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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아

거꾸로 읽는 세계사

by 늘픔 posted Jun 27,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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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꾸로 읽는 세계사 유시민 2017.06.25. 양진아
어느 날 프랑스 육군 참모본부 정보국 요원이 프랑스 주재 독일대사관 우편함에서 편지 한 장을 훔쳐냈다. 그 봉투 안에는 프랑스 육군 기밀문서의 내용을 자세히 적은 명세세가 들어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범인이 붙잡혔다. 참모본부에서 일하고 있던 알프레드 드레퓌스 대위였다. 정보국 수사관들은 글시가 드레퓌스의 것과 같다는 이유로 드레퓌스를 스파이로 점찍었다. 드레퓌스는 아주 평범한 육군 장교였고 남다른 점이 있다면 유태인이면서 프랑스를 조국으로 섬겼다. 진짜문제는 드레퓌스의 글씨가 문제가 아니라 그가 유태인이라는 사실이었다. 드레퓌스 재판정에 섰고 물론 군사재판을 공개하지 않았다. 그러자 몇몇 신문사가 들고 나섰다. 이 신문들은 드레퓌스의 간첩행위에 대한 온갖 뜬소문을 날마다 대문짝만하게 실었다. 그래서 드레퓌스는 재판을 받기도 전에 반역죄인이 되었다. 군사법원은 비밀재판을 열어 드레퓌스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드레퓌스에게 죄가 없다면 군부의 체면이 떨어지게 된다고 생각하여 참모본부 상관들은 여러 가지 거짓 증거를 제출했다. 드레퓌스는 외딴 섬으로 끌려갔고 조그만 돌감옥에 갇혔다. 드레퓌스는 짐승 취급을 받으면서도 다섯 해 가까운 세월을 견뎌냈다. 그런데 재판이 끝난 지 열다섯 달이 지난 뒤 참모본부 정보국에서 일하는 피카르 중령은 스파이 사건을 조사하면서 우연히 드레퓌스사건에 관한 서류를 읽어 보았다. 그는 보병 대대장 에스테라지 소령의 글씨가 명세서의 글씨와 똑같다는 것을 알아냈다. 피카르 중령은 이 사실을 상관에게 알렸지만 참모본부의 장군들은 드레퓌스사건을 덮어버리려고 했다. 피카르 중령은 자신의 목숨도 위험하다고 느꼈다. 하지만 용기를 내어 변호사에게 이 사실을 전해 주었다. 변호사는 다시 어떤 국회의원에게 진실을 알렸다. 하지만 그 두 사람은 사람들이 자기들을 헐뜯을까봐 이것을 발표하지 못했고 드레퓌스의 운명에는 아무 변화도 일어나지 않았다. 하지만 드레퓌스이 형인 마티외가 이 사실을 알게 되었고 에스테라지를 고발했짐나 에스테라지는 무죄를 선고받았고 엉뚱하게도 군사기밀을 누설했다고 피카르 중령을 체포하였다. 그런데 절망을 희망으로 바꾸어 놓은 큰 폭풍이 몰아쳤다. 에밀 졸라라는 작가가 에스테라지가 진범인 이유를 하나하나 밝히고 드레퓌스를 죄인으로 만들어 참모본부의 잘못을 감추려 한 장군들과 글씨감정전문가, 군사재판과 두 번째 군사재판을 무섭게 꾸짖었다. 보잘 것 없던 신문이었던 로로로는 이날 무려 30만 부가 팔렸고 세계 곳곳에서 졸라에게 힘을 보태는 편지와 전보가 3만 통이나 날라왔다. 에밀졸라는 군사법권을 중상몰략했다는 이유로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드레퓌스는 대서양을 건너 군형무소로 돌아왔다. 에밀졸라도 마명생활을 끝내고 돌아왔고 피카르 중령도 풀려났다. 하지만 드레퓌스의 재판결과는 변함없었다. 달라진 점이 있다면 종신형 대신 십년형을 내린 것 뿐이었다. 에밀졸라는 다시 펜을 들었다. 에밀졸라는 빼어난 글과 용기 있는 행동으로 인류의 양심이라는 찬사와 존경을 받았다. 하지만 그는 정의가 이기는 끝을 보지 못하고 뜻밖의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드레퓌스는 사건을 비로소 막을 내렸다. 알프레드 드레퓌스는 1차 세계 대전이 터지라 전투에 두 번 참가하여 중령으로 진급했다. 그리고 병으로 고생하다가 세상을 떠났다. 남경사건은 조작된 것이고, 중일전쟁은 노구사건으로 인해 우연히 일어난 사건이며, 일본인도 많이 죽었기 때문에 일본이 조선과 중국을 침략했다고 말할 수 없고, 일본의 식민 지배가 조선과 조선인에게 유익한 것이다. 이 모두가 최근에 일본 정부의 장관들이 심심하면 한번 씩 내뱉은 말이다. 주변국들이 이에 항의하면 일본 정부는 그때마다 장관을 바꾸는 정도의 형식적인 조치로 사건을 마무리 지으려 했다. 아시아 나라들은 일본이 자기들이 저지른 범죄를 인정하고 사과하기를 바라지만 일본국민, 일본지배층과 정치가들은 그럴 생각이 전혀 없어 보인다. 일본 집권층의 일그러진 역사의식과 잇단 망언은 일본이 벌인 아시아 침략전쟁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일본은 침략자 속성을 타고난 나라다. 일본이 침략전쟁을 벌인 이유는 독일제국의 경우와 마찬가지다. 명치유신 이후 일본 정치권력은 천황을 받드는 군부 관료집단이 움켜쥐었고, 경제력은 이들의 비호를 받는 극소수 재벌들이 독점하였다. 일본국민은 민주주의 기초 개념조차 이해하지 못하였고 자본가들은 침략전쟁 계획에 적극 찬성하고 그 비용을 지원했다. 이렇게 해서 일본인들은 패전이 임박할 때까지 공장과 전선에서 열성을 바쳐 일했다. 패전은 국민에게 일종의 혁명과도 같았다. 고위 장성과 관료들은 전쟁범죄 혐의로 미군에게 체포당하였고 백전백승한다던 대일본제국의 영광은 어디에도 없었고 군대와 재벌은 해체되었다. 산업시설은 미군의 폭탄에 잿더미가 되었고 남은 것은 폐허가 된 도시와 원자폭탄이 가져다 준 끔찍한 공포뿐이었다. 낡은 대일본제국은 사라질 운명에 빠졌다. 그런데 2차대전이 끝나기 무섭게 들이닥친 동서냉전이 역사의 흐름을 다시 한 번 뒤집어 놓았다. 미국은 일본 사회를 안정시키고 경제를 되살리지 않는 한 일본을 지킬 수 없다는 사실이 드러나자 미국 정부는 일본을 미국의 동아시아 대리인으로 키우기로 결정했다. 일본의 해체되었던 재벌기업이 되살아났고 경찰 예비대가 자위대로 바뀌면서부터 일본도 실질적으로 군대를 보유하게 되었다. 이때부터 일본은 다시 군사대국으로 만들어 보려는 군국주의적 보수 세력의 음모가 싹텄다.

느낀 점: 재미있었고 잘 몰랐던 역사들에 대해서 알게 되었다.


도원

유시민과 함께 읽는 유럽문화이야기2/유시민

by 줄기 posted Jun 24,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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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6.22.이도원

유시민과 함께 읽는 유럽문화이야기2/유시민

이탈리아

이탈리아사람들은 고향을 중요시해서 마치 자랑거리를 말하듯이 고향을 말한다. 그리고 성공하면 고향사람들에게 돈을 대주고 일자리를 마련해주어야 한다. 이탈리아가 뭉쳐지는 시기는 월드컵과 올림픽이다. 이탈리아의 모든 분쟁은 적당한 타협이나 뇌물로 해결한다. 그래서 정면충돌은 피한다. 이탈리아인들은 상황에 맞게 옷을 입고 옷에 따라 하는 행동이 바뀐다. 한번 유행이 지난 옷은 창고에 처박아 두고 더 이상 꺼내지 않는다. 이탈리아인은 패션감각이 뛰어나다. 그래서 2차 세계대전 당시 수용소를 탈출한 포로들이 독일은 쉽게 지나갔지만 이탈리아에서 다 걸렸다고 한다. 이탈리아 카페에서 큰소리를 치는 것은 무례하게 받아들이지 않지만 돈을 주고 서비스를 사는 사람이 너무 정중하게 처신하면 공손한 척하는 무례한 행동이 된다. 이탈리아인은 시간약속을 잘 지킨다. 그래서 15분까지만 봐준다. 이탈리아에는 줄서기를 절대 하지 않는다. 그래서 큰 사건이 많이 일어난다. 이탈리아의 남자는 집안에서 하는 것이 없다. 모든 결정은 여자가 한다. 그 이유는 여자가 어릴 때부터 불리한 조건으로 살아왔기 때문이다. 이탈리아인들은 남들보다 뛰어나려고 법에 거짓말을 한다. 그리고 들키는 것보다는 체면이 깎이는 것을 더 심각하게 생각해서 변명을 댄다.

스위스

스위스는 내륙국가이고 천연자원도 없고 농사하고 목축하는 국가인데 1인당 국민소득이 가장 높다. 그런데 즐거워하는 기색이 없다. 스위스국민의 근심걱정은 엄청나다, 그래서 길을 걷는 스위스사람들은 다 표정이 심각하다. 스위스에서는 직장에서 휴가를 오래준다. 그런데 외국으로 나가지 않고 국내여행을 하는 사람이 많다. 보통 스키와 등산을 즐긴다. 스위스의 치아치료는 굉장히 비싸기 때문에 주변나라에 가서 치료를 받는 사람이 많다. 그런데 자기 나라가 무조건 최고라는 인식이 많아서 일부로 국내에서 치료받는 사람도 있다. 스위스사람들은 치아가 어차피 썩기 때문에 썩기 전까지 관리를 하지 않고 심각해지면 치료를 받는다. 스위스의 맥주는 물보다 싸다. 스위스의 성탄절은 조용한 편이다. 그래서 집에서 가족과 함께 밥만 먹는 정도이고 다른 일은 하지 않는다. 스위스에서 자동차는 가진 사람의 재산을 나타내는 방법이다. 그래서 돈이 멸로 없는 사람들도 비싼 자동차를 사려 한다. 스위스의 실업률은 5%이고 스위스의 직업들은 단순노동이어도 임금이 높다.

오스트리아

오스트리아사람들은 굉장히 게으르고 굼뜨다. 그리고 전쟁에서 이긴 횟수가 적다. 그들은 헝가리사람과 굉장히 친하다. 그런데 헝가리사람이 독일어를 배우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지만 오스트리아 사람들이 헝가리말을 배우는 것은 어순이 하나도 맞지 않기 때문에 불가능하다. 오스트리아에서 가장 선호하는 직업이 가톨릭 교황이지만 오스트리아사람들은 교황을 가장 싫어한다. 이유는 가톨릭법에 이혼이 불가능하고 바람피우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오스트리아에서 식사를 시작하려면 식당주인이 멘트를 쳐야 시작된다. 오스트리아사람들은 술에 정말 취하지 않기 때문에 엄청 마신다.

느낀 점: 알프스쪽 유럽인들이 부유하게 살고 있어서 신기하고이 세 나라중에 이탈리아에 가보고 싶다.


아영

살아갈 날들을 위한 공부

by 가람 posted Jun 23,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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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프 톨스토이                       살아갈 날들을 위한 공부              홍아영 2017.06.23

이 세상에는 힘이 센 것이 아주 많다. 그 중에서 가장 힘이 센 것은 영혼이다. 그 이유는 영혼은 알지 못하는 이기 때문이다. 말은 힘이 세기 때문에 언제 어떻게 침묵을 하는 지가 중요하다. 침묵은 가장 현명한 대답이다. 우리는 죽는 것이 좋지 않다고 생각하지만 죽음은 자유를 얻을 수 도 있다. 그래서 우리는 죽어서 자유를 얻기 위해 잘 죽으려고 노력해야 한다. 어린 아이들은 어른들과 다르게 진정한 평등을 가지고 있다. 왜냐하면 많이 살지를 않아서 어른들 보다 편견이 없기 때문이다. 육체에게 만족을 주려고 하는 행동은 자유를 잃게 하는 행동이다. 육체가 좋아하지 않는 노동을 하는 것을 고귀한 경험이다. 모르는 것은 절대로 나쁜 것도 아니고 부끄러운 것도 아니다. 하지만 아는 척을 하는 것은 부끄러운 것이다. 책은 항상 옳은 것이 써져 있지 않기 때문에 책에 쓰여져 있는 것들은 다 믿으면 바보 같은 행동을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책에 있는 모든 것을 믿을 것이면 책을 읽지 않는 것이 낫다. 용서는 인간이 할 수 있는 최고의 행동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힘이 바로 영혼의 힘이다. 명상을 하는 것은 생각을 하는 데에 도움을 준다. 좋은 삶을 사는 것을 생각하고 간절히 바라면 좋은 삶을 살게 된다. 진실을 외면하면 나쁜 행동을 하게 된다. 오만은 자신만을 사랑하는 행동이다. 우리가 대부분 과거에 우리가 했던 것에 후회하고 미래에 올 일들에 대해 걱정을 한다. 하지만 우리는 지금 짧은 순간의 현재에 집중해 살아야 한다. 어린 아이들은 게임을 해서 경쟁을 하게 되어도 그 게임이 끝나면 다시 친구로 지낸다. 그 반대로 어른들은 무슨 경쟁이 하는 것이 있으면 그것이 끝나도 계속 경쟁을 같이 하던 곳에 속해 있어야 한다. 인생을 짧으므로 우리는 살아있는 동안에 다른 사람들에게 친절을 더 베풀어야 한다. 고통은 느끼는 것은 진정한 영혼 때문이다. 남은 인생이 얼마 없다고 생각하게 되면, 우리는 남은 인생을 아주 소중하게 여길 것이다. 그렇게 되면, 남은 시간을 소중하게 여기고 다른 사람을 더 사랑해서 행복과 축복을 얻는다. 자신을 스스로 불쌍하게 생각하면 비참한 존재이다. 원하는 일을 하게 되면 금방 싫증이 나서 많은 노력이 필요한 일을 해야 된다. 우리의 삶의 목표는 좋은 삶을 사는 것이 아니라 유혹과 편견을 깨는 것이다. 결정을 할 때에는 타인의 말에 무조건 따르지 말고 자신의 선택에 따라야 한다. 영혼을 위해 기쁨을 느끼게 된다면 죽음이 두렵지 않을 것이다우리는 타인이 자신에게 잘못을 하면 복수를 하고 싶고 해야 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복수를 하게 되면 폭력을 하게 되는데 이 폭력은 삶을 무너트리고 삶이 개선되는 것이 막는다. 거짓을 물리치게 해주는 양심은 우리에게 큰 자산이다. 인간이 충분히 만족을 하지는 못하지만 꼭 필요한 것을 얻는 것은 쉽다. 하지만 우리는 꼭 필요하지 않지만 자신의 욕구를 충족시키려고 하는 것들을 얻으려고 해서 물건을 얻는 것이 어렵다고 생각하게 된다. 유혹은 우리의 삶에 항상 있는 삶의 동반자이다. 그래서 우리는 이 유혹의 늪을 잘 빠져나와야 한다. 만약에, 우리가 타인이 노동하는 것을 원하게 된다면 훌륭한 삶을 살지 못하게 될 것이다. 이 게으름은 우리에게 주어진 선물을 파괴한다. 진정으로 남을 위한다면 자신에게 좋은 일이 있을 것이다. 우리는 죄를 지었을 때, 타인이 용서를 해주면 끝이라고 생각을 하지만 자신이 잘못한 그 행동을 하지 않도록 의식적으로 피해야 완전히 용서가 된다. 우리는 무슨 일을 해도 자신의 의지가 있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는 과거를 기억할 수 있고 미래를 상상할 수 있다. 이 것은 현재를 위해 있는 것이다. 대가를 원하는 사랑은 진정한 사랑이 아니다. 자신이 모두가 복을 얻기를 원한다면 결국 자신이 복을 얻게 될 것이다. 가진 것이 없는 것이 가난한 것이 아니라 더 많이 원하는 것이 가난한 것이다. 우리는 사기꾼들이나 도둑들을 나쁘게 생각하지만 그들은 길을 잃은 사람들이기 때문에 불쌍하게 여겨야 한다. 말로 용서 하는 것은 진정으로 용서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그 사람에 대한 나쁜 마음들을 자신에 마음에서 씻어내는 것이 진정한 용서이다. 사랑을 받고 사랑을 하게 되면 사람은 선해지게 되어 있다. 우리는 가끔 자신이 원치 않는 일이 자신에게 벌어진다. 이때 분노와 짜증에 휩싸인다. 이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되면 자유를 얻지 못한다. 우리는 실제로 보고 느낄 수 있는 것만 존재한다고 생각 하지만 느끼지 못한다고 존재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사람을 겉모습만 보고 판단하면 안되고 그 사람이 자신의 장점을 얼마나 잘 이용하는 지와 그 사람이 사람들과 어떻게 관계를 맺고 있는지가 중요하다. 일을 많이 한 사람은 높은 자리에 앉는 것이 당연하다. 일도 안 하면서 높은 자리에 앉아있는 사람도 있는데 이 사람들은 양심이 없는 사람들이다. 남을 판단하면 안된다. 왜냐하면 사람은 계속 변하기 때문이다. 기도는 몸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가슴으로 하는 것이다. 자신의 육체가 자신의 것이 아니라 자신의 영혼이 자신의 것이다.

느낀 점: 이런 분야의 책을 많이 안 읽어봐서 조금 어색했다. 조금 공감이 안되는 부분이 있었는데 이해하기 쉬운 부분이 더 많아서 재미있었다.

  • profile
    사랑 2017.06.24 13:15
    가진 것이 없는 것이 가난한 것이 아니라 더 많이 원하는 것이 가난한 것이다. 이 말이 아주 멋지네. 용서와 사랑이라는 기독교적 메세지로 함께 일하는 공동체를 만든 톨스토이의 삶의 철학을 쉬운 말로 풀어놓은 책인 것 같다. 지루할 수 있었는데, 열심히 키워드 정리하고 요약했네. 오타도 별로 없고 글쓰기가 점점 좋아진다.

정민

세상은 어떻게 뉴스가 될까

by 나래 posted Jun 23,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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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6/23

제목: 세상은 어떻게 뉴스가 될까?

지은이: 홍성일

 

모든 시민은 기자다라는 모토로 등장한 <오마이뉴스>는 누구나 기사를 쓸 수 있다. 그 전에는 프레스카드 제도가 있어 아무나 기자를 할 수 없었지만 <오마이뉴스>는 기사를 쓰는 이를 제한하지 않는 개방적이고 민주적인 특징이 있다. <오마이뉴스>를 예로 들어 말한 듯이 뉴스는 우리 일상 속에 있는 것이고 뉴스가 보고 읽히는 것만이 아니라 우리가 직접 쓸 수도, 찍을 수도 있는 것이다. 뉴스를 보면서 우리는 한국이라는 상상의 공동체를 떠올리게 되는데 이 뉴스를 통해 우리는 한국인이라는 소속감을 갖게 된다. 좋은 뉴스를 봤을 땐 우리 사회에 대한 인식이 좋아지고 나쁜 뉴스를 봤을 땐 그만큼 우리 사회가 나쁘게 인식되게 된다. 그러므로 좋은 뉴스와 나쁜 뉴스를 구별하는 일은 좋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 필수적인 일이다. 뉴스는 사실에 관한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우리가 접한 뉴스가 사실인지 아닌지 확인할 방법이 없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사실이 아니라 사실에 관한 해석을 받아들이는 것이며 기자가 사실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와 독자가 뉴스를 어떻게 해석하냐에 따라 뉴스에 대한 시선이 달라진다. 뉴스는 언제나 사실에 근거해야 하고 사실에 근접해야 하지만 사실은 언제나 해석되어야만 이야기될 수 있는 것이고 해석은 상상과 생각의 영역 사이에 있는 것이다. 그래서 뉴스는 재현되는 것이라고 한다. 기자는 사실을 최대한 담으려고 노력하겠지만 사실을 완전히 똑같이 담고 전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언제나 해석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해석의 틀은 사람마다 달라서 우리는 결코 사실을 온전히 알 수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실에 최대한 근접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우리가 끊임없이 뉴스를 하고 보고 듣고 끊임없이 상상을 덧붙이고 해석을 추가하는 것은 우리가 사실들의 고정된 질서를 바꾸려 하기 때문이다. 뉴스를 해석하며 또 뉴스로 상상하며 사람들은 앞으로는 무엇이 새로이 일어날 것인가 예측하고 우리 사회가 어떻게 나아갈 것인지에 대한 변화를 고민한다. 이러한 의미에서 뉴스는 일어난 것에 관한 것이며 동시에 앞으로 일어날 것에 관한 것이다. 우리들은 뉴스를 통해 현실의 문제점을 인식하고 뉴스에 의해 변화의 지점들을 모색하며 뉴스를 보며 문제의 해결책을 구한다. 또 뉴스를 통해 변화에 대한 욕구가 생기고 이 욕구는 현실을 바꾸는 행위를 만들고 이러한 변화의 모습이 또 다시 뉴스가 되어 순환한다. 이것이 바로 변화에 대한 뉴스이다. 커뮤니케이션으로서의 뉴스는 뉴스를 보다 역동적이고 실천적이며 입체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특징이 있으며 뉴스의 생산자와 뉴스 소비자 사이의 상호작용이 잘 들어난다. 오늘날의 뉴스는 여러 가지 매체를 통해 확장된 커뮤니케이션 사이에서 공동체의 오작교 역할을 맡는다. 뉴스는 단지 우리를 관찰하고 내려다보며 기록하는 제 3자가 아닌 우리가 소통하며 만드는 것이다.


느낀 점: 뉴스에 대해서 알 수 있어서 좋았고 재미있었다.

  • profile
    사랑 2017.06.24 13:09
    이 책은 뉴스에 대한 공개적인 측면을 강조한 책이구나. 전통적인 뉴스나 언론에 대한 해석과는 좀 차이가 있다. 그러므로 책을 읽을 때 이런 관점만이 옳다고 볼 수도 없고, 이런 관점이 대중적이라고 볼수도 없단다. 뉴스나 언론에 관한 또 다른 책을 읽어보고 비교도 해보고 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독후감 열심히 잘 썼어

정안

그림 읽어주는 여자

by 유카이 posted Jun 22,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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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읽어주는 여자

지은이: 한젬마 2017/06/22 이정안

 

나한테는 낙서본능이 있다. 전화나 대화 도중 무의식적으로 종이에 낙서를 한다. 의식적으로 하려면 절대로 불가능한 것이다. 낙서는 내안에서 보내는 편지는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든다.

28세의 나이에 마약중독으로 생을 마감한 천재 낙서화가 바스키야가 있다. 그의 그림은 엄청 자유로워 보인다. 바스키야는 회계사 아버지를 둔 중산층에 태어났으나 빈민가에서 널빤지를 깔고 생활한 흑인 화가 이다. 한 여자는 자신의 남자를 접촉 사고로 처음 만났다. 여자가 주차를 하려고 후진을 하려다 남자의 차를 스친 것이 인연의 시작이다. 남자는 괜찬다고 했지만 여자가 너무 미안해해서 남자는 여자한테 차나 한잔 사라고 했다. 차를 마시면서 그들은 사랑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4년 만에 결혼을 했다. 1년후에는 뽀얀 여자아이가 태어났다. 여자는 남자와 이별을 했다 이별을 할때도 자동차 사고로 이별을 했다 남자가 출장을 가다가 오면서 중아선을 넘어오던 관광버스하고 사고가 나서 남자는 죽었다. 여자는 엄청 슬퍼 했다.

결혼은 겉모양과 속모양이 다른, 과일로 치자면 키위를 닮았다. 키위라는 과일이 사실 키위 안에는 맛있는 과일이 있지만 외양으로 보아서는 쉽게 손이 가지 않는 과일이다. 결혼 역시 결혼을 하면 행복하다는 호기심이 없었다면 그런 행복을 못할 것이다. 예쁜 여자를 만나면 삼 년 행복하고, 착한 여자를 만나면 삼십 년이 행복하고, 지혜로운 여자를 만나면 삼대가 행복해진다. 잘생긴 남자를 만나면 결혼식 세 시간 동안의 행복이 보장되고, 돈 많은 남자를 만나면 통장 세 개의 행복이 보장되고, 가슴이 따뜻한 남자를 만나면 평생이 행복이 보장 된다.

일요일 아침에 남자친구가 빨리 나오라는 전화가 와서 약속 장소에 나갔다. 남자친구는 다짜고짜 공항으로 가서 비행기에 탔다. 나는 오늘 가는 곳이 제주도인 것을 알았다. 제주도에 가서 한라산에 갔다. 한라산을 오르는 것은 너무너무 힘들었다 조금만 더 가면 되요, 다 왔어요! 라고 말을하지만 가도가도 끝이 안 보인다. 짜증과 피곤이 극에 달했을 즈음, 탈진한 내 앞에는 백록담이 보였다. 남자친구가 나와 한라산에 오른 이유는 프로포즈를 하기 위해서이다. 그런데 내가 그토록 산을 힘들어할 줄은 몰랐다. 그래도 남자친구가 나를 대리고 한적한 바위 틈에 가서 수줍어하면서 예쁜 목걸이와 카드를 주었다 카드에는 우리 결혼하자 라는 쓰여져 있었다. 나는 결혼하기 정말 힘들다!! 라고 말했다. 많은 사람들이 그림 값에 대해 궁금해한다. 그림 하나에 몇십 억에서 몇천 원까지 그림 값은 천차만별이다. 어렵기만 한 그림이 가격 때문에 가까이 하기 먼 존재가 되어버린 사람들이 많이 있다. 그림 값을 결정하는 것은 붓이나 물감 같은 재료가 아니라 화가가 표현하는 주제와 정신이다. 우리가 그럼을 산다는 것은 종이에 칠해진 물감을 사는 것이 아니라 거기에 표현된 작가의 생각과 정신화가의 안목을 사느 것이다. 사람들은 죽어도 이름 석자 남기고 싶어하는 것이 인간의 본능인데, 이름뿐 아니라 얼굴까지 남길 수 있다니, 지금이야 사진 한 장 찍으면 되는데 사진이 나오기 이전 사람들에게 초상화는 사진 이상의 매력이있다. 하지만 초상화를 기려 얼굴을 남기는 것은 싶지 않은 일이다. 얼굴을 남기려면 돈이 있어야 했고, 권력이 있어야 했다.

 

 

느낌점: 여기 책에 자신이 좋아하는 여자를 대리고 프로포즈를 할려고 백록담에 대리고 가는 장면이 있는데 백록담 올라가는 것이 얼마나 힘이 들까 생각이 들었다.

  • profile
    사랑 2017.06.24 13:04
    정안아~~ 맞춤법....어쩌냐.
  • profile
    사랑 2017.06.24 13:05
    그림 읽어주는 여자라는 제목의 책인데, 그림이야기는 없고 프로포즈 이야기만 잔뜩 있네.... 도대체 이게 무슨 책인지 수업시간에 다시 설명좀 해봐라.

아영

나의 서양미술 순례

by 가람 posted Jun 18,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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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나의 서양미술 순례

지은이: 서경식

홍아영 25017.06.18

캄비세스 왕의 재판- 나는 벨기에 브뤼주에 있는 흐루닝헤 미술관에 가서 칸비세스 왕의 재판 이라는 그림을 봤다. 이 그림은 재판장이 벌을 받아서 가죽이 벗겨지는 것을 사실적으로 그렸다. 예를 들어서 가죽을 벗기고 있는 사람들의 표정, 가죽을 벗겨서 그 안에 있는 혈관, 근육들이 되게 자세하게 그려져 있다는 것이다. 이 그림과 비슷한 그림은 죽음의 도시 바띠깐에 있는데 이것도 사람의 가죽이 벗겨지고 있다.

수태고지-피렌체에 가서 수태고지 이라는 그림이 있는 우피찌 박물관에 갔다. 이 그림은 천사 가브엘라 수태가 낙태 사실을 알리러 마리아에게 알리는 내용이 담겨있다. 사실 나는 이 그림보다 벽화에 더 관심이 있었다.

데셰앙스-프랑스 아비뇽에 가서 데셰앙스 이라는 그림을 보러갔다. 이 그림은 수잔나가 우물에서 목욕을 하고 있는데 남자 두 명이 말을 거는 것을 거부해서 떠나는 수잔나를 남자 두 명이 잡는 그림이다. 이 그림은 화가들 사이에서 여자의 몸을 그리고 싶어서 그린 것이라고 이야기 거리가 되었다.

화가 누이의 초상-암스테르담에 가서 국립 고흐 박물관에 갔다. 고흐의 흰색 모자를 쓴 자화상을 봤는데 이 그림이 일본에서 유명해서 별로 기대를 하지 않았지만 막상 보니 역시 유명한 데에는 다 이유가 있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고흐의 무덤도 가봤다. 옆에 고흐의 동생 테오의 무덤도 있었다. 테오는 고흐를 죽은 뒤 죽었는데 그 당시 나이가 33살 정도 되었다. 고흐가 느낀 슬픔과 고독이 테오에게도 느껴졌던 것 같다.

젊은 부르델의 자화상- 나는 브루겔의 자화상을 처음 본 것은 쎄종 미술관에서 산 화집이었다. 브루겔은 조각가라고 알려져 있다. 그래서 브루겔의 그림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조각가들은 조각이 르네상스 그리스로마 시대부터 잘 만들어서 그들은 지금 그 조각에 무언가를 덧붙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래서 이 때 조각가들은 개성과 독창성을 가지고 있어야 된다고 생각했다. 그들이 개성과 독창성에 대해 많이 생각한 것은 빈사의 켄타우라스로 알 수 있다. 나는 부르겔의 고향에 갔는데 그곳에는 에그르 미술관이 있었고 건너편에는 켄타우로스 상이 있었다. 페인 마드리드에 가서 낭자관 행국을 봤는데 이 그림은 세로 263센치이고 가로 193센치인 아주 큰 그림이다. 이 그림은 전쟁 현장을 그려냈다.

부인상-영국에 있는 내셔널 갤러리에 갔다. 처음으로 본 그림은 얀 반 에이크가 그린 아피눌피니의 결혼이다. 이 그림에는 여자 한 명과 남자 한 명이 나오는데 여자는 17세정도로 보이는 미인 수도녀이다. 다음으로 본 그림은 로베르트 감친이 그린 부인상이다. 이 것은 여성의 아련한 인간미를 잘 표현해 낸 그림이다.

죽은 여인들-캄핀은 자신의 그림에 이름을 써놓지 않아서 현재 캄핀의 그림이라고 말할 수 있는 그림이 얼마 없다. 자신의 이름을 써놓지 않은 이유는 자신이 개성이 없다고 생각해 이름을 쓰지 않은 것이라고 추측해 볼 수 있다. 이것과 대조해서 에이크는자신의 그림에 서명을 하는 것이 드문데 에이크는 자신에 모든 그림에 서명을 했다.

느낀 점: 내가 실제로 본 그림이 있어서 신기했고 재미있었다. 이 그림을 봤을 가이드 선생님이 해 주신 말이 생각이 나서 책을 조금 더 쉽게 읽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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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 2017.06.24 12:49
    나중에 유럽여행을 가면 이렇게 읽은 책들에서 본 그림들이 아는 만큼 더 생생하고 재미있게 볼 수 있게 될거야. 즐거운 그림여행이었으면 좋겠네. 그래도 열심히 요약하느라 애썼고, 조금씩 문장도 아지는 것 같다.

정민

나는 왜 법을 공부하는가?

by 나래 posted Jun 16,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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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6/15

제목:나는 왜 법을 공부하는가?

지은이:조국

 

어린 시절 나는 공부를 좋아하고 잘했다. 하지만 나는 대중강연에서 만 17살에 서울대 법대에 입학했다는 이야기가 나올 때 마다 고개를 숙이게 된다. 왜냐하면 나는 다른 사람들의 생각과는 달리 어렸을 때 미친 듯이 공부한 사람이 아니기였기 때문이다. 유년 시절에는 나도 공부보다 뛰어다니는 게 더 즐거웠다. 내가 학교에 2살 일찍 들어간 이유도 순전히 놀기 싶었기 때문이다. 어렸을 때 나와 함께 놀던 아이들이 모두 초등학교에 입학하자 나도 친구들과 똑같이 학교에 가고 싶어져서 부모님께 떼를 썼다. 어머니는 고민 끝에 교장선생님께 나를 딱 1년만 청강생으로 받아줄 것을 부탁 드렸고 교장 선생님은 교실에 앉혀만 놓고 정식으로 등록하지 않는다는 조건에 하에 초등학교에 입학 했다. 당시에는 선행학습을 전혀 하지 않았고 학교 놀러 가는 수준이어서 학교가 매우 재미있었고 물론 수업 내용도 재미있었다. 그래서 그런지 나는 공부를 곧잘 했고 나를 청강생으로 받아주신 담임 선생님도 수업진도를 잘 따라오니 그냥 2학년으로 올라가도 될 것 같다며 정식입학을 추천하셨다. 내가 공부를 잘하게 된 이유에는 이름에도 있다. 조국이라는 이름이 워낙 외우기가 쉬워서 툭하면 수업시간에 호출당하기 일쑤였다. 부담시럽기도 했지만 자주 일어나는 일이라 나는 점점 이 상황을 즐기게 되었고 그래서 내 이름이 호명되기를 은근히 기대하면서 교과서를 미리 읽어서 준비했다. 스스로 즐기지 않는 공부는 고역에 불과하다. 공부에 대한 열정을 여는 열쇠는 작은 호기심 정도면 충분하며 ?”라는 의문만 품으면 공부는 이미 시작한 것이나 다름없다. 누구나 자신이 좋아하는 것에 빠져들듯이 공부도 즐거움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 또 어른들은 아이가 흥미를 보이는 것 중에서 소질 있는 것을 발견해 그것을 하도록 아이를 밀어주어야 한다. 그것이 학교 공부가 아니라 운동이던 그림이던 춤이나 노래던 상관없다. 먹고 사는 문제가 해결된 지금은 헝그리 정신을 기대하면 안 된다. 왜냐하면 지금은 공부 외에 재미있는 것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이런 환경에서 아이들이 공부에 흥미를 가지려면 더더욱 확실한 동기나 계기가 있어야 한다. 지금의 아이들은 자기가 왜 공부를 해야 하는지 경험해 보지 않았기 때문에 잘 모른다. 그래서 아이에게 무조건 공부를 강요하는 행동을 좋지 않다. 오늘날 학벌사회의 위력을 잘 아는 부모들은 자식이 승자가 되길 원한다. 그래서 유치원 때부터 SKY 대학을 목표로 아이에게 선행학습을 시킨다. 하지만 이런 선행학습은 아이가 학교 수업에 호기심을 갖지 못하게 만든다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다. 학원에서 미리 배운 학생의 상당수가 내용을 다 알고 있다고 생각 또는 착각하고 수업에 임하니 학교 수업의 성과가 좋을 리 없다. 이런 여러 가지 이유 때문에 나는 선행학습이 사라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최근에는 이런 말이 생겼다. 아이의 입시 성공을 위해서는 아빠의 무관심, 엄마의 정보력, 할아버지의 재력이 필요하다. 오늘날의 좋은 성적은 부모와 조부모의 능력과 후원 덕이 크다는 비아냥이다. 또 헬리콥터 맘이라는 신종 단어까지 탄생했다. 하루 종일 아이의 주변을 헬리콥터처럼 맴돌며 일일이 간섭하는 엄마를 뜻하는 말이다. 부모들은 자식을 위해 최선을 다한다는 선의를 가지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아이들은 자신이 정말 무엇을 좋아하는지, 무엇에 행복을 느끼는지 생각할 틈이 없다. 이렇게 되면 아이는 엄마 없이는 아무것도 생각, 계획, 실행하지 못하는 만년 유아가 되고 만다. 자식은 자기 발로 땅에서 뛰어야 한다. 부모의 욕망을 자식에게 강요하는 것이야 말로 자식의 앞길은 물론 부모의 행복도 망치는 지름길이다.


느낀 점: 요즘 세상은 진짜 너무 무서운 것 같고 개인적으로 부모의 입장이 너무 딱한 것 같다. 자신의 시간을 자식에게 모두 투자하고 자기 힘든 거 참으면서 대해줬는데 나중에 뒤도 안 돌아보고 튀면 어떤 기분일까 옛날에는 부모님을 모시는 게 당연했다고 하는데 변해도 너무 더럽게 변한 것 같다. 자식도 살기 힘든 건 마찬가지인 것 같다.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대학 들어가도 살기 힘들고 무엇보다 이렇게 쥐랄발광해도 성공할 보장은 없다는 게 참으로 무서운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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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 2017.06.24 12:45
    그러니까, 잘못된 방식의 삶을 성공으로 보지말고, 내 인생에서 성공이란 무엇인가 다시 생각해보는거지... 이 책을 읽고 이런 점에 포인트를 맞추어서 독후감을 쓴 사람은 나래밖에 없는 것 같다. 아무리 열심히 해도 안되는 세상이 아니라, 무엇을 해도 재미난 세상으로 세상을 보는 눈을 바꾸는 것이 필요한 것 같다. 전체적인 내용보다는 인상적인 부분을 집중적으로 독후감을 '쓴 것 같네. 책에 대한 느낌은 어땠는지 모르겠다.

도원

아프니깐 청춘이다/김난도

by 줄기 posted Jun 15,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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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6.14.이도원

아프니까 청춘이다/김난도

사계절의 특징이 있듯이 사람도 사계절처럼 자신만의 시기가 있다. 자기가 성공하지 못한다고 하는 것은 자신만의 계절이 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계절마다 피는 꽃도 저마다 아름다움이 있다. 무엇이 가장 아름다운지는 판다할 수 없다. 하지만 이것에 답한 사람들은 꽃은 그렇게 유연하게 사고할 수 있으면서 인생에 대해서는 그렇게 생각하지 못한다. 대부분 가장 먼저 꽃을 피우려고 한다. 나는 진로상담을 하는 학생들을 미래에 대해 생각이 확고한 화살파와 그렇지 않은 종이배파로 나눈다. 화살파는 목표가 분명하다. 그런데 인생을 최단경로로 설계하기 때문에 화살파로 부른다. 목표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의문을 내놓는다. 종이배파는 목표가 너무 불확실하기 때문에 부른다. 그들에겐 듣고 싶은 대답을 해야 한다. 개그맨이 적금을 하면 유명해지기 어렵다고 한다. 신인 개그맨시절에는 아이디어를 구상하거나 연습시간이 더 필요한데 알바를 하면 뜰 수 없다. 다른 사람들도 거의 마찬가지이다. 성공한 사람들을 질투하는 것은 나쁜 것이 아니다. 거기에서 존중할 만한 일을 찾고 부러워하는 것이다. 다른 사람의 성취를 부러워하지 않는다면 지는 것이다. 학생들은 슬럼프에 빠졌다고 찾아온다. 슬럼프는 게으름, 나태이다. 자기도 슬럼프에 빠졌으면서 은근히 즐기는 것이다. 그리곤 힘들다고 핑계를 댄다. 고시와 같이 자기가 안 된다고 생각하면 그만두어야 한다. 선배들 중에는 10년 동안 고시준비를 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 이유는 해왔던 시간이 아까워서이다. 그런데 자기가 안 된다고 생각하자 포기하고 성공하였다. 연인관계가 깨지면 같은 수강을 듣는다고 나오지 않는다. 그렇게 되면 학점은 재수강으로 고칠 수 있지만 학교생활이 힘들어 진다. 자기 인생의 오답노트를 만들어야 한다. 그런데 자기가 고치겠다고 생각하면서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 행복은 새로운 것을 얻었을 때 생기지만 또 다른 것을 요구하게 된다. 하지만 다른 곳에서는 남들이 누려보지 못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도전해보지도 않고 못할 것 같다며 포기한다. 하지만 도전해보는 것이 포기하는 것보다 훨씬 좋다. 세상엔 정말 많은 전공이 있다. 한 전공을 세부적으로 나누어서 전공의 개수가 배가 된다. 그런데 학생들은 전공에도 서열이 있다고 생각하고 차별한다. 회사에서 도움이 될 것 같은 전공만 선택하는 것은 선입견이고 아주 비효율적이다. 좀 더 높은 학과의 졸업장을 받고 싶다는 생각은 전형적인 고3마인드이다. 자신이 원하는 직업에 관련 있는 전공을 택하는 것이 좋다. 주위의 시선으로 정하는 것은 좋지 않다. 사람들은 시간이 부족하다고 한다. 그런데 화장실가거나 이동하는 짜투리시간은 생각하지 않는다. 박경철씨는 외과의사이면서 방송인이고 작가이고 유명한 경제평론가이다. 그가 많은 일을 할 수 있는 이유는 짜투리시간을 잘 이용하기 때문이다. 1주일에 책을 1권씩 읽고 규칙적으로 생활한다. 시간관리를 잘하려면 우선순위를 정해놓아야 한다. 그리고 나중으로 미루지 말아야한다. 요즘은 자식의 인생을 엄마가 결정한다. 대학만 가면 자유로워지는 것이 아니다. 자식들은 엄마가 만들어놓은 틀에서 기계처럼 산다. 이렇게 된 이유는 엄마세대가 빈곤해서 돈만을 목적으로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학을 졸업한 후와 결혼 후에도 참견한다.

느낀 점: 박경철씨가 1인다역을 맡는다는 것이 신기하였고 힘들 것 같다. 내가 봤던 시골의사의 아름다운 동행을 쓴 분이라는 것이 신기했다. 게다가 바쁘면서 1주일에 책 한권 읽는 다는 것이 존경스러웠다. 나는 전공이 얼마나 있는지도 모르지만 내가 생각한 것보다 휠씬 많다고 하여서 신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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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 2017.06.24 12:40
    서울대를 가고도 방황하는 청년들, 그리고 아직 정해지지 않은 자신의 진로에 고민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줄기는 느낌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나중에 하는 고민이 아니라, 지금도 스스로에게 이런 질문을 던지고 고민하고 이렇게 읽었던 책에서 좋은 글귀나 위로가 된 말들을 찾아서 마음에 기준을 잡고 살았으면 좋겠다. 열심히 정리하느라 애썼는데, 글쓰면서 잘 읽히나 다시 한번 확인해 보십시오

정안

파리의 이런곳 와 보셨나요?

by 유카이 posted Jun 15,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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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의 런곳 와 보셨나요?

지은이: 정기범

2017/06/ 이정안

 

 

파 드 농은 비에이 뒤 탕플 거리의 유명한 인더 스트리얼 앤티크 숍이다. 이곳은 유명 광고 회사의 크리에이터로 활약하던 로랑 다니엘 과 제법 큰 사업체를 운영하던 제롬 르페가 자신드르이 안정된 직업을 버리고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면서 두사람이 여행을 하면서 페허가 된 공장의 낡아 빠진 선반과 고장 난 시계 등 여기저기 내동댕이쳐진 가구들과 전등을 보면서 이 고물들을 비즈니스와 연결시키면 어떻까 라는 생각을 하면서 파 드 농이 만들어 졌다.

파리에서 가장 오래된 헌책방 셰익스 피어 앤 컴퍼니는 줄리 델피와 에단 호크가 주연한 영화 비포 선셋의 도입부 배경으로 등장하면서 그 영화를 본 사람들은 이 헌책방을 가보고 싶어 한다 이 헌책방은 1층과 2층 모두 빈 공간이 없을 정도로 다양한 책들이 빼곡히 들어차 있다.

2003년 루브르 박물관 근처에 라르티장 파르퓌뫼르 향수 매장이 문을 열었다. 이곳은 다양한 구색을 갖춘 아로마와 향수 관련 제품들을 보고 만지고 시험해 보고 냄새를 맡아 볼 수 있는 체험형 매장이다. 집을 꾸미는 데 필요한 모든 것이 있는 파리 최대 규모의 원스톱 쇼핑 공간. 라파예트 매장이 오스만 대로에 오픈 했다. 라파예트 매장에 1층에는 꽃집과 정원 인테리어 소품, 애완 동물 용품 가게 2층에는 바카라와 스왈로브스키, 빌레로이 앤 보흐 등의 도자기와 그릇 가게가 있다. 3층에는 고급 가구와 조명, 액자 카펫이 있고 4층에는 침구류가 있다. 집을 예쁘게 꾸미는 것에 관심 없는 사람이 있을까? 프랑스의 젊은이들에게 폭발적인 인기를 얻고 있는 인테리어 매장 상투다. 상투 매장은 3개의 매장이 있다. 19973월에 문을 연 콜레트는 젊은이들이 즐겨 찾는 세계적인 멀티 숍이다. 이 매장은 1층에는 디자인, 인테리어. 아트 관련 서적과 잡지 음반이 전시 2층에는 유명 패션 디자이너들이 최근 프레타포르테에서 선보인 컬렉션들이 있다. 1953년 기 사보이가 부르그왱 잘리유에서 태어나서 어린 시절을 보내고 있었는데 그가 열다섯 살이 되던 해 요리가사 되기로 결심을 하고 처음에는 초콜릿을 만드는법을 배우다가 레스토랑 몇 곳에서 수련을 받다가 1980년에 자기 이름을 건 레스토랑을 열었다. 그의 레스토랑은 미슐랭 가이드 북에 별 한 개의 평가를 받았고, 1985년에는 별 두 개를 받았다. 그는 잣니이 만든 음식들을 모아 내비스트로의 음식이란 책도 출간했다.

2000년 오픈한 파리의 럭셔리 호텔 벨 아미는 2003년의 리노베이션, 200412월의 대대적인 확장 공사를 통해 더욱 현대적이고 세련된 분위기로 다시 태어난다. 호텔의 이름은 예쁜 친구라는 뜻이다. 요즘 뉴욕, 런던, 배틀린 등에 많은 부티크 호텔이 개장하고 있다.

파리에서 가장 아름다운 경치를 즐길수 있는 조르주로 향하는 여정은 시작부터 다르다. 거기에는 손님들이 너무 많아서 기다리고 있고 레스토랑에 들어갈라면 가벼운 몸수색을 당해야 한다. 그러나 그후 앨리베이터를 타고 올라오면 아주 멋진 풍경들이 있다. 그리고 이 레스토랑에 가구에도 디자이너가 유명해서 가구들도 멋지다.

 

 

 

느낌점: 이 책에 이름이 파리의 이런곳 와 보셨나요? 인데 파리를 가본적이 있어야 아! 파리에 이런곳도 있었구나 라는 생각이 틀텐데 파리에 가본적이 없어서 이책은 그냥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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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 2017.06.24 12:37
    그래도 유카이가 정리한 것을 보니, 파리에 나도 가 보곱 싶다 하는 생각이 드네. 나중에 파리 가게되면 이책을 먼저 읽고 파리를 가보아야겠다. 그러면 더 다양한 곳을 구석 구석 가 볼 수 있을 테니까....

진아

루브르는 프랑스 박물관인가

by 늘픔 posted Jun 11,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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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브르는 프랑스 박물관인가 이보아 2017.06.11. 양진아

프랑스의 대영박물관이나 루브루 박물관을 보면 파르테논 신전의 대리석 조상을 비롯해 잉카 제국의 유물, 심지어 이집트 조상의 시신인 미라까지, 말 그대로 없는 게 없다. 이 전시물은 세계 관람객의 눈을 현혹했음은 두 말이 필요 없을 터이다. 하지만 이들 중엔 거대한 약탈 전시관’, ‘문화 제국주의의 신전이라는 비난 섞인 눈으로 바라보는 이들도 많다. 그러나 비난과 부러움이 교차하는 이 순간에도 대영 박물관과 루브르 박물관을 찾는 행령은 계속 이어진다. 그것은 역설적이게도 비난과 부러움의 대상인 방대한 문화재를 보기 위해서이다. 이들은 약탈한 문화재를 돌려주지 않으려고 하는데 그 이유는 이것저것 다 돌려주고 나면 박물관이 텅 빌 거라는 이유와 문화재 보유국 중 한 국가라도 문화재를 돌려주면 다른 보유국들도 돌려주어야 하는 게 싫다는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이유는 관람객이 발생시키는 관광 수익이 급격히 줄어들 거라는 데 있다. 파르테논 신전은 세계 건축사에서 가장 빼어난 건축으로 꼽는다. 파르테논 신전은 1810년 당시 터키 주재 영국 대사인 엘긴 경이 영국으로 약탈해 가면서 그이 이름을 본떠 엘긴 마블스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그런데 엘긴이 말년에 파산해 생활이 어려워지면서 엘긴 마블스를 영국정부에 팔겠다고 하였다. 영국 정부는 엘긴의 태도를 비난하며 처음에는 구입하지 않으려고 하였지만 결국에는 35000파운드에 구입하게 된다. 한편 그리스는 영국이 엘긴 마블스를 소유한 것을 알고 전쟁이 끝나면 바로 돌려달라고 요청하였다. 영국 정부는 반환 방침을 밝혔지만 제 2차 세계 대전이 끝나자 반환불가로 곧바로 입장을 바꾸었다. 그 이후로 그리스는 계속해서 돌려달라고 요청하였지만 영국정부는 그리스의 요청을 무시하였다. 그러다가 역사가인 윌리엄 세인트클레어가 대영박물관이 세계문화유산인 엘긴 마블스를 손상시킨 뒤 이를 숨기려고 했던 사실을 폭로하면서 영국과 그리스의 문화재 반환 전쟁은 불붙기 시작하였다. 여기에서 영화배우로 유명한 멜리나 메르쿠리는 엘긴 마블스를 되찾는 데 일생을 바쳤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메르쿠리는 문화부 장관 재직 시절 영국에게 엘긴 마블스 반환을 약속받았고, 신아크폴리스 박물관을 위한 국제 공모전 개최 등 그리스 고대 유적을 보존하는 데 특별한 관심을 기울였다. 그리고 아테네 올림픽 유치를 위해 애쓰기도 했다. 하지만 메르쿠리는 엘긴 마블스가 반환하는 것을 보지 못하고 눈을 감았고 남편이 메르쿠리의 뒤를 잇고 있다. 그리고 그리스 정부도 문화부 홈페이지에 마블스 귀환 운동에 관한 별도홈페이지를 연결해 놓는 등 매우 조직적으로 문화재 반환 운동을 추진하고 있다.

프랑스가 병인양요 때 약탈한 외규장각 도서 반환을 위한 한국과 프랑스의 전문가 협상이 프랑스 파리에서 1년 만에 재개된다. 우리측은 병인양요 때 불법으로 약탈한 것이므로 당연히 반환해야 한다는 입장인 데 반해 프랑스는 대여, 영구임대, 교환은 해 줄 수 있지만 국내법을 근거로 반환, 양도는 불가능하다고 주장하였다. 외규장각 고문서 반환은 좀처럼 풀기 힘든 문제였다. 프랑스는 회의를 소집하여 외규장각 고서 문제를 풀려고 노력했다. 그리고 이 회의에서 고문서 소유권은 프랑스가 갖고, 고문서는 영구 임대 형식으로 한국이 소장하자는 결정이 나왔다. 그리고 미테랑 대통령은 친선의 뜻으로 두세 권의 고문서를 직접 김 대통령에게 전하겠다고 하여 고문서 한 권을 서울로 보내기로 확정하였다. 하지만 이 임무를 맡아서 서울에 온 도서관 두 여직원은 고문서를 내놓지 않으며 거세게 반발하였다. 그래서 명령을 내려 고문서는 약소시간에 가까스로 김 대통령에게 전달할 수 있었다. 그리고 프랑스의 국립도서관은 미테랑 대통령이 양도할 수 없는 프랑스 국민의 재산을 한국에 넘겼다고 비난하였다. 그리고 등가교환이라는 말도 나왔는데 외규장각 도서 반환 문제를 지켜본 우리 국민들의 반응은 대부분 무조건 반환되어야 한다고 하였다. 프랑스는 취득시효를 내세워 반환을 거부하였다. 하지만 프랑스의 국가 재산으로 등록돼 있어 국내법에 딸라 외국으로 양도할 수 없으며 취득시효의 대상도 아니다. 하지만 프랑스가 국내법 위반을 이유로 우리 정부의 제안을 거부하는 것은일본 도쿄 국립박물관 문화재 교류에 합의한 사례를 보면 모순된 태도다. 당시 두 박물관이 문화재를 교환하였는데 이때 프랑스가 국내법의 장애 요소를 없애기 위해 특별법을 제정했던 것이다. 그리고 프랑스군이 약탈한 문화재는 당시 왕실의 자산이었고 국가도 양도, 매매, 기증, 증여할 수 없는 국가 재산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외규장각 고문서는 한국 이외 다른 나라에게 양도하거나 이전할 수 없는 것이었다. 외규장각 고문서가 지하창고에서 처음으로 발견한 사람은 콜레주 드 프랑스 연구원인 박병선 씨이다. 프랑스 정부는 그것이 중요한 문화재라는 사실을 뒤늦게 깨닫고 파리 국립도서관으로 옮겨 보관하게 된다. 그런데 여기서 인상적인 사실은 고문서를 옮긴 후 한국인은 아무도 열람할 수 없도록 한 것이다. 아마 어떤 독자는 프랑스의 이중 잣대를 비난할 지도 모른다. 하지만 프랑스를 비난하기보다 그들의 정치적 외교 수완을 한 수 배워야 하진 않을까 싶다. 우리는 지금까지 냉소적 패배주의에 젖어 있었던 게 사실이다. 문화재 반환은 단순히 우리가 돌려받아야 하는 마땅한 이유를 내세운다고 해서 성립되는 것이 아니다. 여기에 국가 사이의 힘의 논리가 변수로 작용하여 결코 쉬운 일은 아닌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문화재 반환은 역사의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문화민족이라면 당연히 제기할 권리고 의무다. 이제 우리는 우리 문화재를 돌려달라고, 돌려주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여야 한다.

느낀 점: 프랑스가 고문서를 지하창고에 방치한 것도 사실이고 외규장각 고문서는 우리나라의 문화재인데 돌려주지 않는 것은 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책을 다 읽고 나니 솔직히 내가 평소에 역사나 정치에 대해 관심을 갖지 않는다는 것을 깨우치게 되었고 우리나라 역사와 정치에 대해서 관심을 가져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재미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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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 2017.06.24 12:34
    요약도 잘하고 느낀점도 아주 좋네... 늘품이 요약한 것을 보니, 나도 상식적인 것을 늘이기 위해서라도 이 책을 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잘했어

아영

백년식당

by 가람 posted Jun 11,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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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백년식당

지은이: 박찬일

홍아영 2017.06.10

 

육개장 한식은 국과 탕의 문화를 가지고 있다. 국의 선두를 달리고 있는 육개장을 맛보러 옛집식당에 갔다. 육개장이 유명한 대구에서 미싱골목이라는 곳에 가보니 집이 하나 있었다. 20평짜리 집에서 할머니가 혼자서 운영을 하고 계셨다. 예전에는 이 집에서 칼국수도 했다고 할머니가 말씀해 주셨다. 칼국수가 원래는 고급음식이었는데 대중음식으로 바뀌어서 다행이라고 말씀하셨다. 시장에는 일꾼들이 붐벼서 국밥을 먹을 사람들이 많아 식당이 잘된다고 하셨다. 옛날에는 대구에서 육개장을 따로국밥이라고 불렀다. 이유는 국에다가 밥을 말아서 떠서 먹는다는 것이 좋지 않다고 생각을 해서 밥을 따로 국을 따로 주었기 때문이다. 육개장의 할머니처럼 한국의 요리사들의 대부분은 할머니이시다. 냉면 냉면은 여름의 최고의 음식이다. 육수는 고기로만 우려낸다. 그 당시에는 밀가루는 귀했고 메밀은 흔히 구할 수 있어서 메밀로 주로 면을 만들었다. 메밀에는 얼음도 들어갔다. 사람들은 서울구경을 하러 오면 꼭 들려야 할 식당 중 하나이어서 인기가 많았다. 하루 평균 3000만원 정도 벌었다. 백김치를 넣어서 김장하기 전에 백김치를 먼저 만들 정도로 사람들에게 인기가 많았다. 어묵 부산어묵을 먹으러 삼진어묵을 먹으러 갔다. 어묵은 생선보다 사서 도시락 재료로 많이 쓰였다. 부산에는 어묵공장이 있을 정도로 어묵이 유명하다. 일제강점기 때는 일본에서 수입하기 때문에 비싸서 고급음식이었다. 하지만 나중에는 한국에서 만들게 되어서 쉽게 먹을 수 있었다. 어묵은 한때 위생 때문에 위기를 맞아서 모든 것을 손으로 만들었다. 맛의 비결은 어묵은 생선의 양에 따라 맛이 갈려서 생선살을 70%가 들어간다. 빵은 귀해서 중산층만 먹을 수 있는 음식이었다. 빵집으로 유명한 화월당에 갔다. 빵은 대부분 일본식이었다. 중국에서 들어온 호떡도 있다. 화월당은 새로운 맛을 찾지 못해서 위기를 맞았다. 하지만 메뉴를 바뀌지 않고 전통메뉴로 유지했다. 그러다 보니 이제는 다른 빵집이 더 발전해서 화월당은 소량을 만들어서 팔고 단체주문이 대부분이다. 돼지국밥 돼지국밥이 유명한 부산에 있는 할매국밥에 갔다. 할매국밥에는 한국인의 까다로운 입맛을 고려해서 비슷한 메뉴가 세 개 있다. 이 집은 영화 공연 등을 많이 했던 부림극장에 있어서 사람들이 공연, 무대가 끝난 후 자주 찾아왔다. 보림극장 때문에 인기가 많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컬러텔레비전이 생겨서 보림극장이 망한 후에도 할매국밥의 인기는 여전했다. 평양냉면 평양냉면을 먹으러 부원면옥에 갔다. 부원면원은 예전 처음 식당을 차렸을 때랑 주변 환경이나 식당 안 인테리어가 똑같아서 시간여행을 하는 것 같았다. 처음에는 여름에 평양냉면을 시원하게 하기 위해서 동치미를 넣었지만 얼음이 생겨나자 얼음을 이용해서 여름에 동치미를 넣지 않아도 시원하게 먹을 수 있게 되었다. 부원면옥의 비법은 재료를 직접 만드는 것도 있고 만드는 것을 직접 봐서 재료를 좋은 것을 사용하고 예전의 맛을 유지하기 때문이다. 이 집은 하루 평균이 3000그릇이 팔린다. 그래서 단점이 사람이 식당에 너무 많아서 사람들이 돈을 내고 가지 않아도 그것을 알 수가 없다는 것이다. 평양냉면은 원래 이북음식이었지만 일제강점기가 지나자 서울음식이 되었다.

느낀 점: 맛있는 음식이 많이 나와서 책을 읽으며 배가 고팠고 책에 나온 식당들이 가보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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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 2017.06.24 12:26
    식당이름을 좀 안내해주면 좋겠다. 아영이 독후감을 읽고도 가볼 수 있게.... 그리고, 뒤로 갈수록 문장이 꼬이고 오타도 많네. 집중력있게 뒷부분까지 정리를 잘해 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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