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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록) 과학자의 서재

by 미르 posted May 24,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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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자의 서재

과학자의 서재/최재천 2014.5.23. 김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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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아버지는 육사를 졸업한 육군 장교셨다. 전국 어디든 발령을 받으면 그곳으로 가야했다. 내가 아기였던 시절에는 가족이 아버지를 따라다녔다. 하지만 내가 초등학생이 되고 난 후에는 어머니와 우리 형제들은 주로 서울에서 살았고 아버지만 혼자 부임지에서 사셨다. 어머니가 아이들이 좋은 교육을 받으려면 이곳저곳 옮겨 다니면 사는 것이 좋지 않다고 생각하셨지 때문이다. 처음 서울에서 살 때는 집을 장만하지 못해 외삼촌댁에서 방 한 칸 얻어 살았다. 아버지는 다정다감한 성품은 아니셨지만 자식들 교육을 중요하게 생각하셔서 일부로 시간을 내 서울집에 자주 오셨다. 우리 가족이 서울로 이사 오던 때는 내가 일곱 살이 되던 해였다. 나는 근방에서 제일 큰 우신초등학교를 다니게 되었다. 우리 어머니의 교육열은 높은 편이었고 어머니는 내가 명문 중학교에 입학하려면 명문초등학교에 다녀야 된다고 생각하셨다. 그렇게 육학년이 된 나는 명문초등학교라 불리는 교동초등학교에 들어가게 되었다. 교동초등학교 아이들은 경기중학교 경복중학교를 목표로 공부를 하고 있었고 대게 과외를 받고 있었다. 나는 과외를 받게 되었고 처음에는 내가 그 그룹에서 공부를 제일 못하였지만 시간이 지나자 오기가 생긴 덕분인지 전교 1등을 이기고 전교 1등을 하였다. 하지만 나는 과외가 나와 맞지 않는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과외를 그만두게 되었다. 그 후 나는 중학교에 입학하였고 한국 단편 문학을 접하게 되었다. 단편 문학을 접한 뒤 나는 그 때까지 몰랐던 새로운 세계로 들어섰고 문학적인 감수성도 키우게 되었다. 이렇듯 놀기 좋아하고 남은 시간은 소설책에 파묻혀 사는 동안 학교 성적은 바닥에서 헤어 나오지를 못하였다. 중학생 때 나는 시인이 되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우연히 백일장에 나가게 되었고 그 대회 장원으로 뽑혔다. 마침 그 해 백일장 행사가 예년보다 더 크게 치러졌지 때문에 나는 전교의 주목을 받게 되었다. 그리하여 졸지에 나는 교내 유명인사가 되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내게 특별히 재능이 있었다기보다 운이 좋았던 셈이다. 나는 문예반에 들어가게 되었고 그 곳 아이들이 나를 별로 반기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경쟁자가 한명 더 늘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나는 문예반 아이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였다. 그렇게 어정쩡하게 문예반 활동을 하던 중 나는 갑자기 미술반에 스카우트 되었다. 수행평가로 만든 비누 조각상이 선생님 마음에 들어 선생님이 미술반에 들어올 것을 권하였기 때문이다. 나는 그렇게 미술반에 들어갔고 그러다 보니 미술이란 장르에 점점 매력을 느끼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용기를 내서 아버지께 조각가가 되면 안 되겠냐고 여쭈어보았다. 하지만 아버지는 내가 장남이라는 이유로 반대하였고 결국 미술가의 꿈은 장부와 장남이라는 절대명제 앞에서 존재감을 상실한 채 안개처럼 사라져버렸다. 한편 나는 친구와의 의리를 지킨다는 이유로 이과를 선택하였고 적성검사를 하면 문과가 나올 터이니 별로 걱정하지 않고 있었다. 하지만 적성검사는 보자 많은 아이들을 이과로 만들기 위해 하는 것이였고 나는 결국 의사가 되기로 결심하였다. 아무도 내가 떨어지리라 생각하지 않았고 나 또한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낙방하였고 재수를 하였다. 하지만 나는 유흥에 눈을 뜨게 되었고 학원은 가방을 맡겨두고 가는 장소가 되어버렸다. 내가 그렇게 정신을 못 차리고 놀던 어느 날 나는 옛 친구를 만나게 되었고 그 친구는 나를 때리며 나에게 지금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라면서 화를 내었다. 그 뒤로 나는 정신을 차리고 공부를 하였지만 또 시험에서 낙방하고 말았다. 나는 선생님의 권유로 동물학과에 들어가게 되었고 그 당시 동물학과에 관심이 없었던 나는 필수과목 몇 개만 듣고 나머지는 내가 듣고 싶은 강의를 골라서 들었다. 그렇게 3학년이 끝났고 나는 이왕 동물학과에 들어온 거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유학을 가고 싶어졌고 아버지에게 부탁하였다. 아버지는 나에게 화를 내시며 말렸지만 곧 승낙해주셨다. 그렇게 나는 유학을 갔고 열심히 노력하여 학사과정을 수료하였다. 그 후 나는 하버드에 입학하였고 그렇게 나는 어린 시절부터 가고 싶었던 열대우림도 가게 되었다. 그렇게 나는 내가 원하던 학문의 종착지를 알게 되었다.

 

느낀 점: 재미있었고 이 책의 저자는 되게 특이한 사람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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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록)트로이와 크레타

by 미르 posted May 17,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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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로이와크레타]

.트로이와 크레타/한스 바우만 2014.5.15. 김정인

 

고고학자로서 슐리만은 아버지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다. 슐리만이 말을 시작할 때부터 그의 아버지는 고대 영웅들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 이야기는 호메로스의 영웅들에 빠져있는 슐리만에게 트로이 발굴에 대한 야심을 품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그렇게 그는 성인이 되었고 그는 배를 타게 되었다. 그렇게 배를 타고 가고 있을 때 배가 난파되었고 그는 기적적으로 살아났다. 또한 그의 짐가방이 그가 있는 곳으로 떠밀려옴으로서 그는 선원들의 부러움을 샀다. 그는 네덜란드에서 자신의 운명을 개척하기로 하며 네덜란드로 갔고 그는 암스테르담의 어느 상점에서 연봉600굴덴을 받는 경리사원이 되어있을 때 쯤 7개의 언어로 편지를 읽고 쓸 수 있었다. 한달 후 그의 연봉은 100굴덴으로 올랐다. 슐리만은 미국으로 가서 변호사의 딸과 결혼하였다. 하지만 그녀는 슐리만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고 두 사람의 결혼생활은 점점 불행해져갔다. 그래도 사업은 승승장구했다. 슐리만은 엄청난 부를 축적하였고 그 사이에 다른 언어들도 많이 배웠다. 1898년 슐리만은 발굴 작업을 시작하기 전에 개인적인 일들을 처리하기 위해 미국으로 갔다. 그는 자신을 이해해주지 않았던 러시아인 아내와 이혼하였고 동시에 그는 아테네에 있는 친구에게 그리스 여자를 소개시켜 달라고 편지를 썼다. 곧 그는 아름다운 처녀 소피아와 결혼하였고 발굴 작업을 함께 할 동반자를 얻게되었다. 그는 히사를리크 언덕으로 갔고 그 언덕을 1000프랑에 사려고 하였다. 하지만 터키의 문화부 장관이 이 사실을 눈치채고 먼저 히사를리크 언덕을 사들였다. 그는 히사를리크 언덕의 발굴허가서를 받아내었고 그는 발굴을 시작하였다. 그는 몇군데 표적을 정해놓고 무조건 땅을 뚫어 나갔다. 슐리만은 호메로스의 트로이가 히사를리크 언덕의 제일 아래 지층에 묻혀있는 것이 틀림없다고 더욱 확신하였다. 그러나 고대 트로이가 실제로 존재했음을 증명하는 증거로 보이는 유물을 여러 개 발견했음에도 슐리만은 항상 밀려드는 의구심을 떨쳐내지 못했다. 발굴 현장에서 나온 것들은 호메로스가 서술했던 건축물들과 미묘하게 달랐고 서로 다른 시대에 만들어진 그릇과 도구들이 한데 섞여있는 경우가 많았다. 마침내 슐리만은 여러개의 금붙이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는 보물들을 바구니에 담아 부나르바시까지 운반하였다. 슐리만은 발굴을 통해 어느 누구보다 아카이아 인들에 대한 많은 것들을 알게되었다. 그는 호메로스와 트로이에 대한 자신의 모든 의문에 답을 얻을 수 있을 때까지 잠시도 쉬지 않았다. 피르호의 현명한 충고와 지금까지의 발굴 경험을 토대로 슐리만은 발굴 작업에 한층 더 신중을 가했다. 히사를리크 언덕은 매번 새로운 놀라움을 안겨주었다. 거기서 만족하지 않고 슐리만은 1881년에도 혹시 다른 곳이 트로이 인의 거주지가 있지 않을까 하여 말을 타고 트로아스 지방을 돌아다녔다. 두 번째 회의가 열린 해 슐리만은 아내와 아이들이 있는 아테네에서 크리스마스를 보낼 예정이었다. 그 전에 그는 독일에 들러 귀 수술을 받았다. 수술 후 체력에 자신이 있었던 슐리만은 상처가 채 아물기 전에 퇴원을 하였다 그리고 프랑스와 독일을 오가며 바쁜 일정을 소화했다. 그 결과 이탈리아로 가는 열차에 몸을 실었을 때 쯤 슐리만의 몸 상태는 급격히 나빠졌다. 결국 슐리만은 그동안의 발굴 작업에서 훌륭한 동반자가 되어 주었건 소피아를 다시는 보지 못하게 되었다. 나폴리의 한 광장에서 쓰러진 슐리만은 혼수 상태에서 영영 깨어나지 못하였다. 그는 18개국의 언어에 능통하엿지만 한 마디로 할 수 없었고 18901226일 슐리만은 숨을 거두었다. 20세기의 가장 놀라운 인물 중 한 사람인 하인리히 슐리만은 그렇게 세상을 떠났다. 그는 아무도 걷지 않는 길을 앞서 걸어간 선구자이자 개척자였다.

 

느낀 점: 책 내용이 재미있었고 슐리만이 대단한 인물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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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록)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

by 미르 posted May 08,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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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미 슈퍼스타즈의 마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박민규 2014.5.7. 김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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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2년이 시작되던 1월 나는 초등학교 졸업을 앞둔 12살의 소년이었다. 우리 집은 지극히 평범하였다. 나는 조상 대대로 평범한 집안의 외동아들이었던 것이다. 겨울 방학 내내 나는 중학생이 되기 위한 준비에 몰두해 있었다. 나는 그 때 열심히 알파벳을 외웠다. 교복을 맞추러 시내에 간 것은 그로부터 며칠이 지난 후였다. 팔불출인 우리 아버지는 열심히 내 자랑을 하였고 주인도 덩달아 같이 내 칭찬을 하기 시작하였다. 아버지는 나에게 큰 기대를 하고 있었고 나의 마음은 답답해졌다. 횟집에서도 아버지는 내게 위인들 이야기를 해주셨고 횟집의 문을 나설 때까지 나는 내내 그 바다의 한복판에 두둥실 떠 있는 기분이 들었다. 2월이 되면서 내가 살던 인천에는 프로야구의 열기가 서서히 번져 나가기 시작하였고 나는 삼미가 우승할거라 생각하였다. 나는 삼미 슈퍼스타즈 팬클럽에 가입하였다. 하지만 삼미 팀은 야구를 매우 못했고 지는 일이 번번했다. 그렇게 삼미 팀이 무너져 가는 사이 나는 고등학생이 되었고 야구에 관해서는 더 이상 흥미를 느끼지 못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조성훈이 나를 찾아와 고별전을 보러가자고 하였다. 나는 승낙하였고 야구장으로 갔다. 나는 그곳에서 삼미 슈퍼스타즈 선수들이 길게 열을 지어 문을 들어서는 인천 팬들을 맞이하고 있는 것을 보았고 그것을 본 순간 갑자기 눈시울이 붉어져왔다. 그렇게 3년 6개월이라는 짧은 세월동안 120승 4무 211패의 전적을 기록하고 삼미 슈퍼스타즈는 역사의 저편으로 사라졌다. 경기를 보고난 뒤 나는 영화를 보러갔고 밤늦게 집에 돌아왔다. 나는 당당하게 아버지 앞으로가 죽는 한이 있더라도 좋은 대학에 가겠다고 그 때까지만 저를 뒷바라지 해달라고 말하였다. 그날 밤 나는 내 인생은 별 볼일 없는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나는 앞으로 평범하게 살지 않으리라 다짐하였다. 성적은 나날이 향상되었고 나는 미친 듯이 공부를 하였다. 곧 나는 전교 1등이 되었고 세상은 나의 소속이 완전히 바뀌었다는 것을 빼고는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다. 나는 고3이 되었고 그해 여름방학 나는 조성훈의 방에서 금서들을 독파하였다. 나의 성적은 추락하기 시작하였고 나는 다시 마음을 다잡고 공부를 하기 시작하였다. 그렇게 나는 일류대에 들어갔고 2학기가 시작되면서 나는 자취를 결심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밤에 술이 취해 쓰러진 여자를 만나게 되었고 그 여자와 친해졌다. 나는 그 여자를 좋아하였다. 나는 그 여자와 자주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고 그녀는 나에게 잘 대해 주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조성훈의 부모님이 교통사고로 돌아가셨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고 나는 조성훈의 집에 계속 전화를 걸어 보았지만 아무도 전화를 받지 않았다. 얼마 뒤 나는 편지를 받았고 그 편지에는 일본으로 간다는 말이 적혀 있었다. 묘한 기분이었다. 그 해 겨울 아버지가 쓰러지셨다. 콩팥쪽에 결석이 생겼다는 진단이 나왔고 생각보다 심각한 대수술을 하였다. 1990년의 어느 봄날 나는 그녀로부터 결혼을 할 거라는 얘기를 들었다. 그 와중에 아버지는 직장을 그만두셨고 나는 아르바이트를 하기 시작하였다. 내가 소속된 학교에 자식을 보내고 싶어 하는 돈 많은 부모들의 자제들을 가르치는 일이었다. 아버지의 월급보다 많은 액수의 돈들이 들어오기 시작하였다. 가족들의 표정은 밝아졌지만 나는 즐겁지 않았다. 그러면서 나는 방황하기 시작하였고 그러던 중 나는 졸업을 하게 되었다. 나는 국내 최대의 기업으로부터 입사통보를 받았고 나의 회사생활은 힘들었다. 그렇게 4년을 보내니 나의 아내가 이혼하자고 하였다. 대화도 거의 없었고 매일 자정 무렵에 집에 들어가 새벽 5시에 집에서 나왔다. 그렇게 이혼을 한 후 나는 회사에서 해고를 당하였고 나는 직장에서도 살아남지 못했고 가정에서도 실패하고 말았다. 그 뒤 나는 조성훈을 만났고 그의 말대로 살아가기 시작하였다. 그러자 시간은 많았고 나는 여유로우면서도 안정적인 삶을 살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나는 점점 행복해져갔고 이혼한 아내와 사이도 점점 좋아졌다. 결국 나는 아내와 재결합을 하였고 아이도 생겼다.

 

느낀 점: 앞 부분에 야구에 관련된 얘기가 많이 나왔는데 못 알아들어서 재미가 없었지만 뒤로 갈수록 재미있어져서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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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유 2014.05.08 09:33
    와! 이 책 내가 제일 재미있게 봤던 책 중 하나야... 나는 야구도 좋아해서 재미있게 봤댔지ㅎㅎ 혹시 정인이 시간되면 같이 야구보러 갔음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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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록)동물병원이 알려주지 않는 30가지 비밀

by 미르 posted Apr 26,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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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병원이 알려주지

동물병원이 알려주지 않는 30가지 비밀/허현회 2014.4.25.김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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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나도 부담스러운 과도한 예방접종

예방접종은 의학적으로 반려동물에게 아무런 혜택을 주지 않고 면역력을 파괴하기 때문에 오히려 질병의 위험만 증가시킨다. 대부분의 의사나 수의사들은 백신의 효능을 크게 인정한다. 그러나 이것은 백신의 효능을 과대 선전한 것에 불과한다. 연구에 의하면 백신이 질병을 예방해주는 작용은 거의 없고 오히려 부작용을 일으킬 위험이 크다. 미국의 경우 생후 1년 이내의 아이에게 접종하는 백신이 늘어나면서 세계 34위였던 영아 사망률이 22위로 급등했다고 한다. 그 원인은 대부분 유아 돌연사 증후군으로 판결이 났는데 그것은 백신의 위험을 숨기기 위한 것이다. 다시 말해 예방접종은 질병을 예방하지 못하면서 오히려 치명적인 부작용만 유발시킬 위험이 크다는 것이다. 이런 부작용은 사람에게서만 발견되는 것이 아니다. 특히 동물의약품에 대해서는 규제가 거의 없어 최근 발생하는 피부병들이 백신의 부작용으로 의심받고 있다. 백신에는 바이러스를 죽이거나 약하게 하기 위해 독성이 강한 수은을 주성분으로 하는 약품, 보존기간을 늘리기 위해 사용하는 약품등 갖가지 약품들이 들어가 있다. 이러한 첨가제 들은 대부분 석유에서 추출한 성분으로 만드는 합성화학물질 또는 중금속이다. 이 중 어떤 물질은 1급 발암물질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우리는 법정 전염병과 관련된 백신을 제외하고는 가능한 한 백신접종을 피하는 것이 현명하다. 매년 의무적으로 시행되는 추가 접종은 피하는 것이 현명하다.

 

고양이 울리는 발톱제거 수술

수의학계에서는 안전한 수술로 고양이에게 아무런 해를 주지 않는다며 고양이에게 발톱 수술을 해줄 것을 권장한다. 발톱제거 수술은 손톱과 발톱이 나오는 마지막 관절을 레이저 또는 단순한 절단기를 이용해 절단하는 수술로 부작용으로 평생 불구가 되기도 한다. 고양이는 발톱을 잃게 되면 주체성을 상실한 데 대한 절망감으로 우울증에 빠지게 된다. 우울증은 가장 큰 정신적 스트레스로 건강을 크게 훼손시킨다. 따라서 반려인은 발톱을 자주 깎아 주면서 훈련을 통해 할퀴는 습관을 고치도록 하는 등의 노력을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발톱은 정기적으로 깎아주는 것이 중요한데 발톱이 길면 커튼이나 담요에 발톱이 걸려 위험한 상황이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밖에서 양육하는 경우에는 고양이의 발톱을 깎아서는 안 되는데 위기가 닥쳤을 때 피하기가 힘들어지기 때문이다.

 

반려동물의 건강을 위협하는 내장형 칩

우리나라 전체 가구의 16퍼센트가 개와 고양이를 키우고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1년에 버려지는 반려동물은 수십만 마리가 넘는다고 한다. 이런 까닭에 하나의 생명체로서 끝까지 책임져야 하는 가족으로 인식해야 하며 그런 인식이 기본이 될 수 있도록 지속적인 공론화 과정을 거쳐야 한다. 그것으로 인해 생겨난 것이 반려동물등록제이다. 이 법이 시행되는 도시에서 자신의 반려견을 등록하지 않는 경우 회고 100만원 까지의 과태료가 부과된다. 등록하는 방법은 내장형 칩을 이식하거나 목걸이를 매는 것이다. 그런데 이중 내장형 칩은 후에 후유증이 발생하여 제거수술을 할 때는 전액 개인부담이어서 20만원을 넘게 된다. 그런데 내장형 칩은 인체에 치명적인 부작용을 일으켜 감염 관절염이나 각종 암을 유발시킬 위험이 제기되고 있고 이름표는 쉽게 제거될 수 있다는 문제가 제기되고 있어 그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이런 이유로 이미 오래전에 반려동물 등록제를 실시한 나라들은 내장형 칩을 몸 속에 이식한 개들에게 질병이 발병되자 의무제를 폐기하고 있는 상태다. 체내에 합성물질을 삽입하는 것은 장기적으로 반려동물의 건강을 해칠 위험이 높기 때문이다.

 

느낀 점:책 내용이 재미있었고 사료 부분도 충격적이었지만 백신부분이 제일 충격적이었다. 앞으로 추가 접종은 하지 말아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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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록)아로마 냄새의 문화사

by 미르 posted Apr 19,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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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로마

아로마 냄새의 문화사/콘스탄스 클라센, 데이비드 하위즈, 앤소니 시노트 2014.4.19. 김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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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의 향기들

1세기에 사람들은 향료에 많은 돈을 쏟아 붓는 현대인들조차 상상할 수 없을 만큼 강렬하게 달콤한 향료를 즐겼다. 서구 역사의 초창기를 산 사람들의 삶에 스며들어 있던 악취들 상당수는 현대의 제 1세계 사람들 의식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장미유, 계피, 몰약 고대시에 묘사된 삼미신은 다음과 같이 향료로 치장한 옷을 입고 있다. 실제로 고대에는 이런 꽃향기들이 우아함과 연관되어 순수한 젊음과 아름다움에 대한 느낌 즉 달콤하고 신선하고 환기적인 느낌을 불러일으켰다. 꽃향기에 관심이 있었던 만큼 고대인들은 정원의 후각적 뉘앙스에 대해 특히 주의를 기울였다. 고대인들은 꽃의 향기뿐만 아니라 대지의 냄새 또한 음미할 줄 알았다. 그리스와 로마에서 즐겨 사용된 향료중 상당수는 재배가 가능했지만 어떤 향료들은 아라비아에서 수입해야 했다. 고대 세계에서 향기가 수행한 역할에 대해 우리가 알고 있는 사실들은 대부분 그리스와 로마 작가들에게서 얻은 것이다. 그런데 고대 중동지역은 유럽보다 여러 면에서 후각전통이 더 발달했었다. 향료가 동양에서 그리스, 로마로 전해진 것과 마찬가지로 향기와 관련된 많은 관습들 또한 같은 경로를 밟았다는 사실에는 의심할 여지가 없다. 토종향료와 수입향료들을 이용해 고대인들은 아찔할 만큼 화려한 향료 혼합물들을 만들어 냈다. 도시의 특정지역은 그곳에서 수행되는 활동에 따르는 특징적인 냄새가 풍겼다. 고대의 가정은 어떤 점에서는 도시를 후각적으로 축소해 놓은 모형 같았다고 할 수 있다. 고대인들에게 있어 가정에서 향료를 사용하는 것은 심미적인 것일 뿐만 아니라 실용적인 살림살이 방식이었다. 고대의 연회는 모든 감각기관이 만족할 수 있도록 실제론 만족하고도 남을 만큼 주의 깊게 준비되었다. 향료는 대중적 오락의 중요한 요소 중 하나이기도 하였다. 예컨대 로마의 극장에서는 무대에 샤프란이나 여타 방향제를 뿌리는 것이 관례였다.

 

냄새의 세계

안다만 제도의 정글에서는 나무와 덩굴식물들이 차례로 꽃을 피우기 때문에 뚜렷한 냄새의 계기를 인식할 수 있다. 안다만 제도 사람들은 이 순환을 바탕으로 자신들의 달력을 만들었다. 따라서 그들의 1년은 냄새의 순환이며 그들의 달력은 향기의 달력이다. 냄새는 시간 속에서 존재하고 시간과 더불어 변화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또한 공각 내에서 존재하고 변화한다. 데사나 족은 각 부족마다 고유한 독특한 냄새를 지닌다고 믿는다. 이 냄새는 한편으로는 유전, 다른 한편으로는 섭취하는 음식의 종류에 기인하는 것이라고 한다. 따라서 수렵 부족인 데사나 족은 그들이 잡아먹는 사냥감의 사향 냄새를 자신들도 풍긴다고 믿는다. 인도의 카레에서 멕시코의 칠리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사회에서 전통적인 음식과 소스가 지닌 향과 맛은 문화적 차이를 구분하는 중요한 수단이 된다. 많은 문화권에서 식품이 될 물질의 냄새는 그것을 식용 또는 비식용으로 분류하는데 있어 중요한 요인이 된다. 콜롬비아 데사나 족의 문화에서는 냄새로 음식을 분류하는 광대한 체계가 발견된다. 데사나 족에 따르면 음식의 냄새에 따라 그 음식을 어떻게 요리할지 결정된다. 데사나 족에게 있어 후각적 요소는 식품의 선택과 가공처리는 규정하는 것은 물론 어떤 음식들을 서로 같이 먹을 수 있는지 결정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서구의 과학자들은 오랫동안 유럽 어에는 진정으로 후각과 관련된 어휘가 없다는 선입견을 간직해 왔다. 이런 주장은 서구인들보다 상대적으로 더 많은 중요성을 냄새에 부여하는 사회의 후각 관련 어휘들은 유럽어의 후각 어휘와 비교할 때 어떤 결과를 보이는지 궁금하게 만든다.

 

느낀 점: 고대인들에게 향료가 중요한 존재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지루한 부분도 있었지만 재미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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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실 2014.04.21 17:33
    정인아~ 재미있게 잘 읽었다. 향수를 안 쓰는 나로선 글을 읽는 것만으로도 머리가 지끈지끈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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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록) 동백꽃

by 미르 posted Apr 11,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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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백꽃 봄 봄 레디메이

동백꽃 봄. 봄 레디메이드 인생 치숙/채만식 김유정 2014.4.11 김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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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 따는 콩밭

곡괭이를 무작정 내려찍는다. 바닥에서 물이 스미어 무르팍이 흥건히 젖었다. 그러나 그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영식이는 살기 띠인 시선으로 고개를 돌리고 아무 말 없이 수재를 노려보았다. 이놈 풍치는 바람에 애꿎은 콩발 하나만 결딴을 냈다. 그렇게 땅파기를 계속하고 있을 때 산에서 내려오는 마름과 맞닥뜨렸다. 마름은 무슨 밭에서 금이 나오냐며 내일까지 구덩이를 도로 묻어놓지 않으면 징역을 갈 줄 알라며 화를 냈고 영식이는 무턱대고 빌었다. 수재 이름만 들어도 영식이는 이가 갈렸다. 아무래도 수재한테 홀랑 속은 것 같았다. 영식이는 원래 금점에 이력도 없고 흥미도 없었다. 밭고랑에 앉아 땀을 흘리며 꾸역꾸역 일만 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수재가 술에 거나한 얼굴로 와서 돈벌이를 안 하려냐고 물었다. 수재는 이 산 너머 큰골에 광산이 있는데 내일 소출되는 금이 칠십 냥을 넘고 그 줄맥이 큰 산 허리를 뚫고 이 콩밭으로 뻗어 나왔다는 것이다. 그러나 영식은 귀담아 듣지 않았고 수재는 그에게 매일 찾아와 졸랐다. 아내도 영식을 보채기 시작하였고 결국 영식은 땅을 파기 시작하였다. 땅을 팔 때마다 애써 키워온 콩들이 으스러졌고 가끔씩 애틋한 생각이 들었지만 핀잔을 얻어먹기 일쑤였다. 그는 열심히 땅을 팠고 금은 나오지 않았다. 그렇게 남한테 쌀을 꾸어다 먹을 때쯤 수재가 금을 찾았다고 아내와 영식을 불러내었다. 수재는 한 포대에 오십 원씩 나온다고 말한 뒤 오늘 밤에는 정녕코 달아나리라 생각하였다. 뽕이 나서 뼈다귀도 못 추리기 전에 벗어나는 게 상책이었다.

 

동백꽃

오늘도 또 우리수탉이 막 쪼이었다. 이번에도 점순이가 쌈을 붙여놨을 것이다. 왜 나를 못 먹겠다고 고렇게 아르렁거리는지 모르겠다. 나흘 전 감자 쪼간만 하더라도 나는 저에게 잘못한 것이 없다. 울타리를 엮고 있는데 뒤에서 다가와 말을 막 거는 것이었다. 그러더니 행주치마에서 감자를 꺼내어 나에게 내밀며 느집인 이거 없지 하며 생색을 내고는 제가 준 것을 남이 알기 전에 먹어버리란다. 나는 고개도 돌리지 않고 감자를 다시 밀어내었고 점순이는 얼굴이 새빨개져서 나를 쏘아보더니 달아나버렸다. 그 후로 나를 잡아먹으려고 기를 복복 쓰는 것이다. 어느 날은 나무를 해가지고 내려오는데 어느 집에서 닭이 죽는 듯 한 소리를 냈다. 보니 점순이가 우리 씨암탉을 꼭 붙들어놓고는 암팡스레 패주고 있었다. 아주 알도 못 낳으라고 볼기짝께는 주먹으로 콕콕 쥐어박는 것이다. 사지가 부르르 떨렸으나 나는 참았고 닭을 데리고 집으로 가려고 돌아섰다. 그 때 점순이가 나에게만 들릴 듯 한 목소리로 욕지거리를 하기 시작하였고 욕을 이토록 먹어가면서 아무 말 한마디 못하는 것을 생각하니 분해서 눈에 눈물이 고여 왔다. 하지만 점순이의 침해는 이뿐만이 아니었다. 사람들이 없으면 틈틈이 자기 수탉을 데리고 와 우리 수탉과 싸움을 붙여놓기 일수였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우리 수탉 편을 들어주다 실수로 점순이네 닭을 죽이고 말았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왔고 점순이가 내 앞으로 다가와 다음부터는 안 그럴 거냐고 물었다. 나는 뭔지도 모른 체 그러겠다고 하였고 점순이는 닭이 죽은 것을 눈감아 주겠다고 하였다.

 

산골 나그네

산골의 가을은 왜이리 고적할까 앞뒤 울타리에서 부스스하고 떨 잎은 진다. 바깥에서 신발소리가 들려왔고 덕돌이냐 하면서 문을 열어 머리를 내밀며 반겼으나 잠잠하다. 처음 보는 아낙네가 마루 끝에 와 섰다. 하루만 자고가게 해달라고 하였고 들어오게 하였다. 밥을 좀 주랴느냐고 물어도 아무 말이 없다. 밥을 갖다 주니 감지덕지 받는다. 다음날 아침 그제야 마을 갔던 덕돌이가 돌아왔다. 나그네는 다음날 떠나려 하였고 주인은 그런 나그네를 말렸다. 밥들을 먹고 나서 앉았으려니깐 갑자기 술꾼이 몰려든다. 주인은 나그네에게 술꾼 대접하기를 부탁하였고 나그네는 그 말을 들어주었다. 그렇게 나그네와 주인은 친해졌고 나그네는 주인의 며느리가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밤 주인은 며느리가 없어졌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며느리가 도망간 것 같았지만 그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기로 하였다.

 

느낀 점: 앞의 이야기들은 재미가 없었지만 뒷이야기들은 재밌어서 좋았고 금따는 콩밭이 인상 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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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록) 개밥바라기별

by 미르 posted Apr 05,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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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밥바리기별

개밥바라기별/황석영 2014.4.4. 김정인

 

그 해 겨울에 나의 베트남 파견이 결정되었다. 얼마 후 우리 대대는 전원이 정글전 특수학교에 입교하도록 결정이 났다. 나는 외출을 허락받아 집에 갔고 그 곳에서 어머니를 만났다. 어머니께서는 이제 점포를 정리한다고 하셨고 나는 방에서 추억을 되새겼다. 다음 날 나는 방에서 음독을 하였고 병원에 실려 가서 닷새 만에 깨어났다. 아우가 나를 발견한 것이었는데 우리 어머니는 침착하게 아우를 학교에 보낸 뒤 앰뷸런스를 불러 나를 실어 보냈다고 한다. 나는 친구들과 만나기 위해 찻집으로 갔고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눈 뒤 나는 집으로 돌아왔고 일요일 아침이 되었다. 어머니는 교회도 빠지고 내게 줄 반찬들을 챙겨주셨다. 나는 안 갖고 간다고 고집을 부렸고 어머니는 내가 집을 나설 때 종이에 뭔가를 싸서 손에 쥐어주었다. 그렇게 나는 플랫폼으로 갔고 그 순간 나는 영길이를 본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 때 나는 회한덩어리였던 나의 청춘과 작별하면서 내가 얼마나 그 때를 사랑했는가를 깨달았다.

내가 준이를 알게 된 건 중학교 때부터였지만 고등학교에 올라가서 한반이 되면서 조금 더 가깝게 되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사월에 시청 앞 광장에서 중길이가 총에 맞아 죽은 뒤로 더 친해질 수 있었다. 준이는 학교에도 잘 나오지 않았지고 낙제를 하게 되었다. 그 말을 들은 날 넷째 시간부터 총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하였다. 하굣길에 중길이와 나는 시청 쪽으로 몰려가는 인파에 끼어 있었는데 그곳에서 나는 준이를 마주쳤고 파출소 근처에 이르게 되었다. 그 때 어딘가에서 총을 쏘기 시작하였고 사람들이 쓰러지기 시작하였다. 그 때 나는 길에 넘어져 있는 중길이를 보게 되었고 중길이가 죽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우리 둘은 슬퍼하였고 그렇게 우리는 점점 가까워지게 되었다.

정수

나는 여름방학이 되자마자 할머니 집에 내려와 있었다. 우리 할머니는 동네에서 호랑이 할멈이라고 불렀는데 성미가 괄괄한데다 야당활동까지 해서 경찰서장도 함부로 하지 못하였다. 누군가 툇마루에 올라서는 기척이 나더니 길게 드리워놓은 발을 젖혔다. 인호 녀석의 목소리가 들려왔고 준이도 있었다. 우리는 준이의 의견대로 영길이네 시골로 찾아가기로 하였고 할 일이 없어 잉어들에게 먹이를 주며 이리저리 서성거렸다. 이튿날 길을 떠나기 전에 할머니는 씨암탉을 두 마리나 잡아주셨다. 나는 다시 녀석들을 따라 나서기 시작하였고 영길이를 만나게 되었다. 이 집의 가장인 할아버지는 영길이와 그 친구들인 우리를 무척 좋아하셨고 애꿎은 준이와 영길이가 사랑방에 들어가 어른시중을 들게 되었다. 우리는 사흘 동안 섬진강에서 신나게 놀았는데 투망을 영길이가 던지는 것을 보고 흉내 내었더니 점점 많은 물고기들이 잡히기 시작하였다. 우리 넷은 부근 밭에 가서 야채를 조금 따와 회와 같이 먹었는데 싱싱한 냄새가 났다. 그 때 영길이가 소주를 사왔고 우리는 취하도록 술을 마신 뒤 옷을 모두 벗고 강가를 뛰어다녔다. 우리는 할아버지로부터 호되게 야단을 맞았고 그 뒤 작은 아버지가 가져온 막걸리를 마시고 잠이 들었다.

선이

아버지가 군인이어서 어릴 적에는 낯선 고장으로 계속 옮겨 다녔고 어떤 곳에서는 육개월도 못 살고 전학해야 되었던 때도 있었다. 중학교 시절부터 우리가족은 정착할 수 있었고 그렇게 사는 사이 나의 오빠가 죽었다. 그 뒤로 나에게 모든 시선이 집중되었고 나의 통행금지 시간은 저녁 7시였다. 아버지는 대입 연합고사 직전에 나에게 무엇을 할 것이냐고 물어보았고 나는 그림을 그려보겠다고 하였다. 나의 미술선생님은 미대를 가지 말고 그냥 그리고 싶은 것을 그리라고 하였고 그 말을 들으니 미대에 가는 것이 시시하게 생각되었다. 엄마는 나에게 가정과에 가라고 하였고 그러자 가정과가 왠지 그럴듯해 보였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정수와 준이와 친해지게 되었고 엄마 말대로 가정학과에 들어갔다. 막상 입학하고 나니깐 뭔가 후회스러웠다.

 

느낀 점: 재미있었고 한 인물과 그의 주변인물들의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어서 더 재미있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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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맑은 2014.04.05 10:50
    깔끔한 정리~^*^ 잼나게 잘 읽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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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르 2014.04.11 23:15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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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록)달려라 바퀴!

by 미르 posted Mar 29,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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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려라 바퀴

달려라 바퀴!/최정금외 132014.3.28. 김정인

 

개 죽음

인권은 인간이 태어남과 동시에 지니게 되는 고유의 권리이다. 다른 말로 천부적 인권, 기본권이라고도 하며.. 나는 방금 외운 것들을 중얼거렸다. 오늘 밤 나는 사회 교과서를 동째로 머릿속에 집어넣을 작정이다. 내일은 2학년 2학기 기말고사 마지막 날이다. 내일 하루만 무사히 보내면 나는 중학교에 들어온 지 2년 내내 1등으로 보낸 셈이 된다. 창밖으로 맞은 편 집에 난 창문이 보였다. 불이 밝혀져 있었다. 나의 라이벌 종혁이 반 창문이었다. 종혁이는 날 한번도 이긴 적 없었지만 늘 내 뒤를 바싹 쫓고 있었다. 나는 불이 꺼진 뒤 1시간동안 공부를 한 뒤에 자리에 누웠다. 잠이 들려고 하는 순간 차 바퀴가 아스팔트에 긁히는 소리가 나더니 낑낑대는 소리가 들려왔다. 강아지의 울음소리였다. 강아지 소리는 계속 들려왔고 나는 지금 강아지를 구하러 나가면 1등을 놓칠거란 생각에 계속 고민하고 있었다. 그 때 종혁이 방에 불이 들어왔고 나는 종혁이한테 모든 것을 떠넘긴 채 잠을 잤다. 집 앞 골목은 여느 때보다 깨끗했고 강아지 비슷한 것도 보이지 않았다. 나는 종혁이가 강아지를 구했다고 믿으며 학교로 갔다. 시험이 시작되었고 나는 빠르게 문제를 풀어나갔다. 그러던 중 나는 3번 지문 생명은 그 무엇보다 소중하므로 작은 생명이라도 아끼고 존중한다. 라는 지문을 보았고 가슴이 따끔거렸다. 시험이 끝난 뒤 나는 종혁이에게 가서 강아지에 대해 물었고 종혁이는 강아지가 그 강아지가 죽어서 쓰레기차가 와서 싣고갔다고 말해주었다. 종혁이는 허무하다고 말하였고 나는 고개를 푹 숙이고 집으로 돌아왔다.

 

분홍빛 가출

영우가 가장 좋아하는 색은 분홍색이었다. 영우는 자기가 가질 수 있는 물건은 다 분홍색으로 골랐고 유치원 때부터 아이들은 그런 영우를 놀렸다. 자신의 편을 들어주는 것은 엄마 뿐이었고 엄마는 영우를 이해해 주었다. 하지만 나이를 먹을수록 엄마마저 변하기 시작하였다. 달라진 엄마는 파란색이나 초록색 옷을 사 와서 다른 색깔도 예쁘니 입어보라거나 남자 아이옷은 분홍색이 없으니 입어보라고 권하기 시작하였다. 3학년 때까지 그래도 그런 식으로 은근하던 엄마는 4학년이 되자 다른 색깔 옷을 입으라고 말하였고 영우는 울음을 터뜨리는 일이 점점 잦아졌다. 마침내 엄마는 눈물을 보였고 영우는 파란색 운동화를 억지로 신게 되었다. 그 일이 있은 뒤 영우의 방에는 날마다 검정이나 파랑 회색같은 물건들이 하나씩 늘어갔다. 엄마가 슬퍼하는 것만은 견딜 수 없었던 영우는 다른 색깔의 옷을 입었고 아이들은 영우의 변화를 놀라워하였다. 영우도 그런 반응이 싫지는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엄마가 영우의 방에서 분홍색을 다 없애버렸고 영우는 집을 나왔다. 영우는 집에 들어가기 직전 비상금으로 분홍색 필통을 하나 샀고 이것만은 절대로 빼앗기지 않으리라 다짐하였다.

 

할아버지의 주문

죽음 윤호는 외할아버지를 떠올렸다. 외할아버지가 위독하다는 전화를 받고 부랴부랴 나선 길이었다. 외갓집이 가까워질수록 윤호는 자꾸만 불안해졌다. 외갓집에 닿자마자 엄마는 외삼촌과 함께 할아버지가 누워있는 병원으로 떠났고 윤호는 죽음을 앞둔 할아버지를 보지 않기로 마음을 굳혀서 외갓집에 남았다. 병원에 가자는 아빠에게서 벗어나려고 할 때 무엇인가 발 뒤꿈치에 스쳤고 자지러질 듯한 강아지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유난히 배가 튀어나온 강아지였다. 배가 그렇게 된 이유를 외숙모가 설명해주셨다. 외할아버지가 밤에 화장실에 가시려다 그 강아지를 밟게 되었는데 그것 때문에 배가 그렇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결국 외숙모는 아빠와 같이 병원에 갔고 윤호만이 혼자 남게되었다. 외할아버지는 끝내 집으로 돌아오지 않았고 윤호는 할아버지 무덤에도 가지 않았다. 흰둥이는 점점 힘을 잃어갔고 어느 날 흰둥이가 보이지 않았다. 흰둥이를 찾았을 때 흰둥이는 죽어가고 있었고 윤호입에서는 자기도 모르게 지장보살이라는 주문이 흘러나왔다. 할머니는 그런 윤호를 보며 할아버지가 윤호에게 강아지를 붙여주고 갔다고 미소를 지으며 말하였다.

 

느낀 점: 책이 재미있었고 할아버지의 주문이 제일 인상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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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맑은 2014.04.05 10:58
    미르야~^*^ 가슴으로 삶을 바라보고 느끼는 책들이네. 신선한 책들을 읽는 미르~!!!
    나도 잘 읽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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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후감)나의 서양미술 순례

by 미르 posted Mar 22,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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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서양미술 순례

나의 서양미술 순례/서경식 2014.3.21. 김정인

 

캄비세스왕의 재판

내가 사는 쿄오또에서 지장분이 끝나갈 무렵 유럽여행이나 하고 올까 하는 생각이 뜬금없이 솟구쳐 올라 나를 쑤셔대었다. 부모를 잇달아 잃고 허탈해진 누이에게 기분전환 한번 시켜주잔 생각도 들어 비행기 요금이 떨어지는 10월을 기다려 비행기를 타고 유럽으로 갔다. 우리는 헤엄치듯 떠밀리듯이 관광지를 돌아다녔고 그러던 중 흐루닝헤 미술관에서 캄비세스왕의 재판이라는 그림을 보게 되었다. 작자인 헤랄드 다비드는 1460년경 유트레히트 근방의 아우데와텔이란 고을에서 태어나 화가가 되고 1494년에 한스 멤링이 죽자 브뤼주의 공화가 되었다고 한다. 나는 흐르는 피 한 방울까지도 놓치지 않고 그려내려고 하는 가열한 사실정신에 압도당하였고 그런 것들에 못지않게 흥미 있었던 것은 이곳 플랑드르 지방 특유의 정물화들 사뭇 묘사해내기 어려운 것들만을 골라서 더 바랄 나위 없이 정밀하게 그려낸 17세기의 숱한 정물화들이었다. 이 그림이 지금 돌이켜 보건데 나의 서양미술 순례의 시작이었다. 그 뒤로 나는 여행에 나설 때마다 마음을 쓰고 있지만 캄비세스왕의 재판과 같은 주제의 그림은 아직 접하기 못하였다. 다만 1987년 5월에 바띠깐의 회화관에서 매우 흡사한 구도로 된 그림을 발견했다. 피투성이의 종교화 중에서는 흔해빠진 주제지만 캄비세스왕의 재판과 마찬가지로 희생자의 다리 가죽을 벗기는 구도로 되어있었다.

 

모래에 묻히는 개

올해 2월의 어느 날 서울의 공항에서 귀찮은 일을 당했다. 그때 나는 서울에 있는 형에게 선물하려고 어느 그림의 복제품을 갖고 갔었는데 그것이 세관에서 문제가 된 것이다. 여러명이 세관들이 둘러싸서 이마에 총을 맞고 피투성이가 되어 쓰려져 있는 그림 속의 인물을 보며 한마디씩 하며 통과시켜 주지 않으려 하였다. 쁘라도 미술관을 방문한 것은 1983년 11월의 일이었다. 호텔에 투숙한 나는 시간을 아끼며 미술관을 다녔다. 쁘라도 미술관 정면 입구에는 벨라스께스의 이름이 받들어져있지만 개관한 것이 1819년이고 벨라스께스 사후 무려 160년이 지난 뒤의 일이었다. 쁘라도 미술관은 나폴레옹의 형이 동생이 세운 루브르 미술관을 본떠서 구상한 것이었다. 그 구상 자체는 독립전쟁 때문에 좌절되었으나 스페인 국왕에 복귀한 페르난도 7세에 의해 세워지게 되었다. 검은 그림 시리즈 속에 한 점의 이색적인 개 그림이 있다. 물살을 거스르는 개 또는 모래에 묻히는 개라고 불린다. 보기에는 급류를 헤엄쳐 건너는 것 같기도 하고 개미지옥에 삼켜져 구제불능의 상태에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물론 이 개는 고야 자신이다. 하지만 그 당시 나는 이 개는 나라고 생각했다.

 

상처를 보여주는 그리스도

1985년 11우러 12일 이른 아침 나는 뉴욕을 거쳐 런던으로 갔다. 그 곳에서 나는 빅토리아 앤드 알버트 박물관에 공예품을 보러 갔고 그곳에서 상처를 보여주는 그리스도 라는 채색 테라코타상을 보게되었다. 예사롭지 않았기에 나는 그것을 지나치지 못하고 그것을 보게 되었다. 등신대보다 약간 작은 그리스도가 두 손의 손가락들을 오른편 옆구리의 상처속에 집어넣어 그것을 열어보이고 있었다. 나는 무어라 표현하기 어려운 잔인한 생각에 사로잡혔고 그것은 차라리 외설에 가까웠다. 이듬해인 1986년 10월에 나는 다시 용건을 만들어 런던에 갔다. 지난 1년 사이에 그 이미지는 내 머릿속에서 점점 비대해졌고 나는 조각상을 보러 갔지만 실내의 칠을 다시 한다는 이유로 비닐로 감싸져 있었다. 나는 거짓말까지 늘어놓으며 상을 보게해달라고 했지만 경비원은 거절하였고 나는 사진을 보게 되었다. 그 사진은 소정의 금액을 내면 살 수 있게 되어 있었다. 나는 그 사진을 샀다.

 

느낀 점: 약간 지루하기는 했지만 재미있는 부분도 있었고 모래에 묻히는 개가 제일 인상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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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록) 물리학자는 영화에서 과학을 본다

by 미르 posted Mar 15,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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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리학자는 영화에서

물리학자는 영화에서 과학을 본다/정재승 2014.3.14. 김정인

 

옥에 티, 과학이 발견한 영화의 오류

영화 할로우 맨은 미 국방성이 지원하는 일급프로젝트를 수행중인 실험실에서 팀 리더인 주인공이 인간을 투명하게 만드는 물질을 개발한 후 자신이 직접 투명인간이 되는 이야기를 담은 영화이다. 이 영화의 명장면은 주인공이 투명인간으로 변하는 장면인데 이 장면은 신체의 일부가 하나씩 사라져 가는 것을 보여줌으로서 해부학적이라 불릴 만한 장면을 연출한다. 그런데 이 장면을 따져보면 뭔가 이상한 점을 발견할 수 있다. 원래 먼저 사라져야 할 부분이 나중에 사라지고 나중에 사라져야할 부분은 가장 먼저 사라진다는 것이다. 과학적인 부분은 희생하는 대신 시각적인 부분은 살리려는 의도였을 것이다. 또한 투명인간은 우리가 생각했던 것만큼 행복하지 않을 텐데 그 이유는 투명인간이 되면 망막도 투명하져 앞을 못 보게 되기 때문이다.

 

이 장면 꼭 있다, SF영화 공식에서 만난 과학

지난 199775일 무인 우주탐사선 패스파인더호가 8000만 킬로미터를 날아간 끝에 화성의 적도 부분인 아레스 밸리스 평원에 착륙하자 미국에서는 우주 소유권 논쟁이 시작되었다. 화성을 탐사하려면 부지 사용료를 지불하라며 NASA에 청구서를 보낸 사람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 청구서를 보낸 사람은 데니스 호프라는 사람인데 그는 캘리포니아에 달 대사관을 차려놓고 달과 화성의 땅을 일반인들에게 팔고 있다. 믿기 어려운 것은 호프가 행성 장사를 해서 큰돈을 벌고 있다는 것이다. 화성판매에 들어간 지 한 달 만에 1000여건의 매매가 성사됐는데 이는 돈으로 5억 원이 넘는 액수다. 그 고객들 중에는 전직 대통령이 2명 톰 크루즈 클린트 이스트우드등 저명인사도 상당수에 이른다고 한다. 그러나 호프의 행성 장사에 대한 적법성논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하지만 변호사들은 호프의 소유권 주장이 옳다고 한다. 관련 법중에서 국가가 소유하는 것을 금지하는 법은 있지만 개인이 소유하는 것을 금지하는 법은 없기 때문이다.

시간여행은 소설과 영화 속에서 오랫동안 우리의 상상력을 자극해왔다. 우선 미래로의 시간 여행은 이론상으로 가능하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에 따르면 광속에 가까운 속도로 비행하는 우주선 안에서 시간은 천천히 흐른다. 광속에 가깝게 비행할수록 나이를 적게 먹게 되는 것이다. 웜홀을 통한 시간여행도 있는데 웜홀이란 한마디로 우주의 지름길이라 할 수 있다. 쉽게 상상할 수는 없지만 3차원 공간을 종이 접듯이 구부리고 구멍을 만들어 통로로 연결하면 웜홀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어떤 과학자는 과거로의 시간여행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간단하게 증명하였다. 만약 먼 미래에 과학이 발달해서 타임머신을 만들 수 있다고 가정하고 그가 과거로 여행을 떠났다고 할 때 우리는 미래에서 온 방문자를 만났을 텐데 미래에서 온 방문자를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미래에도 타임머신은 발명되지 않는다는 결론이 나온다.

 

영화가 과학에 묻다

19971216일 우리나라를 포함한 전 세계를 놀라게 만든 사건이 있었다. 일본의 초중등학교 학생들이 집에서 만화영화를 보다 갑자기 경련을 일으키고 구토와 발열 호흡곤란으로 병원에 실려 가는 소동이 벌어진 것이다. 1만여 명이 이상증세를 보였고 그중 200여명은 입원치료를 받았으며 한 아이는 의식불명상태에 빠지기도 했었다. 문제의 만화영화는 바로 포켓몬이었는데 피카추가 공격을 하는 장면에서 붉은색과 푸른색의 강렬한 섬광이 연속적으로 나오는 장면이 있었고 이 장면이 광과민성 간질을 일으켰던 것이다. 뇌가 특이한 색깔 등 광자극을 받으면 뇌파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면서 근육경련을 일으키기 때문에 간질을 일으키는 것이고 말이다.

 

느낀 점: 최근에 읽은 책중에서 제일 재미있었고 달에 땅을 파는 것이 신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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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실 2014.03.16 02:43
    음~ 정말 재미있다. 이모도 읽어봐야겠는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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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맑은 2014.03.20 00:59
    미르 정인아~^*^ 방가방가

    난 SF로 보는 철학의 물음들이라는 소제목이 붙은
    [보이는 세계가 진짜일까?]라는 책을 보았는데~~~

    물리학자는 영화에서 과학을 본다는 제목이 끌리는군.

    블로그에서 만나니 좋다. 또 글로 만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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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 2014.03.20 12:23
    우리 정인이는 과학과 생물학에 관심이 많지... 재미있지? 그렇게 좋아하는 분야가 있으면 뭔가를 해 나가는데 훨씬 힘이 날거야. 그렇지만 책은 편중되지 않게 다양하게 읽는 것이 좋아. 그래야 공감능력이라는 것이 더 개발 될 것 같구나. 열심히 책읽는 정인이가 있어서 고맙다.

정인

(독서록)히리하라의 생물학카페

by 김정인 posted Mar 07,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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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리하라의 생물학 카

하리하라의 생물학 카페/이은희 2014.3.6. 김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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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장 생명의 탄생과 노화

노화란 생명체가 태어나서 죽음을 맞이하기까지 겪는 전 과정이다. 노화가 일어나는 이유는 2가지 가설이 있는데 하나는 어쩔수 없이 일어나는 생명활동의 일부분이라는 가설이고 하나는 환경에서 받는 스트레스의 결과라는 가설이다. 그런데 이 가설과는 상관없는 질병이 있는데 그중 하나가 조로증이다. 조로증에 걸린 사람은 남들보다 빨리 늙는다. 예를 들어보자면 남아공에 사는 열 여섯 살 소년 프란지 게링거는 정부에서 주는 노인 연금을 받고 있다. 그는 돌 무렵부터 주름살이 생기고 머리가 빠지는 등 남들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늙어갔다. 이 병의 원인은 수명패턴이 고장나 사이클이 빨라져서 이다. 사람들은 이것을 보고 다른 방법을 쓴다면 오래 살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실험은 성공한 듯 보였으나 진정한 의미의 노화를 저지한 것은 아니게 되었다.

 

2장 유전자의 진화

동물원에 가서 공작새를 보면 수컷은 화려하게 생겼지만 암컷은 수수하고 볼품없이 생겼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이 외에도 많은 동물들이 화려한 수컷과 수수한 암컷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런 동물들은 대부분이 일부다처체를 이루고 있다. 공작도 일부다처제를 유지하는 종족인데 암컷의 숫자가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암컷을 많이 모을려면 꼬리깃이 화려하고 길수록 좋다. 하지만 이같은 특징은 생존하는데 불리하다. 자신의 유전자를 후대에 전달시키기 위해 목숨을 걸면서 눈물겨운 노력을 하고 있는 것이다. 반면에 깃털색이 다르지 않는 경우 예를 들어 앵무새 같은 경우는 일부일처제를 유지하며 평생을 같이 산다.

 

4장 호르몬에 대하여

1995년 삼풍 백화점 붕괴 사고가 있었다. 이 때 매몰된지 17일만에 구조된 사람이 있었다. 그녀는 377시간동안 물과 음식도 없이 암흑속에서 버텨내었다. 어떻게 그럴 수 있냐면 그것은 생체시계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생명체의 특성중에는 일정한 사이클을 유지하면서 반복되는 것이 많다. 예를 들어 철새들이 특정 시기가 되면 날아간다거나 철이 되면 꽃이 핀다는 것이 있다. 이를 생체리듬이라고 하는데 사람을 아무런 빛과 소리가 없는 곳에 고립시켜도 생체시계는 계속 돌아간다. 생체시계는 일정 패턴은 있지만 주변환경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이 생체시계를 직접조절하는 부분은 빛에 있는데 이것은 매우 중요한 영향을 끼친다. 만약 생존자들이 빛이 비추는 곳에 갇혔더라면 그들은 열흘이 넘게 살아있지 못할 것이다. 빛이 없는 곳에 갇혔기에 그들의 생체시계는 느리게 돌아갔고 그덕분에 그들은 살아남을 수 있었다.

 

5장 질병과 면역계

인간이 지구상에 존재한 이래 크고 작은 병원균들은 끊임없이 인간을 공격해 왔다. 현대사회에 들어서고 나서는 이런 병원균들의 위력이 많이 약해졌다. 하지만 이와 상관없이 계속 질병의 제왕으로 군림하는 병이 있는데 바로 에이즈다. 에이즈는 현재 뚜렷한 치료약이 없어 사망률 100%를 가지고 있는 질병이다. 에이즈란 바이러스에 의해 전염되는 병으로 원래 아프리카 일부 지역에서만 발생하는 풍토병이었다. 에이즈 바이러스는 푸른 원숭이의 몸속에서만 살았다. 그러나 어떤 경로로 사람이 전염되면서 전 세계로 퍼져나가기 시작하였다. 에이즈의 잠복기는 2~10년으로 다른 질병에 비해 길었기에 병에 걸렸는지 알아내는 것도 힘들었다. 에이즈가 무서운 이유는 에이즈 바이러스가 면역계에 문제를 일으켜 단순한 감기에 걸려도 낫지 않고 몸에 곰팡이가 피어나 살이 썩을 수도 있으며 폐렴에 걸리면 죽음을 맞이할 준비를 해야하기 때문이다.

 

느낀 점: 에이즈가 푸른원숭이한테서 전염된 것이란 것이 신기하였고 살짝 지루하기는 했지만 재미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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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o's 김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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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맑은 2014.03.10 09:55
    새로운 정보 덕분에 알게되었내. 잼나다.
  • profile
    씨앗 2014.03.14 00:22
    새로운 정보를 정인이 덕분에 알게 되어서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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