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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인

(독서록)트로이와 크레타

by 미르 posted May 17,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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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로이와크레타]

.트로이와 크레타/한스 바우만 2014.5.15. 김정인

 

고고학자로서 슐리만은 아버지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다. 슐리만이 말을 시작할 때부터 그의 아버지는 고대 영웅들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 이야기는 호메로스의 영웅들에 빠져있는 슐리만에게 트로이 발굴에 대한 야심을 품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그렇게 그는 성인이 되었고 그는 배를 타게 되었다. 그렇게 배를 타고 가고 있을 때 배가 난파되었고 그는 기적적으로 살아났다. 또한 그의 짐가방이 그가 있는 곳으로 떠밀려옴으로서 그는 선원들의 부러움을 샀다. 그는 네덜란드에서 자신의 운명을 개척하기로 하며 네덜란드로 갔고 그는 암스테르담의 어느 상점에서 연봉600굴덴을 받는 경리사원이 되어있을 때 쯤 7개의 언어로 편지를 읽고 쓸 수 있었다. 한달 후 그의 연봉은 100굴덴으로 올랐다. 슐리만은 미국으로 가서 변호사의 딸과 결혼하였다. 하지만 그녀는 슐리만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고 두 사람의 결혼생활은 점점 불행해져갔다. 그래도 사업은 승승장구했다. 슐리만은 엄청난 부를 축적하였고 그 사이에 다른 언어들도 많이 배웠다. 1898년 슐리만은 발굴 작업을 시작하기 전에 개인적인 일들을 처리하기 위해 미국으로 갔다. 그는 자신을 이해해주지 않았던 러시아인 아내와 이혼하였고 동시에 그는 아테네에 있는 친구에게 그리스 여자를 소개시켜 달라고 편지를 썼다. 곧 그는 아름다운 처녀 소피아와 결혼하였고 발굴 작업을 함께 할 동반자를 얻게되었다. 그는 히사를리크 언덕으로 갔고 그 언덕을 1000프랑에 사려고 하였다. 하지만 터키의 문화부 장관이 이 사실을 눈치채고 먼저 히사를리크 언덕을 사들였다. 그는 히사를리크 언덕의 발굴허가서를 받아내었고 그는 발굴을 시작하였다. 그는 몇군데 표적을 정해놓고 무조건 땅을 뚫어 나갔다. 슐리만은 호메로스의 트로이가 히사를리크 언덕의 제일 아래 지층에 묻혀있는 것이 틀림없다고 더욱 확신하였다. 그러나 고대 트로이가 실제로 존재했음을 증명하는 증거로 보이는 유물을 여러 개 발견했음에도 슐리만은 항상 밀려드는 의구심을 떨쳐내지 못했다. 발굴 현장에서 나온 것들은 호메로스가 서술했던 건축물들과 미묘하게 달랐고 서로 다른 시대에 만들어진 그릇과 도구들이 한데 섞여있는 경우가 많았다. 마침내 슐리만은 여러개의 금붙이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는 보물들을 바구니에 담아 부나르바시까지 운반하였다. 슐리만은 발굴을 통해 어느 누구보다 아카이아 인들에 대한 많은 것들을 알게되었다. 그는 호메로스와 트로이에 대한 자신의 모든 의문에 답을 얻을 수 있을 때까지 잠시도 쉬지 않았다. 피르호의 현명한 충고와 지금까지의 발굴 경험을 토대로 슐리만은 발굴 작업에 한층 더 신중을 가했다. 히사를리크 언덕은 매번 새로운 놀라움을 안겨주었다. 거기서 만족하지 않고 슐리만은 1881년에도 혹시 다른 곳이 트로이 인의 거주지가 있지 않을까 하여 말을 타고 트로아스 지방을 돌아다녔다. 두 번째 회의가 열린 해 슐리만은 아내와 아이들이 있는 아테네에서 크리스마스를 보낼 예정이었다. 그 전에 그는 독일에 들러 귀 수술을 받았다. 수술 후 체력에 자신이 있었던 슐리만은 상처가 채 아물기 전에 퇴원을 하였다 그리고 프랑스와 독일을 오가며 바쁜 일정을 소화했다. 그 결과 이탈리아로 가는 열차에 몸을 실었을 때 쯤 슐리만의 몸 상태는 급격히 나빠졌다. 결국 슐리만은 그동안의 발굴 작업에서 훌륭한 동반자가 되어 주었건 소피아를 다시는 보지 못하게 되었다. 나폴리의 한 광장에서 쓰러진 슐리만은 혼수 상태에서 영영 깨어나지 못하였다. 그는 18개국의 언어에 능통하엿지만 한 마디로 할 수 없었고 18901226일 슐리만은 숨을 거두었다. 20세기의 가장 놀라운 인물 중 한 사람인 하인리히 슐리만은 그렇게 세상을 떠났다. 그는 아무도 걷지 않는 길을 앞서 걸어간 선구자이자 개척자였다.

 

느낀 점: 책 내용이 재미있었고 슐리만이 대단한 인물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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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호

제목-프로파간다 지은이-에드위드 버네이스 2014년 5월 17일 유지호

by 고백 posted May 17,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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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프로파간다 지은이-에드위드 버네이스 2014517일 유지호

 

선전이라는 단어는 1622년에 처음 나왔다. 당시 교황 그레 고리우스 15세는 전 세계를 무대로 한 프로테스탄티즘의 급속한 확산에 충격을 받고 로마 교황청에 부랴부랴 새로운 부서를 추가했다. 그렇게 해서 탄생한 포교성성은 신대륙과 그 외 지역에서 교회의 선교 활동을 감독하는 역할을 맡게 됐다. 문제의 단어는 19세기까지도 가톨릭의 기운을 강하게 유지하고 있었던 듯하다. 1차 세계대전 이전에는 선전이라는 단어가 경멸의 의미 보다는 중립의 의미로 사용됐다. 예를 들어 옥스퍼드 영어 사전에서는 문제의 단어를 다음과 같이 정의하고 있다 특정한 원칙이나 행위를 전파하기 위한 제휴나 체게화된 계획 또는 일치된 운동. 따라서 선전은 정부 관리 들에게 두려움과 반감을 불러 일으키는 도구라기보다 그 단어를 사용하는 저자와 그의 목적 그리고 보는 사람의 관점에 따라 다른 결과를 가져오는 것으로 인식 되었다.

선전은 거짓이 무척 많다. 오늘날 공중의 건강을 위협하는데도 보도되지 않고 있는 사례중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이러한 경우에서는 불의를 폭로하는 기자가 선전가의 적이 될 수밖에 없다. 전자가 대중의 알 귄리에 이바지한다면 후자는 대중의 알 권리에 거슬러 일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인간은 대개 스스로 감추고 있는 동기에 영향을 받아 행동한다는 이러한 일반 원리는 개인 심리뿐만 아니라 대중 심리에도 적용된다. 따라서 유능한 선전가가 되려면 왜 그런 행동을 하는지에 대해 당사자들이 제시하는 동기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이지 말고 그러한 행동 이면에 숨어 있는 진짜 동기를 파악해야 한다. 사회 구조,집단과 개인의 관계, 소속감을 이해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기술자는 기관차의 실린더와 피스톤에 대해서 모두 알더라도 증기가 압력을 받으면 어떻게 작용하는지 모른다면 엔진을 작동할 수어 없다. 인간의 욕망을 이해해야만 현대 사외라는 거대하면서 짜임새가 느슨한 기계를 비로소 조종할 수 있다. 일정한 자극을 반복해서 가하면 습관으로 굳어진다는 것이,바꾸어 말해 어떤 생각을 자꾸 하다 보면 확신으로 자리잡는다는 것이 행동주의 심리학의 학설 가운데 하나였다. 예를 들어 피아노를 판다고 가정해보자. 그렇다면 직접적인 호소로 온 나라를 뒤덮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소비자가 새 피아노가 아니라 새 자동차에 돈을 쓰려는 계획을 세우는 진짜 이유는 무엇일까? 음악이라는 상품보다 교통수단이라는 상품을 더 많이 원하기 떄문에? 꼭 그렇지만은 않다 그가 자동차를 구입하는 이유는 자동차를 구입하는 것이 현재의 집단 습관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현대의 선전가는 그러한 습관을 수정할 환경을 조성하는 작업에 들어간다. 유명한 실내 장식가가 설계한 시대별 가정 음악실을 전시하는 행사를 조직하고 전시회에 대한 관심을 고조시키기 위해 특별한 행사나 기념식을 열어 유명한 바이올리니스트, 유명한 예술가등등 대중의 구매 습관에 영향을 미친다고 알려진 사람들을 초대한다. 이들 유명 인사는 다른 집단에도 영향을 미쳐 대중의 의식 속에 전에는 없었던 가정 음악실이라는 개념을 들여 앉힌다. 그리고 영향력 있는 건축가들에게 가정 음악실을 만들라고 설득한다. 곧이어 그들은 일반 대중에 머릿속에 가정음악실이라는 개념을 심는다. 가정 음악실이 받아들여진다면 그 이유는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집에 이미 음악실이 있거나 응접실 한 구석을 음악실 대용으로 따로 비워둔 사람들도 자연히 피아노 구입을 고려하게 된다. 그러면서 스스로 떠올린 생각이라고 여긴다. 기존의 상술 아래서 제조업자는 잠재 구매자에게 피아노 좀 사세요 라고 말했다. 새로운 상술은 그 과정을 완전히 뒤바꾸어 잠재 구매자가 제조업자에게 오히려 피아노 좀 파세요 라고 말하게 한다. 이게 바로 선전이다.

 

느낀점-책을 읽을 때 집중하지 않았나 보다. 읽고나니 무슨 내용인지 몰랐고 그래서 요약도 잘못한 것 같아서 아쉽다. 책이 선전이라는 새로운 주제를 다루어서 내용은 흥미로운 것이 많았다.


정우

붕어빵에도 족보가 있다.

by 명화 posted May 17,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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붕어빵에도 족보가 있다.

지은이:윤덕노

출판사:청보리

내용:찐빵

찐빵은 이름에서 짐작할 수 있는 것처럼 수증기로 쪄서 익힌 빵이다. 우리말로 빵이라고 하지만 상식적으로 알고 있는 전통적인 의미의 빵과는 거리가 멀다. 찐빵의 기원은 1341년 원나라에 유학을 갔던 일본 승려 류잔선사가 일본으로 귀국하면서 함깨 일본에 건너 온 임정인 이라는 중국 사람이 만들었다고 한다. 임정인은 일본에 와서 절에서 만두를 빚어 팔면서 살았는데 고기 대신 단팥을 넣어서 새로운 만두를 만들었다. 일본에서는 육식 금지령이 있었는데 임정인은 고기를 먹지 않는 일본인을 대상으로 돼지고기 대신 일본사람들이 좋아하는 단팥을 넣어 만두를 빚은 것이다.

붕어빵

붕어빵의 족보는 서양의 와플과 동양의 만두가 합쳐진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1960년대 무렵 거리에서 붕어빵을 사먹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전에도 붕어빵이 있었지만 풀빵이라고 불렀던 국화빵이 대세였다고 증언하는사람이 더 많다. 사실 붕어빵이나 풀빵은 모양새만 다를뿐 만드는 방법은 같다. 사람들 마다 다르지만 붕어빵의 원조를 일본의 도미빵에서 찾는 사람들도 있다. 도미빵은 일본에서 만들어진 도미모양 빵인데 서민들은 비싼 도미를 먹는 것처럼 행복해 했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붕어빵도 예전 서울에서 비싼 붕어의 모습을 낸 빵이 도미빵하고 비슷하다.

호떡

호떡은 오랑캐라는 뜻의 한자 호와 우리말 떡이 합쳐진 이름이다. 호떡은 옛날에 중앙 아시아 지역에서 발달한 빵이다. 옛날식으로 표현하자면 흉노족 돌궐족 선비족이 먹었던 빵이니 오랑캐들이 먹는 빵이라는 뜻에서 호떡이라고 불렀던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도 호떡을 간식으로 먹었지만 역사적으로 호떡은 황제나 귀족들이 먹었던 귀한 음식이었다. 호떡은 한나라 때 중국에 전해졌다고 한다. 명나라 때 장대가 야한선이라는 책에 중국 떡의 계보를 밝혔는데 호떡은 한나라 때 김일이 전한 것이라고 적어 놓았다. 김일은 흉노족 왕자였는데 한무제 때 중국으로 귀화하면서 호떡을 전했다는 것이다.

단무지

소금에 무를 절인우리나라의 짠지처럼 단무지는 무를 소금과 쌀겨 등에 절여 먹는 반찬으로 일본말로는 다쿠앙 이라고 한다. 단무지라는 뜻으로 알고 있는 다쿠앙의 원래 명칭은 다쿠앙츠케 다시 말해서 다쿠앙이 절인 채소라는 말을 줄여 놓은 것이다. 임진왜란이 끝난 직후 에도에 다쿠앙 소오호라는 일본에서 유명한 승려가 잇었다. 다쿠앙 스님은 지금도 도쿄에 남아있는 동해사를 창건했다. 어느 날 막부의 3대 쇼군인 도쿠가와 이에미쓰가 동해사를 방문했을 때 주지인 다쿠앙은 평소 스님들이 먹던 소금과 쌀겨에 절여 두었던 무를 꺼내 이에미쓰한태 주었다. 이에미쓰가 이것을 먹고 다쿠앙이 절인 채소라고 불렀다.

마시멜로

마시멜로는 기워넌 2000년 이전부터 이집트 사람들이 먹었다. 고대 이집트에서는 신들에게 마시멜로를 제물로 바쳤고 파라오들도 먹었다. 하지만 과자라기보단 의약품에 가까웠다. 나시멜로를 처음먹었던 이집트 사람들은 마시멜로 나무 뿌리에서 추출한 수액을 가공해서 먹었는데 소염 진통 성분이 있었다고 하다. 마시멜로는 19세기루반부터 과자로 바뀌게 된다. 프랑스에서 마시멜로를 켄디처럼 만들기 시작했다고 하는데 사탕 제조공장에서 마시멜로 뿌리에서 추출한 수액을 솜사탕을 만드는 틀에다가 넣고 솜사탕을 만드는 것처럼 빙글빙글 돌려가며 마시멜로를 만들어서 팔았다.

느낀점:이책을 읽으면 매우매우 배고파진다. 나도 이 독후감을 쓰기 전에 밥을 먹었는데 지금도 배고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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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현

음식 그 두려움의 역사

by 아람 posted May 16,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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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 그 두려움의 역사

하비 리벤스테인 저 2014.5.16 유재현

음식 그 두려움의 역사

품 공포의 시작, 세균 공포증

19세기에 미국은 세균과의 전쟁이 일어났다. 새로운 도구인 현미경이 발명되면서부터 세균을 볼 수이 있게 되었다. 그러면서 세균들의 실체를 알게 되었다. 세균은 엄청난 번식력과 감염율을 가지고 있었다. 세균은 단 5일이면 지구의 모든 바다를 감염시킬 정도로 감염율이 뛰어났다. 그래서 미국은 전국적으로 소독운동을 실시하였다. 그렇게 세균과의 전쟁을 치르다가 세군을 옮기는 가장 주요한 생물이 파리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미국은 파리가 사자나 뱀 호랑이보다 더욱 더 무서운 생물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전국적으로 파리를 없애는 운동을 펼쳤다. 파리를 잡아오면 돈을 주는 포상제를 실시하였다. 그래서 한 12세의 소년은 파리를 90L를 잡아와서 100달러를 받아갔다. 그리고 미국의 한 고등학교의 교사는 파리채를 발명하였다. 그렇게 세균, 파리와의 전쟁은 15년 동안 이어졌다.

영유아 사망의 주범, 우유?

19세기 미국은 현미경이 발명되면서 세균을 볼 수 있었다. 그래서 파리와의 전쟁이 났고 그 전쟁이 끝났다. 그리고 우유에도 문제가 있는 것을 발견하였다. 장티푸스같은 세균이 우유에서 번식을 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당시 우유는 도시의 폐수를 먹고 자란 소들의 우유를 판 것 이였다. 그래서 더 이상 우유를 도시의 소들의 우유를 쓰지 않고 시골에서 자란 소들의 우유를 배달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사람의 손에 세균들이 많다는 사실을 알고 우유공장에서 일하던 모든 사람들을 해고를 하고 모두 기계화를 시켰다. 그리고 살균법을 만들었다. 초고속 살균, 고속 살균, 저속 살균이 있는데 저속 살균이 제일 비싸다. 그리고 우유의 값이 전체적으로 다 비싸졌다. 그래서 빈곤층들은 우유를 마시지 못하고 많은 사람들이 해고를 당했다. 그래서 빈곤층과 해고를 당한사람들이 시위를 하였다.

장내자가 중독, 요구르트가 대안?

19세기 후반 매니치코프가 시큼한 우유인 요구르트를 만들었다. 그때 장내자가 중독의 약이 부족하였는데 매니치코프가 요구르트를 발명하면서 요구르트를 마시면 장내자가 중독과 변비가 치료된다고 하였다. 그 당시 매니치코프의 발명은 혁명적이였다. 그런데 매니치코프는 요구르트를 불로불사의 약이라고도 하였다. 요구르트를 꾸준히 먹으면 140세 까지 살 수 있다고 하였다. 그래서 요구르트는 많이 팔렸다. 하지만 매니치코프가 71세에 죽으면서 요구르트의 설득력은 없어졌다. 그리고 요구르트는 팔리지 않았다. 그리고 얼마 뒤 요구르트는 다이어트 식품으로 다시 나왔다.

느낀점:재미있었고, 뭔가 엄청난 사실을 안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재현

일곱 개의 별을 요리하다

by 아람 posted May 10,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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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 개의 별을 요리하다

에드워드 권 저 2014.5.9 유재현

일곱 개의 별을 요리하

1장 앗살람 알라이 쿰

나는 비행기에 몸을 실고 20시간을 갔다. 나는 인도 방갈로의 위치한 ‘더 리라 팔레스 호텔’과 ‘리츠칼튼 뉴올 리언즈’ 의 총조리장 오퍼를 모두 정중하게 거절하고 배짱 좋게 두바이로 갔다. 나는 페어몬트 호텔에 도착하였다. 그리고 미지근한 물로 샤워를 하고 다음날의 일정을 확인하였다. 나는 다음날 인터뷰를 하였다. 3시간동안 했는데 정신이 없어서 하나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리고 2일에 걸쳐 호텔의 모든 부서와 미팅을 했다.

2장 소년, 요리를 만나다

나의 어렸을 적 꿈은 신부님 이였다. 그래서 고2부터 진로상담을 받으며 신학대학을 준비했다. 그런데 우리집의 모든 일은 할머니의 허락을 받아야만 했다. 근데 그때 할아버지가 돌아가셔서 집안의 분위기가 안좋았다. 그래서 할머니의 반대로 신부님의 꿈은 접어야만 했다. 그리고 요리전문대학에 갔다.

3장 호텔리어의 길

나는 전문대학에 들어가자마자 군대의 지원을 하여 바로 군대를 갔다. 왜냐하면 바로 군데에 가는 것이 취업에 유리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군대에서 나는 취사병을 하지 못했다. 나는 군대 제대를 하고 용평리조트에 갔다. 그때 한창 스키시즌이여서 사람이 많아서 요리사들이 부족했던 것이다. 그런데 나는 용평리조트에서 감자를 잘 못 깍아서 쫒겨났다. 그리고 취업의 대해 생각해보았다. 그리고 좋은 생각이 났다. 바로 호텔에 실습을 나가는 것이다. 그리고 죽을 듯이 실습을 다녔다. 그리다 마침내 리츠칼튼서울의 정사원으로 채용됬다.

4장 다시 원점으로

나는 리츠칼튼서울에서 알하다가 미국으로 갔다. 나는 미국의 마트에 가서 우유를 사먹엇다. 하지만 미국의 우유는 한국의 우유보다 맛이 더 진하고 더 달다는 것을 알았다. 그런데 옆에 있던 한국인 동료가 내가 마신 것은 우유가 아니고 커피에 넣는 크림이라고 했다. 나는 미국의 식재료에 익숙해 질려고 매일 호텔의 일이 끝나면 마트로 가서 치즈를 사먹었다. 그렇게 나는 6개월 동안 1천여종의 치즈를 사먹었다, 그리고 미국의 식재료의 익숙해 졌다.

5장 돌고 돌고 돌고

나는 센프란 시스코에서 세컨드 쿡 으로 일을 했다. 세컨드 쿡은 군데에서 치면 이등병 정도이다. 나는 아시아인이라고 놀림을 받았다. 하지만 나는 죽을 힘을 다해 일을 하엿다. 그러자 총주방장이 나를 불러서 니같은 독종은 처음이라면서 3개월 만에 퍼스트 쿡으로 승지을 시켜 줬다. 그리고 2년 만에 조리과장이 되었다. 남들 10년걸리는 것을 나는 2년 만에 했다. 센프란시스코에서 일하다가 나는 한국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한국에서 1년동안 있다가 중국으로 갔다. 중국에서는 한류열풍으로 인해 한국인을 놀리거나 무시하지 않았다. 나는 중국에서 일하다가 두바이로 스카우트 됬다.

6장 김치셰프

나는 두바이 페어몬트 호텔에 갔다. 그리고 페어몬트에서 요리를 하였다. 그리고 새볔에 일어나 출근 준비를 하고 있는데 전화가 걸려왔다. 런던에 있는 헤드헌터 나오미 였다. 헤드헌터 나오미는 나에게 버즈 알 아랍에서 수석총괄조리장을 뽑고 있으니 지원을 하라고 했다. 나는 버즈 알 아랍에 지원을 했고, 합격이 돼서 수석총괄조리장으로 스카웃트가 됬다.

7장 마음으로 마음을 담는다는 것

내가 가장 반기고, 가장 두려워하는 손님은 어린이 이다. 어린이들은 음식이 맛이없으면 울거나 음식을 먹지 않거나 맛이 없다고 직접적으로 얘기를 한다. 그래서 가장 두려워 한다. 하지만 음식이 맛이 있으면 음식을 다 먹고 그릇을 핥고, 맛이 있다고 직접적으로 럐기를 한다. 그래서 제일 반기는 손님이다. 나는 그래서 어린이들의 음식을 특히 신경쓴다.

8장 성공을 위한 자기 연출법

세계적인 셰프가 되기 위해서는 영어가 필요하다. 나는 처음 미국에 갔을 때 영어를 못해서 호텔의 일이 끝나면 새볔에 어학원에 가서 영어를 공부하였다. 그리고 호텔에서 동료와 대화를 하면서 영어회하 연습을 하였다. 그렇게 영어를 미친 듯이 하여서 지금 이 자리에 있을 수 있는 것 같다. 이제 나에게 남은 꿈은 한국에 세계 최고의 요리학교를 세우는 것이다. 그럴려면 일단 돈을 많이 벌 것이다. 그리고 요리학교를 세우면 나이 제한을 없앨 것 이다. 세계적인 셰프가 될려면 조기교육도 필요할 것 이다.

느낀점: 에드워드 권은 대단한 것 같다. 그리고 책을 읽는 데 너무 자기자랑만 하는 것 같았다.


선우

십대를 위한 재미있는 어휘 교과서

by 자유 posted May 10,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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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대를 위한 재미있는 어회 교과서 십대를 위한 재미있는                               

김선우

아킬레스건:아킬레스건 은종아리 힘줄을 말한다. 아킬레스건 의 끊어 지면 잃어나질 못한다. 그레서 아킬레스건 으로 은퇴한 선수들의 많다. 그리스 전설은 아킬레스란 병사의 어머니가 아킬레스가 스틱스 강의 담가 불사신으로 많든다. 하지만 아킬레스건 은 어머니가 잡고 있어 전쟁중 아킬레스건 의 화살을맞아 죽는다. 그리고 슈퍼맨 등의 영웅들도 약점을 가지고 있다. 국립국어원은 아킬레스건을 치명적인 약점으로 쓰기로했다.

리콜:리콜은 제조업자가 이미완성된 제품의 결함의 생겨 돈을 안받고 수리 해주는 제도이다 리콜은 A/S랑은 다르다 A/S는 이후 서비스고 리콜은 아예 다거두어 드리는 것이다. 리콜은 사고예방 에선 좋은 제도이지만 하지만 소비자들은 번고롭기만 하다. 토요타는 2009에서2010까지 1000만대를 리콜하여 회사와 제품이미지가 모두 추락랬다. 그레서 현대,기아 같은 우리나라 회사들의 이익을 얻었다.

다국적 기업:사람마다 일본기업 한국기업 같의 국적의있어도 그중여러 개인기업을 다국적 기업이라 한다. 나이키 네슬러 같은경우가 다국적 기업이다. 다국적 기업은 동인도회사,동양척식주식회사처럼 식민지 국주의 국가들의 식민지의 세웠던 회사이다. 그것의 다국적 기업의 시초이다. 그런회사들은 자기나라의 본사를 둔다. 국제와시대가 되면서. 외국의 회사를 두거나 외국인 직원을 채용하는 기업의 너무 많아. 다국적기업 으로 저의 내리기 힘들다. 이렇게 정의 할 수 있다. <두 개 이상의 국가의 걸쳐 현지법인을 보유한체 국경에 구에받지 않으면 자유롭게 사업을 하는 기업> <여러나라 사람들의 의해 경영되고 여러나라 사람들의 주식을 나눠갔는 기업> 이런기준이면 우리나라 삼성,두산,한화 등여러 대기업은 다국적 기업이다. 다국적 기업은 실제로 여러나라 경제의 기여해 발전의 도움을 주고 있다. 다국적 기업 이라도 모국의 있다 삼성은 한국계 SONY는 일본계 GM은 미국계 등등 의 있다. 아무리 좋게 초장해도 구기업의 어떻게 행동하는지 중요하다.

지구 온난화:지구 온난화 는 지국 표면의 더워 지는 현상이다. 그 때문에 기상변화 생태계 파괴 등등 을한다. 하지만 1970년대는 구름의 많아 추워 질거라 예상했지만 1980년데 나사의 제임스 핸슨 박사가 지구 온난화 의 위험성을 미국의회에서 발표했다. 세게 대다수 기상학자들은 지구 온난화 의주범은 인간의 배출하는 온실가스 이산화탄소 같은 것이다. 지구가 온나화 되면 어떤지역은 사막의 되고 몰디브 같은곳은 곧 바다의 잠긴다. 그레서 기후변화 협약을 체결 하고 온실가스를 줄이기로 했다. 하지만 잴로 많이 차지하는 중국,미국 은 반대했다. 그이유 는 온실가스가 줄면 그자국 기업의 부담을줘 경제를 어려워진다는 이유었다. 그레서 나머지 나라는 열심히 줄이지만 두강대국 은 여전히 많이써 늘어나는 게 현실이다.

 

느낀점:경제 와 환경 이둘의 공존하는 것은 어렵겟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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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록)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

by 미르 posted May 08,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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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미 슈퍼스타즈의 마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박민규 2014.5.7. 김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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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2년이 시작되던 1월 나는 초등학교 졸업을 앞둔 12살의 소년이었다. 우리 집은 지극히 평범하였다. 나는 조상 대대로 평범한 집안의 외동아들이었던 것이다. 겨울 방학 내내 나는 중학생이 되기 위한 준비에 몰두해 있었다. 나는 그 때 열심히 알파벳을 외웠다. 교복을 맞추러 시내에 간 것은 그로부터 며칠이 지난 후였다. 팔불출인 우리 아버지는 열심히 내 자랑을 하였고 주인도 덩달아 같이 내 칭찬을 하기 시작하였다. 아버지는 나에게 큰 기대를 하고 있었고 나의 마음은 답답해졌다. 횟집에서도 아버지는 내게 위인들 이야기를 해주셨고 횟집의 문을 나설 때까지 나는 내내 그 바다의 한복판에 두둥실 떠 있는 기분이 들었다. 2월이 되면서 내가 살던 인천에는 프로야구의 열기가 서서히 번져 나가기 시작하였고 나는 삼미가 우승할거라 생각하였다. 나는 삼미 슈퍼스타즈 팬클럽에 가입하였다. 하지만 삼미 팀은 야구를 매우 못했고 지는 일이 번번했다. 그렇게 삼미 팀이 무너져 가는 사이 나는 고등학생이 되었고 야구에 관해서는 더 이상 흥미를 느끼지 못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조성훈이 나를 찾아와 고별전을 보러가자고 하였다. 나는 승낙하였고 야구장으로 갔다. 나는 그곳에서 삼미 슈퍼스타즈 선수들이 길게 열을 지어 문을 들어서는 인천 팬들을 맞이하고 있는 것을 보았고 그것을 본 순간 갑자기 눈시울이 붉어져왔다. 그렇게 3년 6개월이라는 짧은 세월동안 120승 4무 211패의 전적을 기록하고 삼미 슈퍼스타즈는 역사의 저편으로 사라졌다. 경기를 보고난 뒤 나는 영화를 보러갔고 밤늦게 집에 돌아왔다. 나는 당당하게 아버지 앞으로가 죽는 한이 있더라도 좋은 대학에 가겠다고 그 때까지만 저를 뒷바라지 해달라고 말하였다. 그날 밤 나는 내 인생은 별 볼일 없는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나는 앞으로 평범하게 살지 않으리라 다짐하였다. 성적은 나날이 향상되었고 나는 미친 듯이 공부를 하였다. 곧 나는 전교 1등이 되었고 세상은 나의 소속이 완전히 바뀌었다는 것을 빼고는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다. 나는 고3이 되었고 그해 여름방학 나는 조성훈의 방에서 금서들을 독파하였다. 나의 성적은 추락하기 시작하였고 나는 다시 마음을 다잡고 공부를 하기 시작하였다. 그렇게 나는 일류대에 들어갔고 2학기가 시작되면서 나는 자취를 결심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밤에 술이 취해 쓰러진 여자를 만나게 되었고 그 여자와 친해졌다. 나는 그 여자를 좋아하였다. 나는 그 여자와 자주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고 그녀는 나에게 잘 대해 주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조성훈의 부모님이 교통사고로 돌아가셨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고 나는 조성훈의 집에 계속 전화를 걸어 보았지만 아무도 전화를 받지 않았다. 얼마 뒤 나는 편지를 받았고 그 편지에는 일본으로 간다는 말이 적혀 있었다. 묘한 기분이었다. 그 해 겨울 아버지가 쓰러지셨다. 콩팥쪽에 결석이 생겼다는 진단이 나왔고 생각보다 심각한 대수술을 하였다. 1990년의 어느 봄날 나는 그녀로부터 결혼을 할 거라는 얘기를 들었다. 그 와중에 아버지는 직장을 그만두셨고 나는 아르바이트를 하기 시작하였다. 내가 소속된 학교에 자식을 보내고 싶어 하는 돈 많은 부모들의 자제들을 가르치는 일이었다. 아버지의 월급보다 많은 액수의 돈들이 들어오기 시작하였다. 가족들의 표정은 밝아졌지만 나는 즐겁지 않았다. 그러면서 나는 방황하기 시작하였고 그러던 중 나는 졸업을 하게 되었다. 나는 국내 최대의 기업으로부터 입사통보를 받았고 나의 회사생활은 힘들었다. 그렇게 4년을 보내니 나의 아내가 이혼하자고 하였다. 대화도 거의 없었고 매일 자정 무렵에 집에 들어가 새벽 5시에 집에서 나왔다. 그렇게 이혼을 한 후 나는 회사에서 해고를 당하였고 나는 직장에서도 살아남지 못했고 가정에서도 실패하고 말았다. 그 뒤 나는 조성훈을 만났고 그의 말대로 살아가기 시작하였다. 그러자 시간은 많았고 나는 여유로우면서도 안정적인 삶을 살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나는 점점 행복해져갔고 이혼한 아내와 사이도 점점 좋아졌다. 결국 나는 아내와 재결합을 하였고 아이도 생겼다.

 

느낀 점: 앞 부분에 야구에 관련된 얘기가 많이 나왔는데 못 알아들어서 재미가 없었지만 뒤로 갈수록 재미있어져서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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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유 2014.05.08 09:33
    와! 이 책 내가 제일 재미있게 봤던 책 중 하나야... 나는 야구도 좋아해서 재미있게 봤댔지ㅎㅎ 혹시 정인이 시간되면 같이 야구보러 갔음 좋겠다~^^

정우

포탈 앤딩 봤다!!!!

by 명화 posted May 06,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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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탈2 레고이야기

포탈이라는 스팀 게임을 다 했습니다.

앤딩보고 감동...

포탈한번 해보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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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in 2014.05.11 04:34
    나도 여기서 했는데 블라도슨가?불라도슨가 더럽게 쎄던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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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명화 2014.05.15 22:15
    글라도스

지호

제목-모모 지은이-미하엘 엔데 2014년 5월 3일 유지호

by 고백 posted May 03,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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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모모 지은이-미하엘 엔데 201453일 유지호

 

사람들이 아주 다른 말을 쓰던 옛날옛날에는 원형 극장이 아주 많았다. 그 극장들은 오늘날의 서커스장과 비슷하지만 커다란 돌로만 지어져 있다는 점은 달랐다. 사람들은 무대에서 그려지는 감동적인 이야기나 우스운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며 좋아했다. 그 후로 수천 년의 세월이 흘렸다. 어떤 어린아이 하나가 원형극장에서 산다는 소문이 퍼졌고 그아이는 옷도 매우 커보였고 신발도 짝짝이였다. 마을 사람들은 그 아이를 위해 침대를 만들어주고 난로를 지어주고 옷을 주었다. 그 아이에 이름은 모모였다. 모모는 어리석은 사람이 갑자기 아주 사려 깊은 생각을 할수 있게끔 귀기울여 들을 줄 알았다. 그래서 마을 사람들은 근심이나 걱정이 생기고 누구와 싸웠다면 항상 모모를 찾아가고는 했다. 모모에게 속마음을 털어 놓다보면 자기가 근본적으로 잘못 생각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는 사람들이 많았다. 어린아이들도 매일매일 원형 극장을 찾아와서 상상력을 뽐내며 모험놀이를 하곤 했다. 모모와 마을 사람들은 행복했다. 모모는 관광 안내원 기기에게 없어서는 안될 소중한 존재가 되었다. 모모에게 이야기 할때면 새로운 이야기가 수문이 열리듯 쏟아져 나왔다. 기기는 모모에게 이야기 하는 것이 좋았고 모모도 이야기를 듣는 것이 좋았다. 그러나 평화롭던 마을에 회색 신사들이 들이 닥치기 시작했다. 그들은 사람들에게 시간을 저축하면 좋다고 설득하면서 사람들에 시간을 뺏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시간을 아끼면 아낄수록 가진 것이 점점 줄어들었다. 그러자 원형극장에 모모를 찾아오는 친구들도 줄어들기 시작했다. 어느날 모모에게도 회색 신사가 찾아왔다. 회색 신사는 모모가 친구들에게 아무런 도움이 안된다고 했고 시간을 저축하라고 했다. 그러나 모모는 그런 꼬드김에 넘어가지 않았다. 회색 신사는 이런 사람을 처음 봤고 자신들에 목적을 모두 말해 버렸다. 사람들에게 시간을 뺏어야 자신들이 많이 생긴다고 하였고 그래서 사람들에게 시간을 빼낸다고 하였다. 회색 신사는 돌아갔고 모모는 친구들을 모아 시위를 하기로 하였다. 아이들과 플랜카드를 만들어서 거리를 돌아다녔지만 정작 중요한 어른들은 한명도 참여하지 않았다. 그러나 회색 신사들은 아이들이 시위하는 것을 보았다. 그래서 모모에게 진실을 말한 영업사원을 없애고 모모를 찾아서 해코지를 하기로 했다. 그러나 모모는 등에 글씨가 나타나는 거북이가 자신을 찾아와서 등껍지로 자신을 따라오라고 해서 사라지고 난후였다. 모모는 거북이를 따라갔다. 이상하게 엄청 느릿느릿가는 데도 회색신사를 한명도 만나지 않았다. 모모는 언제나 없는 거리에 들어갔다. 그리고 아무 데도 없는 집으로 들어갔다. 거기에는 호라 박사가 시간을 나누어 주는 일을 하고 있었다. 박사에 집에서 머물면서 회색 신사에 이야기를 들었다. 사람들은 회색신사들에게 잡혀 살고 있으며 조만간 회색신사와 싸우게 될거라고 했다. 그리고 어느날 모모는 아침에 일어나보니 원형극장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모모 근처에는 친구들이 아무도 없었다. 회색 신사들은 어린이들은 보육소에 모두 넣도록 하였고 기기를 유명하게 만들어서 시간이 없도록 하였다. 모모는 옛친구들을 찾아갔다. 모두 시간에 쫒겨서 바쁘게 살았다. 자신과 이야기 할 시간도 없다면서 쫒아내기 일수였다. 기기를 찾아갔지만 기기는 모모를 매우 반가워했지만 곧 약속이 있다며 떠나버렸다. 모모는 다시 호라 박사에게 가기로 했다. 거북이 카시오페라를 따라서 호라 박사에게 갔다. 회색신사들이 따라왔다. 호라 박사는 자신이 시간을 멈추어 줄태니 회색신사들에 본거지에 들어가서 회색신사들이 뺏은 시간을 풀어주라고 하였다. 그리고 시간이 멈추었고 시간이 얼마 않남은 회색 신사들은 자신들에 본부로 제빨리 돌아가기 시작했고 남은 시간이 없는 신사들은 하나 둘씩 사라졌다. 모모는 회색신사들을 따라가서 본부로 들어갔다. 회색 신사들은 마침내 모두 없어졌고 모모는 시간을 해방시켜서 사람들은 시간이 풍부해졌다. 옛 친구들은 모두 원형극장으로 돌아왔고 서로 얼싸안고, 큰소리로 웃고,왁자지껄하게 떠들었다. 모모는 맑은 목소리로 노래를 불렀다.

 

느낀점- 오랜만에 소설을 읽으니까 재미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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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우

데스노트에 이름을 쓰면 살인죄 일까

by 명화 posted May 03,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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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노트에 이름을 쓰면 살인죄일까?

지은이:김자룡

출판사:애플부스

내용:법을 어기는 것을 위법이라고 한다. 그러면 법에서 금하는 일은 어떤 것일까 많은 사람이 함께 모여서 평화롭게 살기 위해서는 해도 되는 일과 해서는 안되는 일을 구별해야 한다. 하면 안되는 일 중에서 사회적으로 용납할수 없는 일이 법에서 하지 말라는 위법이다. 위법을 하면 피해자가 생긴다. 법을 어긴 사람은 자신이 한 일로 생긴 피해를 책임져야 한다. 책임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하나는 다른 사람의 재산에 피해를 입히는 것에 대한 책임이고 또하나는 사회에서 하지 말하는 짓을 했을때에 대한 책임이다. 재산에 피해를 입힌 것은 보상 책임이 따르고 사람을 때리거나 물건을 훔친 것 같은 짓에는 처벌이라는 책임이 따른다. 의법한 일에 대한 책임을 두가지로 나누는 것은 다루는 법률이 다르기 때문이다. 지산 피해는 민법이 담당라고 몹쓸 짓은 형법이 담당한다. 민법은 주로 재산에 관한 일을 다루는 법률이다. 어떤 물건이 누구의 것인지 거리에서 주운 물건을 마음대로 가져가도 되는지 어떤 사람이 죽으면서 남긴 재산은 누구에게 물려줄 것인지를 모두 민법에서 다룬다. 이런 것에 대한 사건을 민사사건이라고 한다. 그리고 이런 일로 재판을 하는 것은 민사소송이다. 다른 사람을 때리거나 흉기로 해치거나하는 짓은 형법이 담당한다. 형법은 어떤일이 처벌을 받을 몹쓸짓이고 어떤 벌을 받아야 하는지를 정해놓은 법이다. 이런 일에 사건을 헝사사건이라고 부른다. 이런 일로 재판을 하는 것도 형사소송이라고 부른다.

형법<로봇은 살인을 해도 죄가 되지 않을까?>

법적으로는 로봇은 동물과 비슷한 취급을 받는다. 그래서 로봇의 주인에게 손해 배상을 받거나 로봇의 지인을 처벌하는 일은 가능할 수도 있다. 단 로봇의 종류에 따라 다르다. 로봇은 움직임에 따라서 크게 리모컨형 탑승형 자율형으로 나눌 수 있다. 리모컨 형은 로봇은 리모컨으로 로봇을 조종하는 로봇이다. 탑승형 로봇은 로봇에 직접 사람이 올라카서 조종을 하는 타입으로 자동차와 같은 원리로 움직인다. 탑승형 로봇은 혼자서는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조종사가 올라타서 집적 움직여서 시작한다. 에반게리온이라 로봇 태권 v건담등이 여기에 속한다. 리모컨 형이든 탐승형이든 로봇은 조종하는 사람이 시키는 대로 움직인다. 이런 로봇으로 사람을 해치거나 재산에 손해를 입히면 탑승자는 그에 상응하는 처벌을 받고 손해 배상을 해야 한다. 사람이 로봇을 도구로 사용한 경우이기 때문이다. 자동차를 운전해서 사람을 일부로 치거나 건물을 부수는 것과 같은 일이다. 하지만 자율형 로봇의 경우는 조금 복잡하다. 자율형은 사람이 조종하지 않아도 로봇이 알아서 움직이는 형태를 말한다. 트랜스포머나 터미네이더가 여기에 속한다. 이 자율형 로봇은 두 가지로 나눌서 있다. 하나는 사전에 프로그램된 대로 행동하는 로봇이다. 이런 로봇은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해서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사전에 입력해둔 명령대로 동작하는 것에 불과하다. 이런 로봇이 사람을 해치는 경우 재산에 손해를 입히면 로봇의 주인이 손해 배상을 해야한다.

민법<근대민법의 제2원칙>

어떤 사람이 천 만원을 줄 테니 피자 한 판을 배달해 달라고 했다. 그런데 나중에 돈을 지불한 사람이 너무 많이 준 것 같다면서 돌려달라고 하면 다시 줘야 할까? 이때는 민법의 두 번째 원칙인 사적자치의 원칙 혹은 계약 자유의 원칙에 의해서 나중에 돈을 돌려달라고 할 수도 없고 옆의 사람도 간섭을 할 수가 없다. 개인적인일은 지치 즉 알아서 한다라는 것을 원칙으로 삼은 것이다. 사적자치의 원칙에 의하면 개인의 재산 거래나 경제 활동도 국가가 이유 없이 간 섭하지 않고 개인의 자유로운 의사에 맡겨야 한다. 전화로 치킨을 주문하는 것도 계약이다. 치킨을 주문할 것인지 말것인지를 자유롭게 결정할 수 있는 자유가 계약 체경의 자유이다. 치킨 집에서 왜 요즘 주문이 뜸하냐고 항의할 수 없다. 어느 가게에서 주문을 할것인지 자유롭게 결정하는 것은 상대방 선택의 자유이다. 치킨집에 전화를 했더니 내 목소리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배달을 거절할수도 있다. 치킨집 주인도 손님을 고를 자유가 있기 때문이다. 계약 내용을 자유롭게 결정할 수 있는 것이 내용 결정의 자유이다. 또 어떤 방식으로도 계약을 할지 서로 자유롭게 결정할 수 있는 것이 방식의 자유다 전화로도 주문할수 있고 문자를 보낼수도 있다.

느낀점: 이책은 법에 관한 이야기를 영화나 동화 같은 겉들을 같이 써서 매우 재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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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현

앙토넹 카렘 평전 천재 파티시에, 프랑스 요리의 왕

by 아람 posted May 03,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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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토넹 카렘 평전 천재 파티시에, 프랑스 요리의 왕

에안 켈리 저 2014.5.3 유재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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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식가를 위한 연회

한 귀부인이 샹젤리제 거리에 마차를 타고 들어온다. 그 귀부인은 여행작가이자 아일랜드 급진파 문장가인 모건 부인이다. 그녀는 로쉘드 가문의 정찬의 초대를 받아서 로쉘드 가문으로 가고 있었다. 이 정찬의 요리사는 누구나 잘 알고 있는 앙토넹 카렘이였다. 1829년 7월 6일 정찬 12시간 전 만 명의 식사를 준비하기 도 했던 앙토넹은 이번 정찬을 준비하는 일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였다, 그렇긴 해도 준비는 그 전날부터 생 로슈 거리에서 시작됬다. 가재와 가자미, 뱀장어, 대구, 농어, 메추라기, 닭, 토끼, 비둘기, 쇠고기, 양고기 등이 파리의 레 알 시장에서 주문했다. 앙토넹은 도착 예정 시간에 맞추어 아이징글라스(생선의 젤라틴)와 송아지 육수도 준비되었고 크림이 배달되었으며 저택의 얼음 창고도 새로 채워졌다. 오전 7시 앙토넹이 도착하자 저택 주방은 정적이 엄습했다. 설거지를 하는 하녀들은 인사를 하였다. 앙토넹은 소매를 걷고 요리를 시작하였다. 앙토넹은 ‘프랑스식 서비스’를 원하는 프랑스 고용주들의 입맛에 맞춰 거의 모든 요리를 식사 시작부터 테이블에 올렸다.

발랑세 성: 루아르에서 보낸 1년

21세가 되자마자 앙토넹은 난셍 처음 파리를 떠나 탈레랑의 성으로 갔다. 남부 루아르의 베리와 샤토루 사이에 위치한 발랑세 성은 파리에서 율로로 며칠 걸리는 곳 이었다. 앙토넹은 탈랄세 성에 도착을 하였다. 앙토넹은 거의 하루종일 저녘식사를 생각하며 보냈다. 손님들이 아침미사에 참례하기 위해 분명 고약한 냄새가 났을 시골 성당으로 출발하기 gnjfTLs 전부터 앙토넹은 천장이 높은 커다란 주방에서 일을 시작하였다. 나폴레옹ㅇ이 스페인 통지권을 얻기 위해 싸우던 몇 년간 발랑세 성은 왕위에서 쫓겨난 스페인 왕가가 머무르는 겉만 멋진 포로수용소 역할을 했다. 앙토넹은 그들을 스스로 손님이라고 칭해야 했다. 6월 8일의 요리는 유독 고기가 많았다. 여덟 가지 고기 요리와 두 가지 생선 요리에 달콤하고 짭짤한 요리들이 곁들여졌지만 야채 요리는 단 두가지 뿐이였다. 그리고 식사시간이 길었을 것 이다. 발랑세 성의 거대하고 둥근 탑의 하인들도 주인이 잠들기 전에는 잠을 못 잤다. 요리사는 근무시간이 일정하지 않다 보니까 수면 페턴이 흐트러지고 삶의 균형이 깨질 수 있다. 단 하루도 쉬지않고 50일동안 일한 그에게는 그리 특별한 일은 아니였다.

마지막 요리

1829년 즈음 로쉘드 부부와 모건 부인도 알고 있었듯이 앙토넹 카렘의 건강상태는 무척 좋지 않았다. 앙토넹은 자신이 죽을 것을 알고 있었고, 조지 4세는 앙토넹을 다시 런던으로 부르기 위해 마지막 시도를 했다. 그는 뇌물 5백 파운드와 함께 연봉 4천 파운드를 준다고 하였다. 앙토넹은 예의를 갖추어 거절을 하였다. 앙토넹을 죽음이 가까이 왔다는 두려움을 느끼고 남은 시간 동안 책을 쓰는데 몰두하였다. 1828년 그의 요리법과 그림 405페이지가 실린 <파리의 요리사>가 출간되었고, <왕실의 파티시에> <화려한 파티세에>의 3판과 4판도 나왔다. 1820년대 말부터 1830년대 은퇴할 때 까지 앙토넹은 온 힘을 쏟아 부은 책은 <19세기 프랑스 요리법> 이었다. 두꺼운 5권의 책인<19세기 프랑스 요리법>을 통해 요리책 분야에 영원히 남을 공헌을 하였다. 이 책은 수천 가지 요리법이 담긴 백과사전이자, 고급 프랑스 요리의 완벽한 ‘입문서’이다. 그리고 1832년 즈음 앙토넹은 자신이 출판한 책으로 연2만 프랑을 벌고 있었다. 1833년 1월 12일 저녘 앙토넹의 좌반신이 마비가 되었고, 얼마간 의식이 없었다. 그리고 얼마 후에 세상을 떠났다. 앙토넹은 자신이 요리를 할 때 맡았던 숯불의 연기 때문에 세상을 떠났다. 앙토넹은 노년에 그의 밑에서 부 책임자로 일하던 제이에게 자신의 우산을 넘겨 주었다.

느낀점: 재미있었고, 앙토넹은 정말 대단한 사람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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