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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아

신은 모든 곳에 있을 수 없기에 어머니를 만들었다.

by 늘픔 posted Dec 03,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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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은 모든 곳에 있을 수 없기에 어머니를 만들었다정채봉,류시화  양진아

 

우리어머니 김수환

어느 날 가을 들녘이 보고 싶어 시골에 내려갔다어느 수도원의 손님 방에서 자고 아침에 일어나 커튼을 재치고 창문을 여니가을 하늘 아래 뜰 가득히 피어난 코스모스가 눈에 들어왔다상쾌한 아침 공기와 함께 그 모습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잃어버린 옛 고향집을 다시 찾은 듯 했다어머니의 모습이 그 꽃밭에서 미소 짓는 듯했다우리 어머니는 코스모스처럼 키가 후리후리하게 크신 편이었다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하신 분나를 있게 하고나를 가장 사라하신 분나를 위해서라면 열 번이면 열 번 목슴까지라도 바치셨을 분그런데도 나는 이 나이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어머니의 이 사랑을 깊이 깨닫지 못하고 있다내 마음에 새겨진 어머니의 영상은 늙으신 모습이다이마에 깊이 주름이 잡혀 있고 70년의 풍상을 겪으신 모습이다자식들을 위해 당신 자신은 비우고 또 비우신 분그러나 위엄이 있으시면서도 미소를 잃지 않은 모습이 떠오른다어머니는 연세가 많아질수록 얼굴이 더 밝아지시고 미소가 많아지셨던 듯하다하루하루의 삶을 믿음 속에 받아들이시고 초탈해지셨기 때문일까아니면 당신이 원하신 대로 아들 둘을 모두 신부로 만드시고 뜻을 다 이루셨기 때문일까또는 귀여운 손자들 때문이었을까나는 팔남매의 맨 막내였다위의 형님과 누님들은 가난과 잦은 이사 때문에 공부를 시키지 못하셨는데 내 바로 위의 형님과 나만은 그런 쪼들림 속에서도 어머니께서 공부를 꼭 시키고 싶어하셧던 듯하다그러므로 그때에 군위로 이사해서 살면서 형님과 나는 그곳 초등학교에 들어가게 되었다아버지는 내가 그 학교 1학년이었을 적에 돌아가셨다그런 탓인지 나는 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많이 생각나지 않는다아버지는 마음씨가 어진 전형적인 충정도 양반이셨다충정도 억양으로 나를 부르셨고 그 때문에 동네 사람들이 아버지 흉내를 냈던 것을 뚜렷하게 기억한다이웃 사이의 싸움을 잘 말리시고바둑이나 장기로 소일하시다가 해수병으로 돌아가셨다아주 오래전에 친척 고모님이 나를 보시자 우리 아버지 이름을 부르시며 아버지를 꼭 닮았다고 하셨다그때부터 나는 가끔 아버지 생각이 나면 내 얼굴을 거울에 비춰 보기도 한다.나는 어머니의 손은 참으로 약손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배가 아플 때에 어머니의 따뜻한 손이 내 배를 부드럽게 어루만지면 아픈 것이 씻은 듯이 낫고체했을 때에 어머니가 바늘로 엄지손가락 마디를 따주셔서 맺힌 피를 흘리면 체한 것이 곧바로 낫는 것은 흔한 일이었다그보다고 더 놀라운 것은 우리 큰형님이 20대에 집을 나가 일본에 가 있다가 다리에 큰 화상을 입어 죽게 되었다는 소식을 듣자마자어머니가 바로 일본으로 건너가서 형님을 데려와 집에서 조약으로 살리신 것이었다.어린 나이였지만 나에게는 어머니가 온갖 조약으로써 3년 뒤에는 완치시켜 자유로이 다닐 수 있게까지 하신 그 의술이 참으로 신기했다이렇게 다리가 나은 형님은 다시 집을 나가이번에는 만주로 가버렸다처음에는 편지도 몇 번 있었으나 나중에는 소식이 끊기고 말았다우리 어머니는 다시 이 아들을 찾으려 세 번이나 만주에 가셨고간도의 연기용정을 비롯해 멀리 하얼빈까지 찾아가 보셨다하지만 세 번 다 아들을 찾지는 못하셨다참으로 잊을 수 없는 일이 하나 생각난다어머니는 내가 막내였기 때문이었겠지만 나에 대한 애정이 대단하셨다그런데 자식이란 크면서 어머니의 품을 좀 떠나고도 싶어하는 것이다이런 까달으로 가끔 갈등을 느꼈다그럴 무렵에 학병에 끌려가게 되었다이 경험은 태평양 한가운데에 떠 있던 배 위에서 했다그때 우리가 탄 배는 근처에 나타난 미군 잠수함에게 어느 순간에 공격을 받을지 모를 급박한 상황에 놓여있었다그러한 갑판 위에서 어느 한 순간에 닥칠지도 모르는 죽음을 기다리면서 나는 수평선 위로 떠오르는 어머니의 모습을 보았다그때 불현 듯이 어머니가 보고싶고그 품에 안겨 죽고 싶은 마음이 물밀 듯이 밀려왔다나는 평소에 내가 겉으로 생각하던 것과는 정반대인 이와 같은 내 본심을 깨닫고 참으로 놀랐다어머니 곁을 떠나 죽고 싶다는 것은 순전히 내가 만들어낸 생각이고 내 본심은 어머니 곁으로 돌아가고 싶은 것이었구나 하는 깨달음을 그때 얻었다나는 이 경험 뒤로 어머닌느 내게 얼마나 소중한 분이신지참으로 본향과 같은 분이요 마음의 고향이라는 것그 품을 떠나서는 내가 살아 있을 수도아니존재할 수 조차 없다는 것을 깊이 느꼈다우리 어머니는 당신이 원하시던 대로 먼저 우리 형님이 신부가 되는 것을 보셨고그리고 6년 뒤인 가을에는 내가 신부가 되는 것을 보시고 참으로 기뻐하셨다우리 어머니는 당신이 원하시던 대로 아들 둘이 신부가 되는 것을 보시고 네 해 가까이 신부인 나를 위해 함께 사시며 기도로써 도와 주시다가 내 가슴에 기대신 채 조용히 돌아가셨다코스모스처럼 청초한 수녀님들의 글을 읽고 있으려니 다시금 우리 어머니가 그 뜰에서 미소 지으며 손짓하시는 듯하다코스모스와 어머니왜 이렇게 이 가을에는 가신 지 서른 해나 되는 어머니 생각이 더욱더 나는 것일까?


진아

뉴문

by 늘픔 posted Dec 03,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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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문 스테프니 메이어 양진아

다음 날 아침 내 기분은 몹시 불쾌했다. 팔도 욱신거리고 두통이 심해 잠을 잘 자지 못했다. 재빨리 내 이마에 입을 맞춘 뒤 창문으로 빠져나가는 에드워드의 평온한 표정이 어딘가 멀고 아득하게 느꼈졌다는 점이 무엇보다 꺼림칙했다. 에드워드는 평소처럼 학교 주차장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지만, 표정이 이상했다. 그의 눈빛엔 뭔가 나로선 파악할 수 없는 단호함이 감추어져 있었는데, 그래서 덜컥 겁이 났다. 그가 나 대신 차문을 열어주었다. 오전시간은 천천히 흘러갔다. 점심시간이 되었다. 엘리스에게 물어볼 게 많았지만 엘리스는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에드워드에게 엘리스가 어디있냐고 물어보았다. 그러자 에드워드는 엘리스는 제스퍼와 같이 당분간 떠나 있을 거라고 하였다. 학교가 끝나고 에드워드가 오늘 우리 집에 들러도 되냐고 물었다. 나는 된다고 하였다. 집에 도착하여서 에드워드가 내 가방을 트럭에서 꺼냈다가 다시 넣었다. 그리고 손을 잡으며 무미건조하게 좀 걷자고 말하였다. 숲속으로 몇 걸음 들어왔다. 에드워드는 나무에 기대어 전혀 읽어낼 수 없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나는 우리 얘기 좀 하자고 말하였다. 그는 심호흡을 한 번 하고 우린 떠날 거라고 말하였다. 그건 받아들일 수 있는 선택이었다. 에드워드는 때가 됐다며 우린 곧 새로운 삶을 시작해야 한다고 말하였다. 나는 혼란스러워지고 말았다. 우리가 떠나는 목적은 그의 가족을 편하게 살도록 내버려두기 위해서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나는 그의 말뜻을 이해하려고 애쓰며 에드워드를 응시했다. 그는 차갑게 나를 마주보았다. 돌연 나는 욕지기를 느끼며, 내가 오해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에드워드가 좀 전에 우리라고 한 말은 가족과 자기를 의미한 것이라고 말하였다. 말 한마디 한마디가 너무나 명확하고 가혹했다. 내가 다시 입을 열 수 있게 되기까지 몇 분이 흘러갔다. 나는 나도 같이 간다고 말하였다. 하지만 에드워드는 계속 안 된다고 말하였다. 나는 제스퍼랑 있었던 일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말하였다. 나는 내 영혼을 가져도 된다고 화가 나서 소리쳤다. 그는 길게 한숨 쉬며 한참동안 땅바닥만 응시했다. 입술은 약간 일그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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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쪽으로 튀어

by 늘픔 posted Dec 03,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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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쪽으로 튀어 오쿠타 히데오 양진아

나카노 브로드웨이 빌딩은 우에하라 지로가 학교에서 돌아오는 길에 한 번씩 들르는 곳이었다. 층짜리 빌딩인데 장난감 가게며 헌책방, 게임 센터와 레스토랑, 중국집, 일식집들이 잡다하게 들어차 있었다. 담임 선생님은 학교에서 정해준 통학로로 다녀야 한다고 하였지만, 고학년 남학생들은 그런 규칙 따위는 지키지 않았다. 처음에는 항상 함께 다니는 구스다 준과 헌책방에 들러서 통로에 앉아 만화를 보고 스포츠 용품점에서 가지고 싶은 축구화를 구경하였다. 저녁때가 되니까 술집들이 문을 열기 시작하면서 여기저기에서 닭꼬치를 굽는 맛있는 냄새가 풍겨왔다. 지로 어머니가 하시는 찻집에 들러서 어머니께 인사를 하고 집으로 갔는데 나카노 구청 국민 연금과에서 나온 아줌마가 집 앞에 서 계셨다. 그래서 아버지께 손님 왔다고 말하고는 저녁 준비를 하였다. 아버지는 계속 나가시지 않는다고 하다가 화가 나서 나갔다. 아줌마는 국민연금을 내는 것은 국민의 의무라며 국민연금을 내라고 하였다. 하지만 아버지는 국민연금 따위 내지 못낸다고 하였다. 그렇게 아줌마와 아버지는 말싸움을 하다가 아버지는 국민을 관두겠다고 하였다. 그렇게 아줌마와 아버지가 말싸움을 하는 동안 냄비 안에 국자를 넣고 된장을 살살 풀었더니 맛있는 냄새가 부엌에 자욱하게 피어올랐다.


진아

명화보기 좋은 날

by 늘픔 posted Dec 03,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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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화 보기 좋은 날 빅쏘 이소영 양진아

한 해가 지나가고 새로운 해가 오고 있다. 날짜에 연연하는 것 같아 우습지만, 매년 마지막과 처음에 의미를 부여하는 건 어쩔 수 없는 습관이다. 요즘에는 괜히 정리를 하곤 한다. 조금 더 깔끔하게 처리하는 내가 되고 싶은 마음에서다, 그리고 바라는 것은 내가 쓰는 글처럼 살고 싶은 마음이다. 싱숭생숭 해지는 연말연시가 되면 떠오르는 화가가 있다. 그의 그림을 보면 새하얀 캔버스에 길을 내는 과정이 떠오르고 새하얀 공간에 반듯하게 글을 쓰며 마음을 다짐하게 한다. 브로드웨이 부기우기라는 작품을 볼 때마다 뉴욕의 높은 빌딩에서 수많은 불빛이 반짝거리고 있는 거리를 내려다보며 재즈에 맞춰 춤을 추는 그를 상상하곤 했다. 그가 재즈에 맞춰 춤을 좋아했다는 것은 이 그림을 더욱 인간적으로 보게 한다. 누군가는 몬드리안의 깔끔한 성격 때문에 작품 역시 차갑게 보인다고 하지만 자연은 활기차고 끊임없이 변화하지만, 근본적으로 절대적인 규칙에 따라 움직인다.’라고 그는 생각하며 그러한 자연의 규칙을 작품에 적용하고 싶어 했다. 그렇기에 그의 작품은 우리가 지녀야 할 근본적인 마음이 무엇인지에 대해 고민하게 만든다. 하지만 우리 마음은 그의 그림처럼 반듯하고 선명하지 않다. 여러 마음이 공존해 매일매일 혼란스럽다. 선명하고 깔끔한 색들로 이루어진 <구성A>는 어렵게 보려고 하면 한없이 어려워지고 단순하게 볼 거라고 마음만 먹으면 쉬워지는 그림이다. 여러 가지 마음으로 혼란스러운 시기에는 시끄러운 마음은 젖혀 두고 기본적인 마음에 초점을 두고 싶다. 그의 그림 속 곧은 선들처럼 내 마음도 평정심을 유지하길 바라면서 말이다. 몬드리안의 그림을 보며 바란다. 우리들의 새해가 기본을 지키는 날들이길, 마음 편한 정리와 설레는 다짐들이 교차하는 건강한 날들이기를.


진아

정찬희 반성문 부모님께

by 양동우 posted Oct 30,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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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찬희 반성문 대기명당 형누나께

by 양동우 posted Oct 30,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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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에게 살해 당하지 않는 47가지 방법

by 늘픔 posted Apr 09,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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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에게 살해 당하지 않는 47가지 방법 곤도 마코토 2016.04.09.양진아

환자는 병원의 이 아니다!

주변을 둘러보면 조금만 아파도 병원을 가는 사람들이 많다. 일본인의 기질이 성실하고 걱정이 많은 탓도 있겠지만, 무엇보다 의료보험증만 있으면 누구라도 원하는 의료기관에서 전국 어디서나 동일한 가격으로 진찰받을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실제로 일본인은 몸이 아픈 경우 언제라도 병원에 가서 보험증만 제시하면 30퍼센트 정도의 본인 부담으로 필요한 치료를 받을 수 있다. 일본에서는 전후 일관적으로 낮은 의료비 정책을 펴고 있어 의사는 박리다매로 일할 수 밖에 없다. 미국이나 유럽의 의사가 하루에 20~30명을 진찰하면, 일본의 의사는 하루에 40~50명이나 되는 환자를 진찰한다. 달리 보면 환자 입장에서는 마치 편의점에 가듯 병원에 갈 수 있다는 말이다. 바로 여기에 큰 함정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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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재채기가 나오면 병원으로 달려가고, 의사는 감기기운이 있다며 약을 무더기로 처방한다. 그리고 매년 독감주사나 건강검진과 암 검사를 규칙적으로 받는다. 혈압이 높다거나 페에 음영이 보인다는 소견을 들으면 새파랗게 질려서 의사에게 들은 대로 약을 먹고 정밀검사를 받는다. 환자들은 의료도 비즈니스이며, 그것이 의사의 생계 수단임을 인식하지 못한다.

현재 의사들 대부분은 병자를 가능한 늘려서 병원으로 끌어들이지 않으면 살아남지 못한다. 한마디로 의사의 감언이설에 넘어가는 당신은 의사의 봉인 셈이다. 당신의 중요한 시간과 돈을 바치는 것을 넘어서 생명까지 단축될 수 있기 때문이다.

 

병원에 자주 가는 사람일수록 빨리 죽는다.

의료보험에 가입한 미국인 5만 명의 의료비와 건강의 관계를 알아보기 위해, 그들을 5년 동안 추적했는데 놀라운 결과가 나왔다. 그리고 만족도 조사를 하였다. 당연한 말이지만, 친절한 병원이나 의사에게 정성스러운 의료서비스를 받고 있는 사람일수록 만족도는 높다. 의료서비스에 만족하는 사람은 유비무환의 마음으로 몸에 어떤 이상이 있으면 곧장 의사에게 진찰을 받고 좋은 약을 먹거나 빨리 입원하는 성향이 있다. 그런데 4~5년 동안 전체 조사 대상자를 추적 조사한 결과, 만족도가 가장 높은 그룹은 만족도가 가장 낮은 그룹에 비해 사망률이 26퍼센트나 높았다.

 

40년 동안 의사로서 일을 해온 내가 무엇보다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것은 병원에 자주 갈수록 약이나 의료행위로 수명이 단축되기 쉽다는 사실이다. 대부분의 약은 병을 고치는 힘은 없고, 부작용은 크다. 내가 의사가 된 지 얼마 안 되었을 때는 암은 수술이나 항암제로 치료된다고 굳게 믿고 있었지만 수많은 환자를 지켜보면서 장기를 절제해도 암은 낫지 않고, 항암제는 고통을 줄 뿐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믿는 자는 구원을 받는다라는 말이 있지만, 의료행위에 대해서만큼은 믿지 말고 합리적으로 생각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노화 현상을 질병으로 봐서는 안 된다.

현대 사회에서 성인이 걸리는 질병은 대부분 노화 현상으로 의사에게 치료를 받거나 약으로 고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사람들은 대개 몸이 어딘가 좋지 않을 때 어떤 병명으로 규정되면 비교적 안심하는 반면에, 나이 탓이라고 하며 언짢아한다, 하지만 몸도 자연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편이 좋다. 노화란 세포의 유전자에 상처가 생기고, 그것이 축적되어 몸에 여러 가지 장애를 일으키는 육체적 변화이다.

나이가 들면 혈관은 탄력이 떨어지고 딱딱해지기 때문에 혈압이 조금 높아야 혈액이 우리 몸 구석구석까지 잘 흘러간다. 몸에 적절한 혈압을 유지하려면 평소 많이 걷는 것이 좋다.

콜레스테롤은 세포를 튼튼하게 해주기 때문에 줄이지 않는 것이 좋다. 오히려 콜레스테롤 수치가 높은 사람일수록 오래 산다. 그리고 손, , 머리를 부지런히 움직여 몸이 녹슬지 않도록 한다. 최고의 건강법은 몸과 감각을 정체시키지 않는 것이다.

 


진아

뉴문

by 늘픔 posted Apr 02,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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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문 스테프니 메이어 2016.04.02. 양진아

다음 날 아침 내 기분은 몹시 불쾌했다. 팔도 욱신거리고 두통이 심해 잠을 잘 자지 못했다. 재빨리 내 이마에 입을 맞춘 뒤 창문으로 빠져나가는 에드워드의 평온한 표정이 어딘가 멀고 아득하게 느꼈졌다는 점이 무엇보다 꺼림칙했다. 에드워드는 평소처럼 학교 주차장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지만, 표정이 이상했다. 그의 눈빛엔 뭔가 나로선 파악할 수 없는 단호함이 감추어져 있었는데, 그래서 덜컥 겁이 났다. 그가 나 대신 차문을 열어주었다. 오전시간은 천천히 흘러갔다. 점심시간이 되었다. 엘리스에게 물어볼 게 많았지만 엘리스는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에드워드에게 엘리스가 어디있냐고 물어보았다. 그러자 에드워드는 엘리스는 제스퍼와 같이 당분간 떠나 있을 거라고 하였다. 학교가 끝나고 에드워드가 오늘 우리 집에 들러도 되냐고 물었다. 나는 된다고 하였다. 집에 도착하여서 에드워드가 내 가방을 트럭에서 꺼냈다가 다시 넣었다. 그리고 손을 잡으며 무미건조하게 좀 걷자고 말하였다. 숲속으로 몇 걸음 들어왔다. 에드워드는 나무에 기대어 전혀 읽어낼 수 없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나는 우리 얘기 좀 하자고 말하였다. 그는 심호흡을 한 번 하고 우린 떠날 거라고 말하였다. 그건 받아들일 수 있는 선택이었다. 에드워드는 때가 됐다며 우린 곧 새로운 삶을 시작해야 한다고 말하였다. 나는 혼란스러워지고 말았다. 우리가 떠나는 목적은 그의 가족을 편하게 살도록 내버려두기 위해서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나는 그의 말뜻을 이해하려고 애쓰며 에드워드를 응시했다. 그는 차갑게 나를 마주보았다. 돌연 나는 욕지기를 느끼며, 내가 오해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에드워드가 좀 전에 우리라고 한 말은 가족과 자기를 의미한 것이라고 말하였다. 말 한마디 한마디가 너무나 명확하고 가혹했다. 내가 다시 입을 열 수 있게 되기까지 몇 분이 흘러갔다. 나는 나도 같이 간다고 말하였다. 하지만 에드워드는 계속 안 된다고 말하였다. 나는 제스퍼랑 있었던 일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말하였다. 나는 내 영혼을 가져도 된다고 화가 나서 소리쳤다. 그는 길게 한숨 쉬며 한참동안 땅바닥만 응시했다. 입술은 약간 일그러졌다. 마침내 고개를 들었을 때는 그의 눈빛이 하도 무심히 굳어있어 액체로 된 황금이 단단히 얼어붙은 것 같았다. 에드워드는 나와 같이 가기 싫다고 천천히 정확하게 말한 뒤 싸늘한 눈빛으로 자기 말뜻을 받아들이는 내 모습을 지켜보았다. 나는 도저히 이해가 되질 않아서 나는 그의 눈을 응시했다. 미안한 기색 없이 그도 나를 쏘아보았다. 그는 시선을 돌려 나무를 바라보며 다시 입을 열었다. 에드워드는 언제나 날 사랑할 거라고 말하였다. 그리고 인간인 척 하는 것도 지긋지긋하다고 말하였다. 에드워드가 다시 나를 응시했다. 차디찬 냉기가 감도는 완벽한 그 얼굴은 확실히 인간의 것은 아니었다. 에드워드는 내가 너무 질질 끌었다며 미안하게 생각한다고 말하였다. 나는 제발 이러지 말라고 말하였다. 에드워드는 모두들 떠났다고 말하였다. 그리고 자기만 나에게 작별인사를 하려고 남아있었던 것이라고 말하였다. 엘리스는 작별인사를 하고 싶어했지만 깨끗하게 헤어지는 게 낫다고 자기가 말하였다고 에드워드가 말하였다. 나는 제대로 숨을 쉬려 노력했다. 이 악몽에서 벗어나려면 정신을 집중해야만 했었다. 그가 평소처럼 침착하고 평온한 목소리로 잘 있어, 벨라라고 말하였다. 내 사랑, , 생 의미... 모두 끝이었다. 걷고 또 걷다가 무언가에 걸려 넘어졌지만 그대로 쓰러져 있었다. 오랫동안 그렇게 어둠 속에 누워 있다가 마침내 나는 외치는 소리를 들었다. 어떤 낯선 남자가 자기는 샘 울리라고 하고 찰리가 널 찾아달라고 보냈다고 말하였다. 나는 의사에게 진료를 받았다. 의사는 그냥 피곤한거라고 하였고 푹 쉬게 하라고 찰리에게 말하였다. 집에 돌아와서 찰리가 나에게 에드워드가 나를 왜 두고 갔는지 물었지만 나는 아픔을 떨쳐보려고 절박하게 멀리를 흔들었다. 찰리가 뭐라고 더 말을 하려는 듯했지만 나는 귀를 막았다. 방은 내가 두고 간 그대로인 듯했다. 엄마가 선물한 앨범도 내가 두고 간 그대로 침대 옆 바닥에 놓여 있었다. 나는 떨리는 손으로 표지를 젖혔다. 첫 장에서 더 넘길 필요도 없었다. 모퉁이마다 은색 장식이 박힌 사진첩엔 사진이 들어있지 않았다. 아래쪽에 내가 적어놓은 찰리 집 부엌에서, 에드워드 컬렌, 913이라는 글씨만 남아 있을 뿐이었다. 나를 온통 휘감아버린 고통의 파도만이 내 몸을 저 높은 곳까지 끌어올렸다가 다시 심연으로 끌어당기고 있을 뿐이었다. 나는 다시 수면으로 올라가지 않았다. 10..... 11..... 12..... 1.....

느낀점: 재미있었다.


진아

뉴문

by 늘픔 posted Mar 26,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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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문                                                       스테프니 메이어                                        2016.03.26. 양진아

    

나는 꿈을 꾸고 있다는 걸 99.9 퍼센트 확실했다. 꿈인 게 확실한 이유는 이렇다. 첫째, 내 새로운 고향이 된 워싱턴 주 포크스에선 절대 볼 수 없는 눈부신 태양이 내리쬐고 있었고, 둘째로는 마리 할머니가 눈앞에 계셨기 때문이다. 돌아가신 지 벌써 6년이나 된 외할머니는 내가 꿈을 꾸고 있음에 틀림없다는 주장을 뒷받침해 주는 확실한 증인이었다. 나는 할머니에게 물어볼 것이 너무 많아서 물어보려고 하였지만 할머니도 나와 동시에 입을 열었으므로 나는 할머니가 먼저 말씀하시도록 양보했다. 할머니 역시 멈칫하셨기 때문에, 우리는 조금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내 이름을 부른 사람은 에드워드였다. 에드워드가 나를 향해 걸어왔다. 나는 두려움 가득한 눈빛으로 할머니가 나를 보고 있을 줄 알았는데 할머니의 표정은 뜻밖이었다. 완전히 공포에 질려 있을 줄 알았던 할머니는 꾸짓음을 기다리는 사람처럼 수줍게 나를 응시하고 있었다. 그런데 할머니의 자세가 아주 이상했다. 한 팔을 어색하게 뻗은 채, 허공에 껴안 듯 둥글게 팔을 굽힉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에드워드의 허리에 감았던 팔을 풀어 할머니를 향해 뻗었다. 그런데 할머니는 거울처럼 내 동작을 똑같이 따라했다. 꿈은 갑자기 악몽으로 돌변했다. 할머니는 없었다. 그건 바로 나였다. 몹시 나이가 들어 쪼글쪼글 주름이 진 나였다. 견딜 수 없을 만큼 사랑스러운, 영원히 열일곱 살의 에드워드가 내 옆에 다가와 섰지만 거울엔 모습이 비치지 않았다. 그가 얼음처럼 차갑고 완벽한 입술로 나의 홀쭉한 뺨에 입을 맞추며 속삭였다. “생일 축하해나는 소스라치게 놀라며 눈을 번쩍 뜨고 숨을 헐떡였다. 나는 최대한 빨리 서둘러 집을 빠져 나가느라 아침을 걸렀다. 그는 다른 날과 똑같이 은색 볼보에 기대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옆에서는 그의 누나 엘리스도 같이 있었다. 엘리스는 나에게 생일을 축한다며 선물을 주었고 집에도 초대하였지만 나는 일이 있다며 반항하였다. 하지만 엘리스는 다 이야기 해 놓았다며 일은 하지 않아도 되다고 하였다. 그래서 나는 영어 수업 때문에 로미오와 줄리엣 영화를 봐야 한다고 하였다. 하지만 엘리스는 나를 계속 집에 데리고 가려고 하였다. 에드워드는 엘리스를 진정시키고 7시에 데리고 간다고 말하였다. 나는 간절하게 에드워드에게 싫다고 말하였지만 에드워드는 차가운 손가락으로 내 입술을 눌렀다. 나는 에드워드와 로미오와 줄리엣을 보고 에드워드의 집으로 갔다. 집으로 들어가니 엘리스가 작은 상자를 들고 있었다. 에드워드는 한 푼도 안 썼다며 나를 안심시켰다. 나는 포장지를 뜯을려고 하다가 그만 손가락을 베이고 말았다. 에드워드가 고함을 지르며 나를 탁자 건너편으로 내던졌다. 그러자 탁자가 쓰러지면서 케이크와 선물과 꽃병과 접시가 사방으로 흩어졌다. 나는 산산조각 난 크리스털 접시 위로 넘어졌다. 제스퍼와 에드워드의 몸이 부딪치자 암석 절벽에서 거대한 바위가 떨어지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제스퍼는 무섭고 공허한 시선을 나에게 고정시킨 채 계속 몸부림 쳤다. 충격이 지나가자 아픔이 느껴졌다. 피아노 옆 바닥을 뒹굴며 나는 본능적으로 팔꿈치로 바닥을 짚었고, 팔에 온통 유리조각이 박히고 말았다. 현기증과 혼란스러움을 느끼며 선홍색의 피가 뿜어져 나오는 팔에서 시선을 드니, 별안간 탐욕스러운 표정으로 눈에서 불을 뿜는 여섯 명의 뱀파이어가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침착함을 유지하고 있는 사람은 칼라일뿐이었다. 차분하고 권위적인 그의 목소리에선 응급실에서 수백 년을 보낸 노련함이 묻어났다. 칼라일은 병원에 태워다주는 것이나 여기서 치료하는 것 중에 무엇이 더 좋겠냐고 물었다. 나는 여기서 치료를 해 달라고 하였다. 나를 식탁으로 데려가서 치료를 다 끝내고 에드워드가 나를 집에 데려다 주었다. 내 방에서 만나자고 하고 에드워드와 헤어졌다. 에드워드는 침대에 앉아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에드워드는 CD가 들어있는 투명 케이스를 내밀었다. 나는 이게 무엇이냐고 물었지만 에드워드는 말없이 CD를 꺼내 플레이어에 넣었다. 그가 플레이어 버튼을 누르자 음악이 흘러나왔다. 눈물이 차올랐다. 뺨을 타고 흘러내리기 전에 손등으로 눈물을 훔쳤다. 에드워드가 팔이 아파서 그러냐며 걱정스럽게 물었다. 나는 음악이 너무 아름다워서 그런 것이라고 말하고 이것보다 내 마음에 드는 선물은 세상에 없을 것이라고 말하였다. 그것은 에드워드가 작곡한 음악이었다. 에드워드는 내가 추위를 느끼지 않도록 이불 위에 누운 뒤 한 팔로 나를 안았다. 나는 에드워드에게 너한테는 제대로 생일 축하받겠다고 한 게 생각나냐고 물었다. 에드워드는 그렇다고 하였다. 그래서 나는 생일이 아직 안 지났으니까 키스를 해 달라고 하였다. 입맞춤은 평소와 다를 것 없이 시작되었다. 그런데 에드워드가 정해놓은 조심스러운 경계선을 넘었지만 그는 나를 막지 않았다. 돌연 그가 입맞춤을 멈추고 부드럽지만 단호한 손길로 나를 밀어냈다. 에드워드는 이제 그만 자는 게 어떠냐고 물었다. 그래서 나는 알겠다고 하였다. 반쯤 잠에 빠졌을 때 나는, 그와 열정적인 입맞춤을 나눴던 기억을 떠올렸다. 작년 봄, 제임스를 따돌리기 위해 다시 만날 기약도 없이 헤어지던 그때였다. 에드워드는 나에게 작별 키스를 했었다.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오늘 나눈 입맞춤도 그날처럼 어딘가 뼈저린 아픔의 기운이 느껴젔다. 벌써 악몽을 꾸기라도 하듯 나는 몸을 떨며 무의식으로 빠져들었다.

느낀점:재미있었다.


진아

신은 모든 곳에 있을 수 없기에 어머니를 만들었다.

by 늘픔 posted Mar 26,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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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은 모든 곳에 있을 수 없기에 어머니를 만들었다.          정채봉,류시화                   2016.03.19. 양진아

우리어머니 김수환

어느 날 가을 들녘이 보고 싶어 시골에 내려갔다. 어느 수도원의 손님 방에서 자고 아침에 일어나 커튼을 재치고 창문을 여니, 가을 하늘 아래 뜰 가득히 피어난 코스모스가 눈에 들어왔다. 상쾌한 아침 공기와 함께 그 모습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잃어버린 옛 고향집을 다시 찾은 듯 했다. 어머니의 모습이 그 꽃밭에서 미소 짓는 듯했다. 우리 어머니는 코스모스처럼 키가 후리후리하게 크신 편이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하신 분. 나를 있게 하고, 나를 가장 사라하신 분. 나를 위해서라면 열 번이면 열 번 목슴까지라도 바치셨을 분. 그런데도 나는 이 나이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어머니의 이 사랑을 깊이 깨닫지 못하고 있다. 내 마음에 새겨진 어머니의 영상은 늙으신 모습이다, 이마에 깊이 주름이 잡혀 있고 70년의 풍상을 겪으신 모습이다. 자식들을 위해 당신 자신은 비우고 또 비우신 분. 그러나 위엄이 있으시면서도 미소를 잃지 않은 모습이 떠오른다. 어머니는 연세가 많아질수록 얼굴이 더 밝아지시고 미소가 많아지셨던 듯하다. 하루하루의 삶을 믿음 속에 받아들이시고 초탈해지셨기 때문일까? 아니면 당신이 원하신 대로 아들 둘을 모두 신부로 만드시고 뜻을 다 이루셨기 때문일까? 또는 귀여운 손자들 때문이었을까? 나는 팔남매의 맨 막내였다. 위의 형님과 누님들은 가난과 잦은 이사 때문에 공부를 시키지 못하셨는데 내 바로 위의 형님과 나만은 그런 쪼들림 속에서도 어머니께서 공부를 꼭 시키고 싶어하셧던 듯하다. 그러므로 그때에 군위로 이사해서 살면서 형님과 나는 그곳 초등학교에 들어가게 되었다. 아버지는 내가 그 학교 1학년이었을 적에 돌아가셨다. 그런 탓인지 나는 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많이 생각나지 않는다. 아버지는 마음씨가 어진 전형적인 충정도 양반이셨다. 충정도 억양으로 나를 부르셨고 그 때문에 동네 사람들이 아버지 흉내를 냈던 것을 뚜렷하게 기억한다. 이웃 사이의 싸움을 잘 말리시고, 바둑이나 장기로 소일하시다가 해수병으로 돌아가셨다. 아주 오래전에 친척 고모님이 나를 보시자 우리 아버지 이름을 부르시며 아버지를 꼭 닮았다고 하셨다. 그때부터 나는 가끔 아버지 생각이 나면 내 얼굴을 거울에 비춰 보기도 한다. 나는 어머니의 손은 참으로 약손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배가 아플 때에 어머니의 따뜻한 손이 내 배를 부드럽게 어루만지면 아픈 것이 씻은 듯이 낫고, 체했을 때에 어머니가 바늘로 엄지손가락 마디를 따주셔서 맺힌 피를 흘리면 체한 것이 곧바로 낫는 것은 흔한 일이었다. 그보다고 더 놀라운 것은 우리 큰형님이 20대에 집을 나가 일본에 가 있다가 다리에 큰 화상을 입어 죽게 되었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어머니가 바로 일본으로 건너가서 형님을 데려와 집에서 조약으로 살리신 것이었다. 어린 나이였지만 나에게는 어머니가 온갖 조약으로써 3년 뒤에는 완치시켜 자유로이 다닐 수 있게까지 하신 그 의술이 참으로 신기했다. 이렇게 다리가 나은 형님은 다시 집을 나가, 이번에는 만주로 가버렸다. 처음에는 편지도 몇 번 있었으나 나중에는 소식이 끊기고 말았다. 우리 어머니는 다시 이 아들을 찾으려 세 번이나 만주에 가셨고, 간도의 연기, 용정을 비롯해 멀리 하얼빈까지 찾아가 보셨다. 하지만 세 번 다 아들을 찾지는 못하셨다. 참으로 잊을 수 없는 일이 하나 생각난다. 어머니는 내가 막내였기 때문이었겠지만 나에 대한 애정이 대단하셨다. 그런데 자식이란 크면서 어머니의 품을 좀 떠나고도 싶어하는 것이다. 이런 까달으로 가끔 갈등을 느꼈다. 그럴 무렵에 학병에 끌려가게 되었다. 이 경험은 태평양 한가운데에 떠 있던 배 위에서 했다. 그때 우리가 탄 배는 근처에 나타난 미군 잠수함에게 어느 순간에 공격을 받을지 모를 급박한 상황에 놓여있었다. 그러한 갑판 위에서 어느 한 순간에 닥칠지도 모르는 죽음을 기다리면서 나는 수평선 위로 떠오르는 어머니의 모습을 보았다. 그때 불현 듯이 어머니가 보고싶고, 그 품에 안겨 죽고 싶은 마음이 물밀 듯이 밀려왔다. 나는 평소에 내가 겉으로 생각하던 것과는 정반대인 이와 같은 내 본심을 깨닫고 참으로 놀랐다. 어머니 곁을 떠나 죽고 싶다는 것은 순전히 내가 만들어낸 생각이고 내 본심은 어머니 곁으로 돌아가고 싶은 것이었구나 하는 깨달음을 그때 얻었다. 나는 이 경험 뒤로 어머닌느 내게 얼마나 소중한 분이신지, 참으로 본향과 같은 분이요 마음의 고향이라는 것, 그 품을 떠나서는 내가 살아 있을 수도, 아니, 존재할 수 조차 없다는 것을 깊이 느꼈다. 우리 어머니는 당신이 원하시던 대로 먼저 우리 형님이 신부가 되는 것을 보셨고, 그리고 6년 뒤인 가을에는 내가 신부가 되는 것을 보시고 참으로 기뻐하셨다. 우리 어머니는 당신이 원하시던 대로 아들 둘이 신부가 되는 것을 보시고 네 해 가까이 신부인 나를 위해 함께 사시며 기도로써 도와 주시다가 내 가슴에 기대신 채 조용히 돌아가셨다. 코스모스처럼 청초한 수녀님들의 글을 읽고 있으려니 다시금 우리 어머니가 그 뜰에서 미소 지으며 손짓하시는 듯하다. 코스모스와 어머니, 왜 이렇게 이 가을에는 가신 지 서른 해나 되는 어머니 생각이 더욱더 나는 것일까?

느낀점: 재미있었다.


진아

여행일지

by 늘픔 posted Mar 26,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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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1

교회에서 짐을 체크하고 인천공항으로 출발하였다. 인천공항에서 비행기시간이 될 때까지 기다리다가 비행기 탈 시간이 되어서 비행기를 타고 방콕에 도착했다. 방콕에 도착해서 차를 기다려서 타고 숙소로 가서 씻고 잤다,

2/12

아침에 일어나서 수완나품 공항으로 가서 양곤행 비행기를 타고 양곤에 도착했다. 리틀 양곤 호스텔이라는 숙소에 가서 체크인을 하고 모여서 식당을 골라서 저녁을 먹고 간식과 마실 것을 사서 숙소로 돌아와서 회의를 하고 씻고 잤다.

2/13

아침에 일어나서 아침을 먹고 나갈 준비를 하고 모여서 짐을 맡기고 술래파고다를 보러갔다. 술래파고다를 들어가려는데 어떤 여자가 신발을 주라고 하여서 우리는 그냥 신발을 주었다. 그런데 돈을 달라고 하였다. 그래서 우리는 이게 뭐지 하고 입장료인줄 하고 돈을 주었다. 그런데 입장료가 아니라 신발을 맡기는 값이었다. 그리고 신발은 그냥 들고 들어가거나 바닥에 두면 되었던 것이었다. 그렇게 술래파고다를 보고 양곤시청에서 독립탑을 보고 마하반 공원으로 갔는데 너무 더웠다. 그런데 마하반 공원에 분수가 있어서 분수 근처에 가면 물이 튀겨서 시원하였다. 그리고 다시 모여서 999샨 누들로 가서 밥을 먹었다. 되게 맛있었다. 그리고 j도넛으로 가서 도넛을 먹으며 쉬다가 숙소에서 짐을 찾고 아웅밍글라 버스터미널로 가서 버스를 타고 냥쉐로 출발하였다.

2/14

새벽에 냥쉐에 도착하였다. 숙소로 가서 짐 풀고 쉬다가 자전거를 빌려서 까웅다잉 온천에 갔다. 까웅다잉 온천에서 온천욕을 하고 밥을 먹었다. 그리고 씻고 모여서 숙소로 갔다. 그런데 정우 오빠 자전거가 고장이 나서 정우 오빠는 박스 같은 곳에 자전거 체인에서 나온 기름으로 help를 쓰고 오다가 미얀마 사람들이 차를 태워주어서 무사히 올 수 있었다. 정우오빠는 숙소로 돌아와서 그 이야기를 엄청 하고 다녔다. 그리고 미얀마 사람들을 좋아하게 되었다고 말하였다. 돌아와서 자전거를 반납하고 식당으로 가서 밥을 먹고 간식과 물을 사서 숙소로 돌아와서 회의를 하고 씻고 잤다.

2/15

아침에 일어나서 아침을 먹고 자전거를 빌려서 레드마운티으로 갔다. 와이너리를 구경하고 레드마운틴에서 밥을 먹었다. 맛있었고 와인도 시음해 보았는데 약간 좀 화장실 냄새가 나는 것 같았다. 그리고 숙소로 돌아와서 자전거를 반납하고 에버그린 카페로 가서 쉬다가 로터스라는 식당에 가서 밥을 먹었다. 그리고 오딧세이 jj로 가서 버스를 타고 만달레이로 출발하였다.

2/16

새벽에 만달레이에 도착하여서 숙소로 갔다. 체크인을 하고 쉬다가 아침을 먹고 쉬다가 다이아몬드 플라자로 갔다. 식당에서 밥을 먹고 우베인 다리로 갔다. 일몰을 보았는데 되게 예쁘고 멋졌고 지원이언니와 재현이오빠와 사진 찍는 게 재미있었다. 일몰을 구경하고 숙소 근처로 돌아와서 저녁을 먹고 쇼핑몰에 가서 간식을 사고 숙소로 돌아와서 회의를 하고 씻고 잤다.

2/17

아침에 일어나서 쉬다가 식당 판체리로 가는데 조금만 가면 될 것을 정우오빠가 삥~ 돌아가서 힘들었지만 밥이 맛있어서 좋았다. 그리고 나일론 아이스크림 가게로 가서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쉬다가 만달레이 힐로 갔다. 만달레이 힐을 오르는데 한 단락씩 쉬는 곳이 있었다. 우리팀과 지호오빠팀은 같이 올라갔는데 한 단락만 더 올라가면 정상이었는데 그것도 모르고 힘들어서 포기를 하였다. 내려올 때 알게 되었는데 좀 아쉬웠다. 내려와서 쩨쪼야시장에 가서 저녁을 먹었는데 한 입만한 꼬치가 있었는데 되게 맛있었고 약간 돼지 간 갇은 것도 있고 했는데 되게 맛있었다. 숙소로 돌아와서 회의를 한 후 씻고 잤다.

2/18

아침에 일어나서 짐 싸고 체크아웃을 한 후 짐을 맡기고 만달레이 왕궁으로 갔다. 만달레이 왕궁을 보고 만묘토로 가서 만두를 먹었는데 만두가 엄청 컸는데 거의 내 얼굴만 했다. 그렇게 큰 만두를 머곡 숙소로 돌아와서 짐을 챙기고 버스터미널로 가서 버스를 타고 바간에 도착하였다. 숙소로 가서 회의를 하고 씻고 잤다.

2/19

아침에 일어나서 숙소에서 쉬다가 음식점을 찾아서 점심을 먹고 로키난다 파야로 가서 구경을 하고 아나욱 펫레익 파야를 구경한 후에 근처에서 저녁을 먹고 숙소로 돌아오면서 간식과 물을 사서 숙소로 돌아왔다. 쉬다가 회의를 하고 씻고 잤다.

2/20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일출을 보러 갔다. 그런데 기다리는데도 해는 안 뜨고 날만 밝았다. 그렇게 계속 기다리다보니 해가 조금씩 뜨기 시작했다. 내 생각보다 예쁘진 않았다. 내 생각에는 하늘이 빨개지고 해가 좀 클 줄 알았지만 아니었다. 그래도 예쁘긴 하였다. 숙소로 돌아와서 아침을 먹고 쉬다가 삐와로 이동해서 점심을 먹고 담마앙지 파토와 술래마니 파토를 구경하였다. 신빈 따라웅을 구경하고 불레디 파야로 가서 일몰을 보고 숙속로 돌아와서 실버하우스 레스토랑에서 저녁을 먹었는데 나는 실버하우스 수프를 시켰는데 오뎅국 맛이 났다. 그리고 정우오빠가 시킨 카레를 먹어보았는데 되게 맛있었다. 그리고 간식을 사서 숙소로 돌아와서 쉬다가 회의를 하고 씻고 잤다.

2/21

아침에 일어나서 짐을 싸서 맡기고 이자고나 파야로 가서 구경하고 골든 미얀마2로 가서 점심을 먹고 숙소로 가서 짐 챙기고 블랙뱀부로 가서 쉬다가 근처 식당에서 저녁을 먹고 버스터미널로 가서 버스를 타고 양곤으로 출발하였다.

2/22

새벽에 양곤에 도착하여서 숙소로 가서 체크인하고 쉬다가 아침먹고 쉬다가 깐도지 호수로 호수구경하며 놀다가 시그니처 레스토랑에서 밥을 먹고 양곤 동물원에 가서 동물원을 동물원을 구경하였는데 여러 가지 동물을 보아서 재미있었고 동물들과 사진 찍는 것도 재미있었다. 그리고 숙소로 돌아와서 쉬다가 라 쇼 레이 샨 레스토랑을 가서 저녁을 먹고 숙소에 돌아와서 쉬다가 회의하고 씻고 잤다.

2/23

아침에 일어나서 아침을 먹고 쉬다가 보족 아웅산 뮤지엄에 가서 구경하고 숙소로 돌아와서 쉬다가 999샨 누들로 가서 점심을 먹고 숙소로 돌아와서 쉬다가 럭키7으로 가서 저녁을 먹고 간식과 물을 사서 숙소로 돌아와서 회의하고 씻고 잤다.

2/24

아침에 일어나서 씻고 짐싸고 쉬다가 체크아웃 후 짐 맡기고 ykko 식당으로 갔는데 나는 배가 아파서 점심을 먹지 못하여서 아쉬웠다. 그리고 공항으로 가서 방콕행 비행기를 타고 방콕에 도착하였다. 숙소에서 쉬다가 회의하고 씻고 잤다.

2/25

물놀이를 하려고 알람을 맞추어 놓았는데 알람을 꺼버리고 자는 바람에 물놀이를 조금밖에 하지 못해서 정말 아쉬웠다. 씻고 점심을 먹고 지하철을 타고 씨암 파라곤으로 가서 쇼핑을 하고 저녁을 먹었다. 숙소로 돌아와서 느낌 나누기를 하고 씻은 후 잤다.

2/26

아침에 일어나서 짐 챙기고 로비에 모여서 택시를 타고 공항에 도착하였는데 정인이언니네 팀이 차가 막혀 늦어서 나는 정말로 비행기를 타지 못 하는 줄 알고 조마조마 했는데 다행히 시간에 맞게 도착해서 비행기를 탈 수 있었다. 그런데 내가 호텔에 보조 가방을 놓고 왔는데 다행히 중요한 건 없어서 다행이었는데 비행기를 타고 생각해 보니까 여행일지 수첩이 보조가방에 있다는 것을 알고 절망감에 빠졌다. 비행기를 타고 방금 전에 눈을 감았는데 눈을 떠 보니 한국이었다. 우리는 무사히 교회에 도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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