배푼 기록이 없다. 세자는 두어달뒤에 병에 걸렸다. 왕은 자신을 10년 넘게 봐준 주치의를 보내서 침을 놓게 하지만 세자가 사흘 뒤에 죽고 만다. 그후 왕은 며느리를 죽이고 어린친손자를 둘이나 죽게했다.

 

느낀점-이시대에 백성이 불쌍하다.

  • profile
    맑은 2014.02.01 07:20
    지호야~^^너 덕분에 퀴즈정답 수정했다. 자세히 읽어보니 3페이지 오른쪽 하단에 정확한 질문이 있네~^^ 고맙다~♬
  • ?
    고백 2014.02.02 01:02
    네~ 다행이네요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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