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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영

백년식당

by 가람 posted Aug 17,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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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일 백년식당 홍아영 2018.08.17

 

우래옥 우래옥은 평양냉면을 파는 식당이다. 우리가 고깃집에서 먹는 냉명과는 다르게 우래옥의 냉면은 육수의 맛을 느낄 수 있다. 우래옥의 사장님께 비법을 물어본다면 좋은 고기, 좋은 메밀 면으로 만들면 된다고 하신다. 이런 단순함에 우래옥의 비결이 있는 것 같다. 냉면을 만드는 방법 중 흔히 알려진 것은 돼지고기와 소고기의 배합과 동치미를 넣는 것이다. 메밀과 전분의 비율은 73이라고도 알려져 있다. 사장님은 비밀 따위 없는 프로이다. 그가 말하기를 냉면의 시작은 김치에 물을 많이 넣고 심심하게 먹는 것이라고 하셨다. 북에서는 냉면을 그저 국수라 부른다. 고깃국물은 만들기 힘들어 그저 김칫독에서 국물과 김치를 꺼내면 그게 냉면이었다. 면은 틀에서 눌러 뽑았는데 옛날에는 밀가루가 귀했고 메밀이 쌌다고 한다. 그래서 메밀로 많이 냉면을 만들었다. 쌀은 숙성시켜 미리 반죽을 해서 만들어놔도 괜찮지만 메밀은 조금씩 밖에 못쓴다. 그래서 메밀이 들어간 메뉴를 주문하면 메밀을 만들어 많이 기다렸다고 한다. 그는 그의 할아버지가 말씀하시는 냉면을 팔려면 늘 먹어봐라라는 말을 지켜 52해째 냉면을 드시고 계신다.

할매국밥 할매국밥은 돼지국밥을 파는 곳이다. 돼지국밥과 순대국밥이 다른 점은 돼지 국밥은 내장을 쓰지 않고 당면으로 만든 순대를 넣지 않는다. 할매국밥은 신문에 실릴 정도로 유명했었다. 지금은 장소가 바뀌었지만 예전에는 할매국밥 앞에 있는 보림극장에서 사람들이 쇼와 영화를 보고 밥을 먹으로 할매국밥에 줄 지어 먹었다고 한다. 그러다가 전두환 정권의 컬러텔레비전 시대에 밀려 극장은 인기를 잃었다. 하지만 할매국밥의 손님들은 여전했다. 그 당시 주위에 있던 신발공장의 노동자들이 손님들의 대부분을 차지했다. 할매국밥의 비결을 찾아보자면 고기가 좋고 구워먹기에도 좋은 삼겹살을 마음껏 쓴다. 그리고 제일 중요한 사람들이 좋아하는 맛을 그대로 유지하고 더 잘하려는 생각을 억제하는 것이다. 사장님을 보면서 고수는 일에 대한 존경과 자부심이 넘친다는 것을 느낀다.

화월당 화월당은 순천에 있다. 작고 아담한 도시인 순천에 화월동은 1928년도부터 같은 자리에 있었다. 가게 안으로 들어가면 전형적인 일식 가옥이 있다. 가게 이름도 일본사람이 지어준 것이다. 우리나라가 해방된 후 일본 소유였던 화월당도 새로 문을 열었다. 일본은 물러가도 일본식 빵은 여전히 인기가 있었다. 그래서 전형적인 한국식 베이커리였던 화월당은 일본에서 받은 기술을 사용해 빵을 만들었다. 화월당은 미팅장소, 맞선 장소, 고급 음식점으로 자리 잡았다. 그 후로 새로운 메뉴를 개발해 장사한 화월당은 사람들이 슬슬 메뉴에 질려 해 침체기가 왔다. 이때 전통 빵인 모찌와 카스텔라를 팔아서 다시 일어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런 빵은 배달이나 선물용으로 많이 사갔다. 그래서 요즘은 거의 배달만 한다고 한다. 이집의 비법은 더 크게 빵을 만들고 옛날식 맛을 유지하는 것이라고 한다.

도라지식당 도라지식장의 사장 김진현은 제주태생이다. 28살 때 식장을 개업했다. 이 당시에 외지인들이 많이 들어오기 시작 할 때였다. 근데 제주 향토음식을 팔던 곳이 없어서 사장은 제주사람들이 먹는 일상식을 팔았다. 처음에는 외지인들이 쉽게 사먹을 수 없는 국을 팔았다. 출향인사들만 찾았던 곳이 특별한 것을 판다고 소문이 나서 규모있는 식당으로 이사까지 했다. 지금은 갈치가 비싸지만 예전에는 낚시맘 던지면 물었던 것이 갈치였다. 그래서 갈치로 갈칫국을 만들어 팔았는데 제주도가 그 당시에는 산업기반이 없어서 갈칫국이 500원밖에 안했다. 제주 음식은 잘 알려져있지 않아 새로운 음식을 개발하고 제주음식이라고 말하지만 김진현 사장 처럼 제주 고유의 음식에 대한 가치를 재발견해야 한다.

느낀 점: 재미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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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필

반지의 제왕

by 줄기 posted Jul 23,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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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지의 제왕 J.R.R. 톨킨 지음 2018.7.23. 장필

 

이 책은 대부분 호빗에 관한 이야기이다. 그래서 읽다보면 호빗에 대해 많은 것을 알게 될 것이다. 빌보는 자신의 111회 생일을 맞아 특별한 잔치를 열겠다는 말에 호비턴 주민들은 잔뜩 들떠있었다. 빌보는 부자지만 괴팍한 인물이었는데 사라졌다가 다시 돌아온 뒤로 60년 동안 다른 주민들에겐 경탄의 대상이었다. 왜냐하면 그가 사라졌다가 돌아왔을 때 가져온 금은보화는 주민들 사이에 전설이 되었기 때문이다. 이번 잔치는 상속자인 프로도가 성인이 되는 중요한 숫자인 33세 생일을 맞게 되기 때문에 더 특별했다. 호빗들은 생일 날이면 선물을 주는 풍습이 있었다. 원래 선물을 받으면 싫증을 내는 사람이 꼭 있었지만 이번에는 없었다. 빌보는 분위기를 띄우고 신나게 논 뒤 연설을 시작했다. 빌보는 연설하는 중에 주머니 속에 있는 황금반지, 오랜 세월 비밀히 간직했던 마술반지를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그는 연설이 끝나고 그 반지를 손가락에 끼었다. 빌보는 연설을 끝내고 난쟁이들과 함께 길을 떠나게 되었다. 이것은 빌보가 제일 원하는 것 중 하나였기 때문에 빌보는 엄청 신이 난 채로 길을 떠났다. 길을 떠나지 않은 프로도는 빌보의 살림을 공짜로 나눠준다고 말하자 소문은 삽시간 안에 퍼져 괴로운 오후를 살다가 힘들게 다 보내고 혼자서 여정을 떠났다. 프로도는 그 뒤로 꽤 오래도록 다시 만나지 못했다. 간달프는 빌보의 마법의 집이다. 그는 빌보가 떠난 후 떠났던 프로도를 찾아갔다. 프로도는 간달프와 오랜만에 만나 이야기를 하다 반지를 꺼내 이야기를 시작했다. 간달프는 이야기 도중 반지를 불 속에 던져버렸고, 그 뒤에 이상한 문자가 나타났다. 그 문자는 프로도는 읽을 수 없었다. 간달프는 이것이 요정 문자라고 하면서 해석해주었다. 그 문자를 해석하고 나서 어느 순간부터 프로도 손가락에 반지가 있었다. 프로도는 무서워서 망치로 부시거나 녹일려고 했지만 간달프가 우리의 힘으로는 절대 뺄 수 없다고 하면서 1가지 밖에 없는 뺄 수 있는 방법을 알려준다. 그 방법은 불의 산 오르드루인 깊숙한 곳에 있는 운명의 구멍을 찾아 그 속에 반지를 던지라고 했다. 그렇게 이야기를 좀 더 하던 도중 샘 감지가 숲에서 나타났다. 샘은 요정을 정말 보고 싶어하는 친구였고, 프로도가 가는 여정에 따라 가기로 했다. 그렇게 프로도 샘 간달프는 불의 산으로 떠났다. 프로도는 가더 도중 순결한 엘베레스와 길소니엘을 만났다. 그들은 적이 프로도를 쫓고 있다는 것을 알려준다. 그 말을 듣고 꽤 오래 걸었는데 끝은 보이지 않았다. 그 동안에 걸으면서 간달프랑 떨어지고 피핀이라는 친구랑 같이 가게된다. 우리는 피핀과 같이 한 노인에 집에 찾아가서 그 노인과 함께 계획을 짰다. 그 계획대로 가던 도중 프로도는 톰 봄바딜이라는 사람을 만나 그 사람 집에 머물기로 한다. 다음 날 프로도는 작고 주민 수도 얼마 안되는 브리랜드의 중심지인 브리라는 마을은 무인지대의 고립된 마을이었다. 브리 주민들은 갈색머리에 떡 벌어진 몸집을 가지고 있고, 비교적 키가 작고 유쾌하며 독립심이 강했다. 프로도 샘 피핀은 여기에 잠깐 머물러 있었다. 첫날 밤 자던 도중 마을에 불이나고 침입자가 들어와서 브리마을을 파괴하고 있다는 말에 프로도는 일어나서 온 힘을 다해 싸웠다. 마지막에는 칼을 떨어뜨려서 온 힘을 다해 반지를 빼서 오른손에 쥐었다. 그 후 정신을 잃고 다시 정신을 차려보니 상처가 깊어서 오랫동안 쉬다가 길을 찾아나섰다. 숲에서 정신을 잃어서 길을 찾기에는 힘들다보니 먼저 이 숲을 빠져 나가기로 했다. 다음 날 길은 찾았지만 계속 내리막길이었다. 그렇게 내리막길을 가던도중 갑자기 백마를 탄 흑기사들이 프로도를 둘러쌌다. 프로도는 의식이 희미해져가는 최후의 한 순간에 비명소리를 질렀다. 그 비명은 흑마들을 광기와 공포에 사로잡히게 했고, 자신도 같이 사로잡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제 그는 더 이상 듣지도 보지도 못했다.

느낀 점: 요약하기가 힘들었고, 막 그렇게 재미있지는 않았다.


규현

[정규현] 당신 거기 있어줄래요?

by 유카이 posted Jul 17,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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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당신, 거기 있어줄래요? 지은이: 기욤 뮈소 2018.7.17.화 정규현

엘리엇은 의무에 충실한 외과의사였다. 올해 예순이 되고 폐암 진단을 받았다. 그는 30년전 죽은 일리나가 보고 싶었다. 캄보디아로 구호활동을 갔을 때 한 노인은 알약이 들어있는 병을 주었다. 엘리엇이 그 약을 먹자 과거의 서른 살의 엘리엇이 있던 곳으로 왔다. 서른 살의 엘리엇은 막 일리나와 아기 문제로 싸운 것 때문에 예민해져 있었다. 시간여행자가 된 엘리엇은 자신이 미래에서 왔다고 설명을 했지만 젊은 엘리엇은 정신병자라고만 생각했다. 시간여행자는 어느새 다시 현재로 돌아가 버렸다. 젊은 엘리엇은 절친한 친구 매트에게 이 일을 의논했더니 매트는 그저 몸이 피로해서 그런 것일 거라고만 말했다. 어느 날, 시간여행자 엘리엇은 다시 한 번 젊은 엘리엇 앞에 나타났다. 이번에는 그 누구도 모르는 엘리엇의 가족사까지 구구절절 말했다. 이번에 그가 사라질 때는 라이터를 두고 가서 젊은 엘리엇은 자신의 지문과 라이터에 묻은 지문을 대조해 보았다. 놀랍게도 완벽히 일치했다. 시간여행자는 꿈에 대해 조사를 해보았다. 그는 평생 과학주의자였던 터라 그에게 일어난 비과학적인 일들을 믿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는 알약을 모두 변기로 흘려 보내 버렸다. 서른의 엘리엇은 조금씩 믿기 시작했고 문신으로 메시지를 전할 좋은 생각을 해냈다. 그는 재빨리 다음 방문을 기다리며라는 문신을 새겼다. 시간여행자 엘리엇의 몸에는 어느새 문신이 생겨났다. 이제는 엘리엇도 사실을 부인할 수가 없어 떠내려간 알약을 다시 찾아와 삼켰다. 젊은 엘리엇은 미래에 대해 궁금한 점이 많았다. 시간여행자는 쏟아지는 질문에 매우 힘들었다. 그러다가 일리나 이야기가 나왔다. 시간여행자 엘리엇은 마지 못해 일리나가 곧 죽는다고 말했다. 젊은 엘리엇은 일리나는 아직 스물아홉인데 벌써 죽냐고 물었지만 시간여행자 엘리엇은 죽음은 인간이 예상치 못한 때에 찾아오고 일리나는 엘리엇 자신 때문에 죽게 된다고 말해주었다. 둘은 일리나를 구하기 위해 작전을 세웠다. 시간여행자는 만약 일리나가 죽지 않으면 자신의 딸 앤지가 태어나지 않을 거라고 처음에는 작전을 세우는 것에 동의하지 않았지만 젊은 엘리엇이 일리나를 구한 후 이 일에 누구도 개입시키지 않을 것, 일리나와 헤어질 것, 훗날 앤지를 낳을 것을 약속하자 함께 일리나를 구하기로 했다. 이 날 시간여행자 엘리엇은 환자 곁을 지키느라 일리나를 마중하러 공항에 가지 않았지만 젊은 엘리엇은 마중을 나갔다. 그래서 일리나는 원래 고래에게 공격을 당해 죽어야 하는데 죽지 않았다. 젊은 엘리엇은 약속을 잊지 않고 일리나에게 헤어지자고 했다. 일리나는 실연당한 고통스러움을 이기지 못하고 골든게이트에서 몸을 던졌다. 시간여행자와 엘리엇이 한 일은 그저 죽는 시간을 몇 시간 늦춘 것뿐이 되었다. 다행히도 일리나는 아직 숨이 붙어있었다. 수술이 어떻게 되느냐에 따라 일리나의 생사가 결정되는 상황이었다. 시간여행자는 자신이 직접 일리나를 수술하려고 다시 과거로 돌아갔다. 수술은 성공적이었고 일리나는 다시 살았다. 하지만 엘리엇은 절친한 친구와 사랑하는 여인을 잃었다. 엘리엇은 남은 생을 일만 하며 유령처럼 지냈다. 그리고 약속대로 앤지를 낳았다. 시간이 흘러 엘리엇은 암으로 죽었다. 그의 절친한 친구였던 매트는 그의 무덤에 들렀다. 그리고는 그의 딸 앤지로부터 한 노트를 건네 받았다. 노트에는 그 동안 엘리엇이 겪었던 일들, 매트를 내칠 수밖에 없었던 이유 등이 빼곡히 적혀 있었다. 매트는 이것을 읽고 매우 혼란스러웠다. 30년의 기억이 한 번에 뭉개졌으니까. 매트는 이 노트를 일리나에게 전해주었다. 일리나 또한 30년동안 꼭꼭 눌러놓았던 기억들을 꺼내는 것이 쉽지 않았다. 매트는 엘리엇의 마지막 하나 남은 알약을 먹고 과거로 돌아갔다. 그리고는 젊은 엘리엇에게 자네는 폐암으로 죽으니 담배를 끊으라고 말해주었다. 현재로 돌아오니 집에는 엘리엇이 없었지만 일리나는 바닷가를 거닐고 있는 엘리엇을 보았다.

느낀 점: 시간을 오고 가는 이야기라서 읽으면서 궁금한 것이 많았다. 예를 들어 젊은 엘리엇의 시간이 현재의 엘리엇의 시간이 겹쳐지는 것은 어느 때인지, 아니면 둘은 전혀 다른 세계의 사람인 건지 등이 있었다. 두 명의 주인공은 일리나와 엘리엇이지만 매트 또한 마지막에 엘리엇을 구한 사람으로서 매우 중요한 등장인물이었다는 생각을 했다. 스토리가 빈틈 없이 꽉 차 있어서 읽을 때 이상한 점 없이 편하게 읽을 수 있었다.


정안

좀머씨 이야기

by 유카이 posted Jul 14,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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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머 씨 이야기

지은이: 파트리크 쥐스킨트

2018.07.14. 이정안

 

옛날 내가 나무 타기를 좋아하던 시절에 내 키는 1미터였다. 나는 내가 하늘을 날 수 있다고 생각을 했던 때 였다. 나는 나무 타기를 하다가 떨어져 혹이 생겼다. 혹은 불과 몇 주일이 지나자 이내 사라졌지만 그 후로 날씨가 바뀔 때라든가 특히 눈이 내릴 때면 혹이 있었던 자리가 근질근질거린다. 그리고 거의 40년이 지난 지금도 비가 올 때, 눈이 올 때 근질근질 한다.

내가 나무 타기를 좋아하던 시절 매번 나무에서 떨어지기만 했던 것은 아니다. 나는 나무를 잘 탔다. 한 나무 위에서 다른 나무로 옮겨갈 수도 있었으며, 나무 꼭대기에 걸터앉을 수도 있었고, 나무 위에서 빵도 먹을 수 있었다. 나는 나무 타는 것이 좋았다. 나무 위에는 늘 조영해서 사람들의 방해를 받지 않았고, 듣기 싫은 엄마의 잔소리도 없었고, 형들의 심부름 명령도 그 위까지는 전달 되지 않았다.

우리 마을에서 좀머 아저씨를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그렇지만 좀머 아저씨의 이름을 제대로 아는 사람은 없었다. 좀머 아저씨는 이른 아침 일찍부터 저녁 늦게 까지 좀머 아저씨는 호수 중심을 단 하루도 빠짐 없이 걸어 다녔다. 눈이 오거나, 진눈깨비가 내리거나, 폭풍이 휘몰아치거나, 비가 억수로 오거나, 햇빛이 너무 뜨겁거나, 태풍이 와도 좀머 어저씨는 줄기차게 걸어 다녔다. 바다에 쳐놓은 그물을 걷으려고 새벽 4시에 배를 타고 일을 나가던 어부들이 해가 뜨기도 전에 집을 나서던 그를 만나기가 일수였다. 호수 주변을 한 바퀴 돌묜 약 40킬로미터쯤 되었는데 그 거리를 하루에 걸어 다녔다. 그런 좀머 아저씨는 매번 준비하는 2가지가 있다 하나는 호두 지팡이고 또 하나는 가방이다. 그 가방에는 먹을 빵과 비를 대비해서 우비를 넣고 다녔다.

우리반의 대부분은 호수 윗마을에 살고 나는 호수 아랫마을에 살았다. 나는 우리반에 있는 카롤리나랑 같이 노는 상상을 했었다. 어느날 카롤리나가 아랫마을에 올일이 있다고 해서 나랑 같이 아랫마을을 가자고 했다. 나는 너무 좋아서 카롤리나가 학교를 끝날 때 가지 기다렸다. 그런데 카롤리나가 아랫 마을을 안간다고 했다. 그리고 몇 년이 지나고 나는 자전거 타는 법을 배웠다. 자전거를 타고 피아노를 배우로 윗마을로 갔다. 피아노를 1년 동안 피아노를 배웠는데 지각도 많이 하고 악보도 많이 틀려서 엄청 혼나고 피아노 학원에서 쫒겨 났다. 나는 화가 나서 스스로 목숨을 끊어 버리겠다고 했다. 나는 나무 위에 올라가서 죽을려고 했다. 죽으려고 마음을 먹고 있었는데 그순간 탁 탁 소리가 났다. 그리고 좀머 아저씨가 보였다. 좀머 아저씨는 아픈 사람처럼 신음 소리를 내더니 가방에서 버터 빵을 꺼내 먹었다. 나는 자살하려는 마음에 없어졌다. 5~6년이 지나고 나는 자전거를 타고 친구집으로 가는데 자전거가 고장나 자전거를 고치고 손을 딱으로 호수로 갔는데 좀머씨가 호수에서 머리끝가지 잠기고 미동도 없었다. 그후 좀머씨가 없어졌다는 소문과 신문이 나왔다. 좀머씨를 마지막으로 본 것은 나였을 것이다.


정민

딜레마에 빠진 인터넷

by 나래 posted Jul 13,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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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6/29

제목: 딜레마에 빠진 인터넷

지은이: 홍윤선

 

우리는 인터넷에 대해 몇 가지 오해를 가지고 있다. 첫째는 가치 있고 다양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고 여기는 것이다. 이 말은 경험적인 판단에서 나온 말이기보다는 매스컴을 비롯해 여기저기서 들리는 낙관론의 마법에 걸린 탓이다. 인터넷에 한번 들어가보면 알 것이다. 흥미를 빼면 남는 게 별로 없다. 다양하고 가치 있는 정보가 아니라 한쪽으로 쏠린 비슷한 내용투성이다. 두 번째 오해는 인터넷을 통해 평등사회를 세워나갈 수 있다는 인식이다. 물론 누구에게나 열려 있고 참여가 보장된 공간이므로 그런 가능성이 있고 희망을 가질 수 있다. 그런데 아직은 아니다. 경제적, 지역적인 현실사회의 제약으로 인해 디지털 세계를 경험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아직도 우리 주위에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인터넷 이용자는 2,600만 명이 넘는다고 한다. 인구의 60%를 넘는 수준이다. 아직도 대도시와 지방 중소도시와의 격차, 소득이나 학력수준에 따른 격차는 남아 있다. 그래도 이 정도면 다른 나라와 견주어 세계 정상급이다. 물리적 정보화 격차는 비교적 빨리 해소되고 있는 듯하지만 그 속 모습은 아주 다르다. 인터넷 기반과 시장의 규모는 세계적 수준이지만 미처 예상하지 못한 사회적 문제도 속속히 드러났다. 중독증이나 사이버범죄와 같은 이른바 정보화 역기능이 사회 전반에 중요한 문제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첫 번째 문제는 포르노다. 음란물은 인터넷에서 가장 흔한 컨텐츠다. 복제해서 퍼뜨리기 쉬운 인터넷 공간에서 음란물은 바이러스처럼 퍼져나간다. 두 번째 문제는 인터넷을 너무 과다하게 사용하면 집중력 저하 증후군에 걸릴 수 있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가장 심각한 문제인 중독이다. 인터넷에 지나치게 몰입하는 사람들은 대체적으로 인터넷을 떠나 있으면 초조하고 불안해하며 자신이 활동하고 있는 인터넷 세계에 대한 궁금증에 시달린다. 또한 평상시에도 우울하거나 허전할 때 특별한 목적 없이 인터넷에 접속하여 시간을 보내는 경향이 많다. 이러한 경향은 인터넷 중독의 심리적인 의존성을 충분히 설명해 준다고 할 수 있다. 최근 온라인 게임을 즐기는 이용자들의 말을 들어보면 만족감을 얻기 위해서 지속적으로 이용시간을 늘려나가게 된다는 공통적인 경험을 들을 수 있다. 게임을 할수록 같은 시간 동안 얻는 만족감이 줄어드는 내성현상이 나타나는 것도 확인할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인터넷 사용시간을 조절할 필요가 있으며 인터넷과는 살짝 거리를 둘 필요가 있다. 점점 빨라지는 속도와 광활한 정보들 덕분에 우리의 생활이 편해지고 있는 건 사실이지만 그렇기에 우리의 개개인이 자기정보와 프라이버시에 대해 좀더 관심을 가져야 할 필요가 있다.

 

느낀 점: 너무 오래된 책이라 요즘 사회와 맞지 않는 것 같다.


정민

내 몸 사용설명서

by 나래 posted Jul 13,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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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6/22

제목: 내 몸 사용설명서                                                              김정민

지은이: 이승진

 

뇌는 성인을 기준으로 할 때 1.5kg정도로 몸무게의 2.5%밖에 나가지 않는다. 하지만 이 작은 뇌는 우리 몸에 사용되는 전체 에너지의 20%가량을 혼자서 사용 한다. 사람의 뇌는 크게 대뇌와 소뇌, 뇌간으로 구분할 수 있다. 대뇌는 좌뇌와 우뇌로 이루어져 있고 대뇌의 약 2~4mm 두께에 해당되는 표면을 대뇌피질이라고 한다. 이 대뇌피질은 약 140억 개의 신경세포로 이루어져있으며 우리가 보고 듣고 느끼는 모든 정보를 이 대뇌피질의 신경세포망을 통해서 분석되고 실행된다. 대뇌변연계에서는 인간의 욕구와 감정을 조절하는데 이 대뇌변연계를 통해 감정이 생겨나고 대뇌피질을 통해 감정이 조절되는 것이다. 소뇌의 가장 큰 기능은 대뇌의 지시를 받아서 몸을 움직이는 것이다. 소뇌는 운동기능뿐 아니라 평형감각과 회전감각을 조절하기도 한다. 그래서 소뇌에 이상이 생기면 몸을 마음대로 움직이지 못하고 균형감각도 잃게 된다. 마지막으로 뇌간은 뇌의 줄기라는 뜻으로 대뇌반구와 소뇌를 제외한 나머지 부분을 말한다. 뇌간은 대뇌가 관여하지 않는 일, 그러니까 소화나 호흡, 심장 박동, 혈액 순환, 체온 조절처럼 생명 활동에 직접적으로 관계된 일을 담당한다. 뼈는 우리 몸의 형태를 만들어 주고 몸을 지탱해 주는 역할을 한다. 또한 심장이나 폐, 뇌 등 신체의 약한 기관을 보호하기도 하고 골수를 통해 혈액을 만들기도 한다. 우리 몸에 있는 뼈의 개수는 260개이다. 갓 태어난 아기는 약 300개로 우리 성장하면서 작은 뼈들이 하나로 붙어 수가 줄어드는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착각하는 것이 있는데 치아는 뼈가 아니다. 머리뼈 가운데 턱은 분명 뼈이지만 턱에 있는 치아는 뼈가 아니다. 뼈와 치아는 구성 성분이 다르기 때문이다. 뼈는 칼슘과 아교질로 이루어져 있지만 치아는 사기질과 상아질이라는 성분으로 이루어져있다. 사기질과 상아질은 칼슘보다 더 단단한 성질이다. 그래서 치아가 뼈보다 더 단단하다. 근육은 힘줄과 살로 이루어져 있는데 힘줄은 근육을 뼈에 붙어 있게 만들고 뼈를 움직이는 역할을 한다. 우리 몸에는 무려 650가지에 달하는 근육이 있다. 우리가 웃을 때 사용되는 근육은 모두 30가지나 되고 발을 한 걸음 떼는 데만 200가지의 근육이 사용된다. 근육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는데 하나는 뇌의 명령으로 움직이는 근육, 다시 말해 우리의 의지대로 움직일 수 있는 근육이다. 이런 근육들은 수의근이라고 한다. 다른 하나는 우리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움직이는 근육으로 불수의근이라 부른다. 우리는 추위를 느끼면 저도 모르게 몸이 부르르 떨리는 경험을 하게 된다. 그 이유는 추위에 대한 반응으로 근육이 수축하기 때문이다. 우리 몸은 항상 36.5~37도를 유지하려고 하는 특성이 있다. 그래서 체온이 떨어 지려고 하면 몸에서 열기를 만들어 체온을 높이려는 작용이 일어난다. 이때 열기를 만들기 위해 나타나는 현상이 바로 근육의 수축이다. 피부에 소름이 돋는 것 또한 체온을 유지하기 위한 반응으로 소름이 돋으면 순간적으로 땀구멍이 좁아져서 열기 배출을 막아준다고 한다.

 

 

느낀 점: 재미있었다.


정민

개를 위한 스테이크

by 나래 posted Jul 13,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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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6/15

제목: 개를 위한 스테이크

지은이: 에프라임 키숀

 

나와 아내, 그리고 세 명의 아이들은 토요일마다 <마틴과 마이그록> 이라는 레스토랑에서 점심을 먹는다. 하지만 이곳의 스테이크는 워낙 양이 많아 어른인 우리에게도 아이에게는 더더욱 스테이크를 다 해치우는 것이란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래서 나와 아내는 이 스테이크를 집으로 가져가기로 했다. 우리는 마이그록 씨를 불러 스테이크를 포장해달라고 부탁했다. 우리 집 개인 프란치에게 줄 것이라고 거짓말도 곁들여서 말이다. 그러자 마이그록 씨는 아주 큰 비닐 봉지를 들고 와선 안에 뼈도 몇 조각 넣었다고 말했다. 결국 우리는 스테이크와 함께 뒤섞여있는 고기찌꺼기들을 모두 프란치에게 줄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프란치는 스테이크만 쏙 빼놓곤 다 먹어 치웠다. 다음 주말에 나는 남은 스테이크를 가져가기 위해 좀더 구체적으로 스테이크만 포장해달라고 말했다. 그러자 마이그록 씨는 스테이크를 신문지에 싸서 주었다. 어쩔 수 없이 우리는 이번 스테이크 또한 버려야 했다. 그러나 나는 그렇게 쉽게 포기하는 성격이 아니다. 다음 토요일에 우리는 직접 비닐 봉지를 준비해가 스테이크를 싸서 돌아왔다. 하지만 그렇게 스테이크만 먹다 보니 질려서 더 이상 스테이크를 보고 싶지 않아졌다. 그런데 눈치 없는 마이그록 씨는 우리에게 계속해서 고기찌꺼기를 가져다 주었다. 결국 우리는 마이그록 씨에게 개가 죽었다고 거짓말을 했고 더 이상 <마틴과 마이그록> 식당에는 가지 않았다. 우리는 월요일 아침에 일찍 일어났다. 아내와 장모는 신속하게 침대에서 나와 빨래 바구니로 달려갔다. 여러 달 동안 비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빨지 못하고 모아 두었던 빨래를 하기 위해서이다. 몇 시간 후 우리는 엄청나게 많은 양의 빨래는 정원에다 널었다. 하지만 맑았던 하늘은 어디 가고 곧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할 수 없이 우리는 빨래를 모두 실내 욕조에 넣어두었다. 비는 계속해서 내렸고 욕조 안 빨래는 점점 썩어가 퀴퀴한 냄새가 나고 곰팡이가 피기 시작했다. 아내는 서둘러 빨래를 건조해야 한다고 말했다. 결국 우리는 거실에 샹들리에에 빨랫줄을 연결에 빨래는 주렁주렁 널었다. 그런데 그때 5년에 한번씩 집을 방문하는 첼마노비치 박사가 기습방문을 했다. 우리는 당황해서 허둥지둥 자리를 마련했다. 첼마노비치 박사와 그의 아내는 정리된 거실에 앉았다. 하지만 거실은 빨래 때문에 매우 습하고 추운 상태였다. 급하게 치운 빨래는 모두 옆방에 있었는데 옆방에서 거실로 스멀스멀 물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결국 거실의 양탄자도 첼마노비치 부인의 치마 끝자락도 물에 젖어버렸고 그 둘은 급하게 우리 집을 떠났다. 아내가 막으려고 했지만 소용없었다. 우리는 그 둘이 돌아간 후 물이 흐르는 것은 막았지만 많은 양의 썩어가는 빨래는 처리하지 못했다. 우리는 일단 그것들은 비가 오는 밖에 두고 해가 쨍쨍한 날에 다 태워버리기로 했다

 

 

느낀 점: 그냥 그저 그랬다.


정민

식탁의 배신

by 나래 posted Jul 13,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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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6/01

제목: 식탁의 배신

지은이: 윌리엄 레이몽

 

현재, 우리 식탁의 80%를 차지하는 가공식품은 대표적인 독소 식품 중 하나로 우리 몸의 유전자를 공격하는 적이다. 이 독소 식품들은 비만 유행병을 일으킬 뿐 아니라 혈관을 틀어 막고 간과 신장을 망가뜨리며 뇌는 퇴화시킨다. 또한 독소 식품은 우리 몸을 암의 온상으로 만들기도 한다. 독소 식품은 중독을 일으키기도 하는데 가장 눈에 띄는 증상은 비만과 과체중이다. 비만 환자들은 기억과 계획 등 인지를 담당하는 뇌조직이 손실되는데 이는 알츠하이머병의 주요 증상이기도 하다. 그 외에도 기억력 장애, 신체 장애, 지능 감퇴, 파킨슨 병 등 독소 식품 속에든 첨가물은 우리 뇌에 끔찍한 영향을 미친다. 식품에 첨가물을 넣는 것은 사실 아주 오래된 관습이다. 예전엔 음식물을 오래 보존 하기 위해 소금을 사용했고 19세기 후반에는 화학 첨가물이 등장했다. 2차 세계 대전을 거치면서 화학 분야가 급격히 발전했고 화학 첨가물 사용이 점점 가속화 되기 시작해 1970년 때 중반에는 거스를 수 없는 대세가 되었다. 하지만 이 첨가물은 시간이 흐를수록 자극적으로 변해 음식을 지나치게 기름지고 달고 짜게 만들었다. 이런 음식들은 심혈관 질환을 일으킬 수 있는 위험성을 가지고 있다고 오래 전에 발표 되었지만 해가 갈수록 상황이 더욱 심각해 지고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건강을 지키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할까? 어렵거나 거창하게 생각할 필요 없이 그냥 과거의 가르침을 받아들이기만 하면 된다. 구석이인들은 자연에서 채취해온 과일을 주로 먹고 낚시한 물고기나 사냥한 고기는 가끔씩만 먹었다. 물론 이때는 생존을 위한 의도치 않은 방식이었겠지만 이런 식생활을 현대 식탁에서 따라 한다면 건강을 되찾을 수 있다. 가능하면 유기농으로 재배된 과일과 채소, 통곡물, 기름기 없는 고기와 생선을 먹는 것이다. 미국에서는 이런 식생활을 하는 사람들을 육류를 전혀 먹지 않는 채식주의자와 구분하여 플렉시테리언이라고 부른다. 이러한 식생활을 생활화 하면 가공식품이나 패스트푸드 음식에서 느껴지는 화학 첨가물 범벅의 자극적인 맛과는 180도 다른 신선한 맛을 느낄 수 있다. 우리는 미래와 우리 자신을 위해 가공식품에 관한 소비를 줄여야 한다. 또한 건강한 조리기술을 익힘으로써 가공식품과 패스트 푸드의 굴레에서 벗어나야 한다. 이런 실천은 작지만 밝은 미래를 여는 음식 혁명이라고 할 수 있다.

 

 

느낀 점: 재미있었다.


정민

우주 산책

by 나래 posted Jul 13,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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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5/25

제목: 우주 산책

지은이: 이정규

 

우리 인류가 우주 탄생과 진화의 이야기를 자세하고 다양하게 들을 수 있게 된 것은 사실 얼마 되지 않았다. 그 역사는 당연히 망원경의 발명에서부터 시작되었다. 망원경은 1608년 네덜란드의 안경사 한스 리퍼세이가 발명했다. 어느 날 가게 앞에서 아이들이 렌즈 2개를 겹쳐 놓고 멀리 교회 첨탑을 바라보며 놀고 있었는데 그 모습을 보고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한다. 이 소식을 전해 들은 이탈리아 베네치아의 갈릴레오 갈릴레이는 유리를 갈아 구경 44밀리미터의 망원경을 만들었다. 갈릴레이는 이 작은 망원경으로 인류 최초로 달의 분화구를 관측하고 은하수가 사실은 별의 무리라는 것을 알아냈다. 토성의 고리와 목성 표면의 줄무늬를 최초로 본 사람도 갈릴레이다. 그 후의 천문학 역사는 망원경의 크기와 성능이 발달한 역사이자 우주의 크기가 커진 역사라고 볼 수 있다. 갈릴레이가 태양계 안에서의 우리 위치를 밝혀냈다면 할로 섀플리는 우리은하의 크기를 관측으로 추정하고 우리 태양이 은하 중심에서 3분의 2가량 외곽에 있다는 것을 밝혀냈다. 천문학을 하는 사람들에게 섀플리는 1902년에 있었던 대논쟁으로 유명하다. 당시 대논쟁의 주제는 한마디로 우주에는 우리밖에 없나? 즉 우주에는 우리은하만 있는가, 아니면 우리은하 외에도 다른 은하가 존재하는가? 였다. 섀플리는 우리은하가 우주 전체라는 입장이었는데 몇 년 후 에드윈 허블이 거리 측정을 통해 안드로메다은하가 외부 은하임을 밝혀내 섀플리의 주장은 잘못된 것으로 판명되었다. 그럼 이제 우리가 살고 있는 우주의 모습을 한번 살펴보자. 우주는 아주 방대한 곳이라 지구에서 훨씬 큰 새로운 거리단위가 필요하다. 그래서 주로 빛의 속도를 사용한다. 빛은 1초에 30만 킬로미터를 간다. 눈 한 번 깜짝하는 짧은 시간에 빛은 지구를 일곱 바퀴 반을 돈다. 지구에서 평균 38 4400킬로 미터 떨어져 있는 달까지는 빛의 속도로 1초 조금 넘게 걸린다. 지구보다 109배 큰 태양을 가로질러 가려면 빛의 속도로 5초가 걸린다. 태양 표면을 떠난 빛이 지구에 도달하는 데는 약 8 20초가 걸린다. 명왕성을 태양계의 끝이라고 보면 태양계를 벗어나는 데는 5시간 반이 걸린다. 그럼 태양계를 벗어나 이웃 별까지 가는 데는 얼마나 걸릴까? 가장 가까운 별인 알파 센터우리까지는 4.3년이 걸린다. 지구는 태양이라는 별 주위를 돌고 있는 행성이다. 지구와 함께 태양 주위를 돌고 있는 다른 행성들 중에서 우리가 맨눈으로 볼 수 있는 것은 수성, 금성, 화성, 목성, 토성 이렇게 5개다. 음양오행의 오행이 바로 이 다섯 가지 행성이다. 태양은 우리은하를 구성하는 수천억 개의 별 중 하나로 은하 중심에서 3분의 2정도 떨어진 외곽에 있다. 지구돋이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는가? 해가 뜨고 달이 뜨는 것을 의미하는 해돋이, 달돋이와 마찬가지로 지구가 떠오르는 것을 표현한 지구돋이라는 말은 1968 12 24일 아폴로 8호의 우주인들 덕분에 탄생했다. 그들은 이것을 광대한 어둠의 바다에 떠 있는 작고 연약한 생명의 오아시스라고 표현했고 이 사진은 아폴로 8호에 타고 있던 세 우주인뿐만 아니라 모든 이들의 의식 또한 확장시켰다. 이듬해인 1970년 처음으로 지구의 날이 제정되었으며 지구촌이라는 단어가 탄생하게 된 배경이기도 하다.

 

느낀 점: 재미있었다.


진아

하늘에서 떨어진 거북

by 늘픔 posted Jul 07,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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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에서 떨어진 거북 2018.07.07. 양진아

기원전 5세기경 시칠리아의 어느 해변에서 해괴한 사건이 벌어졌다. 산책을 나왔던 노인이 사체로 발견된 것이다. 목격자들은 하늘에서 갑자기 거북이 한 마리가 노인의 머리 위로 떨어졌다고 말했다. 사람들은 이 죽음에 대해 다양한 시나리오를 제시했다. 내놓는 시나리오는 저마다 달라도 죽음의 원인을 신의 분노에서 찾는다는 점은 같았는데 당시 사회에서는 사건의 원인을 신의 의지로 돌려 설명하는 것은 매우 흔한 일이었다. 사람들은 궁금증이 생기면 상상력을 발동시켜 이야기를 짓곤 했는데 그 이야기들은 뮈토스라 불렸다. 하지만 그 시절에도 이와는 다른 방식의 설명을 시도한 이가 있었다. 바로 철학자 데모크리토스이다. 그는 사고 현장에 갔고 그곳의 독수리들은 거북이를 낚아채 하늘 높은 곳을 물고 올라가 땅 위의 바위로 떨어뜨리는 습성이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이로써 마른하늘에서 거북이가 떨어진 이유는 설명되었다. 남은 물음은 거북이가 왜 바위가 아닌 노인의 머리에 떨어졌다는 것인데 데모크리토스는 높은 하늘을 날던 독수리가 노인의 벗겨진 머리를 햇빛에 반짝이는 바위로 착각했다고 이 또한 합리적으로 설명한다. 독수리의 식성에서 노인의 죽음에 이르기까지 그의 설명에서는 모든 것이 원인과 결과로 연결된다. 이렇게 뮈토스와는 완전히 대립되는 이 새로운 사고방식을 로고스라 불렀다. 기원전 6세기경 그리스인들의 사유에 중요한 변화가 일어난다. 밀레투스라는 곳에서 이른바 철학이 탄생한 것이다. 철학의 등장은 곧 신화적 사유가 논리적 사유로 바뀌는 것을 의미한다. 사람들은 예나 지금이나 로고스보다 뮈토스를 선호하는 듯하다. 신화적 사유는 계절 변화의 복잡한 원리를 명계의 신이 제우스의 딸을 납치하는 드라마로 바꾸어 놓는다. 그러니 재미없을 리가 없다. 반면 로고스는 인격신들 대신에 공전궤도면, 자전축의 경사 등 추상개념이 등장한다. 그러니 재미있을 리가 없다. 이런 가운데서도 로고스는 서서히 사회에 관철되어갔지만, 그때조차도 학자들을 제외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여전히 신화적 사유를 포기하지 않았다. 이 사유의 관성이 얼마나 집요했는지 심지어 철학자들마저도 결정적 대목에서는 종종 신화적 사유로 돌아가곤 했다. 거북이에 맞아 죽은 그 노인은 처음에 그저 도시의 명망가라고만 알려졌다. 그의 정체는 수백 년이 흐른 후 밝혀졌는데 로마의 문학가들은 그 노인이 3대 비극 시인이라 불리는 아이스킬로스라 주장했다. 하지만 기록을 보면 무명의 주인공이 아이스킬로스로 바뀌었을 뿐 사건에 대한 데모크리토스의 설명을 그대로 따르고 있다. 데모크리토스는 현상의 설명에서 초자연적 요소를 철저히 배제한다. 하지만 로마의 문학가들은 데모크리토스가 애써 쫓아낸 것을 슬쩍 다시 받아들인다. 이솝우화든 어느 이야기에서든 거북이는 등딱지가 깨진다. 그런데 여기서 거북이에게는 왜 등딱지가 있을까라는 물음이 떠오른다. 이 물음에는 두 가지 방식으로 답변할 수 있을 것이다. 첫 번째는 뮈토스로 설명하는 방식이다. 신화적 사유는 사물의 근원에 관한 물음에 답하기 위해 그럴듯한 이야기를 지어낸다. 반면 로고스는 논리적으로 이를 설명한다. 그동안 과학자들은 거북이의 등딱지가 척추와 등판 갈비뼈에서 자라 나온 것이라 가정했다. 하지만 최근 거북이 조상의 새로운 화석이 발견되었는데 이 조상 거북이의 등딱지는 뼈에서 분리되어 있어 그 모습이 아르마딜로와 비슷했다, 이는 거북이 등딱지가 뼈에서 자라난 게 아니라 피부가 두꺼워져 생겨났다는 것을 시사한다. 거북이 피부가 점점 두꺼워진 까닭은 생존에 유리했기 때문이다. 이처럼 뮈토스와 로고스의 차이는 명확하다. 뮈토스는 초자연적 존재의 힘을 빌려 현상을 설명한다. 그리고 그 설명에 근거를 제시하지 않는다. 근거가 없으니 다른 근거로 반박할 수도 없다. 비판을 허용하지 않으니 이런 이야기는 불변의 진리로 받아들여진다. 변하지 않는 곳에 발전이 있을 리 없다. 반면 로고스는 초자연적 요인을 배제한다. 설명은 근거로 뒷받침되며 그 근거는 언제든지 반박될 수 있다. 비판을 허용하며 심지어 그것을 장려한다. 이론은 반론과 비판을 통해 끝없이 수정되며 그 수정을 통해 점점 더 정교하고 온전한 형태로 발전한다. 뮈토스에서 로고스로 이 기적 같은 이행이 고대 그리스 땅에서 일어났다. 이 그리스의 기적을 우리는 철학이라 부른다.


도원

좀머 씨 이야기/파트리크 쥐스킨트

by 줄기 posted Jun 30,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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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6.29.이도원

제목: 좀머 씨 이야기

지은이: 파트리크 쥐스킨트

 

몇 십 년 전 나무를 기어 내려오다가 4.5미터의 높이에서 떨어져서 혹이 났다. 그 혹은 몇 주만에 없어졌지만 날씨가 않좋을 때 혹이 있던 부분이 근질근질했다. 나는 나무타기를 좋아했었다. 나무를 잘 타서 한 나무에서 다른 나무로 갈아타기도 했고 10미터 높이의 나무 위에서 바닥과 천장과 창문이 있는 집도 만들었다. 우리 마을에는 다른 사람과는 다르게 방랑생활을 하는 특이한 사람 한 명이 있었다. 그의 이름을 제대로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고 좀머씨라고만 불렀다. 그리고 그의 부인이 인형을 만들어 돈을 벌고 그 돈으로 식료품을 산다는 것만 알고 있었다. 좀머 씨는 매일 걸어다녔다. 호수 주변이 40km정도 되었는데 그는 하루만에 걸을 수 있었다. 그를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매일 보게 되기 때문이다. 좀머 씨는 어부들이 그물을 올리러 새벽 4시에 나갈 때 그가 먼저 나와 걷고 있는 것을 보았고 늦은 밤에 그가 집에 들어오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좀머 씨는 보면 식별할 수 있었다. 매번 입는 옷이 똑같았기 때문이다. 그는 걸을 때 준비물을 두 가지 준비했는데 호두나무 지팡이와 가방이었다. 가방에는 그가 먹을 빵과 비를 대비한 우비밖에 들어있지 않다고 했다. 좀머 씨는 제대로 된 말을 하지 않고 말을 걸면 대답도 하지 않았는데 한 번 제대로 말한 것을 들은 적이 있다. 나는 일요일에 아버지와 경마장에 갔다가 오는데 날씨가 급격히 변화했다. 푹푹 찌던 더위에서 엄청난 한기가 느껴지며 비가 쏟아졌고 공만한 우박이 내렸다. 우리는 길가에 차를 세우고 기다렸다. 날씨가 풀리고 다시 가다가 좀머 씨가 부지런히 걷고 있는 것이 보였다. 아버지는 차를 세워 좀머 씨에게 타라고 했지만 좀머 씨는 들은 척도 안했다. 아버지는 그러다가 죽겠어요 라고 말했다. 그 때 좀머 씨는 우뚝 서더니 지팡이로 도로를 쾅쾅치고 그러니 나를 좀 제발 그냥 놔두시오 라고 소리쳤다.. 아버지는 좀머 씨가 밀폐공포증이 있어서 그렇다고 한다. 우리반의 아이들은 대부분 호수 위마을에 살고 나만 호수 아랫마을에 산다. 우리반에는 카롤리나라는 여자애가 있었다. 나는 매일 그 여자애와 같이 노는 것을 상상하며 보냈다. 그런데 어느 날 카롤리나가 다음주 월요일에 호수아래마을에 갈 일이 있어서 같이 가자고 했다. 나는 너무 기뻤고 나는 매일 날짜를 세며 그 얘와 갈 산책로와 볼거리를 생각했다. 그리고 일요일 오후에는 간식들을 구두 상자에 넣어 숲에 보관했다. 당일인 월요알에 학교에 갔을 때는 모든 수업에 집중하고 하교시간을 기다렸다. 여자아이들은 1시간 더 수업을 받게 되어 나는 학교 문 앞에서 카롤리나를 기다렸다. 그리고 카롤리나가 왔는데 카롤리나는 갑자기 안 된다며 변명을 말하고 윗마을로 가벼렸다. 나는 집으로 갔다. 가면서 좀머 씨가 부지런히 걷는 것이 보였다. 몇 년이 지나고 나는 자전거 타는 법을 배웠다. 자전거를 타고 호수윗마을로 가서 피아노를 배웠다. 선생님은 퐁켈이라는 늙은 여자였는데 아주 엄격했다. 피아노를 배운지 1년이 되었을 때 지각하고 악보도 계속 틀리자 퐁켈 선생님을 나를 쫒아냈다. 나는 죽어야겠다고 생각하여 집으로 가지 않고 숲으로 갔다. 어떻게 죽어야 할지 잘 몰라서 서성거리다가 가문비나무에 올라갔다. 꼭데기에서 아래를 보니 땅이 보이지 않았다. 나는 내가 어떻게 죽는 지 알고 싶어 더 내려왔다. 떨어질려고 하는 그 때 탁 탁 소리가 나더니 좀머 씨가 나타났다. 나는 놀라서 좀머 씨를 보았다. 좀머 씨는 주변에 누가 있는지 확인하고 아픈 사람처럼 신음소리를 낸 다음에 가방에서 버터빵이랑 물을 꺼내 허겁지겁 먹었다. 다 먹고는 다시 빠르게 걸었다. 나는 자살하려는 마음을 지웠다. 5~6년 후 나는 집에 텔레비전이 없어 텔레비전을 보러 친구네 집에 갔다가 집으로 오던 중 자전거가 고장나서 고치고 더러운 손을 닦으려고 할 때였다. 호수 얕은 부분에 좀머 아저씨가 있었다. 아저씨는 호수를 향해 나아갔고 지팡이를 버린 채 나아갔다. 그리고 머리 끝까지 잠기고 물방울이 올라오더니 아무 미동도 없었다. 그 이후 좀머 씨가 없어졌다는 소문이 퍼졌고 없어진 이유에 이상한 가설들이 많이 생겼다. 신문에 실종자로 좀머 씨가 나와 나는 그의 풀 네임도 처음 알게 되었다. 좀머 씨의 마지막을 본 것은 나밖에 없었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느낀 점: 짧아서 골랐는데 무언가 결말이 이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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