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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우

조선왕조 실록 4권

by 양동우 posted Feb 11,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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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왕조실록 04 세종

조선왕조실록 4

태종는 세종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상왕으로 물러앉았다 태종은 주상이 서른살이 될 때까지는 군사와 관련한 일은 직접 챙길 것이고 그 밖에도 나라의 중요한 의논에는 참여하여 주상을 도울 것 이라고 하였다 하지만 권력은 온전히 상왕 한 사람의 것임이 명백했다 세종은 목소리를 죽이고 철저히 몸을 낮춰 모든 것을 상왕의 뜻에 따랐다 신하들과 의논 끝에 내리는 결론은 모두 상왕과 의논하여 결정하였다 상왕 태종은 좋은 여유를 얻었다 대신들과 만나 정사를 의논하거나 대간들의 잔소리를 듣거나 하는 것은 모두 세종에게 맡겼고 자신은 세종과 만나 여러 의견을 듣고 결정만 내려주면 되었다 권한은 무한하나 수고와 책임은 매우 적은 신나는 상황이 된 것이다 그런데 상왕 시절 태종이 직접 나서서 기획추진하고 마무리한 일이 대마도 징벌이다 이후 100여 년 가까이 조선과 중국의 해안가는 모처럼 왜구의 횡포로부터 자유로울수 있었다 세종 27월 원경왕후 민씨가 세상을 떳다 대비가 죽은 이듬해 세종은 대신들과 의논을 거쳐 태종에게 태상왕의 존호를 올렸다 최강의 권력에 최고의 명예가 더해졌다 태종은 동서남북 각 방면에 100여 칸 내외의 별장을 짓고 이궁 저궁 옮겨다니며 마음껏 취미생활을 즐겼다 그러나 대비가 죽고 2년이 지난 세종 45월 눈을 감고 말았다 세종은 정승을 중시했다 중요한 일은 반드시 정승들과 의논하여 결정했다 정승으로서 한번 검증된 사람은 죽을 때까지 썼다 세종은 당대의 누구보다도 혁신적이고 틀을 깨는 사고를 가졌으며 끊임없이 새로운 일을 만들어냈다 세종은 태종과는 다른 진정한 의미에서의 토론의 달인 준비되지 않은채로 대충 의견을 냈다간 망신을 당할수 있다 이에 신하들도 늘 긴장하며 공부하고 준비하여야 했다 누구보다도 부지런하고 누구보다도 열심히 공부하며 끊임없이 생각하여 새로운 일을 만들어내고 뚝심 있게 밀어붙이는 임금 그렇게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세종의 카리스마는 형성되었다 세종의 집현전 사랑은 특별했다 왕립도서관인 장서각을 지어 연구 환경을 만들어 주었고 물품 공급도 아낌없이 했다 효과적인 공부를 위해 사가 독서제를 실시하기도 했다 집현전의 자문은 단순한 자문을 넘어 새로운 정책 결정의 가부를 결정지을 만큼 권위를 갖게 되었다 저술산업도 본격화 되었다 이렇게 집현전을 통해 세종기의 학문 출판은 크게 진흥되었는데 이를 이끈 세종의 의도는 무엇이었을까? 첫째 통치의 근본을 강화하고 법치를 실현하는것 둘째 백관과 유생들 교육 셋째 백성 교육 이었다. 세종은 독자역법 계획을 진행했다 그래서 규포 혼천의 등 천문 관측기구들이 만들어 져 설치되었다 천문관측 기구가 발전되면서 시계제작기술이 발전되었다 무기분야에서도 많은 진보가 있ᄋᅠᆻ다 특히 화포에 대한 세종의 관심은 지대해서 끊임없이 실험하고 계량을 독려했고 마침내 화약 및 화포 기술이 모두 중국을 앞지르게 되었다 북방 야인이라 불리던 여진족은 식량이 떨어지면 떼를 지어 국경지방의 조선인 마을을 습격하곤 했다 세종은 수모를 당하고 가만히 있을순 없었다 세종은 맹장 최윤덕을 평안도 절제사에 임명하여 보넀다 그래서 여진족을 토벌했다 세종은 14431230일 훈민정을을 내놓는다 이에 신하들은 반발하였다 예상못한 반발은 아니었으나 세종은 화가났다 세종은 최만리 등 5인은 의금부에 가두었다가 이튿날 바로 석방했고 정창손은 삼강행실도와 관련해 한 발언을 문제삼아 파직처리 했다 그뒤론 신하들의 반대가 더 이상 없었다 그리고 정인지 등을 시켜 훈민정은 해설서를 만들어 보급하도록 했다 세자 문종은 여덟 살 때 세자에 책봉되었다 문종은 세종의 요구에 착힐히 따라주었다 세자로 있은지 무려 30년 스물이 넘어서부터는 세종 곁에서 실무를 배우고 또 세종을 돕기도 헀다 문종은 세 번 혼인을 했는데 첫 번째는 세자빈이 결정되었는데 휘빈 김씨다 그녀는 남편의 사랑을 받지 못해 사랑을 받기 위해 망칙한 노력을 하다 세종의 정보망에 포착되어 폐출하였고 두번째 세자빈으로는 봉씨가 결정되었다 그러나 세자와 성격이 맞지않아 폐출되었다 그리고 세 번째 혼례는 권씨와 했다 이후로 5년 가까이 지난후 문종이 아들을 낳았다 그러나 이튿날 산모가 세상을 뜨고 만다 또 세종은 30대 중반을 넘기면서 각종 병에 시달렸다 문종은 등에난 종기가 커져 위험한지경에 이르렀다 그러다 세종의 병세가 급격히 악화되 눈을 감고 말았다 문종은 제5대 임금으로 즉위하였다 문종은 세손을 세자로 바꿔 책봉했지만 자신의 건강과 세자의 어린 나이가 걱정이였다 재위 23개월 다시 종기가 재발하였다 급격히 악화되더니 눈을 감고 말았다 할아버지도 할머니도 아버지도 어머니도 부인도 처가도 없는 단종은 12살의 나이에 왕위에 올랐다

느낀점 재미없다 


선우

조선왕조실록 1권

by 자유 posted Feb 11,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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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 실록 1

김선우 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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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북면의 실력자

1250년 이인사는 전주의 관기를 사랑해 전주에서 도망쳤다. 그래서 삼척으로 갔다가 전주수령 이 그곳 신임 사또가 되어 동북 면으로 가서 고려인 들을 모으며 살다 몽골이 항복을 요청해 몽골 에게 항복을 해 몽골 벼슬이 된다. 이 사람이 이성계의 고조다. 100년 후 이자춘 이성계가 원나라가 약해져 개성으로 간다. 그리고 공민왕의 작전 동북 면을 되찾는다.< 

 공민왕 의 개혁> 공민왕은 몽골 이시켜 왕이 되었다. 그것에 화가나 반란을 일으킨다. 하지만 다른 나라들이 쳐들어와 실패한다. 이성계의 등자 동북 면에서 최고인기 개성에선 오랑캐로 취급 받는다. 하지만 홍진군이 쳐들어와 그는 여러 전투 에서 공을 세워 이성계는 그로 하여 인기를 얻는다.

<전쟁의 천재 >이성계는 전쟁에서 밀리는 고려군 을대신하여 혼자 전투를 하지만 죽을각오로 싸우고 큰교훈을 얻는다. 2장 고려는 점점 군사력 약해진다

<계혁의 실패>

공민왕 은 스님을 왕으로 올린다. 그는 신돈이다 그는 백성의 사랑 을받고 계혁울 꿈꾸지만 는 역모 사건으로 죽는다. 공민왕의 죽음 공민왕 은 놀이를 같이하는 아이들을 죽이겟다고 하자 그아이들이 공민왕 을죽이고 모니노 가왕이 된다

<고려의 두영웅>

고려엔 최영 이성계 가있다. 고려에서 왜구를 내쫏는다.

<무기력한 왕>


우왕은 그의아빠는 공민왕 이고 그의 엄마는 임진강에 빠져죽엇다. 그리고 사춘기가와 사냥을 즐긴다

.< 권력잡은 최영>

최영만 왕의 행동을 막았다. 그리고 이성게와 함깨 실권자를 죽인다.

요동을 정벌하라>

우왕은 최영,이성계,조민수 를보내는대 최영은 개성의 남는다. 하지만 장마 때문에 전진 못하고 왕릐 간신을 죽이러 개성으로 간다. 최영을 죽엿다. 그리고 나서 우왕은 패위 가되고 우왕 아들 창왕 이왕 이된다 하지만 오래못 버티고 패위 하고 공명왕이 왕이된다. 공명왕 은 고려의 마지막 왕이다. 즉위를 하자마자 어려운 문서를 낸다. 이성게는 왕이 바보처럼 보여도 많만치 않다는 것을 안다

<고려를 지켜낸자>. 정몽준 이라는 자는 이색을 변호 해주고 장원급제 를3번했고 학식도 뛰어나다. 그리고 유배를갔다. 그는 이성계 의 게혁을 알고있었자. 그리하여 이성계파 정몽주파 로나누어 진다. 정몽준은 이성계의 속마음 을읽엇다. 양쪽은 팽팽 했다. 하지만 이성계가 말에서 떨어졌다. 하지만 이성계 의 아이들이 정몽주를 죽였다. 그리고 정몽주 파는 무너지고 이성계파는 권력을 되찻았다 그리고 정몽주 파를 믿던 공명왕 은 페위 되고 이성계가 왕이됬다.<  느낀점:지루한 역사책이 만화책 으로 읽어 안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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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씨앗 2014.02.16 10:51
    선우~~완전 멋지다~^^아픈 데도 열심히 해주고 앞으로도 잘하리라 믿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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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맑은 2014.02.25 21:04
    전지훈련에서 멋진 모습으로 돌아온 선우야~^*^ 방가방가~!!!
    여기서 너의 글을 만나니 새롭다.~!!!

정인

(독서록)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11

by 김정인 posted Feb 08,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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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11 광해군일기, 경험의 함정에 빠진 군주 2014.2.7. 김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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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장 왕과 세자

정비인 의인왕후가 아이를 낳지 못하자 선조의 마음은 후궁으로 기울었고 이때 공빈 김 씨가 왕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하지만 그녀는 네 살 임해군 세 살 광해군을 남기고 산후병으로 죽고 말았다. 공빈 김 씨가 죽은 뒤 왕의 마음을 차지한 후궁이 있었는데 인빈 김 씨이다. 자연히 임해군 광해군은 왕의 관심에서 멀어졌고 인빈 김 씨가 낳은 왕자가 왕의 사랑을 받았다. 한편 광해군은 모범생으로 자라났고 임진왜란이 터져 분조를 하는 바람에 세자가 되었다. 그는 도망간 왕과 달리 자신의 임무를 멋지게 해치웠고 그를 세자로 하자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었다. 하지만 신성군에게 마음이 있었던 선조는 계속 그것을 미루었다. 선조는 결국 왕비가 낳은 아이가 아니어서 그렇다고 하며 재혼을 하였고 적자인 영창대군이 태어났다. 영의정도 적자를 세자로 해야 한다 하였고 세자의 처지는 더욱 위태로워졌다.

 

2장 초기의 광해군

어느 날 갑자기 왕이 쓰러졌고 선조 412157세의 나이로 죽음을 맞았다. 이 때 영창대군의 나이는 겨우 2살이었다. 중전은 세자의 환심을 사기로 하였고 선조가 죽은 다음날 바로 즉위식이 거행되었다. 광해군은 숱한 장애를 넘고 마침내 보위에 올랐다. 그는 임진왜란 때 분조활동을 성공적으로 이끌었으나 돌아온 것은 미움과 견제였고 중국은 책봉을 거부하였으며 조정의 실세들은 노골적으로 영창대군한테 줄을 섰다. 그는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지 않게 조심하였다. 그렇게 왕이 된 그는 많은 기대를 받았다. 그가 왕이 되자 앞장서서 영창대군을 옹호했던 유영경을 몰아내야한다는 목소리가 커졌고 그는 계속되는 요구가 조금씩 처벌수위를 높여갔다. 결국 유영경은 자결하라는 명령을 받고 죽었다. 그로부터 얼마 뒤 형인 임해군이 역모를 꾀하였다는 소식이 들려왔고 결국 임해군도 죽고 말았다.

 

3장 꼬리를 무는 옥사

황해도에 김제세라는 위인이 있었는데 그는 엉터리 문서를 만들어 관아 앞에 두었고 군수한테 걸렸다. 그 때 군수는 신율이었는데 출세하겠다는 야심을 품고 있어 좀도둑을 잡아도 큰 도둑으로 만들고는 했다. 그는 잡혀왔고 그는 자신이 역모를 꾀하려 했다는 둥 횡설수설하며 말을 하였다. 그 사건은 조정에 보고되었고 광해군은 그 일을 가볍게 넘기지 않고 그와 관련된 인물들 진술에서 나온 인물들을 모조리 잡아들였다. 그는 고문으로 진술을 얻었고 그렇게 얻은 진술은 의심하지 않았다. 날마다 새로운 사람들이 잡혀와 감옥을 가득 메웠고 많은 사람들이 죽어나갔다. 그 사건은 7개월을 끌고서야 마무리 되었고 그동안 340명이 끌려왔고 100여 집안이 파멸하였다.

 

4장 고독한 중립외교

광해군은 명나라 군에게 병사를 보내주었고 명나라는 조선과 원수져서는 득이 될게 없다고 생각하며 중립을 유지하겠다고 하는 조선에게 아무런 공격도 하지 않았다.

 

5장 모래 위의 성

세자 시절의 불행했던 경험 때문인지 왕은 미신을 크게 신봉하였고 늘 점쟁이들 풍수가들을 가까이 하며 그들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하지만 그의 행동은 돈을 많이 쓰게 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신하들이 반란을 일으켰고 그와 관련된 인물들은 다 죽여 버렸다. 폐세자와 부인 박시는 교동에 따로 안치되었는데 탈출을 시도하다 잡혀서 결국 자살을 하였다.

 

느낀 점: 광해군이 불쌍하였고 단종이 생각이 났다. 책이 재미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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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 2014.02.09 00:55
    항상 성실히 열심인 정인이를 보면 이모가 기분이 참 좋다. 중 1,2는 정인이가 모범이 되니 잘 따라 올거라 믿는다. 요즘 같이 수업을 못해서 아쉽네....

정인

(독서록)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10

by 김정인 posted Feb 08,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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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10. 선조실록, 조선엔 이순신이 있었다 2014.2.6.김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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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장 사림의 집권과 분열

인순왕후 심씨는 7개월만에 섭정을 거두었고 대신들이 정권을 휘어잡는 것과 같은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한편 기대승이 낙항한 후 신진 사림의 이데올로그로 떠오른 이는 이이였는데 그는 세 살에 시를 짓고 일곱 살에 경서를 섭렵하였으며 열세 살에 진사시에 장원한 천재였다. 그가 경연에 임하게 되면서 경연장은 그의 독무대로 바뀌었다. 그는 권신 척신세력이 맥없이 무너지는 것을 보았고 사림이 시대의 주역으로 떠오르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는 나라와 백성이 처한 상황을 구체적으로 알고 있었고 그것을 구제하려 애를 썼지만 세상은 그의 말에 귀기울여 주지 않았다. 그는 왕에게 자신의 주장을 말하였고 왕은 그의 주장에 귀기울여주지 않았다. 그러면 그는 지체없이 사직하여 부르면 사양하다 다시가 주장하다 사직하다를 반복하였다. 그는 학문과 교육에 힘썼으며 늘 중앙정치의 흐름에 관심을 기울였다. 그는 결국 탄핵으로 사직하고 물러난지 석달뒤에 49세의 나이로 세상을 뜨고 말았다.

 

2장 당쟁의 격화와 기축옥사

한편 선조는 의인왕후 박씨와 혼인하였으나 자식이 없었다. 대신 그는 후궁에게서 13명의 왕자를 보았는데 그중 광해군이 세자가 될 가능성이 높았다.

 

3장 일본의 침략, 무너지는 조선

정여립 사건으로 조정에 피바람이 불고 북인의 반격으로 긴장된 정국이 계속되고 있는 동안 조선을 둘러싼 주변의 정세는 격변을 거치고 있었다. 한편 일본에서는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전국통일을 이루었는데 그는 중국까지 삼키려는 대담한 구상을 세웠다. 그는 조선에 길을 빌려줄 것을 청하였고 조선은 상대의 말이 너무 무례하다 생각하여 무대응으로 일관하였다. 일본은 결국 조선에 침략하였고 정발 이하 군민은 잘 싸웠다. 그러나 성은 함락되었고 동래부사 송상현은 끝까지 싸웠다. 결국 동래성도 반나절만에 함락되었고 조선의 매운맛은 거기까지였다. 경상 좌병사 이각은 전투가 시작되자마자 도망가버렸고 군대가 거의 흩어졌다. 그로부터 사흘 뒤 왕에게 일본군이 침략했다는 소식이 전해졌고 왕은 부랴부랴 광해군을 세자로 세우고 피난길에 나섰다. 한편 일본은 상륙 20일만에 서울에 도착하였고 다시 북진을 계속하였다.

 

4장 이순신과 무적수군

조선이 그렇게 일본에게 짓밟혀가고 있을 때 이순신이 나타났다. 그는 조선수군은 약하다는 고정관념을 깨고 새로운 전략으로 일본군을 이겼다. 그는 적선 26척을 파괴시켰고 수많은 적들을 수장시켰다. 그럼에도 조선군이 입은 피해는 부상 1명외에 아무도 없었다. 그렇게 그는 많은 싸움을 승리로 이끌었다. 하지만 원균은 공을 인정받고 싶어했고 내용을 조작해 선조에게 글을 올렸다. 그렇게 그는 선조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5장 올려라 구국의 깃발

조선은 사대부의 나라였다. 사대부들은 의무가 적었고 권리는 무한하였다. 그 많은 것을 누리던 사대부들은 전쟁이 일어나자 도망가버렸다. 하지만 그중에 사대부의 명예를 지킨이들이 있었는데 그중의 하나가 의령의 선비 곽재우이다. 그는 치밀한 전략으로 싸움에서 승리를 거두었고 이들의 활약에 힘입어 낙동강 서쪽일대는 완전히 수복되었다.

 

느낀 점: 이순신과 곽재우가 참 멋있다는 생각이 들었고 책이 재미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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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맑은 2014.02.25 21:02
    정인아~^*^ 나도 너덕분에 재미있게 잘 읽었어~!!!

정인

(독서록)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09

by 김정인 posted Feb 08,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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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09. 인종.명종 실록 문정왕후의 시대, 척신의 시대 2014.2.5. 김정인

1장 기대를 뒤로하고

인종은 태어나자마자 친모를 잃었고 신하들은 그를 안쓰럽게 바라보았다. 그는 신동이었고 남곤의 강력한 주장에 따라 관례보다 빠른 여섯 살의 나이에 궁에 들어오게 되었다. 하지만 그를 둘러싼 환경은 불안하기만 했고 그 환경에 걸맞게 기이한 사건이 그의 주변에서 일어났다. 그러던 어느 날 문정왕후가 왕비에 책봉된지 17년 만에 아들을 낳았고 문정왕후는 숨겨왔던 야심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중종 3817일 밤 궐에서 불이 났다. 세자를 노리고 지른 불이었지만 그들은 세자를 제거하지 못하였고 세자를 교체하지도 못하였다. 중종이 기대했던 만큼 오래 살아주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결국 세자가 왕위에 오르게 되었고 이가 제 12대 임금 인종이다. 그는 자신의 계모 문정왕후를 효성으로 대했고 이복동생 경원대군을 우애로 대했다. 한편 그는 부왕이 죽고 난후 금식을 하기 시작하였는데 그 때문에 건강이 악화되어 병에 걸려 결국 31세의 나이로 죽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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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장 을사사화

인종이 죽고나자 대위는 동생인 경원대군에게로 넘어왔고 그는 12세의 나이로 왕이 되었다. 문정왕후가 수렴청정을 하게 되었으며 그가 조선의 제13대 임금 명종이다. 그녀는 대윤을 제거하려 하였고 결국 그의 친인척, 벗들, 종들을 데려와 고문을 당하였다. 그들의 진술이 거짓이든 진실이든과 상관없이 사건은 구체성을 띄기 시작하였고 결국 그의 가족들은 노비가 되거나 유배되었다. 그렇게 문정왕후는 승리하였다. 세자 나이 스무살에 낳은 아들을 임금으로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10년의 정적이었던 대윤세력을 일망타진해 버렸다.

 

3장 문정왕후의 시대

문정왕후는 정치 투쟁에 능하였으며 과감한 결단력과 추진력까지 가지고 있었다. 그녀는 인수대비만큼이나 사서, 경전을 두루 읽었으며 때문에 당대의 석학인 대신들과 마주하고도 논리적으로 밀리지 않았다. 명종 8년 명종의 나이가 스물이 되었는데도 수렴청정은 계속되고 있었고 그 해 7월 그녀는 명종에게 권력을 물려주고 물러났다. 물러났어도 그녀는 여전히 막강하였다. 명종 203월 대비가 병에 걸렸고 4665세의 나이로 눈을 감았다.

 

4장 명종의 길은?

그는 대군시절인 열 살무렵부터 보디가드들과 함께하였다. 그는 감정표현을 절제하는 것을 잘하였고 친정을 하게된 이후에도 여전히 절제를 하면서 살아갔다. 한편 문정왕후 시절 20년 가까이 최고 실세를 군림해온 윤원형이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뇌물을 많이 받았으며 그로인해 재산이 많았다. 그는 최고의 권력을 누렸지만 문정왕후가 죽은 이후 시작된 탄핵으로 자살을 하였다. 명종은 부인 심씨와 하나의 아들을 두었을 뿐 후궁으로부터도 아들을 얻지 못하였다. 세자에 책봉되고 혼례까지 치른 하나뿐인 아들 순회세자는 열세살의 나이로 죽고 말았고 감정을 잘 절제하던 명종도 이것만은 참을 수 없었는지 과음을 하거나 작은일에도 성을 내기 시작하였다. 한편 왕위는 덕흥군의 세 아들중 막내아들인 하성군이 물려받는 것으로 확정이 되었고 그는 34세의 나이로 세상을 떴다.

 

5장 시대의 표상들

한편 이 시대엔 임꺽정이라는 도적이 있었는데 굉장히 힘들게 잡는것에 성공하였다.

 

느낀 점: 재미있었지만 5장은 별로 재미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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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우

조선왕조실록13

by 명화 posted Feb 06,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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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실록[효종 현종실록]

지은이:박시백

출판사:휴머니스트

내용:1장산당의집권

소현세자와 봉림대군은 심양에서 인질생활을 하고 청나라가 중원을 차지하는 과정을 보았으나 그 둘의 생각은 달랐다. 소현새자는 청나라의 문물을 받들어야 된다는 생각이였고 봉림대군은 반청을 주도 했다. 청나라를 싫어한 인조는 소현세자를 죽이고 반청의식이 투철한 봉림대군을 세자로 세워서 봉림대군은 효종이 되었다. 그는 용맹스럽고 검소했고 갑자기 세자가 된 만큼 술을 끊고 겸소해 졌다. 효종은 즉위한 다음날 바로 김집과 송시열등 유명한 선비들을 불렸다. 그당시 선비들은 벼슬을 하지 않고 학문에 힘쓰는 것을 아름답게 여겼다. 그런데 이런 유명인사들이 한꺼번에 벼슬을 하게 되니 그 당시 영향이 있던 김자점은 위험을 느꼇다. 사람들이 김자점을 파직하자는 소리가 높자 김자점은 아들과 같이 번역을 하려 들다가 걸려서 유배를 당한다. 그러다가 또다시 사건에 휘말려서 아들과 같이 죽고 만다.

2장 북별의 길?

효종은 왕이 되고 나서도 반청 정신이 투철 했는데 그는 국방력을 강화 하고 나선 정벌등으로 북벌을 준비했다. 효종은 아성보다는 현실을 더 가깝게 했다. 효종8년에도 의복에 대해서 말한 적도 있었다. 효종은 군사부문에 관심을 가졌는데 그는 군대의 규모를 늘리고 이완을 어영대장,훈현대장으로 삼아서 정예화시키기도 했다. 효종5년에는 청나라가 같이 러시아를 정별하자고 하자 효종은 조총수 100명을 포함해서 150명을 파병했다. 4년뒤에 청나라가 또 파병을 요청하자 이변에는 조총수 200명을 포함해서 265명을 파병하고 큰 승리를 거두 었다.

3장 효종과산당

효종이 즉위하고 나서 송시열이나 송준길이 조정에서 일을 했던 기간은 몇 달밖에 되지 않았다. 효종의 스승이기도 한 송시열을 올라오자 마자 사직을 할 것을 원했으나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러자 송시열은 사모와 관복을 벗고 조정을 나갔다. 그러다가 효종이 벼슬을 내리며 올라올 것을 명했으나 송시열을 가지 않았다. 그러다가 효종 9년에 다시 벼슬을 하였다. 그러나 효종과 뜻이 같지 않았던 송시열은 10계월만에 다시 내려 갔다.

4장 기해예송

효종 10년에 효종의 머리에 종기가 생겼다. 이때 왕세자도 병이 있었는데 왕은 자신의 병보다 세자의 병을 걱정하엿다. 그러다가 종기의 독이 얼굴로 퍼져서 눈을 뜰수도 없게 되자 어의인 신가귀가 머리에 침을 놓자 피가 쏟아지면서 정신이 들었지만 피가 멈추지 않아서 효종은 죽고 만다. 효종이 죽자 효종의 앋르인 현종이 임금이 된다. 이때 효종보다 다섯 살 어린 인조의 계비인 자의대비가 어던 상복을 입는가에 대해서 엄청난 논쟁이 일어난다.

5장 왕권회복의 길

현종은 효종에 비해 많이 허약 했다. 눈병이 심했고 부스럼도 계속 났다. 현종은 곤장의 크기와 현태를 바꾸어서 가혹함을 완화시켰고 권세가들이 가지고 있었던 땅을 찾아서 백성들한태 나누어 주었다. 현종도 효종과 비슷하게 군사에 관심을 가졌는데 이때 군대의 규모를 키우고 군사훈련에 관심을 가졌다.

6장 위기의 산당

현종 15년에 효종의 비인 인선왕후가 죽었다. 예조는 대왕대비가 며느리를 위해 입을 상복으로 기년복을 정해놨는데 이겄 때문에 한번더 산당 중심과 임금사이의 논쟁이 있었다. 그런데 그러다가 현종은 현종 15년에 갑자기 몸이 않좋아 지더니 죽고 만다.

느낀점:재미 있었고 이번 요약은 어디가 좀 이상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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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 2014.02.09 01:00
    정우가 독후감을 열심히 써서 고마운데, 사진이 없네.... 그리고 조선왕조 실록은 1~20까지 블로그에 모두 올려줘. 없는 것들이 엄청 많은데?

재현

붕어빵에도 족보가 있다

by 류재현 posted Feb 06,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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붕어빵에도 족보가 있다.

윤덕노 저 2014.2.6. 유재현

#붕어빵에도 족보가

찐빵

찐빵은 이름처럼 수증기로 찐빵이다. 찐빵은 처음에 일본에서 생겨났다. 일본은 육식 금지령이 내려진지 1200년만에 풀렸다. 하지만 1200년 동안 육식을 안먹은 사람들은 육식을 하지 않으려 했다. 그래서 일본은 밀가루안에 고기를 넣고 쪄서 찐빵을 만들었다.

붕어빵

붕어빵은 일본에서 계량된 음식이다. 일본에 서양의 와플이 넘어 왔다. 그러자 일본은 와플을 계량하여 물고기 모양으로 생긴 와플을 만들었다. 그리고 일본은 그 지역의 최고의 물고기인 도미의 이름을 붙여서 도미빵이라고 불렀다. 그리고 일제강정기때 우리나라에 도미빵이 들어왔다. 그러자 우리나라는 제일 많이 잡히는 민물고기인 붕어의 이름을 붙여서 붕어빵이라고 지었다. 그리고 잉어빵이란 북한에서 가장 많이 잡히는 민물고기인 잉어의 이름을 붙인 북한의 붕어빵이다.

와플

와플은 고대 게르만어로 벌집이란 말 이다. 와플은 고대 유럽에서 만들어 졌다. 그리고 콜롬버스의 향해때 미국으로 와플이 퍼졌다. 그리고 전세계로 퍼졌다. 그리고 일본에서 도미빵을 만들었다.

단팥빵

단팥빵은 일본사람들이 만든 서양식 만두이다. 밀가루에 고기나 야채를 넣고 찌면 만두가되고, 밀가루에 단팥을 넣고 찌면 찐빵이 되고, 밀가루에 단팥을 넣고 구우면 단팥빵이 된다. 그리고 단팥빵에 참깨를 뿌리는 까닭은 참깨를 뿌리면 통팥을 거른 앙금으로 만든 단팥빵이란 소리고 겨자씨를 뿌리면 통팥으로 만든 단팥빵이라는 것 이다. 하지만 요즘에는 통팥으로 만들어도 참깨를 뿌리는게 대부분이다.

소보로빵

소보로빵은 일본이 일본인의 체격을 서양인처럼 키울려고 만든 여러 가지의 음식중 하나이다. 소보로빵은 빵에 비스킷을 붙이고 구운 것 이다.

크림빵

크림빵도 일본이 일본인의 체격을 서양인처럼 키울려고 만든 여러 가지 음식중 하나이다. 슈크림빵은 크림빵이지만 크림빵과 다르다. 슈크림의 뜻은 양배추 크림이란 뜻인데 슈크림빵을 굽는데 부풀어오르는 모습이 양배추 같아서 슈크림빵이라 이름지었다. 일본은 서양인의 주식인 빵을 계량하여 단팥빵,소보로빵,크림빵 등을 만들었다.

카스텔라

카스텔라는 스폰지 케이크이다. 카스텔라는 일본에서 만들었지만, 스페인의 스폰지 케이크와 흡사하다. 스페인의 스폰지 케이크가 카스텔라보다 먼저 나왔으니 스페인의 스폰지의 카스텔라의 시초라 할 수 있다.

건빵

건빵은 일본이 세계2차대전때 만든 군용식품이다. 일본은 태평양을 건너면서 싸우는데 밥 같은 음식을 군용식품으로 쓰니 금방 썩어버렸다. 그래서 서양의 비스켓을 계량해 건빵을 만들었다.

비스킷

비스킷은 건빵의 시초이다. 비스킷의 어원풀이는 두 번 굽다라는 뜻 이다. 두 번 구우면서 재료 안 에 있던 수분이 다 없어진다. 그래서 유통기한이 수 년이 된다.

고로케

고로케는 프랑스의 크로켓이 일본으로 넘어와 고로케가 되었고, 그게 우리나라의 전파되었다.

마시멜로

마시멜로는 기원전2000년에 고대 이집트인이 먹었다. 그래서 마시멜로는 4000년 역사의 우서깊은 과자이다. 옜날에는 나무수액으로 마시멜로를 만들어서 마시멜로를 약으로 먹었다. 하지만19세기 서양에서는 마시멜로를 약에서 과자로 바꿨다.

느낀점: 우리가 먹는 빵이나 거리음식이 거의다 일본에서 육식금지령을 해제하고 계량해서만든 음식이여서 놀랐고, 재미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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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 2014.02.09 00:53
    재현이 이 책 잼나지? 이모도 넘 읽고 싶어서 이모가 산거야. 나도 봐야지....

지원

조선왕조실록 16 정조실록

by 다솜 posted Feb 02,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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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실록 16 정조실록

2014.2.1.이지원

1장 세손 시절

세손은 죄인의 아들로 바라보는 신하들과 언제 등 돌릴지 모르는 외가 사이에서 무너지지 않고, 할아버지의 기대에 부응하였다. 세손은 자라면서 외가에 대해 불신을 드러내었고, 외가는 권력 실세로 군림했지만 세손에 대한 왕의 신뢰가 굳건하여 막을 수 없었다. 마침내 세손은 대리청정을 맡게 되었고, 석 달 뒤 영조는 눈을 감았다.

2장 숙청과 반발

정조는 김상로와 문성국를 대역죄로 처단하고, 영조의 후궁 문씨를 도성 밖으로 내쫒는 일로 복수를 하였고, 사도세자를 장헌세자로 이름을 붙였다. 그리고 최강의 척신들을 제거하였고, 그들을 경계하였다. 홍국영은 왕과 마음이 통하는 벗이었으나 점점 자신의 힘을 키워갔지만 왕은 그런 그를 지켜보다 결국 유배보내었다.

3장 의리 탕평의 길

사파는 정조의 주요 정채겡 동의했던 부류이고, 벽파는 반대했던 부류이다. 일가는 세손의 보호자였다가 반대 세력으로 돌아섰고, 나중에는 역모를 꾀하기도 했다. 정순왕후는 열다섯 살에 궁에 들어와 나중에는 언제나 명분을 쥐고 움직었고, 단호한 태도로 자신의 뜻을 가지고 있었다.

4장 세도세자 추숭을 둘러싸고

정조의 뜻으로 아버지의 천장이 행해졌고, 그 이후 왕은 해마다 화성을 찾아 오열을 했다. 노론 벽파의 수장 김종수는 왕의 신뢰가 커서 위리안치까지 했다가도 다시 불려지기도 했지만 정조 23년에 죽었고, 얼마 뒤 채제공도 죽었다. 그리고 왕의 몸은 점점 병들도 급격히 노쇠해갔다.

5장 개혁적 유학 군주

정조는 자신의 앞에 높은 시대의 흐름과 병폐의 심각함을 잘 알았으며 강인하고 결단력이 있었고, 백성을 사랑했다. 그는 암행어사를 보내어 수령들을 긴장하게 했고, 백성을 보다 편안하게 했다. 그런데 정조 24년에 머리와 등에 종기가 돋았고, 점점 심해지다 결국 세상을 떠났다.

느낀 점

재미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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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맑은 2014.02.03 11:16
    꾸준히 책을 읽어가는 다솜 지원아~^*^ 꿋꿋하게 너의 미래를 만들어가며, 예쁘고 멋지게 자라는 걸
    보는 재미가 좋다.남자들 틈바구니에서 씩씩하게 살아가는 모습 또한 보기 좋다. 건강하고 유쾌한 나날되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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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 2014.02.09 00:59
    지원이도 블로그에 조선왕조 빠진 부분도 찾아서 채워 올려줘. 드문 드문 이 빠진 것 같아서...

지호

제목-조선왕조실록13 지은이-박시백 2013년 2월 1일 유지호

by 고백 posted Feb 02,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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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조선왕조실록13 지은이-박시백 2013년 2월 1일 유지호

 

광해군을 설명하는 키워드가 중립 외교라면 효종은 북벌이라고 할 수 있다.그만큼 남자 다웠고 당당했다. 나중에 효중이 죽었을 때 난감한 일이 발생 하기도 했는데 바로 관이 작아 효종이 들어갈수 없었다. 효종이 가장 관심이 있었던 부분은 군사 문제였다. 관심을 가졌을뿐만 아니라 안목도 뛰어났다. 그래서 청에서 조선의 조총수를 계속 요구해 조선에 조청병들은 두루 활약을 보였다. 효종은 송시열이라는 자를 밑고 의지했다. 그래서 같이 북벌을 도모했지만 북벌을 하지는 못한다. 그리고 효종 2년에 충청지역에 대동법이 시행되어서 백성들이 좋아했고 확대를 실시하였으나 효종은 실해되는 것을 보지 못하고 죽는다. 그후 화폐법도 실시하였으나 상품경제의 미발달로 성공을 거두지는 못한다. 효종 10년에 한노인이 5월에 거사가 있을것이기 때문에 경복궁 초옥으로 옮기라고 하였지만 듣지 않았다. 그러나 정말로 얼굴의 종기가 나서 눈을 뜰수도 없어졌다. 그리고 침을 놓자 피가 멈추지 않아서 효종이 죽었다. 상복은 논란이 있었지만 결국 기년복으로 정해졌다. 현종은 강한 이미지인 아버지에 비해 색깔이 없는 이미지로 알려져있다. 아버지가 못다한 대동법 시행을 마침내 했냈고 세수 자원을 확보하고 곤장의 크기와 형태 재질을 바꿔서 형장의 가혹함을 완화시켰다. 그리고 병을 치료하러 온천을 가면 군사 훈련을 병행해서 진법을 훈련했다. 승승장구하던 왕에게 갑자기 헛배가 부르고 설사가 뒤따르며 숨을 거둔다. 서른다섯에 젊은 나이였다.

 

느낀점-특별한 사건이 없는 것 같아 좀 지루했다.


책정보,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13) 네이버 책.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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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맑은 2014.02.03 11:12
    고백 지호양~^*^ 마가퀴즈 꾸준히 올리는 모습이 참 좋아보인다. 너 덕분에 금주의 말씀을 자세히 읽어보게 되었고, 너로 인해 확실히 마가퀴즈는 이번에 묻어갔네. 고맙다~^*^ 2일에 독후감까지 올리다니~~~뜨끈뜨끈한 최신 글을 읽어서 좋네~!!!

지원

조선왕조실록 17 순조실록

by 다솜 posted Feb 02,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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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실록 17 순조실록

2014.2.1.이지원

1장 정순대비의 수렴청정

열한 살의 순조 대신 정순대비가 수렴청정을 맡게 되었고, 정치 지도자처럼 행동했다. 순조 1년에 대왕대비는 사학하는 이들을 징계하라 하였고, 형조와 지방 관아들은 검거를 시작했으며 이가환, 권철신 등은 몰고 되었다. 정순대비는 정조의 개혁 정책을 계승하려고 했고, 순조 1년에 노비안을 불태워버렸다. 그렇게 그녀는 명분을 중시하였고, 절제를 알았다.

2장 시파의 집권과 벽파의 몰락

순조 4년부터는 열다섯이 되는 왕이 친정하게 되었고, 몇 달 뒤 대비는 숨을 거두었다. 순조는 총명했고, 정치의 작동 원리와 조정 신하들의 면면도 얼추 알았다. 그리고 얼마 뒤 조득영이 김달순을 공격하는 소를 올리고 왕은 받아들여 결국 김달순은 사사되었다.

3장 홍경래의 난

농업 생산력의 발전과 화폐경지의 발달은 양반의 수를 늘게 했고, 그럴수록 농민들의 처지는 더욱 어려워졌고, 분노한 농민들은 반란을 일으키기 일쑤였다. 순조 11년에 홍경래는 사람들을 끌어모아 점점 규모가 커졌고, 반란을 일으켰지만 실패하였고, 홍경래의 난은 그렇게 평정되었다.

4장 임금 순조

순조는 총명하였고, 결단력도 부족하지 않고, 부지런했던 왕이었지만 정치적 목표가 없었다. 그는 건장했지만 즉위 10년부터 자주 병에 시달렸고, 열의를 잃어갔다. 그리고 38세에 열아홉 살 효명세자에게 대리청정을 하게 하였고, 세자는 일을 잘 해나갔지만 각혈을 하였고, 순조 30년에 세자는 생을 마감했다. 그리고 얼마 뒤 순조 34년에 순조도 세상을 떠나게 되었다.

5장 세도정치의 개막

임금이 정사에 손을 놔버리고 비변사에서 대부분의 결정이 이루어지면서 세도정치가 열렸다. 수령으로 임명된 자들은 백성이 돈을 주지 않으면 폭력을 휘둘렀고, 때문에 백성은 굶주리고 분노가 쌓여가 나라의 기반을 허물었다. 그렇게 조선 사회는 수령들에게 백성에 대한 수탈을 권장하는 사회라 해도 될 것이다.

느낀 점

순조와 세자가 불쌍해보였고, 정순대비가 대단한 사람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재현

조선왕조실록10

by 류재현 posted Feb 01,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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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실록10 2014.2.1 유재현

박시백 저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제1장 사림의 집권과 분열

선조는 16살 때에 왕위에 올랐다. 선조는 임금의 대한 수업을 받은 적이 없었다. 그리고 믿고 의지 할 만한 정치 세력도 없이 임금노릇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 시대의 떠오르는 사람이 있었다. 바로 이이 이다. 이이는 강렬하게 존재하였다. 말보다 글을 먼저 익혀다던가, 세 살의 시를 짓고, 일곱 살에 경서를 섭렵하기 시작했으며, 열세살의 진사시의 장원한 천재이다. 그리고 열여섯의 어머니를 잃고, 중이 된다. 그리고 스물살에 절에서 내려와 벼슬을 맡는다.

제2장 당쟁의 격화와 기축옥사

율곡 이이가 죽었다. 그러자 신하들의 권력이 나눠 지면서 동 서로 나위었다. 그래서 많은 대신,대간들이 옥사의 같이거나, 고문을 받다 죽거나, 사형을 당하거나, 자살하였다. 그렇게 피바람이 불었다.

제3장 일본의 침략,무너지는 조선

조선에는 피바람이 불고, 일본에는 100년 넘게 이어져온 전국 시대가 정리 되었다. 일본은 100년 넘게 이어져온 전쟁을 끝낸 자신감과 끝없는 전쟁으로 인한 수십만의 정예부대, 욕심많은 영주들로 인해 새로운 구상을 세운다. 하지만 조선은 군사훈련은 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이순신은 병선을 건조하고 군사를 훈련 시켰다. 그리고 일본군이 쳐들어왔다. 일본군이 우리나라의 상륙하는데 단 한번의 해진도 없었다. 그리고 일본군은 부산진성에 들어갔는데 함락 당하였다. 일본군은 3000명을 살육하였다. 동래성에 같다. 동래성에서는 송상현과 동래선 군민들이 끝까지 싸웠지만, 끝내 함락 당하였다. 그리고 경상 좌병사 이각은 동래성에 갔다가, 전투가 시작되자 도망가 버렸다. 일본군과 조선군의 싸움은 최정예 일본군과 오합지졸의 조선군의 싸움이였다. 일본군은 북으로 쭉쭉 올라오고 있었다. 그러자 왕은 궁을 버리고 파전하였다. 그러자 분노한 백성들은 궁을 불태 웠다. 일본군은 계속 북진을 하였다. 그렇게 20일 만에 서울에 도착하였다. 그래서 관군은 5만이 넘는 관군을 이끌고 막았지만, 일본 수군 1600명에게 패배한다. 그렇게 일본은 조선의 침략을 성공하는 듯 했으나, 예기치 못한 곳에서 문제가 생긴 것 이다.

제4장 이순신과 무적 수군

일본군은 막강하였다. 특히 수군이 막강 하였다. 1600명으로 5만명을 이길 정도였다. 그래서 조선은 일본은 수군이 강하고 육군이 약하니 무조권 육지에서 싸워야 한다고 생각하였고, 일본도 자신은 수군이 더 쌔다고 생각 하였다. 하지만 옥포에서 이순신이 이끄는 수군에 일본 수군이 깨졌다. 이순신은 제수되고 1년 남잣의 기간동안 전쟁 대비의 총력을 기울였다. 전함을 건조하고, 화포와 화약을 준비했으며, 군사훈련을 거듭했다. 그리고 전법을 세워나갔다. 그리고 왜군이 쳐들어 왔다. 이순신은 판옥선 24척을 필두로 일본 수군과 싸웠다. 그러자 일본군은 전멸하고, 조선군은 부상자1명 뿐이였다. 그리고 거북선을 필두로 해전을 하였는데 언제나 완승이였다.

제5장 올려라 구국의 깃발

바다에는 이순신이 있고 육지에는 곽재우가 있었다. 이순신과 곽재우 둘 다 관군이 훈련을 하지 않을 때 훈련을 하였다. 곽재우는 미리 바다에 말뚝을 박아 놓고 일본의 수군이 전복되는 틈에 일제히 화살을 퍼부었다. 그리고 의병 1천명과 승려1천명의 의병으로 일본군을 맊았다. 그래서 승리는 의병쪽으로 기울었지만 결국에 일본군이 승리하였다. 그렇게 곳 곳에서 의병들이 일어나서 일본군을 막았다.

제6장 퇴각하는 일본군

선조는 의주에서 있었고, 최고위급 지휘관들은 겁부터 먹고 전투가 일어나면 도망치기 일쑤였다. 하지만 전쟁의 흐름은 바뀌어 가고 있었다. 연이은 이순신의 승전보와 의병들의 분전으로 싸울 만하다는 자신감이 퍼져갔다. 그리고 조선군에게는 일본군을 압도하는 각종 화포가 있었다. 그렇게 각종 화포를 가지고 경주성을 탈환하는데 성공한다. 그리고 일본군이 쳐들어 왔다. 그래서 밤낮으로 싸워서 결국엔 조선군이 이겼다. 그리고 또 엄청나게 많은 일본군이 쳐들어 왔다. 하지만 조선군이 이겼다. 그래서 일본군은 점점 남쪽으로 티각해 나갔다. 그래서 결국에 일본군은 퇴각하였다. 그리고 선조는 이순신에게 벼슬을 주지는 않고 유배를 보냈다.

제7장 정유재란과 그 뒤

일본군은 이순신만 제거하면 조선을 다시 침략할 수 있다고 생각하였고, 이순신 제거를 우선 과제로 생각하였다. 그래서 결국 다시 조선을 침략하였다. 하지만 이순신은 유배를 가있었다. 그래서 조선 수군을 원균이 지휘하였다. 원균은 그동안 만들었던 모든 판촉선과 거북선을 가지고 일본군과 싸웠다. 하지만 조선수군은 전멸하였다. 그리고 전주성 까지 침략하였다, 그래서 결국 선조는 이순신의 유배를 풀어주고 조선 수군 통제사로 임명하였다. 그리고 이순신은 바로 남해안으로 갔고, 흩어진 병사들과장수들을 모았다. 그리고 의병들도 생겼다. 그때 다행히도 판촉선 12척이 남아있었다. 그리고 이순신의 판옥척은 한척이 더해져서 13척 이였다. 그리고 일본군이 300척을 이끌고 쳐들어왔다. 하지만 이순신은 13척으로 300척을 이겼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고 노량 앞바다에서 최후의 결전을 하였다. 조선수군이 대승을 하였지만, 이순신은 총알을 맞아 생을 마감하였다. 그렇게 전쟁은 끝났다.

느낀점: 이순신은 대단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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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맑은 2014.02.03 11:25
    재현아~!!! 대기명당에서 남자로 훌쩍 커버려 너를 만나는 것이 새로왔단다. 재미있는 날날되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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