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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병원이 알려주지 않는 30가지 비밀

by 양동우 posted Apr 19,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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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병원이 알려주지 않는 30가지 비밀

허현회 지음

반려동물 제대로 알아야 제대로 사랑한다

소는 야생에서 평균 60년을 앵무새는 50년을 닭은 30년을 개는 24년을 고양이는 20년 이상을 산다 그러나 동물의 원래 서식지인 야생에서 떠나 사람과 함께 생활사면 활동에 제한을 받고 백신과 약 등으로 스트레스를 심하게 받기 때문에 수명은 현저히 줄어든다 이 때문에 가축인 소는 평균 30년 앵무새는 20년 닭은 10년 반려긴이나 반려묘는 15년 정도를 산다 현대에 들어서면서 반려동물이나 동물원의 동물 가축 등에게는 빠른 속도로 질병이 급증하고 있다 사실 야생에서 생활하는 동물은 극히 예외적인 노화를 제외하고는 골다공증도 신부전증도 치주염도 심장질환도 어떤 암도 발병되지 않는다 이런 병이 급증하는 이유는 사람에게 제공되는 가공식품이나 치명적인 의약품 방사선 등이 동물에게 투여되기 때문이다

동물에게 투여하는 상당수 의약품은 사람에게 투여하기 전에 그 효능과 부작용을 검토하기 위한 임상실험으로 투여되는 약이거나 사람에게 투여했다가 치명적인 부작용을 일으켜 폐기되어 창고에 재고로 가득 남은 것들도 있다 이런 약들을 이름과 용도만 바꿔 동물의약품으로 사용하기도 한다 게다가 동물병원에서 처방하는 약은 사람에게 처방하는 약보다도 더 위험한 물질로 만들어지거나 기초적인 안전성 검사조차 시행하지 않은 것들이 많다 또한 사람이나 반려동물의 정기검진 시에 투여되는 방사선이나 조영제 마취제 등은 치명적인 부작용을 유발할수 있는 1급 발암물질 이기 때문에 피하는 것이 현명하다 앞으로 생길지도 모르는 질병을 조기에 찾아내기 위해 이 같은 극히 위험한 물질을 투여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따라서 조기검진 및 병원 진료는 가급적 멀리하고 평소에 생식과 햇빛 적절한 천일염 섭취 운동 등을 통해 건강을 관리하는게 좋다

반려동물 사료에 숨겨지 진실

사랑스럽고 소중한 반려동물이 매일 먹는 사료의 일부가 안락사당한 개나 고양이의 사체 병에 걸려 도살당한 가축의 사체 실험실에서 실험용으로 쓰이다가 폐기된 동물의 사체 또는 슈퍼에서 유통기한이 지나 회수된 고기 등을 이용해 만들어진다는 사실을 아는가? 캘리포니아의 웨스트코스트 랜더링 사의 대표인 빌 포먼은 2004년 3월 LA 비즈니스 저널 과의 인터뷰에서 “우리 공장의 창고에는 안락사당한 개와 고양이 등 동물들의 사체가 산더미 같이 쌓여 있다 버넌 공장의 창고에만 동물의 사체가 600톤 정도 가득 쌓여있다”라고 진술했다 일반적으로 개나 고양이의 사료의 80퍼센트 이상을 차지하는 재료는 유전자를 조작하고 제초제 살충제 비료 등을 과다 투여해 사람의 식용으로 금지된 옥수수와 콩에서 추출한 탄수화물이다 그리고 식품공장의 폐기물 유통기한이 지나 회수된 가공식품 등이다 또 맛과 향 질감을 좋게 하기 위해 프로필랜글리콜 방부제로 사용되는 소르빈산칼륨 나트륨 벤즈알데히드 에톡시퀸등 각종 합성화학물질로 만들어진 식품첨가제를 다량 투여하고 최종에는 유통기한을 늘리기 위해 방사선을 쬐여 살균을 한다 이때 방사선으로 살균을 하면 모든 분자가 파괴대고 dna가 변형되 이를 섭취한 반려동물에게 치명적인 질병을 유발시킬수 있다 특히 고양이는 육식 동물이어서 곡물을 주식으로 먹는 고양이는 각종 병에 시달리게 된다 물론 고양이가 육식 동물이라고 해도 탄수화물은 필요하다 그러나 고양이가 섭취하는 탄수화물의 비중은 전체 음식에서 5퍼센트 미만으로 아주 적다 그러나 고양이용 가공 사료에는 대부분 곡물의 비율이 50퍼센트가 넘는다 탄수화물이 많은 사료는 고양이가 먹지 않기 때문에 액상과당 나트륨 등 각종 첨가제를 포함시켜 고기 사료처럼 미각을 속인다 이러한 사료를 먹은 고양이는 각종 질병에 시달리게 된다 실험실에서 각종 실험 대상이 되었다가 폐기된 동물이나 질병에 걸려 식육으로 금지된 동물을 사람이나 반려동물은 먹을수 없다 그러나 가죽 내장 배설물 혈액 뇌 뼈 등이 그대로 분쇄기에 넣어져 갈린다 또한 유통기한이 지나 회수된 육가공품을 방부제인 합성 나트륨 냄세 제거제인 벤젠 착색제인 아질산나트륨등 각종 합성 첨가제를 다량 희석시켜 재가공 한다 또한 천연과 합성을 구별하지 못한채 방부재로 사용하기 위해 석유폐기물에서 분자구조를 변형시켜 추출해낸 비타민 등의 합성화학물질을 다량 첨가한다 이 같은 합성비타민 합성섬유소 합성지방 등 합성화학물질은 천연 이라는 상표가 붙은 채 사람이 먹는 가공식품이나 사료에 무제한 첨가된다 사실 사람이 머근 가공식품이나 동물이 먹는 사료에 첨가하난 비타민 c로 알려진 아스코르브산은 비타민c가 아니라 석유폐기물인 콜타르에서 추출해내는 합성 방부제로 아스코르브산이 새콤한 맛을 낸 다는 점에 착안해 오랜지색과 같은 노란색의 착색제를 첨가한 후 지금 까지도 비타민c로 오도돼 왔다 사실 천연의 비타민 c는 무색 무취 무미하다 또한 비타민 k로 알고있는 메나디온도 석유폐기물에 분자구조를 변경해 대량으로 생산해내는 합성 비타민이다 이들은 자연에 존재하지 않는 인공물질로 채내에 흡수되면 천연의 비타민c와 비타민k를 채외로 배출시키고 나아가 간을 파괴하여 죽음으로 몰아넣기도 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사료 업체에서는 옥수수에 풍부한 탄수화물과 콩에 풍부한 단백질이 소의 성장을 촉진한다는 사실을 알아내고 미국 정부의 보조금을 받아 옥수수와 콩을 반추 동물의 사료로 사용하는 방법을 개발했다 이렇게 해서 전에 풀을 먹이며 키우는 소는 5년 정도를 키워야 도축할수 있는 상태로 성장하지만 곡물과 항생제로 키우면 2년 6개월 정도만 키워도 도축할수 있을 정도로 성장한다 사료 업체는 여기서 머물지 않고 소에게 성장호르몬과 고기사료를 투여해 14개월이면 도축할수 있게 만들었다 예전에는 2년 키우던 돼지도 현재는 성장호르몬을 투여해 9개월이면 도축할수 있을 정도로 성장했다 이렇게 가축을 움직이지도 못하고 사료만 먹여 키우다가 질병이나 운동 부족으로 죽으면 그대로 분쇄기에 갈려 반려동물의 사료가 된다 반려견은 적어도 50퍼센트 육류를 제공해 주어야 하고 반려묘는 90퍼센트 이상이 생선 고기등 육류로 채워져야 한다 주의할 것은 비타민 보충재나 칼슘부충제등은 사람이 복용하는 것이든 반려동물이 복용하는 것이든 그 기본 물질이 대부분 석유 폐기물을 화확처리 해서 생산하는 것이거나 박테리아의 유전자를 조작해서 생산하는 것이므로 피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반려동물의 음식은 익힌 것보다 날것이 생명력을 강화시켜 건강을 유지하는데 유익하다 미국산 쇠고기는 광우병에 걸릴 위험이 크므로 피하고 유럽산이나 호주산 뉴질랜드산 브라질산 인도산 중국산 등은 사육 방법을 엄격히 규제하기 때문에 어느정도 안심할수 있다 또 동물에게 단식은 매우 중요하다 몸속에 쌓인 합성화학물질을 한달에 1~2일씩 단식으로 배출시키면 면역력을 회복시켜 건강을 유지시킬수 있다 그리고 단식이 끝나고 회복시기에는 반드시 마늘이나 생강등을 일정 기간 공급해서 허약해진 육체를 보호해야 한다

느낀점: 뒤에 생각 안하고 앞 부분의 사료 부분만 막쓰다가 너무 많이 써버려서 그냥 작정하고 사료부분만 썼다 이 책은 정인이가 읽으면 좋을듯 싶다 

  • profile
    성실 2014.04.21 20:24
    온세미로야~ 알고는 못 먹이겠다::: 사람이든 동물이든 자연식을 먹어야 건강하지^^
    그리고 문단을 나눠주면 읽기가 훨씬 편하겠다. 부탁해~~~~~

재현

요리사가 말하는 요리사

by 아람 posted Apr 18,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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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사가 말하는 요리사

2014.4.18 유재현

요리사가 말하는 요리

1장 새내기 요리사의 자충우돌 일기

2001년x월x일 선배로부터 특별 오더가 떨어졌다. 고기를 구우란다. 아직 채 1년 도 안됀 초짜인 내게 고기를 맡기다니. 나는 이건 나를 테스트하는 줄 알고 잘해야 한다는 의욕이 불탔다. 나는 냉장고에서 최상급 안심을 꺼냈다. 그리고 팬을 뜨겁게 달군 후 안심을 올렸다. 그런데 선배는 놀라며 나한테 말했다. 너한테 시킨 건 스테이크가 아니고 햄버거였다. 나는 얼굴이 화끈거리며 어쩔 줄 몰랐다. 새내기 요리사에게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체력이다. 하루 종일 서서 일해야 하고, 날마다 들어오는 대량의 식재료들을 들고 이리저리 뛰어다녀야하기 때문이다. 요리사의 일이라는게 ‘알아서 눈치껏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누가 일일이 이렇게 하라고 가르쳐주지 않는다. 그래서 내성적인 사람보다는 이것저것 물어보고 다니며 자기 일을 찾아내는 ‘푼수형 새내기’가 발전 가능성이 더 높다. 돌아보면 요리사로서 타고난 재능이나 드라마틱한 과거는 내게 없었던 것 같다. 요리사가 되고 싶은 후배들 중엔 tv와 같은 대중매체의 다뤄지는 요리사의 감동을 받거나 동기 부여된 이들이 적지 않다. 시간의 구애받지 않고 여유롭게 데이트를 하고 심지어 그 바쁜 주말에도 여행을 간다. 하지만 실제 요리사는 그렇지 않다.

2장 다양한 요리사의 세계

한식

우리음시의 핵심은 발효이다. 우리 음식 모두가 100퍼센트 발효 음식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김치, 된장, 간장, 젓갈뿐만이 아니다. 하다못해 나물을 무쳐도 된장과 간장으로 무친다. 서양에는 5미(쓴맛, 단맛, 신맛, 짠맛, 매운맛)가 있지만 우리나라는 발효까지 더해져 6미가 있는 셈이다. 어머니는 나에게 음식으로 돈 벌 생각을 하지말라고 하시고, 음식은 함께 나눠먹어야 한다고 했다.

중식

유명한 중식 요리사였던 내 아버지의 삶은 매우 고달팠다. 새벽4시에 일어나 그 독한 연탄가스 냄새 를 맡으며 연탄불을 피웠다. 그리고 장을 보고 저녘장사가 끝날 때 까지 요리를 하셧다. 나는 그런 아버지를 보고 자장면을 싫어하게 됬다. 그래서 고교졸업 할 때 까지 자장면을 안먹었다. 중식에는 요령이 없다, 수련이 왕도다. 처음 중식 요리에 임문하면 배우는게 프라이팬 설거지다. 전 세계의 어느 프라이팬을 설거지하는 것은 초보자에겐 어려운 일이다. 초보자는 설거지를 하면서 손목힘을 기른다. 그리고 프라이팬에 모래를 채운 후 돌리는 연습을 한다. 프라이팬을 돌리다 보면 비로소 감이 잡힌다. 중식은 이런 사소하지만 반복되는 연습으로만 배울 수 있다. 옆에서 아무리 말로 교육해 봐야 소용없다. 깊은 밤 주방에 홀로 남아 무를 깍으며 칼질을 연습한 사람만이 진정한 요리의 ‘틀’을 깨칠 수 있다고 나는 믿는다.

일식

일식 조리사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야 하는 것은 청결과 정리*정돈이다. 일식집은 조리사와 손님들의 거리가 가까운 경우가 많기 때문에, 요리재료는 물론이고 칼이며 도마 같은 식도구가 청결하지 못하면 손님들은 곧바로 자리를 털고 일어날 것 이다. 일식 조리사가 되고 싶은 사람들이나 일식 세계의 첫발을 딛는 사람들에게 꼭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 자기 자신에게 투자하라. 외국어 공부도 하고, 틈틈이 요리 경연 대회에 참가하면 더욱 좋다. 선배들에게 찾아가 그들이 어떤 책을 읽는지, 어떤 자료로 공부하는지 묻고 또 물어라

프랑스 요리

훌륭한 셰프가 될려면 다음과 같은 조건이 필수적 이다. 첫째, 장인 정신이 필요하다. 고객의 임맛에 맞는 음식을 최대한 이끌어 내야 한다. ‘대충’,‘적당히’는 있을 수 없다. 둘째, 투철한 서비스 정신과 봉사 정신, 희생 정신이 필요하다. 요리는 결국 남을 위한 배려이기 때문이다. 셋째, 원만한 인간관계를 맺을 수 있어야 한다. 요리는 한 사람이 만드는 것이 아니라 여러 사람이 만드는 종합 예술체이기 때문이다. 넷째, 예술적인 감각이 필요하다. 현대의 요리는 단순 직업이 아니라 순간적으로 요리를 장식하는 에술적인 감각이 필요하다. 다섯째, 투철한 작업 의식이 필요하다. 자기 직업의 자부심을 갖지 못하는 사람이 어떻게 훌륭한 요리를 만들 수 있겠는가.

이탈리아 요리

이탈리아 요리는 우리나라 요리와 비슷하다. 하지만 이렇게 학생들에게 강의를 하면 학생들은 고개를 갸웃거린다. 왜냐하면 우리나라는 쌀을 주식으로 하고 이탈리아는 밀을 주식으로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당장 빈대떡이나 파전을 피자와 비교해 보자면 ‘토핑을 얹은 밀가루 반죽’ 이란 점에서 비슷하다. 그리고 이탈리아의 파스타와 우리나라의 면음식도 마찬가지다. 이탈리아는 면을 삶은 뒤 볶아 먹지만. 우리나라는 면을 삶아 먹는다. 그리고 이탈리아와 우리나라는 자연환경도 비슷하다. 이탈리아도 반도이고, 우리나라도 반도이다. 나는 기회가있을 때마다 젊은이들에게 비전을 보고 요리사에 뛰어들지 말고 즐거움을 보고 요리사에 뒤어들라고 한다. 나는 모든 요리를 먹으며 즐기는 사람이 진정한 요리사라고 생각한다.

3장 더 넓은 요리사의 세계

나는 매일 아침 산에 올라가 산야초를 캐온다. 그리고 여러 가지 나물과 음식을 한다, 하지만 메뉴는 산야초 정식과 산야초 비빔밥이 전부이다. 우리 가게는 철저히 예약제로 운영된다, 예약을 하지 않으면 제대로 된 산야초요리를 먹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침에 산을 올라가면 그날 준비할 만큼의 양의 산야초만 캐온다. 좀 넉넉하게 캐올 수 도 있지만, 신선도 유지를 위해서 그 날 준비할 양만 캐온다. 이제는 산야초 먹는 동호회까지 생겼다.

4장 요리사 정보 업그래이드

조리사의 관한 궁금증

요리사와 조리사의 차이점은 무엇입니까?

우리는 흔히 음식을 만드는 사람을 요리사라고 합니다. 그리고 조리란 식품에 물리적 화학적 조작을 가하여 합리적인 음식물을 만드는 과정, 즉 식품을 위생적 적합한 처리를 한 후 먹기 좋고 소화하기 쉽도록 만드는 과정이라고 합니다.

조리사가 되려면 어떤 과정을 거쳐야 합니까?

조리사는 사실 마음가짐이 가장 중요합니다. 누구보다 조리를 사랑하고 최선을 다해야하고 초심을 잃으면 안됍니다. 조리사 교육 과정의 경로는 다양합니다. 그 중 가장 무난한 방법은 전문대학에서 조리학과를 나오는 것입니다.

조리사 자격 시험에는 어떤 것이 있습니까?

조리사 자격 시험은 필기와 실기로 나뉩니다. 시험은 접수 지역별 실험장에서 시행되며, 시험 과목은 식품위생 및 법규, 식품학, 조리이론, 원가 계산, 공중 보건 등으로 객관식 사지택일형 문제가 출제 됩니다. 60분 동안 60문제를 푸는데 60점 이상이면 합격입니다. 필기가 합격되면 2년 동안 실기를 볼 수 있는데 합격 기준은 100점 만점에 60점 이상입니다. 그리고 선정된 2가지 메뉴를 제한 시간내에(40~80분) 안에 1인분씩 만들어 내는 것입니다. 그렇게 실기까지 합격 되면 자격증을 얻습니다. 그리고 자격증의 종류는 한식,일식,중식,양식,복어,제과제빵 조리기능사 자격증이 있습니다.

조리사 자격증이 없으면 조리사가 될 수 없나요?

운전면허증이 없으면 운전을 할 수 없듯이 조리사 자격증이 없으면 조리사로 일하는 것이 어렵습니다.

느낀점:재미있었고, 요리사의 대해서 많은 걸 알았다.

  • profile
    성실 2014.04.21 20:27
    아람아~ 요리에 관심 많아서 재미있게 읽었겠다. 이모는 너의 요약이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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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 개의 별을 요리하다 에드워드 권 지음

by 다솜 posted Apr 12,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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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 개의 별을 요리하다 에드워드 권 지음

2014.4.11.이지원

1장 앗살람 알라이 쿰!

새로운 나라인 두바이에 도착하여 난 면담 후 테스팅 디너를 준비하였다. 난 손이 많이 가는 음식들이었는데 시간이 부족하고, 나의 스타일을 아는 조력자가 없어 후회하였지만 다행히 66가지의 음식을 무리 없이 잘 끝내게 되었다. 그 날 저녁 난 무작정 길을 걷다 소박한 레바논 식당에 들어가 그 가게에서 가장 유명한 요리를 달라고 했다. 얼마 후 그는 내가 한 번도 먹어보지 못한 요리를 가져왔고, 그 것은 중동의 음식문화를 체험한 좋은 경험이었다.

2장 소년, 요리를 만나다

어릴 때 내 꿈은 신부가 되는 것이었지만 독실한 불교신자이신 할머니의 반대로 난 신학대학 진학을 포기했고, 그 때부터 나의 방황이 시작되었다. 당연히 대학진학도 불투명해졌고, 재수를 하겠다는 결심으로 가출을 했다. 그리고 주방보조 아르바이트를 시작했고, 6개월간 일하다 고향집으로 내려갔다. 부모님의 얼굴을 보고 난 내가 한심해 울고 말았고, 짧은 기간이었지만 눈에 불을 켜고 공부하였다. 운이 좋았는지 전문대에 합격하였고, 고민 끝에 나는 일찍 입대하기로 결정하였다. 제대하기 얼마 전 나는 용평리조트에 연락하여 그곳에서 일하게 되었고, 비로소 요리사로서이 새로운 삶이 시작되고 있었다.

3장 호텔리어의 길

스키장 레스토랑에서의 아르바이트가 끝나고 난 복학하였다. 그러나 학교 수업이 시시하게 느껴져 1년을 덧없이 보내고는 겨울방학이 되었다. 그리고 그 때 H호텔 예비요리사로 일을 시작하였고, 리츠칼튼으로 실습을 나가게 되었다. 실습기간 동안 나는 항상 남들보다 한 시간 먼저 출근하고, 한 시간 늦게 퇴근했는데 이때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라는 각오로 했다. 그러다 학교로 돌아가야 할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고, 나는 그냥 호텔에 계속 남아있기로 했다. 그리고 난 꿈에 그리던 호텔리어가 되었고, 정사원이 되고 6개월쯤 되었을 때 실습생들이 들어와서 같이 일하던 선배 한 분이 파테가 뭔지 설명하라고 했다. 그러나 나는 파테가 뭔지 몰랐고, 다행히 다른 실습생이 나서서 말했다. 그 때부터 나는 쉬는 날이면 무조건 대형서점으로 달려가 공부하게 되었다. 그리고 나는 미국의 리츠칼튼으로 옮겨가게 되었다.

4장 다시 원점에서

미국생활은 별 보고 출근해서 별 보고 퇴근할 만큼 정신 없없다. 그러던 어느 날 우유가 너무 먹고 싶어서 슈퍼마켓에서 딸기 향 우유를 사 먹었는데 이상하게 우유가 달고 진해서 미국 우유는 진하고 달구나하고 생각했다. 그리고 다음 날 동료에게 우유를 보여주며 미국의 우유는 한국의 우유와 다른 것 같다고 하니 동료가 배를 잡고 웃으며 그건 딸기 향 커피크림이라고 했다. 그렇게 나의 미국생활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사과 이름을 몰라서 혼나기도 했다. 그 사건 이후 나는 매일 퇴근길에 슈퍼마켓에 들려 수백여 가지에 이르는 치즈를 바게트 빵과 먹어보았고, 난 그런 식으로 훈련을 하였다. 그렇게 6개월 후 난 수많은 식재료와 가공식품들에 관한 지식을 얼추 갖게 되었고, 하루 16시간씩 호텔 주방에서 살았다. 내가 하프문베이에서 일할 때 사비에르라는 총 조리장이 있었는데 그는 내가 걸레질을 하고 있는 것을 빼앗아서 자신이 청소하며 자신은 후배요리사가 일에 정진하게 해주기 위해서 있는 것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지금 난 일주일에 한 번쯤은 직접 대걸레를 들고 부하직원들과 함께 청소한다.

5장 돌고 돌고 돌고

미국은 요리사로서 가장 일하기 좋은 곳이면서 어려운 곳이기도 하다. 미국의 레스토랑들은 각자의 색깔을 가지고 있어서 모든 것이 배움이 대상이 되기는 하지만 그 곳에서 생활하다보면 아시아인이라고 놀림을 받는 일이 많아서 치고 받고 싸우기도 한다. 그렇게 난 미국생활을 하면서 많이 울기도 하며 힘들게 지냈었다. 그래서 난 다른 사람들과 다르게 근무시간이 8시간인데도 16시간씩 일했고, 그 때는 한마디로 요리에 미쳐있었다. 그 결과 나는 남들이 10년 동안 노력해야 되는 일을 2년 만에 해낼 수 있게 된 것이다. 난 고생도 얼추 끝나서 살만해지려고 할 때 미국을 결심했고, 모든 사람의 반대에도 한국으로 돌아갔다. 그러나 다시 시작된 서울 생활은 쉽지 않았고, 한국에서 지낸지 1년이 되는 날 난 텐진으로 갔다. 텐진 셰라톤 호텔에서 총 조리장을 맡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난 다시 1년 동안 죽어라 일만하고 살았다.

6장 김치 셰프

텐진에서 일하다가 영국의 헤드헌터에게 전화가 왔다. 페어몬트 두바이로 일을 하러 갈 것이냐는 전화였는데 난 당연히 두바이로 출발했다. 그렇게 두바이로 옮긴지 2주 정도 되는 날 난 한 주방직원이 날 김치셰프라고 놀리는 걸 들었다. 하지만 나는 내가 코리언이고 김치 셰프라는 사실에 당당하다. 그리고 어느 날 나는 왕을 대접하게 되었다. 왕은 내게 긴장을 풀라고 농담도 해주었고, 나를 편하게 해주었다. 그리고 왕은 내가 만든 음식을 만족해하였고, 난 드디어 왕에게 인정받게 되었다.

7장 마음으로 마음을 담는다는 것

나는 분자요리’ ‘과학요리를 해보고 싶어서 작년부터 다시 화학책을 보기 시작했다. 나는 이런저런 요리들을 만들어서 손님들께 대접한다. 대부분의 음식은 손님들의 반응이 아주 좋지만 늘 좋은 반응을 얻지는 않는다. 하지만 실패를 통해서 얻는 교훈도 많고, 실패가 두려워 도전하지 않으면 발전이 없는 걸 알기에 오늘도 난 각양각색의 요리를 만들어보고 평가받는다.

8장 성공을 위한 자기 연출법

요리사에게도 외국어는 꼭 필요하다. 그리고 요리사를 꿈꾸는 사람들이 외국어는 외국에 가서 배워야겠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은데 한국에서 외국어를 공부하지 않으면 외국에서도 할 수가 없다. 그리고 미국의 주방에서도 욕설은 기본이다. 이렇게 욕설도 적당히 배워두었다 한번씩 써 먹는 것도 무시당하지 않는 방법 중 하나이다. 그리고 주방에서 일하다보면 가끔 화를 내야 하는 경우가 생기기도 한다. 손님에게 요리으 제대로 된 맛을 가지고 서브되기를 바라다보면 그렇게 후배에게 꾸중을 할 경우가 있기도 한다. 요즘은 요리사를 하고 싶어하는 학생들이 많은데 요리사를 손님에게 감사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느낀 점

재미있었고, 에드워드 권이 워낙 요리로 유명한 사람이라 궁금했는데 정말 대단한 사람인 것 같다.


동우

하늘호수로 떠난 여행

by 양동우 posted Apr 12,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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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호수로 떠난 여행

류시화 지음

하늘호수로 떠난 여행

나는 세 번째 인도여행에서 나는 눈을 감고 지도에 점을 하나 찍어서 그쪽으로 가기로 했다 점을 찍으니 사막 한 귀퉁이의 눈곱만한 마을 쿠리였다 그곳은 기차를 쉬지않고 탄다고 해도 40시간이 넘는 시간이였다 나는 잠시 망설였다 하지만 내가 스스로 한 약속 이기 때문에 쿠리로 갔다 모두 걸린 시간은 반나절 하고도 세시간 이였다 그렇게 오랜시간이 걸려 막상 쿠리에 도착하니 그곳은 정말 아무것도 없었다 그런곳이 지도에 표시된 이유가 궁금할 정도이다 마을에는 뜻밖에도 호텔이 하나 있었다 누구를 위해 그 호텔이 거기 존재하는가는 아무리 생각해도 알수가 없었다 주인은 하루세끼 포함에 100루피를 불렀다 그런데 방은 다 부서져 가는 나무침대 속이 다 드러나는 매트릭스 그리고 천장에는 머리만한 구멍이 뚫려 있었다 나는 잠만 자기로 하고 방값만 15루피를 냈다 나는 가방을 내려놓고 바냔나무 밑에 앉았다 나는 달리 할 일이 없어서 나무둥치에 등을 기대고 앉아 있었다 앉아 있으니 해가지고 별이 떠올랐다 그때였다 마을사람들이 내게로 우르르 몰려와 부탁하지도 않았는데 먹을것을 권했다 내가 보기엔 그들이 먹을것도 변병치 않은 사람들 이엿다 그런데도 낯선 여행자에게 자기들이 가진것을 아낌없이 내주고 있었다 나는 어느때보다도 많이 먹었으며 스무배 이상으로 마음이 불렀다 나는 방으로 들어가 누웠다 천장에 뚫린 구멍으로 별을 보았다 잠들때까지 별을 구경할수 있는 구멍뚫린 방이 나는 너무 좋았다

우리는 어디서 왔으며 무엇이고 어디로 가는가?

“오 이제야 왔군 20년 동안이나 기다렸는데 드디어 나타났어!” 누가 소리치며 반가워 하길래 뒤돌아 보니 코브라 지팡이와 온 몸을 밧줄로 묶은 늙은 구루가 아는체를 했다 “그대는 우리가 어디서 왔으며 무엇이고 어디로 간다고 생각하나?” 그가 거침없이 퍼붓는 질문에 말문이 막혔다 내 생각에 그 구루는 지금 나를 유혹해 자신의 제자로 만들려는게 분명했다 미치광이 구루가 더 귀찮게 하기전에 나는 얼른 도망칠 채비를 했다 나는 약간 배가 고팠지만 그에게서 벗어나기 위해 바라나시 뮤직 아카데미로 시타르 연주를 들으러 갔다 그곳은 이름만 거창했지 2층 다락방을 개조해 만든 형편없는 곳이였다 관객은 나와 이스라엘에서 온 부부가 전부였다 2시간 뒤 나는 뭘 좀 먹어야 겠다고 생각하며 아카데미를 빠져나와 골목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길을 잃어버렸다 어디가 출구인지 모르겠다 그런데 반대쪽에서 몽둥이를 든 어떤 남자가 내게로 왔다 나는 잔뜩 긴장한체 앞으로 갔다 그런데 그것은 몽둥이가 아니라 코브라 지팡이였고 그는 미치광이 구루였다 나는 마치 헤어진 연인처럼 그가 반가웠다 그는 개가 음악을 들으러 간것을 귀신같이 모두 알고 있었다 그는 겐지스 강가로 걸어갔다 그는 내가 아무것도 먹지 않은 것을 알고 있었고 차파티 다섯장을 꺼내 내게 주었다 내가 그에게 물었다 “제게 무얼 일깨워 주시려는 건가요? 지금 일깨워 주시면 안되나요?” 그러자 구루는 나를 응시하더니 이윽고 말했다 “난 이미 그대에게 일깨워 주었어 그대가 못 알아들을 뿐이지 내 몸에 무엇이 감겨져 있다? 밧줄이 나를 묶고 있지 모든 인간은 보이지 않는 밧줄로 스스로를 묶고있지 그러면서 한편으론 자유를 찾는거야 그대는 그런 어리석음을 저지르지 말게 그대를 구속하고 있는것은 다른 어떤것도 아닌 바로 그대 자신이야”그는 이틀뒤 히말라야로 떠났다 그 이후 히말라야를 여러번 여행 했지만 그를 만나지는 못했다

피리부는 노인

“집에는 아이가 다섯이고 먹을것은 없습니다 아내는 작년에 죽었습니다”피리 하나만 사달라고 통사정을 하며 노인은 가정사정을 늘어놓았다 어딜가나 듣는 얘기였다 노인은 나의 환심을 사려고 피리를 휘엉청 불어 제끼기 시작했다 피리 솜씨는 훌륭했다 하지만 내가 불면 소리조차 제대로 나지 않았다 나는 쓸모 엇는 피리를 사고 싶지 않아 10루피(300원)정도 적선하고 자리를 뜰 생각으로 주머니에서 돈을 꺼내다가 100루피 짜리 종이돈이 나와 버렸다 내가 아차하는 사이 1백 루피는 노인의 재빠른 손으로 들어가 버렸다 노인은 머리가 땅에 닿도록 절을 했다 나는 속이 쓰렸지만 내색하지 않고 자연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돌아섰다 나는 게스트 하우스로 가서 할 일도 없어서 잠을 청했다 그리고 새벽녘이 됬는데 난데없이 피리소리 하나가 내 잠속으로 파고 들었다 그 피리는 어제 그 노인이 부는 것이였다 노인이 나를 보고는 손을 흔들어 보이며 다시 피리를 불었다 가락이 긴, 아침에 듣는 인도의 전통의 라가 곡이였다 나는 기가 막혀서 창문을 도로 닫았다 이른 아침부터 찾아와서 흥정을 붙이고 있는 고약한 노인 때문에 잠이 확 달아나 버렸다 나는 옷을 입고 밖으로 나가 노인에게 말했다 "이보시오 어제 그만큼 돈을 줬으면 됐지 왜 또 와서 이러시는 거요? 더 이상 내게서 뭘 뜯어낼 생각일랑 말아요" 노인이 말했다 "그게 아닙니다 난 당신이 이곳에 머무는 도안 아침마나 당신의 방 앞에 와서 피리를 불어주기로 했습니다 당신이 내게 도움을 주었으니까요 난 그것말고는 해줄게 없거든요" 노인은 거짓말을 하는것이 아니였다 그는 단순히 내가 준 돈에 고마움을 느껴 뭔가 보답을 하려고 찾아온 것이였다 노인은 내가 머무는 닷새동안 빠짐없이 찾아와서 피리를 불었다 노인이 불어주는 피리 덕분에 날마다 새롭고 뭔가 다른 하루를 맞이할수 있었다 노인은 내게 작은 배풂에도 보답하는 자세를 가르쳤고 가난하지만 아직은 부유함을 잃지 않은 마음을 전해주었다

개와함께한 여행

늙은개가 버스정류장 앞에서부터 나를 따라왔다 우리는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풀 한포기 없는 황야를 걸었다 개는 분명히 나를 따라오면서 그렇지 않은 척하는 영리한 놈이였다 물과 비스킷을 사서 황야로 걸었다 1시간 정도도 걷지않자 목이 말랐다 물을 마시고 비스킷을 먹는데 개가 죽을 듯이 핵핵거려 물을 손에 따라주었다 아무것도 없는 황야를 걷는것이 나는 좋았다 개는 지쳤는지 나와 거리가 멀어졌다 나는 개를 한쪽팔에 안아들고 걸어갔다 개는 가벼웠다 그러나 한참을 들고가니 무거웠다 마치 인생이 그런 것처럼 우리는 반시간 정도 쉬면서 물과 비스킷을 몽땅 먹고 길을 걷다가 길가는 지프차를 얻어타고 샘 사구에 도착했다 그날밤 나는 개와 함깨 슬리핑 백속에서 같이 잤다 사막이라 일교차가 심했던 것이다 아침에 일어나니 개는 어디론가 떠나고 없었다 인사도 없이 가버린 것이다 나는 늙은 개가 그립기는 했지만 무엇보다 겨드랑이와 사타구니가 가려워 견딜수가 없었다 사막에서 머무는 동안 온몸을 벅벅 긁으며 다녀야 했다

느낀점: 지은이 류시화가 인도를 여행하면서 겪은 일들을 재미있게 글로 써 내어서 재미있었다


재현

10대를 위한 재미있는 경제동화

by 아람 posted Apr 12,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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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대를 위한 재미있는 경제동화

톰 브라운 저 2014,4,11 유재현

10대를 위한 재미있는

백설 공주 경영자 되다

백설 공주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스스로 인생을 개척할 나이라고 생각할 만큼 어였한 숙녀가 되었다. 그녀는 더 크고 넓은 세상을 배우기 위해 유학을 떠나기로 결심했다. 그녀는 공주지만 공주처럼 자라지는 못했다. 원래 공주의 아버지는 이웃나라 왕들도 부러워하는 부자왕있다. 하지만 둘째 부인이 세운 여왕벌 과일 회사에 전 제산을 투자하고 세상을 떠난 후 상황은 바뀌었다. 백설 공주는 새엄마인 왕비의 명령으로 시녀나 다름없는 생활을 했다. 그런 공주가 유학을 가겠다고 말하자 왕비는 유학비를 하나도 안준다고 하였다. 그래서 백설 공주는 왕비를 원망하지 않고 스스로 학비와 생활비를 벌기로 결심했다. 백설 공주는 풍운의 꿈을 안고 비행기에 올랐다. 옆자리에 인상좋은 한 청년이 앉아 있었다. 그는 자신을 ‘그래고리 팽’ 이라고 소개했다. 서로 친근감을 느낀 두 사람은 수다를 떨기 시작했다. 그래고리 팽은 백설 공주보다 비행기표를 더 싸게 구했다고 한다. 백설공주가 어떻게 그러냐고 물었다. 그러자 그래고리 팽은 대답을 해 주었다. 이 비행기는 목적지 까지 10만 달러의 비용이 드는데 그러므로 자석 하나당 평균 비용이 500달러이므로 이 항공사는 좌석당 500달러에 예약을 받는다. 그런데 예약이 다 차지 않고 출발하기 전에 빈자리가 많이 남는다. 그 순간 대기자 명단에 있던 자신이 나타나서 항공사 매니저를 불러 최대 200달러밖에 낼 수 없는 것 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여러 가지 경제학의 대한 얘기를 했다. 그리고 그래고리 팽과 백설 공주는 악수를 나눴다. 이윽고 비행기가 이웃나라인 검프 왕국에 도착하였다. 백설 공주는 검프왕국에 포레스트 대학교에 입학하였고 경제학을 전공으로 선택했다. 그녀는 스스로 학비와 생활비를 벌며 열심히 공부했다. 그리고 포레스트 대학에서 7명의 호빗을 만났다. 그리고 학교를 졸업하면 같이 기업을 차리기로 약속을 하였다. 4년 후 백설 공주는 고향으로 돌아와 7명의 호빗과 기업을 차렸다. 그런데 고향은 여왕벌 과일 회사가 오랫동안 시장을 독점하고 있었다. 백설 공주는 새로운 과일 유통업체인 에플어데이를 설립하였다. 그리고 여왕벌 과일 회사와 맞서기로 결심 했다. 이소식은 몆 주 동안 언론에 대서특필 되었다. 백설공주가 생방송에 나와 안터뷰를 했을 때 여왕의 심기는 극에 달았다. 그래서 여왕은 에플어데이를 인수를 하기로 했다. 그래서 여왕벌 회사는 에플어데이의 주식을 사기 시작한다. 그렇게 에플어데이는 인수 위기에 놓였다. 그때 잘생긴 남자가 회의실 문을 열고 들어왔다. 그 남자는 그래고리 팽이였다. 그래고리 팽은 검프왕국의 왕자였다. 그래서 그래고리는 백설 공주에게 네오검프 그룹이 에플어데이를 인수를 하고 에플어데이 최고 경영팀을 그대로 존속시키고 조직과 직원도 해고하지 않겠다고 했다. 그래서 거대 인수 합병을 검토하고 에플어데이를 인수하였다. 그래서 이제 더 이상 여왕벌 과일회사는 시장을 독점하지 않았다.

신데릴라 전무가의 꿈

백설 공주 나라와 국경을 마주하고 있는 한 나라에 신데렐라가 살고 있었다. 신데렐라는 굴뚝청소 회사인 뉴 클린사의 직원이였다. 하지만 굴뚝청소는 신데렐라만 하였다. 첫째언니, 둘째언니는 프로그래머가 되겠다고 했다. 그리하여 신데렐라의 두언니는 날마다 컴퓨터 교육을 받는다고 소란을 피우기 시작했다. 컴퓨터 용어들을 익히며 날마다 부산을 떨었다. 신데렐라는 언니들을 볼 때 마다 질투를 삼켜야만 했다. 신데렐라도 새 분야의 전문가가 되고 싶어했다. 그러던 어느 날 국왕이 개최하는 프로그래머 경연 대회가 열린다는 사실을 알게되었다. 그리고 신데렐라는 프로그래머가 되기로 결심했다. 그녀는 회사 일과 집안일을 마치면 다락방에 올라가 혼자 컴퓨터 프로그래밍을 공부했다. 도서관에서도 여러 가지 전문 서적을 빌려다가 열심히 탐독했다. 인터넷 동호회에도 가입햇다. 이제 신데렐라의 다락방은 밤 늦게 까지 불이 켜저 있었다. 그리고 이제 신데렐라는 프로그래밍을 잘하게 되었다. 여러 가지 프로그램을 만들고 새엄마가 시키는 회사의 서류와 장부 정리고 컴퓨터로 손 쉽게 했다. 신데렐라는 하루하루가 달라졌다. 그리고 국왕이 개최하는 프로그래머 경연 대회가 열렸다. 그런데 새엄마는 신데렐라에게 봄맞이 굴뚝 청소 바겐세일을 하라고 하였다. 그래서 신데렐라는 두가지중 하나를 선택해야한다. 먼저 프로그래머 경연대회에 나가면 해고를 당하게 된다. 그리고 굴뚝 청소 바겐세일을 하면 전문가가 될 가능성의 기회를 얻게 된다. 신데렐라는 프로그래머 경연대회를 선택하였다. 하지만 신데렐라는 탈락을 하였다. 그래서 신데렐라는 집과 회사에서 쫒겨났다. 그래서 신데렐라는 자신의 모아둔 돈을 가지고 바닷가로 갔다. 그리고 이제 새로운 꿈을 찾기로 했다. 그러나 신데렐라의 운명은 역전되었다. 컴퓨터 프로그램의 세계적인 전문가인 영 게이츠는 신데렐라의 프로그래밍 기법을 보고 감탄을 하였다. 그래서 바로 헬기를 타고 신데렐라를 찾아가서 신데렐라를 스카우트하였다. 그래서 신데렐라는 이제 프로그래밍 전문가가 되었다.

느낀점: 동화가 뭔가 현실적으로 바뀌어서 재미있었다. 


정인

(독서록) 동백꽃

by 미르 posted Apr 11,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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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백꽃 봄 봄 레디메이

동백꽃 봄. 봄 레디메이드 인생 치숙/채만식 김유정 2014.4.11 김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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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 따는 콩밭

곡괭이를 무작정 내려찍는다. 바닥에서 물이 스미어 무르팍이 흥건히 젖었다. 그러나 그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영식이는 살기 띠인 시선으로 고개를 돌리고 아무 말 없이 수재를 노려보았다. 이놈 풍치는 바람에 애꿎은 콩발 하나만 결딴을 냈다. 그렇게 땅파기를 계속하고 있을 때 산에서 내려오는 마름과 맞닥뜨렸다. 마름은 무슨 밭에서 금이 나오냐며 내일까지 구덩이를 도로 묻어놓지 않으면 징역을 갈 줄 알라며 화를 냈고 영식이는 무턱대고 빌었다. 수재 이름만 들어도 영식이는 이가 갈렸다. 아무래도 수재한테 홀랑 속은 것 같았다. 영식이는 원래 금점에 이력도 없고 흥미도 없었다. 밭고랑에 앉아 땀을 흘리며 꾸역꾸역 일만 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수재가 술에 거나한 얼굴로 와서 돈벌이를 안 하려냐고 물었다. 수재는 이 산 너머 큰골에 광산이 있는데 내일 소출되는 금이 칠십 냥을 넘고 그 줄맥이 큰 산 허리를 뚫고 이 콩밭으로 뻗어 나왔다는 것이다. 그러나 영식은 귀담아 듣지 않았고 수재는 그에게 매일 찾아와 졸랐다. 아내도 영식을 보채기 시작하였고 결국 영식은 땅을 파기 시작하였다. 땅을 팔 때마다 애써 키워온 콩들이 으스러졌고 가끔씩 애틋한 생각이 들었지만 핀잔을 얻어먹기 일쑤였다. 그는 열심히 땅을 팠고 금은 나오지 않았다. 그렇게 남한테 쌀을 꾸어다 먹을 때쯤 수재가 금을 찾았다고 아내와 영식을 불러내었다. 수재는 한 포대에 오십 원씩 나온다고 말한 뒤 오늘 밤에는 정녕코 달아나리라 생각하였다. 뽕이 나서 뼈다귀도 못 추리기 전에 벗어나는 게 상책이었다.

 

동백꽃

오늘도 또 우리수탉이 막 쪼이었다. 이번에도 점순이가 쌈을 붙여놨을 것이다. 왜 나를 못 먹겠다고 고렇게 아르렁거리는지 모르겠다. 나흘 전 감자 쪼간만 하더라도 나는 저에게 잘못한 것이 없다. 울타리를 엮고 있는데 뒤에서 다가와 말을 막 거는 것이었다. 그러더니 행주치마에서 감자를 꺼내어 나에게 내밀며 느집인 이거 없지 하며 생색을 내고는 제가 준 것을 남이 알기 전에 먹어버리란다. 나는 고개도 돌리지 않고 감자를 다시 밀어내었고 점순이는 얼굴이 새빨개져서 나를 쏘아보더니 달아나버렸다. 그 후로 나를 잡아먹으려고 기를 복복 쓰는 것이다. 어느 날은 나무를 해가지고 내려오는데 어느 집에서 닭이 죽는 듯 한 소리를 냈다. 보니 점순이가 우리 씨암탉을 꼭 붙들어놓고는 암팡스레 패주고 있었다. 아주 알도 못 낳으라고 볼기짝께는 주먹으로 콕콕 쥐어박는 것이다. 사지가 부르르 떨렸으나 나는 참았고 닭을 데리고 집으로 가려고 돌아섰다. 그 때 점순이가 나에게만 들릴 듯 한 목소리로 욕지거리를 하기 시작하였고 욕을 이토록 먹어가면서 아무 말 한마디 못하는 것을 생각하니 분해서 눈에 눈물이 고여 왔다. 하지만 점순이의 침해는 이뿐만이 아니었다. 사람들이 없으면 틈틈이 자기 수탉을 데리고 와 우리 수탉과 싸움을 붙여놓기 일수였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우리 수탉 편을 들어주다 실수로 점순이네 닭을 죽이고 말았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왔고 점순이가 내 앞으로 다가와 다음부터는 안 그럴 거냐고 물었다. 나는 뭔지도 모른 체 그러겠다고 하였고 점순이는 닭이 죽은 것을 눈감아 주겠다고 하였다.

 

산골 나그네

산골의 가을은 왜이리 고적할까 앞뒤 울타리에서 부스스하고 떨 잎은 진다. 바깥에서 신발소리가 들려왔고 덕돌이냐 하면서 문을 열어 머리를 내밀며 반겼으나 잠잠하다. 처음 보는 아낙네가 마루 끝에 와 섰다. 하루만 자고가게 해달라고 하였고 들어오게 하였다. 밥을 좀 주랴느냐고 물어도 아무 말이 없다. 밥을 갖다 주니 감지덕지 받는다. 다음날 아침 그제야 마을 갔던 덕돌이가 돌아왔다. 나그네는 다음날 떠나려 하였고 주인은 그런 나그네를 말렸다. 밥들을 먹고 나서 앉았으려니깐 갑자기 술꾼이 몰려든다. 주인은 나그네에게 술꾼 대접하기를 부탁하였고 나그네는 그 말을 들어주었다. 그렇게 나그네와 주인은 친해졌고 나그네는 주인의 며느리가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밤 주인은 며느리가 없어졌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며느리가 도망간 것 같았지만 그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기로 하였다.

 

느낀 점: 앞의 이야기들은 재미가 없었지만 뒷이야기들은 재밌어서 좋았고 금따는 콩밭이 인상 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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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우

조선왕조실록19권

by 명화 posted Apr 10,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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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 실록[고종실록]

지은이:박시백

출판사:휴머니스트

내용:1장 대원군의 개혁

고종도 나이가 어려서 왕실의 어른인 대왕대비 신정왕후가 수렴청정을 하게 되었다. 선정왕후는 흥선대원군인 이하응과 같이 계혁을 하려고 했다. 흥선군은 대원군이 되기 전까지 안동 김씨의 눈에 띄지 않을려고 일부러 파락호처럼 살아왔다. 대원군은 당파와 지역을 따지지 않고 고르게 인재를 등용했다. 그러나 대원군 인사의 핵심은 안동 김씨의 유지와 고른 이내 등용이 아니라 종친,선파의 대거 등용에 있었다. 죄가 있는 이들을 사면하고 종친의 과거 응실제도화 시켰으며 종실 관계도 재조정해서 지위를 격상시켰다. 고종 24월에 임진왜란때 불타버린 경복궁을 다시 짓는다. 그리고 고종 310월에는 당백전이라는 100전자리 돈을 만들었다. 백성들은 이 당백전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리고 위조 도 난무했다. 경복궁은 고종 5년에 완성되었다.

2장 주화매국의 깃발 아래

대원군은 천주교도 탄압헤서 프랑스 신부와 천주교를 믿는 남종삼 등의 중요인물들을 죽이고 사학 책과 그 판각을 불태웠다. 고종 3년에 평양에서 제너럴 셔먼호라는 배가 교역을 원했으나 거절당했다. 그러나 셔먼호가 계속해서 올라오자 순영중군이 작은 배를 타고 가서 막았으나 잡혀갔다. 이에 분노한 평양 백성들이 중선을 공격해서 중군을 돌려 받았다. 그러나 셔먼호는 돌아가지 않고 상선을 약탈하고 7명을 죽였다. 평안 감사 박규수는 화공으로 셔먼호를 불태웠다. 천주교 탄압에 살아남은 프랑스 신부 리델은 프랑스로 탈출하여서 프랑스 동양함대 사령관을 찼아가서 조선을 공격했다. 조선 정부도 이를 대응 했지만 상대가 되지 않았다. 그러나 정족 산성 수성장에인 양헌수가 군사들을 이끌고 기습을 하여서 프랑스 군은 철수했다. 그러나 이때 프랑스군이 보물들을 약탈하고 장녕전 외규장각들의 건물들을 모두 불질러버렸다. 이때 가져간 의궤등 외규장각도서들은 1975년 제프랑스 역사학자인 박병선 박사가 프랑스 국립도서관에서 찾아냈다.

3장 대원군의 실각

고종은 대왕대비의 가르침대로 부지런히 배워서 15살이 돼서 대왕대비가 수렴을 거두고 친정을 하게 되었으나 여전히 모든 의사 결정은 대원군이 하였다. 고종은 진차 친정을 하고 싶었으나 대원군은 물러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이런 고종을 중전 민씨가 도와 주었다. 민씨는 영민한 머리를 가졌고 책읽기를 즐겼다. 특히 역사서를 좋아해서 고금의 나라들과 인물들의 흥망성쇠를 알고 있었다. 고종은 민씨의 도움을 받아서 대원군 측근들을 제거 했다. 당시 무리한 토목공사와 서원 철폐로 인해서 사대부와 백성들에게 원망을 받고 있어서 대원군을 힘을 못스게 하는 것은 쉬웠다.

4장 개항

조선은 대원군 정치로 쇄국정책을 이어하고 있었지만 일본은 미일화친조약이후 빠르게 개화를 하였다. 영국, 네덜란드, 러시아등과 연이어서 조약을 맺었고. 강무소를 설치해서 서양식 군사훈련을 실시하고 총포 제작소를 세웠으며 서양에 유학생들을 파견했다. 해군 전습소를 열어서 항해와 조선기술 포술,측량술 등을 익혔으며 그 결과 1860년에 일본인들이 목조 증기선을 조종할수 있었다. 그리고 일본은 조선을 침략할려고 했다. 일본은 윤요호를 강화도에 보내 강화도를 공격하고 갔다. 그러나 일본측에서는 강화도에서 먼저 포를 발사했다고 하면서 강화도 조약이 체결되었다.

5장 대화에 대한 저항

개화를 하면서 신식무기를 배우는 군인인 별기군이 생겼는데 훈련도감 군사들의 월급이 밀려있어도 별기군은 월급을 주었다. 훈련도감 병사들이 그나마 받는 급료에도 겨와 모래가 석여 있었다. 이에 분노한 군인들은 백성들과 같이 봉기를 일으켜서 일본인들은 닥치는 대로 습격했다. 그 기새로 돈화문을 통과해서 대궐까지 갔다. 이때 대원군도 이 사건에 개입했다. 이들은 궁궐에서 선혜청 제조 민겸호롸 경기 감사 김보현을 죽이고 민씨를 찾아서 전각을 헤집고 있었다. 이때 대원군이 나타나서 사건을 마무리 지었다. 그러나 갑자기 대원군이 청군한태 납치되었다. 그리고 봉기때 숨어있던 민씨는 청군의 보호를 받으면서 다시 돌아왔다.

느낀점: 재미있었고 20권을 못읽은 것이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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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명화 2014.04.10 21:00
    늦어서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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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 2014.04.11 13:57
    명화야 이번주에는 미리미리 스케쥴 잘해서 스스로에게 당당한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는데... 이모가 너무 늦게 답 보냈지? 주 초에 독려했어야 하는데... 그래 늦게라도 올려줘서 고마워

지호

제목-붕어빵에도 족보가 있다. 지은이-윤덕노 2013년 4월 5일 유지호

by 고백 posted Apr 05,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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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붕어빵에도 족보가 있다. 지은이-윤덕노 201345일 유지호

 

찐빵

일본사람들은 오랫동안 고기를 먹을 수 없었다. 7세기 덴무 일왕이 가축 도살을 금지했을 뿐만 아니라 고기도 먹지말라는 육식 금지령을 선포한 이후 1200년동안 일본인은 고기를 먹지 않았다. 일본 사람들이 다시 고리를 먹게 된 것은 1872년 무렵으로 메이지 유신을 단행한 메이지 일왕이 육식 금지 조치를 헤제하면서부터다. 찐빵은 일본에 육식 금지가 착실히 이루어질 무렵인 1341년에 중국인 임정인이 류잔산사를 딸라 일본에 온 때였다. 임정인은 고향에서 먹었던 것처럼 고기 만두를 팔수 없어서 일본사람이 좋아하는 단팥을 넣어 만두를 빚었는데 이것이 지금 일본 찐빵인 나라만주의 원조다.

붕어빵

모 라디오 방송국에서 우리나라 사람들이 겨울철에 자주 먹는 간식으로 어떤 것이 있는지를 조사한 적이 있다. 결과는 붕어빵을 가장 많이 먹는 것으로 조사 됐고 그 다음이 어묵, 호빵에 순서이다. 붕어빵은 과거 동양에도 없었고 서양에도 없었던 식품이니까 어느날 갑자기 누군가가 아이디어 상품으로 붕어빵을 개발해 팔아서 큰돈을 벌었을 것 같지만 진화론으로 풀어보면 붕어빵은 환경변화에 적응하며 진화한 식품이고 족보가 있다. 많은 논란이 있지만 붕어빵에 원조를 일본에 도미빵에서 찾는 사람들이 많다. 일본에서는 도미가 가장 좋은 생선으로 쳐주기 때문에 일본 서민들에게 인기가 좋았다. 붕어빵도 마찬가지다 예전 서울에서는 붕어를 많이 먹었기 때문에 이름도 붕어빵이라고 지은 것이다. 우리나라 붕어빵은 일본 도미빵을 모방해 만든 것으로 보이지만 사실 커다란 차이가 있다. 붕어빵은 기본적으로 풀빵이라 밀가루 반죽을 묽게 풀어서 빵을 굽는다. 그러나 일본 도미빵은 밀가루 반죽에 계란 설탕등 갖가지 재료가 들어간다. 그래서 가격도 비싸서 붕어빵 정도에 가격을 생각한 사람들에게는 상당히 비싸게 느껴진다. 붕어빵과 도미빵은 이렇게 비슷한 것 같으면서도 다른 측면이 있다.

쫄면

면발이 잘 끊기지 않을 정도로 질긴 국수를 매콤하고 새콤한 양념에 비벼 먹는 국수가 쫄면이다. 국수가 하도 쫄깃쫄깃해 이름까지 쫄면이라고 지었는데 은근히 중독성마저 있어 분식집이나 대형 식품매장 음식코너의 인기 메뉴 중 하나다. 국어사전에도 등재된 우리 국수지만 쫄면은 사실 잘못 만들어진 국수다. 쉽게 말해 공장에서 실수로 생긴 불량품이다. 쫄면의 고향은 인천인데 냉면을 만들다가 가느다란 사출기가 아닌 두꺼운 사출기를 끼워 냉면 국수 대신 굵은 국수가 나온 것이다. 이 국수들은 전량 폐기 처분해야 하는 상황이었는데 공장 옆에 있던 분식집이 불량 국수를 가져다가 채소와 새콤달콤한 고추장 양념으로 비벼서 쫄면이라고 내놓은 메뉴가 학생들 사이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끌며 입소문이 퍼진 것이다.

시험을 앞둔 수험생에게 가장 많이 주는 선물이 엿이다. 엿처럼 철썩 붙으라는 뜻에서 합격을 소원하며 엿을 선물한다. 지금도 수능 시험이 다가오면 엿이 불티나게 팔린다. 옛날 한양으로 과거 보러 떠나는 시골 유생의 괴나리 봇짐 속에는 엿이 필수품으로 들어 있었다. 길가다 요기를 하라는 뜻도 있지만 엿 먹고 과거에 급제하라는 소원도 담았다. 옛날 사람들은 엿에다 다양한 소망을 담았다. 조상들은 설날이나 정월 대보름 아침이면 엿을 먹는 풍속이 있는데 그냥 엿을 먹는 것이 아니라 소원을 빌면서 먹었다. 정월 초하루나 대보름에 먹는 엿을 복엿이라고 했는데 복 엿을 먹으면 살림이 엿가락처럼 늘어나 부자가 된다고 믿었다.

 

느낀점-그냥 어느날 갑자기 생긴 것 같은 음식들에 역사를 알수 있어서 좋았고 재미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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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맑은 2014.04.09 17:07
    난 찐빵과 붕어빵 좋아하는데~~~그런 역사가 있었구나~!!! 잼난데~~~

지원

그림 속의 음식, 음식 속의 역사 이지원

by 다솜 posted Apr 05,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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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영하,<그림 속의 음


그림 속의 음식, 음식 속의 역사 주영하 지음

2014.4.4.이지원

기가에 앉아 술 한 잔 마시며, 사또를 생각하다 김홍도 행려풍속도병

김홍도의 행려풍속도병에서는 아이를 안은 아낙이 황소의 등에 올린 등거리에 앉아있고, 그 뒤로 남편인 듯한 사람이 봇짐을 메고 따르는 모습이 보인다. 그리고 그들의 왼쪽에는 두 명의 남녀가 그들에게서 눈길을 돌리고 있고, 얹은 머리를 한 아낙과 그 옆의 양반은 놀란 듯 귓밥을 만지작거린다. 이 그림은 1795년에 그린 그림인데 여기에는 유명했던 앉은뱅이 술이 그려져 있다. 그 술은 전해져오길 달고 진한 맛 때문에 계속 먹게 되고, 앉아 있던 사람도 일어난다고 해서 앉은뱅이 술이라 불린다 한다.

흔할 때는 나그네도 대접하는 추수라 김홍도 벼타작

그림의 오른쪽 위에는 6명의 일꾼의 주인인 듯한 양반이 누워서 졸고 있고, 이번 농사의 주인인 듯한 남자는 즐겁게 일을 하고 있다. 그리고 그 사람의 아들 같아 보이는 사람은 그다지 즐거워 보이지 않는다. 바닥을 쓸고 있는 노인은 돌멩이가 벼와 섞이지 않을까 열심히 주시하고 있고, 젊은이 둘은 개상질을 하며 노래를 부르고 있는지 무척 즐겁다. 마지막으로 그 옆의 고깔모자를 쓴 남자는 볏단을 새끼줄로 묶고 있다. 지금은 쌀이 흔해졌지만 옛날에 한국인들은 쌀밥에 많이 굶주렸었다. 쌀이 조나 보리보다 맛있었지만 벼농사가 쉽지 않아 쌀밥이 흔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래서 쌀밥은 항상 남자 어른들의 차지였으며, 목숨과도 같았고, 벼농사에 들이는 농부의 정성은 엄청났다.

어머니 혜경궁 홍씨의 회갑연을 차린 정조의 마음 김득신 외 봉수당진찬도

이 그림의 잔치에서 그림의 음식을 자세히 알 수는 없겠지만 괴임 음식이 상마다 가득한 것을 볼 수 있다. 상에는 각종 떡과 강정, 귤병, 편육 등 여러 가지가 올라가 있다고 전해져 온다. 혜경궁 홍씨의 회갑잔치는 정조가 술잔을 올리는 것으로 시작되어 음식이 나오고 술이 나오는 것으로 진행되었고, 이 잔치는 정도가 말했듯이 1000년 만에 처음 있는 경사였다. 그리고 정조의 이 이벤트는 정조의 효심으로 이해되고 있고, 기록으로 남아있는 이 음식들은 궁중음식이라고 재현되고 있다. 그렇게 이 과정에서 궁중 음식이 명월관과 같은 식당에서 기생의 접대를 받으며 먹는 음식이 되었다.

금주령, 그래도 마셔야 했던 관리들 신윤복 <주사거배>’

이 그림은 주막에서 술을 마시는 양반과 벼슬이 있는 사람들이 술을 마시고 있고, 그림의 왼쪽에는 동자로 보이는 아이가 술을 마시는 걸 걱정스럽게 보고 있는 모습을 그렸다. 원래 주막은 술과 밥을 판면서 나그네를 유숙시키는 집을 가르키는데 그림의 집은 주택가 한가운데 있다. 주모는 기생이든지 궁녀 중에서 격이 낮은 출신으로 보이는데 이 그림이 어색한 것은 금주령을 실시했을 때 몰래 술 마시는 관원들의 모습을 풍자해서 그린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렇게 금주령이었지만 실제로는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던 것 같다.

느낀 점

유명한 옛날 화가들의 그림에 나오는 음식을 가지고 역사를 설명하는 책이었는데 재미있었고, 내가 아는 화가들이라서 더 친근하게 느껴진 것 같다


선우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by 자유 posted Apr 05,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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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문서 내 1번째 이미지 크게보기

김선우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어는 구두 수리공이 농부의 집의 같이살았다. 그는 생계가 막막 했지만 가을이되어 돈벌리 가되어 모피를 사러 마을로 갔다. 하지만 돈이 모자라 보드카 1잔을 마시고 집으로 오던중 그는 교회 앞의 알몸인 청년을 만나고. 그는 그청년을 외투를 힙혀 집으로 대리고 온다. 그의 와이프는 그를 내보내겟다고 햇지만 세몬이 막아 세몬의 와이프가. 밥을준다. 그는 웃었다. 그리고 그는 기술을배워 점차 실력을 쌋는다. 그러던날 어떤 신사가와 1년을 신어도 터지지 않는 구두를 만들어 달라했다. 그리고 미하일은 구두가 아닌 슬리퍼를 만든다. 곧 신사는 가는 도중 죽어 하인의 슬리퍼를 만들어달라했다. 그리고 6년후 아이들과 엄마 가 세몬의 가게를찻는다. 그엄마는 그아이들이 자기 아이들이 아니라 죽은 엄마의 아이라고 한다. 그리고 갑자기 미하일의 저는 이만 가보겟습니다. 라고말한다. 이뉴는 그는 하나님에게 벌받아. 이곳으로 왔다 했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3가지를 깨달아 그는 하늘로 돌아갔다.

사람에겐 얼마만큼의 땅이 필요한가:도시의 사는 언니가. 동생 집에 찻아온다. 그녀들 의 예기를하던중 그의 남편의 엿들고. 그는 땅만잇다면 악마도 무섭지 않다라고 말한다. 하지만 악마가 들는다. 그의 마을엔 여지주가 있어 그는 많은 땅을 가지고 있어. 그의 땅에들어가면 벌금을물려 화가나 농부들의 그땅을 산다. 그리고 하지만 바흠의 땅을자꾸발아 그는 볼가강 건너의 좋은땅이 있다 들어 그곳으로가서 행복하게 살고있엇지만 그곳의 땅의 다시 쫍아보여 그는 바시크르인 들의 땅으로가. 그는 땅을살려한다. 하지만 그곳 방법의 색다르다. 방법 은 시간안의 자기가 원하는 땅까지 걸어서 오는 방법이다. 그래서 그는 일단 멀리 갇다. 하지만 해가졋다. 하지만 언덕우는 아직안져 도착햇지만 그는 악마의 계략으로 업드려 죽는다.

바보이반:이반네 집의 그의 형과 벙어리 누나 가살았다. 그의 형 세몬은 장군이되고. 타라스는 장사꾼이되었다. 이반은 일을햇다. 그걸보던 도깨비는 그의 형제들을 괴롭힌다. 그래서 타라스와 세몬은 성공햇으나 이반은 실패하여 도깨비들의 그를 도와주기로 한다. 하지만 한도깨비가걸려 그는 만평통치 약초를 준다. 그리고 땅으로 도망친다. 그리고 타라스와 세몬은 망해 이반의 집에 엋쳐산다. 그리고 또한 도깨비가 걸려 돈과 군사를 만드는 것을알려준다. 그것으로 형들의게 만든것을주었다. 그리고 그둘은 왕이되고 이반은 공주님의 병을낯게해 왕이된다. 하지만 또 타라스 와 세몬 은 도깨비 때문의 망했다. 이반은 그의 나라는 바보여서 도깨바가 신사로 위장을하여 이반의 나라로온다. 하지만 이반의 나라백성은 바보여서. 금화를 사용하는 방법을모른다. 그리고 백성들은 일빡에 모른다. 그래서 도깨비는 머리로 일을하는 방법을 연설한다. 2일을 연설하여 그는 비틀거리다. 쓰러져 머리를 땅에박아 죽는다. 이반은 그가 도깨비라는 걸알고 화낫다. 느낀점:분량이 쩍었다.

 

 

?Who's 자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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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이 2014.04.22 00:37
    와우~ 이거 톨스토이의 작품맞지? ...반가운걸? 내 식탁가족의 자유가 내가 고딩때 읽었던 그 작품을 읽고, 일케 독후감으로 올리다닛!
    근데 책 제목이 묻잖오..'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자유! 그대의 답은 무엇이오?? ^^

정인

(독서록) 개밥바라기별

by 미르 posted Apr 05,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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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밥바리기별

개밥바라기별/황석영 2014.4.4. 김정인

 

그 해 겨울에 나의 베트남 파견이 결정되었다. 얼마 후 우리 대대는 전원이 정글전 특수학교에 입교하도록 결정이 났다. 나는 외출을 허락받아 집에 갔고 그 곳에서 어머니를 만났다. 어머니께서는 이제 점포를 정리한다고 하셨고 나는 방에서 추억을 되새겼다. 다음 날 나는 방에서 음독을 하였고 병원에 실려 가서 닷새 만에 깨어났다. 아우가 나를 발견한 것이었는데 우리 어머니는 침착하게 아우를 학교에 보낸 뒤 앰뷸런스를 불러 나를 실어 보냈다고 한다. 나는 친구들과 만나기 위해 찻집으로 갔고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눈 뒤 나는 집으로 돌아왔고 일요일 아침이 되었다. 어머니는 교회도 빠지고 내게 줄 반찬들을 챙겨주셨다. 나는 안 갖고 간다고 고집을 부렸고 어머니는 내가 집을 나설 때 종이에 뭔가를 싸서 손에 쥐어주었다. 그렇게 나는 플랫폼으로 갔고 그 순간 나는 영길이를 본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 때 나는 회한덩어리였던 나의 청춘과 작별하면서 내가 얼마나 그 때를 사랑했는가를 깨달았다.

내가 준이를 알게 된 건 중학교 때부터였지만 고등학교에 올라가서 한반이 되면서 조금 더 가깝게 되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사월에 시청 앞 광장에서 중길이가 총에 맞아 죽은 뒤로 더 친해질 수 있었다. 준이는 학교에도 잘 나오지 않았지고 낙제를 하게 되었다. 그 말을 들은 날 넷째 시간부터 총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하였다. 하굣길에 중길이와 나는 시청 쪽으로 몰려가는 인파에 끼어 있었는데 그곳에서 나는 준이를 마주쳤고 파출소 근처에 이르게 되었다. 그 때 어딘가에서 총을 쏘기 시작하였고 사람들이 쓰러지기 시작하였다. 그 때 나는 길에 넘어져 있는 중길이를 보게 되었고 중길이가 죽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우리 둘은 슬퍼하였고 그렇게 우리는 점점 가까워지게 되었다.

정수

나는 여름방학이 되자마자 할머니 집에 내려와 있었다. 우리 할머니는 동네에서 호랑이 할멈이라고 불렀는데 성미가 괄괄한데다 야당활동까지 해서 경찰서장도 함부로 하지 못하였다. 누군가 툇마루에 올라서는 기척이 나더니 길게 드리워놓은 발을 젖혔다. 인호 녀석의 목소리가 들려왔고 준이도 있었다. 우리는 준이의 의견대로 영길이네 시골로 찾아가기로 하였고 할 일이 없어 잉어들에게 먹이를 주며 이리저리 서성거렸다. 이튿날 길을 떠나기 전에 할머니는 씨암탉을 두 마리나 잡아주셨다. 나는 다시 녀석들을 따라 나서기 시작하였고 영길이를 만나게 되었다. 이 집의 가장인 할아버지는 영길이와 그 친구들인 우리를 무척 좋아하셨고 애꿎은 준이와 영길이가 사랑방에 들어가 어른시중을 들게 되었다. 우리는 사흘 동안 섬진강에서 신나게 놀았는데 투망을 영길이가 던지는 것을 보고 흉내 내었더니 점점 많은 물고기들이 잡히기 시작하였다. 우리 넷은 부근 밭에 가서 야채를 조금 따와 회와 같이 먹었는데 싱싱한 냄새가 났다. 그 때 영길이가 소주를 사왔고 우리는 취하도록 술을 마신 뒤 옷을 모두 벗고 강가를 뛰어다녔다. 우리는 할아버지로부터 호되게 야단을 맞았고 그 뒤 작은 아버지가 가져온 막걸리를 마시고 잠이 들었다.

선이

아버지가 군인이어서 어릴 적에는 낯선 고장으로 계속 옮겨 다녔고 어떤 곳에서는 육개월도 못 살고 전학해야 되었던 때도 있었다. 중학교 시절부터 우리가족은 정착할 수 있었고 그렇게 사는 사이 나의 오빠가 죽었다. 그 뒤로 나에게 모든 시선이 집중되었고 나의 통행금지 시간은 저녁 7시였다. 아버지는 대입 연합고사 직전에 나에게 무엇을 할 것이냐고 물어보았고 나는 그림을 그려보겠다고 하였다. 나의 미술선생님은 미대를 가지 말고 그냥 그리고 싶은 것을 그리라고 하였고 그 말을 들으니 미대에 가는 것이 시시하게 생각되었다. 엄마는 나에게 가정과에 가라고 하였고 그러자 가정과가 왠지 그럴듯해 보였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정수와 준이와 친해지게 되었고 엄마 말대로 가정학과에 들어갔다. 막상 입학하고 나니깐 뭔가 후회스러웠다.

 

느낀 점: 재미있었고 한 인물과 그의 주변인물들의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어서 더 재미있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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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o's 미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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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맑은 2014.04.05 10:50
    깔끔한 정리~^*^ 잼나게 잘 읽었어~!!!
  • profile
    미르 2014.04.11 23:15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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