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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록) 불편하면 따져봐

by 미르 posted Mar 20,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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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편하면 따져봐

불편하면 따져봐/최훈 2015.3.20. 김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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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 가기 전에 일어나는 폭력

종교적인 문제로 군대에 가기를 거부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1년 6개월 동안 감옥에 들어가게 되는데 이들을 양심수라 부른다. 어떤 사람들은 이 기간이 군대에 있는 기간보다 짧다며 일부로 그런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는 군대에 갔다 온 것과 다르다. 군대를 갔다 오면 자랑스러운 예비군이 되지만 감옥에서 나오면 전과자가 된다. 이 기록은 남아 있어 나중에 이들이 취업을 할 때도 불리하게 작용한다. 빨간 줄이 그어지는 것이다. 이런 대우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군대에 가기를 거부하는 이유가 무엇 때문일까. 이유는 성경에 무기를 없애라는 말이 쓰여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그렇게 군대에 안가는 사람이 늘어나면 군대가 없어질 것이고 그렇게 온 세계의 군대가 없어지면 평화가 찾아온다고 믿으며 그것을 위하여 행동하고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이런 이들을 위해 국가에서 정해준 일을 하면 군대를 한 달 동안만 다녀와도 되는 혜택을 주었다. 하지만 이들은 딱 눈감고 한 달만 군대에 다녀오면 될 것을 1년 6개월 동안 감옥에 간다. 하지만 사람들은 이들을 보고 군대에 가기 싫어 별짓을 다 한다고 하기도 한다. 또 이들을 양심수라 부르는 것에 반대하기도 한다. 군대에 가지 않은 사람들을 양심수라 부르면 군대에 간 사람들은 비양심적이라는 말이 된다고 하며 말이다. 이런 것을 애매어의 오류라고 한다. 실제로 그런 뜻으로 쓰인 단어가 아닌데 그렇게 받아들이는 것이다.

 

우리 안의 킬링필드

우리나라는 작은 나라다. 하지만 이 작은 나라 안에서도 지역감정이 있다. 우리나라의 지역감정 중 가장 심각한 것으로 전라도 지역에 대한 차별이 꼽히고 있다. 지역감정이 심한 사람들은 사람을 뽑을 때 차별을 하기도 한다. 이러한 차별들은 편견에 근거한다. 그리고 이러한 편견은 고정관념에 의해 생겨난다. 전라도 사람이 뒤통수를 잘 때린다는 고정관념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전라도 사람들을 만났다고 하자 이 사람은 그중 자신의 뒤통수를 때린 사람들만 기억할 것이다. 그러고선 전라도 사람들은 모두 뒤통수를 잘 때린다고 할 것이다. 만일 이 사람이 만난 전라도 사람들이 모두 이 사람의 뒤통수를 쳤다고 하더라도 이 사람이 만난 사람들이 그랬을 뿐이지 그것을 가지고 온 전라도 사람들을 싸잡아 같이 욕하면 안 된다. 만일 어느 학교 앞에서 남학생 몇 명을 봤다고 해서 이 학교를 남학교라 말하는 것은 말이 안 되는 것과 같은 것이다. 이것을 불충분한 통계의 오류라고 한다.

 

문명사회의 함무라비 법전

사형제 폐지론과 마찬가지로 사형제 존치론도 피해자 가족의 슬픔과 가해자에 대한 분노에 기대고 있다. 스웨덴의 교도소는 호텔이나 다름없다. 이들은 죄수들은 자유가 없고 그것이 형벌이라 한다. 자유를 못 누린다는 것은 인권을 박탈당한 것이고 그곳이 곧 벌이라는 것이다. 사형제를 찬성하는 사람들은 살인자들은 이미 남의 인권을 빼앗아갔기 때문에 이들의 인권도 빼앗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사형제를 반대하는 사람들은 그것과 관계없이 이들에게도 인권이 있기에 이 인권을 마음대로 빼앗으면 안 된다고 한다. 하지만 남의 인권을 빼앗아갔기에 이들의 인권을 빼앗아야 한다는 말은 논리보다는 복수심이라는 감정이 우선시되어 나온 말이다. 내가 당한 만큼 갚아야 화가 풀린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렇듯 논증을 할 때 감정을 근거로 하여 주장을 펼치는 것을 감정에의 호소 논증이라고 한다.

 

느낀 점: 재미있었고 모르는 사실들을 알게 되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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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록) 로알드 달의 백만장자의 눈

by 미르 posted Mar 14,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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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알드 달의 백만장자

로알드 달의 백만장자의 눈/로알드 달 2015.3.13. 김정인

    

동물들과 이야기하는 소년

나는 해변가에 있는 호텔에 묵고 있었다. 어느 날 해변가에 나가보니 사람들이 웅성대며 한군데에 모여 있었다. 나는 가까이 가 보았고 사람들 사이에 뒤집혀서 버둥거리고 있는 거북이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거북이는 굉장히 크고 등껍질은 아름다웠다. 어느 여자가 자신의 남편에게 그 거북이를 사 달라 졸랐고 그 남자는 어부한테 가서 돈을 줄 테니 거북이를 달라고 하였다. 하지만 어부는 호텔 지배인이 이미 샀다며 못 판다고 하였다. 호텔 지배인이 샀다는 말을 들은 사람들은 오늘 거북이 스테이크를 먹게 되었다고 좋아하며 자신들이 거북이를 호텔까지 옮기겠다고 하였다. 많은 남자들이 나와서 거북이를 맨 끈을 잡고 구호에 맞추어 앞으로 나아갔다. 그 때였다. 어느 소년이 갑자기 거북이 쪽으로 달려오기 시작하였다. 그 소년은 거북이 앞으로 오더니 사람들에게 거북이가 사람들에게 잘못한 것은 없지 않냐고 하며 거북이를 놓아달라고 간청하였다. 8~9살 쯤 되보이는 꼬마가 그런 말을 하니 사람들은 괜스레 부끄러워졌다. 한편 소년은 계속 떼를 썼고 지배인이 나왔다. 그 소년의 부모는 아이가 동물을 너무 좋아하며 이대로 거북이를 호텔 안으로 끌고 들어가면 틀림없이 발작을 일으킬 거라 하였다. 그러면서 자신들이 이 거북이를 사겠다고 하였다. 마침내 지배인이 그러라 하였고 그렇게 거북이는 풀려나 다시 바다로 헤엄쳐나갔다. 다음날 아침 소년의 부모가 자고 일어났는데 소년이 사라졌다고 했다. 사람들은 소년을 찾기 시작하였다. 그 때 어부들이 소년을 보았다고 하였다. 바다에서 소년이 거북이를 타고 가고 있는 것을 보아서 소년에게 오라고 하였지만 소년은 거북이에게 뭐라 얘기하더니 빠른 속도로 사라져 버렸다고 하였다. 어느 섬 근처로 놀러간 사람들이 그 거북이와 소년을 봤다는 얘기도 돌았다. 하지만 결국 소년은 찾지 못하였다.

 

백만장자의 눈

헨리는 아버지에게 유산을 많이 물려받아 부유하였고 그 덕에 일을 하지 않아도 마음껏 놀 수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헨리는 존이라는 의사가 쓴 글을 보게 되었다. 그 글은 어느 남자에 관한 이야기였는데 그 남자는 눈을 가려도 앞을 볼 수 있다고 하였다. 그 의사는 남자에게 그 비법을 물었고 남자는 자신이 수련한 이야기를 의사에게 해주었다고 하였다. 하지만 그 이야기를 해준 다음날 죽어버렸다고 하였다. 자신이 초능력을 가지게 된 것을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얘기하고 다닌 것 때문일지도 몰랐다. 그 글을 읽은 헨리는 자신도 수련하여 투시하는 능력을 기른 다음에 카지노에 가서 돈을 딸 계획을 세웠다. 헨리는 그 글에 적혀있던 대로 초를 눈앞에 둔 뒤 그 곳에 집중하는 훈련을 하였다. 처음에는 몇 초 밖에 집중하지 못하였지만 매일매일 수련한 결과 몇 분 동안도 투시할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몇 년 뒤 헨리는 카드를 꿰뚫어 보는 연습을 시작하였다. 처음에는 몇 십 분이 걸렸고 그는 매일매일 꾸준히 수련하였다. 결국 몇 개월 뒤 그는 30초 정도 걸렸고 거기서 몇 개월 뒤에는 3초 만에 카드를 꿰뚫어 볼 수 있었다. 그는 카지노에 갔고 그곳에서 많은 돈을 땄다. 사실 더 딸 수 있었지만 그는 거기서 멈추었다. 너무 많은 돈을 따면 다음번에는 그 카지노에서 출입을 제한할 것이 뻔하였기 때문이다. 그렇게 그는 여러 카지노를 돌아다녔고 나중에는 비행기를 타고 다니며 세계의 여러 카지노에 다녔다. 하지만 카지노끼리의 통신망이 있었고 결국 그는 출입을 거부당하였다. 그는 할리우드에 갔고 그곳에서 최고의 분장 전문가를 섭외하여 자신의 개인 분장사로 만들었다. 그렇게 그는 생김새를 바꿔가며 매일 카지노에 드나들었다. 그에게는 아주 많은 돈이 생겼고 그는 자신의 회계사에게 모든 비밀을 얘기해주며 자신의 돈을 관리해달라고 하였다. 그는 그 돈으로 큰 고아원을 세울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얼마 뒤 그는 그 돈으로 세계 여러 나라에 21개의 고아원을 세웠고 그 고아원은 그의 돈에 의해 잘 유지되고 있었다. 그 뒤 헨리는 늙어서 죽었고 그의 회계사는 그의 이야기를 작가에게 가서 써 달라 요청하였다.

 

느낀 점: 재미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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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록) 중학교 과학 3

by 미르 posted Mar 07,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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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 과학 3 2015.2.26. 김정인

 

Ⅰ 전기와 자기

원자를 구성하는 원자핵과 전자 사이에는 서로 잡아당기는 전기력이 작용하여 전자가 원자핵에 붙들려 있다. 또한 원자들이 결합하여 분자를 이룰 때 전자들 사이에 서로 밀어내는 전기력 때문에 분자가 고유한 구조를 가진다. 정전기 유도 현상은 물체 내부에서 전자가 쉽게 움직이는 도체뿐만 아니라 전자가 쉽게 움직이지 못하는 부도체에서도 일어난다. 전류의 세기는 전압 V에 비례하고 저항 R에 반비례 하는데 이것을 옴의 법칙이라고 한다. 전기 저항은 도선의 길이에 비례하고 굵기에 반비례 한다. 전기 에너지는 다른 에너지로 쉽게 전환되며 사용 시 공해를 유발하지 않는다는 장점이 있다. 자기장의 모습을 선으로 나타낸 것을 자기력선이라 하며 이는 서로 교차하거나 끊어지지 않으며 선의 간격이 좁은 곳일수록 자기장이 세다. 자기장의 방향은 전류의 방향에 영향을 받는다. 코일근처에서 자석을 움직이거나 자석을 가만히 두고 코일을 움직이면 코일에 전류가 흐르게 된다. 이러한 현상을 전자기 유도 현상이라 한다.

 

Ⅱ 화학 반응의 규칙성

화학 변화가 일어날 때는 물질의 성질이 변하여 색이 달라지거나 앙금이나 기체가 생성되는 등 다양한 현상이 나타난다. 화학 반응이 일어날 때 반응 전 물질의 전체 질량과 반응 후 물질의 전체 질량은 항상 같은데 이를 질량보존 법칙이라고 한다. 두 물질이 결합하여 화합물을 만들 때 반응하는 두 물질의 질량 사이에는 일정한 비가 성립하는데 이를 일정 성분비 법칙이라고 한다. 온도와 압력이 같을 때 기체의 종류와 관계없이 같은 부피 안에는 같은 수의 기체분자가 들어있다. 화학 반응식을 보면 반응 물질과 생성 물질의 종류를 알 수 있다. 또한 반응 전후 원자수와 분자 수 비를 알 수 있다.

 

Ⅲ 태양계의 이해

지구는 적도 반지름이 약 6378km, 극 반지름이 약 6357km로 완전한 구형이 아니라 적도 쪽이 약간 더 부푼 타원체이다. 한편 정밀하게 측정된 달의 반지름은 약 1738km로 지구 반지름의 1/4정도이다. 태양의 연주 운동과 계절에 따른 별자리의 변화는 모두 지구가 공전하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다. 계절 변화는 지구의 자전축이 기울어진 채로 공전하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다. 지구형 행성은 크기와 질량은 작지만 철과 같은 무거운 물질을 많이 포함하고 있어 밀도가 크고 표면이 딱딱한 암석으로 되어 있다. 지구형 행성은 고리는 없으며 위성은 없거나 그 수가 적다. 목성형 행성은 크기와 질량이 지구형 행성에 비해 크지만 수소와 같이 가벼운 물질을 많이 포함하고 있어 밀도가 작고 주로 수소나 헬륨 등의 기체 물질이 얼어붙어 있어 암석으로 이루어진 딱딱한 표면이 없다. 목성형 행성은 모두 고리가 있으며 위성이 많다.

 

Ⅳ 생식과 발생

무성생식은 대부분 모체의 세포나 몸 일부가 그대로 나뉘어 자손이 만들어지기 때문에 자손은 모체와 같은 특징을 가지게 된다. 반면 유성생식은 두 생식세표가 결합하여 자손이 만들어지므로 부모의 특징이 섞여 다양한 자손을 생산할 수 있다. 생물은 체세포 분열을 통해 세포의 수가 늘어나면서 몸이 자라고 상처로 손상된 세포를 대체한다. 핵 속에 저장되어 있으면서 생명체의 각 특징을 결정하는 하나하나의 정보를 유전자라고 한다. 생명체를 이루는 세포의 핵 속에는 염색체가 있으며 생물 종류마다 일정한 수의 염색체를 지닌다. 성 염색체를 제외한 나머지 22쌍의 염색체는 성별에 따른 차이가 없이 남녀 모두 모양과 크기가 같은데 이를 상염색체라고 한다.

 

Ⅴ 여러 가지 화학 반응

산은 물속에서 이온을 생성하여 전류를 흐르게 한다. 모든 산은 수용액이 되면 수소 이온을 내놓지만 내놓은 수소 이온의 개수는 다르다. 산과 마찬가지로 염기도 물에 녹아 이온을 생성하여 전류를 흐르게 한다. 용액의 산성이나 염기성을 좀 더 정확하고 쉽게 비교하기 위해서 PH를 이용한다. PH는 수용액 속에 수소 이온이 얼마나 많이 들어있는지를 나타낸 값이다. PH를 측정하기 위해서 만능 PH시험지를 이용한다. PH를 더 정확하게 측정하기 위해서는 정확하게 측정하기 위해서는 PH측정기를 이용한다. 산화 환원 반응은 우리 생활에서 유용하게 쓰인다. 물질의 연소는 대표적인 산화 환원 반응의 예이다.

 

Ⅵ 유전과 진화

DNA에 있는 유전자에 따라 우리 몸을 구성하는 여러 종류의 단백질이 만들어지고 이 단백질이 모여 형질을 결정한다. 상동 염색체에는 같은 위치에 한 형질을 결정하는 유전자가 있는데 이 두 유전자를 대립 유전자라고 한다. 대립 유전자 사이에 우열관계가 분명하지 않아 잡종에서 두 대립 형질의 중간 형질이 나타나는 유전 현상을 중간 유전이라고 한다. 과학 기술이 발달하면서 사람의 염색체와 DNA를 직접 분석하여 사람의 유전 현상을 보다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최근에는 ‘사람 유전체 사업’을 통해 사람의 전체 DNA구조가 밝혀졌다. 생물이 여러 세대를 거치면서 환경에 따라 변화하는 것을 진화라고 한다. 상사 기관은 다른 종의 생물들이 비슷한 환경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서로 비슷한 형질을 갖게 된 것을 보여준다. 다윈은 자연 선택을 통해 생물이 기존의 종과는 다른 종으로 서서히 변화하면서 진화가 이루어진다고 설명하였다.

 

Ⅶ 외권과 우주 개발

어떤 지역에서 그 계절의 밤 9시경 남쪽 하늘에서 잘 보이는 별자리를 계절 별자리라고 한다. 북극성은 밤하늘의 수많은 별들 중 별자리를 찾는데 가장 기본이 되는 별이다. 별까지의 거리가 너무 멀면 연주 시차를 측정하기 어려우므로 연주시차를 이용하여 별의 거리를 나타내는 것은 지구에서 100pc이내에 있는 비교적 가까운 별만 가능하다. 별의 밝기는 거리의 제곱에 반비례 한다. 별은 지구로부터 거리에 따라 눈으로 보았을 때의 밝기인 겉보기 등급과 실제 밝기인 절대 등급이 다르게 나타난다. 우리 은하는 태양계를 비롯하여 수많은 별과 성단, 성운, 성간 물질로 이루어진 거대한 천체의 집단이다.

 

Ⅷ 과학과 인류 문명

과학 기술은 사람들의 생활에 커다란 영향을 주어왔고 때로 인류의 역사에서 혁명적인 역할을 하기도 했다. 오늘날의 첨단 과학 기술은 우리 생활의 바탕이며 우리 생활의 일부가 되어 다양한 분야에서 영향을 준다.

 

느낀 점: 재미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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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록) 중학교 역사 2

by 미르 posted Feb 26,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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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엔 중학교 역사2

중학교 역사 2 2015.2.26. 김정인

 

.근대 국가 수립 운동과 국권 수호 운동

서양 열강의 침략적 접근이 계속되어 위기감이 고조되었고 이때 나이 어린 고종이 즉위하자 고종의 아버지인 흥선대원군이 권력을 잡게 되었다. 흥선대원군은 프랑스와 미국의 통상 요구를 무력으로 맞서면서까지 단호히 거부하였다. 일본은 운요호 사건을 일으켜 조선에 개항을 강요하였고 이때 맺은 강화도 조약은 불평등 조약이었다. 강화도 조약 이후 정부는 근대 문물을 수용하기 위한 개화 정책을 추진하였다. 이 때 개화파가 형성되었고 그들은 온건 개화파와 급진 개화차로 나뉘어졌다. 개항 이후 국가의 재정이 어려워졌고 농민들의 생활은 더욱 힘들어졌다. 이때 동학이 확산되었으며 농민들은 봉기를 일으켰다. 아관 파천으로 자주 국가로서 조선의 위신이 땅에 떨어지고 열강의 이권 침탈이 가속화되었다. 독립 협회는 독립문과 독립관을 건립하여 나라의 위신을 되찾고 조선이 대내외적으로 자주국임을 내세우고자 하였다. 자주성의 회복을 주장하는 여론이 높아지자 러시아 공사관으로 피신해 있던 고종은 1년 만에 경운궁으로 돌아왔다. 개항 이후 새로운 문물들이 많이 들어왔다. 그 뒤 일본은 대한 제국에게 을사조약의 체결을 강요하였으며 헤이그 특사 파견을 구실로 고종을 강제로 퇴위 시켰다.


.민족 운동의 전개

국권을 강탈한 일제는 식민 통치의 최고 회의기구인 조선 총독부를 설치하였다. 일제는 한국인의 모든 정치활동을 금지하고 탄압하였다. 탄압을 견디다 못해 사람들은 3.1운동을 일으켰고 이 일을 계기로 임시정부가 세워졌다. 1929년 열차 안에서 일어난 한.일 학생간의 충돌을 계기로 광주 학생 항일운동이 일어났다. 이 운동은 3.1운동 이후 국내에서 일어나나 가장 규모가 큰 민족 운동이었다. 일제의 중국 침략이 강화되자 대한민국 임시 정부는 충칭으로 이동하여 조직과 체제를 정비하고 지청천을 총사령관으로 하여 한국광복군을 창설하였다. 일제의 패망과 우리나라의 독립이 예상되는 가운데 국내외에 있는 여러 독립운동 단체는 적극적으로 건국을 준비하기 시작하였다.

 

.대한민국의 발전

2차 세계 대전에서 일본이 패배하면서 우리 민족은 1945815일 광복을 맞이하였다. 한편 미국과 소련에 의해 남북에 각각 정부가 수립되었는데 이후 남과 북의 대결은 갈수록 심화되었다. 마침내 1950625일 북한군은 선전포고도 없이 38도선 이남으로 무력 침공하였다. 6.25 전쟁은 동족상잔의 비극일 뿐만 아니라 냉전시대에 나타난 최대의 국제 전쟁이었다. 1950년대 이승만 정부는 여러 차례 헌법을 계정해면서 장기 집권을 시도하였다. 그 뒤 이승만은 부정 선거를 자행하였고 419일 사람들이 시위를 벌였다. 4.19 혁명은 학생과 시민이 힘을 합쳐 독재 정권을 무너뜨린 최초의 민주주의 혁명으로 우리나라 민주주의 발전에 기초를 세운 혁명이었다. 1961516일 박정희를 중심으로 한 일부 군인이 군사정변을 일으켜 장면 정부를 무너뜨리고 권력을 장악하였다. 전두환 정부는 물가 안정과 경제 성장을 위하여 노력하면서 야간 통행금지 해제, 중 고등학생의 두발과 교복 자율화 등의 유화 정책을 폈다. 하지만 그러면서 독재 정치는 그대로 유지하였다. 결국 사람들은 시위를 벌였고 이를 6월 민주항쟁이라 한다. 그 뒤 1997년 말에 외환위기를 맞았지만 시민들이 힘을 모아 이를 극복해 내었다.

 

.산업 사회와 국민 국가의 형성

영국에서는 청교도 혁명과 명예혁명이 일어나 의회중심의 입헌군주정을 발전시켰다. 또한 산업혁명이 일어나 생산력이 비약적으로 발전하였으며 이로 인해 사람들의 생활은 이전보다 훨씬 풍요롭고 편리해졌다. 한편 프랑스에서 루이 16세는 매우 사치스럽게 살고 있었다. 마침내 나라의 재정이 부족해졌고 시민들은 혁명을 일으켜 신분제를 뒤엎었다. 이를 프랑스 혁명이라 한다. 17세기 무렵부터 일부 영국인이 신앙의 자유와 경제적인 이유로 북아메리카의 동부 연안에 이주하여 13개의 식민지를 건설하고 의회를 만들어 자치를 누리고 있었다. 이들은 독립을 하고자 하였고 독립전쟁을 일으켜 승리하였다. 독립을 달성하고 민주주의를 계속 발전시킨 미국은 영토 확장과 산업 발전에 힘을 기울였다. 이런 발전 과정에서 남부와 북부는 노예제 문제로 심각하게 대립하였다. 결국 남북전쟁이 일어났고 북부가 이기면서 끝이 났다. 이런 남북 전쟁을 거치면서 미국의 산업은 크게 발전하였다. 19세기 후반 유럽과 미국에서는 자본주의가 고도로 발전하였다. 이들은 더 많은 식민지를 필요로 하였고 아프리카를 정복하기 시작하였다. 그 뒤 그들은 아시아로 와서 인도와 베트남 등 동남아 지역을 정복하였다.

 

.아시아 아프리카 세계의 변화와 민족 운동

18세기 중반 이후 청은 광저우 한 곳만 개방하고 공행 무역을 통해 영국으로부터 많은 이익을 얻었다. 영국은 적자를 메우기 위해 아편을 팔았고 이로 인해 전쟁이 일어났다. 이 전쟁에서 패배한 청은 영국과 난징조약을 맺고 문호를 개방하였다. 일본은 약 200년 이상 통상 수교를 거부하는 정책을 펼쳤다. 이러한 가운데 미국의 페리 제독이 함대를 동원하여 개항을 요구하자 에도 막부는 이에 굴복하여 개항을 약속하고 미.일 화친 조약을 체결하였다. 영국이 인도를 침략하였고 인도는 반영 민족 운동을 일으켰다. 한편 동남아시아는 유럽에 의해 식민지화 되었고 동남아시아 나라들은 이에 맞서 민족 운동을 벌였다.


.현대 세계의 전개

유럽의 열강들은 앞 다투어 제국주의 팽창 정책을 추진하면서 점차 두 세력으로 나뉘어 대립하였다. 19146월 한 청년이 오스트리아-헝가리 황태자 부부를 암살하였고 이로 인해 제 1차 세계대전이 발발 하였다. 1차 세계 대전은 연합국이 승리함으로써 끝이 났다. 1차 세계 대전 후 유럽의 국가들은 국제 연맹을 탄생시킨 것 외에도 평화를 위한 노력을 계속하였다. 1937년 발발한 중.일 전쟁이 장기화되자 일본은 자원 확보를 위해 동남아시아를 침략하였다. 미국이 경제 봉쇄로 맞서자 일본은 하와이 진주만을 공격하여 태평양 전쟁을 일으켰다. 이 전쟁은 제 2차 세계 대전이 되었고 일본이 연합국에 항복함으로써 끝이 났다. 그 뒤 아시아 아프리카의 여러 나라가 독립하였고 전후 20년 이상 계속된 냉전체제는 1970년대에 들어와 점차 완화되기 시작하였다. 그 뒤 소련이 해체되고 자본주의의 세계는 더욱 확대되었다.

 

느낀 점: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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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록) 중학교 사회 2

by 미르 posted Feb 25,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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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엔 자습서 중학교

중학교 사회 2 2015.2.25. 김정인

 

문화의 다양성과 세계화

문화란 인간이 자연과 상호작용을 하면서 만들어 내는 언어, 종교, 의식주 등의 생활양식을 말한다. 문화는 기후, 지형 등 자연환경의 영향을 받아 형성되는데 특히 기후는 인간의 의식주에 큰 영향을 끼친다. 전 세계에는 7000여개의 달하는 언어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 국가 내에서 여러 개의 언어가 사용되기도 하는데 벨기에와 스위스가 대표적인 사례이다. 스위스는 4개 인도는 22개의 언어를 공용어로 사용한다. 아프리카와 나이지리아에서는 무려 500개의 언어가 사용되고 있다. 문화는 기술에 발전에 따른 발명 등으로 사회 전반에 큰 변화가 생기면서 변하게 된다.

 

글로벌 경제와 지역 변화

다국적 기업의 활동은 그 기업이 입지한 지역에 많은 변화를 가져온다. 세계화에 따라 고부가 가치의 첨단 산업과 다국적 기업의 본사, 금융 서비스 등은 주로 선진국에 위치하고 값싼 노동력이 필요한 제조업과 농업 부문은 개발도상국에 위치하여 세계 경제의 분업화 현상이 나타났다. 오늘날 세계는 국제 통화기금 (IMF) 국제 부흥 개발 은행 (IBRD) 경제 협력 개발 기구 (OECD) 등의 국제 협력 기구를 결성하여 세계 경제의 불평등 현상을 줄이는데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세계화 시대의 지역화 전략

우리의 전통과 문화를 잘 보존하고 있는 전통 마을은 과거의 전통과 현재의 삶을 이어주며 전통문화를 경험해 보지 못한 후손들과 도시인들에게 우리 문화유산의 소중함을 일깨워 주고 있다. 생태도시는 자칫 자연과 떨어질 수 있는 도시 공간을 자연 친화적으로 계획하고 개발한 곳이다. 각 지역이 세계화의 주체로 등장하고 있다.

 

자원의 개발과 이용

물 자원을 둘러싼 갈등은 메콩 강, 티그리스, 유프라테스 강 등과 같이 여러 나라를 거쳐 흐르는 국제 하천에서 많이 발생한다. 석유의 분포는 땅 속 지질 구조의 영향을 크게 받는데 서남아시아와 북부 아프리카 지역에 세계 석유의 60% 이상이 매장되어 있다. 자원 개발로 인한 부는 그 나라 국민이 풍요로운 삶을 누릴 수 있게 해준다. 이러한 부에도 불구하고 빈부격차 문제가 심각해져 사회 발전에 장애가 되기도 한다.

 

환경 문제와 지속 가능한 환경

오존층 파괴는 에어컨의 냉매제 등으로 많이 이용되는 염화 불화탄소(CFC) 에 의해 성층권의 오존층이 파괴되는 현상이다. 생물종 다양성의 보존은 지구 기후 변화에 대응하고 지속적으로 자원을 확보하며 인간의 삶과 질을 개선하는데 필요한 핵심적인 요소이다. 환경문제는 한 지역이나 나라에 피해를 주기도 하지만 대기의 순환이나 물의 흐름에 따라 국경을 넘어 여러 나라에 걸쳐 피해를 주기도 한다.

 

우리나라의 영토

영역을 둘러싼 갈등은 역사적 종교적 배경이 깊고 각 나라의 이익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해당 국가들이 대화와 타협을 통해 평화적으로 해결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 독도는 동도와 서도의 두 개의 큰 바위섬을 비롯하여 총 89개의 섬으로 이루어져 있는 우리의 소중한 국토이다.

 

통일 한국과 세계 시민의 역할

백두산(2744m)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산으로 북쪽으로 압록강을 사이에 두고 중국과 마주하고 있다. 비무장 지대에서 다양한 습지 생태계가 나타나고 2000여 종의 동식물이 서식하고 있다. 특히 81종의 멸종 위기종과 보호종이 존재하고 있어 생태적 가치가 큰 지역이다.


일상생활과 법

법은 강제력이 있어 분쟁을 어떻게 해결할지 결정되면 당사자들은 결정된 사항에 따라야 한다. 법은 분쟁을 해결하기도 하지만 예방하기도 한다. 사회법은 사법의 영역인 개인 간의 관계에 국가가 개입하는 새로운 유형의 법이다. 재판은 분쟁 당사자들의 갈등을 해결해 줄 뿐만 아니라 분쟁을 해결하는 합리적인 기준을 제시해줌으로써 분쟁을 예방하고 사회질서를 유지하는 기능을 한다.


인권 보장과 헌법

우리가 인권을 갖는 것은 인간이 사회 속에서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는 존재이자 주체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국가 인권 위원회는 모든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보호하기 위한 국가 기관이다.

 

헌법과 국가 기관

대통령은 국가 원수로서 국가를 대표하여 외국과 조약을 체결하고 외교 사절을 신임, 접수하는 등 외교에 관한 권한을 행사하며 헌법 기관을 구성하는 권한을 가지고 있다.

 

국민 경제와 경제 성장

한 나라의 생산 활동이 활발해지면 생산에 참여한 그 나라의 국민에게 소득이 주어지고 소득을 얻은 국민은 그만큼은 지출할 수 있게 된다. 소비자는 과소비를 억제하고 건전하고 합리적인 소비 생활을 통해 물가 안정에 기여할 수 있다.

 

국제 경제와 세계화

오늘날 교통 및 통신 수단의 발달과 세계 무역 기구가 주도하는 자유 무역 주의의 확산으로 국제 거래의 규모나 내용은 점차 확대되고 있으며 이로 인해 한 나라의 경제생활은 독자적으로 이루어질 수 없게 되었다. 한 나라의 물가 안정과 국제 성장을 위해서는 국제 수지가 균형을 이루는 것이 바람직하다.

 

국제 사회와 국제 정치

국제 사회는 공권력을 가진 정부가 존재하지 않는 무정부적 상태이다. 국제기구들은 국제 평화를 위협하는 행위에 개입하거나 국가 간 분쟁을 중재함으로써 국제 질서 유지에 기여하고 있다.

 

현대 사회와 사회 문제

사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개인뿐만 아니라 사회가 함께 해결해야 할 과제라는 인식과 함께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현재의 욕구 충족이나 성장 정도가 기대에 미치지 못하더라도 미래에도 삶을 지속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한 것이다. 지구를 위기에서 구하는 일에는 지구에 살고 있는 모든 인류의 노력이 필요하며 특히 선진국과 개발도상국의 협력이 절실하다.

 

느낀 점: 요약을 하는 것이 힘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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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록) 중학교 국어 6

by 미르 posted Feb 25,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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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 국어 6 2015.2.24. 김정인

 

이상한 선생님

우리학교에 있는 박 선생님은 키가 매우 작은 선생님이었다. 군대에서 입대도 거부당할 정도로 키가 작았다. 그런 키에 비해 머리는 매우 컸다. 그래서 굉장히 우스꽝스러웠다. 하지만 성격만큼은 사나웠다. 일제강점기였기에 우리의 국어는 일본어였고 학교에서 우리말로 대화를 하는 것은 금지되어 있었다. 박 선생님은 일본을 칭송하였고 어느 때에도 일본어로 우리에게 말을 하였다. 강 선생님은 박 선생님과 정반대였는데 키도 컸고 순하게 생겼으며 성격도 너그러웠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어느 아이와 시비가 붙었고 그 아이와 싸우게 되었다. 자연히 우리말이 나왔고 그렇게 우리는 우리말로 싸우고 있었다. 그 때 박 선생님이 나타났고 우리에게 일본어로 화를 내었다. 우리말을 썼다는 이유에서였다. 그에 비해 강 선생님은 실수로 우리말이 나왔을 때도 너그럽게 봐 주셨다. 어느 날이었다. 일본이 미국에게 항복을 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그 소식을 들은 어느 여학생은 일본 천황을 욕하며 교무실에서 나갔다. 그러나 박 선생님은 그 아이에게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한편 강 선생님은 기뻐하며 태극기를 그려 아이들에게 나누어 주려 하였다. 박 선생님은 그 옆에서 아무 말도 못하고 있었다. 박 선생님은 일본이 항복하였다는 소식을 들은 뒤 영어를 공부하기 시작하였고 그러면서 일본은 남의 나라나 빼앗는 오랑캐 나라이며 미국은 훌륭한 나라라고 미국을 칭송하고 다니기 시작하였다. 그렇게 영어를 잘하게 된 박 선생님은 미군들과 친하게 지냈다. 예전에 일본을 칭송하던 모습은 어디에도 없었다. 얼마 뒤 강 선생님은 교장선생님이 되었지만 얼마 안 있어 빨갱이라는 누명을 뒤집어쓰고 파면 당하였다. 그리고 박 선생님이 그 자리를 대신하게 되었다. 강 선생님에게 빨갱이라는 누명을 뒤집어씌운 사람이 박 선생님이라는 소문이 돌기도 하였다. 여전히 박 선생님은 우리에게 미국을 칭송하고 다녔다.

 

동물에게도 문화가 있다

제인구달은 어느 날 침팬지가 흰개미 굴에 있는 개미들을 나뭇가지를 이용하여 잡아먹는 것을 발견하였다. 이것은 인간외의 동물이 도구를 이용한다는 것을 알려주는 중요한 발견이었다. 또한 제인구달은 이들에게도 문화가 있다는 것을 발견하였는데 서로 다른 곳에 사는 침팬지들은 털을 골라주며 서로 다른 행동을 취한다는 것을 발견하였다. 인간 사회도 동서양 문화가 다르고 민족마다 고유의 문화가 있듯이 동물도 종별로 무리별로 다르게 행동한다는 근거였다. 이 이후에도 수달이 도구를 이용한다는 것이 발견되었지만 그 이외에 다른 동물은 발견되지 않았다. 그러던 중 돌고래도 도구를 이용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소수의 돌고래들은 해면류를 이용하여 물고기를 유인한 다음 물고기를 사냥하여 먹는다는 사실이 밝혀진 것이다. 이 돌고래들은 주로 독립적으로 살아가는 돌고래였는데 독립적으로 살아가다보니 사냥을 하기가 불리해져 해면류를 이용하게 된 것이라 추측되었다. 한편 어느 마을은 돌고래와 인간이 함께 물고기를 잡는 마을로 유명한데 옛날부터 계속 이어져 온 것이라고 하였다. 돌고래들이 먼 바다에서부터 육지 쪽으로 물고기들을 몰아오면 사람들이 육지 쪽에서 그물을 들고 대비하다 돌고래들의 신호를 받고 물고기를 잡는 형식이었다. 여기 사는 돌고래들이 다 그런 것은 아니고 특정 돌고래들만 그렇게 행동하였는데 아기 돌고래들도 이 돌고래들과 같이 다니는 것으로 보아 어미가 하는 것을 보고 배운 돌고래들만 그렇게 행동할 것이라는 결과가 나왔다.

 

골목에서 꽃핀 창조적 수공예품

내가 공정무역이란 것에 대해 처음 알게 된 것은 내가 인도에 있을 때였다. 그 때에 인도에서 공정무역 전시회가 열렸고 나는 그곳에 가보았다. 며칠 뒤 나는 공동무역 공동체에 가보았고 그곳에서 만난 여인들은 하나같이 행복해하였다. 이제 아이를 일터에 보낼 필요가 없어졌으며 아이를 학교에 보낼 수 있다고 좋아하는 여인도 있었고 예전에 비해 돈을 많이 벌게 되어 행복하다는 여인, 아이에게 자신의 일을 물려줄 수 있어 좋다는 여인도 있었다. 이제 창조적 수공예품은 영국, 미국 등 7개국으로 수출되고 있으며 그전의 그들의 품삯은 완제품 가격의 1%도 되지 않았지만 이제는 제품마다 15~50%의 이익을 보장받게 되었다.

 

느낀 점: 동물에게도 문화가 있다는 것이 신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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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록) 중학교 국어 5

by 미르 posted Feb 24,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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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공의 힘 평가 문제집

중학교 국어 5 2015.2.24. 김정인

 

간송 전형필

전형필이 스물다섯 살 때 그의 부모님은 돌아가셨다. 전형필에게 남겨진 것은 막대한 재산이었다. 그가 소유한 논은 800만 평이 넘었으며 이 땅에서 나는 쌀을 모두 합치면 한 해 수확량이 4만 가마니였다. 이것들을 팔고 각종 경조사비 같은 것을 지출해도 일 년 순이익은 15만원이었으며 이는 당시 기와집 값으로 환산하면 150, 기와집 한 채를 현재 돈으로 환산했을 때 3억 원으로 계산하면 일 년 순이익이 450억이 되었다. 또한 그의 땅을 다 판다고 가장하였을 때 그의 총 재산은 6천억 원 이상이었다. 그의 아버지는 그가 그 돈으로 쓰러져가는 학교를 다시 세우기를 원하셨다. 하지만 그는 아직 자신이 그럴만한 수준이 안 된다고 생각하였고 그 돈으로 우리의 유물들을 사들이기로 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천학매병이 시장에 나왔고 그는 일본인과 경매를 하여 그 때 시세로 2만원에 그 매병을 사들였다. 그렇게 그는 박물관을 지으며 유물들을 모아갔다.

 

재능 없는 사람은 없다

나는 어렸을 때 내가 재능이 없다고 생각하였다. 나는 공부도 못하였고 다른 것에도 소질이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전국 아동 작문 집을 보게 되었고 거기에 빠져서 하루 종일 그 책만 읽어대었다. 그 책을 읽은 뒤 나는 글을 써보기로 하였고 글 쓰는 재미에 빠져 한 달에 8~9편쯤의 글을 써대었다. 처음에는 내가 글을 썼다는 것을 믿어주지 않던 사람들도 나를 인정해주기 시작하였고 어느 날은 선생님께서 내 글을 보시고는 칭찬을 해 주시며 반 아이들 앞에서 그 글을 읽게 하였다. 그 후 나는 전국 아동 우수 작품집을 구매하여 읽었고 그것을 읽으며 나의 국어실력은 자연스레 향상되었다. 그 뒤 아는 형이 나에게 레미제라블을 선물로 주었고 그것을 읽으며 나는 더욱 글을 잘 쓸 수 있게 되었다. 그 뒤 나는 사람에게는 누구나 특별한 그만의 재능과 소질이 있다는 것을 믿게 되었다.

 

아우를 위하여

어렸을 적 나는 노깡 속에 들어가 총알을 줍는 것을 좋아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노깡 깊숙이 들어가 총알을 주웠고 그때 나는 어쩌다가 뼈 조각을 줍게 되었다. 그 것을 본 나는 기절을 하였고 그 뒤 그 기억은 나를 쫓아다니며 나를 괴롭혔다. 나는 그 기억을 이기지 못하였다. 한편 나는 부산에서 학교를 다니게 되었는데 학교 건물을 미군 부대가 사용하는 바람에 우리는 창고 같은 곳에서 흙바닥에 가마니를 깔고 책상대신 화판에 받쳐 글씨를 쓰며 공부를 하게 되었다. 전쟁 탓에 몇 년을 꿇은 아이들이 있었고 그 아이들은 대장노릇을 하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미군 부대 하우스 보이 영래가 우리 학교에 왔고 그 날 하사관이 와서 우리에게 간식을 돌렸다. 우리는 자연히 영래를 따르게 되었다. 영래는 우리보다 나이가 훨씬 많은 15살 남자아이였다. 우리 담임선생님은 우리에게 관심이 없었고 모든 것을 영래에게 맡겼다. 영래는 자신의 말을 듣지 않는 아이는 때렸으며 우리에게 돈을 걷어 선생님의 선물을 사드리면서 선생님께 잘 보였다. 우리는 영래의 말에 순종하며 그가 하자는 것은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아무 말 없이 행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교생선생님이 우리 반에 오게 되었고 그 교생선생님은 젊은 여자 선생님이셨다. 그 선생님은 우리에게 관심이 많으셨다. 그러던 어느 날 영래와 아이들이 선생님께 외제 나일론 스타킹을 선물로 드렸고 선생님은 화를 내시며 천박한 속을 드러내지 않으려고 겉으로만 번지르르하게 내세우는 건 스스로 자신이 없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셨다. 그 말을 들은 영래는 선생님의 욕을 쓴 쪽지를 수업시간에 아이들에게 돌렸고 나는 그 쪽지를 받게 되었다. 나는 그 쪽지를 다른 아이에게 주지 않았고 수업이 끝난 뒤 영래에게 가서 항의를 하였다. 영래는 나를 때리려 하였지만 아이들은 교생선생님 편을 들었고 그렇게 영래의 독재는 끝이 났다. 훗날 나는 교생선생님을 집으로 초대하여 노깡에서 있었던 일을 말하였고 선생님께서는 애써 보지도 않고 덮어놓고 무서워만 하면 비굴한 사람이 되며 겁쟁이가 되어 끝내 무서움에서 놓여날 수가 없다고 하였다. 그 뒤 나는 다시 한 번 더 노깡에 가 보았고 그 뒤로 더 이상 그 기억은 무서운 기억이 아니게 되었다.

 

나무를 심은 사람

나는 해발 1200~1300미터의 산악 지대에 있는 헐벗고 단조로운 황무지를 향해 먼 도보여행을 떠났다. 황무지에는 아무것도 없었고 중간에 마을을 보아 들어갔지만 그 마을은 폐허가 되어있었다. 그렇게 나는 점점 지쳐갔다. 그 때 나는 어느 양치기가 황무지에 누워있는 것을 발견하였고 그에게 그의 집에서 자고 싶다고 부탁을 하였다. 그렇게 나는 그의 집에 가게 되었고 그의 집은 돌로 단단히 지어진 집이었다. 그의 집안은 매우 깨끗하였고 물건들이 가지런히 정리되어있었다. 그 날 밤 양치기는 도토리를 탁자위에 늘어놓고 도토리를 골라내기 시작하였다. 그렇게 상태가 완벽한 도토리가 100개가 모아지고 나서야 그는 일을 멈추었고 우리는 잠자리에 들었다. 다음날 나는 그를 따라가 보았고 그는 어느 동산위로 올라가더니 땅을 파고 그 도토리들을 심기 시작하였다. 그는 나에게 지금껏 자신은 10만개의 도토리를 심었으며 그중 2만개에서 싹이 났다고 하였다. 그는 아마 그중 1만개 정도는 살아남아 숲을 이룰 것이라고 하였다. 훗날 나는 그곳에 다시 한 번 더 가 보았고 그곳은 이제 나무사이로 물이 흐르는 숲이 되어있었다. 그뿐만이 아니라 그 주변에는 마을까지 생겨있었다. 물이 생기니 사람들이 그곳으로 이주를 해온 것이었다. 그 마을은 점점 커졌고 나중에는 1만 명의 사람들이 그곳에서 살게 되었다. 한 사람의 노력으로 황무지가 사람이 살 수 있는 곳으로 변한 것이었다. 나는 그 양치기를 존경하게 되었다.

 

읽기란 무엇인가

글은 인간이 만든 수많은 도구 중에서 가장 위대한 도구이다. 망원경이나 현미경은 눈의 확장이며 확성기는 입의 확장, 세탁기는 손의 확장, 비행기나 자동차는 발의 확장이다. 이러한 확장을 통해 인간은 편리하게 살아가게 되었다. 그리고 기억과 상상의 확장인 이런 글을 읽음으로서 인간은 현실의 삶을 넘어서서 과거나 미래를 자유로이 넘나드는 초월적인 삶을 누릴 수 있게 되었다. 이렇듯 우리는 글을 읽어야 한다. 우리는 인간과 사회 그리고 자연에 대해 새롭게 이해하고 그에 관한 지식을 얻기 위해 혹은 심심풀이, 재미로 글을 읽는다. 또 느끼고 깨닫기 위해서, 마음의 휴식을 얻기 위해서 글을 읽는다. 읽기는 스스로 결정하고 판단하여 자신만의 세계를 만들어 가는 과정이다. 자신의 읽기를 생활화 하면 글 읽기를 중요시 하는 사회, 글을 읽는 사회를 만드는 지름길이 될 것이다.

 

느낀 점: 이야기들이 재미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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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록) 길에서 어렴풋이 꿈을 꾸다

by 미르 posted Feb 23,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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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에서 어렴풋이 꿈을

길에서 어렴풋이 꿈을 꾸다/이동진 2015.2.23. 김정인

 

환상을 보는 자의 도시

<내 어머니의 모든 것> 스페인 바르셀로나

택시를 타고 바르셀로나로 들어가면서 밖을 볼 때 내 눈에 가장 띄었던 것은 파밀리아 성당이었다. 이 성당은 가우디가 설계하였는데 아직까지도 건축 중이다. 가우디는 꿈에 형체와 질감을 부여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120년 이상 짓고도 이 성당은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 가우디도 40년 동안 이 일에 매달리면서 자신이 이 일을 끝내지 못하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마침표를 찍지 못할 것을 빤히 알면서도 그 일에 헌신적으로 달려드는 사람의 마음은 어떤 것일까. 성당은 서로 다른 시간을 상이한 색깔을 통해 시각적으로 들어냈다. 완성된 지 얼마 안 된 부분은 하얀색이었지만 완성된 지 좀 된 부분들은 색깔이 어두웠다. 이곳에서 시간의 색깔은 검은색이었다.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이 압도적이었다면 구엘 공원과 카사밀라는 환상적이었다. 부드러운 곡선이 눈을 사로잡았다.

 

아무것도 알지 못하겠어요

<캐스트 어웨이> 피지 모누리키 섬

마을의 추장을 찾아가 섬에 들어가는 것을 허가해 줄 것을 청하였다. 다행히 내가 타고 온 배의 주인과 추장이 아는 사이여서 섬에 들어갈 수 있게 되었다. 나는 이 모누리키 섬에서 12일 동안 지낼 것이다. 이 모누리키 섬은 사람이 살지 않은 무인도이며 캐스트 어웨이의 배경이 되었던 곳이다. 섬에 도착하자마자 나는 갈증을 느꼈고 코코넛을 따려 하였다. 하지만 나무들이 너무나 높았다. 나는 겨우 작은 기울어진 나무를 찾아내었고 그 나무를 오르기 시작하였다. 하지만 나무는 너무 흔들렸고 나는 결국 코코넛을 못 따고 말았다. 그렇게 나는 뒤에 있는 밀림에 들어가 보았고 그곳에는 작은 코코넛 나무들이 많이 있었다. 나는 영화에서 보았던 것처럼 코코넛을 바위에 던졌고 코코넛은 영화와는 다르게 단박에 쪼개졌다. 코코넛의 속살까지 긁어먹은 뒤 나는 사냥을 시도하였다. 하지만 물고기와 게들은 너무 재빨랐고 결국 나는 이 섬을 나갈 때까지 굶기로 생각하며 모래사장에서 윌슨을 만들어보기로 하였다. 그렇게 준비해둔 배구공에 나는 리키를 만들었고 그 뒤 잠이 들었다. 다음날 아침 나는 영화에는 안 나온 부분인 섬 반대편에 가보았고 그곳에는 느린 게들이 많이 있었다. 나는 게를 잡았지만 곧 나에게는 끼니의 문제지만 이들에게는 생존의 문제라는 생각이 들어 이들에게 두 번째 생을 주기로 하고 게들을 놓아주었다. 그 뒤 누군가가 모래사장에 코코넛 껍질로 캐스트 어웨이를 써놓은 것을 보고 나는 만일과 기억 중 무엇을 쓸까 고민하다가 기억을 쓰기로 하였다. 그렇게 기억을 써 넣은 뒤 원래 있던 곳으로 가서 배를 타고 섬을 나왔다. 이제 다시는 이 섬에 오고 싶지 않았다. 달콤 쌉싸름한 고독은 12일이면 충분했다.

 

느낀 점: 재미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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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록) 허삼관 매혈기

by 미르 posted Feb 23,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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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삼관 매혈기

허삼관 매혈기/위화 2015.2.23.김정인

 

허삼관의 아버지는 일찍이 돌아가셨고 허삼관의 어머니는 다른 남자에게 시집을 가 버렸다. 결국 허삼관은 홀로 남았고 삼촌의 손에 키워지게 되었다. 나이가 찬 허삼관은 어느 날 방 씨와 근룡이라는 사람을 만나게 되었고 이들과 함께 피를 뽑게 되었다. 피를 두 사발 뽑으니 삼십 원이 생겼고 이들은 돼지 간볶음과 황주 두 냥을 각각 사서 마셨다. 방 씨와 근룡이는 피를 뽑고 난 후에는 반드시 이것들을 먹어야 한다고 하였다. 허삼관은 남은 돈을 가지고 허옥란에게 가서 맛있는 것들을 사주었고 그 대가로 결혼해달라고 하였다. 허옥란에게는 하소용이라는 약혼자가 있었지만 허삼관이 허옥란의 아버지를 설득하여 허옥란은 허삼관과 결혼하게 되었다. 이 둘은 아들을 셋 낳았는데 아들을 낳을 때 한번 기쁘고 두 번 기쁘고 세 번 기뻤다고 하여 일락이 이락이 삼락이라 이름을 붙였다. 허삼관은 그 중 일락이를 가장 아꼈는데 일락이는 아버지를 위해 일하는 것을 좋아하여 밧줄의 양 끝에 넓적다리를 묶고 우물에 내려가는 일도 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허삼관은 일락이가 하소용의 아들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사실을 알게 된 허삼관은 매우 허탈해하였다. 그로부터 얼마 뒤 동네 아이하고 삼락이하고 시비가 붙었고 그 아이의 형하고 일락이가 싸우게 되었다. 일락이는 그 녀석의 머리를 돌로 힘껏 내리찍었고 결국 그 아이는 병원 신세를 지게 되었다. 그 아이의 아버지는 병원비를 달라며 허삼관을 찾아왔고 허삼관은 일락이의 아버지는 하소용이라며 하소용에게 돈을 받아내라고 하였다. 허삼관은 일락이를 하소용네 집에 보냈고 하소용은 매몰차게 일락이를 거부하였다. 결국 허삼관은 돈이 없었기에 집안 가구들을 빼앗겼고 피를 팔아 다시 그 가구들을 사들일 수 있었다. 그 뒤 허삼관네 마을에 가뭄이 찾아왔고 허삼관네 식구들은 쫄쫄 굶게 되었다. 그것을 보다 못한 허삼관은 다시 피를 팔러 갔고 그 돈으로 식구들에게 국수를 사주었다. 하지만 일락이는 자신의 자식이 아니라는 이유로 고구마 하나만 먹게 하였다. 그 일로 상처를 받은 일락이는 하소용네 집에 찾아가 자신을 받아달라고 하였지만 하소용은 거부하였고 일락이는 다른사람들을 찾아다니며 자신을 친아들로 받아달라고 하였다. 하지만 사람들은 다 거부하였다. 그렇게 집을 나와 떠돌아다니던 일락이는 결국 지쳐서 주저앉게 되었다. 그 때 일락이를 찾던 허삼관이 일락이를 발견하였고 일락이를 업고 가서 국수를 사 주었다. 일락이는 그 일로 다시 허삼관을 좋아하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하소용이 사고를 당해 혼숙상태에 빠졌고 하소용의 부인은 점쟁이를 찾아가 해결 방법을 물었다. 점쟁이는 아들을 지붕위에 올린 다음 아버지 돌아오세요 라고 소리치게 하라고 하였다. 하지만 하소용에게는 딸이 둘밖에 없었고 결국 하소용의 부인은 일락이를 찾아와 그 일을 부탁하였다. 일락이는 거부를 하였다. 결국 허삼관은 일락이를 설득하여 일락이를 지붕위에 올라가게 만들었지만 일락이는 지붕 위에서 아무 말도 안하였고 허삼관은 일락아 그냥 소리 몇 번 질러 그럼 오늘부터는 내가 네 친아버지가 되는 거다.” 라고 말하며 일락이를 설득하였다. 그 말에 일락이는 소리치기 시작하였고 그 뒤 둘은 잘 지내게 되었다. 일락이 이락이 삼락이는 자라서 청년이 되었고 일락이 이락이는 농촌에 내려가 일하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일락이가 아프다는 소식이 들려왔고 일락이는 구급차를 타고 큰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아야 되게 되었다. 하지만 허삼관에게는 돈이 없었고 허삼관은 이웃집을 돌며 돈을 꾸게 되었다. 허삼관은 하소용네 집에 가서 무릎을 꿇고 돈을 빌려달라 간청하였고 하소용의 부인은 이제껏 사람들이 빌려주었던 돈들 중 가장 많은 액수의 돈을 빌려주었다. 그렇게 돈을 모은 뒤 허삼관은 큰 병원을 향해 여정을 떠났다. 그렇게 병원을 향해 가는 도중에도 허삼관은 피를 팔았고 중간에 너무 피가 부족해 쓰러진 적도 있었다. 사람들은 허삼관에게 왜 그렇게 무리하냐고 하였고 허삼관은 사람들에게 설령 목숨을 파는 거라해도 난 피를 팔아야 합니다. 저야 내일 모레면 쉰이니 세상사는 재미는 다 누려 봤죠 그런데 아들 녀석은 이제 겨우 스물 한 살이라 사는 맛도 모르고 장가도 못 들어봤으니 사람 노릇 했다고 할 수 있나요.” 라며 답해주었다. 다행히 일락이는 살아났고 그 후 몇 년 뒤 일락이 이락이는 농촌에서 고향으로 돌아와 허삼관네 가족은 모두 모이게 되었다. 그 후 몇 년 뒤 일락이 이락이 삼락이는 다 각각 취업을 하고 장가를 갔다. 어느 날 허삼관은 돼지 간 볶음과 황주를 먹고 싶었고 처음으로 자신을 위해 피를 팔러 갔다. 하지만 이제 허삼관은 너무 늙었고 혈두는 허삼관의 피를 사지 않겠다고 하였다. 허삼관은 이제 자신의 피를 팔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고 절망하였다. 그렇게 길 한복판에서 울고 있던 그 때 허삼관의 가족들이 허삼관을 찾아왔고 이제는 돈이 부족하지 않은터라 그에게 돼지 간 볶음과 황주를 병째 사 주었다. 그렇게 허삼관은 처음으로 가족이 아닌 자신에게 돈을 쓰게 되었다.

 

느낀 점: 허삼관이 대단하다고 느꼈고 책이 재미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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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록) 백년식당

by 미르 posted Feb 23,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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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년식당

백년식당/박찬일 2015.1.30. 김정인

 

옛집식당

이 식당은 나이가 70이 넘은 할머니께서 운영하신다. 식당 안은 매우 깨끗하였다. 원래 육개장은 개고기로 만들어졌다고 한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개고기가 쇠고기로 바뀌었고 그대로 굳어졌다고 한다. 어느 지역에서는 비싼 쇠고기 대신 닭을 넣어 육개장을 만든다고도 하였고 또 어느 지역에서는 생선을 넣어 육개장을 만든다고도 하였다. 나는 이것들을 모두 먹어보았는데 뭐가 뭐인지 분간이 가지 않을 정도로 맛이 똑같았다. 이렇듯 땀을 뻘뻘 흘려가며 먹는 육개장 한 그릇에는 오랜 우리의 풍습의 힌트가 있는 셈이었다. 한편 이곳 백년식당의 육개장은 굉장히 담백하였는데 새벽 5시부터 손수 육수를 만드신다고 하였다. 대개 진짜 요리사들은 할머니들이 아닐까 싶다.

 

연남 서서 갈비

이 식당은 처음에는 상호조차 없었다. 단골들이 지어준 이름인 서서 갈비는 이 가게의 정식 상호가 되었다. 이곳에는 의자가 없다. 모두 서서 고기를 구워 먹는다. 이곳에서는 연탄을 이용해 고기를 굽는데 연탄이 네 장이나 들어가 온도가 무려 480도 까지 오른다. 그 덕분에 이곳의 고기는 매우 맛있다. 이곳에서는 모르는 사람들끼리 같이 서서 고기를 굽기도 하는데 이 때 자신의 고기를 서로에게 먹으라고 권하는 장면은 매우 훈훈하다. 또한 이 장면은 그야말로 요즘 유행하는 커뮤니티 테이블의 진정한 원형인 셈이다. 이 식당으로는 매일 아침 갈비 250kg이 들어온다. 이 식당의 주인은 매일매일 손수 이 갈비를 예쁘게 다듬는다. 덕분의 주인의 손은 울퉁불퉁해졌다. 이 주인은 양념도 직접 만드는데 시대에 따라 양념의 맛을 바꾼다고 하였다. 사람들의 입맛이 바뀌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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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대기명당 배낭여행 기행문

by 미르 posted Feb 21,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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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3일

핫도그를 먹으며 아슬아슬하게 탑승구에 도착했다. 나는 재현이와 진아 사이에 앉게 되었는데 뒤에 앉은 애들이 자꾸 우리 자리를 차서 불편하고 짜증이 났다. 나는 처음 2시간 동안은 자고 나머지 시간은 깨어있었는데 창밖으로 보이는 야경이 되게 멋있었고 예뻤다. 비행기는 공항에 착륙하였고 우리는 입국 심사를 마친 뒤 짐을 찾으러 갔다. 우리가 늦게 갔는지 우리 짐만 나란히 줄지어 돌아가고 있었다. 그렇게 짐을 찾은 뒤 우리는 벤을 타고 호텔로 갔고 호텔은 생각보다 안 좋았다. 물도 조금씩 밖에 안 나와 샤워하기가 힘들었고 비치되어있는 샴푸도 질이 안 좋은 것이었는지 머리를 감았는데 머리의 상태가 더 나빠져있었다. 샤워를 마친 뒤 나는 지원이 언니와 놀다 잠에 들었다.

 

2월 4일

알람을 끄고 다시 자는 바람에 10분 늦게 사람들을 깨웠다. 일어난 뒤 급하게 택시를 타고 터미널로 이동했다. 다행히 9시 버스가 있어 그걸 타고 씨엠립으로 떠났다. 버스에서 주스와 커피, 과자를 주었는데 다 맛있었고 마음에 들었다. 외국인의 도움으로 국경을 완전히 빠져나온 뒤 우리는 씨엠립에 도착했고 우리가 묵게 될 도미토리는 깨끗하고 좋았다. 저녁은 펍 스트리트 근처에 있는 크메르 키친에서 먹으려 했으나 사람이 너무 많아 그 옆집에서 먹었다. 그런데 주방장이 1명인지 음식이 나오는데 1시간이 넘게 걸렸고 기대를 하고 먹은 크메르식 카레는 좀 실망스러웠다. 너무 물 같았고 달았다. 그래도 밥이랑 같이 비벼 먹으니 먹을 만하여 좋았다.

 

2월 5일

아침에 일어나 스프 드레곤에서 쌀국수를 먹은 뒤 여행사에 가서 버스를 타고 쁘레아꼬에 갔다. 처음 본 유적이어서 그런지 굉장히 멋있게 느껴졌고 제일 기억에 남았다. 그 뒤 우리는 바콩에 갔고 그곳역시 멋있었다. 그 뒤 우리는 몇 가지의 유적을 더 보았고 그중 기억에 남는 것은 반띠에이 쓰레이였다. 사원의 크기는 매우 작았지만 부조가 많았고 무늬가 아름다웠다. 가이드 아저씨는 거의 모든 부조를 다 설명해 주셨는데 너무 더워서 힘들기는 했지만 재미있었다. 점심은 어느 유적지에 딸려있는 식당에서 먹었는데 설탕물이 맛있었고 계란 볶음밥도 맛있었다. 저녁은 크메르키친에서 먹었는데 돼지고기가 매우 맛있었다. 그 앞에서 파는 로띠도 먹었는데 아저씨가 로띠를 잘 만들어 만드는 것을 구경하는 것이 재미있었다.

 

2월 6일

아침에 늦게 일어나는 바람에 가이드 아저씨를 픽업하러가는 도중에 해가 떠 버렸다. 결국 우리는 앙꼬 왓을 가는 것을 포기하고 따프롬사원에 먼저 갔다. 애매한 시간이라 사람이 없을 것이라고 가이드 아저씨가 말씀해 주셨기 때문이었다. 따프롬 사원에는 스퐁나무가 많았는데 사원과 나무가 함께 어우러져 있는 모습이 멋졌다. 그 뒤 우리는 한 사원을 더 본 뒤 숙소로 돌아가 아침을 먹고 자유 시간을 가졌다. 나는 그 동안 낮잠을 잤는데 덕분에 일어난 뒤 상쾌한 기분을 맛볼 수 있었다. 그 뒤 우리는 피자리아에 가서 점심을 먹은 뒤 앙꼬 왓에 갔다. 벽마다 부조가 되어있었고 그 부조를 보는 것은 굉장히 재미있었다. 부조마다 이야기가 있기도 하고 부조 안의 등장인물들이 각각 다 다른 자세를 취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앙꼬 왓을 3층까지 다 구경하고 난 뒤 우리는 럭키수끼로 갔고 음식의 종류가 많아 시도를 해보는 것이 재미있었다.

 

2월 7일

손을 빨리 든 덕에 나 혼자 초록색 라면을 먹을 수 있었다. 초록색 라면에서는 사리곰탕 비슷한 맛이 났고 덕분에 맛있게 먹을 수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별로 없었기에 다 먹지 못하고 일어나야 해서 아쉬웠다. 우리는 앙꼬 톰에 갔는데 벽화마다 스토리가 있어 보는 것이 재미있었다. 그 뒤 여러 가지 사원을 더 본 뒤 포용에 가서 점심으로 쌀국수를 먹었는데 맛있었다. 그 뒤 다시 사원을 마저 구경했는데 아침에 너무 많이 돌아다녀 힘들었기 때문에 눈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그래도 프놈바켕에서 인간 피라미드를 쌓는 것은 재미있었다. 그 뒤 우리는 펍스트리트에 와 레드피아노에 가서 저녁을 먹었는데 돈이 없어 네 명 이서 피자를 두 판밖에 먹지 못해 매우 아쉬웠다.

 

2월 8일

숙소에서 아침으로 계란 스크램블과 빵을 먹은 뒤 점심으로는 숙소 근처에 있는 식당에서 볶음밥을 먹었다. 그 뒤 여행사에 가서 큰 버스를 타고 톤레삽호수로 이동했다. 중간에 아저씨가 대나무 밥을 주셨는데 왠지 모르게 시루떡 비슷한 맛이 났다. 그 뒤 어느 마을에 들려 마을을 구경한 뒤 톤레삽호수에 갔다. 호수는 굉장히 컸고 수평선을 보고 있으면 바다에 있는 듯 한 기분도 들었다. 중간에 아저씨가 음료수와 과일을 주었는데 망고는 굉장히 달아서 맛있었고 용안이란 과일도 맛있었다. 중간쯤부터는 배 2층에 앉아서 노래를 들으며 갔는데 기분이 좋았다. 저녁은 펍스트리트에 있는 어느 식당에서 크림스파게티를 먹었는데 맛있었다. 그리고 간만에 저녁을 풍족하게 먹은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2월 9일

일어나서 짐을 들고 국제버스를 타는 곳까지 걸어서 이동을 했다. 길이 단순한 덕분에 안 헤매고 한 번에 맞게 도착할 수 있었다. 그렇게 국제버스를 타고 우리는 모칫터미널로 이동하였고 그곳에서 팀별로 택시를 타고 카오산 로드로 이동했다. 카오산 로드에서 우리는 포선스인을 찾았고 그곳에 들어가 체크인을 한 뒤 짐을 풀었다. 포선스인은 기대를 아예 안 해서 그런지 생각보다 좋게 느껴졌다. 그 뒤 우리는 저녁을 먹으러 갔고 예정되어있던 조이럭 클럽은 숙소에서 너무 멀기 때문에 우리끼리 탐사를 해서 저녁을 먹을 곳을 정하기로 하였다. 우리는 인도식 커리집인 칠리칠리란 식당에서 저녁을 먹기로 하였고 동엽이 오빠가 시킨 칠리 포테이토는 매워서 많이 못 먹었지만 내가 시킨 치킨 커리는 맛있어서 마음에 들었다. 식당이 누울 수 있게 되어있어서 거기서 누워있는 것이 좋았다. 그 뒤 우리는 숙소로 돌아와서 회의를 했다.

 

2월 10일

아침으로 맥도널드에 가서 햄버거를 먹은 뒤 카오산 로드를 돌아다니기 시작하였다. 그런데 몸 상태가 점점 안 좋아지기 시작했다. 중간에 디저트카페에 들어가 음료수를 마셨는데 디저트 카페가 너무 춥게 느껴졌다. 결국 점심을 먹으러 간 꾼땡국수에서는 속이 안 좋아 국수를 다 먹지도 못하고 국수를 남기고 그 뒤 마사지를 포기하고 방에 들어와 저녁을 먹기 전까지 잤다. 저녁때가 되니 다시 몸이 괜찮아 진 것 같아 저녁을 먹으러 나가 닭고기와 볶음 국수를 먹었다. 닭고기가 무척이나 맛있었다. 그러나 그 때 기름진 음식을 먹어서 그런지 저녁을 먹은 뒤 2시간이 지나니 배가 무척 아팠다. 그래도 저녁을 먹고 배가 바로 아프지는 않았기에 쇼핑을 즐겼고 그 때 카오산 로드를 구경한 것은 재미있었다.

 

2월 11일

아침에 일어나 호텔로 온 벤을 타고 반페로 이동했다. 자리가 좁아서 불편하기는 했지만 의자를 뒤로 젖히니 그런 대로 괜찮아 계속 자면서 갔다. 반페에 도착한 뒤 선착장에 가 배에 올라탔다. 물색깔이 시멘트 색이어서 굉장히 당황스러웠지만 배가 출발하고 조금 뒤 다시 바다를 보니 색깔이 옥색이어서 신기했다. 배가 선착장에 도착했고 우리는 트럭 비슷하게 생긴 것을 타고 숙소로 이동했다. 배가 아팠기에 점심을 거르고 숙소에서 TV를 보았고 그 뒤 수영복을 입고 바다로 갔다. 바다는 초록빛이었고 물이 깊은 편이 아니었기에 멀리까지 가서 놀 수 있었다. 하지만 바다에서 조금 놀다보니 지겨워져서 모래성을 쌓고 놀았다. 처음에는 웅덩이를 파고 놀다가 나중에는 앙꼬 왓을 만든다기에 같이 만들었는데 재미있었다. 저녁은 배가 아플까봐 옥수수 스프와 감자만 먹었는데 그 때 조금만 먹어서 그런지 밤에 배가 너무 고팠다.

 

2월 12일

아침에 일어나 조식 뷔페를 먹으니 다시 졸려져 잠을 자고 나니 점심을 먹을 시간이 되어 있었다. 점심으로 볶음밥을 먹었는데 맛있었다. 점심을 먹은 뒤 바다로 들어가 놀았다. 중간에 물고기를 먹었는데 노란색과 검은색이 섞여있는 줄무늬 물고기였다. 물고기를 본 것은 처음이었기에 신기하였다. 그 뒤 바위 많은 곳에 가서 소라와 소라게를 잡고 놀았는데 지원이 언니가 없어 사진을 못 찍어서 아쉬웠다. 그 뒤 오빠들이 노는 것이 재미있어보여 오빠들이 노는 곳으로 가려하였지만 그쪽에 있는 바위가 너무 날카로워 가는 것을 포기했다. 그렇게 육지로 돌아오고 있을 때 지원이 언니가 튜브를 들고 나타났고 튜브 덕에 진아와 나는 파도가 높은 곳에서 놀 수 있게 되었다. 중간에 동우오빠가 와서 튜브를 끌고다니며 우리를 재미있는 곳으로 데려다 주어서 좋았다. 그 뒤 저녁으로는 티본스테이크를 먹어보았는데 고기가 매우 질겼다. 그래도 맛은 괜찮은 것 같아 그렇게 실망스럽지는 않았다.

 

2월 13일

조식 뷔페를 먹은 뒤 짐을 싸고 배를 타고 반페로 이동했다. 점심은 세븐일레븐에서 사서 먹었는데 나는 라면과 볶음밥을 샀다. 라면에서는 튀김 우동 비슷한 맛이 나서 좋았다. 그 뒤 우리는 벤을 타고 숙소로 이동했고 숙소는 생각보다 매우 넓고 좋았다. 방이 2개로 나눠져 있는 것이 특이하였고 2인용 침대도 2개고 욕실도 2개여서 좋았다. 그 뒤 우리는 쏨땀느아로 갔는데 치킨에서 간장치킨 맛이 나고 돼지고기에서는 수육 맛이 나서 맛있게 먹을 수 있었다. 그 뒤 우리는 시암파라곤으로 갔고 구경하는 것이 재미있었다.

 

2월 14일

아침에 일어나 벤을 타고 칸차나부리로 이동했다. 콰이강의 다리는 철도가 놓여진 다리였고 꽤 길었다. 그리고 죽음의 철도는 기대했는데 아무것도 없어서 허무했다. 하지만 외국인들과 친해져서 좋았다. 코끼리는 처음에는 무서웠지만 나중에는 재미있었고 뗏목은 물이 시원해서 좋았다. 그 다음에는 사이욕 폭포에 갔는데 놀 수 없어서 아쉬웠다. 그래도 폭포가 멋졌다. 그 뒤 연합군 묘지에 갔다가 방콕으로 돌아온 뒤 터미널 21에 가서 스테이크를 먹었는데 스테이크가 싸고 맛있어서 좋았다.

 

2월 15일

아침식사로 급하게 밥을 먹고 밖에 나와 지하철을 탔는데 본격적으로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다행히 시장에는 비가 내리지 않아 시장에 갔고 가까울 줄 알았던 시장은 생각보다 멀었다. 암파와 수상시장은 내 생각과는 달랐다. 강위에 있는 시장이 아니라 강 양옆에 있는 시장이었다. 그래도 코코넛 아이스크림은 맛있었고 리치 쉐이크도 특이하고 맛있었다. 그 뒤 우리는 소이 38에 갔고 그곳역시 생각보다 매우 작은 곳이었다. 그래도 돼지고기 꼬치가 매우 맛있어서 좋았다. 그곳에서 로띠도 먹었는데 지금까지 먹은 로띠중에 제일 맛있었다.

2월 16일

아침에 일어나 BTS를 타고 아속역으로 가서 터미널 21에 갔다. 터미널 21이 아직 열기 전이었기에 근처 편의점에 가서 아침으로 라면을 먹은 뒤에야 터미널 21에 들어갈 수 있게 되었다. 우리는 터미널 21에 들어간 뒤 아이스 몬스터라는 곳에 갔고 그곳에서 우리 팀은 망고가 올려진 빙수를 먹었다. 브라우니는 맛있었지만 망고는 맛이 없었고 그마저도 양이 적어 나중에는 얼음만 먹어야 했다. 얼음도 처음에는 맛있었지만 계속 먹다보니 머리가 띵했다. 그 뒤 우리는 헤어져 개별쇼핑을 했고 나는 진주님 선물과 가족 선물, 빌립님 선물을 샀다. 그 뒤 점심으로는 급하게 우동을 먹은 뒤 마저 쇼핑을 하고 헬스랜드로 가서 마사지를 받았다. 나는 너무 피곤했기에 잠에 들었고 깨어나 보니 마사지가 끝나 있었다. 그 뒤 우리는 벤을 타고 바이욕 호텔로 이동해 뷔페를 먹었고 전망대에서 구경을 하며 시간을 때웠다. 그 뒤 우리는 벤을 타고 공항으로 이동하였고 그 후 순조롭게 게이트로 가서 지연되어 40분이 늦춰진 비행기를 여유롭게 기다리다 비행기에 올라 자리에 앉자마자 잠에 들었다. 밤에 잠깐 깨어났는데 그 때 본 별들은 매우 아름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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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음 2015.02.26 00:38
    밤에 깨어나서 본 별이 아름다웠다는 말이 참 좋구나. 여행이 즐거웠다는것이 그 한마디에 다 담겨있는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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