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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지노 앵벌이 2

by 유카이 posted Apr 15,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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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카지노 앵벌이의 고백2

지은이: 김 완

2018/04/14 이정안

 

병원에 들려 친찰을 받을 생각이다. 찜질방에서 해피투게더 프렌즈를 재방하고 있었다. 한참 동안 보고 있자니. 문득 고딩 때 단짝이었던 놈이 보고 싶었다. 연락 안 한 지가 벌써 2년 넘은 것 같다. 혹시나 하고 핸드폰을 검색해보니 저장된 게 없었다. 갑자기 더 보고 싶어졌다. 연락할 방법을 찾다가, 그 친구 어머니가 하는 식당이 생각나 거기로 연락을 했다. 어머니가 직접 받았다. 목소리만 들어봐도 알았다. 전화로 인사를 드리고 친구 연락처를 받아 친구한테 통화하는데 성공했다. 지하철을 타고 친구를 만나로 갔다. 친구 철수는 자기가 일하는 직장 근처에 영식이도 있으니깐 같이 만나자고 했다. 영식이는 강남에서 큰 문구점을 하고 있었다. 저녁식사를 하거나 술을 마시기엔 이른 시각이고 등등 친구들과 나는 다들 술 마시기가 곤란한 상황이였다. 그래서 차나 한잔하자고 근처 커피숍으로 갔다. 커피숍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영식이가 자랑을 너무 많이 화가 났지만 옛날에 나도 그런 자랑을 했기에 참았다. 나는 친구들에게 월세 방 이라도 얻어 볼까 하고 했는데 쪽팔려서 말을 하지 못하고 떳떳하게 3만 원밖에 없지만 커피값을 계산했다. 친구는 다음에 술이나 먹자고 하면서 헤어졌다.

요즘 카지노에서 자살사건이 터지면서 도박중독자 예방 차원으로 장기출입자 제한조치가 생겼다. 그리 좋은 예방책은 아니지만 상주인이나 앵벌이들한테는 타격이 크다. 한 달에 출입일수가 20일 제한이다. 그리고 요즘 불법카지노 바니. 바다 이야기 등 전국 곳곳에 번지는 성인오락실 때문에 강원랜드 손님이 줄어든다. 요즘 평일 오전에 입장하면 테이블 4분의1이 앵벌이다. 아마다 100중에 10은 앵벌이나 상주인일 것이다. 요즘 몸이 안좋아서 어제는 카지노 출입을 삼가고 종일 찜질방에서 잠만 잤다. 그랬더니 몸이 조금 개운해졌다. 일어나서 신문을 보고 있는데 전명준 선배가 나한테 대리 게임을 해보라고 했다. 전명준은 문 사장이라고 내가 그 사람 대리 게임을 하고 있는데 그런 대로 승했는데 그저께부터 돈을 잃는다고 니가 대신 대리 게임을 해달라고 했다. 전명준 선배는 그래도 인간성이 된 앵벌이여서 믿고 해보았다. 대리 게임의 종목은 바카라이다. 바라카로 나는 220 승 했다. 게임을 마치고 담배를 피고 있었는데 캐러비언 스터드포커를 하던 사람이 자리를 주어서 잠시 쉴 겸 캐리비언 스터드 포커를 치자고 문 사장한테 말했다. 140씩 가지고 시작했다. 운이 좋게 내가 550 승 했고 문 사장은 -200 했다. 새벽 3시가 되어서 접었다. 그리고 찜질방으로 가는 길에 전명준 선배를 찾아 전화를 해보니 술을 마시고 있다 해서 거기로 가보았다. 거기에는 아주머니 둘이 있었다. 그렇게 술을 먹고 노래방을 가면서 그 둘과 놀았다. 전명준 선배와 식당에서 김치찌개를 먹고있었는데 옆에서 앵벌이들이 내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나는 가끔pc방에서 강원랜드에 대해서 솔직하게 재미 있는 글을 쓴다. 그 글을 카지노 친구들 이라는 사이트에 올리는데 그 글을 이야기 하고 있는 거 였다. 내가 pc방에서 이 글을 쓰다가 화장실에 갔다 왔는데 내 뒤에 자리에서 내가 쓴 글을 읽는 사람도 봤다. 엄청 신기 했다. 나는 중국에 있는 카지노에서 도박을 하기로 했다. 인천공항에 도착해 비행기를 타고 중국으로가 마카오를 갔다. 마카오는 정말 대단했다. 바카라 테이블만 150개가 넘었다. 다이사이 테이블도 30여개나 됬다. 강랜의 바카라 테이블은 46개 정도와 다이사이 테이블은 네 개 정도 된다. 카지노 정중앙에는 무대가 있는데 시설이 콘서트장 수준이다. 마카오에서 내가 강원랜드에서 해온 실력으로 오래 게임을 해 돈을 땃다. 또 나는 바카라 테이블에 앉아 조금씩 천천히 베팅을 하면서 돈을 땃다. 마카오에서 원정 게임을 맞추고 다시 인천공항으로 돌아았다. 인천에 도착하자마자 나는 강원랜드로 향했다. 나는 다시 마카오로 갔다. 나는 요즘 계속 마카오에서 승한다. 마사지도 받고 휴식도 취하면서 논다. 느긋하게 마사지 받고 3만불을 찾아들고 리오 카지노에 들어갔다. 먼저 마음을 가다듬고 어떤 방식으로 플레이를 할지 생각을 하고 게임을 시작했다. 나는 초반에는 돈을 조금 잃다가 돈을 많이 땃다. 그런데 조금 화가나서 인지는 모르겠지만 기본 배팅을 올리면서 배팅을 크게했다. 그리고 그렇게 계속 플레이를 하다가 큰 상대를 만나 게임을 계속 했다. 나는 그사람과 게임을 하면서 어마어마한 칩이 바닥을 드러낸 생태가 되었다. 드디어 찬스가 왔다. 내가 가지고 있는 칩을 모두 걸었다. 상대는 당황하지 않가 그래도 비행기표 값은 빼지 그래? 라고 말했다. 결국 패했다. 나는 그로부터 몇 분 동안 꼼짝도 못하고 멍하니 앉아 있었다. 서울로 갈 비행기 표 살 돈도 없었다. 결국 난 머나먼 마카오에서 빠삐용(앵벌이)이 될 처지에 놓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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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이름ㅇ

by 유카이 posted Mar 24,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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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카이 posted Mar 24,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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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아름다운 아가씨가 가족들과 여행을 하고 있었어요. 그러던 어느 날, 아가씨는 잠깐 혼자서 산책을 즐겼는데 그만 산속에서 길을 잃고 말았어요. 한참을 헤매던 아가씨는 너무 목이 말라 물을 찾았어요. 그러다 어떤 우물가에 이르렀는데 너무 심한 갈증을 느낀 나머지 두레박의 줄을 타고 우물 속으로 내려갔어요. 실컷 물을 마시던 아가씨는 문득 다시 올라갈 생각을 하니 앞이 캄캄했어요. 아가씨는 울음을 터뜨렸어요.

때마침 그 옆을 지나던 젊은이가 그 소리를 듣고 그녀를 구해 주었어요. 그리고 그들은 첫눈에 반해 사랑을 맹세하는 사이가 되었어요.

얼마 후 젊은이는 먼 길을 떠나지 않으면 안 되었기에 아가씨와 잠시 떨어져 있어야 했어요. 아가씨는 언제까지나 기다리겠다고 말했어요. 헤어지면서 그들은 자신들의 사랑을 성실히 지킬 것을 맹세했어요. 젊은이는 두 사람의 약속을 위해 누군가 증인이 필요하다고 했어요. 그때 마침 족제비 한 마리가 나타나 숲 속을 향하여 가고 있었어요.

아가씨가 말했어요.

이 우물과 저 족제비를 우리 약속의 증인으로 삼아요.”

그들은 우물과 족제비를 증인으로 삼고 자신들의 사랑을 성실히 지킬 것을 굳게 약속했어요. 그런 후 두 사람은 헤어졌어요.

시간이 많이 흘러갔지만 아가씨는 약속을 지키기 위하여 결혼도 하지 않은 채 젊은이만을 기다렸어요. 그러나 젊은이는 까맣게 약속을 잊고 다른 여자와 결혼하여 아기를 낳고 행복하게 살았어요.

얼마 후, 젊은이에게 아들이 태어났어요. 어느 날 아이는 아장아장 걸음마를 하다가 지쳐 풀밭에 엎드려 잠이 들었어요.

그때 어디선가 족제비 한 마리가 나타나더니 자고 있는 아이의 목을 물었어요. 그만 아이는 죽고 말았어요. 젊은이와 그의 부인은 몹시 슬퍼했어요.

그러나 몇 년이 흘러 또 아들이 태어나 그들은 행복한 나날을 되찾을 수 있었어요.

그런데 그 아이도 어느 정도 걸을 수 있게 되었을 때, 우물가에서 물에 비친 여러 가지의 그림자를 들여다보며 즐거워 하다가 그만 빠져 죽고 말았어요.

젊은이는 그때 비로소 옛날 아가씨와 맹세했던 약속이 생각났어요. 족제비와 우물을 증인으로 삼았던 일도 생각이 났어요. 그는 아내에게 그 일들을 고백한 뒤 아가씨가 살고 있는 마을에 가 보았어요. 그녀는 그때까지도 혼자서 젊은이를 기다리고 있었어요. 젊은이는 자신의 실수로 많은 사람을 슬프게 만든 것을 뉘우치며 슬퍼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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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계획 하노이 다낭

by 유카이 posted Feb 03,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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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과학자들

by 유카이 posted Mar 17,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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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과학자들

지은이: 비키 올랜 키 위튼 스타인

2018.3.17.

 

1900년 초 수많은 의학 실험에 아이들이 이용되었다. 예를 들어 1911년에 뉴욕 시의 록펠러 의학 연구소에서 근무하던 미생물 학자 노구치 히데요는 성병인 매독 연구 실험을 공개적으로 진행햇다. 그는 처음에는 동물에게 먼저 실험을 한 뒤 자신과 다른 내과 의사들에게 실험을 했다. 그리고 의사 15명의 협조를 받아서 실험 대상자 400명을 모집했다. 이 중 건강한 실험 대상자 46명이 고아였고 그중에는 2세 아기도 있었다. 이들중 누구도 매독을일으키는 비활성 스피로헤타가 든 루에틴 용액 주사를 맞는 실험에 동의한 적이 없었다. 참가자 중에서 루에틴 주사로 인해 매독에 걸린 사람은 없었다. 그럼에도 생체 해부 반대론자들은 부모가 없거나 법적 보호자가 없어서 보호를 받지 못하는 고아들에게 동의도 없이 실험을 한 것에 대해 특히 분노했다. 그 이후로도 이런 일은 많이 있었다. 뉴욕 시 고아원의 아이들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실험 대상자가 되었다. 대부분의 미국인들은 개인의 권리를 침해하면서까지 인체 실험을 한 의사들에게 분노 했다. 이것은 심각한 핟개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의사들 그리고 의학계와 과학계는 새로운 진단법과 치료법에 대해 자신만만해 했다. 의사는 대단한 존경을 받는 직업이었고 특히 실험하는 의사들은 영웅으로 생각되었다. 1944년 독일 나치 군이 루마니아 트란실바니아의 어느 집에서 10세가 된 에바 모제스 코르와 소녀의 가족을 체포한 뒤 강제로 가축 수송열차에 태웠다. 그 열차에는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강제 수용소에 도착하자 가축 수송 열차 문이 열렸다. 나치 군인들이 가족들을 떼어 내고 남자와 여자를 분리했다. 말을 듣지 않는 사람들은 즉시 총을 쏴서 죽였다. 강제 수용소에서는 일을 할 수 있는 건강한 유대인만 살아남았다. 심신이 허약한 사람들, 노인과 아이들은 즉시 죽임을 당했다. 그렇지만 에바와 미리암은 쌍둥이라서 죽이지 않았다. 나치가 에바 자매를 죽이지 않는 이유는 이들을 인체 실험을 하기 위해서 였다. 나치 의사들은 에바와 미리암을 유대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자기들이 하고 싶은 대로 실험을 했다. 요제프 멩겔레는 아주슈비츠에서 온갖 실험을 지시한 30명의 의사들 중 가장 악랄하고 지독했다. 멩겔레는 에바와 미리암 같은 쌍둥이 뿐 아니라 장애가 있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는 실험을 했다. 멩겔레는 기형이 있으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실험 대상자라고 좋아했다. 멩겔레는 머리 색깔에도 관심이 있었고 특히 눈 색깔이 다른 사람들에게 관심이 많았다. 그래서 그는 사람들의 안구를 수집한 뒤 색깔을 바꾸는 게 가능한지 알고 싶어 했다. 나치 의사들은 제2차 세계대전 도앙강제 수용소에서 온갖 종류의 잔혹한 실험을 했다. 독일 남부에 있는 다하우 강제 수용소에서는 알몸의 수감자들을 얼음이 얼 정도로 추운 바깥에서 9~14시간 동안 있게 하거나 얼음장 같은 찬물 속에 들어가게 했다. 이는 비행기 조종사가 엄청나게 추운 북해에서 낙하했을 때 일어날 상황을 모의 실험으로 알아본 것이다. 다하우 강제 수용서의 의사들은 수감자들을 완전히 밀폐된 방에 가둔 후 산소양을 죽였다 늘였다 하면서 공기의 입력을 조절했다. 조종사가 산소나 낙하산 없이 허공으로 자윶 낙하했을 때 일어날 상황을 알고 싶었던 것이다. 부헤발트 강제 수용소에서는 사람을 가장 효과적으로 죽이는 방법을 연구하기 위해 수감자들에게 독이 든 음식을 먹였다.

 

느낌점: 새로운 사실을 많이 알았고 재미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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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투어 사진

by 유카이 posted Feb 03,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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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낭 성공!

by 유카이 posted Jan 20,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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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하노이 완성!

by 유카이 posted Jan 20,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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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개의 별을 요리하다

by 유카이 posted Jan 04,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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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 개의 별을 요리하다

지은이: 에드워드 권

2018.01.03. 이정안

 

고등학교 2학년 이제 되자 나는 가톨릭 신학대학을 가기 위한 진학상담을 시작했다. 부모님도 내가 신학대학을 가는 것을 반대하지 않았다. 그런데 난적은 할머니였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집안의 모든 일이 할머니의 의중을 여쭈어보고 진행을 했다. 할머니는 내가 신학대학을 가는 것을 반대했다. 그래서 나는 대학을 어디 갈까 고민을 하다가 그냥 재수를 하였다. 그런데 재수를 하면서도 공부를 하지 않아서 점수가 잘나오지 않아 전문대학을 갔다. 전문대학의 조리학과가 되었다. 나는 요리에 흥미가 별로 없었지만 그래도 조금 적성에 맞아 요리를 제대로 배워 보는 게 어떨까 생각을 하다가 그냥 군대를 빨리 다녀오기로 했다. 공군에 입대했다. 군대에 계속 있다가 이제 일주일 후면 전역을 해 사회로 돌아가야 했다. 설렘도 있었지만 두려움도 느꼈다. 나는 요리를 하고 싶었지만 3년이나 요리를 쉬어서 나는 주방 아르바이트를 하기로 했다. 나는 바쁘게 수소문을 해서 용평에 있는 스키장에 요리사들을 필요로 한다는 소식이 있다고 해서 바로 전화를 했다. 조리장은 좀 있다가 통보를 드리겠다고 말했다. 그리고 전역을 하고 요리를 하라는 전화가 왔다. 내가 처음 한 일은 음식을 냉장고에서 나르는 일이였다. 이 일이 안 좋게 보는 사람들이 많은데 이 일은 좋은 일이다. 왜냐면 이 레스토랑에서 쓰이는 음식들을 다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실습을 하다가 첫 호텔 실습을 마쳤다. 대학교를 다니다가 취업을 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당시 호텔 취업은 하늘에 별 따기였다, 나는 다시 호텔 실습을 해야겠다고 하고 어느 호텔을 갈까 고민을 했다. 고민 끝에 나는 신생 호텔을 가기로 했다. 브랜드가 있다고 해도 신생 호텔이라면 기존의 호텔보다 더 많은 기회를 줄 수 있을 것이고 실습자리도 쉅게 구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내가 간 신생 호텔은 리츠칼튼서울 이었다. 나는 너무나도 생소한 브랜드였지만. 이 호텔은 놀랍게도 세계적으로 최고의 위치를 차지한 호텔이다. 40명 실습생들이 있었다. 나는 살아남기 위해서 몸부림을 쳐야겠다고 생각했다 왜냐면 실습기간동안 최대한 좋은 평가를 받아야 호텔에 남아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마침내 꿈에 그리던 호텔리어가 되었다. 운이 좋았다는 말 외에 다른 무슨 말로 설명 할 수 없었다.

나는 계속 요리를 하다가 다른 나라로 진출하였다. 외국에 나가서 많은 힘든 일이 있었지만 에릭이 도와주어서 좋았다. 그리고 나는 중국으로 갔는데 중국은 책상 다리 빼고 다 먹는 다는 별명에 맞게 엄청 방대 했다. 방대한 만큼 쉬어갈 시간이 없어서 엄청 바빳다. 중국은 11일에 엄청 큰 명절이 있는데 그 때는 더 바빳다. 그 후 두바이에 가 세계최초 7성급 호텔인 버즈 알 아랍에서 일일 하다가 지금은 주방장이 되었다. 나는 한국 음식을 해외로 알리기 위해 방송 프로그랩을 구상중이다. 나의 꿈은 세계 최고 수준의 요리 학원을 한국에 만드는 것이다. 요리를 하고 싶은 젊은 이 들에게 알려주고 싶다.

 

느낌점: 재미있었다.

 


정안

행동의 심리학

by 유카이 posted Dec 30,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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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동의 심리학 말보다 정직한 7가지 단서

지은이:조 내버로

2017/12/30 이정안

 

나는 여덟 살 때 쿠바에서 미국으로 건너 왔다. 왜냐면 피그니스만 침공이 있어 우리 가족은 쿠바를 떠나 미국에서 살기로 계획을 세웠기 때문이다. 미국에 가서 영어르 할 줄 몰라 대화를 할 때면 다른 임니자드과 마찬가지로 손짓이나 발짓에 의존해야 했다. 그러나 나는 주위의 비언어 커뮤니케이션에 민감하게 반응하면서 몸의 언어를 빠르게 터득했다. 커뮤니케이션은 누구나 쉽게 해석하고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언어였다. 시간이 지나면서 나는 영어를 쓰게 됐고 동시에 모국어는 점점 잊어버렸다. 어린 시절 내가 터득한 비언어 정보들은 매우 단순했다. 친구든 선생님이든 알 수 있었다. 나를 정말로 좋아하는 사람은 내가 교실로 들어오는 것을 보면 눈썹이 올라가거나 또는 아치 모양이 됐다. 반면 나에게 별로 우호적이지 않은 사람은 내가 나타나면 살짝 곁눈질을 한다. 이렇게 알면서 나는 건강한 관계를 만들어갔다. 그리고 지금 미국연방수사국의 특별요원으로 일하게 된 후에도 범죄사건을 해결할 때면 눈의 움직을 가장 먼저 본다. 비언어 커뮤니케이션은 대인관계의 60~65%를 차지한다. 비언어 커뮤니케이션은 무의식중에 일어나므로 언어 표현보다 정직하다. 어느 날 인디언보호구역에서 한 젊은 여성이 성폭행을 당했는데 그 여자는 범인의 얼굴을 보지 못했다. 사건의 유력한 용의자를 조사를 위해 불렀는데 그는 매우 당당했고 진술 내용도 그럴싸 했다. 그는 목화밭 길을 따라가다가 왼쪽으로 돌아서 집으로 갔다고 주장을 했지만 그의 손은 무의식적으로 손은 오른손을 들어 가르켰다. 그가 가르킨 방향은 성폭행 현장으로 가는 길이다. 나는 그 행동을 보고 그의 말이 거짓말임을 알았고 그를 대면해 집중적으로 추궁했다. 결국 그는 자신의 범행을 자백했다. 표정은 세계 어디에서든 보편적인 언어 역할을 한다. 우리는 누군가가 놀라거나 관심이 있거나 지루해 하거나 피곤해하거나 걱정하거나 좌절한 것을 표정으로 재빨리 알아챌 수 있다. 표정이 말해주는 것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지 특별히 배운 적은 없지만, 그것을 알고 알고 행하고 해석하며 의사소통을 한다. 손은 뇌 속의 미묘한 차이까지 반영한다. 따라서 손 움직임을 이해하는 것은 비언어 행동을 해석하는 데 상당히 중요하다. 손 움직임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뇌가 지시하지 않는 것은 없다. 말을 하건 안 하건 손 움직임은 다른 사람의 생각과 감정을 이해 하는데 도움을 주는 비언어 행동이다. 일반인이든 전문직 이든 거짓말을 간파하기는 힘들다. 나도 수년간 많은 수사관이 비언어 행동을 잘못 해석해 무고한 사람들을 억울하게 만든 사례를 많이 봐왔다. 실제로 스트레스 반응을 거짓말로 오해한 경찰 때문에 감옥에 간 사람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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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과서 소설 다보기

by 유카이 posted Dec 23,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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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과서 소설 다보기

2017/12/22 이정안

 

 

사냥

수백명의 학생들의 노루를 사냥하로 산을 둘러싸고 노루를 잡으라고 했다나는 노루 잡이가 미친짓 이라고 생각한다노루를 잡아서 무엇을 한다고.. 나는 아까부터 이란 말을 생각하고 이제는 말을 하면서 싫어 했다나는 노루를 잡을수 있었지만 2마리를 노쳤다그리고 친구는 한 마리를 잡았다그 친구는 무슨 대단한 것을 한 것 같이 좋아했다그날밤 엄마가 노루고기를 사왔다나는 숟가락을 던지면서 노루고기를 왜사요 라고 하며 짜증을 냈다나는 고기를 먹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을 했다.

 

하늘은 맑건만

문기는 아줌마의 신부름으로 고기를 사로 갔다고기를 살려고 1원짜리를 줬는데 거스름 돈으로 10원짜리를 주었다문기는 잘못 준거를 알았지만 그냥 가지고 왔다가지고 가다가 수만이를 만났는데 수만이가 월래 거스름 돈만 아줌마 한테 주라고 했다그리고 남은 돈으로 가지고 싶었던 장난감을 다 샀다근데 삼촌한테 그 사실을 걸려서 혼났다그리고 남은 거스름 돈을 고기집 마당에 던졌다그런데 수만이한테 저번에 빌린 돈이 있어서 그 돈을 만들려고 아줌마의 돈을 훔쳐서 수만이 한테 주었다그리고 양심의 가책으로 괴로워하고 있었는데 지나가는 차에 부딪쳐 교통사고가 났다그리고 이 모든 사실을 삼촌한테 다 말했다.

 

오마니의별

조씨는 6.25전쟁으로 오마니와 누이를 잃었습니다그리고 돌아다니다가 어떤 마을에 조서방에게 친아들로 호적을 올렸습니다조씨는 오마이와 누이가 죽었다는 충격으로 그 기억을 다 잃어버렸습니다그런데 어느 날 현 선생님이 조씨에게 조씨의 누나가 조씨를 찾고 있다는 소식이 있다고 조씨 한테 알려주었습니다조씨는 누나가 죽었다는 것이 농담인 줄 알고 있었습니다조씨와 조씨를 찾는 누나가 진짜 동생이 맞는지 확인 하려고 커피숍에서 만나기로 했습니다둘은 만나서 누나가 별 이라고 외치자 조씨는 오마니별이라고 말을 했습니다그것은 둘이 6.25 전쟁에서 도망을 치다가 별을 보고 저 별은 오마니가 죽어서 별이 된것이라고 했기 때문입니다그 말을 듣고 누나는 동생이 맞는지 확인 할 수 있었습니다.

 

육촌 형

성태와 근태는 육촌 형이다성태는 근태와 엄청 친했지만 근태가 옆 동내로 이사를 가는 바람에 사이에 예전처럼 좋지는 않았다 왜냐하면 옆 동내가 우리 동내랑 안 친하기 때문이다그리고 우리 동내에 오토바이와 홍탱크가 이사를 왔다오토바이와 홍탱크는 나랑 근태랑 싸움을 시킬 려고 햇다나랑 근태는 싸우기를 싫어 해서 안 싸우겠다고 했지만 오토바이와 홍탱크가 몸을 밀어서 나와 근태가 몸이 뒤엉켜 싸움을 하게 되었다근태는 자기 동생하고 싸우지 않겠다고 하다가 홍탱크 한테 턱을 맞고 엄청 맞았다나는 그걸 보고 옆에 있는 돌을 들고 홍탱크에게 달려들어 돌로 홍탱크를 찍었다홍탱크의 부하들한테 나를 때리라고 했지만 그 아이들도 싸우지 않겠다고 했다.

 

성삼이와 덕재는 한 마을의 단짝 친구였다삼팔선 근처에 살고 있었다그런데 농민동맹 부위원장을 지낸 덕재가 치안대에 잡혀왔다성삼이는 덕재를 단독으로 호송하게 되었다그러면서 성삼이와 덕재가 옛날 이야기를 하면서 어린 시절을 회상하고 있었다그리고 옛날에 같이 학 사냥을 한 것이 생각이 나고 옆에 있는 학을 보고 학은 바뀟게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을 했다.

 

소음공해

나는 자원봉사로 일하는 가정주부이다봉사활동이 끝나면 집에 앉아 클래식 음악을 듣는다근대 위층에서 드르륵드르륵 하는 소음이 들렸다며칠 전부터 시작된 소음으로 가족들과 나는 예민한 반응을 보였다그래서 경비 아저씨한테도 말을 하고 인터폰을 통해 위층 여자에게도 말을 했다그래도 계속 소음이 나자 나는 화가 너무 많이 났다그래도 참고 발소리를 죽이라는 메시지를 담은 슬리퍼를 선물하기로 했다그리고 위층의 벨을 누르고 10분이 지나자 문이 열렸다그런데 그 여자는 휠체어를 타고 있었다나는 이웃에게 무관심했던 내가 부끄러웠다.

 

옥상의 민들레꽃

겉으로는 행복해 보이는 궁전 아파트에 할머니 두 명이나 떨어져 자살을 하자 대책이 필요해 회의를 했다젊은 아저씨들과 다른 사람들은 집값이 떨어지니깐 근본적인 대책이 나오지 않았다그래서 이것은 시멘트에 있는 민들레꽃과 같다.

 

자전거 도독

수남이는 전기용품 도매상에서 한 할아버지 밑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바람이 세게 불던 어느날 재수가 없다고 생각했던 수남이가 자전거를 타고 배달을 가다가 바람 때문에 미끄러져 자동차를 긁었다자동차 주인이 돈을 주지 않으면 자전거를 주지 안겠다고 하였다그렇지만 수남이는 자전거를 훔치고 도망갔다그러면서 재미를 느꼈다.

 

이야기 서리꾼

할아버지의 어릴적 서리했던 이야기들을 담아논 이야기다.

 

소별왕 대별왕

천지왕이 꿈을 꾸었는데 해도 하나 삼키고 달도 하나 삼키는 꿈을 꾸었다천지왕은 이 꿈이 태몽이라고 내 자식이 지금 인간들이 겪고 잇는 고난을 풀어 줄 것이라고 햇다그리고 소별과 대별을 낳았다대별이가 형이고 소별이가 동생이다천지왕은 인간 세상을 맡기기 위해 자신이 준 꽃을 잘 기르는 사람한테 기회를 준다고 했다대별이가 꽃을 더 잘키웠다소별이는 포기하지 않았다그래서 대별이는 저승의 왕소별이는 인간의 왕이 되었다.

 

동명왕 신화

알이 깨지고 거기애는 아이가 있었다그 아이는 활을 쏘면 백발 백중이다완자들이 그를 시기하여 죽이려 하자 그는 도망갔다그리고 나라를 세웠는데 그것이 고구려다

 

호동 왕자와 낙랑 공주

대무신왕은 해후 왕자와 호동 왕자를 낳았다어느날 호동 왕자가 사냥을 하다가 옥저에 가게 되었다거기에는 낙랑국의 임금 최리가 있었다낙락국은 고구려 보다 작고 약했기 때문에 최리는 호동왕자를 귀하게 대접했다그리고 최리가 호동왕자한테 자신의 딸하고 결혼을 해주라고 하고 딸을 보여주었는데 딸이 너무 예뻐 호동왕자는 바로 딸하고 결혼을 했다호동왕자는 다시 고구려로 돌아갈 시간이 되어서 최리의 딸을 진정 시키고 바로 돌아오겟다고 하고 고구려로 갔다고구려에 가서 최리의 딸하고 편지를 주고 받았다호동왕자는 최리의 딸한테 자명종을 찢어주라고 햇다딸은 자명종은 찢었다호동왕자는 군대를 끌고 낙랑국을 쳐들어갔다자명종이 찢어져 있어 대비를 못한 낙랑국은 망했다.

 

아기 장수 우투리

고구려때 아기 장수 우투리는 전설이였다

 

소금 장수 아들

소금 장수 아들이 있었는데 그 아들은 너무 미련했다하루는 아버지가 와서 커서 뭐가 될꺼냐고 물어보았는데 아빠처럼 소금장수가 되면 된다고 했다그래서 아빠는 아들한테 소금을 주고 팔아 오라고 햇는데 아들은 너무 미련하고 멍청해서 소금을 팔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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