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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록) 쉽게읽는 백범일지

by 미르 posted Aug 05,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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쉽게 읽는 백범일지

쉽게 읽는 백범일지/김구 2014.8.5. 김정인

 

나는 안동 김 씨이며 조상이 고려시대 공신으로 대대로 서울에서 살았지만 선조 한 분이 반역죄를 저질러 집안이 망하게 되자 팔봉산 양가봉 밑까지 숨어 들어와 살게 되었다. 그리하여 우리는 강 씨와 이 씨에게 경제적 압박을 받으며 그 집 아이들에게 까지도 존대를 하며 지내왔다. 하지만 나의 아버지는 술만 드시면 양반들을 때렸고 그래서 한 달에도 몇 번씩 피투성이가 된 사람이 우리 집에 누워 있곤 했다. 나의 어머니는 나를 매우 힘들게 낳으셨다. 산통이 시작된 지 일주일이 지나도록 내가 나오지 않아 아버지가 지붕위에 올라가 소 울음소리를 낸 후에야 내가 나왔다고 한다. 집도 가난한데다 열일곱에 나를 낳았으니 어머니는 항상 내가 죽었으면 좋겠다고 한탄하셨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과거에 급제하면 진사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서당에 보내 달라 아버지께 졸랐다. 하지만 우리 동네에는 서당이 없었고 아버지는 결국 직접 이생원이라는 양반을 모셔와 서당을 차렸다. 그렇게 임진년이 되었고 나는 과거 시험을 보았다. 하지만 그 뒤 나는 과거시험에 비리가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관상이나 풍수를 공부하기로 하였다. 그렇게 관상을 공부하던 나는 얼굴 좋은 것이 몸 좋은 것만 못하고 몸좋은 것이 마음 좋은 것만 못하다는 구절을 잃게 되었고 마음 좋은 사람이 되기로 결심하였다. 그쯤 동학이란 학문이 들어왔고 그 학문을 알게 된 나는 동학에 입문하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조선인 행세를 하는 일본인을 만나게 되었고 그 일본인이 조선의 국모를 죽인 자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그 일본인을 죽였고 감옥에 들어가게 되었지만 곧 풀려날 수 있었다. 감옥에서 나온 뒤 나는 결혼을 하였고 이사를 하여 사립 양산학교에서 근무하게 되었다. 나의 첫째 딸은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채로 이사를 한 것 때문이었는지 죽고 말았다. 1910년 합병 당시 인심은 매우 흉흉하였고 나는 망국의 치욕 속에서도 국민이 한마음으로 분발하기만 하면 곧 국권이 회복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그러려면 후세들의 애국심을 앙양하는 길밖에 없었고 나는 양산학교를 확장하고 소 중학부의 학생을 늘려 모집하는 등 교장으로서의 임무를 다했다. 경무총감부가 있는 진고개 산기슭 여기저기에서는 고문소리가 밤낮 끊이지 않고 들렸다. 어느 날 나는 최고 신문실로 끌려갔고 그곳에서 예전에 있던 감옥에서 만났던 와타나베를 다시 만나게 되었다. 와타나베는 또다시 나를 견제하였고 감옥에 들어가게 되었다. 그들은 나를 굶기거나 때리거나 혹은 다독여서 자백을 하게 만들었지만 나는 끝까지 자백을 하지 않았다. 나는 사식도 금지되어서 나의 아내는 매일 아침저녁마다 유치장 앞으로와 김구의 밥을 가지고 왔으니 들여보내달라고 소리쳐야 했다. 그렇게 하루하루를 보내던 어느 날 나는 종로구치감으로 넘어갔고 독방이었지만 경무총감부보다 편하고 식사량도 많았다. 어머님이 상경하여 날마다 사식을 들여보내시고 편지로 소식도 종종 알려주셨다. 아내는 안악의 가산과 집물을 모두 팔아서 서울로 오다가 두 살인 둘째 딸 화경이와 함께 장모가 계신 평산 언니 집에 들렀다가 공판날짜를 알려주면 그 때 상경한다고 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메이지가 죽었고 나는 형이 줄었다. 감옥에서 나가기 전 나는 왜의 호적부에서 벗어나기 위해 구를 아홉 구자로 바꾸었고 호는 백범으로 고쳤다. 연하를 백범으로 고친 것은 우리나라가 완전한 독립국이 되려면 조선의 하등사회 곧 백정범부들이라도 애국심이 현재의 나 정도는 되어야 하겠다는 바람 때문이었다. 한편 아들이 없던 나에게 아들이 생겼고 아들 또한 왜의 호적부에서 벗어나게 하지 위해 어질 인자로 고쳤다. 만국 2년 아내가 아들 인을 데리고 상해로 왔고 그곳에서 둘째 신이가 태어났다. 상해에서 함께 가정을 이룬지 얼마 되지 않아 민국 611일 아내가 세상을 떠났다. 둘째 신이를 낳은 후 몸도 채 튼튼하지 못한 채로 층계에서 발을 헛디뎌 굴러 떨어진 뒤 늑막염이 폐병으로 옮겨가 그런 것이었다. 나는 독립운동 기간 중에 혼례나 장례등 의식으로 돈을 낭비하는 것에 찬성치 않았다. 그래서 아내의 장례도 검소하게 치르려하였다. 하지만 동지들은 아내가 나로 인해 고생한 것이 곧 나랏일에 공헌한 것이라며 각기 돈을 거두어 장의를 성대하게 지내고 묘비까지 세워주었다. 그 뒤 윤봉길 의사가 폭탄을 던졌고 나는 더욱 열심히 독립운동을 주도하였다. 하지만 어느 날 왜적이 항복을 하였다는 소식이 들려왔고 그 말을 들은 나는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지는 듯 한 기분이 들었다. 수년 동안 노력한 참전준비가 모두 헛일이 되어버린 것이다. 내 아들 인이는 중경에서 병에 걸려 죽었고 나는 고국을 떠난 지 근 2719451123일 상해에서 미국 비행기를 타고 김포 비행장에 착륙하였다.

느낀 점: 김구는 정말 대단한 사람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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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록) 연금술사

by 미르 posted Aug 04,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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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금술사

연금술사/파울로 코엘료 2014.8.2. 김정인

 

산티아고는 양치기 이다. 그의 부모는 그가 신부가 되어 보잘 것 없는 시골 집안의 자랑이 되어주기를 바랐다. 그는 열심히 공부를 하였다. 하지만 그는 더 넓은 세상을 알고 싶었고 아버지에게 세상을 떠돌아다니며 살 수 있는 양치기가 되고 싶다고 하였다. 아버지는 금화가 들어있는 주머니를 건네주며 허락해 주었다. 그렇게 양을 치며 살던 어느 날 그는 상점 주인의 딸을 좋아하게 되었다. 그렇게 그녀를 생각하고 있던 그는 전에 꾸었던 꿈을 다시 꾸었다는 생각이 들었고 해몽을 잘한다는 노파를 찾아가서 꿈에서 어린아이가 자신의 양들과 놀다가 피라미드 앞에서 당신이 이곳에 온다면 보물을 찾을 수 있을 거예요 라고 말하였다고 얘기해 주었다. 그러자 노파는 해몽의 대가로 그가 찾게 될 보물의 십분의 일을 달라고 하였고 그는 약속하였다. 노파는 피라미드에 가서 보물을 찾으라고 말해 주었고 그는 실망한 채 밖으로 나왔다. 그 때 어느 노인이 그에게로 다가왔고 그도 산티아고가 가진 양의 십분의 일을 주면 보물을 찾는 방법을 가르쳐 주겠다고 하였다. 그는 그 노인이 노파의 남편이라 생각하고 그를 믿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왕이라고 하며 산티아고에 대한 모든 것을 알고 있었다. 산티아고는 그를 믿기로 하였고 이집트에 가기로 결심하였다. 그는 친구에게 양을 파는 것을 성공하였고 그중 6마리는 노인에게 주었다. 그러자 노인은 흰색과 검은색 보석을 주며 표지를 식별하기 어려울 때 도움이 될 거라고 하였다. 그는 그렇게 이집트로 향하는 배에 올랐고 배는 이집트를 향해 나아갔다. 그는 이집트에 도착한 뒤 어느 카페에 들어갔고 어떤 남자가 스페인 어를 하며 말을 걸어왔다. 그는 그가 피라미드에 가는 것을 도와주겠다고 하였고 그 우선 피라미드에 가려면 돈이 많이 필요하니 돈을 보여 달라고 하였다. 그는 양을 팔고 난 뒤라 많은 돈을 가지고 있었고 그는 우선 낙타가 필요할 테니 시장으로 가자고 하면서 산티아고의 돈을 챙겼다. 시장에 간 산티아고는 어떤 칼을 보게 되었고 칼을 구경하는 사이 그 남자는 돈과 함께 사라져 있었다. 결국 그는 돈을 벌기위해 어느 크리스털 그릇을 파는 가게에 들어갔고 그곳에서 일을 하기 시작하였다. 그릇을 닦고 진열대도 정리하였으며 크리스털 컵에 차도 담아서 팔기 시작하였다. 사람들은 점점 많이 오기 시작하였고 그는 돈을 조금씩 모으기 시작하였다. 그렇게 1년이 지났고 그는 다시 많은 돈을 가지고 피라미드를 향해 가기 시작하였다. 그는 많은 사람들과 함께 피라미드로 향하였고 그중 어떤 영국인을 만나게 되었다. 그 영국인은 연금술사였고 어떤 대단한 연금술사를 찾으러 간다고 하였다. 그들은 사막을 계속 걷고 또 걸었다. 그러던 어느 날부터 부족 간의 전투가 시작되었고 그들은 밤낮을 가리지 않고 계속 걸었다. 사람들과 짐승들은 너무 지쳐 오아시스를 꼭 필요로 하였다. 피라미드에 거의 도착했을 때 병사들이 그들을 붙잡고 심문을 하기 시작하였고 연금술사는 산티아고가 가진 돈을 그들에게 주며 살려달라고 하였다. 산티아고는 그런 말을 한 연금술사를 원망하였지만 그는 돈으로 죽음을 미룰 수 있는 경우는 흔치않고 어차피 지금 죽으면 돈은 쓸모없게 된다고 잘된 일이라고 하였다. 그렇게 그들은 피라미드에 도착하였고 그들은 그 주변 땅을 파기 시작하였다. 하지만 땅을 아무리 파도 보물은 나오지 않았고 지나가던 병사가 그들을 발견하고 뭘 하고 있냐고 하였다. 산티아고는 그에게 자신이 꾸었던 꿈 이야기를 해주었고 우두머리는 비웃으며 자신도 스페인의 어느 쓰러져 가는 교회 근처에 있는 무화과나무 아래에서 보물을 파는 꿈을 꾸었다고 하였다. 그런데 그곳은 산티아고가 양치기 였을 때 양들과 함께 자주 자던 곳이었다. 그는 이제 보물이 어디 있는지 알게 되었고 그는 다시 스페인으로 가 땅을 파기 시작하였다. 그는 그곳에서 스페인 옛 금화가 담긴 궤짝을 발견하였다. 그는 기쁨의 미소를 지었다.

 

느낀 점: 책 내용이 재미있었고 교훈을 주는 말들이 많아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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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록) 니콜라 테슬라

by 미르 posted Aug 01,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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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콜라 테슬라

니콜라 테슬라/마가렛 체니 2014.7.31.김정인

 

테슬라는 185679일과 10일 사이의 한밤중에 크로아티아 리카 지방의 쉬밀리안이라는 작은 마을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교회 성직자였고 테슬라가 태어났을 때 크로아티아에서는 직업 선택의 폭이 몹시 제한되어 있었다. 농부가 되거나 군대에 가거나 성직자가 되어야 했다. 테슬라의 어머니 듀카는 맏딸이었으며 학교 교육을 제대로 배운 적이 없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고전 유럽 시 전집 전체를 암송할 정도로 놀라운 기억력을 가지고 있었다. 테슬라는 그런 어머니의 기억력을 물려받아 한 번 본 것은 기억할 수 있는 기억력을 가지게 되었다. 아버지 덕분에 테슬라는 성경과 시 구절을 인용하는 것이 무척 자연스러운 집안 분위기 속에서 성장하였고 커서 시를 즐겨 썼다. 테슬라는 어렸을 때부터 발명을 하기 시작했다. 모두 성공적인 것은 아니었지만 발명품들은 굉장히 독특하였다. 그러나 이런 아름다운 환경에도 불구하고 어린 소년의 마음속에는 무서운 생각들이 자리 잡고 있었다. 그것은 가족의 비극적인 사건에서 시작된 정신적인 충격 때문이었다. 테슬라의 형 다니엘은 매우 총명해 부모님의 기대를 한 몸에 받았지만 불의의 사고로 목숨을 잃고 말았다. 다니엘의 죽음으로 인해 테슬라는 병적인 공포증과 강박관념을 가지게 되었다. 테슬라는 각진 면을 가진 보석류는 좋아하였지만 진주 귀걸이를 매우 싫어하였다. 걸을 때는 걸음 수를 세면서 걸었고 식사를 할 때는 음식의 부피를 계산하면서 먹었다. 신체적 접촉도 매우 싫어하였다. 테슬라는 형을 잃은 부모에게 위안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스스로에게 엄했고 남들에게는 관대했으며 공부도 열심히 하였다. 아버지는 테슬라가 성직자가 되기를 원하셨고 그 때문에 테슬라는 어렸을 때부터 대단히 유익한 공부들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테슬라는 성직자가 되기를 원하지 않았고 병에 걸려 아버지가 다른 직업을 가지는 것을 허락함으로서 공학자가 될 수 있게 되었다. 테슬라는 상당히 예민한 청각을 가지고 있었고 부다페스트에 있는 동안 테슬라는 상당히 힘들어 하였다. 1884년 테슬라는 미국으로 갔다. 그는 에디슨을 만났고 같이 일을 하였다. 하지만 그가 5만 달러를 주겠다는 말을 바꾸자 회사를 나왔다. 그는 맨해튼에 있는 실험실에서 전기 연구를 하기 시작하였고 1880년대 후반과 1890년대 초반에 이르는 짧은 기간 동안 그는 행복을 누릴 수 있었다. 테슬라는 혁신적인 교류 전력 시스템을 발표하였고 그로부터 3년 뒤 빛의 발광 현상을 이용해 전기의 본질에 관한 자신의 연구 결과를 발표하였다. 뉴욕에 있는 실험실에서 그는 여러 달 동안 무리하게 두뇌를 소진 시켰고 결국 그는 이상한 기억 상실을 경험하였다. 초기 유년 시절을 제외하고는 거의 아무것도 기억을 못하게 된 것이다. 그는 매일 밤마다 어린 시절의 기억에 정신을 집중하였고 점자 자신의 기억을 되찾을 수 있었다. 1892년 이른 봄 그는 환각을 보게 되었고 영상 속에서 어머니가 위독하다는 소식을 받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였다. 그리고 얼마 뒤 그는 어머니가 위독하다는 소식을 듣고 고향으로 향하였다. 그는 다행히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전에 고향에 도착할 수 있었다. 한편 짧은 시간 동안 테슬라는 많은 성공을 거두었다. 전류 전쟁은 결국 웨스팅하우스와 테슬라의 승리로 막을 내렸다. 19001월 중순 테슬라가 뉴욕에 도착하자 신문과 잡지의 기자들이 몰려들었다. 그들은 외계로부터 메시지를 받았다는 테슬라의 주장을 비난하였다. 하지만 테슬라는 외계로부터 온 메시지의 답을 보내려는 열정에 불타고 있었고 콜로라도 실험을 통해 얻은 무선 통신과 에너지 전송에 관한 새로운 기술들을 특허 출원하기 시작하였다. 또한 실험을 위한 탑도 짓기 시작하였다. 롱아일랜드에 있는 탑은 점점 높아져 갔고 테슬라는 자기 자신과 인부들을 더욱 거세게 몰아붙이기 시작하였다. 하지만 나쁜 일들이 자꾸 겹치면서 테슬라는 점점 돈을 잃어갔다. 의료기기를 만들고 실험기구를 팔아 돈을 다시 모으기도 하였지만 결국 돈은 그에게로 오지 않았다. 그리고 1917년 독일 스파이가 탑속에 있을지도 모른다는 주장 때문에 탑은 폭파되었다. 친구들도 그를 떠나거나 배신하였고 테슬라는 점점 비참해져 갔다. 노인이 된 테슬라는 비둘기한테 집착하기 시작하였고 하루도 빠짐없이 공원에 가서 비둘기에게 모이를 주었다. 나중에 다쳐서 비둘기에게 모이를 못 주는 날에는 심부름꾼을 시켜서라도 비둘기에게 모이를 주었다. 194317일 오후 1030분 테슬라는 호텔 방에서 죽은 채로 가정부에게 발견되었다. 자고 있는 동안 죽은 것이었다. 그 후 테슬라의 유산은 외국인 재산 관리소로 넘어갔고 지금 도서관에 일부 보관되어있다고 한다.

느낀 점: 책이 재미있었고 테슬라가 대단한 것 같다. 하지만 불쌍하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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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록)생태도시 아바나의 탄생

by 미르 posted Jul 19,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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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태도시 아바나의 탄생/요시다 타로 2014.7.18. 김정인

    생태도시 아바나의 탄

식량 위기를 극복한 쿠바의 도시농업

쿠바인의 평균 월수입은 원화로 약 40만 원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하지만 이 정도만으로도 쿠바에서는 충분히 살아갈 수 있다. 집세는 급료의 10%이하로 고정되었고 교육비 의료비 탁아비도 전혀 들지 않기 때문이다. 난치병에 걸려도 무료로 고도의 치료를 받을 수 있다. 또한 배급을 통해 거의 무료나 다름없는 가격으로 식료품들을 구할 수 있다. 이렇듯 쿠바는 어느 분야에서도 미국에 비해 전혀 손색이 없었다. 하지만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짐과 동시에 사회주의권이 붕괴하자 쿠바의 국제 분업 노선은 곧 벽에 부딪쳤다. 수입원과 수출선을 한꺼번에 잃어버린 것이다. 결국 이것들은 쿠바를 경제위기에 빠뜨렸고 쿠바는 무너져갔다. 사람들의 체중이 평균 10키로가 줄었으며 치료도 잘 못 받게 되었다. 사람들은 도시에서 먹을 것을 구하기 위해 농사를 짓기 시작하였고 그것이 점점 확장되어 점점 많은 사람들이 농사를 짓게 되었다.

 

녹색 도시 만들기

정부는 아바나의 녹지를 더 늘릴 필요가 있다고 판단하였고 지역 주민이 필요하다고 느끼면 시내 어디에든 심고 싶은 곳에 나무를 심을 수 있게 하였다. 자재가 부족하였지만 선진국에서 내다버린 중고품을 고쳐써가며 절약을 하였다. 시민들의 높은 환경의식과 참여의식이 자재 부족을 보충해주었다. 수백만 그루 단위로 새로 식림을 하려면 묘목의 확보와 생산도 큰일이었다. 경제 위기에 따른 물자부족은 이러한 묘목 만들기에도 심각한 영향을 주었고 플라스틱 육묘 포트도 구하기 힘들어 육묘센터에서는 쓰리게 수집업자와 손을 잡고 폐비닐을 재활용 하거나 빈 깡통을 육묘용 컵으로 활용하였다. 한편 녹지 계획 중에는 수도의 대표적인 얼굴로서 거대한 녹지 구역을 중심부에 새로 만들려는 계획도 있었다. 수도 공원 프로젝트라 불리는 계획이었다. 어린이들이 공부할 수 있도록 보장하는 것은 기본적인 인권이다. 하지만 현재 세계 인구 중 8억 5천만 명이 글을 읽지 못하며 그 수는 계속 증가하고 있다. 하지만 쿠바는 여느 개발도상국들과 달리 그런 아이가 거의 없다. 유엔이 정한 기초적인 교육수준은 말할 것도 없고 선진국에 못지않은 혹은 그보다 나은 교육이 이루어지고 있다. 유치원에서 박사과정까지 모든 과정이 무료로 이루어지며 어떤 오지에도 학교가 있으며 기숙사도 무료로 들어갈 수 있다. 현재 비 문맹률은 거의 100%에 이르며 인구 1천 1백 명 중 대졸자가 50만 명 이상이나 된다. 또한 쿠바에는 남녀평등의 문화가 성숙해 있어서 노동하는 여성을 위해 6개월에서부터 유치원 입학까지의 어린이들을 전국적으로 1천개 이상 되는 어린이 방이 맡아 돌본다. 여기에서는 놀이와 공부뿐 아니라 식사에서 의료까지 모든 서비스를 무료로 제공한다. 쿠바에서는 의대까지도 모두 무료이므로 두뇌 유출도 쿠바에서는 찾아볼 수 없었다. 또한 특기할 만한 것은 장애인 교육인데 장애를 가진 어린이들은 유아기 때부터 전문가에게 특별한 교육을 받는다. 특수학교도 충실한 편이고 가능하면 보통학교에 보내려 한다. 선진국과 비교해도 장애인 교육의 충실함은 전혀 손색이 없다. 혁명 이후에는 학교마다 학교 텃밭이 만들어졌고 중학생도 농촌에서 한 달 가까이 농사일을 하는 등 자연을 몸소 체험하는 데 주안점을 두었다.

 

느낀 점: 예전에 한번 읽어봤던 책이라 더 잘 읽혔고 아바나에 대해 잘 몰랐는데 잘 알게 되어서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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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록)영화로 배우는 서양사

by 미르 posted Jul 12,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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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로 배우는 서양사

영화로 배우는 서양사/김형곤 2014.7.12. 김정인

 

트로이

영화 트로이의 배경에는 바로 여성들의 아름다움에 대한 경쟁이 자리 잡고 있다. 서양사의 오랜 문명의 하나인 에게문명을 살펴보면 영화 트로이는 더욱 사실적이고 흥미롭다. 에게 문명의 출발은 기원전 2000년을 전후하여 에게 해의 크레타 섬에서 시작되었다. 본토가 아니라 크레타 섬에서 문명이 먼저 발생한 이유는 이곳이 선진 문명지역인 이집트와 가까운 곳이었기 때문이라는 추측이 있다. 크레타는 청동 기술이 뛰어났고 크놋노스에 강력한 왕권이 형성되어 번성하면서 동지중해를 중심으로 활발한 해상활동을 벌였으며 이집트의 영향을 받아 매우 사실적인 해양미술을 창조하였다. 그러나 기원 1350년을 전후하여 크레타는 급속히 몰락했는데 그리스 본토 미케네인 들의 침입이 원인이라고 인식되고 있다. 트로이 전쟁에는 신들의 의지가 있었다. 테티스의 결혼식 날 싸움의 여신 에리스를 제외하고 여러 신들이 함께 모여 파티를 했다. 화가 난 에리스는 가장 아름다운 여신에게 라고 쓰인 황금사과를 던졌고 이를 본 아프로디테, 헤라, 아테나는 사과가 자신의 것이라고 싸웠다. 결국 세 여신은 트로이의 왕자 헤리스에게 사과가 누구 것인지 물어보았고 각각 명예, 부, 아름다운 여자를 내걸었다. 파리스는 아름다운 여자를 골랐고 아프로디테는 메넬라오스의 아내인 헬레네를 아내로 삼게 해주었고 해 사건으로 인해 트로이의 전쟁이 시작되었다. 하지만 전쟁은 10년 동안 해도 끝이 나지 않았고 오디세우스의 트로이의 목마로 인해 트로이는 함락 당하였다.

 

글래디에이터

영화 글레디에이터의 배경은 서기 180년 로마 제정의 황금기의 오현제의 마지막 황제인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황제와 그의 아들 코모두스의 시기다. 그동안 간헐적으로 침입해 왔던 게르만족이 로마의 국경을 대대적으로 침입해오고 있던 시기였다. 죽을 날이 머지않았던 황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막시무스를 총애하여 아들이 아닌 그에게 권력을 넘겨주기로 한다. 그러나 황제의 친아들 코모두스는 이에 질투를 하여 황제를 살해한다. 제위를 이어받은 코모두스는 막시무스에게 충성을 요구하지만 그는 이를 거부한다. 결국 막시무스는 가족을 모두 잃고 노예로 전략하여 투기장의 검투사가 되었다. 그는 코모두스에게 복수할 것을 다짐한다. 검투사로서 매 경기를 승리로 이끌면서 그의 명성과 인기는 날로 높아졌다. 코모두스는 황제 즉위를 축하하는 의미의 검투사 경기를 150일간 개최하게 되고 속주에서 절대적 인기를 끌던 막시무스는 드디어 수도 로마로 간다. 그는 황제 코모두스를 만나게 되었고 어느새 민중의 영웅이 된 막시무스에 대해 코모두스는 그가 아직 살아있음을 알고 분노하지만 시민이 두려워 그를 죽이지 못한다. 한편 원로원 의원과 그의 누이는 코모두스를 배신하고 막시무스의 반란을 도우려 하였지만 코모두스가 눈치를 채는 바람에 실패하고 말았다. 결국 코모두스는 검투사 경기를 다시 열어 막시무스를 미리 상처입히고 자신과 대결하게 한다.

 

느낀 점: 영화랑 관련지어서 역사를 설명해주어서 재미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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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씨앗 2014.07.18 10:37
    잘 정리해줘서 나도 재밌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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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록)철학콘서트 2

by 미르 posted Jul 04,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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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철학 콘서트2 -황광

철학 콘서트2/황광우 2014.7.4. 김정인

 

내게 배운 것을 발설치 마라-피타고라스

피타고라스의 아버지 므네사르코스는 아들이 최상의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힘썼다. 그리하여 피타고라스는 소년 시절에 리라 연주와 운동과 그림을 배웠다. 므네사르코스는 이집트, 이탈리아, 그리스, 에게 해의 섬들로 이어지는 장삿길에 아들을 동행했다. 그리고 아들이 부유한 상류츨의 관습과 예절을 익힐 수 있도록 배려했다. 어린 피타고라스는 끊임 없이 자신을 수양했고 육체의 건강과 단련을 도모했다. 좀처럼 화를 내지 않았고 경솔한 행동이나 난폭한 언사를 내뱉지 않았다. 피타고라스의 스승인 탈레스는 이집트에 가서 공부할 것을 권유하였고 그렇게 피타고라스는 나일 강 북쪽에 자리한 헬리오 폴리스에 도착하였다. 사제들은 피타고라스에게 엄혹한 수련을 시켰고 이 훈련을 마친 피타고라스는 20년 동안 세계의 선진적 지식을 배우게 된다. 그는 이집트어로 된 모든 학문을 통달하였다. 그렇게 피타고라스가 이집트에 간 뒤 23년이 지났을 때 페르시아가 이집트에 쳐들어왔고 피타고라스는 바빌론으로 이송되었다. 그곳에서 피타고라스는 페르시아 학자들에게 5000년 동안 축척된 메소포타미아 문명에 대해 배웠고 바빌론에서 12년을 보낸 뒤 56세의 나이로 현자가 되어 귀향하였다. 그는 이탈리아의 크로톤 섬으로 갔고 그곳에서 연설을 하였다. 그는 철학 공동체를 만들었다. 철학 공동체에 들어오는 학생은 먼저 자신의전 재산을 공동체에 내놓아야한다. 그들은 재산을 공유하였고 인성을 수련해서 시험에 통과해야지만 그의 제자가 될 수 있었다. 자신과 맞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제자는 공동체를 떠나야 했는데 이곳에서 보고 들은 일은 밖에서 말하는 것이 금지되어있었다.

 

전하, 통촉하시옵소서!-세종

훈민정음은 실존했던 왕의 창안물이라는 점에서 인류 역사상 아주 특이한 이력을 기록한다. 알파벳이나 갑골문자는 누가 창안했는지 알 길이 없다. 하지만 훈민정음은 세종대왕의 독자적 창안물이다. 왕이 손수 문자를 창작한 것도 기이한 일이지만 그 창작 과정이 매우 비밀스러웠다는 점도 흥미로운 일이다. 훈민정음을 창제한 1443년을 기점으로 5년 전부터는 훈민정음 관련 기사가 나올 것이라 생각했다. 상당 시간 실록을 뒤졌지만 없다. 세종은 자신의 연구과정을 신하들에게 숨겼던 것 같다. 비밀 작업이었음이 분명하다. 1443년 세종 25년 훈민정음이 창제되었다는 기사가 나온다. 날짜는 12월 30일이다. 왜 한 해의 마지막에 발표했을까? 세종의 훈민정음 창제 기사는 단 세 문장으로 처리되었다. 세종대왕은 여러 지병에 시달렸다. 30대 후반에 벌써 풍병, 당뇨병에 시달리기 시작했다. 또 밤늦도록 공부를 하여 늘 눈병을 앓았다. 하여 온천을 찾아 휴양하는 것이 또 하나의 과제였다. 최만리의 상소 제5조는 한글 창제와 관련된 한 가지 비밀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세종은 온천을 찾아다니는 중에 한글을 연구한 것이다. 경복궁에 있으면 늘 신하들의 감시를 받는다. 그래서 온천으로 요양간다는 명분으로 얻게 되는 보름의 여행기간은 신하들의 눈초리를 피할 수 있는 참으로 편한 연구 공간이었다.

 

갈릴레이가 의대를 중퇴한 까닭은?-갈릴레이

갈릴레이 갈릴레오는 1564년 피사에서 태어났다. 그는 가난한 집 6형제의 맏아들이었다. 어린 시절 수도원에서 공부했고, 사제의 꿈도 가졌다. 아버지는 아들을 의사로 키우기 위해 피사 의대에 입학시켰다. 하지만 그는 주입식 암기 교육이 싫었고 결국 의대를 중퇴하고 수학을 공부하여 25세의 나이로 피사대학교의 수학 교수가 되었다. 그는 망원경을 만들어 천체를 관찰하면서 지구중심이론을 비판하고 태양 중심 이론을 옹호했다. 그는 위험하고 이단에 가까운 이론을 펼친다는 이유로 1614년 교황의 경고를 받았다. 그리고 두 개의 주된 우주 체계에 관한 대화를 출간하던 1632년 10월 로마 교황청에 소환되었다.

 

느낀 점: 세종대왕이 한글을 몰래 만들었다는 것이 내가 알던 것과 달라 혼란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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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록)과학의 즐거움

by 미르 posted Jun 28,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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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의 즐거움

과학의 즐거움/알베르 자카르 2014.6.27. 김정인

   

과학은 어떻게 아이들을 바라보는가

개별적 빅뱅이라 할 수 있는 생명의 첫 출발점은 이미 오래전에 밝혀졌듯이 바로 난자와 정자의 결합이다. 최초의 세포가 분열하여 포배가 만들어진다. 그것은 둥근 공 모양으로 시간이 가면서 난할이 이루어지고 세 개의 배엽으로 분화된다. 이처럼 세포는 자신을 복제하는 생식과정을 통해 자신만의 고유한 방식으로 계통을 만들어 나간다. 이 과정은 분명 유전 정보에 의존하는데 그가 위치한 공간에 따라 변형된다. 내배엽 세포는 호흡기관과 소화기관을 만들어내고 외배엽을 외피와 신경계를 만들어낸다. 그리고 중배엽은 근육과 뼈와 피부와 비뇨 기관을 만들어낸다. 잉태 6주째가 되면 빈 관의 내벽이 겹겹이 쳐진 벽으로 둘러싸여 있고 그 표면은 자라면서 겹이 생기는데 하나는 대뇌피질이 되고 다른 부분은 소뇌가 된다. 포유류로 진화하는 과정에서 이 기관의 세포인 뉴런의 수는 엄청나게 늘어난다. 모든 종의 경우 뉴런은 그 종이 태어나기 전에 형성된다. 일단 새끼가 갖고 태어나는 뉴런 체계는 이후 재생되지 않는다. 그리고 나이를 먹으면서 서서히 그 수가 줄어드는데 인간의 경우 하루에 대략 5만 개씩 없어진다. 하지만 뇌의 무게는 사춘기 때까지 증가한다. 다른 영장류에 비해 인간의 아기는 기능적이지 못한 뇌를 가지고 태어난다. 때문에 태어나서 아주 위험한 시기를 거치게 된다. 아무런 자율성도 갖추지 못한 상태에서 환경의 지배를 받는다. 태아에게 비정상적으로 많은 뇌세포가 주어짐으로써 지나치게 두개골이 커졌지만 많은 능력을 지닌 뇌를 갖게 되었다. 그 능력이 어느 정도인지는 우리의 상상력을 뛰어넘는다.

 

생각해볼 문제들

학교에서는 끊임없이 지능을 문제 삼는다. 이 단어의 내용에 대한 명확한 규정은 전혀 이루어지지 않은 채 말이다. 모든 측정치가 열등한 것에서 우월한 순서에 따라 분류를 가능하게 해주듯이 학생들은 성적 등급에 따라 분류된다. 이렇게 각 학생들에게는 분류표가 붙여지게 된다. 사실 지능은 특성의 총체로서 이를 등급화하려는 시도는 무의미하다. 한 배에서 태어난 쌍둥이의 3분의 2는 두 개의 난자가 각각 다른 정자와 수정되어 태어난다. 간혹 이중에는 서로 성별이 다른 경우도 있지만 이런 이란성 쌍둥이들은 그저 두 자매 또는 두 형제일 뿐 그 밖의 유전적 공통점을 가지고 있지 않다. 3분의 1만이 같은 난자와 같은 정자에서 출발한 두 개의 생명체라고 할 수 있다. 사람들은 일란성 쌍둥이의 동일한 특징들은 주로 그들 유전자의 지배를 받으며 차이점은 경험의 지배를 받는다는 결론을 끌어내고 싶어 한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그런 해석을 내리는 것은 쉽지 않다. 보통 이들은 태어난 순간부터 같은 공간에서 성장하기 때문이다. 심리학자들은 환경적요소가 다른 일란성 쌍둥이를 찾기 위해 노력하였지만 이 작업은 매우 어려웠고 이 일에 참여하였던 사람들 중에서는 가짜로 자료를 써내어 사기극을 벌인 사람도 있었다.

 

우리가 만들어가야 할 사회

사회가 자신의 책임과 의무를 제대로 파악하고 있다면 이 사회가 아이들에게 열린 공간이라는 생각이 들도록 만들어야 한다. 사회는 모든 청소년들이 각자 나름의 희망과 열정이라는 보물을 지니고 나타나는 뜻밖의 고마운 여행자라는 사실을 잊지 말고 그들을 맞이해야한다. 우리는 견딜 수 없는 일을 견디는 데 익숙해지고 있다. 이처럼 수용하고 체념하는 것은 우리의 미래를 생각함에 있어 최악의 진단이다. 지구의 자원은 고갈되어가고 있고 많은 사람들이 점점 더 빈곤해지고 있다. 그리고 불평등이 심화되어가고 있다. 우리를 다시금 온전하게 만들어 줄 도약이 가능할까?

 

느낀 점: 책 내용이 살짝 지루하기는 했지만 재미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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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록)인류 역사를 새로 쓴 위대한 탐험가들의 탐험이야기

by 미르 posted Jun 20,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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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탐험가들의 탐

인류 역사를 새로 쓴 위대한 탐험가들의 탐험이야기/로버트 클랜시, 마이클 곤 외 10인

2014.6.20 김정인

 

이집트인 하크후프와 하트셉수트

하크후프는 어퍼나일과 근동 사이의 무역과 외교 동로가 확립되었던 제 6왕조 의 고위 관히이다. 그는 나일 강을 거슬러 얌의 땅에 이르는 탐험을 최소한 네 차례나 이끌었다. 그의 무덤에 새겨진 비문에는 온갖 종류의 선물을 가지고 돌아와 큰 찬사를 받은 사연이 담겨있다. 약 800년이 흐른 뒤 하트셉투스 여왕은 페니키아, 시나이, 푼트의 땅에 무역 원정대를 파견하였다. 푼트의 위치는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지만 오늘날의 앨버트 호 주변 지역일 것으로 추정된다. 에티오피아의 홍해 연안에 위치했을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아시아의 초기 유럽 여행가들

13세기까지 유럽 사람들의 동양에 대한 지식은 전무에 가까운 상태였다. 하지만 1223~1240년 몽골의 침입으로 동부 유럽 대부분의 지역이 멸망하고 파괴된 이후 안정기가 찾아오면서 여행객들의 이동이 더욱 자유로워졌다. 1253년 프란체스코회 수도사 뤼브뤼크의 월리엄이 몽골리아를 향해 떠났다. 황소가 끄는 짐마차를 타고 비교적 편안하게 여행을 한 그와 일행은 몽케 칸과 거의 1년 동안 함께 지냈다. 두 수도사는 모두 빈틈이 없고 공감하는 태도로 몽골리아를 관찰하고 유럽인으로는 최초로 몽골리아에 대한 글을 남겼다.

유럽의 북동부 아프리카 탐험

19세기와 20세기 초반 계속되는 탐험덕분에 북동부 아프리카에 대한 유럽사람들의 지식은 꾸준히 증가하였다. 네덜란드 출신 주안 마리아 슈베르는 1881년부터 1883년 까지 화이트 나일과 블루 나일 주변 지역의 지도를 만들었다. 1890년대에 들어서는 이탈리아 탐험가 비토리오 보테고가 현재의 소말리아와 에티오피아를 여러 차례 탐험했다. 당시 이 지역은 유럽 제국주의 열망의 중심지로 자리 잡았다. 1895년에는 이탈리아가 아비시니아를 정복하려고 시도했지만 1896년 아드와 전투에서 대패하는 모욕을 당했다.

캐나다와 세인트로렌스

16세기 초반 포르투갈, 프랑스, 영국의 선원들은 주기적으로 캐나다 해안을 드나들었다. 1520년 포르투갈의 선주 주앙 알베레스 파군데스는 포르투갈에서 세인트로렌 만까지 항해했다. 프랑스인 자크 카르티에는 1530~40년대에 세 차례 항해를 떠났다. 그는 뉴펀들랜드 해안을 탐험하고 내륙으로 들어가는 경로를 개척했다. 프랑스의 영향력을 확장하고 싶었던 그는 퀘벡을 발견하고 무역소를 세우는데 공헌했으며 이 덕분에 새로운 프랑스의 아버지라 일컬어진다.

바스코 누녜스 데 발보아

1500년대 초반 스페인 침입자와 원주민 부족의 충돌에 칩입자들 사이의 지배권다툼까지 가세해 파나마 지협은 그야말로 피바다로 변했다. 부를 얻을 수 있다는 가능성에 고무된 비정한 모험가와 정복자들이 몰려들었다. 그 가운데 한 사람이 바스코 누녜스 데 발보아였다. 1512년 발보아는 황금을 찾아 아트라토강으로 원정대를 이끌었다. 1513년 파마나 지협을 건너 태평양에 도착한 최초의 유럽인이 되었다. 하지만 그는 1519년 음모에 휘말려 참수당했다.

오스트레일리아와 뉴질랜드의 발견

네덜란드 강인들은 16세기 후반부터 말라카와 몰루카 제도에서 포르투갈 사람들을 몰아내기 시작했다.

네덜란드 사람들은 이곳을 거점으로 북쪽에 있는 일본까지 연구하였지만 이내 남쪽으로 관심을 돌렸다. 1606년 빌렘 얀손의 탐험대를 포함해 수많은 탐험대가 뉴홀랜드에 이르렀다. 태즈먼은 뉴홀랜드가 남쪽에 있는 더 큰 땅 덩어리와 연결되지 않은 거대 섬이라는 사실을 증명하고 유럽인으로는 최초로 뉴질랜드와 통가에 도착했다. 그러나 1644년 태즈먼이 북부 오스트레일리아로 항해한 이루 네덜란드는 탐험에 대한 흥미를 잃었고 대신 동인도에서 자국의 입지를 다지는 데 주력했다.

 

느낀 점: 여러 나라에 대해 알 수 있어서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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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맑은 2014.06.21 16:06
    미르야. 새로운 정보알게되어 고마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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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록)리버 보이

by 미르 posted Jun 13,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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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버보이

리버보이/팀 보울러 2014.6.13. 김정인

    

나는 수영장에서 수영을 하고 있었다. 할아버지는 내가 수영을 하는 것을 말없이 지켜보고 계셨다. 나 할아버지가 그만 가자고 말할까봐 불안해하며 다시 물속에 머리를 넣었다. 그 순간 불안감이 온몸을 감쌌고 나는 물속에서 나와 할아버지를 찾았다. 할아버지는 괜찮아 보였다. 그녀를 발견한 할아버지는 그녀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그런데 할아버지의 손이 갑자기 가슴께를 움켜잡는가 싶더니 할아버지는 손쓸 새도 없이 물속으로 곤두박질쳤다. 할아버지는 딱 3일 동안만 병원에 있었다. 더 오래 휴식을 취해야 했지만 휴가를 이유로 퇴원을 하였다. 한참을 차로 달린 뒤 우리는 별장에 도착하였고 별장은 근처에 강이 있었으며 외딴 곳에 있었다. 다음날 강물소리와 새소리가 그녀를 깨웠고 시계를 보니 다섯 시 삼십분이었다. 많이 잔 것은 아니었지만 푹 잔 것처럼 몸이 가뿐했다. 그녀는 수영복을 입고 강에 가서 발을 물에 담근 채 강 아래쪽으로 걸어 내려갔다. 그렇게 나는 강에서 놀았다. 그런데 갑자기 알 수 없는 시선이 느껴졌다. 나는 강과 둔치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그러나 아무도 없었다. 나는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에 안도하며 별장으로 돌아갔다. 별장으로 돌아간 뒤 나는 그림을 그리고 싶어 하시는 할아버지를 모시고 다시 강가로 갔다. 할아버지가 붓을 집어 드셨고 점점 더 그림에 몰두하기 시작하였다. 나는 할아버지의 그림을 보았고 그림이 예전과 달라져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둔치에서는 갈색기운이 맴돌았고 창백했던 물빛은 금색과 은색, 파란색이 마구 뒤섞여 있었다. 할아버지는 그 그림의 제목이 리버보이라고 하였다. 하지만 그림 속에는 남자아이가 없었다. 한편 저 위 어딘가에서 강이 시작된다고 할아버지가 말씀해 주셨고 나는 강을 거슬러 올라갔다. 그곳에서도 나는 누군가 나를 지켜보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고 그가 불쑥 모습을 드러내었다. 그는 폭포 꼭대기에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서 있었다. 키가 무척 컸다. 하지만 내가 눈을 비빈 뒤 다시 그곳을 보았을 때 그는 사라지고 없었다. 나는 별장의 주인 알프레드 할아버지에게 가서 이 근처에 내 또래의 아이가 있느냐고 물어보았다. 그러자 할아버지는 브래머스에 가면 있지만 이 근방 몇 킬로미터에는 없다고 하였다. 그날 밤 소년은 강가 주변에서 다시 모습을 드러냈고 나는 강가를 향해 빠르게 달려갔다. 하지만 내가 도착했을 때 소년은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다음날 나는 수영을 하고 있는 소년을 발견하였고 그는 매우 능숙하게 수영을 하고 있었다. 내가 얼굴을 보려 하였지만 얼굴을 보지는 못하였다. 내가 그렇게 강에서 소년을 찾는 동안 할아버지의 병세는 점점 나빠져갔다. 나는 물속으로 들어가 서서 흐느끼기 시작하였다. 할아버지가 다시는 붓을 잡지 못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 때 내 뒤에서 조용한 목소리가 말을 걸어왔다. 그 목소리의 주인공은 그 소년이었다. 나는 그 소년에게 나의 고민을 털어놓았고 그 소년은 내가 할아버지가 그림을 완성하는 것을 도우라고 충고해 주었다. 나는 집으로 가서 할아버지에게 그림을 그리자고 고집을 피웠다. 그렇게 할아버지는 나의 도움을 받아 다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였다. 세 시간 후 할아버지는 붓을 내려놓았고 여전히 그림 속에는 남자아이가 없었다. 할아버지는 별장으로 돌아가자마자 기진맥진해 하시며 잠을 자기 시작하였다. 나는 다시 폭포로 갔고 그곳에서 다시 소년을 만날 수 있었다. 내가 폭포에서 돌아왔을 때 별장에는 알프레드 할아버지밖에 없었다. 알프레드 할아버지는 할아버지께서 쓰러지셔서 병원으로 가셨다고 하였고 엄마가 나를 데리고 있어달라고 부탁했다고 말해 주셨다. 알프레드 할아버지는 리버보이를 보며 할아버지는 어렸을 때부터 강을 좋아했고 강 상류에서 바다까지 수영해서 가는 것이 꿈이었다고 말해 주셨다. 나는 그림을 다시 찬찬히 보았고 거기서 어떤 아이의 얼굴을 발견하였다. 그 아이의 얼굴은 내가 강에서 만났던 소년의 얼굴이었다. 나는 강으로 뛰어갔고 바다를 향해 헤엄을 치기 시작하였다. 마침내 바다가 보였고 나는 울기 시작하였다. 그러자 소년이 그녀에게 다가왔다. 하지만 내가 고개를 들었을 때 그 소년은 사라지고 없었다. 경찰관이 나에게로 다가왔고 부모님이 있는 곳까지 데려다 주겠다고 하였다. 나는 그렇게 병원으로 갔고 할아버지는 고요하고 평온한 표정을 띤 채 돌아가신 뒤였다. 그 후 나는 할아버지의 유골을 들고 폭포로 갔고 그곳에서 할아버지의 뼛가루를 조금씩 흘려보냈다.

 

느낀 점: 책 내용이 감동적이었고 재미있었다. 강에서 바다까지 헤엄쳐 간 것이 대단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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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록) 위저드 베이커리

by 미르 posted Jun 07,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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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저드 베이커리

위저드 베이커리/구병모 2014.6.7. 김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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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말을 더듬기 시작한 것은 사 년 전부터다. 책을 소리 내어 읽을 때나 오랜 시간 공들여 머릿속 생각을 종이에 적어 넣은 뒤 그것을 소리 내어 읽을 때는 아무런 불편이 없다. 대신 눈앞에 글이 없으면 예 아니요 수준의 간단한 대답도 잘 하지 못한다. 그런 나에게 시비를 거는 놈들은 꼭 있었고 나는 여성전용 호신술로 소개되는 것을 그 놈들에게 썼다. 정학이 풀린 뒤 학교에 가보니 사건이 굉장히 부풀려져 있었다. 놈들이 나를 쫓아왔고 나는 빵집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나는 숨겨달라고 말하였고 그는 아무것도 묻지 않고 허락해 주었다. 모든 일은 배 선생과 그의 여덟 살 난 딸로부터 시작되었다. 한 때 어머니라 부르기도 했지만 최초의 만남 이후 나는 그 이름을 부를 필요를 잃었다. 배 선생이 우리 집에 왔을 때는 내 나이가 열 살이었을 때다. 아버지는 호화로운 재혼식을 올리기보다는 그냥 혼인신고만 올리고 싶어 하였다. 하지만 배 선생의 반대로 결혼식을 올리게 되었다. 또한 신부에게 꽃을 전달해주는 화동은 내가 하도록 하였다. 나는 너의 뒤치다꺼리를 하러 들어온 식모가 아니라 네 아버지의 부인이며 너에게 모친의 권력을 휘두를 위치에 있다는 것을 알리고 싶어 하였기 때문이다. 그녀는 처음에는 나의 환심을 사려 나에게 잘 대해 주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녀는 어떻게든 꼬투리를 잡아 나에게 짜증을 냈으며 그런 소소한 일들을 시작으로 집에서 내가 머물 공간을 점점 줄어들었다. 세탁기를 돌리려는데 내 빨랫감 속에 잘못 섞여 들어온 무희의 속옷이 보였다. 다갈색 핏자국이 있었다. 손에서 빨래 바구니가 미끄러졌고 옷들이 다용도실 바닥에 흩어졌다. 그 때 저녁을 준비하러 안방에서 나온 배 선생과 눈이 마주쳤다. 그녀는 무슨 일인지 파악하려는 듯 나를 위아래로 훑어보다가 바닥에서 딸의 속옷을 낚아채듯이 건져냈다. 그날 밤 배 선생은 무희에게 필요한 대답을 최소한으로 뽑아내었고 다음날 배 선생은 무희가 다니는 영어 학원으로 쳐들어갔다. 무희가 범인으로 지목한 초등부 회화강사는 그전에 비슷한 혐의를 받은 전력이 있는 사람이었다. 학원장은 수강생이 대폭 줄어들 것을 염려하여 천만 원을 보상금으로 제시하였다. 하지만 배 선생은 병원 진단서와 학원장과의 전화 통화 내용 담겨있는 보이스 펜을 가지고 검찰청을 찾아갔다. 하지만 검사가 초등부 강사가 범인이 맞냐고 일곱 번째 똑같은 질문을 하자 기억이 잘 안 난다거나 딴청을 부리거나 울어버리는 등 가지가지의 반응을 보여 배 선생을 당황하게 만들었다. 게다가 무희의 진술이 달라지자 마음을 바꿔먹은 초등부 강사가 맞고소를 하고 배 선생은 검찰출두 명령을 받았다. 그날 밤 배 선생은 무희의 머리끄덩이를 잡고 철제옷걸이로 아무데나 두들겨 패었다. 나는 구해줄의도가 없었기에 말리지 않고 있었다. 그 순간 무희가 나를 보며 손가락으로 나를 가리키었고 배 선생이 나를 때리기 시작하였다. 나는 그제야 무슨 일인지 깨닫고 도망가기 시작하였다. 그렇게 나는 이 베이커리에 들어오게 되었다. 이 베이커리에서는 보통 빵집에서는 팔지 않는 것들을 팔았고 그것을 사서 효과를 본 사람들도 꽤 있었다. 베이커리에서 산 마법이 걸려있는 빵을 딴 사람에게 먹였는데 생각보다 일이 심각해져서 찾아온 사람도 있었다. 그런 사람들은 보통 그 빵을 만든 마법사에게 화를 내었고 마법사는 침착하게 그들을 돌려보내었다. 그렇게 오랫동안 나는 이 베이커리에서 지내었고 내가 떠나려는 날 마법사는 나에게 시간을 되돌릴 수 있는 포춘 쿠키를 내손에 쥐어 주었다. 그렇게 나는 집으로 돌아왔고 아무도 없을 줄 알았던 집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아버지가 무희의 몸을 만지고 있는 것을 발견하였고 곧이어 집에 들어온 배 선생이 그것을 발견하였다. 배 선생은 아버지에게 주위에 있는 모든 것을 던지기 시작하였다.

y의 경우

나는 타임 리와인더를 입에 넣었고 어딘가로 돌아갔다. 재혼클럽에 다녀온 할머니가 사진을 내밀었고 그중 어딘가 낮이 익은 사람의 얼굴이 보였다. 아버지가 그 여자와 재혼을 하는 것이 어떻겠냐고 나에게 물었을 때 나는 싫다고 하였다. 어딘가 썩 내키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내가 싫다고 한 것이 처음이기에 나의 의견을 존중하여 재혼을 하지 않았고 그렇게 나는 중학교 고등학교 시절을 보내었다. 그 사이 아버지가 어떤 여자아이를 성추행한 혐의로 구속되었다. 그렇게 나는 학교를 전학을 가게 되었고 가끔씩 그 때 아버지가 재혼을 했었다면 어땠을까에 대해 생각한다.

n의 경우

배 선생 발에 밟힌 타임 리와인더는 부셔졌고 배 선생을 무희를 데리고 집을 나갔다. 이혼과 함께 우리 집에 있는 물건에 빨간 딱지가 붙었다. 나는 다세대 주택의 1층에서 살게 되었고 아버지는 감옥에 들어갔다. 나는 버리기 아까워서 간직하고 있던 다 부셔진 포춘 쿠키와 그 안에 들어있던 종이를 보며 옛 생각에 잠겼다.

 

느낀 점: 이것 말고도 다른 이야기가 많았는데 앞부분을 너무 자세하게 써서 뒷부분을 쓰지 못해 아쉬웠다. 그래도 재미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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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록) 기억전달자

by 미르 posted May 31,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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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 전달자

기억 전달자/로이스 로리 2014.5.31. 김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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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이 다가올수록 조너스는 점점 겁이 나기 시작하였다. 조너스는 이 특별한 12월을 오랫동안 기다려 왔다. 그리고 마침내 그 날이 다가오고 있었다. 열한 살 아이들 모두가 곧 다가올 행사 때문에 흥분하고 있었다. 저녁 식사 후에는 가족이 모두 모여서 그날 받은 특별한 느낌을 서로 이야기 하는 시간을 보내야 한다. 조너스의 여동생 릴리가 먼저 이야기를 하기 시작하였다. 릴리는 다른 마을에서 온 아이들이 규칙을 지키지 않아서 화가 났다고 하였다. 아버지는 잘 지내지 못하는 아이 때문에 걱정스럽다고 하였다. 그런 아이들은 임무해제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형벌이 아닌 임무해제는 두 가지 경우뿐이었다. 노인들의 임무해제와 아기들의 임무해제. 앞의 임무해제는 오랫동안 장수해온 노인들에 대한 축복의 시간이었다. 하지만 뒤의 임무해제는 좌절감마저 들게 하였다. 아버지는 위원회 측에 요청해 그 아이를 집에 잠깐 데려와 키울 수도 있을 거라고 말했다. 하지만 계속 키우는 것은 규칙에 어긋나 안 된다고 말했다. 기초 가족마다 남자 하나 여자 하나 이렇게 두 아이만을 맡도록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조너스의 마을에는 12월 마다 기념식이 있었다. 해마다 12월이면 그 해 태어난 아이들은 모두 한 살이 되었다. 아무도 임무 해제되지 않는다면 그 수는 항상 쉰 명으로 정해져 있었다. 또한 이름도 정해져 있었다. 하지만 이름은 공개를 하지 않아 아이를 받기 전까지는 아이의 이름이 무엇인지 자신이 배정받은 아이는 누구인지 알 수 없었다. 열 두 살 기념식에서는 앞으로 자신의 직업을 배정을 받는다. 보통 마을의 원로들이 그 아이를 관찰을 한 후 그 아이의 적성을 파악하여 직업을 정해준다. 조너스는 이 행사를 두려워하고 있었다. 아직 자신의 적성을 알지 못한데다가 자신과 전혀 맞지 않는 직업을 배정받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아버지가 데려온 아이는 자신과 똑같은 눈동자 색을 갖고 있었다. 마을 사람들은 대부분이 까만 눈동자를 갖고 있었기에 조너스는 자신과 똑같은 엷은 색의 눈동자를 신기해하였다. 마을에는 거울이 있는 곳에 거의 없었고 거울을 갖는 것이 금지되어 있었기에 엷은 색 눈동자를 가진 사람을 보면 어떤 느낌을 들게 만든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릴리가 아이를 보며 산모 직위를 받았으면 좋겠다고 말하지 엄마가 화를 내었다. 산모는 명예로운 직위가 아니라는 것이었다. 산모는 아이 세 명을 낳도록 정해져 있었고 아이를 세 명 낳은 뒤에는 육체노동자가 되어야 했다. 12월에 있는 기념식은 아이가 열두 살이 될 때 까지 매년 있었다. 네 살에서 여섯 살 까지는 모두 등에서 잠그는 재킷을 입으며 서로 옷 입는 것을 도움으로서 서로 도와가며 살아가야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일곱 살 때는 단추가 달린 재킷을 받았는데 독립을 나타내는 첫 신호였다. 여덟 살 때는 스스로 자원봉사를 선택하여 할 수 있는 선택권이 주어졌다. 아홉 살 때는 자전거를 받았는데 점차 마을 공동체로 들어가고 있음을 상징하였다. 열 살들은 머리를 잘랐는데 여자아이들은 단발이 되었고 남자아이들은 짧은 머리가 되었다. 그렇게 12월이 되었고 조너스는 릴리가 단추가 달린 재킷을 받는 것을 바라보았다. 모든 행사들이 거의 다 끝나갔고 이제 12살 들이 직위를 받는 시간이 되었다. 점점 조너스의 차례가 다가왔고 조너스의 차례때 조너스의 이름은 불리지 않았다. 순서를 건너 뛴 것이었다. 마을 사람들 모두가 당황스러워 했다. 하지만 원로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행동하였다. 그렇게 직위받기 기념식이 끝나고 원로들은 조너스의 직위를 따로 발표하였다. 조너스의 직위는 기억보유자였다. 조너스가 기억보유자의 자질을 모두 가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원로는 조너스가 지능이 높으며 정직함도 있었고 용기가 있었다고 하였다. 다음날 조너스는 종이에 적힌 대로 기억보유자를 만나게 되었고 그에게서 기억을 전달받았다. 그는 조너스에게 조너스가 한 번도 보지 못한 눈 언덕 햇빛 색깔 같은 것들을 보게 해주었고 조너스가 느끼지 못한 사랑 진정한 행복 같은 것들을 느끼게 해 주었다. 그는 지금 마을사람들은 색깔도 보지 못하며 감정도 형식적인 감정밖에 없다고 하였다. 또한 임무해제가 무엇인지 알게 해 주었다. 임무해제는 안락사였던 것이다. 조너스는 이런 것들을 알게 된 후 실망을 하였고 이 마을을 떠남으로서 사람들에게 사라진 기억들을 돌려주기로 하였다. 그렇게 조너스는 아버지가 데려온 아이가 임무해제 되기 전에 아이를 데리고 마을을 떠났다. 군사들은 그들을 찾지 못하였고 그들은 계속해서 도망쳤다.

 

느낀 점: 지금까지 내가 읽은 책들 중에서 제일 재미있었고 내용이 복잡해서 요약을 하기가 힘들었다. 8월 달에 영화로도 나온다는데 기대되고 꼭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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