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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호

제목-아로마 지은이-콘스탄스 클라센,데이비드하위즈,엔소니시노트 2015년 10월 24일 유지호

by 고백 posted Oct 24,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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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아로마 지은이-콘스탄스 클라센,데이비드하위즈,엔소니시노트 20151024일 유지호

1세기에 플리니우스는 향료의 기쁨은 인생에서 가장 우아하면서도 가장 명예로운 즐거움 중 하나라고 했다. 실제로 고대인들은, 향료에 많은 돈을 쏟아붓는 우리 현대인들좇차 거의 상상할 수 없을 만큼 강렬하게, 달콤한 향기를 즐겼다. 고대인들은 개인적 매력을 증대시키기 위해서뿐만 아니라 만찬에서 스포츠 행사,퍼레이드,장례식에 이르기까지 매사에 냄새를 중요한 요소로 이용했다. 우리시대에는 만찬이나 퍼레이드를 향료로 치장한다는 생각 그 자체가 극히 낯설어서 우스꽝스럽게 여겨질 정도다.

고대 세계에서 향기가 수행한 역할에 대해 우리가 알고 있는 사실들은 대부분 그리스와 로마의 작가들에게서 얻은 것이다. 그런데 고대 중동 지역은 유럽보다 여러 면에서 후각 전통이 더 발달했었다. 향료치장의 중요성은 향료가 단지 불쾌한 냄새를 가려 줄 뿐만 아니라 실제로 그 냄새를 물리친다고 생각했다는 사실에 있다. 나아가 향료는 치료 효과가 잇어 몸과 마음을 강화하고 자극한다고 믿었다. 그렇지만 이런 실용적 이유가 아니더라도 유럽인들은 향료를 통해 엄청난 쾌락을 얻었으며, 이 쾌락은 16,7세기에 그 표현이 절정에 이르렀다. 부유층은 편지에서 애완용 개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을 향료로 치장했던 것이다.

16,7세기는 후각에 관한 시,즉 향기 송시가 성행한 시기였다. 향기에 대한 시적 묘사는 자연의 향기, 도시 생활의 악취, 질병의 냄새등 무수히 많은 주제를 다루고 있다.

또 고대인들은 종종 요리에 향료를 첨가했다. 요리와 향료를 지나치게 섞었기 때문에 때로는 그것이 요리인지 향료인지 구별하기 불가능할 정도였다.

 

총평-전혀 알기 못했던 냄새라는 것에 대해 알게되었다. 냄새에 대해 관심이 있거나 나중에 냄새와 관련된 일을 하고 싶은 사람이나 지금 그런 종류에 일을 하는 사람이 읽으면 좋겠다


지호

제목-모딜리아니,열정의 보엠 지은이-앙드레 살몽 2015년 9월 19일 유지호

by 고백 posted Sep 19,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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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모딜리아니,열정의 보엠 지은이-앙드레 살몽 2015919일 유지호

 

모딜리아니는 1884년 이탈리아 토스카나 지방의 항구 도시 리보르노의 중산층 가정에서 막내로 태어났다. 모딜리아니는 크면서 미술에 관심을 가지고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상인이면서 독실한 신앙을 지녔던 모딜리아니의 아버지는 모딜리아니가 일찍부터 미술을 하는 것을 따뜻한 눈으로 보지 않았다. 하지만 모딜리아니 부인은 아들이 미술로 성공해 이탈리아 거장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거라는 희망을 가지고 아들에 대한 남편의 비난을 약화시키려고 노력했다. 모딜리아니는 어릴때부터 초상화를 잘그리는 것으로 유명했다. 그래서 작은 돈이나마 벌수 있었다. 모딜라이니에 대상을 충실하게 묘사하는 능력은 경이로울 정도였다.

모딜리아니가 청년이 되었을 때 피렌체로 미술공부를 하러가게되었다. 모딜리아니는 잘생겨서 마을 아가씨들이 슬퍼했다. 모딜리아니는 곧 피렌체의 자유누드화 미술학교를 등록하고 미술을 배웠다. 하지만 페렌체의 선생들은 유명한 사람들도 아니었고 영감이 있는것도 아니여서 모딜리아니는 집에서 보내주는 돈과 초상화를 그려주고 받는 돈을 모아서 로마로 옮겨갔다.

베네치아에서 모딜리아니는 소피치와 파피니를 만났다. 그들은 처음에 서로 자존심이 강했기 때문에 서로 대담한 태도를 보이지 못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이들은 조언자이자 예술에 생애를 건 동료가 되었다.

모딜리아니는 폴 알렉상드르 박사의 도움으로 앙데팡당의 회원이 되었다. 그래서 앙데팡당 전람회에 유화 여섯 점과 데생 한점을 출품했다. 또 브랑쿠시라는 조각가를 만나 1년동안 조각에 몰두하기도 했다. 두 번째 앙데팡당 전람회에 작품을 출품하면서 조각과 데생연습에 전념했다. 폴 알렉상드로 박사의 유화 초상화 작품을 몇점 그리기도 하였다. 그러나 주로 조각과 조각 작품의 스케치를 준비하면서 보냈다. 하지만 이렇게 의지하던 폴 알렉상드로 박사가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여 전쟁에 참전하자 모딜라아니는 위기찾아왔다. 사귀던 여자와 헤어지고 출품한 누드화들이 미풍양속을 해친다는 이유로 경찰이 압수했고 개인전 전시기간도 단축되었다. 모딜리아니가 34세가 되었을때는 건강까지 악화되어 니스로 옮겨왔다. 이때는 아기들이나 소년,소녀들을 주로 그렸다. 건강이 다시 회복된거 같아 다시 파리로 돌아와서 잔느라는 여인과 결혼했지만 결혼한지 1년만인 19201월달에 결핵성 뇌막염으로 창창한 나이인 36세의 사망했다. 이에 잔느는 사랑하는 남편을 따라 6층에서 투신 자살을 하였다. 후에 부부는 같은 무덤에 묻히게 되었다.


지호

제목-나의 산에서 지은이-진 크레이그헤드 조지 2015년 9월 12일 유지호

by 고백 posted Sep 12,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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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나의 산에서 지은이-진 크레이그헤드 조지 2015912일 유지호

 

나는 5월에 뉴욕을 떠났다. 가진 것은 주머니칼, 노끈 뭉치, 도끼 그리고 잡지를 팔아서 모은 40달러뿐이었다. 부싯돌과 쇳조각도 있었다. 나는 북쪽 캐츠빌로 가려고 했고 캐츠킬 산까지는 트럭을 얻어타고 갔다. 산을 올라가던 중에 나온 솔송나무 숲을 지났는데 아저씨에게 내려달라고 하고 내렸다. 아저씨가 여기 사냐고 묻길래 가출을 했다고 했다. 트럭아저씨는 비웃었다. 트럭 아저씨 뿐만이 아니었다. 모두가 나를 비웃었다. 나는 나뭇가지로 낚시대와 낚시 바늘을 만들고 썩은 나무에서 애벌레를 잡아서 미끼로 써서 낚시를 시작했다.배고픈 물고기들이 닥치는 대로 걸려주어서 송어를 5마리나 낚을수 있었다. 고기를 굽기 전에 잠자리를 만들었는데 텐트 비스무리하게 만들어져서 좋았다. 그리고 부싯돌로 불을 피울려는데 생각보다 잘안되 첫날에는 불피우기를 실패해서 고기를 먹지 못했다. 그래서 나는 다음날 도서관에 가서 불피우는 방법과 매사냥에 관한 책을 읽고 메모했다. 그래서 불을 피워서 송어를 구워먹을수 있었고 엄청 큰 나무를 파서 나무 속에 집을 만들었다. 그리고 매를 키우기 위해 절벽을 올라갔다. 절벽 끝에 새끼매들이 3마리 있었는데 수놈으로 보이는 놈을 잡아서 품에 넣고 내려왔다. 어미 매에 공격을 받아 매우 위험했지만 무사히 새끼 매를 데려올수 있었다. 매에 이름은 프라이트풀이라고 지었다. 프라이트풀에게 송어를 주면서 훈련을 시켰다. 프라이트풀은 무럭무럭 커서 제법 사냥을 할수 있게 되었고 휘파람을 부르면 나에게 왔다.

어느날 경찰차가 지나갔다. 경찰차가 지나갔던 자리에 가보니 어떤 아저씨가 누워있었다. 나는 탈옥수라고 생각했지만 대학교수였다. 나는 아저씨와 며칠을 같이 지냈는데 내침대를 내주고 나는 바닥에서 잤다. 바닥에서 잠이 매우 잘오길래 나는 점점 자연인이 되가는거 같다고 생각했다. 아저씨는 블루베리로 잼을 만들었고 도자기를 구워서 거기다 잼을 넣었다. 아저씨와 헤어질땐 매우 아쉬웠다. 점점 겨울이 다가왔다. 입고있는 옷은 매우 낡고 얇아서 겨울옷을 장만해야했었다. 그래서 덫과 프라이트풀을 이용해서 사슴을 잡기로 했다. 처음 사슴을 잡았을 때는 매우 기뻤다. 고기는 한번에 다 먹을수 없어서 남은 고기는 연기로 그을려서 훈제를 해놓고 가죽은 많이 씹어서 침대 시트로도 쓰고 옷도 만들어 입었다. 마침내 겨울이 왔다. 지나다니는  야생동물이 보이길래 먹이를 몇번 줬다. 그러니까 어느날 우리 집에 너구리,다람쥐,박쥐등 여러가지 야생동물들이 쳐들어와서 저장해놓은 식량을 빼먹고 난리를 쳐놨다. 그래서 나는 야생동물들에게 먹이를 주면 안된다는것을 깨달았다. 비축해놓은 식량과 자랑스러운 프라이트풀을 이용해 힘들게 겨울을 지냈다. 이제 봄이 왔고 눈이 녹기 시작했다. 나는 거북이를 잡아서 스프를 끓여먹었다. 그리고 3월달이 되니까 어머니와 아버지가 가족들을 데리고 산으로 찾아왔다. 내가 하도 집에 돌아오지 않으니까 자기들이 직접찾아온것이라고 했다. 아버지는 가족 모두가 누워서 잘수있게 나무 침대를 여러게 설치했다. 예전부터 준비한것 같았다. 그것으로 끝이 났다.

 

총평-이책은 숲에서 사는 경험을 할수있게 해주었고 한번도 해보지 못한일을 경험하니 무척 재미있었다.

  • profile
    드림 2015.09.14 21:30
    책의 일부를 발췌해서 독후감을 쓴거네.. 주인공이 '나의산'이라고 할만할만큼 잠깐 글을 읽었는데도 느낌이 전해 오는 것 같다.

지호

제목-하늘에 새긴 우리 역사 지은이-박창범 2015년 9월 5일 유지호

by 고백 posted Sep 05,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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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하늘에 새긴 우리 역사 지은이-박창범 201595일 유지호

 

우리 민족은 고대로부터 천문학을 사랑해 왔다. 옛 왕조들은 하늘의 과학, 천문학을 국가의 최고 학문 중의 하나로 중시해 왔다. 비록 우리 선조가 남긴 많은 천문 유산 중 오늘날까지 남아 있는 것은 극히 일부분이지만, 여전히 양적으로 풍부한 많은 미개봉 유물과 기록이 우리의 진지한 연구를 기다리고 있다.

한국에 대한 외국인들의 인식이 대개 그러하듯, 나도 처음엔 한국의 천문학사를 중국과 일본의 영향권 아래에 놓인 하나의 작은 징검다리 정도로 여겼던 것이다. 그러나 막상 연구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접한 한국의 전통 과학의 깊이와 한국인의 과학에 대한 열정은 나의 선입견을 적잖이 무너뜨렸다. 우리의 과학사 연구가 미진한 동안 나라 안팎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졌는가 하면 현존 세계 최고의 천문대인 첨성대는 천체를 관측하던 천문대가 아닌 종교적 재단이나 상징물이라는 시비에 휘말려 있다. 경주 불국사 석가탑에서 출토된 세계 최고의 목판 인쇄물인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이 중국의 것이라는 주장도 등장했었다. 우리 민족이 세계 최초의 발명품이라고 자랑거리라고 삼고 있는 측우기는 중국의 과학사 서적에 중국의 발명품인데 조선에서 발견되었다라는 식으로 쓰여있다.

우리나라에서는 눈으로 쉽게 볼 수 있는 5등급보다 밝은 별이 사계절 동안 1400개 이상 떠오른다. 우리가 지금 쓰는 별이름들은 서양에서 따온 이름이다. 하지만 우리의 선조가 부르던 별이름들은 현재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이런 서양이름과는 전혀 달랐다. 물론 그중에서 오늘날까지 사랑을 받으며 쓰이고 있는 이름도 극소수 있다. 대포적으로 북극성,북두칠성,견우성,직녀성 정도이다. 북한에서는 우리말로 된 별이름이 더 많이 쓰이고 있다. 그들은 서양식 별이름은 물론 한자로 된 천문학 용어까지도 순우리말로 바꾸어 사용하려고 노력할 만큼 우리말에 대해 각별한 애착을 보이고 있다.

우리의 선조가 얼마나 천문을 철저히 관찰해 온 민족이었는지는 태양 활동에 대한 고대 관측 자료에서도 잘 드러난다. 지구상의 모든 민족 중에 우리의 선조가 태양 활동에 대해 가장 많은 관측 기록을 남겼다면 믿기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국내에는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외국에서는 이미 인정된 사실이다. 우리 선조가 남겨 준 태양 활동에 관한 옛 기록으로는 태양흑점과 오로라에 관한 기록, 지국의 기후 변화 기록 등이 있다. 옛사람들이 태양의 움직임을 열심히 관측하고 기록한 것은 자연을 배우고 더불어 살고자 하는 고대인의 마음 때문이다.

 

느낀점-그동안 천문학 하면 서양의 유명한 과학자들만 떠올랐는데 우리나라 천문학에 관해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처음보는 내용이라 읽기도 요약하기도 힘들었다.

  • profile
    소망 2015.09.07 17:25
    어려웠는데도 잘 요약한 고백이 참 대견하네~이모도 우리나라의 천문학에 대해 별로 지식이 없었는데 기회가 되면 읽어보고 싶다.
  • ?
    고백 2015.09.12 17:49
    ㅎㅎㅎㅎ 감사합니다 근데 책이 매우 지루합니다 하하하

지호

파리대왕,호밀밭의 파수꾼 2015년 9월 5일 유지호

by 고백 posted Sep 05,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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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파리대왕 지은이-윌리엄 골딩 201595일 유지호

갑자기 어느 무인도에 소년들이 고립됬다.제일 먼저 정신을 차린 랠프라는 아이가 소라를 주어서 아이들을 불렀다. 그러자 아이들이 하나둘 모였다. 꼬마들도 있었고 다같이 똑같은 제복을 입은 성가대도 있었다. 투표를 통해 대장을 뽑기로 했고 대장은 처음에 소라를 불어 아이들을 불러모은 랠프라는 리더쉽이 있는 소년으로 뽑고 성가대 제복을 입고 있던 소년들이 사냥을 맡고 나머지 꼬마들은 잡일을 맡일을 맡았다. 그리고 구조요청을 하기 위해 불을 피우기로 했고 불 담당은 돌아가면서 하기로 했다. 하지만 성가대대원중 2명이 불피우기를 맡았을 때 불을 제대로 관리하지 않아 불을 꺼버리고 말았다. 그래서 대장인 랠프는 성가대 대원들에게 뭐라고 잔소리를 심하게 했고 이에 불만을 느낀 성가대 대장 잭은 성가대 대원들과 자신을 따르는 아이들을 데리고 무리에서 떨어져서 자기들끼리 살기 시작했다. 하지만 성가대원들은 불이 무척 필요했고 그러나 성가대 대원들은 불을 피울수 없었다. 대원들이 불을 피우기 위해선 돼지라는 별명을 가진 아이에 안경이 필요했다. 그래서 성가대 대원들은 밤에 랠프 패거리가 있는곳에 몰래 숨어들어서 돼지의 안경을 훔쳤다. 랠프와 다른 아이들이 안경을 찾으러 오자 성가대 대원들은 무력을 이용하여 돼지의 안경을 주지 않았고 대원들중 한명이 바위를 떨어뜨려서 돼지를 죽였다. 랠프는 분노했지만 성가대원들이 더 강력해서 아무것도 할수 없었고 두려움을 느낀 랠프의 무리들은 잭의 무리로 하나둘씩 빠져나갔고, 결국 남은 건 랠프 혼자였다. 잭의 무리는 결국 랠프를 죽이기로 마음먹고 랠프를 찾기 시작하였다. 랠프는 마지막까지 자기의 무리였던 쌍둥이에게 자신을 도와주라고 자신이 어디에 숨어있겠다고 말해주었는데 쌍둥이는 이걸 잭에게 일러서 랠프는 죽음 바로 직전까지 갔었다. 하지만 재빠르게 도망을 다니면서 버티고 있었는데 잭이 섬에 불을 지르기 시작하였다. 그건 모두 다같이 죽겠다는거나 다름없었다. 섬이 거의 다 타들어가고 있을 때 랠프는 이제 포기하려고 했지만 그때 마침 어른이 나와서 소년들 모두를 구해 주었다.

느낀점-읽은 지 오래되서 요약이 힘들었다. 우리 대기명당이 섬에 고립되면 이책보단 훨씬 더 잘 살수있을거 같다.

 


제목-호밀밭의 파수꾼 지은이-j.d. 샐린저 201595일 유지호

나는 꼴통이다. 하키팀에 소속되이었는데 하키 경기가 끝나고 돌아가는 지하철에서 장비를 통째로 두고 내리기도 하고 친구들과 싸우기도 하였다. 결국 문제를 많이 일으켜서 결국 퇴학을 당하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퇴학을 당했다는 것을 선생님께 알리기 위해 선생님의 집에 찾아가서 알렸고 선생님은 별 반응을 안보이셨다. 학교를 나오면서 나는 퇴학편지가 부모님 손에 들어가기 전까지 떠돌아다니기로 했다. 돈을 조금 챙기고 옷도 싸서 학교 기숙사를 나왔고 기차를 무임승차하고 어느 도시에 갔다. 나는 하고싶었지만 평소에 하지 못한일을 해보기로 마음먹었다. 그래서 호텔을 잡고 나이트에서 술을 마셨다. 그리고 다음날에도 다른 술집에 들어갔는데 전날보다 술맛이 좋아서 좋았다. 술을 다 마시고 호텔에 들어갔는데 엘리베이터보이가 여자에 관심이 있냐고 물어보았다. 여자와 자고싶냐고 물어보는것이었다. 나는 살짝 겁이 났지만 궁금하기도 하고 신기해서 관심이 있다고 하니 호텔 호수를 알려주면 여자를 보내준다고 하였다. 나는 내방 호수를 알려주고 방으로 들어왔다. 방에서 긴장을 하고 기다렸는데 노크 소리가 들렸다. 나는 긴장을 하고 떨리는 마음으로 문을 열어주니 내 또래의 여자아이가 있었다. 어쩌면 나보다 어린거 같기도 하였다. 돈을 벌기 위해 이런일을 하는 것 같았다. 그러자 나는 여자애가 너무 안쓰러웠고 갑자기 기분이 우울해졌다. 여자아이는 빨리 끝내자고 계속 말했다. 하지만 기분이 너무 안좋아서 그냥 계속 말을 걸었다. 그 여자아이는 대답하는 것을 매우 귀찮아 했다. 결국 시간이 돼서 보내주려고 했다. 시간이 다 돼서 약속된 돈을 지불하고 보내주려고 했는데 여자아이가 엘리베이터 보이가 말한 돈보다 더 달라고 하는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원래 약속된 돈을 주면서 나가라고 하였다. 여자아이는 계속 안나가려고 했지만 내가 계속 말하니 결국 여자아이가 나갔다. 얼마뒤에 노크 소리가 들렸다. 나는 설마 하면서 문을 열어 주었는데 엘리베이터보이가 들어와서 왜 돈을 안주냐고 하였다. 그래서 나는 니가 말한 돈만큼 주었다고 했더니 원래 더줘야 한다면서 나를 때렸다.

느낀점-책을 다읽지 못하고 읽은지 시간이 많이 지나서 요약하기 힘들었다. 굉장히 옛날 책이지만 요즘 학생들하고 비슷한거 같아서 재미있었다.


  • profile
    성실 2015.09.10 00:15
    고백이 인물열전에서 말했던 책이구나~ 결론은 좋지 않았다고 했는데... 모두 살았으니 해피엔딩인 것 같은데? 이모도 읽어봐야겠다^^

지호

다윈 지능 지은이-최재천 2015년 8월 22일 유지호

by 고백 posted Aug 22,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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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윈 지능 지은이-최재천 2015822일 유지호

 

다윈과 링컨은 분야를 초월하여 인류사에 가장 거대한 족적을 남긴 위인들이라는 점에 토를 달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공교롭게도 이 두사람은 1809212일 같은 날에 태어났다. 이 두사람은 50대에 들어서야 이른바 출세를 했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링컨도 51세에 대통령에 당선되었고 다윈도 50살에 종의 기원을 썼다.

지금은 생명과학이 잘나가는 분야로서 각광받지만 20세기 후반에 들어서기까지 과학의 꽃은 여지없이 물리학이었다. 물리학자들은 아이작 뉴턴과 아이슈타인의 확인되지 않은 IQ수치를 들먹이며 생물학자중에 그들과 대적할 사람이 있냐고 무시했다. 온갖 수준의 원리들로 중무장한 무리학과 달리 생물학은 태생적으로 원리를 앞세워 사물의 특성이나 현상을 가지런히 정리하기보다는 다향한 관찰 결과들을 풍성하게 쌓는 걸 더 좋아한다. 생물의 세계는 서둘러 원리로 정리하기에는 너무나 복잡하고 다양하다.

다윈이 발표한 진화가 일어나기 위한 조건은 다음 네 가지가 있다.

첫째,한 종에 속하는 개체들은 각자 다른 형태,생리,행동 등을 보인다. ,자연계와 생물 개체들 간에 변이가 존재한다. 둘째 일반적으로 자손은 부모를 닮는다. 셋째 많은 개체들이 태어나기 때문에 먹이등 한정된 자원을 놓고 경쟁 할 수밖에 없다. 넷째 주어진 환경에 잘 적응하도록 도와주는 형질을 지닌 개체들이 보다 많이 살아남아 더 많은 자손을 남긴다.

다윈의 자연 선택론에 대한 오해 중 가장 뿌리 깊은 것은 아마 변이의 생성과 소멸에 관한 의문일 것이다. 다윈이 말한 진화의 필요충분조건의 으듬이 바로 변이의 조건이다. 변이가 없으면 선택도 없다. 자연선택이 진정 여러 변이 중 보다 우수한 것을 선택하는 과정이라면, 그런 과정이 여러번에 걸쳐 거듭됨에 따라 그 개체군에는 궁극적으로 나쁜 변이들은 다 사라지고 좋은 변이들만 남으리라고 생각할수도 있다. 만일 궁극적으로 좋은 변이들만 남는다면 그들을 가지고 무슨 선택이 가능할 것인가 그래서 이 이론은 스스로 제 살을 깎아 먹는 자기모순적 이론이라는 낙인이 찍혔다.

오랜 세월 자연 선택에 의해 다듬어지면 생명체는 결국 완벽에 가가워지는 방향으로 진화할 것처럼 느껴진다. 빅토리아 시대의 영국 종교계도 다윈의 자연 선택이론이 궁극적으로 신이 당신의 형상대로 창조한 완벽한 인간이 탄생하는 과정을 설명하는 이론이라고 생각하여 큰 반발없이 다윈을 받아들인 것이다. 하지만 자연선택은 생명체를 완벽하게 만들어 주는 매커니즘은 난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 이유를 살펴보자면 환경이 언제나 일정하지 않기 때문에 완벽을 추구하기는 어렵다. 지구 온난화가 무서운 속도로 지속되는 지금 자신의 자손을 더운 날씨에 잘 견디는 방향으로 진보시키는 작업을 하고 있다고 하자 지구 온난화가 지속된다면 어쩌면 성공적인 전략이 될수도 있겠지만 지구의 기온이 오르는 듯하다가 졸지에 빙하기를 맞았듯이 몇 년 후 갑지기 기온이 뚝떨어지면 더위에 잘 견디도록 준비시킨 자손들은 하루아침에 절멸하고 말지도 모른다.

 

느낀점-모르는 낱말들과 어려운 과학 용어를 사전을 찾지않고 읽어서 책 내용을 잘모르겠다. 책 내용을 모르니까 다 중요해 보여서 요약하기가 힘들었다.


지호

여름 웍샵을 마치며

by 고백 posted Aug 09,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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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웍샵을 마치며

 

성원갈비에서 고기를 먹고 예베실에서 입소식을 하며 짧은 시간인 만큼 열심히 하겠다고 한 것이 어제였다고 생각할만큼 시간이 빨리 지나갔다. 비록 합숙 중간중간에 남는 시간을 계산할때는 매우매우 많이 남았다고 생각하고 절망했는데 이제 끝난다고 하니 살짝 아쉽긴 하지만 매우 좋다. 이번 웍샵에는 처음으로 학교 공부에 관한걸 배웠다. 그동안에 합숙은 학교공부에는 도움이 안되는것들이라 학교에 가서 시험을 보면 안좋은 점수를 받아서 친구들이 방학동안 공부를 그렇게 많이 했는데 점수가 그게 뭐냐고 놀렸었는데 이번합숙에서는 학교공부하는법도 배웠는데 나가서 배운걸 열심히 실천해서 방학동안 열심히 공부했다고 말하고 교회에서 합숙하는게 놀림거리가 되고,합숙하는 것을 불쌍하게 생각하지 못하게 해야겠다. 이번 합숙을 하면서 느낀 것은 고3이 생겨서 그런가 대기명당이 매우 안정적이고 팀웤이 잘맞는다고 느꼈다. 독서토론을 하기 위해 파리대왕이라는 책을 읽었는데 그책 내용이 아이들끼리 무인도에 고립되서 갈등이 발생하는 내용이었다. 근데 난 파리대왕을 읽을때마다 느낀 것은 우리끼리는 무인도에 떨어져도 잘살수 있겠다였다. 지금 중학교 애들이 내가 중학생때보다 모든 면에서 잘하고 있는거 같아서 볼때마다 놀란다. 하기 싫은 일들을 서로 미루고 조금이라도 일을 안하려던 옛날을 생각하면 정말 끔찍했던거 같다. 대기명당 애들 모두에게 고맙다. 또 지금 서포터즈 분들도 최고 정예 어른들로 모인거 같다. 내가 혼자 생각해봐쓴데 지금 서포터즈분들보다 잘할거 같은 어른들은 없는거 같다. 지금 어른들이 서포터즈 분들을 맡아주실 때 대기명당을 하는 것이 큰 축복이라고 생각했다. 이번에는 솔직히 아웃도어도 없어지고 매일 치던 포커도 사라져서 너무 힘들었다. 합숙을 버틸수 있던 가장 큰 이유는 조금만 있으면 아웃도어를 갈 수 있어’‘조금만 기다리면 포커를 칠 수 있어라는 강한의지로 버텼는데 이번에는 없다고 했을 때 너무 절망스러웠다. 그래도 그나마 파워에이드와 과일들과 다양한 야식먹는 재미로 살았던거 같다. 복싱끝나고 목마른 것을 참고 샤워를 하고 와서 마시는 파워에이드는 너무너무 시원하고 맛있었고, 아침에 말씀드리면 점심에 생겨있는 복숭아들은 정말 달았다. 그리고 아모이모께서 챙겨주시는 야식들은 우리 의견을 적극적으로 반영해주셔서 맛있는 메뉴 구성과 혹시 못먹을 위기에서도 오늘은 굶어라고 하실수도 있는데 어떻게든 먹을수 있게 해주신게 너무너무 감사했습니다. 그리고 여름 풍산복싱장은 거의 사우나 급으로 습하고 더웠다. 정말 아이스크림이 된 느낌이여서 땀이 뚝뚝 떨어졌다. 처음으로 풍산에서 스파링을 했는데 훅이랑 어퍼는 못썼지만 동생과 오랜만에 스파링을 할수 있어서 좋았다. 코치님과도 짧은 시간동안 정이 많이 들었는데 아쉽다. 이번에는 고등학교를 들어가고 처음 합숙이었는데 고3형들이 빠져서 내가 거의 반장을 맡아서 처음에는 부담도 많이 됬지만 점점 적응도 되었고 친구들과 동생들이 내말을 되게 잘들어주어서 좋았다. 비록 욕도 많이하고 갈구기도 많이 갈궜는데 그래도 형이라고 말을 잘들어줘서 앞으로 형들이 나가도 문제 없을거 같다. 통크고 당당하고 밝고 정직하고 용기있게!! 대기명당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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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백 2015.08.09 13:48
    급하게 쓴거라 어색해도 이해해주세요 ㅎㅎ
  • profile
    맑은 2015.08.10 00:42
    고백아~^*^
    넘 재미있게 잘 읽었어~!후후~~~^*^
    너희들이 산 모습이 그려지며, 저절로 미소가 지어지는군.
    너희들은 어떤 여건에서도 멋지게 살아낼거라고 생각해~!!!
    고1로서 동생들을 이끈 고백~ 짱~~~^*^
  • profile
    빌립 2015.08.10 22:58
    참 멋있는 고백!
    빌립님은 너의 팬이야^^
  • profile
    사랑 2015.08.12 14:29
    고백의 멋진 화이팅에 가슴이 찡하다... 써포터즈 어른들과 대기명당 형님, 동생들 모두 감사할 줄 알고 챙기며 살아가는 모습이 벌써 든든한 반장을 보는 것 같아 좋구나. 어려운 합숙기간동안, 긍정적인 생각으로 열심히 살아서 밝은 모습을 보여줘서 고맙다. 멋진 형님, 잘 따라주는 동생들이 있어서 대기명당은 언제나 통크고 당당하고 밝게 살겠구나!!
  • profile
    성실 2015.08.13 00:03
    고백이 이번 합숙을 통해 무엇을 얻었는지 잘 보여주는 글이다. 대기명당 아이들과 좋은 팀웍으로 더욱 멋지게 살 모습이 그려져 읽는 내내 기분이 좋았어~ 고백 화이팅!

지호

제목-마더 데레사의 단순한 길 지은이-마더 데레사 2015년 7월 11일 유지호

by 고백 posted Jul 11,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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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마더 데레사의 단순한 길 지은이-마더 데레사 2015711일 유지호

 

기도

마음속에 침묵의 공간을 만드십시오. 그곳에서 기도를 시작하십시오. 그리고 그곳에서,자신을 내주십시오.

우리 모두는 침묵하고 관상하는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특히 모든게 너무 빨리 변하는 대도시에 사는 사람들은 더욱 그렇습니다. 기도는 자녀를 위해서 필요하고 가정 안에서 필요합니다. 사랑은 집에서 시작됩니다. 함께 기도하는 것이 중요한 것은 바로 그 때문이지요. 함께 기도하면 함께 머물게 될 덧이고, 그러면 하느님께서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을 사랑하시듯 여러분도 서로를 사랑하게 될 것입니다.

믿음

믿음은 기도를 통해 성장합니다. 자신을 알고 자신을 믿는다는 것은 하느님을 알고 하느님을 믿는다는 것을 의미하지요.

만일 당신이 하느님을 믿지 않는다면 사랑의 일을 함으로써 남을 도울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일들의 열매는 당신의 영혼속으로 스며드는 특별한 은총이 됩니다. 그런 뒤에 당신은 서서히 마음을 열게 되고 하느님을 사랑하는 기쁨을 원하게 될것입니다.

죽음은 언제든 찾아올 수 있습니다. 어제는 지나갔고 내일은 아직 오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매일매일을 오늘이 마지막 날인 것처럼 살아야 합니댜. 하느님께서 우릴 부르실 때 깨끗한 마음으로 죽을 준비가 되어 있도록 말입니다.

사랑

아픔이 느껴질 때까지 사랑하십시오. 사랑의 성공은 사랑함, 그 자체에 있습니다. 사랑의 성공은 사랑함의 결과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날 세상에서 가장 큰 질병은 결행이나 나병이 아닙니다. 그것은 그 누구도 원치 않는 존재가 되는 것, 사랑받지 못하고 보살핌을 받지 못하는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육체의 질병은 약으로 치료할 수 있지만, 외로움과 실망과 절망에 대한 유일한 치료제는 사랑입니다.

우리가 가난한 이들을 측은하게 바라보고 있지는 않은지요? 그들은 먹을 것에만 굶주린 것이 아니라, 인간으로 인정 받는 데 굶주려 있습니다. 그들은 인간적 존엄성에 굶주려 있고, 우리가 대접받는 것처럼 대접받는 데 굶주려 있습니다. 그들은 우리의 사랑에 굶주려 있습니다.

봉사

자신의 상처받기 쉬움보다 타인의 상처받기 쉬움에 더 관심을 기울일 때, 그때 나는 덜 상처받게 됩니다.

아픈 사람이 약을 원하거든 약을 주십시오. 위로를 구하거든, 위로해 주십시오. 우리는 모두 하나님의 자녀들이므로 그분의 선물을 나누는 것이 중요합니다. 세상에 왜 문제가 있는지에 대해서는 신경 쓰지 마십시오. 그저 사람들의 요구에 응답하십시오.

평화

우리는 행복해지기 위해 태어났습니다. 순간에 행복하십시오. 그리고 지금, 행복하십시오

사랑의 일은 항상 평화의 일입니다. 타인들과 사랑을 나눌 때마다 평화가 당신 자신과 그들에게 찾아온다는 것을 당신은 알게 될 것입니다. 평화가 있는 곳에 하느님이 계십니다. 하느님은 그렇게 우리의 삶을 건드리십니다. 그리고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가슴에 평화와 기쁨을 부어넣음으로써 우리에 대한 사랑을 보여주십니다.

 

느낀점-난 행복한 것 같다. 재미있었다.

  • profile
    성실 2015.07.12 02:13
    고백이 행복한 것 같다 하니 참 좋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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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망 2015.07.13 23:35
    아픔을 느낄때 까지 사랑하라! 그 말뜻을 몸으로 이해하는 날이 오겠지!

지호

제목-전태일 평전 지은이-조영래 2015년 6월 20일 유지호

by 고백 posted Jun 20,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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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전태일 평전 지은이-조영래 2015620일 유지호

 

인간 시장의 현장, 평화시장, 1966년 전태일은 그 속에서 하루하루의 생명을 팔고 있었다. 매일매일 고통을 겪고 동료노동자들의 참상을 보면서도 그 고통을 없애기 위해여 무엇을 할수있는가를 생각할 여유가 없었다. 그러나 지렁이도 밣히면 꿈틀한다는 것이 생명의 법칙이다. 전태일도 점점 억울하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그가 평화시장에 발을 디딘지 2년 남짓한 세월이 흐른 때였다. 그래서 전태일은 억울하다고 생각하는 데서 그치지 아니하고 이때 처음으로 그 억울함을 없애기 위해여 무엇을 할것인가를 생각해보고 그것을 행동으로 옮긴 데 있다. 그것은 미싱사의 생활을 그만두고 재단사의 길을 택하는 것이다. 재단사가 되려면 재단보조부터 해야했고 재단보조의 월급은 3000원이었고 당시 전태일이 미싱사 일을 하면서 받는 월급은 7000원이었다. 하지만 재단사가 되면 사장에게 항의를 하고 시다편을 들어 조금이라도 작업환경이 나아질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당시 여섯식구중에 돈을 벌어오는 사람은 전태일이 전부였기에 전태일이 벌어오는 돈이 무척 중요하였다. 가족들에게 미안하지만 전태일은 어린나이에 노예처럼일하는 아이들을 두고 볼수 없었다. 결국 힘들게 재단사가 되었지만 나아지는 것은 없었다. 업주 몰래 시다들의 일을 대신해주고 자신의 차비를 털어 1월짜리 풀빵을 사주며 2시간이 걸리는 거리를 걸어다녔다. 그러다 어느날 근로 기준법을 보게 되었다. 전태일은 충격을 받았다. 평화시장에서 지며지는 것이 하나도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법이 있다는 것을 아무도 몰랐고 그래서 아무말도 못하고 노예처럼 혹사당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전태일은 근로기준법을 알려서 준수하게 해서 더 이상 노동자들이 조금 더 편하게 일을 할수 있도록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일단 옛날에 노동투쟁을 해본 아버지에게 아는 걸 다 말해달라고 하였다. 아버지는 처음에는 말해주지 않겠다고 했지만 전태일은 자기가 알려주지 않아도 어떻게든 알아낼걸 알기에 나중에는 자기가 아는 것을 다 말해주었다. 태일은 근로기준법을 열심히 공부하였다. 그리고 재단사들을 모아 바보회를 조직하였다. 노동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목적으로 만들었지만 막상 관심을 가지는 사람들은 없었고 그냥 친목을 도모 하러 온사람들이 많았다. 그래서 바보회는 활동을 하지 못했고 노동문제 이야기가 나와도 조금 듣다가 어느새 이야기 화제가 바뀌었다. 이에 전태일은 사람들도 점점 나갔다. 이에 전태일은 모임이름을 삼동회를 바꾸고 사람들도 새로운 사람들을 모았다. 전태일은 시다들에 대한 개인적인 온정, 진정과 호소,모범기업체 설립 구상 등등 여러 가지 방법을 모색해보았으나, 아무 것도 해결책이 될수 없다고 생각했고 결국은 데모를 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여러번 데모를 준비했지만 내부에 밀고자가 있어서 번번히 실패했고 마침내 19701113일을 결전에 날로 잡았다. 어머니는 전태일에 행동이 수상해 몇 번이고 말렸지만 전태일을 말릴수는 없었다. 마침내 1113일이 되었고 노동자들이 약 500명정도 모였다. 전태일은 친구들에게 먼저가라고 하고 자신은 조금 있다가 간다고 하였다. 그리고 조금있다가 전태일은 내려왔는데 친구인 개남에게 성냥불을 켜서 자신에 몸에 갖다 대어달라고 부탁했다. 개남은 설마 하고 생각했지만 성냥불을 갖다 대주었고 그러자 불길이 확 치솟았다. 친구들에게 먼저가라고 한뒤 자신은 전에 준비한 석유를 온몸에 끼얹고 왔던 것이다.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고 소리치며 쓰러졌다. 너무 갑자기 일어난 일이라 아무도 불을 끌 엄두를 못내었고 그러다가 한 친구가 뛰어와서 잠바로 불을 껐다. 이 소식을 들은 노동자들은 미친 듯이 울부짖으며 데모를 벌이기 시작했다. 플래카드가 없었지만 그런 것 따위는 필요없었다. 몇몇 삼동 회원들이 손가락을 깨물어서 혈서를 썼고 그 피의 플래카드를 펼쳐 들고 분노에 미친 젊은 노동자들은 긴급 출동한 기동경찰과 전투를 벌였다. 그들은 경찰의 곤봉 아래 머리가 깨어지고 구둣발 아래 짓밟히면서 경찰서로 개처럼 끌려갔다. 한편 병원으로 옮겨진 전태일은 도저히 치료를 할수 없었다. 결국 그는 어머니에게 어머니, 내가 못다 이룬일 어머니가 꼭 이루어주십시오라고 말하고 눈을 감았다.

 

느낀점-전태일이라는 사람은 정말 불행하게 산 것 같다. 남들을 위해 희생하는 모습이 멋있었다.


지호

제목-전태일 평전 지은이-조영래 2015년 6월 13일 유지호(미완성)

by 고백 posted Jun 13,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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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전태일 평전 지은이-조영래 2015613일 유지호

 

1948826일 이제 막 일제로부터 해방된 우리 민족이 다시금 강대국의 싸움 희생물이 되어 전 세계가 좌우대립 속에 소용돌이치고 있을 때, 전태일은 대구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선상수씨는 피복 제조업 계통의 봉제 노동자였는데, 나이가 들면서 집에다 미싱 한두 대를 차려놓고 자작으로 피복 제조업일을 하였다. 하지만 소규모 피복제조업이란 수요의 변동이나 외상 거래의 불안에 영향을 크게 받아 매우 투기성이 농후한것이여서 여러차례 실패를 거듭하였다. 이로 인해 술을 마시고 가족들을 폭행했다. 어머니 이소선은 연약한 몸이었지만 매우 명석한 두뇌와 강인한 정신 가진 사람이었다. 자존심이 강한 그녀는 자식들을 올바른 사람으로 키우기 위하여 매우 엄한 교육을 하였다.

전태일이 여섯 살이 되던해, 부산에서 양복집을 하던 아버지가 염색을 맡긴 원단이 장마에 상해버려서 쫄딱 망하자 기술은 있으니 서울로 가면 어디든지 취직할수 있으려니 하는 막연한 생각으로 그해 여름에 가족들을 이끌고 서울로 무작정 상경하였다. 태일의 아버지는 일자리를 찾아 헤매고 있는 동안 가족들은 다리 밑에서 노숙을 하면서 석달 가까이 동냥을 하여 연명하였다. 2년동안 가족들이 닥치는 데로 일하니 제봉틀 한 대를 살만큼 되어서 태일의 아버지는 다시 일을 할수 있게 되었다. 안정된 일이 생기자 아버지는 술도 끊고 열심히 일을 하여서 재봉틀도 몇 대 더 늘리고 미싱사까지 두면서 사업을 벌이게 되었다. 하지만 사기를 당해 모든 것을 잃고 다시 술을 먹고 가족들을 때리기 시작했다. 태일은 잠깐동안 학교를 다닐수 있었는데 점점 집이 망해가자 학교를 도저히 다닐수가 없었다. 이에 태일은 공부가 너무 하고 싶어서 학교를 안가는 시간에 닥치는 데로 일을 하였지만 여섯 식구가 살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그래서 태일은 아버지의 옷을 몇벌 챙겨서 가출을 했다 그의 나이 13살이었고 1년동안 가출을 하여 거지꼴로 생활하다가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돌아오자 잠시 동안 고등학교에 다닐수가 있었고 태일은 이시기를 가장 행복한 순간으로 꼽는다. 학생생활이 1년도 되지 않았을 때 아버지는 학교를 그만두고 집에서 전적으로 재봉일만 돌보라는 명령을 내렸다. 하지만 태일은 공부가 너무나도 하고 싶었고 그래서 그 무서운 아버지의 명령을 거역하고 하굑를 다녔다. 어머니도 자신의 편을 들었고 그러자 아버지는 또 다시 폭음을 하고 구타를 하기 시작했다. 태일은 자신이 공부를 하기 위해선 다시 집을 나가는 방법밖에 없다고 생각하고 두 번째 가출을 했다. 동생 태삼이를 데리고 무작정 서울로 올라왔다. 방을 얻을 돈이 없어서 사과 궤짝 열두 개를 사서 두 형제가 발을 오르리면 잘수 있을 만하게 상자를 만들었다. 하지만 궤짝은 어딜가도 쫒겨났고 일자리는 없었다. 태일은 이제 평생 공부는 못한다고 생각했고 사흘만에 집으로 돌아갔다. 집 상황은 좋지 않았다. 아버지의 구타가 계속 되었고 도저히 여섯식구는 밥을 먹고 살수 없었다. 이에 어머니는 자신이 집을 나가 식모살이를 하면 입이 하나 줄을테니 돈을 벌어온다고 하고 집을 나갔다. 태일은 집에서 도저히 견딜수가 없어서 어머니를 찾기 위해 집을 나왔다. 등에는 보름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엄마한테 데려다달라고 울면서 보채어 온 막내동생 순덕이가 업혀 있었다. 하지만 넓은 서울 바닥에서 어떻게 어머니를 찾을수 있을까? 날씨는 추웠고 일자리는 없었고 그들은 도저히 서울에서 버틸수가 없었다. 열여섯살의 태일은 어린 동생을 버려야했다. 순덕이를 길바닥에 버렸고 순덕이는 고아들과 같이 생활하게 되었다. 마침내 어머니를 만났고 동생 태삼이도 아버지에 매질을 견디지 못하고 서울로 가출을 했고 우연히 태일과 만나게 되었다. 그리고 마침내 아버지와 순옥이가 서울로 올라와서 결국 다같이 살게 되었다.

 

느낀점-전태일 만화책을 봤을때는 아무렇지도 않았는데 책으로 조금 더 자세히 읽어보니 너무나도 불쌍하다는 생각을 했다.


지호

제목-소기업 사장학 지은이-이시노 세이이치 2015년 6월 6일 유지호

by 고백 posted Jun 06,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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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소기업 사장학 지은이-이시노 세이이치 201566일 유지호

 

내가 젊었던 시절 혼다는 이미지는좋았지만 자동차 업계의 변두리에서 뱅뱅 돌고 있었다. 그 혼다가 오늘날 일본에서 업계3위의 자동차 회사가 되리라고는, 게다가 세계 최우수 경영자로 가와모토 사장이 선정되리라고는 아무도 상상하지 못했다. 일본의 거품경제는 19902월 주가 폭락으로 붕괴되기 시작했다. 많은 대기업들이 타격을 입었고 혼다도 마찬가지였다. 자동차를 만들어도 팔리지 않자 다른 기업과 합병설이 돌기도 했다. 당시 혼다는 왁자지ᄁᅠᆯ한 경영을 하고 있었고 사장실도 없고 임원들도 큰방에서 함께 일하는 등 별도의 방이 없었다. 필요할때는 임원들이 큰소리로 토론을 하기도 했다. 이에 가와모토 사장은 혼다가 임원들이 결정해야 할 것을 아랫사람에게 떠넘겨 결정하게 하고, 자신은 그 위에서 유유 자적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이런 경영 방식을 버리고 새로운 경영을 도입했다. 그 결과 지금의 혼다가 탄생하였다.

작은 회사의 사장은 독재자인게 좋다. 사장이 독재가 아니라면 누가 귀한 돈을 빌려주겠는가. 따라서 작은 회사를 경영하는 사람은 독재가 되지 않으면 안된다. 독재자야말로 지향해야 할 대상인 것이다. 자신이 알지 못하는 일이 회사에서 일어나고 있다면 호통을 치는 것이 좋다. 책임을 질사람은 사장밖에 없다.

모든일에는 정도가 있다 지나친 것은 미치지 못함만 못하다라는 말이 있듯이 뭐든지 지나치면 안된다. 사원들에게 배푸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내가 경영하는 회사도 휴일이나 급여가 평균보다는 분명히 많고 간부나 사원들의 권한과 자유도 같은 업종의 회사들보다 대폭적으로 부여하고 있다. 하지만 지난해 직원 가운데 세 명이나 회사를 떠난다. 이것이 의미하는 것은 보수를 아무리 많이 줘도 떠날 사람은 떠난다는 것이다. 급여나 휴일이 적으면 곤란하다는 정도의 불만 요건의 지나지 않는다.

사장이 하는 일이란 직원들이 일을 잘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고 또 즐겁게 회사에서 일할 수 있는 시스템을 정비하는 것이다. 하지만 사장들은 일을 잘 맡기려하지 않는다. 이유가 무엇일까? 첫 번째 이유는 직접하는게 빠르기 때문이다. 사장이 하면 5분 안에 해결할 수 있는 것을 간부나 사원들에게 맡기면 2,3일 걸리는 경우가 있다. 그렇지만 이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결정권을 갖고 있는 사람이 전면에 나서서 빨리 해결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렇지만 자기가 하면 빠르게 된다고 득의양양해 하는 사장이 적지 않다. 2,3년 정도의 시간이 걸리더라도 이 단계를 거치지 않으면 사람은 성장하지 않는다. 구조적으로 클수가 없다. 사장에게는 전체를 볼수 있는 시야와 권한이 있다. 5분안에 해치우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두 번째 이유는 자신의 권위가 손상받을까 봐서이다. 바꿔 말하면 사람들은 본디 일을 맡은 사람 쪽으로 모이게 되어 있다. 세 번째 이유는 맡기면 실패할 거라는 생각 때문이다. 말은 아주 달변이지만 말만큼 일을 제대로 하는 경우를 그다지 보지 못했다. 성공하면 자신의 아이디어라고 말하고, 실패하면 자신과는 상관이 없는 일인 양 행동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사원의 경우도 50대의 접어들면 그 나름대로 경험도 많고, 한편으로는 체력이 떨어지기 때문에 말로 일을 처리하려는 사람이 많다. 몸으로 부딪히며 일을 하기보다는 대충대충 말로 해결하려고 한다. 이런 사람이 거만한 표정을 짓기 시작하면 회사는 정체 상태에 빠지게 된다. 일을 맡기는 것에는 시간이 걸린다. 사장이 하면 5분이면 끝나는 일을 다른 사람에게 맡기면 2,3일씩 걸리기도 한다. 하지만 사장은 참고 견뎌야한다. 따라서 여력이 있을 때 일을 맡기는 것이 좋다. 경영권을 후계자에게 넘기는 경우도 빨리 시작하는 편이 좋다.

 

느낀점-우리 대기명당 이야기와 비슷한점이 많아 흥미로웠다. 여행계획을 짤 때 목사님이 짜시면 하루면 다 짜실수 있다고 하셨는데 엄청난 고생을 하시면서까지 우리에게 맡기는 것은 조금이라도 더 성장하라는 것인거 같고 앞으로는 목사님 고생시키지 말고 열심히 해야겠다.

  • profile
    마리아 2015.06.09 08:34
    느낀점이 많구나 ㅎㅎ 이모도 동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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