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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록) 고고학 탐정들

by 미르 posted Oct 09,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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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고학 탐정들

고고학 탐정들/폴 반 2015.10.9 김정인

 

할슈타트

할슈타트는 산비탈에 둘러싸인 호숫가에 있으며 잘츠베르크탈이라 불리는 이 계곡에서 선사시대의 소금광산과 초기 철기시대의 무덤이 발견됨으로써 유럽의 선사시대를 연구하는데 매우 중요한 장소가 되었다. 소금 채굴을 위한 선사시대의 수작굴은 대부분 소금과 바위덩이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무너져 사라졌다. 하지만 고대의 광부들이 남긴 유물들은 암염 속에 보존되어 있다가 근래에 광부들에게 발견되었다. 할슈타트인들은 나무로 뼈대를 짜고 소가죽을 대어 배낭을 만들었으며 소금덩어리를 삽으로 퍼서 이 가방 안에 넣어서 운반하였다. 또한 이 가방에 개폐용 막대기를 달아 이 막대기를 빼기만 하면 배낭에서 소금이 저절로 쏟아졌다. 소금 채광은 할슈타트 공동체에 상당한 부를 안겨주었다. 할슈타트 주민들이 참여했던 교역망은 북으로는 발트 해, 남으로는 지중해까지 뻗어있었다.

 

투탕카멘

고왕국시대에 파라오들은 자신들의 묘지를 땅과 하늘을 연결하는 교량으로 삼으려 했으며 그 묘지인 피라미드는 이집트 왕가가 지닌 불멸의 힘을 상징했다. 그러나 그 무덤은 유품들의 존재를 알려주는 안내판이 되어버렸고 신왕국시대는 더 이상 피라미드를 무덤으로 사용하지 않았다. 미라 및 유물을 동굴 안에 숨기기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신 왕국 말엽에 다시 왕실의 무덤은 약탈되기 시작하였고 매장지의 사제들은 시신을 보존하기 위해 무덤을 다시 열어 미라를 안전한 장소로 이동시켰다. 그 때문에 이집트 학자들은 미라를 찾을 수 없었다. 1871년이 되어서야 비로소 한 무덤에서 왕의 미라 여러 구가 발견됨으로써 파라오들의 실종에 대한 수수께끼가 풀렸다. 이후 한 학자가 한 번도 도굴되지 않은 투탕카멘의 무덤을 발견하였다.

 

황금 미라

3천여 년 동안 이집트인들은 사람은 죽지만 그의 영혼은 영생을 누릴 수 있다고 믿었다. 그랬기에 그들은 썩어가는 시신을 완벽하게 보존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내었다. 미라화는 처음에는 이집트의 지배 계급을 위한 것이었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돈이 있는 사람이면 누구나 이용할 수 있게 되었다. 미라 기술자들의 수준은 신 왕국 시대에 절정을 달하였고 그 때 만들어진 미라는 아름답게 보존되어 있다. 하지만 그 뒤 다시 그 수준이 급속히 낮아졌고 오늘날 엑스레이를 이용해 그 때 만들어진 미라들을 보면 대충 처리한 뼈들이 역청과 뒤범벅이 되어 있다. 지금까지 4기의 무덤이 발굴되었을 뿐인데도 이미 207구의 미라가 수습되었으며 상이한 매장 양식도 확인되었다. 다수의 미라는 개인 유품과 함께 묻혔으며 함께 묻힌 동전들 중에는 클레오파트라 7세 여왕의 이미지를 담은 것도 있다.

 

마추픽추

마추픽추에 관한 고고학자들의 정보는 대부분 스페인 식민지 초기의 역사적 기록을 따른 것이다. 고고학자들은 이 기록을 통해 잉카의 왕들이 자신의 마음에 드는 지역에 별체를 건설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마추픽추에는 아름답게 조각된 돌들이 많다. 또한 이곳에는 궁전의 잔해와 유적 곳곳에 연못과 목욕탕, 신전, 망루 등이 있다고 한다. 스페인군이 페루에 도착했을 때 마추픽추는 더 이상 중요한 도시가 아니었다. 학자들은 후대의 왕들이 그곳을 찾지 않았고 지나치게 건조한 날씨가 장기간 지속된 탓에 사람들이 마추픽추를 떠났을 것이라 생각한다.

 

느낀 점: 재미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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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록) 팝콘을 먹는 동안 일어나는 일

by 미르 posted Oct 03,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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팝콘을 먹는 동안 일어

팝콘을 먹는 동안 일어나는 일/김선희 2015.10.2. 김정인

 

진화하는 욕망, 신화가 된 소비

한국사회에서 자동차는 성공, 특히 사회적 지휘나 경제력을 갖춘 남성의 상징이라 할 수 있다. 자동차 광고에 중년 남성을 광고 모델로 내세우는 외국과 달리 30대의 젊은 남자를 광고 모델에 내보내는 이유는 젊음 역시 한국 사회에서는 사회적 동경과 욕구의 대상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왜 모두 명품을 원할까 그 이유는 남들과 다르게 보이고 싶은 구별의 욕망 때문이다. 사람들은 소비를 통해 다른 집단과 구별되는 자신만의 차이를 만들고자 한다. 이 차이의 욕망이 명품을 원하는 이유이다. 이런 욕구는 과시적 소비로 나타나는데 그 대표적인 예가 다이아몬드이다. 다이아몬드는 비싸다. 희소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다. 희소하더라도 원하는 사람이 없다면 가격은 올라가지 않는다. 하지만 다이아몬드에는 그 물질과 상관없는 추상적 의미인 결혼, 영원한 사랑과 같은 특별한 의미가 부여되어 있기에 비싸다. 공급자는 이 의미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며 소비자들은 이 다이아몬드를 구매하면서 자신이 이 특별한 가치를 구매한다고 착각한다.

 

아버지 없이 집 없이, 가족은 지켜질 수 있을까?

성이 없었던 시대에 유럽에서는 사람을 구분하기 위해 누구의 아들이라 부르기 시작하였다. 잭슨도 잭의 아들이라고 한 데서 유래한 것이다. 이들은 오로지 아버지의 존재를 통해서만 자신이 누구인지를 설명하고 증명할 수 있었다. 우리가 상상하는 전형적인 가족의 이미지를 정상가족이라고 한다. 하지만 이런 가족의 이미지는 현대인들이 만들어 낸 신화와도 같다. 결손가정이라는 표현이 이 문제를 잘 보여준다. 우리는 부모가 없거나 부모 중 하나밖에 없는 아이에게 결손이라는 낙인을 찍으면서 이들이 무엇인가 근본적으로 결여된 존재인 것처럼 생각한다. 하지만 많은 학자들이 가족은 근대의 발명품이라고 한다. 근대 이전까지만 하여도 가족은 공동체 속에 존재하는 단위였다. 자본주의로 바뀜에 따라 남자는 임금 노동자가 되었고 여성은 가정을 지키게 되었다. 그러면서 핵가족이 생겨났다. 어린이 역시 예전에는 불완전하고 비정상적인 존재였다. 하지만 핵가족으로 바뀜에 따라 자녀 출산도 줄어들게 되었고 이때부터 어린이는 보호받아야 할 존재로 인식되었다. 그러므로 정상 가족 개념은 근대 이후에 등장한 서구 중산층의 특정한 가족 형태인 핵가족만을 정상으로 인정한다는 점에서 비판을 받는다.

 

진보의 속도, 파멸의 속도

환경적 재앙은 할리우드의 단골 소재이다. 환경 재앙은 전 지구적 문제인데다가 사람들에게 일종의 도덕적 각성을 요구하여 좋은 영화 편에 설 수도 있기 때문이다. 투모로우란 영화는 미국에서 일어나는 환경재앙을 소재로 삼았다. 빙하기가 찾아왔고 미국의 대통령은 자국민을 난민으로 선언하며 모든 부채의 탕감을 조건으로 멕시코에 난민 신청을 한다. 무능한 관료들의 패배 선언과 미국 대통령의 모습은 오만한 미국의 이미지를 깨는 역할을 한다. 이 시나리오가 저격하는 대상은 교토의정서의 비준을 거부했던 미국 정부이다. 세계 최대의 화석연료 사용국이면서 온실가스 배출의 30%를 차지하는 미국이 교토협약을 탈퇴하자 교토 의정서는 유명무실한 종이 뭉치가 되어버릴 위기에 처하였다. 다른 나라들은 교토 의정서를 탈퇴한 미국을 비판하였다. 미국 행정부는 이러한 비난에도 불구하고 기술 개발을 통해 환경 문제를 해결할 것이라고 강조하였다. 하지만 더 많은 것을 소비하게 만드는 현재의 자본주의적 경제구조는 환경오염이 지속될 수밖에 없게 만든다.

느낀 점: 재미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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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실 2015.10.03 23:53
    미르~ 아주 깔끔하게 정리를 잘 했는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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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리아 2015.10.07 16:26
    재미있게 잘 봤어~ 읽어보고 싶은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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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록) 인더풀

by 미르 posted Sep 18,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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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 더 풀

인더풀/오쿠다 히데오 2015.9.18. 김정인

 

인더풀

이라부 종합병원 지하 1층에는 신경과가 있었다. 신경과 문을 여니 40대로 보이는 뚱뚱한 남자가 앉아 있었다. 가슴에 달린 명찰에는 이라부라고 쓰여 있었다. 카즈오가 몸의 이상을 느낀 것은 한 달 전 쯤 부터였다. 밤중에 갑자기 가슴이 답답해지기도 하였고 설사가 계속해서 나와서 팬티를 갈아입어야 할 때도 있었다. 어제부터는 아랫배 안쪽이 아파왔다. 이라부는 직장은 쉬지 말고 운동을 해보라 권했다. 카즈오는 무엇을 할까 고민을 하다 수영을 해보기로 하였다. 어릴 적부터 잘하였지만 16년간 해본 적이 없었다. 아내인 나오미에게 전화를 걸어 집 주변에 수영장이 있는지에 대해 물어보았고 나오미는 집에서 5분 거리에 수영장이 있다고 하였다. 5년 동안 그곳에서 살았는데 그곳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이 전혀 없는 게 스스로도 어이가 없었다. 그 뒤 백화점에 가서 수영복을 산 뒤 구민체육관에서 수영을 해보았다. 오랜만에 해서 그런지 쾌감이 일었고 너무나도 즐거웠다. 그 뒤에 카즈오는 지속적으로 수영장에 나갔고 한 번에 헤엄칠 수 있는 길이를 늘려보기로 하였다. 그렇게 카즈오는 중독적으로 수영을 하기 시작하였다. 하루 종일 수영에 대한 생각밖에 나지 않았고 수영 관련 자료들도 찾아보았다. 몸의 증상은 조금씩 나아졌다. 몸은 피로해 졌지만 끊을 수 없었다. 아내는 그런 카즈오를 보고 의존증이라 비판하였고 그로인해 나오미와 싸우게 되었다. 카즈오는 이제 헤엄칠 수 있는 시간을 늘리는데 혈안이 되 있었고 더욱 열심히 수영을 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이라부가 밤에 몰래 수영장에 들어가 보자고 제안하였다. 그러면 아무의 방해도 받지 않고 자유롭게 헤엄을 칠 수 있을 거라며 말이다. 그렇게 둘은 밤에 만나 창문으로 들어가려 했지만 이라부가 창문에 끼는 바람에 실패를 하였다. 카즈오는 이제 오랫동안 수영을 하는 것을 별로 신경 쓰지 않게 하였고 그 이야기를 나오미와 함으로써 나오미와도 화해하게 되었다.

 

프렌즈

고등학생인 츠다 유타의 한 달 용돈은 2만 엔이 넘는다. 하지만 문자를 하루에 200번을 넘게 보내기에 요금과 통화료까지 해서 휴대폰 요금이 한 달에 2만 엔을 넘는다. 유타는 모자란 돈을 아르바이트를 해서 메운다. 이 일로 아버지에게 혼을 나기도 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부모의 비난은 약해졌다. 휴대폰을 하지 않으면 유타의 왼손에서 경련증상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그렇게 유타는 이라부를 만나게 되었다. 이라부는 핸드폰에 대해서 계속 물었고 급기야 핸드폰을 가져가서 돌려주지 않았다. 유타의 가슴은 점점 더 빨리 뛰기 시작하였으며 온몸이 땀으로 젖기까지 하였다. 휴대폰을 받은 뒤에나 안정될 수 있었다. 유타는 친구들과 어울리는 것이 즐거웠고 친구들과 함께 있으면 혼자가 아니라는 안도감이 들었다. 그러다 핸드폰이 고장이 났고 유타는 어디선가 연락이 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얼른 핸드폰을 다시 샀다. 그 사이 이라부는 핸드폰을 사서 유타에게 메시지를 보내기 시작하였다. 그런데 이라부가 보낸 메시지는 거의 다 쓸데없는 자기 일상에 관한 이야기였다. 유타는 여상 애들과 놀러갔고 코지라는 아이를 만나게 되었다. 그 아이는 유타가 가지지 못한 것들을 가지고 있었다. 유타는 그 아이를 보며 조바심을 느꼈다. 주말에 약속이 있어 약속장소로 이동을 하였다. 그런데 친구와 연락이 되지 않았다. 게다가 불량배에게 핸드폰마저 뺏기었다. 유타는 조급한 마음에 공중전화로 전화를 걸어 보았지만 그 친구는 유타가 안 온 것을 별로 신경 쓰고 있지 않았다. 그 뒤로도 친한 여자애가 코지와 놀러간다던가 친구들이 자신을 빼고 놀러간다든가 하는 일이 있었다. 크리스마스 이브날 유타에게는 아무 약속도 없었고 유타는 이라부에게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중학교 때 너무 내성적이라 친구가 없었고 고등학생이 되자 무리를 해서라도 친구를 사귀려 하였다는 것을 말하였다. 남의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되니 속이 시원하였다.

 

느낀 점: 재미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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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록) 나의 나무 아래서

by 미르 posted Sep 11,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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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나무 아래서/오에 겐자부로 2015/9/11 김정인

 

왜 아이들은 학교에 가지 않으면 안 되는가?

나는 지금까지 인생에서 두 번 이 문제에 대해 생각해보았습니다. 그리고 그 두 번 모두 좋은 대답이 나왔습니다. 내가 열 살 때 일본은 태평양 전쟁에서 패배했습니다. 그전까지 우리는 천황을 신이라고 배웠습니다. 또 미국을 가장 무서워하고 미워하였습니다. 하지만 미국은 이제 우리가 의지해야 하는 나라가 되었으며 천황은 신이 아니라 인간이라고 선생님께서는 아무렇지도 않게 말씀하셨습니다. 아이들이 성조기를 흔들면서 헬로 하고 소리치는 모습을 보니 눈물이 났습니다. 다음날부터 나는 학교로 가지 않고 숲으로 가서 식물도감으로 공부를 하였습니다. 세찬 비가 내리던 날에도 나는 숲으로 갔고 거기서 쓰러져 소방단 아저씨들에게 구출되었습니다. 그 때 나는 내가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였고 어머니께서는 내가 죽으면 나를 다시 낳아주겠다고 하였습니다. 그러자 나는 나는 어머니가 또다시 낳아준 새로운 아이가 아닐까에 대해 생각하였습니다. 또 다른 학교 아이들도 마찬가지여서 그 아이들도 죽은 아이를 대신하기 위해 공부를 하는 것이 아닐까에 대해 생각하였습니다.

 

싱가포르의 고무공

내가 초등학교 2학년이었을 때의 여름이었습니다. 나는 고무공 구입권을 가지고 집으로 돌아오고 있었습니다. 그 당시에 일본은 동남아 지역을 점령하고 있었습니다. 그곳에 있는 고무 원료가 풍부하게 들어오게 되어서 가위 바위 보를 해서 이긴 학생에게 고무공 구입권이 주어졌습니다. 나는 가위 바위 보에서 이겼고 의기양양해 있었습니다. 나는 아버지에게 이것에 대해 말씀드렸고 아버지는 친구에게 그 구입권을 양보하라고 했습니다. 아버지는 우리 집 마당에 걸려있는 곶감을 가리키시고는 누가 우리 집에 쳐들어와서 곶감을 빼앗은 다음 다른 아이들에게 나눠주면 기분이 어떻겠냐고 하시면서 반대를 하셨습니다. 결국 나는 고무공을 사지 못했습니다.

 

돌이킬 수 없는 것은 (아이에게는) 없다

내가 어렸을 때 내가 제일 무서워했던 말은 돌이킬 수 없어 라는 말이었습니다. 나는 그 말을 아버지가 갑자기 돌아가셨을 때 듣게 되었는데 밤에 어머니께서 아버지의 시신이 놓여 있는 객실로 가더니 돌이킬 수 없어 라는 말을 몇 번이나 말씀하시는 것을 듣게 되었습니다. 지금 돌이켜 보면 그 때의 나는 어둡고 추운 마루에서 어머니가 아버지의 죽음을 돌이킬 수 없는 일로 슬퍼한 것이 아니라 돌이키고 싶어도 그것이 불가능하기에 화를 내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던 것 같습니다. 나는 어른에 자살에 대해서는 하는 수 없다고 생각하지도 합니다. 하지만 아이의 자살은 살아 있는 자들이 결코 이해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아이에게는 돌이킬 수 없다 고 하는 일이 절대로 있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아이 역시 어른과 똑같이 이제 돌이킬 수 없다고 생각할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아이에게는 더 이상 돌이킬 수 없는 일은 없다고 언제나 어떻게든 돌이킬 수 있다는 것이야말로 인간 세상의 원칙이라고 생각합니다. 또 이 원칙을 아이가 존중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느낀 점: 재미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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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록) 프린키피아의 천재

by 미르 posted Sep 05,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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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린키피아의 천재

프린키피아의 천재/리처드 웨스트폴 2015.9.4. 김정인

 

아이작 뉴턴은 1642년 크리스마스 아침에 태어났다. 그가 태어나기 전까지 뉴턴 가는 알려진 집안도 아니었고 집안에 교육을 받은 사람도 없었다. 그는 아버지의 이름을 그대로 이어받았는데 미숙아로 태어나 아무도 이 아기가 살아남을 것이라 기대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에게는 태어날 때부터 아버지가 없었고 세 살 때 어머니가 재혼을 하면서 어머니마저 잃게 되었다. 외할머니가 그를 보살펴주었지만 그는 외할머니에게 무관심하였다. 뉴턴은 중년이 될 때까지는 정신병의 경계를 넘나들던 불안정하고 신경증적인 성격의 소유자였다. 뉴턴은 열두 살 때 그랜섬의 학교에 입학하였다. 뉴턴이 똑똑하다는 이유로 아이들은 뉴턴을 싫어하였고 뉴턴은 자신의 배를 걷어차이는 일이 일어나자 뉴턴은 그 아이를 불러다 그 아이가 졌다고 말할 때까지 두들겨 팼다. 뉴턴은 이 아이를 물리적으로만이 아니라 학업성적으로도 짓밟고 싶어 하였다. 그는 그 학교에서 일등으로 부상하였다. 1661년 6월 초에 뉴턴은 케임브리지로 출발하였다. 그는 이제 대학의 한 구성원이 되었다. 뉴턴은 고독을 지향하였고 동료들을 가까이 하지 않았다. 뉴턴은 빛과 시각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맨눈으로 태양을 보는 실험을 해보았다. 그 실험으로 그는 거의 눈을 버릴 뻔 했다. 뉴턴은 일을 대충대충 해나가는 타입이 아니었다. 그는 무엇인가를 생각하기 시작하면 내내 그 생각만 하였다. 그는 어느 날 수학에 빠져들었고 밤을 새가며 수학을 공부하였다. 그는 책에서 배울 수 있는 모든 것을 빨아들였다. 그 뒤 그는 연구를 시작하여 ‘물체의 속도를 그것이 그리는 선을 통해 찾는 방법’이라는 논문을 써내었고 그 논문을 다 쓰자마자 수학에는 손가락 하나 대지 않았다. 이듬해 5월 그는 다시 논문을 쓰기 시작하였고 문제를 성공적으로 해결했다는 생각으로 인해 수학에 대한 그의 관심이 다한 것 같았다. 그가 쓴 논문은 유럽의 수학자들을 존경과 부러움, 경외감으로 숨죽이게 했던 걸작이었다. 그는 스물네 살도 채 안되었을 때 어떤 체계적인 교육의 힘도 빌지 않고 유럽 정상급의 수학자가 되었다. 그는 그 후 트리니티 칼리지의 연구원 선발시험에 통과하여 연구원으로 선발되었다. 그는 대학 공동체에서 영구적으로 멤버 자격을 부여받았고 그로부터 아홉 달 후 그는 석사 학위를 받으면서 자동으로 상급 연구원 지위로 승진하게 되었다. 석사 학위를 받은 후 뉴턴은 트리니티에서 28년간 살았다. 뉴턴이 다른 학문에 몰입했다고 반복해서 주장하는 것은 1670년대의 교신에 항상 따라다니는 주제거리였다. 왕립학회는 그가 광학에 탁월한 재능을 가지고 있다고 그를 인정하였고 그로부터 6개월 밖에 되지 않았을 때 그는 다른 주제에 대해 연구하고 싶어 하였다. 수학과 광학은 더 이상 그의 흥미를 끌지 못하였고 그는 이제 화학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하였다. 그는 연금술에 활발하게 참여하였다. 하지만 그 후 다시 관심이 떨어졌고 그는 이제 신학으로 관심을 돌렸다. 그리스도의 본성과 신의 본성의 통합된 문제에 그의 눈이 집중되었다. 뉴턴은 광학과 수학에 대한 교신과 비판에서 신학과 연금술에 몰입하여 과학사회로부터는 1676년 말까지는 떨어져 지냈다. 뉴턴은 1687년 왕립학회에 프린키피아를 헌정했으나 그가 런던으로 이사했을 때는 이 관계를 확실히 무시해버렸다. 1670년대 초에는 200명이 넘던 회원 수가 이제는 그 반도 채 넘지 않았고 40년 전에 학자들을 모이게 했던 흥미거리도 별로 없게 되었다.

 

느낀 점: 길어서 읽기가 힘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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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실 2015.09.10 00:41
    뉴턴은 사람들과의 소통이 전혀 없는 천재였구나^^ 미르~ 잘 읽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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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록) 나의 산에서

by 미르 posted Aug 22,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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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산에서

나의 산에서/진 크레이그헤드 조지 2015.8.22. 김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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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5월에 뉴욕을 떠났다. 나에게는 주머니칼, 노끈 뭉치, 도끼와 40달러 밖에 없었다. 그 뒤 나는 캐츠킬 산까지 트럭을 얻어 타 도착하였고 나는 낚싯바늘을 만들어 낚시를 하였다. 물고기는 굶주려 있었기에 잘 잡혔다. 나는 그 뒤 불을 지피려했으나 실패하였고 해는 져 버렸다. 나는 추위에 떨며 잠을 잤다. 다음 날 나는 고속도로 쪽으로 가 집을 발견하였고 그 집에 들어가 먹을 것을 먹을 수 있었다. 집주인인 빌 할아버지는 나에게 불을 지피는 법을 알려주었고 나는 오후 내내 그것을 연습하였다. 나는 그리블리 집안에 대해 알아보기 위해 도서관에 갔고 사서인 터너 누나가 도와준 덕분에 위치가 어딘지 알아낼 수 있었다. 그리블리 농장은 나의 증조할아버지의 농장이었다. 나는 그곳에 갔고 내가 착각을 하고 있는 듯 한 느낌을 받았다. 나는 다시 산으로 돌아가 불을 지펴 메기를 구워먹은 뒤 잠에 들었다. 다음 날 나는 그리블리 농장을 다시 찾았고 그곳에 사과 나무 등 좋은 나무들이 많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렇게 나무들을 보며 둘러 다니던 중 나는 큰 나무를 보게 되었다. 나는 그 순간 그 나무의 속을 파내어 거기서 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인디언처럼 불을 이용해 나무의 속을 파내었다. 마침내 나의 집이 완성되었고 이제 나는 산에다가 여러 덫을 설치하거나 침대를 만드는 일을 하게 되었다. 그런 일들을 다하고 나자 매를 길들여 매 사냥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도서관에 가서 매사냥에 대한 정보를 찾았고 다음날 매 둥지를 발견하여 거기서 새끼 매 한 마리를 데려왔다. 새끼 매는 내가 주는 고기를 받아먹으며 무럭무럭 자랐다. 나는 새끼 매에게 프라이트풀이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나는 소금을 만드는 법을 알아내 소금도 만들었고 사슴을 잡아 가죽을 벗겨서 문과 옷, 침대의 이불도 만들었다. 프라이트풀은 날 수 있게 되었고 날아다니다가도 내가 휘파람을 불면 나에게로 날아왔다. 처음으로 프라이트풀이 사냥을 하여 참새를 잡던 날 나는 너무 기뻤다. 프라이트풀은 이제 전문 사냥꾼이 되었고 우리는 토끼 찜, 꿩고기 파이 등을 자주 먹을 수 있게 되었다. 어느 날 농장에서 돌아오는 길에 나는 사이렌 소리를 듣게 되었다. 뭔가 마음에 걸렸다. 나는 집근처에서 자고 있는 어느 남자를 보게 되었다. 나는 그 남자가 탈옥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그 남자에게 사슴고기를 주었고 나는 그 남자를 밴도 아저씨라 부르기로 하였다. 나는 밴도 아저씨를 집으로 들였고 밴도 아저씨가 영문과 교수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밴도 아저씨는 휴가가 끝날 때까지 나와 함께 지내기로 했다. 밴도 아저씨는 잼을 만들기도 하였고 흙을 빚어서 항아리를 만들기도 하였다. 우리는 항아리에 잼을 담아서 두고두고 즐겨먹었다. 어느 날은 아저씨가 버들피리 만드는 법을 가르쳐 주었고 우리는 달이 뜰 때까지 연주하였다. 가을이 되었고 나는 혼자가 되었다. 이제 나는 추위에 대비하여야 했다. 나는 벽난로를 집안에다가 설치하였고 창고나무를 만들어 열매로 가득 채웠다. 11월이 되자 사냥철이 시작되었고 나는 사냥꾼들이 쏴놓고 찾지 못한 사슴들을 가져왔다. 들키는 것이 두려워 사슴고기를 굽지 못하였지만 기온이 내려간 덕분에 고기는 썩지 않았다. 겨울이 되었고 요리할 시간이 많아져 나는 여러 종류의 요리를 시도해보았다. 나는 눈 속에서 사는 것에 익숙해졌고 눈 위를 걸어 다니며 산을 탐험하다 일찍 잠에 들어 늦게 일어나는 생활이 반복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밴도 아저씨가 나를 찾아왔고 밴도 아저씨는 나에 대한 신문 기사를 보여주었다. 다음 날은 크리스마스였고 아침에 일어나보니 어디선가 나를 부르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의 아버지였다. 아버지는 내가 만들어놓은 것들에 감탄을 하였고 나는 아버지께 양파스프를 나누어드렸다. 나는 아버지를 위해 연어를 잡아다 연어구이를 해드렸고 아버지는 맛있게 그것을 드셨다. 밴도 아저씨는 크리스마스가 지난 뒤 2~3일 뒤에 떠나셨고 나는 아버지와 같이 사냥을 하거나 함정을 파거나 낚시를 하면서 지냈다. 아버지도 새해 첫날에 가셨다. 나는 다시 혼자가 되었고 나에게 영양소 결핍증상이 나타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증상은 토끼의 간을 먹었더니 사라졌다. 봄이 되었고 신문기자들이 나를 발견하여 나를 찾아오기 시작하였다. 그렇게 몇 번을 인터뷰를 하고 난 뒤 나의 가족이 산으로 왔다. 어머니께서는 나의 의견을 존중하여 앞으로는 뉴욕이 아닌 이 산에서 자리를 잡고 살겠다고 하였다. 그렇게 우리 가족은 모두 다 함께 산에서 살게 되었다.

 

느낀 점: 재미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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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웍샵을 마치며

by 명화 posted Aug 09,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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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번 웍샵 기간중 거의 절반정도를 여행으로 인해 참여하지 못하였다. 강의도 직접들은것은 3개밖에 안되고, 다 다른사람들의 노트필기를 보고 배웠다. 뭔가 다른 합숙에 비해 기대되는 합숙이었는데 많이 참여하지 못해서 아쉬운 부분도 있었다. 그래도 막판에 많이 배워서 뿌듯하였다. 이번에 제일 아위웠던 것은 수학이었는데 수학을 많이 못풀어서 아쉬웠다. 영어는 내가 학교시험에 나오는 문법만 알다보니 기초가 안되있어서 가끔씩 이해가 안되는 것이 있었는데 이번 기회에 기초를 다지면서 그때 이해를 못하던 것을 이해할수 있게 되어서 좋았다. 또 직접 들은 것은 아니지만 노트필기를 읽고 오빠들에게 들으면서 핑계에 대해 알게되었는데 그동안 내가 핑계를 많이 대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꼭 고쳐야 되겠다는 생각이 들게 해주었다. 앞으로는 핑계를 대기 보다는 빨리 내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를 해야겠다. 또 스스로 떳떳해지기 위해 시간약속을 지키는것에 신경을 좀더 써야겠다. 지금 돌아보니 내가 핑계를 가장 많이 댈때가 시간약속을 못지켰을때였기 때문이다. 수학도 강의를 못들어서 옆에 있는 재현이한테 설명을 많이 들었는데 그 방법대로 하니 시간은 좀더 걸리지만 더 문제가 잘외워져 나중에 비슷한 유형의 문제를 보면 거침없이 풀수 있어서 뿌듯했고 신기했다. 이번 웍샵동안 호흡에 대해서 배웠는데 그동안 내가 호흡에 대해 잘 모르고 있었으며 내가 하던 방식이 잘못된 방식이었다는것도 알게되었다. 빌립님께서 가르쳐주신 방법대로 호흡을 하니까 땀도 나고 잠도 확 깨서 신기하였다. 앞으로 집에가면 호흡을 열심히 할것이다. 이번 합숙동안에도 역시 쉬는시간에 드라마를 봤었는데 원래 여자 3명이서 보던 드라마를 이번에는 남자애들까지도 보니까 더 재미있었고, 공감대가 형성되어 이야기도 더 잘통해서 좋았다. 다같이 드라마가 방영되는날을 기다리고, 인터넷에 드라마가 올라오면 다같이 보고 하는게 너무 재미있었다. 이번 여름에 복싱은 다른때의 복싱과 느낌이 뭔가 달랐는데 우선 지난 겨울에 비해 매우 덥고 습하였고, 또 작년 여름에 비해 선풍기를 잘 틀어주지 않아서 더 더웠다. 그런데 더 빡세게 시키니 처음에는 적응이 잘 안되어서 복싱을 가기가 너무 싫었다. 그래도 막판이 되니까 에어컨도 틀어주고, 선풍기도 틀어주어서 좀더 견딜만 해져서 좋았다. 비록 짧은 시간밖에 참여를 못하였지만 알차게 보낸것 같아서 기분이 좋고, 뿌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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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맑은 2015.08.10 01:10
    미르야~^*^
    참여를 반밖에 못했는데~~~
    다른 사람의 노트필기를 보고 배우다니~~~ 굉장한걸.
    나도 '오 나의 귀신님'보는데~~~ 명랑하고 밝은 드라마라 쉬는 시간에 재미있게 보고 있단다.
    남자들까지 함께 봐서 공감대가 형성되다니~~~
    재미있게 사는 모습이 보기좋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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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실 2015.08.10 23:13
    점점 밝아지고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 미르! 이모가 많이 예뻐한단다ㅎㅎ
    스스로 떳떳해지기 위해 시간약속을 지키겠다는 미르와 함께 이모도 시간약속을 꼭 지켜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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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빌립 2015.08.10 23:17
    미르야 빌립이 너 좋아하는 것 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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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 2015.08.13 01:38
    ㅋㅋ 미르는 맛난 밥도 얼마 못 먹었겠네... 네가 없어서 우리도 서운했단다. 그래도 알찬 방학 보낸 것 같아서 좋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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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록) 열일곱 살의 털

by 미르 posted Aug 08,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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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일곱 살의 털

열일곱 살의 털/김해원 2015.8.8. 김정인

 

열일곱 살이 되던 생일날 할아버지는 손수 나의 머리를 깎아주셨다. 나의 할아버지는 이발사시다. 예전에 단발령이 내려졌을 때 강제로 사람들의 머리를 깎는 것에서부터 우리 이발소가 시작되었다고 한다. 증조할아버지와 할아버지는 이발사에 대한 자부심이 있으셨다. 머리를 깎은 뒤 나는 내 친구 정진이와 영화를 보러 갔다. 정진이는 나와 다르게 매우 긴 머리카락을 가지고 있었다. 저녁때가 되자 정진이는 나에게 담배 두 개비를 생일 선물로 주었다. 하나를 피워보았는데 기분이 이상했다. 뭔가 너무 허탈했다. 나는 다른 하나는 가지고 다니면서 생각날 때 피우기로 했다. 나는 오정 고에 들어가게 되었고 오정 고는 두발 검사가 철저한 학교였다. 하지만 나의 머리는 매우 짧았기에 나는 걸리지 않았고 그 대신 선생님들의 관심을 받게 되었다. 어느 선생님이든 나는 나의 머리로 인해 칭찬을 받을 수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별명이 매독인 체육선생님이 라이터로 머리가 긴 아이의 머리를 지지려는 것을 보게 되었고 그것을 제지하였다. 그 과정에서 나는 매독과 사이가 나빠졌지만 문재현이라는 아이와 친해지게 되었다. 그 일로 인해 나는 많은 양의 반성문을 쓰게 되었고 화가 난 매독이 내 가방을 뒤지다 담배를 발견하는 바람에 일이 더 커지게 되었다. 처음 나의 이미지는 사라였다. 그 뒤 나는 두발을 자유화하자는 시위를 하고자 하였고 유인물도 만들고 애들도 모아서 시위를 할 준비를 해놓았다. 그러나 매독의 손에 유인물이 들어가는 바람에 결국 나를 포함한 주동자 세 명은 상담실로 끌려가게 되었다. 선생님은 나에게 부모님 전화번호를 물었고 나는 집에 아무도 없기를 바라며 집 번호를 불렀다. 그런데 누군가 전화를 받았고 그 사람은 자신이 나의 아버지라고 하였다. 나는 태어나서 한 번도 아버지를 본 적이 없었다. 엄마에게 물어볼 때마다 엄마는 항상 아버지는 멀리 여행을 가셨다고 했다. 어렸을 때 나는 그 여행이 죽음을 뜻하는 줄 알고 아버지가 돌아가신 줄 알았다. 커서는 아버지가 보내는 엽서를 보게 되었고 그 엽서를 볼 때마다 아버지가 매웠다. 그런데 그런 아버지가 우리 집에 있다는 것이 의아했고 나는 집에서 아버지를 만나게 되었다. 아버지는 20여 년 동안 여행을 하셨다고 하였다. 아버지가 가져온 가방에는 온갖 차들이 들어있었다. 다음 날 나는 아버지와 함께 학교에 갔고 아버지는 내가 시위를 하려 한 것은 잘못된 것이 아니라며 내 편을 들어주셨다. 그러면서 나를 수업 정지가 풀릴 때까지 학교에 안 보내겠다고 하였다. 그 뒤 엄마는 내가 수업정지를 당했다는 것을 알고 매우 화를 내셨다. 그런데 뭔가 엄마와 아버지는 어색해 보였다. 알고 보니 엄마랑 아버지는 만나다가 헤어지게 되었고 엄마가 임신한 채로 할아버지의 미용실에 도착했을 때는 아버지는 이미 떠나고 없었다고 한다. 그 때부터 엄마는 할머니 할아버지와 같이 살게 되었고 말이다. 아버지는 여행을 떠난 지 2년 만에 후회를 했지만 다시 돌아갈 수가 없었다고 하셨다. 그러면서 엄마와 다시 예전관계로 돌아가서 청혼도 할 거라고 하셨다. 나는 엄마를 부추겨서 엄마와 아버지가 함께 여행을 떠나도록 하였다. 그리고 시위도 꾸준히 하여서 학교에서 두발관련 교칙을 완화한다는 소식도 듣게 되었다.

 

느낀 점: 재미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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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록) 돼지가 한 마리도 죽지 않던 날

by 미르 posted Aug 01,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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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가 한 마리도 죽지

돼지가 한 마리도 죽지 않던 날/로버트 뉴튼 펙 2015.8.1. 김정인

 

학교에서 빠져나와 집으로 가던 중 태너 아저씨의 암소인 행주치마가 이리저리 뛰어다니고 있는 것을 보게 되었다. 송아지를 낳으려는 모양이었다. 도와주려 했으나 행주치마는 도망을 쳤고 결국 나는 바지를 벗어 송아지의 머리와 나무를 묶어 송아지를 낳는 것을 도왔다. 하지만 송아지를 낳은 후에도 행주치마는 뭔가 괴로워하는 듯이 보였고 나는 행주치마의 입에 손을 집어넣어 뭔가를 끄집어냈다. 그 때 행주치마가 내 팔을 잘근잘근 씹었고 나는 정신을 잃었다. 정신을 차려보니 나는 담요를 덮고 있었고 이마를 뺀 다른 곳은 감각을 느낄 수 없었다. 엄마는 바늘을 가져와 내 팔을 꿰매었고 나는 신음소리도 낼 수 없었다. 나는 아까 바지를 벗고 달리는 바람에 가시에 많이 찔렸고 그것 또한 매우 아팠다. 아빠는 나에게 껌을 주었고 그것을 씹으니 좀 괜찮아졌다. 나는 일주일동안 침대에 누워있었고 일주일이 지나자 절뚝거리며 걸어 다닐 수 있게 되었다. 나는 아빠가 울타리를 세우는 것을 도우려 같이 나갔고 행주치마가 두 마리의 잘생긴 송아지와 함께 있는 것을 보게 되었다. 태너 아저씨는 나 덕분에 이런 잘생긴 송아지를 갖게 되었다며 나에게 아기돼지를 주었다. 분홍색 빛을 띠는 귀와 코를 갖고 있는 예쁜 아기 돼지였다. 나는 이 돼지의 이름을 핑키라 하였다. 셰이커 교본에 소와 돼지는 함께 기를 수 없다고 나와 있었기에 돼지우리를 따로 지어주었다. 데이지의 힘을 빌려 돼지우리를 옮겼다. 아빠는 글을 읽지 못하지만 셰이커 교본을 다 외우고 있다고 하였다. 하지만 글을 아는 것은 중요하다며 글을 열심히 배우라고 하였다. 남들은 우리의 내면을 보고 우리를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겉모습을 보고 우리를 판단하기에 글을 모르면 무시를 당한다고 하였다. 일요일 오후 나는 핑키와 함께 산책을 나갔다. 그곳에서 개구리도 보았고 개울에서 가재도 보았다. 집에 와서 고양이가 새끼를 낳은 것을 핑키와 함께 보았다. 핑키는 자라서 큰 돼지가 되었고 나는 성적표를 받았다. 나는 국어를 제외한 모든 과목에서 수를 받았지만 국어에서 양을 받았다. 이모는 양을 보고 충격을 받더니 나를 가르치겠다고 하며 나는 가르치려했지만 실패하였다. 가을이 되었고 태너 아저씨는 나를 박람회에 데려가겠다고 하였다. 그렇게 나는 박람회장에 가게 되었고 아저씨의 송아지는 매우 많은 관심을 받았다. 아저씨는 내가 송아지를 잘 몰았다며 흡족해하셨다. 그 뒤 나는 핑키를 깨끗하게 씻겨 박람회장에 내보냈고 가장 예의 바른 돼지라는 상을 받았다. 집에 돌아온 뒤 나는 엄마와 이모에게 그것에 대해 자랑을 하였다. 그런데 핑키에게 발정기가 오지 않았고 삼손이라는 수퇘지를 데려와 보기도 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사과 농사는 망쳤고 결국 아빠는 핑키를 죽이자고 하였다. 나는 아무 말 없이 죽이는데 동참을 하였고 아빠는 내가 다 컸다며 칭찬을 하였다. 그렇게 핑키는 죽었고 나는 차마 그 고기를 먹을 수 없었다. 얼마 뒤 아빠도 돌아가셨고 나는 장례식을 치렀다. 사람들은 매우 슬퍼하였고 나는 아빠께 마지막 인사를 드렸다.

 

느낀 점: 감동적이었고 재미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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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록) 이토록 공부가 재미있어지는 순간

by 미르 posted Jul 18,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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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록 공부가 재미있

이토록 공부가 재미있어지는 순간/박성혁 2015.7.17. 김정인

늦었다, 아니다, 늦지 않았다

중 2때 나는 학생이었지만 학생이 아니었다. 공부를 하기보다는 잉여 짓을 하는데 더 많은 시간을 소비했고 공부하는 척만, 시늉만하고 실제로는 한 달에 1시간도 제대로 공부하지 않았다. 1년을 통틀어 내가 공부하는 날이라고는 시험 전날 고작 10일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그렇게 가을이 되었고 문득 나는 공부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아버지께 문제집을 사달라고 하여 같이 서점에 갔고 5학년 것부터 사와 차근차근 풀어나갔다. 처음에는 기초가 제대로 되어있지 않아서 문제를 푸는데 꽤나 오랜 시간이 걸렸다. 처음에는 노는 시간을 줄여서 공부를 하였고 겨울방학이 되었을 때는 자는 시간까지 줄여가면서 공부를 하였다. 처음에는 새벽 1시만 되어도 잠이 왔지만 나중에는 하루에 3~4시간만 자도 다음날 멀쩡하였다. 알 수 없는 힘이 났고 겨울방학이 끝났을 때 나는 중학교 2학년까지의 공부를 끝낼 수 있었다.

 

마음을 키우는 순간, 공부는 재미있어진다

공부는 나와의 치열한 경쟁이다. 라이벌을 만들어 경쟁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그들은 보통 자신의 수준보다 조금 높은 사람을 라이벌로 만든다. 그렇기에 이 친구보다만 잘하면 돼 라는 생각을 쉽게 하게 된다. 그러므로 공부를 할 때는 나를 경쟁상대로 만들어야 한다. 우선 과거의 나와 경쟁을 하여야 한다. 어제보다 나아지려 노력을 하는 것이다. 핵심은 모든 면에서 어제보다 나아지려 노력하는 것이다. 그렇게 계속 노력을 하면 오늘의 나는 어제의 나보다 나은 사람이 될 것이며 과거보다 훨씬 나은 사람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어제의 나보다 나아지려고 하는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내 최대치와 경쟁을 하는 것이다. 가장 잘했을 때의 나를 목표로 삼는 것이다. 이 방법을 남을 목표로 삼고하는 것보다 낫다. 공부는 남이 아닌 나를 만들어가는 일이기 때문이다. 공부를 할 때 중요한 것은 몰입을 하는 것이다. 아무리 많은 시간을 공부에 투자했더라도 집중을 제대로 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아니게 된다. 몰입 고수들은 몰입을 하는 순간 아무소리도 들리지 않고 집중해야 될 목표물만 보인다고 한다. 이런 몰입을 방해하는 것들이 잡념인데 이 잡념을 없애기 위해서는 호흡을 한다든가 쌓인 것이 있으면 그것을 풀어버리던가 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렇게 잡념을 없앤 이후에 우리는 공부를 시작하여야 한다. 이때에도 훼방꾼이 나타나는데 그것이 바로 점수로 된 목표이다. 나도 모르게 점수에 집착하게 되어 완벽한 집중을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가장 좋은 목표는 공부하기로 한 분량을 정해놓는 것이다.

 

마음을 붙잡는 순간, 공부는 재미있어진다

공부할 마음이 없는 눈으로 보면 온통 공부할 수 없는 이유 투성이이다. 별 뜻 없이 늘어놓던 불평들도 결국에는 공부의욕을 없애게 만든다. 안 되는 이유를 찾아내는 버릇이 결국 내 인생을 망가뜨릴 것이다. 공부를 할 수 없는 이유는 탓하느라 시간을 낭비한 나 때문이다. 마음을 붙잡는데 초점을 맞추면 그렇게 불만을 많이 가졌던 일들이 아무것도 아니게 되어버린다.

 

느낀 점: 재미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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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망 2015.07.21 07:43
    마음이 커지는 순간 공부가 재미있어진다는 말 이 참 좋으네! 이모도 교회에서 함께 살면서 늘 새롭게 배우고 알게 되는것이 많아서 참 좋은데~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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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록) 난 두렵지 않아요

by 미르 posted Jun 20,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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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두렵지 않아요

난 두렵지 않아요/프란체스코 다다모 2015.6.19. 김정인

 

나는 이탈리아에서 지내고 있다. 이곳은 내 고향인 파키스탄과는 많이 다르다. 단 하나 같은 것이 있다면 이곳에 뜨는 별들이다. 나는 별들은 어디에서나 똑같이 보인다 생각한다. 그렇기에 외로울 때는 별들이 위로를 해줄 거라 믿는다. 나는 지금 남의 집에 얹혀살며 일을 해주고 있다. 주인아주머니는 매우 친절하시며 나를 잘 대해 주신다. 때리지도 않으며 이곳에서 나를 학대하는 사람은 없다. 가끔씩 나는 이크발을 생각하곤 한다. 이크발은 나한테 자유와 같은 인물이었다. 이것은 내가 기억하는 이크발에 대한 이야기이다. 주인 후사인 칸의 집은 들판에 자리 잡고 있었다. 카펫 공장은 양철로 지어져 여름에는 매우 덥고 겨울에는 매우 추웠다. 우리는 하루 종일 카펫 공장에 앉아서 카펫을 짰다. 내가 처음 오던 날 후사인은 나를 칠판이 있는 곳으로 데려가더니 칠판에 하얀 줄을 그으며 이것이 나의 빚이며 일을 잘하면 매일 줄을 하나씩 지워주겠다고 하였다. 나는 착실하게 일을 하였고 그 덕분에 무덤이라 불리는 감옥에 갇힌 적이 한 번도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이크발이라는 아이가 왔다. 그 아이는 일을 매우 잘하였다. 그 아이와 나는 매일 자기 전에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크발은 칠판에 있는 하얀 줄은 없어지지 않는다고 하며 그가 우리를 속이고 있는 것이라고 하였다. 그러면서 나에게 자기는 이곳을 달아날 거라고 하였다. 한 달 쯤 뒤 손님들이 우리 공장에 왔다. 이크발은 멋진 카펫을 만들고 있었다. 하지만 손님들이 감탄을 하자 그 앞에서 카펫을 북북 찢어버렸다. 화가 난 후사인은 이크발을 무덤에 가두었다. 얼마 뒤 이크발은 무덤에서 나왔고 그 뒤 카펫 공장에서 탈출하였다. 후사인은 이크발을 찾으러 다녔지만 결국 찾지 못하였다. 그로부터 얼마 뒤 이크발이 경찰과 함께 카펫공장을 찾아왔다. 하지만 후사인은 경찰에게 돈을 주며 이크발이 한 이야기는 거짓말이라 둘러대었다. 결국 경찰은 돌아갔고 이크발은 다시 무덤에 갇히게 되었다. 이크발을 무덤에서 내보내주지 않자 아이들은 반발을 하였고 다시 이크발은 무덤에서 나오게 되었다. 이크발은 우리에게 밖에서 있었던 일들에 대해 말해주었다. 이크발은 도시로 도망쳤고 그곳에서 짐을 나르는 일을 하며 돈을 벌어 겨우겨우 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이크발은 시장에서 연설을 하는 사람을 보게 되었다. 어른들은 그 사람에게 돌을 던지며 비웃었다. 이크발은 그 사람이 나눠준 종이를 보관했고 경찰에게 가서 카펫 공장에 대해 말하였다. 경찰은 이크발을 도와줄 것처럼 행동하였다. 그러나 후사인을 만난 후 행동이 바뀌었다고 하였다. 그러면서 이크발은 종이를 꺼내들었지만 글을 읽지 못하였다. 그때 마리아가 자신이 글을 읽을 줄 안다고 하였고 우리에게 글을 알려준다고 하였다. 그렇게 우리는 마리아에게 글을 배우게 되었다. 마침내 우리는 글을 읽을 수 있게 되었고 그 종이를 읽어 보았다. 그 종이에는 미성년자 노동 착취를 그만두라는 글이 쓰여 있었다. 그 운동을 하는 사람은 에샨 칸이라는 사람이었다. 이크발은 또 다시 탈출을 하였고 에샨 칸을 찾아가 그에게 도움을 청하였다. 에샨 칸은 변호사와 경찰과 함께 카펫 공장으로 왔고 후사인은 감옥에 가게 되었으며 우리는 자유의 몸이 되었다. 우리는 에샨 칸의 집에서 살게 되었고 각자의 부모님을 찾는데 성공한 아이들은 집으로 돌아갔다. 나는 집이 어딘지 가족의 이름이 뭔지 하나도 기억나지 않았기에 그곳에 남아있고 싶다는 이크발과 함께 에샨 칸의 집에서 지내게 되었다. 에샨 칸을 만난 뒤 이크발은 자기와 같은 처지에 있는 아이들을 돕겠다고 하였고 공장에 몰래 숨어들어가 증거를 찍은 뒤 에샨 칸과 함께 그곳을 찾아가 아이들을 풀어주는 일을 계속 하였다. 그 일을 하면서 죽을 뻔 한 적도 있었지만 이크발은 멈추지 않았다. 그렇게 이크발은 유명해졌고 세계 어린이 상을 받게 되었다. 그렇게 이크발이 미국으로 떠난 사이 나는 가족을 찾을 수 있었고 나는 가족과 함께 지내게 되었다. 구름이 낀 어느 날이었다. 편지가 왔는데 불길하였다. 나는 그 편지를 읽어보았고 미국에서 돌아온 이크발이 부활절을 가족과 함께 보내기 위해 고향에서 지내고 있다가 누군가가 쏜 총을 맞고 죽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결국 총을 쏜 사람은 잡지 못하였고 카펫 마피아들의 짓이라 짐작할 수밖에 없었다. 그 뒤 나는 가족과 함께 이탈리아로 갔고 그곳에서 지내게 되었다.

 

느낀 점: 재미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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