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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호

제목-나는 단순하게 살기로 했다 지은이-사사키 후미오 2016년 4월 16일 유지호

by 고백 posted Apr 16,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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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나는 단순하게 살기로 했다 지은이-사사키 후미오 2016416일 유지호

 

자신에게 필요한 물건을 최소한으로 줄이거나 중요한 것을 위해 그 외의 것을 줄이는 일을 미니멀리즘, 이를 실천하는 사람을 미니멀리스트라고한다. 나는 모든일에 핑계를 댔다 더 나은 환경이 주어졌더라면 나도 더 잘할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이다. 예를 들어 아침에 일찍 일어나지 못하는 것은 밤늦게까지 일했기 때문이며 방이 좁으니 금세 지져분해도 어쩔수 없다는 식으로 말이다. 미니멀리스트가 된 계기는 저마다 다를 것이다. 주변 사람이 물건으로 인해 생활이 망가지는 것을 지켜본 사람, 돈이 많아 물건을 마구 사들였지만 전혀 행복하지 않은 사람 등등 계기는 다양하다. 예전에 나는 물건을 절대 버리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물건을 너무 좋아하다 못해 집착하는 편이었다. 편지는 물론 누군가 내앞으로 전화가 왔었다는 메모지 조차도 버리지 못했다. 하지만 지금은 내가 필요없다고 생각하는 것을 모두 버리게 되었다. 이렇게 버릴수 있게 된것에 많은 도움을 준 물건들은 스냅스킨 스캐너 덕분이었다. 많은 사진들과 손편지와 아끼던 잡지들을 이 물건 덕분에 버릴수 있었다. 예전에 나는 내가 살아가는데 필요한 모든 물건들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뭔가 부족하다고 느꼈고 그래서 게속 물건을 사돌렸다. 물건들은 사실 익숨함과 싫증의 무한 반복이다. 지금 가지고 있는 물건들은 모두 굉장히 갖고 싶어하는 물건들이다. 하지만 계속 쓰다보면 익숙해지고 익숙해지니 싫증이 나게 된 것이다. 세계에 하나밖에 없는 다이아 반지도 계속 쓰다보면 언젠가는 싫증이 나게 될 것이다.

물건을 버리려면 버릴수없다는 생각을 버려야한다. 물건을 버릴수 없는 성격은 존재하지 않는다. 단지 스스로 버릴 수 없다고 믿을 뿐이다. 심리학에서 학습성 무력감이라는 말이 있다. 실제로는 자신이 개선할 수 있는 상황이고 그럴 능력이 있는데도 몇 번이나 실패했기 때문에 상황을 개선하려는 마음조차 없어진 것이다. 그저 버리고 비우는 기술이 미숙할 뿐이다. 버리는 습관 대신 버리지 않는 습관을 익혔을 뿐이다. 버리는 것도 기술이다. 한번도 배운적 없는 프랑스어가 어느 순간 입에서 튀어나오는 일은 없듯이, 어느 날 갑자기 단샤리 전문가가 될 수는 없다. 나는 물건을 많이 버렸지만 물건을 줄이기 시작한 지는 5년이 지났다. 물건을 버리면 그저 물건을 잃는 것이라는 생각에 손해를 보는 기분이 든다. 이런 기분에도 이별을 고하자 버림으로써 얻을 수 있는 것은 의외로 많다. 시간, 공간, 수월해진 청소, 자유, 에너지 등 버림으로써 얻는 것들은 정말로 무한하다.

우리는 물건을 줄이고 싶다고 생각하면서도 역시 버릴 수 없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은 현재의 상황을 그대로 유지하며 편안함을 쫓으려는 경향이 있다. 물건을 버리는 것은 행동이고, 물건을 그대로 두는 것은 행동이 아닌 현상 유지이기 때문에 확실히 편한 선택이다. 다만 물건을 그대로 두는 편안함만을 추구하면 언젠가 감당할 수 없는 물건들에 둘러싸인다는 사실을 기억하라. 줄이고 싶다면 줄이고 싶은 그 마음을 가장 중요하게 여겨라.

어질러진 방에서 지내던 시절과 비교해보면, 지금 나는 갖고 있던 물건을 약 5퍼센트까지 줄였다. 1000개의 물건이 있었다면 950개는 버린 것이다. 그중에서 비록 난 뒤 후회한 물건은 하나도 없다. 있었다고 해도 전혀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의 작은 것이다. 마음속 깊은 곳에서 버리지 말 걸 그랬어하고 잠자리에서 이를 바드득 갈며 후회한 물건은 정말이지 하나도 없다. 버리려는 마음을 방해하는 것은 버린 후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면 어쩌나, 언젠가 버리지 말 걸 그랬다고 후회면 어쩌나 하는 불안감이다. 불안한 마음은 충분히 이해한다. 누구라도 당연히 불안할 것이다. 그럴 땐 이말을 자신에게 들려주자. 버리고 나서 후회할 물건은 하나도 없다. 후회는커녕 버리길 잘했다고 할 것이다.

버리는 습관을 익히려면 확실한 쓰레기부터 버리는 것으로 시작한다. 빈 깡통이나 먹고 난 도시락 상자같은 누가 봐도 쓰레기인 것들을 버리는 데서부터 시작하라.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이런 쓰레기들을 먼저 버린다. 냉장고 속을 점검해 유통기한이 지난 음식물을 버리고,솔기가 터진 채로 넣어두었던 옷을 거내 버리고, 고장 난 가전제품을 버려라.

 

느낀점-이책을 읽으며 공감이 많이 되었다. 이책에 나오는 예시가 모두 내이야기 같았다. 방청소를 한번 해야겠다.


지호

제목-나는 단순하게 살기로 했다 지은이-사사키 후미오 2016년 4월 16일 유지호

by 고백 posted Apr 16,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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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나는 단순하게 살기로 했다 지은이-사사키 후미오 2016416일 유지호

 

자신에게 필요한 물건을 최소한으로 줄이거나 중요한 것을 위해 그 외의 것을 줄이는 일을 미니멀리즘, 이를 실천하는 사람을 미니멀리스트라고한다. 나는 모든일에 핑계를 댔다 더 나은 환경이 주어졌더라면 나도 더 잘할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이다. 예를 들어 아침에 일찍 일어나지 못하는 것은 밤늦게까지 일했기 때문이며 방이 좁으니 금세 지져분해도 어쩔수 없다는 식으로 말이다. 미니멀리스트가 된 계기는 저마다 다를 것이다. 주변 사람이 물건으로 인해 생활이 망가지는 것을 지켜본 사람, 돈이 많아 물건을 마구 사들였지만 전혀 행복하지 않은 사람 등등 계기는 다양하다. 예전에 나는 물건을 절대 버리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물건을 너무 좋아하다 못해 집착하는 편이었다. 편지는 물론 누군가 내앞으로 전화가 왔었다는 메모지 조차도 버리지 못했다. 하지만 지금은 내가 필요없다고 생각하는 것을 모두 버리게 되었다. 이렇게 버릴수 있게 된것에 많은 도움을 준 물건들은 스냅스킨 스캐너 덕분이었다. 많은 사진들과 손편지와 아끼던 잡지들을 이 물건 덕분에 버릴수 있었다. 예전에 나는 내가 살아가는데 필요한 모든 물건들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뭔가 부족하다고 느꼈고 그래서 게속 물건을 사돌렸다. 물건들은 사실 익숨함과 싫증의 무한 반복이다. 지금 가지고 있는 물건들은 모두 굉장히 갖고 싶어하는 물건들이다. 하지만 계속 쓰다보면 익숙해지고 익숙해지니 싫증이 나게 된 것이다. 세계에 하나밖에 없는 다이아 반지도 계속 쓰다보면 언젠가는 싫증이 나게 될 것이다.

물건을 버리려면 버릴수없다는 생각을 버려야한다. 물건을 버릴수 없는 성격은 존재하지 않는다. 단지 스스로 버릴 수 없다고 믿을 뿐이다. 심리학에서 학습성 무력감이라는 말이 있다. 실제로는 자신이 개선할 수 있는 상황이고 그럴 능력이 있는데도 몇 번이나 실패했기 때문에 상황을 개선하려는 마음조차 없어진 것이다. 그저 버리고 비우는 기술이 미숙할 뿐이다. 버리는 습관 대신 버리지 않는 습관을 익혔을 뿐이다. 버리는 것도 기술이다. 한번도 배운적 없는 프랑스어가 어느 순간 입에서 튀어나오는 일은 없듯이, 어느 날 갑자기 단샤리 전문가가 될 수는 없다. 나는 물건을 많이 버렸지만 물건을 줄이기 시작한 지는 5년이 지났다. 물건을 버리면 그저 물건을 잃는 것이라는 생각에 손해를 보는 기분이 든다. 이런 기분에도 이별을 고하자 버림으로써 얻을 수 있는 것은 의외로 많다. 시간, 공간, 수월해진 청소, 자유, 에너지 등 버림으로써 얻는 것들은 정말로 무한하다.

우리는 물건을 줄이고 싶다고 생각하면서도 역시 버릴 수 없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은 현재의 상황을 그대로 유지하며 편안함을 쫓으려는 경향이 있다. 물건을 버리는 것은 행동이고, 물건을 그대로 두는 것은 행동이 아닌 현상 유지이기 때문에 확실히 편한 선택이다. 다만 물건을 그대로 두는 편안함만을 추구하면 언젠가 감당할 수 없는 물건들에 둘러싸인다는 사실을 기억하라. 줄이고 싶다면 줄이고 싶은 그 마음을 가장 중요하게 여겨라.

어질러진 방에서 지내던 시절과 비교해보면, 지금 나는 갖고 있던 물건을 약 5퍼센트까지 줄였다. 1000개의 물건이 있었다면 950개는 버린 것이다. 그중에서 비록 난 뒤 후회한 물건은 하나도 없다. 있었다고 해도 전혀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의 작은 것이다. 마음속 깊은 곳에서 버리지 말 걸 그랬어하고 잠자리에서 이를 바드득 갈며 후회한 물건은 정말이지 하나도 없다. 버리려는 마음을 방해하는 것은 버린 후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면 어쩌나, 언젠가 버리지 말 걸 그랬다고 후회면 어쩌나 하는 불안감이다. 불안한 마음은 충분히 이해한다. 누구라도 당연히 불안할 것이다. 그럴 땐 이말을 자신에게 들려주자. 버리고 나서 후회할 물건은 하나도 없다. 후회는커녕 버리길 잘했다고 할 것이다.

버리는 습관을 익히려면 확실한 쓰레기부터 버리는 것으로 시작한다. 빈 깡통이나 먹고 난 도시락 상자같은 누가 봐도 쓰레기인 것들을 버리는 데서부터 시작하라.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이런 쓰레기들을 먼저 버린다. 냉장고 속을 점검해 유통기한이 지난 음식물을 버리고,솔기가 터진 채로 넣어두었던 옷을 거내 버리고, 고장 난 가전제품을 버려라.

 

느낀점-이책을 읽으며 공감이 많이 되었다. 이책에 나오는 예시가 모두 내이야기 같았다. 방청소를 한번 해야겠다.


지호

제목-후쿠시마에 남겨진 동물들 지은이-오오타 야스스케 2016년 4월 9일 유지호

by 유카이 posted Apr 09,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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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후쿠시마에 남겨진 동물들 지은이-오오타 야스스케 201649일 유지호

 

거리에서 외떨어진 집앞을 지나가는데 하얀 개가 길을 왔다갔다했다. 집에 들어가보니 마당에는 동물보호단체에서 두고 간 듯한 사료와 물이 놓여 있었고, 개는 전혀 배가 고파 보이지 않았다. 다음날 그앞을 지나가는데 또 그 흰둥이가 도로를 뛰어다니고 있었다. 그곳은 사람들의 출입이 제한된 구역이기는 해도 차들의 왕래가 아주 없지는 않았다. 게다가 직선도로여서 차들이 속력을 내는 곳이었다. 그대로 두었다가는 위험할 것 같아서 동물보호단체에 연락해 임시 보호를 부탁했다. 그날밤 흰둥이 주인에게 전화가 왔다. 흰둥이 주인이 꼭 돌아올거라고 믿은 내가 집의 현관에 번호를 붙여 놓았는데 그걸 보고 연락을 한것이었다. 나는 급한 마음에 동물보호단체에 연락을 해보니 그새 임시보호 가정에 가 있었다. 흰둥이 주인에게 후쿠시마에 가는 길에 데려다주기로 약속하고 3일후 임시보호를 맡았던 부부가 흰둥이를 깨꿋하게 목욕시켜서 데리고 왔다. 고속도로 4시간 반이나 달려 마침내 만나기로 한곳에 도착하자 차가 한 대 다가왔다. 뚫어지듯 그곳을 바라보던 흰둥이가 사람이 내리니 미친 듯이 꼬리를 흔들기 시작했다. 흰둥이는 달려가 오랜만에 아빠, 엄마 품에 안겼다. 가족에게 이름을 물었더니 정말 흰둥이였다.

고양이는 성격상 사람들 눈에 잘 띄지 않는다. 그래서 사람과 함께 살던 개보다 고양이 수가 더 많을 텐데 잘 보이지 않는다. 가끔 보이는 고양이들도 사람이 보이면 도망가 버린다. 그래서 고양이는 죽을 때도 사람의 눈에 띄지 않는 곳에서 조용히 숨을 거둔다.

원전 사고 지역에는 개와 고양이뿐만 아니라 소, 돼지, 말 등의 가축도 남겨졌다. 찾아간 말의 축사에는 살아남은 말이 불안한 듯 앞발로 땅을 긁고 있었다. 그러다가 정신이 나간 표정으로 옆 칸의 죽어 있는 말을 들여다보기도 했다. 돼지 축사는 더 끔찍했다. 겹겹이 쌓인 돼지 사체 사이로 간신히 살아 남은 돼지가 보였다. 살아남은 돼지들은 서로 의지 하며 힘없이 조용히 기대 있었다. 영문도 모르고 내버려진 채 죽음을 기다리고 있었다.

방치된 소들이 있다는 말을 듣고 혼자서라도 가 보기로 했다. 그런데 막상 가보니 축사는 조용했다. 기분 나쁠 정도의 고요함 그런데 내 기척을 느꼈는지 소들이 일제히 울기 시작했다. 울음 소리를 따라 들어가 축사 안을 들여다본 순간 나는 말문이 막혀 버렸다. 그곳은 지옥이었다. 50마리중 20마리는 죽은 상태였고 남은 소들은 숨은 붙어있지만 일어설 기운이 없어 주저앉아 꼼짝도 못했다. 먹지 못해 뼈가 드러나 있었고 나를 보며 뭐라고 말을 하려는 듯 쉬지 않고 울었다. 죽음 중에 가장 고통스럽다는 굶어죽는 아사, 동물들은 영문도 모른 채 버려져 굶어서 죽어가고 있었다. 함께 지내던 동료 소들의 사체 사이에서 자신도 오물에 뒤범벅이 되어 굶어서 죽어가는 곳, 이곳이 지옥이 아니고 무엇일까. 최소한 안락사라도 해 주었으면. 간절한 마음으로 나는 바랐다. 참을 수 없는 무력감을 느끼며 나는 진심으로 안락사를 바랐다. 그게 먹기 위해 키웠다가 버려져 비참한 모습으로 죽어가는 이 생명들에 대한 마지막 책임이라고 생각했다.

어느 집에 찾아가보니 개가 묶인 채 죽어 있었다. 안타까웠지만 누구도 원망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함께 간 자원 봉사자가 조용히 수건을 덮어 주었다. 나는 떠난 아이의 몸을 오래도록 쓰다듬었다. 개는 즐거웠던 때의 기억을 가지고 천국에 갔을 거라고 그렇게 믿고 싶다.

나는 다시 소들의 축사로 향했다. 소들의 최후를 내눈으로 보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기억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두 달 남짓 지나 다시 찾아간 그곳은 달라져 있었다. 소들이 사라졌다. 석양이 내려 앉은 축사에 남아 있는 것은 흩어져 있는 털과 뼛조각뿐이었다. 수로에도 소의 모습은 간데없고 뼈만 잠겨 있었다.

 

느낀점-사진이 많아서 좋았다. 하지만 그 사진들이 모두 참사를 당한 동물들의 모습이여서 안타까웠고 짠해졌다. 사진이 많고 내용도 쉬워서 금방금방 읽혀서 좋았다.

 

 


지호

제목-한강 눈한송이가 녹는 동안 지은이-제 15회 황순원 문학상 수상 작품집

by 고백 posted Mar 26,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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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한강 눈한송이가 녹는 동안 지은이-15회 황순원 문학상 수상 작품집

한강눈송이가 녹는동안

k씨가 우리집에 찾아왔다. 나는 그와 가가운 사이가 아니여서 살짝 불편했다. k씨는 같은 잡지회사 동료였다. 옛날에 k씨와 직장선배와 월미도에 가서 탁구를 치며 회값내기를 한기억이 있다. k씨는 회사에서 퇴직을 시켰지만 거부하며 1년동안 출근시위를 하였다. 회사에서 잘리지 않기 위해 신혼여행까지 포기하며 버텼지만 점점 상상들의 따돌림이 심해져 갔다. 동기들은 방관하거나 도움을 주려했다. 한번은 다같이 사표를 쓰기로 했으나 누가 상사에게 고자질을 해 상사들이 그러면 다 해고 시킬것이라고 겁을 주었다. 우리는 누가 고자질을 하는지 찾으려 했으나 찾지 못하였다. 결국 k씨는 회사를 그만두고 시골 신물사로 들어갔다.

에우로파

인아는 악몽을 꾼다고 했다. 결혼 생활 때 본 회를 뜨고 남은 물고기가 살아서 움직이는 장면이 자꾸 굼에 나온다고 내게 하소연을 한다. 민아는 결혼 생활 4년을 하다가 지금은 혼자산다. 결혼 생활을 끝내고는 음식을 하지 않는다. 음식을 잘하지만 음식하는 것을 싫어하는 것을 알기에 해달라고 하고싶지는 않다. 민아는 대학에 기타를 독학해서 기타를 배워보고 싶다고 했었다. 그래서 기타를 배워서 조그만 공연장에서 연주를 하게 되었다.

사물과의 작별

고모가 요양원 생활을 시작하고 두달 정도가 지났을 무렵이었다. 그날 고모와 나는 요양원 휴게실에 나란히 앉아 저녁까지 긴 이야기를 나눴다. 대부분 서 군에 관한 것이었는데 내게는 고모가 아프고 나서야 알게 된 서군의 존재보다 예전과 똑같이 말하고 웃고 반응하는 고모의 모습이 더 인상적이었다. 아무리 봐도 고모는 환자 같지 않았다.

가벼운 두통일거라 생각하고 병원을 찾아갔다가 알츠하이머 초기 진단을 받은 고모는 바로 그다음 날부터 주변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30년 넘게 교사로 근속한 학교에 사직서를 냈고 아파트를 정리했으며 예금과 연금으로 죽을 때까지 요양원 비용이 해결 되도록 조치를 취해놓았다. 키우던 고양이는 동물병원에 맡겼다. 요양원으로 떠나기 바로 전날밤 가족들을 시내에 고급 레스토랑에 형제들과 형제들의 가족들을 불러놓고 이야기를 하였다. 아버지는 그러게 왜 결혼을 안해서 남은 여생을 요양원에서 보내냐고 소리를 지르며 나갔다. 작은 고모는 흐느끼며 울었다. 그러나 아무도 고모를 보살펴주겠다고 나서는 이는 없었다. 그게 벌써 5년전에 일이었다. 5년동안 고모는 급속도로 늙고 병들었다. 나는 고모를 보살피려 요양원에 많이 갔는데 고모는 그때마다 첫사랑인 서군이야기를 해주었다. 어느 레코드집앞에서 만났는데 첫눈에 반했다고 한다. 서군은 제일조선인이었다. 서울에 k대학에서 석사과정을 밟기 위해서 유학을 왔는데 고국에서는 시위와 휴교가 반복되었다. 자고 일어나면 알고 지내던 학생 누군가가 잡혀갔다는 소식이 들리고 교수들은 반 이상 비어 있는 강의실을 침울한 얼굴로 둘러 보곤했다.

서군은 고모에게 일본어 원고뭉치를 맡기고 일본으로 떠났는데 방학이 끝날 때쯤 귀국하면 찾으러 올 테니 그때까지만 남들 눈에 띄지 않는곳에 보관해 달라고 부탁했다. 서군의 신뢰를 받는 것이 순순하게 기뻤던 고모는 서군에게서 서울에 아는 사람이 없어서라거나 거추장스러워서 라는 대답을 듣을 까 겁이나 이유를 물어보지 않았다. 하지만 서군에게 불길한 일이 일어났다. 서군은 갈곳이 없다며 찾아온 고향친구를 재워준일이 있었는데 그친구가 간첩이었던 것이다. 게다가 고모는 서군에게 주려던 원고가 잘못되서 서군이 간첩명단에 올라가게 되었다. 그렇게 서군은 교도소에 들어가게 되었다. 고모는 그이야기를 나에게 많이 해준다. 마지막 작별인사를 할 때 아무말도 못한 것이 너무 아쉽다고 하였다. 그러다 나는 서군이 어디에 있는지 알게 되었다. 어느 병원에 있었는데 나는 거기에 고모를 데리고 갔다. 고모는 옆에 앉아있다가 갑자기 다른 사람을 서군으로 착각해서 그 남자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반복하고 90도로 인사를 여러번 한훈 쇼핑봉투를 주고있엇는데 그 봉투에는 양말과 비누세트가 들어있었다. 고모는 교도소에 들어가는 선군을 위해 준비 한 것 같았다.

 

느낀점-이상하게 잘읽히지 않았다. 마지막 이야기는 잘읽혀서 좋았고 재미있었다.


지호

미얀마 여행기

by 고백 posted Mar 19,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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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1 목요일 아침에 일어나서 영화와 미드와 애니매이션을 다운받았다. 이동시간이 많아서 이동시간에 볼생각을 하니 좋았다 오지화로 점심특선을 먹고 교회로 왔디 고기양이 딱적당해서 좋았다 그후 목사님 말씀을 듣고서 출발했다 . 인천공항에 가서 다은이누나를 만나서 들어갔다 전날 늦게자서 졸렸다 비행기시건을 기다리며 의자에 누워있었고 비행기에서도 자고 티비보고 자고 티비보고를 반복했다. 중간에 경유를 했는데 아무생각없이 비행기 티켓을 놓고 내렸었는데 아영이에 영어실력으로 잘처리되서 무사히 탔다. 그후 바옥에 와서 벤을 찾는데 시간과 노력을 쓰고 결국 무사히 벤을 타고 숙소로 돌아왔다. 2/12 금요일 아침에 짐을 챙겨서 선우와 재현이와 방을 나와 로비로갔다. 로비에 가서 벤이와서 기념사진을 찍고 벤을 타고 공항으로 갔다 공항에서 수속을 하는데 선우 이비자를 프린트해야되서 약간 지체되었다 마지막으로 밥을 먹운게 어제 비행기에서 준 부실한 기내식이 전부였으므로 배가 고팠다 들어와서 좀 누워있다가 비행기를 탔다 미얀마로 와서 돈을 바꾸고 팀끼리 택시를 타야했다. 근데 택시비가 너뮤 비쌋고 다같이 탈수있는 벤을 타라고 탹시기사가 그래서 33000킵을 내고 8명정도 탈수있는 벤에 다같이 구겨탔다. 이야기를 하다보니 금방도착했고 내렸는데 숙소가 안보였다. 구래서 구글맵을 이용해서 좀걸어서 숙소에 도착했다 숙소에 더착해서 좀 쉬고 밥을 먹으러 떠났다 허름한 로컬식당에 들어가서 밥을 시켰는데 좀 오랴걸렸다 결국음식이 나와서 먹고 나오는데 밥먹을때부터 도원이에게 말을걸고 손을잡고 손에 뽀뽀하던 문신있는 아저씨가 도원이 어깨에 손을 걸치고 따라왔다. 도원이는 무서워서 아무말도 못하고 있어서 내가 도원이를 내옆으로 데려와서 내가 어깨동무하고 갔다 그 아저씨는 조금더 쫒아오더니 선우랑 악수를 하고 가버렸다. 도원이가 많이 놀란거 같았는데 티를 안내서 정말 씩씩하다고 생각했다. 2/13 토요일 아침에 생각했던것 보다 늦게 일어나서 아슬아슬하게 아침을 먹었다. 다모여서 술래파고다를 구경했다. 별게 없었다. 그후 시청 공원인가를 갔다. 햇빛이 강해서 그늘에 앉아있었다. 그후 999샨누들을 찾으러 갔다. 돼지폭립이 들어간 국수를 시켜먹었는데 역대 먹었던 국수중에 탑 5에 들어갈정도로 맛있었다. 그후 제이도넛을 찾으러 갔지만 망해서 돌아돌아 다른 제이도넛으로 갔다. 자리가나서 앉아서 쿠키와 커피를 시켜먹었다. 시간을 때우다가 눈치를 하도 주길래 버틸만큼 버티고 나와서 숙소로와서 시간을 보냈다 그후 숙소에서 친절한 직원청년이 불러준 택시를 타고 버스터미널에 갔다 일반버스라고 해서 크게 기대는 안했지만 버스가 매우좋았다. 티비를 보다가 자다가 하며 낭쉐에 도착했다 2/14 일요일 새벽에 낭쉐에 도착해서 체크인을 하고 도원이와 방을 쓰게 되었다. 자고 일어나서 자전거를 타고 까옹다이 온천으로 갔다 자전거가 처음에는 재미있었지만 점점 힘들어졌다. 온천을 즐기고 밥을 먹고 인레 호수에 가자와 안가자는 의견으로 갈려서 가위바위보로 결국 내가 속한 안가자는 의견이 승리했다. 그후 자전거를 타고 와서 쉬다가 밥을 먹으러 갔다 볶음 밥을 시켰는데 매우 맛있었다. 2/15 월요일 전날 협의한대로 여유롭게 일어나서 12시에 체크아웃을 하고 자전거를 빌리러갔다 전날 자전거를 빌린곳이 자전거가 모자라서 다른곳을 갔는데 전날 보다 자전거가 좋았다. 안좋은길을 달려서 레드마운틴에 도착했다 햇벷이 매우강했다. 도착해서 식당에 갔는ㄷ데 식비가 여유로워서 스파게티와 감자튀김을 시켜서 먹었다. 와인시음도 해봤다. 계산을 하는데 직원들에 실수를 해서 한팀이 먹은것을 돈을 안낼수 있었다. 밥을 먹고 나와서 자전거를 타고 돌아와서 자전거를 반납하고 에버그린카페에 갔다. 카페는 그리 좋지 않았다. 음료수를 마시고 식당으로 가서 치킨 샌드위치를 먹고 버스터미널에와서 간식을 사고 버스에 탑승했다 2/16 화요일 만달레이에 도착해서 트럭뒤에 타고 숙소에 도착했다 숙소는 도미토리였고 한숨자고 일어나서 로비에 모였다. 무슨 용산 아이파크같은곳으로 가서 밥을 먹고 마사지를 받았다 마사지가 시원해서 좋았다. 그리고 우베인 다리에 갔는데 다리가 나무로 만들어졌는데 옆에도 뚫려있고 아래도 보여서 무서웠다 그후 다시 용산아이파크몰같은데를 가서 밥을 먹고 아이스크림을 먹고 지하마트에 가서 간식을 사고 숙소로 돌아왔다. 2/17 수요일 아침에 여유롭게 일어나서 로비에 모였다. 오래동안 걸어서 식당에 가서 샨누들을 시켜서 먹었는데 별로 맛있진 않았다. 그후 바로 앞에 있는 나일론 아이스크림에 갔다. 기대를 많이 했었는데 별로였다. 아이스크림가게를 나와서 택시를 타고 만달레이 힐로 왔는데 계단이 계속 되었다 정상까지는 안가고 중간쯤에서 쉬다가 내려와서 쩨쪼야시장에 갔다. 가게들이 문을 안열어서 편의점을 찾기 위해 돌아다녔는데 편의점같은건 없었다 다시 야시장으로 돌아오니 지원이팀이 낮은의자에 앉아서 꼬챙이에 끼워져 있는 한입크기의 고기같은걸 먹고있었다 한입ㅁ먹어보니 맛있어서 콜라 3개를 사서 자리를 집고 앉았다. 꼬치가 하나에 100원이었는데 나랑정민이랑 선우랑 3명이서 90개를 먹었다. 많이 먹어서 그런지 아저씨가 1000원을 깎아주었다. 그후 슥소로 돌아와서 쉬었다. 2/18 목요일 아침에 모여서 만달레이 왕궁으로 출발했다. 원래 돈이 잡혀있던 만달레이 입장료를 내지 않아서 좋았는데 만달레이 왕궁앞에서 티켓을 팔고 있었다.간단히 협의 해본결과 그래도 왔는데 들어가기로 했다. 날씨가 더워서 우리팀은 학교같응데 들어와서 조회대같은곳에 우비를 깔고 누워있었다. 시간이 되서 집합장소에 가서 택시를 타고 숙소로 돌아왔다. 그리고 잠심을 먹기위해 만두집을 찾아가야했는데 땡볕에서 한 30분은 걸었던거 같다. 만두는 그냥 그랬다. 다시숙소로 돌아가는데 숙소랑 거리가 사실은 되게 가까웠다. 체크아웃을 하긴했지만 도미토리 침대에 주인이 없는거 같아서 가서 동엽이형과 같이 누워있었다. 자고 일어나니 버스가 도착했다. 제이제이 보단 좋지않았지만 안락한 느낌이 아주마음에 들었다. 그동안 여행을 다니면서 타본버스중에 매우좋은정도는 아니더라도 좋은편에 속한다고 생각했다. 근데 어린애들이 버스가 안좋다고 이야기를 하길래 속으로 되게 웃겼다. 버슨지 벤인지 뭔가를 타고 출발했는데 갑자기 중간에 어떤아줌마들이 타더니 통로에 한줄로 앉아서 갔다. 이런상황은 처음이라 되게 웃겼다. 아줌마들은 좀타고 가다 내리고 우리는 숙소에 도착했다. 숙소에서 예약은 했지만 돈을 지불하지 않은 문제가 있어서 처리하고 방으로 들어갔다 8인 도미토리였는데 굉장히 좋을줄알았는데 방이 생각보다 작았다. 2/19 금요일 잠을 푹자고 일어나서 점심을 먹으러 갔다. 전날 저녁을 제대로 먹지 못하고 아침도 먹지 않아서 그런지 배가 살짝 아픈것같았다. 대수롭지 않게 넘기고 밥을 먹고 약을 챙겨먹었다. 돼지볶음밥을 먹고 파야 두개를 보고 숙소로 돌아왔다. 좀 쉬다가 저녁을 먹으러 갔다. 저녁을 먹고 돌아와서 쉬었다. 2/20 토요일 오늘은 일출을 봐야하는 날이었다. 5시 40분에 일어나서 높은 파야로 갔다. 꼭대기에는 사람이 많았다. 나는 해는 맨날 뜨고 지는데 그걸 왜 가서 봐야하는지 몰랐다. 뱔로 기대눈 안하고 빨리 해나 떠서 숙소로 돌아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해가 뜨면서 그 꼭대기에서 다른사원을 보는 경치는 왜 미얀마로 여행을 오게 되었는지를 설명해주었다. 매우매우 멋있었다. 카메라로는 담을수없어서 아쉬웠다. 그렇게 일출을 보고 내려와서 숙소에 가서 좀쉰뒤 점심을 먹고 여러가지 파야들을 구경했다. 날씨도 덥고 제대로 알지도 못해서 그런지 다 똑같아 보였다. 그후 일몰이 유명한 곳에서 일몰을 보고 내려와서 숙소 근처 식당인 라피자로갔다. 피자를 먹어서 좋았다. 2/21 일요일 어제부터 컨디션이 안좋더니 오늘은 배가 살짝아프고 몸에 힘이 없었다. 아침에 파야들을 보고 숙소로 돌아와서 첫날갔던 식당인 블랙로즈에서 밥을 먹었다. 밥을먹고 정로환과 비타민을 먹었다. 숙소로 돌아와서 한 3시간정도 있어야했다. 누워있고 싶었지만 숙소는 체크아웃을 한 상태여서 약간 의자가 기울어져 있는곳에 앉아보았다. 매우 불편했다. 그래서 좀 긴의자에 몸을 접어서 누워있었다. 누워있다보니 동엽이형이 딴데로 가줘서 다리를 필수있었다. 그후 저녁을 먹고 또 약을 먹고 픽업버스를 기다렸다. 픽업버스가 좀늦게와서 버스를 타고 버스스테이션으로 가서 양곤행 버스를 탔다.
  • profile
    성실 2016.03.21 00:52
    미얀마 일출이 보고 싶구나^^
    날짜별로 줄을 바꾸면 읽기가 훨씬 편하겠다~

지호

제목-한강 눈한송이가 녹는 동안 지은이-제 15회 황순원 문학상 수상 작품집

by 고백 posted Mar 18,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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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한강 눈한송이가 녹는 동안 지은이-15회 황순원 문학상 수상 작품집

 

한강눈송이가 녹는동안

k씨가 우리집에 찾아왔다. 나는 그와 가가운 사이가 아니여서 살짝 불편했다. k씨는 같은 잡지회사 동료였다. 옛날에 k씨와 직장선배와 월미도에 가서 탁구를 치며 회값내기를 한기억이 있다. k씨는 회사에서 퇴직을 시켰지만 거부하며 1년동안 출근시위를 하였다. 회사에서 잘리지 않기 위해 신혼여행까지 포기하며 버텼지만 점점 상상들의 따돌림이 심해져 갔다. 동기들은 방관하거나 도움을 주려했다. 한번은 다같이 사표를 쓰기로 했으나 누가 상사에게 고자질을 해 상사들이 그러면 다 해고 시킬것이라고 겁을 주었다. 우리는 누가 고자질을 하는지 찾으려 했으나 찾지 못하였다. 결국 k씨는 회사를 그만두고 시골 신물사로 들어갔다.


지호

제목-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 지은이- 존 그레이 2016년 3월 13일 유지호

by 고백 posted Mar 13,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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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 지은이- 존 그레이 2016313일 유지호


세상에 인류는 두종류였다. 화성에서 사는 남자와 금성에서 사는 여자였다. 그들은 서로에 존재를 모르고 있다가 우연히 망안경으로 서로를 보았다. 그들은 다른 별에서 살았기 때문에 생긴 것은 비슷해 보여도 성격이나 생각같은 것이 달랐다. 서로 계속 관찰을 하면서 한번 만나 보고 싶다고 생각할때즈음 갑자기 눈을 떠보니 화성에 살던 남자들과 금성에 여자들이 기억이 사라지고 지구라는 행성에서 깨어나서 같이 살게 된 것이다. 우리는 사람이라면 다똑같다고 생각하지만 애초에 남자는 화성에서 왔고 여자는 금성에서 왔기 때문에 둘은 완전히 다르다고 생각해야 한다. 이책에서는 남자와 여자가 어떻게 다르고 다른만큼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알려준다. 화성인과 금성인이 처음만났을 때 그들은 오늘날 우리가 갖고 있는 관계에 애로점들에 맞닥뜨리게 되었다. 그러나 그들은 서로가 너무나 다른 존재임을 인식하고 있었기에 이문제들을 잘 풀어 나갈수 있었다. 그들이 성공을 거둔 비결 가운데 하나는 의사소통이 원만하게 이루어졌다는 점이다. 화성에서 온 사람과 금성에서 온 사람은 서로 다른언어를 사용한다. 화성에서 사용하는 언어와 금성에서 사용하는 언어에는 같은 어휘가 존재한다. 하지만 문제는 그 어휘들이 서로 다른 의미로 사용된다는데 있다. 형식상의 표현은 거의 비슷하지만 뜻은 전혀 다른뜻으로 쓰기 일쑤다. 여자들은 자기감정을 충분히 전달하기 위해 마치 저마다 시인이 된 듯 각양각색의 과장과 은유, 막연한 표현 등을 총동원해 사용한다. 그리고 남자들은 어리석게도 이런 표현들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인다. 말의 의미를 잘못 해석한 그들은 여자의 에상과 달리 비협조적인 반응 보이는 게 보통이다. 여자의 말을 곧이곧대로 해석한다는 것이 사실과 정보를 전하는 수단으로써만 언어를 사용해 온 남자들에게 얼마나 쉽게 오해를 불러 일으킬수 있는지 알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남자들의 그같은 반응이 곧 서로간의 논쟁을 야기시킬 것이라는 예측도 가능할 것이다. 관계속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애매모호하고 애정없는 대화이다. 여자들이 갖고 있는 불만 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것은 내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 것 같아요와 같은 말이다. 그런데 바로 이 불만 조차 잘못 이해되고, 그릇되게 해석되고 있지 않은가! 남자는 그말을 곧이곧대로 해석하고는 이의를 제기하고 나선다. 그녀의 말을 되풀이 할수 있으면 그것은 그녀의 말을 들었다는 증거라고 생각한다. 대다수의 남자들은 감정을 표현하는 여자들의 방식이 자기들과 다르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상대의 감정을 자기 잣대로 판단해 쓸데 없는 것으로 무시해 버린다. 이것이 논쟁에 불을 당긴다. 그러니 화성인과 금성인 다르다는 것을 알고 이야기를 듣다가 거부감이 느껴지면 그들은 금성과 화성의 언어사전을 펼쳐놓고 서로간의 오해를 줄이려고 노력해야 한다.

여자는 될수 있는 한 많이 베풀려고 한다. 그들은 자기 자신이 완전히 고갈되고 소진되기 전까지는 상대로부터 적게 받았다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한다. 그들은 남자들처럼 처음부터 점수를 계산하지 않는다. 그들은 아낌없이 모두 주고 남자도 그래 주리라고 믿는다. 하지만 남자는 그렇지 못하다. 그들이 아김없이 준다면 그것은 두사람의 점수가 엇비슷할 경우에 한해서이며, 얼핏 점수가 기우는 눈치면 그는 행동을 중지한다. 일반적으로 남자는 자기가 상대보다 조금 많이 주었다고 느껴지면 그때부터는 두 손 놓고 앉아서 자기가 준 만큼 돌려받아야 직성이 풀린다. 여자가 즐거운 마음으로 기꺼이 남자에게 베풀어주면 남자는 그녀 역시 점수를 매기고 있고, 그 결과 자기 점수가 상회하는 것임에 틀림 없을 거라고 추정한다. 자기가 더 적게 주고 있으리라는 생각은 좀처럼 하지 못한다. 점수가 자기 쪽으로 우세하다고 생각하는 이상 그는 절대 게속해서 베풀지 않는다. 남자는 만일 자기가 이미 넘치도록 주었다고 느끼는데 상대가 더 달라고 요구한다면, 설령 주더라도 분명 웃는 얼굴은 아닐 것이다.

여자들은 남자가 자기를 도와 줄 마음이 없어 보이면 그녀는 그가 자기를 사랑하지 않는거라고 오해한다. 심지어는 절대로 자기 족에서 먼저 도움을 요청하지 않고 그가 알아서 할때까지 기다림으로써 그의 사랑을 시험해 보려 할지도 모른다. 그가 아는 체하지 않으면 그녀는 그를 원망하게 된다. 그녀는 그가 요청이 있을 때까지 기다린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한다. 여자들은 자기가 굳이 요청하지 않아도 그가 알아서 헤아려 주기를 바란다는 것을 그는 깨닫지 못한다.


느낀점-재미있었다.


지호

제목-정지아 풍경 외 지은이-2006년 이효석 문학상 수상작가 2016년 1월 30일 유지호

by 고백 posted Jan 30,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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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정지아 풍경 외 지은이-2006년 이효석 문학상 수상작가 2016130일 유지호

 

브라운 부인-누군가가 브라운 씨 부부의 집문을 노크한 것은 그들이 저녁식사를 끝낸지 한참 후 거실에서 브라운 씨는텔레비전을 보고 있고, 브라운 부인은 어떤 잡지를 읽고 있던 중이었다. 아무런 방문객을 기대하지 않았던 두사람은 잠시 서로를 쳐다 보았다. 브라운 씨는 다시 텔레비전으로 눈길을 돌렸고 브라운 부인이 문앞으로 갔다. 자동차가 고장이나서 전화를 사용하게 해달라고 했다. 별생각 없이 문을 열자 십대 후반 아이가 매그넘 총을 들고 들어왔다. 사내아이는 두사람을 소파에 앉게 했다 총구를 잘 겨냥하지도 않았다. 따뜻한걸 마시고 싶다고 해서 허브티를 만들어 주었다. 점점 총에 대한 공포심은 사라져 갔다. 집에서 세사람이 아무말도 없자 남편이 원하는게 무엇이냐고 물어보았다. 사내아이가 대답을 못하자 남편이 돈을 원하는거냐며 지갑에 있는 돈을 건네주었다. 그러자 사내아이는 돈을 받아서 세보지도 않고 주머니에 넣고는 창밖을 바라보았다. 그때 초인종이 울렸다 사내아이는 문을 열어주었고 비슷한 또래에 여자아이가 들어왔다. 4명이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전혀 강도같다는 생각이 안들었다. 그런일을 저지르기에는 너무 순진해 보였다. 사내아이가 수줍게 브라운부인에게 치질약을 달라고 하였다. 더 이상 할말이 없자 사내아이가 배가 고프면 피자를 시켜주겠다고 했다. 브라운 부인은 이곳까지 피자배달이 안온다고 했고 원한다면 저번에 먹다남은 피자를 주겠다고 했다. 사내아이는 고개를 끄덕였고 피자를 맛있게 먹었다. 다먹은후 사내아이가 브라운 부인에게 피아노를 쳐달라고 했다. 브라운 부인이 피아노를 치자 사내아이는 거기에 맟추어서 노래를 불렀다. 그후 이야기를 하다가 남편이 배가 고프다고 했다. 그래서 한국식 치킨 스튜를 하러 부엌으로 들어갔는데 사내아이가 졸음을 이기려는 듯 총을 손가락에 방아쇠를 된체로 돌리기 시작하였다. 그런데 총이 발사되어서 사내아이에 허벅지에 박혔다. 그의 다리에서피가 샘솟았다.

위험한 독신녀-그녀는 변한 것이 없었다. 어깨를 덮는 긴 생머리를 찰랑거리며 약속장소에 나타난 그녀는 나에게 다가와 방긋 미소 지었다. 나는 넋을 잃고 그녀를 바라보았다. 품이 헐렁한 청재킷과 청치마, 드라이어로 한껏 세운 뒤 헤스프레이를 뿌려 닭벼슬처럼 빳빳하게 고정시킨 앞머리, 발목까지 올라오는 흰색 캔버스천의 농구화까지 양채리은 우리가 마지막으로 만났던 1989년의 모습 그대로, 내앞에 나타났다.

그녀에게 전화가 온건 며칠전 저녁이었다. 대학을 졸업한지 15년째였다. 그러나 같은고등학교와 같은 대학을 다녔을 뿐, 학창 시절에도우리는 개인적인 통화를 나눌 만큼 가까운 사이가 아니었다. 나보다 한 옥타브 높은, 여중생같은목소리였다. 나라는 것을 확인하자 그녀는 호들갑스러운 탄성을 뱉어냈다. 묻지 않아도 재잘재잘 작은 새처럼 지저귀는 그 버릇도 여전했다. 채린이 밝히는 자신의 근황은 내가 주워들었던 소식과는 많이 달랐다. 결혼을 해서 남편을 따라 미국으로 갔는데 남편이랑 이혼을 하고 한국으로 왔다는 것이다. 나는 맞장구를 쳐주고 다음에 보자라는 말을 하고 끊으려고 했다. 그말은 그냥 하는 말이었다. 하지만 채린이는 자신이 일요일날 시간이 괜찮다며 그때 만나자고 했다. 그래서 나는 알겠다고 하고 만나러 갔다. 그날 이후 우리는 게속 만났다. 채린이는 내가 회사일 때문에 바쁘다고 하면 회사로 찾아와서 나를 만나고 갔다. 어느날은 내가 선을 본 남자를 만나러 가는데 따라와서 술을먹고 맥주를 부은 적도 있었다. 나는 채린이가 정신장애가 있다는 것을 알게되었고 25살이라고 생각하고 있다는 것도 알게되었다. 그래서 나도 대학을 졸업하고 입지않은 옷들을 꺼내 입고 머리를 하고 채린이를 만나러 갔다.

 

느낀점-재미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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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리아 2016.02.03 14:05
    짧은 소설 재미있네. 그런데 결말이 없는것 같아. 소설이 그렇게 끝나는 건지 궁금하다.

지호

제목-대화의 심리학 지은이-더글러스 스톤외 2016년 1월 30일 유지호

by 고백 posted Jan 30,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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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대화의 심리학 지은이-더글러스 스톤외 2016130일 유지호

 

어려운 대화는 세가지 유형이 있다. 갈등대화,감정 대화, 정체성 대화이다. 첫 번째 갈등대화에 문제점은 서로 상대방의 문제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리고 자신의 생각을 전부 표출하지 않고 마음에 담아둔다. 그래서 서로 오해가 쌓이고 갈등이 심화되는 것이다. 우리가 자신을 문제로 보지 않는 이유는 실제로 자신이문제가 아니기 때문이기도 하고 자신의 말에도 일리가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반면에 상대방의 말에도 일리가 있다는 사실을 깨닫기 어렵다. 갈등대화가 일어나는 이유는 전적으로 상대방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상대방은 나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이럴 때 논쟁을 하게 되면 상대방의 의견을 경청하기 어렵다. 논쟁을 피하고 상대방의 이야기를 이해하려고 노력 할 때 사람들의 이야기가 제각각인걸 알면 도움이 될 것이다. 세가지 이유가 있는데 1.정보가 서로 다르다. 2.정보에 대한 해석이 서로 다르다. 3.자신의 결론에 이기심을 발휘한다이다. 또 갈등대화에서 중요한 것은 결과를 근거로 의도를 파악하지 말라이다. 대화에 핵심에는 감정이 있다. 문제가 되고 있는 최우선적인 이슈에 대해 이야기 하지 않고서는 효과적인 대화가 이루어질수 없다. 하지만 이 문제의 핵심에는 감정이 있기 때문에 아무리 능숙하게 의논한다고 해도 자신들의 감정에 대해 서로 털어놓고 얘기 하지 않는 한 결과는 만족스럽지 못할 것이다. 그래서 감정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모든 종류의 감정을 전부 표현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이 비난을 하는 것이 아니라 느낌을 표현해야 하는 것이다. 또 평가 하지 말고 서로 그냥 이야기 하는 것이 중요하다. 마지막으로 서로의 감정을 인정하라

대화를 할것인가 말것인가 고민하다 보면 대부분의 경우에는 할 필요가 있지만 때로는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다. 선택을 현명하게 잘하기 위해서는 다음의 세가지 경우에 해당하는 생각해보라 첫 번째, 갈등의 진정한 원인이 내안에 있을 때, 두 번째,문제에 대해 대화보다 더좋은 해결 방법이 있을 때, 세 번째 나의 대화목표가 합리적이 아닐 때 이다. 당신이 다른사람을 변화시킬수 없다는 사실을 명심하라 종종 무언가 중요한 할말이 있을 때 그것이 부담스럽기 때문에 당장 말해버리는 경우가 있다. 대부분의 사람은 최악의 타이밍을 피하는 정도의 배려는 한다. 그러나 타이밍에 대해 우리가 흔히 저지르는 또다른 잘못이 있다. 바로 히트 앤드 런이다. 예를 들어 어떤 직원이 지각을 했다고 하자. 그렇지 않아도 주의를 주려고 벼르고 있었기 때문에 당신은 아니, 또 지각이야? 라고 말한다. 그렇게 말하는 의도는 상대를 도와주기 위한 것으로, 당신의 메시지를 진심으로 받아 드리기를 바란다. 그러나 이말은 당신 자신에게는 위안이 될지 몰라도 상대방에게는 짜증스럽고 방어적 자세를 취하게 만든다. 그런식으로는 당신이 원하는변화를 이끌어내기 어렵다. 그때는 이렇게 하는 것이 좋다. 당신이 어떤것에 대해 말을 해야겠다고 생각한다면, 말하라 그런데 제대로 말을 하라. 제대로 말하기 위해서는 즉흥적으로 해선 안된다. 미리 계획을 세워서 말해야 한다. 중요한 문제를 의논하고 싶으니 십분이 필요하다든지 한시간이 필요하다든지원하는시간을 명시적으로 밝혀야 한다. 중요한 대화를 30초만에 할 수는 없으며 진저안 대화를 하지 않는다면 아무 소용이 없다. 히트 앤드 런식의 대화 밖에 할수 없다면 아예 말을 꺼내지 않느니 못하다.

 

느낀점-몇몇어른들이 뭔 말만 하면 짜증나고 방어적으로 되는게 왜 그런지 알았다. 여기서 말하는 안좋은 예들이 많았다. 난 절대 그렇게 되면 안된다고 생각했다. 책에 공감이 많이 되었다.


지호

제목-지식e8 지은이-지식채널e 2016년 1월 29일 유지호

by 고백 posted Jan 29,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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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지식e8 지은이-지식채널e 2016129일 유지호

 

클럽, 그이상의 클럽

엘클라시코(전통의 경기)는 바르셀로나와 레알마드리의 경기를 일컫는다. 두팀은 정치적 역사적 민족적 기반은 물론 선수 영입과 운영 방침에서도 대척된다. 바르셀로나는 칸테라를 통해 선수를 수급한다. 칸테라는 유소년 팀을 운영하면서 유망한 선수를 발굴하여 팀의 주력으로 길러내는 제도다. 어린 시절부터 호흡을 맟춘 선수들로 팀을 꾸리기 때문에 단단한 조직력을 구사하는데 유리하며 짧고 정확한 패스를 주고 받으며 공을 점유하는 바르셀로나 특유의 티키타카의 동력이기도 하다. 반면 레알 마드리는 갈락티코를 고수 한다. 스페인어로 은하수라는 뜻의 갈락티코는 외부에서 스타플레이어를 영입하는 제도다. 2011년 레알 마드리의 베스트 11은 이케르 카시야스를 제외하고 모두 갈락티코 출신이다. 2013년 시즌 마지막 엘 클라시코에서 레알마드리드가 2연승을 거두며 역대 엘클라시코 전적은 904887패로 레알 마드리가 근소하게 앞서고 있다.

빅 브라더

구글 독감 트렌드가 전세계 유행성 독감을 가장 먼저 감지할수 있었던 이유는 독감 증세를 보이는 사람이 늘면 독감 관련 단어의 검색량도 증가한다는 이유이다. 하루동안 발생하는 데이터 양은 250경 바이트로 600mb크기 영화 39억 편 분량이다.

악법 혹은 관용

줄리어스 시저 사망 이틀 후 원로원 회의의 판결은 암살자 마커스 브루투스에게 무죄를 주는것이었다. 이유는 로마의 정의를 위해서 브루투스의 행위를 잊어버리자는 것이다. 사면은 잊어버린다는 뜻의 그리스어에서 유래 되었다. 전쟁이 끊이지 않은 로마제국 시대에 사면제도는 점점 권력에 물들어갔고 황제가 전쟁영웅에게 하루 동안 전쟁포로들을 죽이거나 사면할수 있는 사면권을 허락했다. 15세기 영국에서는 새로 즉위한 헨리 8세가 절대권력을 과시하기 위해 죄목을 가리지 않고 36년 재임기간 동안 72000명을 사형시켰다.

아미시 프로젝트

하루 50통의 문자메시지를 보내고 250명의 멘션을 읽고 1시간 30분 온라인 친구와 교류하던 평범한 미국 대학생 제이크 라일리는 모니터 대신 진짜 세상을 들여다보기로 결심하고 문명의 이기를 거부하고 살아가는 아미시 공동체에서 이름을 딴 아미시 프로젝트를 시작한다. 컴퓨터와 핸드폰을 끊고 창문에 호박을 놓거나 친구의 집앞, 유리창, 눈밭에 메시지를 남기며 다양한 방식을 시도 했다. 결국 3개월에 실험이 끝난후 제이크는 함께 시간을 보내고자 하는 이들이 누구인지 알게 되었고 일상이 더 낭만적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느낀점-재미있었다.


지호

제목-지식e2 지은이-지식채널e 2016년 1월 23일 유지호

by 고백 posted Jan 23,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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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지식e2 지은이-지식채널e 2016123일 유지호

 

미니는 어디로

평화롭던 시절, 인간들이 나타나 우리들의 평화는 산산이 깨어져 어금니는 그들의 건반,도장,담잿재가 되고 귀는 그들의 식탁마감재가 되고 귀는 그들의 식탁마감재가 되고 다리는 그들의 한끼 별미가 되었다. 사라져가는대신 가격을 갖게된 생명들, 더빨리 사라질수록 더 높은 가격을 갖게되는 생명들, 전세계의 잔존오랑우탄 25000~3만마리 중에 생포 밀거래과정에서 매일 5~6마리의 오랑우탄이 죽는다. 동물보호단체의 노력으로 다시 풀려난다해도 정작 미니가 돌아갈 고향은 사라졌다. 미니와 그의 친구들이 살아가야할 서식지의 90프로 이상이 사라졌다.

보통사람

2007년 한국으로 입국한 탈북자는 1만여명, 그중 1047명이 청소년, 그나마 109명은 가족도 없이 홀로 탈출했다. 취학대상 탈북청소년 987명중 재학생은 43.7프로 중학생 14.1프로 고등학생 15.2프로가 중도에 학업을 포기, 탈북청소년 20프로가 따똘림을 받고 48프로가 학교에서 탈북자라는 사실을 숨긴다. 탈북자는 국제적으로 공식적인 난민지위를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특히 북한에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중국에서는 탈북자를 단순불법체류자로 간주, 탈북자들을 정기적으로 색출하여 강제 송환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탈북자를 돕거나 은신처를 제공하는 사람도 함께 처벌하고 있다.

주도 면밀한 희대의 사기꾼

찰리 채플린은 1889416일 런던에서 태어났다. 불우한 환경에서 성장하다가 10세에 극단에 들어가 점차 재능을 인정받아 17세 무렵에는 당시 영국 최고 희극 극단의 단원이 되었다. 미국 순회공연을 하며 만난 영화제작자 m.세넷의 도움으로 1914년 채플린의 첫영화가 개봉되었고 그후 채플린은 1917년까지 직접 각본,주연,감독을 겸하면서 수십편의 단편영화를 제작하였다. 유성영화 시대가 도래한 후에도 채플린은 씨티 라이트,모던 타임즈 등 걸작 무성영화를 잇따라 발표하며 현대문명의 기계만능주의와 인간소외를 날카롭게 풍자하였다.

 

느낀점-재미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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